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대해 알고싶은 모든 것들 -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의 톡톡튀는 교과서 미술 읽기
이명옥 지음 / 다빈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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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술관장이 들려주는 미술 이야기다.

 

미술에 관한 모든 것이라는 제목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서는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에 관해서 알려주고 있다.

 

교과서란 정석이라는 말로도 통하고, 기본이라는 말로도 통하니, 미술에 관해서 미술 교과서 만큼 정통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미술 교과서를 제대로 본 적이 있었던가?

 

학교에서 미술 교과서는 능력있는, 또는 그 쪽으로 나아가려는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면 관심있게 들쳐보지 않았던 책이고, 들쳐보더라도 흥미로운 그림이나 쓱 훑고 지나가고 마는, 시험 때나 돼야 억지로 외우기 위해 펼쳐들던 책 아니던가.

 

미술에 관해서 가장 기본적인 작품들을 담고 있는 책임에도 가장 홀대받는 책이 미술 교과서였는데, 작가는 교과서 전을 연 경험으로,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미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음에도 미술을 제대로 만날 기회가 적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즐길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미술과 자주 만나게 하는 일이다. 미술에 거리를 두지 않게 하는 일이다.

 

미술과 거리를 두지 않는 일. 어차피 우리는 학창시절을 통해 미술을 배우지 않았던가. 전국민이 모두 미술에 관해서는 10년이 넘도록 배워왔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미술에 관해서는 이미 교과서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교과서를 중심으로 미술에 대해서 알려준다면?

 

어른들은 과거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미술과 만나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지금 배우는 교과서와 비교하면서 미술과 만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쓰여졌다고 볼 수 있는데...

 

따라서 이 책은 교과서라는 미술관에 있는 17개의 전시관을 돌아보면서 미술과 만나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별, 주제별로 17개로 나누어 그림을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있는데, 교과서에 실릴 정도면 이미 많이 알려진 작품들이라서 우선 눈에 익은 그림들이고, 이 그림들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림에 대해서 또 조각에 대해서 좀더 알게 된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이 미술관에 가면 자기가 보고 싶은 전시관부터 들르듯이, 보고 싶은 그림, 읽고 싶은 부분부터 보면 된다.

 

이게 옳은 관람 순서이고, 옳은 책읽기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좋아하던 그림은 더 좋아하게 되고, 낯설었던 그림은 친숙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17개 전시관. 실제 미술관에 가면 엄청난 시간을 들여야 할테지만, 책의 장점이 무엇인가, 시간을 압축해서 우리에게 미술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직접 미술관에서 진품을 보는 감동만은 못하겠지만, 미술을 배우고, 미술을 즐길 준비를 하는데는 교과서만한 것이 없으니, 이 교과서 미술관, 관장과 함께 떠나는 여행, 한 번 해 볼 만하다.

 

이런 여행을 한 다음 꼭 미술관에 들러볼 것. 나에게 다짐하는 말이다.

 

덧글

 

에고, 책이 절판되었다네...

 

하지만 도서관에는 있을테니, 찾아서 읽어보면 좋겠지. 현대 사회, 모든 것이 너무도 빨리 바뀌는데, 요즘은 책들의 수명도 참 짧다. 절판 되는 책이 너무 많다.

 

이런 책은 미술 시간에 교과서와 함께 보면 좋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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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목소리 - 그림이 들려주는 슬프고 에로틱한 이야기
사이드 지음, 이동준 옮김 / 아트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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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발상이다. 그림의 목소리라니.

 

마치 시인들이 시가 내게로 다가왔다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데 지은이가 미술학자가 아니다. 화가도 아니다. 그는 시인이다. 그래, 그래서 그림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구나.

 

2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그림이 말하다. 또 하나는 화가가 말하다.

 

그림이 말하다. 그림을 보면서 그림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화가가 말하다. 그림을 보면서 그 그림을 그릴 때 화가의 마음을 듣는다. 화가의 독백을 듣는다.  

 

그림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하다못해 돌멩이도 침묵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 그것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음을 열고 그림을 보아야 한다. 그림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온 정신을, 온 마음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들으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들린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지혜, 듣기'

 

귀는 있으되, 듣지 못하는 귀가 많은 지금,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도, 말해지지 않은 소리까지도, 어쩌면 그림으로 표현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은 너무도 드문 세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귀하다. 침묵에만 머무르고 있는 듯한 그림이 말하는 소리를 들려주고 있으니.

 

하지만 그림이 과연 침묵에만 머무르고만 있을까? 아니다. 그림은 그려지는 순간 이미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다. 화가가 말하든, 그림이 말하든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다. 소리가 있다.

 

그 소리를 찾을 수 있는 귀. 그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것이 필요한 세상이다.

