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보호, 간섭, 감시, 통제, 위험, 재난

 

이런 낱말들을 나열해 본다. 말에는 힘이 담겨 있고, 그 힘은 사람들을 구속하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낱말이 바로 "안전불감증"이란 말이 아닐까 싶다.

 

안전불감증.

 

이 말은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산다는 말로 들린다. 그리고 이런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을 연일 언론에서 뱉어내고 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에는 우리 사회가 위험사회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처에 위험이 있는데 그 위험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사회가 이토록 위험하니 학생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라. 아이들을 위험에서 구출하라. 일반 시민들도 한 순간에 환풍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조심해라. 불이 나면 대피할 수 있도록 해라. 지하철, 버스, 비행기, 배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조직해라 등등.

 

세상에 이 많은 방법들을 머리 속에 넣고 다니다가는 정작 위험에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어떤 때는 어떻게 라는 시험을 볼지도 모르겠다. 시험하면 또 우리나라 아니던가. 시험에 나온다고 하면 기를 쓰고 외워버리지 않는가.

 

그런데 이번 "민들레 95호"에서는 이런 '안전불감증'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질문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예전보다 더 위험해졌는가?

 

왜 언론은 이 상식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까? 굳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대답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또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하여 보호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하고, 위험이라는 말로 통제를 정당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이 매뉴얼의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려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사람들의 자율성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빼앗아가고 있는 본질을 가리기 위한 꼼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래서 이번 "민들레 95호"의 특집은 '보호와 감시 사이'다. 우리는 보호라고 생각하겠지만, 보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득권을 지닌 집단, 이미 권력을 지닌 집단이고, 이 보호를 감시라고 생각하는 집단은 기득원이 없는 집단, 권력이 없는 집단일 수밖에 없다.

 

하여 보호는 통제의 다른 이름이고, 감시를 감추기 위한 보호색일 뿐이다.

 

학교라는 공간을 생각해 보자. 학교가 딱히 더 위험해 진 것이 없는데, 세월호 이후에 학생들의 수학여행이나 체험활동이 전면 금지되기도 했고, 또 학교에 엄청나게 많은 안전에 관한 공문이 온다고 하고, 안전교육을 실시하라는 압박이 많다고 한다.

 

학교는 예전과 다름이 없는데, 아니 오히려 예전에 비하면 더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안전! 안전! 하는 것은 학생들을 더 통제하려는,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그런 의도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매일 매일 모든 행동이 부모에게 통보되는 아이와 가끔은 부모 몰래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아이, 둘 중 누가 더 행복하겠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안전은 어느 지점에 있어야 하겠는가.

 

이번 호에 이런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진정한 안전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우리는 보호와 감시 사이에서 어떤 관점을 취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이번 호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저런, 안전에 관한 신화. 또는 통제에 대한 감추기. 이런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든 민들레였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학교나 아이들에 대한 안전을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식으로 기계적 통제, 보호를 하려는 모습이 잘못된 점이고, 우리 사회가 위험한 것은 학교나 아이들뿐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도 나오지만 우리 사회는 핵발전소, 썩어가고 있는 4대강,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산과 들. 그리고 올림픽이다 뭐다 해서 훼손되고 있는 숲들, 생계조차 힘들게 하는 신자유주의 물결로 인한 비정규직 확대,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 이제는 노후 걱정까지 해야될지도 모르는 중하위직 공무원들, 졸업해도 도대체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대학생들, 자유무역협정이다 뭐다 해서 자신의 생산지와 생산물을 버려야 할지도 모를 수많은 농민들, 국민의 안위와 복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정치인 계급들 등등.

 

공연히 이런 위험을 감추려고 학교, 학생, 어린이에게 안전! 안전! 하면서 기계적인 통제, 법적인 통제를 하려고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진정한 위험은 여기에 있고, 우리를 안전하게 할 방법은 이런 사회의 모습들을 바꿔가려고 노력하는 데서 나온다.

 

이것이 우리가 '세월호'를 잊지 않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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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생각나무 ART 22
손철주 지음 / 효형출판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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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서운 말이다.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듯이, 사람 역시 아는 만큼만 보게 된다는 말은 우리가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낙서에 불과한 그림이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이 귀중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한 그림이 어떤 사람에게는 수억 원의 가치를 지닌 그림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 문화재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 전통적인 책들과 그림들을 불쏘시개로 쓴 적도 있지 않았던가.

