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파티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왕수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리 소설 작가인 올리버 부인(아리아드네 올리버)는 그리스 여행에서 만난 친구 주디스 버틀러의 집에 머무는 중이다. 마침 핼러윈 때라서 마을 아이들을 위한 핼러윈 파티가 열리고, 올리버 부인은 주디스와 함께 파티 준비를 거들게 된다. 올리버 부인이 유명한 추리 소설 작가라는 걸 안 사람들이 올리버 부인에게 말을 거는데, 그 중 한 명인 조이스라는 소녀가 신경 쓰이는 말을 한다. 몇 년 전에 자신이 살인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조이스의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허풍 떨지 말라며 조이스를 혼낸다. 그도 그럴 게 조이스는 전부터 거짓말쟁이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올리버 부인도 마을 사람들을 따라 조이스의 말을 흘려 듣는다. 그러나 그 날 밤 핼러윈 파티 도중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올리버 부인은 조이스를 무시한 것을 후회한다. 올리버 부인은 곧바로 오랜 친구인 푸아로를 부르고, 푸아로는 올리버 부인의 부탁에 따라 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핼러윈 파티>는 올해 9월 공개된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의 원작이라고 해서 읽어 보았다. <핼러윈 파티>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대표작 <오리엔트 특급 열차>,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에 비해 덜 알려진 작품인데,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재미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최근에 일어난 한 건의 살인 사건이 과거에 일어났던 여러 건의 살인 사건과 연결되는 방식이 복잡하면서도 세련되어 그 자체로 흥미롭다. 


푸아로는 조사를 통해 이 마을에 수상한 죽음이 여러 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단한 부자였던 루엘린 스마이스 부인이 갑자기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외국인 오페어가 도망 간 사건, 16세 점원 샬럿 벤필드가 남자 둘에게 살해당한 사건, 여교사 재닛 화이트가 목졸려 죽은 사건, 법률 사무소 서기였던 레슬리 페리어가 불륜을 저지르고 살해당한 사건 등이다. 살인 사건 한 건을 조사하러 온 푸아로는 졸지에 네 건을 더 조사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마을 사람들은 조이스의 말은 전부 거짓이라고, 그 애의 말만 믿고 옛날 일을 들추는 건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 하지만 푸아로는 사건과 관련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며 의문점을 차례로 해소하고 결국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 푸아로의 추리 과정 자체도 재미있지만,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사연도 소설 여러 편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흥미롭다. 1969년작인데 어른들이 '요즘 애들 문제야'라며 혀를 끌끌 차는 모습도 재미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해나의 소설 <두고 온 여름>은 부모의 재혼으로 형제가 된 기하와 재하의 이야기를 그린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기하가 열아홉 살, 재하가 열한 살 때다. 기하는 어릴 때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사진관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왔다. 어느 날 아버지가 재하 모자를 집으로 데려오기 전까지는 완전하지는 않아도 불만 없는 나날을 보냈다. 


기하는 재하 어머니가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닮은 것도 기막힌데, 생전 처음 보는 남자애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잘 돌보라고 하니 황당하다. 재하는 재하대로 기하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상처 주는 모습을 보기 싫고, 아토피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갈 때마다 기하의 도움을 받는 게 불편하다. 기하 아버지와 재하 어머니는 첫 번째 결혼의 미완 또는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새롭게 이룬 가족을 더 잘 꾸려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기하는 더 엇나간다. 


결국 이들 가족은 헤어지게 되고, 기하와 재하는 한동안 서로를 잊고 지낸다. 이따금 함께 살았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도 꾹꾹 누른다. 그러던 어느 날 기하가 재하를 발견한다. 마지막 만남 이후 십오년이 흐른 시점에 '스트리트 뷰'를 보다가 우연히 재하 모자의 모습을 찾은 것이다. 기하는 어차피 할 일도 없고 재하 모자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해서 그들이 운영하는 중식집을 찾아간다. 무슨 말을 하거나 듣고 싶은지 자신도 정확히 모르는 채로 무작정 간다. 