 

처음엔 그냥 작가의 상상력에만 의존한 책이겠구나 했다가, "그림이 말해주지 않은 것"이라는 글이 그림과 이야기 뒤에 딸려 있는데, 이 설명이 그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냥 상상이 아니라 사실에 바탕한 상상, 즉 있음 직한 일을 상상해 내고, 그 상상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고 깨닫게 되었다.

 

상상이 아무 데서나 나오는 것이 아닌 철저한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실을 넘어서는 곳에 존재함을 다시 인식하게 했다고나 할까.

 

침묵을 지키는 듯한 그림도 제 소리를 지니고 있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귀를 지닌 사람들,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데...

 

세상 밖으로 나와 있는 많은 소리들을 억지로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으니, 남들에게 너무도 자명하게 들리는 소리를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반성할지어다.

 

소리는 막는다고 없어지지 않고, 소리는 없는 듯하지만 어디서나 존재하니, 그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 열린 귀를 지녀야 한다.

 

그림 앞에서 그림의 소리를 들어도 좋다. 이렇게 그림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사람, 세상의 소리들, 그 많은 소리들을 안 들을 수 없겠지.

 

열린 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임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덕분에 눈도 호사했지만, 새롭게 귀를 인식하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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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 삶의 정치 그리고 살림살이의 재구성을 향해
하승우 지음 / 이매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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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삼척에서 핵발전소 유치를 두고 주민투표가 있었다.

 

이미 삼척에 핵발전소를건설하기로 했었는데, 이번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삼척시장으로 출마한 사람의 공약이 주민투표에 핵발전소 유치 여부를 부치기로 한다는 것이었고, 이 공약을 실천한 것이다.

 

투표율이 개표를 할 수 있는 선을 넘었고, 개표 결과 핵발전소 유치 반대로 결정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 중앙정부에서, 또 법무부에서 이런 주민투표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나온 것.

 

법적 효력?

 

자신이 사는 곳에 자신의 삶이 걸려 있는 문제를 주민 스스로 투표를 통해 결정했는데, 그것이 법적 효력이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지? 핵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를 누가 쓰지?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이 쓰나, 아니다. 핵발전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쓴다. 그런데 결정은 정부에서 한다.

 

지방에서 당사자들이 할 수가 없다. 당사자들이 어렵게 성사시킨 주민투표도 법적 효력이 없다고 무시한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 사회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문제가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형식만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법적 절차라는 형식적 절차만이 중요하지, 실질적인 내용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과는 관계가 먼 사람이 결정해준 대로 따라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종. 아니 이 정도면 말살이다. 지방자치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지방의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은 중앙정부에 종속이 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자신의 삶터를 중심으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우리가 진정 민주주의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이론으로 아나키즘을 들고 있다.

 

아나키즘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에 이론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런 이론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나온 이론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던, 불가능한 이론이 아니라 충분히 실현가능한 이론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아나키즘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어떤 결정된 이론이라기보다는 그 상황에 맞게 실천해 가는 이론임을 보여 풀뿌리 민주주의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삶터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과 연결되어 가는 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개념이 '연방주의'와 '협동'이다.

 

중앙집중적인 지금 우리 상태에서는 삼척의 경우와 같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 수가 없다. 연방주의 처럼 각 지방이 독립적인 정치, 경제적 힘을 지니고 대등한 관계들을 맺어갈 때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협동이 필수적이다. 경쟁보다는 협동을, 대등한, 너를 나로 보는 그러한 인식부터 시작하는 아나키즘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아나키즘. 여기에 대해서 인식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실천이 이루어진다면 형식적인 법 구절에 얽매여 사람들을 옭아매는 제도를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삶에 관한 정치를 소수의 정치가 계급에게 맡기고, 자신의 삶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정책들을 만들어내는 정치가 계급에게 내 권리를 위임하지 않고, 내 삶에 관계되는 정치에 내 스스로 참여하는 능동적인 권리를 찾게 되는 방법이 풀뿌리 민주주의이고, 아나키즘이다.

 

지금, 우리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얼마나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가?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한 결과 아니던가.

 

내 권리를 찾아오는 것. 내 삶터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내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

 

내 삶터와 같이 다른 사람의 삶터도 존중해주는 모습. 그런 모습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삶.

 

그게 가능하게 하는 정치. 그것이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듯이 아나키즘이다.

 

내 권리 찾기. 이게 바로 지금 해야 할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런 정치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할 만한 좋은 글들.

33쪽. 대의민주주의는 이성의 구실만을 강조할 뿐 아니라 선거라는 정치적 경쟁의 장 밖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갈등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제거하려 든다. 대의민주주의 정치는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 개입을 부정하고 시민의 정치 행위를 가로막는다. ... 대의민주주의는 시민의 삶을 수동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정치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의 연관성을 제거하거나 정치를 경제에 예속시킨다. 그러면서 정치는 점점 더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민중의 정치란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불가능하다. 고대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전환은 민주주의를 축소하거나 민주주의의 방향을 전환시켰다.