 

아궁이에 들어갈 뻔한 작품을 건진 일화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정말 알아야 한다. 안 만큼 보이니, 많이 알수록 더 많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미술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작가는 서문에서 그러한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한다.

 

  미술의 저 까마득한 세계에서 대어를 골라 낚을 학도나 전문가들은 이 책을 덮는 게 좋겠다.

  이 책은 미술을 데리고 놀아볼 사람들을 위한 기록이다. ...나는 동,서양의 미술계에 흩어진,, 그야말로 좁쌀같은 이야기를 주워담는 일로 그 옹고집에 접근했다. -5쪽

 

전문가 답게 작품에 대한 해설을 하지 않고 작품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다. 그 이야기들이 비록 좁쌀과 같이 작은 이야기일지라도 이것들이 미술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이런 좁쌀들을 통해서 미술의 맛을 더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작가에 관한 이야기, 그림에 관한 이야기, 화상들에 대한 이야기, 미술 비평가들에 대한 이야기 등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여 편제를 "작가 이야기, 작품이야기, 더 나은 우리것 이야기, 미술동네 이야기, 감상 이야기, 그리고 겨우 남은 이야기"로 나누어서 미술 관련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짧막한 글들에 그 글에 맞는 그림 한 편씩, 하여 글을 읽으며 그림도 감상할 수 있고, 그림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있다.

 

물론 작가의 말을 그대로 따라가도 좋고, 다르게 이해해도 좋다. 어차피 그림이란 내 눈으로 보는 것이고, 내 눈은 내가 아는 만큼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그래도 이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에서 적어도 하나씩은, 미술에 관해서 몇 가지는 알게 되었으니, 보게 되는 것이 몇 가지는 늘게 되었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한 작품은 그 작품을 보는 사람 수 만큼 감상이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나만의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는 그런 앎들,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여러 방면의 미술 관련 책을 읽어도 미술에 관해서 많이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또 직접 그림을 보고 느끼면서 보는 경험을 해야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많이 보게 되겠지만, 그래도 미술 주변에 흘려져 있는 좁쌀들을 주워먹다 보면 어느새 나도 미술이라는 정찬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서두르지 않고 계속 작품을 만나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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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수업에서 나를 만나다 - 교사의 내면을 세우는 수업 성찰
김태현 지음 / 좋은교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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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읽으면 많이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수처럼 가르치려 들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경험만을 나열하지 않고, 경험 속에서 느낀 점들을 심화시켜 하나의 실천 방법으로 만들어낸 책이다.

 

경험이 묻어 있기에, 그럼에도 경험을 넘어서 있기에 더 가치가 있는 책이다.

 

많은 교사들이 수업을 힘들어하고, 수업에서 지치고 좌절하고 결국 관행적인(이 관행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그냥 예전에 했던 대로 했을 뿐이라는, 책임을 미루는 말이지 않은가) 수업 방식으로 돌아가고 마는 현실에서,

 

"그럼에도"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수업을 변화시켜 가려 하는 교사들이 있는데, 그런 교사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쓰여진 책.

 

자신의 수업을 바꾸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했던 교사가 대학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냈던 '수업 비평'이나, '아이의 눈으로 수업보기'나 일본의 '배움의 공동체'를 넘어 자신만의 방법을, 철학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수업을 바꾸고 싶어하는 교사들의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실천을 통해 자신의 수업을 한 번 바꾸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하는 책이기도 할 것이고.

 

수업을 바꾸기 어렵다. 교사들은 생각이 진보적일지라도 실제 행동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또한 학교 다닐 때 모범적인 생활을 많이 한 사람들이 교사들이기에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를 부단히 신경쓴다.

 

그것이 바로 수업을 잘하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르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왜냐 하면 나만 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는 교사도 많고, 또 입시에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교사도 있기에 남들과 같이, 입시에 나올 만한 내용 중심으로 수업을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이 책에서는 교사들이 수업에서 자신감이 없다고, 불안해 한다는 말로 이야기하고 있다. 즉 교사들은 꽤나 자신있게 수업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교사들은 수업을 하면서 많은 불안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지적해 내고 있다.