같이 살았을 때에도 끝내 친해지지 못했던 기하와 재하는 여전히 서먹서먹하다. 한쪽이 용기를 짜내 말을 해도 좀처럼 길고 진지한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러나 짧은 대화와 단절된 문장을 통해 두 사람은 같은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런 사람은 서로 밖에 없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는다. 젊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어렸던 기하와 재하가 함께 지냈던 날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온 세상에 단 둘뿐인 것이다. 


기하와 재하는 혈연이 아니므로 형제도 가족도 될 수 없다고 믿었지만, 돌이켜보면 두 사람은 한 집에 살면서 같은 부모를 공유하고 형제나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과 기억을 가졌다는 점에서 진짜 형제, 진짜 가족과 다름 없다. 기하와 재하가 이후에 다시 만날지 연락을 주고 받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진짜 형제, 진짜 가족의 그것이기에 결말을 읽고 마음이 뭉클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풀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8
강화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른여섯 살 싱글인 지수는 자취를 하다가 전세 사기를 당한 후 엄마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지수는 오래 전부터 밤마다 악몽을 꿨다. 꿈에는 중학교 때 지수를 때린 선생님, 지수의 전 재산을 들고 사라진 집 주인, 헤어진 전 남자친구 등이 나온다. 그리고 지수의 엄마와 여동생 미수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수에게 가족은 엄마와 여동생뿐이다. 지수는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지만, 엄마와 여동생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늦된 지수와 달리 동생 미수는 모든 것을 제때에 완벽하게 해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언니보다 먼저 결혼해 안정적인 가정을 이뤘다. 엄마는 그런 미수를 더 예뻐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사는 동안 내내 엄마와 여동생에게 한심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살아온 지수는 전부터 지켜본 여자를 따라 갔다가 그 여자가 다니는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한다. 그 운동이 지수의 인생을 조금씩 바꾸는데... 


강화길 작가의 소설 <풀업>은 'K-장녀'에 대한 고정관념 또는 편견을 깨는 내용이다. K-장녀 하면 보통 맏딸로서 부모를 챙기고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또래보다 어른스럽고 똑부러지며 책임감이 강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 소설의 K-장녀 지수는 또래보다 늦될 뿐 아니라 동생보다도 부모에게 미더운 존재가 못 된다. 지수는 그런 자신을 책망하며 더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빠지는데, 그런 악순환을 끊는 것이 바로 운동이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지수는 난생 처음 헬스클럽에 등록해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으며 몸만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단단해진다. 예전에는 엄마와 여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고 상황을 모면하는 일에 급급했는데, 운동을 시작한 후로는 남들이 자신을 무시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할 말이 생기면 꼭 한다. 그런 지수의 변화를 놀라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과 보람은 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유미 위픽
이희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원도 응랑에 위치한 해안 절벽 '희구대'는 조선 시대 백 대 절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경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자살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이곳을 현주와 '나'가 함께 오른다. 현주와 '나'는 스무 살 때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다. 아나운서 지망생이었을 만큼 예쁜 외모와 수려한 언변을 지닌 현주와 이런저런 잡문을 쓰며 생계를 잇고 있는 '나'는 동영상 사이트에 버추얼 휴먼 '마유미' 계정을 만들어 활동하며 인생 역전을 노리고 있다. 


마유미는 특정한 취향을 가진 남자들이 좋아하게끔 만들어진 가상의 캐릭터다. 흠잡을 데 없는 외모와 온순한 성격을 지닌 여자, 단 걸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여자, 소매에 푸른 장미가 새겨진 새틴 원피스를 입고 자는 여자... '나'는 대본으로 마유미를 만들고 현주는 목소리로 마유미를 연기하는데, 사실 마유미의 '원본'은 따로 있다. 고운 외모와 우아한 취향을 지녔지만 현재는 병상에 누워 거동도 제대로 못하는 현주의 어머니 경희다.


