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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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출간되었는데 올해 김태희, 임지연 주연 드라마로 제작, 방영 되면서 뒤늦게 화제가 된 소설이다. 나는 드라마 방영 직전에 이 소설을 읽었는데 아직 드라마를 못 봐서 소설과의 비교는 못 하겠다. 


이야기는 경기도 판교에 새로 지은 저택에서 시작된다. 저택의 안주인 주란은 의사 남편에 똑똑하고 잘생긴 아들을 둔 전업주부다. 어느 날 집들이 겸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친구들이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사실 주란도 냄새가 난다고 전부터 남편에게 말했는데, 남편은 이웃집 거름 냄새가 넘어오는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란은 매사에 완벽한 남편의 말을 믿어 보기로 하지만, 낚시 약속이 취소되어 집에 있겠다고 했던 남편이 새벽에 갑자기 사라지고, 남편과 함께 낚시를 하기로 했던 남자가 시체로 발견되며 의심은 점점 더 커진다. 


한편 상은은 제약 회사에 다니는 남편을 두었고 자신은 가구 회사 쇼룸에서 일한다. 결혼 4년 만에 임신을 했지만 임신 사실을 알리면 퇴사하라고 할 것 같아서 회사에는 알리지 않은 상태다. 상은과 남편 윤범은 결혼 전 사이가 무척 좋았지만 결혼 후 돈 때문에 다투는 일이 크게 늘었다. 심지어 윤범은 상은에게 폭언과 폭행을 퍼붓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어느 날 상은은 윤범이 자신과 상의도 없이 한 달 전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따지자 손찌검까지 당한다. 몸도 마음도 상처 입은 상은에게 이튿날 들려온 남편의 사망 소식.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이 소설의 백미는 따로 진행되던 주란과 상은의 서사가 조금씩 겹치다 마침내 교차해 주란과 상은이 일종의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대목이다. 사는 지역으로 보나 경제, 사회적 계급으로 보나 서로 만날 일이 없었을 두 여자가 각자의 이유로 한 자리에서 만나고,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남자가 부유하든 아니든, 여자에게 경제력이 있든 없든, 아내에게 남편은 함께 의지하며 살아갈 동반자인 동시에 영원히 알지 못할 타인이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를 해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남성임을 보여준다. 


주란과 상은이 남편의 부정을 파헤치고 남편과 단절할 마음을 먹게 되는 계기가 둘 다 '자식'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만약 주란에게 지켜야 할 아들이 없었다면, 상은이 결혼 4년 만에 임신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이른바 '모성'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결말을 보면 오히려 모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선 '나쁜' 엄마가 되는 것도 불사해야 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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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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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을 읽고 반해서 유즈키 아사코 전작 읽기에 도전하는 중인데, 대표작 <버터>를 읽고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이것은 마치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낀 (좋은 의미의) 충격과 공포. 심지어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 비해 여성주의적인(일본 사회 내의 여성 혐오와 차별을 폭로하는) 성향이 훨씬 짙어서, 그러한 주제에 관심이 많은 나의 취향에도 훨씬 잘 맞는다. 유즈키 아사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듯하다. 


<버터>는 특종 압박을 받는 주간지 기자 리카가 일본을 뒤흔든 연쇄 의문사 사건의 용의자 가지이 마나코를 독점 취재하면서 겪는 일을 그린다. 리카가 가지이에게 관심을 가진 건, 가지이가 남성들에게 거액의 돈을 갈취하고 그들을 살해했다는 혐의 때문이 아니라, 가지이가 '못생기고 뚱뚱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중에게 심한 조롱과 질타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살인을 해도 예쁘고 날씬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은 리카는 언론에 비협조적인 가지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 비장의 무기인 음식을 이용한다. 