 

이 불안감을 감추려고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 자신의 수업은 한 교실에서 문을 꼭꼭 닫아걸고 오직 자신만의 수업으로 이끌어가는 교사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사들은 대부분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서 힘들어한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비평적 관점으로 수업을 보고, 학생의 배움을 중심으로 수업을 보고, 교사의 내면을 중심으로 수업을 보라고 한다.

 

이 세 가지가 차례로 또는 융합적으로 작용하게 자신의 수업을 성찰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불가능하니 수업 친구를 만들라고 한다. 수업 친구 모임. 그것을 통해서 수업을 함께 공유해 나가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수업은 한 번에 확 변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고쳐나가려고 하게 된다고.

 

교사들... 읽으면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수업을 성찰하는 힘을 갖게 해주는 책이니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렇게 수업에 대해 고민하고, 수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이 점점 늘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에 희망이 보인다.

 

역시 교사는 수업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수업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보람을 느끼는 교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생각할 만한 문장들이다.

37쪽. 수업을 예술적인 차원에서 음미하는 것이 ‘비평적인 관점으로 수업보기’이다. ... 수업은 예술이다. 교사라는 예술가에 의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창작되는 것이 수업이다.

39쪽. ‘교사가 어떤 목적으로 수업을 했고, 그 목적대로 수업이 구현되고 있느냐’를 봐야 한다.

46쪽. 나의 경우에는 사고의 수준을 가지고 배움의 양상을 판단한다. 내게 있어 배움이란, 학생들이 사고를 통해 생각이 새롭게 되어 삶이 변화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적 사고-> 추론적 사고 -> 비판적 사고 -> 창의적 사고 -> 성찰적 사고

52쪽. 예상외로 많은 교사들이 학생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수업을 잘하고 싶어도 준비한 대로 수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53쪽. 학생들의 마음을 잘 모아서 한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하려면 교사의 내면이 견고하게 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의 작은 행동에도 신경이 쓰이고, 그것으로 인해 수업은 흔들리게 된다.

57쪽. 수업을 같이 보고 내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교사들은 큰 힘을 얻고 수업을 개선해 갈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된다.

70쪽. 우리가 수업을 처음 볼 때, ‘수업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수업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즉 수업의 정체성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72쪽. 내 수업의 정체성 찾기! 이를 위해 교사들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해야 한다. 수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85쪽. 진정한 교사라면 내 수업 속에서 학생들에게 교과 지식을 익히고 습득하는 기쁨을 주어야 한다. 수업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세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려주고, 참다운 행복을 누리는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적 신념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105쪽. 배움이 있는 수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실 내에서, 적절한 질서 속에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들어줄 수 있는 친밀한 관까 형성되어야 한다.
... ‘경계’가 있지만 ‘존중’이 있는 수업을 우리는 지향해야 한다.

109쪽. 수업 내 관계에서 교사 스스로 자신만의 철학을 갖기 위해서는 ‘학생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내게 학생은 어떤 존재인지’,‘학생은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는지’. ‘나는 학생을 어떻게 성장하게 하고 싶은지’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학생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췄다면 이제는 교사 스스로가 평소에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차려야 한다.

116쪽. 수업의 경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교사들은 대개 자신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 ‘내 수업이 재미없으니까 애들이 떠드는 거야’, ‘나는 학생들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무능한 교사야.’라는 패배의식이 수업 속에서 학생들과의 경계를 세우는 것을 어렵게 한다.

139쪽. 통제하는 수업에서 학생들을 존중하는 수업으로 나아가려면, 교사는 일단 수업의 힘을 빼야 한다. ... 과도하게 권위만 내세웠던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학생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도록 노력해야 한다.

149쪽. 대화하는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는 어떤 형태로든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행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해야지,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152쪽. 교사가 수업 속에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백을 둠으로써, 학생 스스로 친구와 혹은 교사와 대화하면서 의미 있는 배움이 만들어진다.

153쪽. 수업에 여백을 갖는 것은 (이처럼) 교사 주도의 수업을 멈추고 학생들이 생각하고 발표할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160쪽. 교사가 대화 있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을 하려면, ‘학생 개개인의 소리를 깊게 들어야겠다’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163쪽. 수업 개선의 열쇠는 오히려 작고 소박한 데 있다. 학생들이 발표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학생들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고, 그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것이다.

173쪽. 의미, 의문, 논리, 성찰, 창의, 위계가 있는 내용을 통해 학생들을 의미 있는 배움으로 이끌어야 한다.

