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서윤영 지음 / 궁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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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그것을 찾아 여행을 할까? 제목은 이런 생각이 들게 하였는데, 내용은 그렇지 않다.

 

집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데, 집에 대한 에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집에 대해서 건축가가 일반인들이 알 수 있게 쉽게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은 자신이 그 집에 있을 때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집이리라. 그런 집에 대한 우리의 상상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져 왔는데... 그것을 대중문화와 연관지어 살펴보고 있는 것이 1부이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을 꿈꾸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집을 꿈꾸다가 아파트에 살기를 꿈꾸는 그런 과정, 대중가요와 연결지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쉽게 읽히고, 과연 나는 어떤 집을 꿈꾸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부에서는 집과 여성인데... 그동안의 집 구조를 살피면서 집에서 여성이 어떻게 소외되어 갔는지를 살피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집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불'이 한다고 하는데, 불이 있는 곳이 바로 부엌, 주방이다.

 

이 부엌이 어느 위치에 자리잡고 있느냐에 따라 여성의 지위가 보인다고 하는데, 타당한 말이다. 지금은 남녀평등 시대를 구현하고 있다고 하는데도, 아직도 부엌, 주방은 여성을 집안에서 소외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지만 집 안에서 소외당하는 사람이 없는 아름다운 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부에서는 아파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아파트에 열광하는가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아파트는 전통 건축의 구조를 나름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외국과 달리 아파트가 상류층의 주거지로써 작동하였기 때문에 아파트에 대한 열풍이 불었다는 분석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앞으로는 고층 아파트가 아니라 저층 아파트, 또 단독 주택 등이 더 인기가 있을 거라는 예측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이 발간된 년도가 2003년이니, 지금은 이 말이 예측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은 쉽게 고쳐버리는 베란다 문제다. 베란다를 고치는 것이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지은이의 주장, 경청할 만하다.

 

4부에서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건물들을 건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백화점이나 성당, 절들이 왜 그런 구조를 택하고 있는지, 학교는 어째서 이렇게 획일적으로 건축되었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이제는 이런 획일성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집에 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서 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라고.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임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집을 투자대상이 아닌, 내 삶을 펼치는 장소로써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덧글

 

70-71쪽

로마의 도무스 건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모순된 부분이 있다.

 

남자들의 공간은 아트리움이고, 여자들의 공간은 페리스타일이라고 앞부분에 설명을 해 놓고, 뒷부분에 가서는 '아내는 자정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그녀의 일터인 아트리움 안에 머물러야 했을 뿐...,(70쪽) ... 페리스타일에도 나오지 못하는 여자가...(71쪽)'라고 반대로 설명하고 있다. 앞부분이 맞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인쇄 과정에서 두 단어가 바뀌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23쪽에서 지은이가 우려하고 있는 현실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하나의 집에 여러 개의 불을 놓아 가정을 붕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123쪽)'라고 하고 있는데, 2003년보다도 더 진화한 스마트폰으로 인해 현대인의 집에는 사람 수만큼 불이 존재하게 되었고, 이들은 가족끼리도 소통하지 못하는 상태로 변해가고 있다.

 

또하나 재건축에 관해서 이 책에서는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참 공감이 간다. 콘크리트의 내구력이 55년 정도라고 하는데, 우리는 25-30년이 넘으면 재건축을 하지 못해 안달이니... 집을 삶의 장소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투자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단면이다.

 

환경을 생각해서도 또 집을 위해서도 불필요한 재건축은 삼가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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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여행
버트 헬링거 지음, 박이호 옮김 / 고요아침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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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헬링거의 글은 길지 않다. 짧은 글들이 단락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글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줄거리를 가지고 내용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각 글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각 글들은 또한 독립되어 있다. 마치 우리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듯이.

 

읽다보면 도대체 맥락을 찾기 힘든 내용들이 도처에서 나온다. 그것은 그의 글들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글로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마치 불교에서 선(禪)의 화두처럼.

 

불교의 화두가 맥락을 제거한 말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고 치열하게 고민하듯이, 헬링거의 글들도 맥락 속에서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그 말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고 넓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런 고민을 통해서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내면에서 느낄 수 있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 이런 말이 있다. 말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계와 함께 존재하고, 신과 함께 존재했다는 말로 읽힌다. 이 말은 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말을 통해 신에게 가까이 가기도 한다.

 

그가 가족세우기 치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바로 이러한 신적인 언어이다. 신적이라는 표현이 거슬린다면 영적인 언어라고 하자.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온 언어.

 

이 책을 읽으면서 네 단어가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영(영적), 거리, 공명, 가족세우기.