이 소설에서 음식은 중요한 소재다. 소설 초반에 리카는 요리 블로거였던 가지이에게 음식 레시피에 대해 질문하며 접근한다. 가지이는 리카에게 구치소에서는 질 좋은 버터를 좀처럼 맛볼 수 없다며, 리카가 대신 버터가 들어간 음식을 맛보고 감상을 들려달라는 제안을 한다. 이런 식으로 리카와 가지이는 음식을 매개로 연결되는 동시에, 음식을 통해 생존을 도모한다. 남초 직장에서 일하는 리카에게 가지이 건은 직장에 계속 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달린 중요한 일감이다. 가지이는 외모가 아닌 뛰어난 음식 솜씨로 남자들을 유혹해 돈을 받아 쓰며 살아왔다. 


대중은 그런 가지이를 '꽃뱀'이라고 욕하지만, 리카가 보기에 가지이는 세상이 원하는 기준(외모)에 맞춰 자신을 바꾸는 대신 자신의 장점(요리 실력)을 활용해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그 장점이 결과적으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여자는 요리를 잘해야 한다) 여성 자신을 공격하는 빌미가 될 때에도(잘 먹으니까 살 쪘지) 그것은 '장점'일까? 심지어 그 여성(가지이) 자신이 여성혐오자라면?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여자는 누구에게나 너그러워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어요. 그러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페미니스트와 마가린.”) 


소설 자체도 놀라운데, 권남희 번역가 님의 후기에 이 소설이 실화에 기반한다고 쓰여 있어서 더욱 놀랐다. 2009년 도쿄 인근의 한 수도권 지역에서 일어난 이른바 '꽃뱀 살인사건'인데, 사건의 용의자인 30대 여성 기지마 가나에가 일반적인 '꽃뱀'의 이미지와 다르게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인 점이 화제가 되었다고(어쩐지 사회파 소설 같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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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2 - 전2권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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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이 2007년에 발표한 '코리아 디아스포라' 3부작의 첫 번째 소설이다. <파친코>를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은 어떨까 기대가 컸는데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파친코>는 저자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가 아닌데, 한국계 이민 2세대 여성의 성공 분투기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저자의 경험이 반영된 듯 보이는 대목이 많아서(주인공 케이시 한부터가 저자 자신의 분신처럼 보인다) 내용이 훨씬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1990년대 뉴욕. 세탁소를 운영하는 한국계 이민자 부부의 장녀인 케이시 한은 명문대(프린스턴대)를 졸업했지만 부모가 원하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지 못해서 곤란한 상황이다. 전형적인 한국인 부모인 케이시의 부모는 딸이 남들 보기에 좋은 직업을 가지고, 신앙심 깊은 한국인 남자와 결혼하기를 바란다. 반면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 자란 케이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고 싶고, 인종이나 국적을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연애하다 스스로 결혼할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 결혼하고 싶다. 


결국 케이시는 가치관이 다른 부모와 크게 싸우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져 갈곳이 없을 때, 우연히 한인 교회 친구 엘라를 만나 그의 집으로 가게 된다. 엘라는 여러모로 케이시와 정반대이자 케이시의 부모가 원하는 딸의 모습이다. 의사의 딸인 엘라는 명문 여대 졸업 후 학교에서 일하다 한국인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매주 교회에 나가고 혼전순결도 지킨다. 케이시는 엘라를 고루하고 답답하게 여기지만, 엘라는 먹고 잘 집도 제공해주고, 케이시를 남편이 다니는 투자은행 사무직원으로 취직도 시켜준다. 덕분에 케이시는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받으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케이시는 일과 사랑, 가족, 인간 관계 등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내지만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포기 직전에 이르기도 하고, 가슴 뛰는 일은 아닌데 성과가 좋아서 계속 하다가 비싼 비용을 치르기도 한다. 가족과 연인, 친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독자로서 응원할 만한 선택을 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케이시의 삶이 변하는 만큼 주변 인물들의 삶도 변하는데 이 또한 매우 극적이다. 특히 엘라와 케이시의 엄마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둘 다 유교걸들이(었다)라는 공통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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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
존 디디온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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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조앤 디디온의 초상>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읽게 된 책이다. 저자 조앤 디디온은 1934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태어나 버클리대학 졸업 후 <보그>지의 에디터로 취직했다. 세계 최고의 패션지 에디터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로서도 성공한 그는 작가인 남편과 함께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딸 퀸타나를 입양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입양아라도,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었다. 그는 퀸타나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려고 노력했고, 퀸타나 또한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보답했다. 그런 퀸타나가 어른이 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그렇게 함께 계속 나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퀸타나가 쓰러졌다(그 해는 퀸타나가 결혼한 해이자 저자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했다). 그 때부터 네 번의 중환자실 입원, 네 곳의 병원 이동을 거쳐 20개월 후 사망했다. 