48쪽. 공간적 의미에서 벗어나면 풀뿌리 운동은 단지 지역운동을 뜻하지 않고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이 스스로의 삶의 공간에서 집단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삶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가려는 의식적인 활동"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50쪽. 인간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예정된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51쪽. 풀뿌리 정치는 `합의`나 `순수함`보다 `차이`와 `혼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대화와 조직화만으로 부족하다. 앞서 말한 배제의 문제를 해결하고 풀뿌리의 관점을 가지려면 끊임없는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53쪽. 풀뿌리 운동은 경쟁과 생존 투쟁을 극복하고 공생과 자율의 삶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자, 내 삶의 경험이나 의식하고 분리되지 않은 정치 구조를 만드는 행위이며, 삶 자체를 정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풀뿌리 운동은 개인이 사회라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서로 돕고 보살피는 호혜의 관계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54쪽.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아닌가. 정답이 없기 때문에 둥글게 모여 앉아 지혜를 모아보자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95쪽. 협동조합이야말로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기대를 건 삶의 양식이었다.

139쪽. 아나키스트들의 지향은 다양했지만, 기본은 `자유로운 코뮌` 또는 `자율적인 코뮌`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민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고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체계, 생산하고 교환하고소비하는 체계가 사유화되지 않고 사회화된 체계, 그곳이 바로 코뮌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를 위해 아나키스트들은 사회혁명이 필요하다고 봤다. 아나키스트들은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혁명`을 주장했다.

157쪽. 아나키즘은 모든 권력에 맞선 반대, 모든 조직에 맞선 반대, 모든 질서에 맞선 반대가 아니라, 제어할 수 없고 집중화된 권력을 향한 비판이다. 따라서 `반강권주의`가 적절한 번역이다.

168쪽. 타자를 대상화시키지 않아야 서로 보살피며 자치와 자급의 삶을 살 수 있다.

169쪽. 법치주의에서는 법 자체만큼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중요하며, 그 과정에 시민의 참여가 보장돼야만 한다.

190쪽. 연방 국가는 `유기적인 분리`의 원칙을 따라서 모든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만큼 분리시켜야 하며, 공공 행정은 전적으로 공개되고 통제돼야 한다. 이런 정부 아래에서 아나키즘은 시민과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기 질서를 재구성하고 공동체 간의 관계를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220쪽. 국유화는 민중을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며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지만, 민중이 스스로 그 권리를 지키고 확장시킬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국유화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 회의하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기회나 그럴 이유도 줄어든다. 따라서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에 맞선 저항은 국유보다 `공동의 소유`와 `공적인 소유`를 지향해야 한다.

221쪽. 공유가 자연스러운 원리로 사회에 자리 잡으려면 협동을 내세운 다양한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져야 한다. 아나키즘은 국가와 자본을 대체할 힘을 만들지 않으면 실제로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힘은 외부의 지원이 아니라 바로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만들어져야 했다.

235쪽. 아나키즘은 중앙 집중화된 혁명 조직이 아니라 각자의 살림살이를 지지할 수 있는 다양한 조직들 간의 연계와 단단한 삶의 그물망이 아직 오지 않은 사회를 도래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도래할 사회는 그 사회를 도래하게 만드는 방법에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하게 믿었다. ... 손을 잡으려면 서로 마주보며 서로의 존재에 눈을 떠야 한다. 그런 마주봄의 계기는 바로 교육이다. ... 농업 노동과 공업 노동을 결합하려면 교육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243쪽. 아나키즘의 주체는 자기에 눈 뜨며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존재다.

251쪽. 정치인들에게 공적인 일을 떠맡긴 채 공적인 시민의 성격을 잃고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 갇힌 개인은 인간의 본질적이고 자주적인 특성, 곧 적극적인 공동체 참여를 통한 자아의 실현이라는 특성을 잃어버린다. 자본주의와 권위주의는 사람들의 이런 자각과 성장을 가로막으려 온갖 노력을 다한다.

277쪽. 연방주의의 과제는 단순히 국가기구를 해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권을 통해 지역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그런 지역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궁극적으로 국제적인 규모의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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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재탄생 - 라파엘로부터 앤디 워홀까지 대중문화 속 명화를 만나다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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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간다는 재미가 이렇게 좋을 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미술은 이제 나하고 관련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미술 관련 책들을 찾아 읽게 될 줄이야.

 

미술 관련 책들이 이렇게 재미 있을 줄이야!

 

미술이 우리 곁에 이렇게 널려 있을 줄이야!

 

한 때 LG가전제품을 명화를 이용해서 하는 광고를 보면서 '와, 참신하다. 저렇게 명화를 이용해서 광고를 할 수 있구나'하고 감탄을 했었는데...