 

가족세우기라는 말은 이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가족세우기를 거의 처음으로 실시한, 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시한 사람이 헬링거이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을 가족세우기와 연결시키려는 내 마음의 작용때문에 이 말이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이라는 말. 이를 '신'이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영'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영'을 믿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영'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고, 한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영'이 자신의 삶에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영'을 믿는다면 막 살지는 않는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영'이라는 존재를 사람들이 믿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영'들은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즉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리를 잃은 '영'들, 자신의 자리를 잃은 '영'들은 우리들을 병들게 한다. 우리들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이 '영'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적절한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 가족세우기 치료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는 '영'들은 공명을 통해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다는 말, 그냥 하나로 합쳐진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특성을 지니면서 다른 존재와 어울린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이런 하나됨, 이것이 바로 '공명'이다. 공명은 넓고 깊게 이루어진다. 결코 강요가 아니다. 내가 울릴 때 남들도 함께 어울려 울리는 모습, 이것이 바로 공명이다. 이런 공명이 잘 이루어지면 병이 없게 된다.

 

가족세우기 치료는 이러한 영들이 제 자리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함께 공명하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했다.

 

헬링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느낌은 받았다고나 할까.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읽으며 마음 속에서 계속 음미하는 것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 가족세우기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기반이 되는 헬링거의 생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면의 여행에서 조심해야 할 것. 그것을 '문지방'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문지방, 즉 장애물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선과 악, 정의와 불의에 대한 우리 생각이라고 한다. 많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가장 높게 세워진 문지방은 무엇입니까? 그건 선과 악, 정의와 불의에 대한 우리의 상상입니다. 이 상상들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여, 우리 내면의 여행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좋다거나, 우월감을 갖는 한, 모두에게 같게 작용하여, 같은 호의로 향하고 있는 그 영적인 움직임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서 저 깊이 우리를 덮치지 않습니다. 221쪽

 

어떤 일을 할 때, 특히 내면의 여행을 할 때 자신만의 기준을 지니고 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내면 여행을 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우선 자신을 놓는 연습부터 하고, 놓아진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여행을 해야 한다는 말.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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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 팸플릿 시리즈 (자음과모음) 1
손철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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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미술관에 가는데, 도대체 알 수 없는 그림들이 많다. 그냥 마음에 와 닿는 그림들도 있지만, 도대체 저 그림이 왜 좋다고 하는 걸까 하는 그림들도 많다.

 

특히 현대미술이라고 하는 그림들, 추상화 등등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옛 그림들도 마찬가지다.

 

한 번 스윽 보고 지나가면 모를까 그 그림이 왜 좋다고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고 마는 그림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잘 보았다고 할 수 있나?

 

이 책의 저자는 책의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보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습니다. 많이 모여서 자신의 안목을 형성합니다. ... 제대로 된 안목을 가지려면 첫째로 눈이 부지런해야 하고, 둘째로 다리품을 열심히 팔아야 합니다. ... 옛 그림을 잘 이해하려면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에 내 마음을 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얹지 않으면 봐도 보이는 게 없고 들어도 들리는 게 없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그림 위에 얹으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 그림이 나에게 비밀을 살짝 들려줄지 모릅니다. 131쪽

 

많이 보아라. 그렇다. 옛 그림들을 많이 보아야 한다. 많이 보아서 눈에 익기 시작하면 그림의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다가올지도 모른다.

 

단지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림을 읽기도 하여야겠지. 옛 그림들은 그림과 글이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 묶여 있으니...

 

이런 것들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을 얹으라는 얘기... 내 마음을 그림에 주라는 얘기가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림을 사랑하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보라고. 사랑하는 대상을 막 대할 수는 없으므로, 정성껏 그림을 만나고 보고 대하다 보면 어느새 그림이 내게 말을 걸고 있음을 깨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주 보아야겠다. 미술관이든, 박물관이든... 그래서 옛 그림들을 보아야겠다. 시간이 쫓기지 않고 그림과 마주보면서 이야기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다. 사람들에게 옛 그림에 대해서 강의를 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내어서 마치 앞에서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아 읽기에 무척 편하다.

 

게다가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술술 들려주고 있어서 그림을 보는 재미와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옛 그림.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 마음 속에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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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예찬 열화당 미술책방 1
지오 폰티 지음, 김원 옮김 / 열화당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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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는 중인데,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지오 폰티라는 건축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으니, 책을 고를 때 제목만 보고 골랐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읽기 위해서 펼쳐본 순간, 건축 이론서라기보다는 건축에 관한 짧은 글들의 모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읽으면서 그 짧은 글들의 모음이 시적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건축은 건설과 다르고 토목과는 엄청나게 다름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작가는 건축은 예술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술은 추상성을 바탕으로 하며 영원성을 지향한다고 한다.