180-181쪽. 교사는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요약 정리를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교과 지식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학생들이 발견하게 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이 세계를 더 깊고 즐겁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192쪽. 똑같은 내용 속에서도 학생을 도전하게 하고 몰입하게 하는 과제를 만드는 교사가 진정한 의미의 ‘좋은 교사’이다. 이것이 교사의 전문성이다. 수업의 프로인 교사는 학생의 지적, 문화적, 정서적 상황을 고려하여 정교한 활동 과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216쪽. ‘마음 열기 – 생각 쌓기 – 생각에 날개 달기 – 삶에 접속하기’의 4단계 틀로, 기승전결의 4단계 글쓰기 구조를 변용

237쪽. ‘수업 친구 만들기’는 학교 동료 선생님 한 명과 함께 서로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에 대해 내면적인 대화를 하는 것으로 시작.

252-253쪽. 수업 나눔은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업 시간에 내가 그것을 의식하고 관찰하고 성찰하는 것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 수업 나눔에서 중요한 것은 해결의 ‘끝’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도전의 ‘시작’을 만드는 데 있다.

265쪽. 수업 변화에 대한 열망이 높은 교사는 직접적으로 수업의 문제점을 알려 달라고 하거나,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중심으로 조언을 해달라고 한다. 이럴 때는 문제 사항에 대해 직접적인 조언을 하는 컨설팅의 방법을 사용하면 좋다.

268쪽. 예상 외로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과 대화 하면서 내용을 연결하는 ‘소통 능력’이 부족해요.

272쪽. 교사는 수업을 열어야 한다. 아무에게나 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친한 동료 교사 한 명에게는 수업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진솔한 수업 나눔을 시작하면서 수업에 대한 깊은 고민과 아픔을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318쪽. 교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 첫째는 학생에 대한 공감 능력 키우기, 둘째는 세계에 대한 민감성 키우기, 셋째는 공동체에 속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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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공동체 - 손우정 교수가 전하는 희망의 교실 혁명
손우정 지음 / 해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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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라는 말과 공동체라는 말이 합쳐져 우리 교육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마 수업에서 환멸을 느끼던 교사들이 돌파구로 일본에서 실시한 배움의 공동체를 받아들이게 되었으리라.

 

배움의 공동체는 그래서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무슨무슨 연구학교나 시범학교와는 달리, 교사들로부터 시작해서 교사들이 정착시킨 교수학습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치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 모습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사실 수업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수업을 가장 많이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바로 교사 자신들이고, 자신의 수업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역시 교사들이다.

 

그런 교사들이 무기력과 분노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배움의 공동체를 배우고자 했고, 학교에 도입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교사들과 배움의 공동체의 다리 역할을 이 책을 손우정 교수가 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대학에서 직접 사토 마나부 교수에게서 지도를 받고, 또 그와 함께 여러 배움의 공동체 현장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전파한 사람이 바로 손우정 교수다.

 

물론 배움의 공동체가 일본과 똑같은 방식으로 갈 수는 없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우리나라의 특성은 다르며, 또 우리나라에서도 학교마다 특수성이 있기에, 자기 학교에 맞는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따라서 이 책에서 손우정 교수가 이야기하듯이 배움의 공동체는 특정한 수업기술(매뉴얼)이 아니라 교육 철학이라고 해야 한다.

 

철학의 공유. 이것이 바로 교육개혁의 시발점이었다. 수업개선의 첫걸음이었다. 얼마나 수업을 바꾸고 싶었으면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배움의 공동체를 받아들였겠는가.

 

배움의 공동체를 받아들이고 정착시킨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배움이 커졌다고 한다. 배움이 커졌다는 얘기는 무력감에 빠져 학습으로부터 도피하는 아이들이 줄었다는 얘기가 되고, 교사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얘기이며, 교사는 교사, 학생은 학생이라는 대립적인 관계가 교사와 학생이 함께 하는 서로 신뢰하는 관계로 변했다는 얘기다.

 

이 책에서 손우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배움의 공동체 수업에 관련해 그동안 그가 겪은 실천을 바탕으로 배움의 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 이론에 대해 정리해주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배움의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이 좋은지, 또 구체적인 수업사례를 들어 배움의 공동체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은 배움의 공동체에 대한 개론서라 할 만한데, 개론서는 큰 틀의 이론을 제공하고 있으니, 세부적인 사항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채워넣어야 한다.