이희주 작가는 전작 <성소년>에서 남자 아이돌을 둘러싼 네 여자의 뒤틀린 욕망과 어긋난 사랑을 그린 바 있다. 신작 <마유미>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대상을 향한 여자들의 불온한 사랑을 그리는데, 그 대상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점이 새롭다. 중심 인물인 현주와 '나'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남성의 욕망을 대리 실현하는 여성들이라는 점, 이들의 굴절된 선택과 행위의 이면에 어머니에 대한 증오 또는 애증이 있다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마유미>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KAL기 폭파사건(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858기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미얀마 해역 상공에서 폭파된 사건)'을 떠올렸는데, 사건에 대한 언급이 소설에 잠깐 나온다. 팟빵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2023년 9월호 '노태우 당선 일등 공신, KAL기(김현희)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편에 따르면, 이 사건 또한 미모의 여성 테러범을 이용해 사건의 본질과 진짜 배후를 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고 한다. 연결해서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어리 테일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7세 소년 찰리 리드는 사고로 엄마를 잃고 현재는 술 중독에서 기적적으로 빠져나온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다. 찰리가 사는 마을에는 '사이코 하우스'라는 별명이 붙은 집이 한 채 있다. 사이코 하우스는 주변의 깔끔하고 아담한 집들과 다르게 더럽고 여기저기가 망가져 있으며, 그 집에 사는 노인과 개는 성질이 아주 더러우니 건들면 큰일 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찰리도 그렇게 믿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사이코 하우스 앞을 지나가던 찰리는 개 한 마리가 길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이건 사람에게 겁을 주려고 내는 소리가 아니라 겁이 나서 내는 소리라고 직감한 찰리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얼마 후 훨씬 더 작게 들린 소리. "도와줘." 찰리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고, 그곳에는 한 노인이 쓰러져 있었다. 사이코 하우스의 주인인 보디치 씨였다. 


보디치 씨를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디치 씨의 간병인이 된 찰리는 보디치 씨의 집이 외관만 허름한 게 아니라 안에 있는 물건들도 엄청나게 낡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래서 가난한 노인인 줄 알고 병원비는 어떻게 낼지 걱정했는데, 어느 날 보디치 씨의 부엌 밀가루 통에서 엄청난 금액의 돈을 발견하고 며칠 후에는 보디치 씨의 금고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 알갱이가 담긴 양동이를 본다. 대체 이 노인 정체가 뭘까. 


스티븐 킹의 장편소설 <페어리 테일>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제목이 왜 동화(fairy tale)인지 궁금했다. 운동 특기자인 17세 소년과 사이코로 소문난 노인의 만남으로 시작하는 것부터가 전혀 동화 같지 않은 데다가, 보디치 씨의 간병을 하면서 신뢰를 얻은 찰리가 보디치 씨의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인으로 지정되고 그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받는 것은 동화보다 범죄 스릴러 소설에 어울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디치 씨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알려준 대로 뒷마당으로 간 찰리가 동화 속 세계로 이어지는 우물을 발견하는 장면을 보며 이 소설은 동화가 맞는다는 걸 알았다. 그것도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케 하는 본격적인 환상 동화! '세상의 우물'을 통해 입장할 수 있는 그 세계에는 수명을 연장해 주는 거대한 해시계가 있고, 찰리는 그 해시계를 이용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개에게 두 번째 삶을 주고 싶어 한다. 


불과 며칠 전까지 인터넷과 휴대 전화가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던 소년이 거대한 박쥐 떼가 날아다니는 환상의 세계를 모험한다는 설정이 기발하고 신선하다. <그림 동화> 같은 고전부터 <사악한 것이 온다>, <로건의 탈출>, <끝없는 이야기> 등 유명한 SF 소설을 언급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해시계를 이용해 수명을 연장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데 그 대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서 2권을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