 

좋은 건축은 영원히 우리에게 남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하는데... 건축가는 적어도 건축에서 영원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 영원성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건축을 예술로 대하는 것이다.

 

또한 건축은 서정시라고 한다. 참 엉뚱한 소리 같은데... 건축은 웅장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건축이 서정시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좋은 건축은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을 활기있게 해준다고, 행복하게 해준다고 하니, 건축이야말로 서정시가 되지 않으면 안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적인 표현도 많고 생각할 수 있는 표현도 많다. 하나하나가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데... 건축은 그야말로 정치적임을, 그래서 제대로 된 정치가는 건축에 신경을 써야만 함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건축에 관계된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실 건축에는 누구나 다 관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특히 더 중요한 사람들...

 

건축과 다른 분야의 것들

 

사회학자는 반드시 건축에 관하여, 주택에 관하여, 산부인과 병원에 관하여, 학교에 관하여, 그리고 극장이나 사무실에 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의사는 반드시 건축에 관하여, 산부인과 병원, 학교, 캠프, 실험실, 종합병원에 관하여,. 그리고 요양소와 가정의 관계에 관하여 생각해야 한다.

 

농학자들은 반드시 건축에 관하여, 농가에 대하여, 동물과 농기구를 위한 완벽한 축사와 창고에 관하여 생각해야 한다.

 

산업계의 지도자들은 반드시 건축에 관하여 생각해야 한다. 건축은 작업을, 능률을, 노동자의 생활을 지배한다. 그것은 산업의 가치와 사회에 있어서 그 위치를 반영한다.

 

기술자들은 반드시 건축에 관하여 생각해야 한다.

 

정치가도 반드시 건축에 고나하여 생각해야 한다. 도시는 건축이다.

 

누구나 건축에 관하여 생각을 해야 하며, 의무감을 느껴야 하며, 협조를 해야 하며, 건축에 참여해야 한다. 26쪽

 

여기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계속해서 나오는데, 교육자는 누구보다도 건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교육자나 건축가는 모두 미래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현재에 실현하는 일, 미래를 위해 현재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일, 그것이 바로 교육자와 건축가의 일이기 때문이다.

 

책의 끄트머리에 있는 글을 보자.

 

몇 가지 변명

- 네 가지 최고의 직업: 성직자, 교육자, 의사, 건축가

 

  교육자, 의자 그리고 건축가는 성직자와 더불어 그의 생활이 실제적이며 생생하고 드라마틱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간을 형성하고 인간에 대해 예언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간을 구제한다.

 

  부연 : 의사와 성직자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다. 그들은 영원한 실체로서, 병든 실체로서 혹은 생리학적이고 도덕적 실체인 인간을 -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불쌍한 인간들을 - 사랑한다. 그들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증인들이다. 교육자는 인간에 대해, 인간의 미래에 대해 믿음을 갖는다. 그리고 건축가는, 인간이 살고 행동해 나갈 인간 미래의 문명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 나간다. 그들은, 초월적 실체로서, 앞으로 형성할 수 있는 실체로서 인간을 사랑한다. 그들은 미래의 인간을 사랑한다. (물론 훌륭한 교육자와 건축가 들만이)

 

  비정치적 정치형태는 교육자들, 예술가들, 건축가들의 것이다. 그 정치형태란, 타인을 위해, 그럼으로써 결국 우리가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 건설하는 것이며, 가정생활에 반영시켜 봄으로써 생활 전체에서 소중한 것들을 간직해 나가는 것이며, 예술로써 문명과 명예 그리고 인간의 도덕적, 지적 독자성을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다. 261-261쪽

 

'건축은 수정이다','발코니는 범선이다'는 말과 같이 시적인 표현들이 도처에 나오고 있다. 이게 정말 건축이구나. 건축가는 이런 사람이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다.

 

한 번 읽고 던져두기 보다는 곁에 두고 틈틈이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토목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정말로 이런 건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은 사적이어서는 안된다. 건축은 공공이어야 한다. 또한 건축은 토목이어서는 안된다. 건축은 예술이어야 한다.

 

하여 건축은 한 편의 서정시여야 한다. 정말로 좋은 건축은 건축물 하나하나가 다 서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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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35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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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공감 능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그것들을 대한다. 그런 태도가 시에 나타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그냥 지나쳤던 것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 또 무시했던 것들, 애써 숨기려했던 것들을 시를 통해 받아들이는 과정이 바로 시를 읽는 과정일 것이다.

 

이번 김선우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딱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읽어가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런 따스함. 시가 주는 은혜인지도 모른다.