 

그 채움을 교사들이 하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정착한 학교도 있다. 그리고 배움의 공동체를 시도하는 학교도 있고.

 

그렇다. 지금 서울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눈을 뜨고 수업을 듣는 학생이 한 반에 5-6명 남짓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교사들이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하는데, 중학교에서는 학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초등학교에서는 기초학력조차도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데...

 

이것을 한 번에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없겠지만, 적어도 이런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한 방법으로 배움의 공동체를 도입할 수는 있겠다.

 

물론 지금 학교 현장의 현실적인 면에서 많이 힘들기도 하겠지만, 교사들이 스스로 이런 수업방법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는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게, 조급하지 않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서 아이들을 배움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수업 방법, 그 중에서 검증된 방법인 이 배움의 공동체...

 

배움의 공동체에 대한 임상실험 보고서이자, 이론서이면서 홍보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

 

이 책의 개론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채워넣으려는 많은 교사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아직은 우리 교육에도 희망이 있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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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 - 『뉴요커』 스카이라인 칼럼 1947-1956 문명텍스트 18
루이스 멈퍼드 지음, 서정일 옮김 / 한길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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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루이스 멈퍼드.

 

하긴 건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지가 얼마 되지 않고, 건축이라고 해야 기껏 유명한 사람 이름이나 알고 있는 처지이고, 몇몇 유명한 건물에 대해서 사진을 본 정도니, 멈퍼드라는 사람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그래도 건축비평선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오래 전 글들이지만, 건축이란 이미 100년, 200년 전의 것도 건재하게 우리 앞에 존재하지 않는가. 그러니 건축에 대한 비평글도 굳이 시대를 따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947년부터 1956년 사이에 [뉴요커]지에 칼럼으로 연재된 글들이다. 그러니 미국의 뉴욕이라는 도시와 거의 50-60년 전이라는 시대가 지금 나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가 되기 쉽다.

 

뉴욕이라는 도시에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글을 읽기에는 좀 어렵다. 건축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구체적인 건축에 대해서 그림을 그리긴 포기하고, 그가 어떤 자세로 글을 써갔고, 건축에 대해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읽고, 지금의 우리와 비교해 보기로 했다.

 

건축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미와 기술이 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와 기술이 융합되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면 자연히 자연과도 어울려야 한다. 그의 글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공원, 산책로, 살기 좋은 인구 밀도... 고층보다는 저층으로... 등등

 

대도시의 거대한 건축물에 대한 비평에서부터 공공건물에 대한 비평, 그리고 도시계획까지 다 드러나고 있는 비평선집인데...

 

마지막 부분에 나온 말...

 

이 말은 지금도 유용하다. 아니, 우리가 명심해야 한다.

 

희망적 대안은 한가한 몽상이 아니라 현실을 직면하는 능력과 공공적 책임감이 필요하며 지금까지 권한을 휘두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아이비엠사는 탈중심화를 주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데 그들이 좋아하는 모토를 우리 계획당국, 도로 기술자, 은행과 보험사, 부동산 개발업자 그리고 진정으로 시민과 투표권자 모두에게 퍼뜨려야 한다. 생각하라! 320쪽

 

도시 계획을 할 때 교외에 다른 거주지를 마련하고, 도로를 확충하려는 일이 얼마나 헛된지를 멈퍼드는 그 시대에 이미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참 뒤에 우리나라 서울을 보면, 참... 이 사람의 비평글을 도시계획자들이나 행정가들이 전혀 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교통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들이 오히려 더 교통문제를 더 일으킨다는 사실을 그가 이미 지적했음에도 말이다.

 

비록 뉴욕의 모습이 그림으로 떠오르지 않아 구체적인 장면들을 상상하지는 못했지만, 건축에 대한 태도에서, 적어도 우리가 건축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는 고민하게 되는 책이었다.

 

나같이 단순히 건축에 관심을 가진 사람 말고, 도시설계자나 도시정책입안자, 아니면 도로 기술자 들이 읽으면서 지금-여기에 적용한다면 꽤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꼭 그들만이 아니더라도 나같은 사람도 읽어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멈퍼드가 바란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역시, 생각은 힘이 세다.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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