그때 퀸타나의 나이, 겨우 서른아홉 살.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참척의 고통이 저자를 압박했다. 무엇을 듣거나 보아도 즐겁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퀸타나와 관련된 추억이 엄습했다. 아름다웠던 퀸타나의 결혼식, 퀸타나가 소녀 시절을 보낸 캘리포니아 집의 정경, 하와이로 떠났던 퀸타나의 생애 첫 여행, 예쁜 여자 아기를 입양할 기회가 있다는 전화를 받고 남편과 울었던 기억 등등. 


이 모든 기억은 '푸른 밤'으로 수렴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푸른 밤'은 하지 전후 몇 주 동안 해 질 녘 어스름이 길고 푸르러지는 시기를 일컫는다. 이는 또한 저자가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조앤 디디온은 2021년 12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딸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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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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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애호가에게 미스터리를 즐기기에 최적인 계절 같은 건 없다(사계절 다 좋으므로). 하지만 미스터리 소설을 읽기에는 여름만 한 계절이 없다. 난데 없이 시체가 등장하는 도입부부터 뒷골이 서늘해지고, 형사 또는 탐정의 시선으로 용의자들의 진술을 분석하고 허점을 찾다 보면 두세 시간 정도는 순식간에 삭제되고, 범인을 알게 될 즈음엔 더위 따위 이미 까맣게 잊었을 테니 말이다.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마사키 도시카의 신작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을 읽는 동안에도 그랬다. 


크리스마스이브날 밤, 도쿄 신주쿠구의 경찰서 건너편의 빈 건물에서 노숙인으로 추정되는 50대 여성의 시신 한 구가 발견된다. 두부에 타박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구한테 맞은 것 같기도 하고, 옷을 벗기다 만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성폭행 목적으로 습격을 당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신원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실종자 리스트에서 일치하는 인물도 없어서 난감하던 차에 뜻밖의 일이 발생한다. 시신의 지문이 1년 4개월 전에 일어난 살인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과 일치한 것이다. 


이 사건을 맡은 신입 형사 다도코로 가쿠토는 괴짜로 소문난 선배 형사 미쓰야 슈헤이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좇는다. 다도코로와 미쓰야의 관계는 왓슨과 셜록 홈스의 그것 같다. 다도코로는 상식적인 인물로, 사건 해결에 대한 의욕은 높지만 범인을 잡겠다고 선을 넘지는 않는다. 반면 미쓰야는 이상하다 싶은 게 있으면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파고 들고,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선을 넘는 행동도 불사한다. 다도코로는 그런 미쓰야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지만, 미쓰야의 그러한 집념과 용기가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보면서 점차 마음을 연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전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사건 관련자들 대부분이 부부 관계가 안 좋거나 부모 자식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관계가 안 좋은 이유는 대체로 돈 때문이고, 가난이나 불행을 가리기 위해 잘 사는 척, 행복한 척하는 게시물을 SNS에 끝없이 올리는 점도 눈에 들어왔다. 주요 캐릭터들이 여성이고,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부부나 가족이 숨기고 있는 문제가 주요 동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요즘 화제인 <마당이 있는 집>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소설은 마사키 도시카의 전작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로 시작된 미쓰야&다도코로 형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2020 게이분도서점 문고 대상작이자 '가족이라는 환상을 집요하게 들추는 미스터리'라는 이 책도 읽고 싶다. 여름이 더 무르익기 전에 읽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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