 

이런 따스함을 넘어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에서 공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대로 올수록 남들과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오로지 경쟁 경쟁(하다못해 공기업조차도 성과제로 운영을 하면서 경쟁체제를 구축하고, 또 공기업을 민영화-민영화가 아니라 사영화가 맞는 언어다-하겠다고 한다)하여 다른 이에게 공감하기보다는 다른 이를 눌러야지만 자신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가 팽배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남들과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14년 초판 12쇄. 45쪽

 

사람들이 죽어가도, 굶어가도 내 일이 아니니 관심이 없다는, 국민이 힘들어 하는데,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는 지도자... 공감능력의 부족.

 

이 시에서 이렇게 공감하는 마음이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굳이 크로포트킨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는 경쟁보다는 협동이 더 주요했고, 상대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인정을 받아왔으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하는 능력을 되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공감하는 능력이 이 시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지금 이 시대와 관련짓는다면 정부에서 발표한 쌀 수입 관세율을 513%로 했다고 하는데, 농민들이 바라는 것은 쌀 수입 전면 반대 아니던가.

 

관세율을 높여서 우리나라 쌀 가격보다 외국의 수입쌀 가격이 한참 비싸면 우리나라 쌀을 살 것이라고 하는데, 협상이란, 그리고 관세율이란 지속적으로 내려가기가 쉽기 때문에 결국 우리나라 쌀 농사는 힘들어지게 되고 식량주권이라는 말은 무색해지리라.

 

농민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정치인들, 관료들. 그들은 높은 관세율로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다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쌀 수입이 되는 것 역시 우리들의 생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시, '깨끗한 식사'

 

                                        깨끗한 식사

 

  어떤 이는 눈망울 있는 것들 차마 먹을 수 없어 채식주의자 되었다는데 내 접시 위의 풀들 깊고 말간 천 개의 눈망울로 빤히 나를 쳐다보기 일쑤, 이 고요한 사냥감들에도 핏물 자박거리고 꿈틀거리며 욕망하던 뒤안 있으니 내 앉은 접시나 그들 앉은 접시나 매일반. 천년 전이나 만년 전이나 생식을 할 때나 화식을 할 때나 육식이나 채식이나 매일반.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는 것인데, 일테면 만년 전의 내 할아버지가 알락꼬리암사슴의 목을 돌도끼로 내려치기 전, 두렵고 고마운 마음으로 올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고 (시장에도 없고) 내 할머니들이 돌칼로 어린 죽순 밑동을 끊어내는 순간,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고) 사뭇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는 것.

 

  내 몸에 무언가 공급하기 위해 나 아닌 것의 숨을 끊을 때 머리 가죽부터 한 터럭 뿌리까지 남김없이 고맙게, 두렵게 잡숫는 법을 잃었으니 이제 참으로 두려운 것은 내 올라앉은 육중한 접시가 언제쯤 깨끗하게 비워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도대체 이 무거운, 토막 난 몸을 끌고 어디까지!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14년 초판 12쇄. 20-21쪽 

 

먹을 것에도 이렇게 공감을 한다면 그래서 그 고마움을 자신의 생활에서 실천한다면 우리가 굳이 식량주권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식량주권 문제는 해결될 터.

 

이런 사람이 외국에서 오는 식량을 먹을 리가 없고, 자기 몸의 일부가 되는 음식들을 함부로 대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역시 공감의 문제다.

 

이런 공감의 절정은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에 대한 공감이다. 아직도 수요집회가 계속되고 있고, 일본 정권의 수장이라는 사람은 헛소리만 찍찍해대고 있으며, 우리나라 지도자 역시 이 문제를 외교로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도 수요집회는 계속되고 있는 이 비극적 현실.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되어가는데... 꽃다는 십대의 나이에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온 할머니들이 이제는 저승길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니.

 

너무도 한심한 공감능력의 부족이다. 이런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가 '열네 살 무자(舞子)'라는 시에서 절절하게 펼쳐진다.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았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시가 너무 길기에 인용은 생략한다. 이 시집 64쪽에서 74쪽에 걸쳐서 표현되어 있다) 

 

이런 일이 '세월호'에서도 일어날까 두렵기도 하고, 정말 조금이라도 권력을 쥐고 있다는 사람들의 공감능력 없음에 화가 나기도 한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가 어떤 것인지 파악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세 편의 시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공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시를 통해서 공감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추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멀리 여행을 갈 때 시집을 한두 권 들고 갔으면 좋겠다. 특히 외교 관계로 해외순방을 자주 하는 나으리들. 인문학, 인문학 하는데, 자칭 어렵다고 하는 인문학 책들도 좋지만 시집을 몇 권 들고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찬찬히 읽어보시는게 어떠실지.

 

이 김선우 시집... 찬찬히 읽으면 마음 속에서 '공감' 하는 마음이 막 생겨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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