 

이런 광고가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생활에 명화들이 쓰이고 있었음을,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지 명화는 늘 내 곁에 머무르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확실히 알면 보인다는 말,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도대체 있어도 있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런 저런 미술 책을 보면서 자꾸 눈에 익기 시작하니 이제서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그 조금씩이 더 자세히 보려는 욕구를 자극하고, 그러다 보니 미술이 좋아지게 되고 있는 상태.

 

명화가 미술 작품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 함께 존재하는, 그래서 다른 것으로 변용되어 함께 한다는 점, 따라서 파편화 분절화되는, 자기 것만 알고자 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융합이 무엇인지, 도대체 어떤 것이 통합인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왜 광고나 패션, 영화에서까지 명화들이 쓰이고 있는지, 그것은 명화가 바로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고, 진정으로 오래 살아남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반대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미술과 문화가 융합되는 모습을 잘 알 수 있고, 그런 융합을 보기 위해서 명화를 직접 보여주고 있기에 명화 감상도 자연스레 되는, 명화 감상을 통해 다시 현대의 문화를 생각하게 되는 그런 책이라서 교양을 쌓기에는 많이 도움이 되는 책이다.

 

라파엘로의 아기 천사들로부터 시작하여,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공포영화에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이용되기도 하고, 아예 대중문화와 미술이 구별이 잘 안되는 앤디 워홀까지 21명의 작가,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어서 미술 작품을 보는 재미도, 또 그 미술 작품이 어떻게 우리 생활에 나타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깨달음도 함께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무언가 얻을 생각이 없이 읽어도 재미 있다. 워낙 그림이 우리 생활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점만 따라가도 재미 있는데, 설명도 간결하고 명확하여 이해하기 쉽고, 또 친숙한 소재들이 등장하기에 재미있게 쉽게 읽히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융합을 생각하게 하고, 자기만의 전문 세계에서 이제는 다른 세계와도 통섭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는데, 그에 어울리는 내용도 지니고 있어서 좋은 책이다.   

 

결국 문화다. 백범이 꿈꾸었던 문화 강국.

 

덧글

 

이 책에서는 서양 미술만 다루었지만, 물론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의 영향을 받았다는 고흐의 그림에 대한 설명에서 일본 그림이 나오기는 한다(특히 비를 표현한 그들의 그림), 우리나라 명화들이 어떻게 실생활에 나타나고 있는지도 함께 다루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들 역시 우리 생활에 깊숙히 들어와 있음을 다른 책에서 이미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작품들 말고도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들 중 혹시 우리 생활에 들어와 있는 작품은 없는지...

 

그것을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몫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좀더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는 생활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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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여름언덕 공동선 총서 1
제임스 C. 스콧 지음, 김훈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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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제목이 참 도발적이다. 아나키스트 하면 테러리스트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은데, 책 제목부터 모두가 아나키스트라니?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라고 하지 않나? 무정부주의자라고 하면 반정부주의자, 반국가주의자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무정부주의자 하면 왠지 위험인물로 취급당할 것 같은 느낌이 되는데, 이렇게 도발적인 제목을 붙여도 되나.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아나키즘에 대한 인식이 확장이 되었고,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나타났으며, 아나키즘의 주요 언어로 에스페란토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뜬금없이 우리가 모두 아나키스트라니...

 

도대체 아나키스트가 뭐길래 그럴까? 아나키스트에 대한 이 책의 정의부터 보자. 물론 이 책의 지은이가 정의한 내용은 아니다. 옮긴이가 '옮긴이의 말'에서 한 말인데, 이 책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을 사람 살기 더 힘들게 만드는 온갖 이념과 제도와 조직과 기관과 시스템과 못생긴 인간들의 전제적 강압과 착취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고, 상호부조의 정신에 의해서 서로 도우면서 진화하는 것을 지향하고, 인간의 자유와 자주성과 창의성과 자발성을 돋워줘서 세상을 좀 더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꿈이 곧 아나키즘이다.

  아나키즘은 국적이 없고 경계선이 없고 차별이 없고 착취가 없는 '세상을 보는 따듯한 눈길'이다.  - 214쪽.

 

이것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그렇다면 누가 아나키스트가 되지 않고자 하겠는가.

 

이렇게 좋은 아나키즘에 대해서 우리는 잘못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나키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지은이 역시 아나키즘에 대해서 사상의 핵심이라든가, 사상가들의 사상이라든가 하는 것을 이야기해주기 보다는 자신이 겪은 일을 중심으로 아나키즘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물론 아나키즘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제도들의 비합리성, 비자주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단일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우리들의 자발성과 창의성 또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이것들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 바로 아나키즘임을 알게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도 그렇다. 학교라는 제도가 알게모르게 사람들을 통제, 훈육하는 역할을 하는데, 또 학교를 통해 배출된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적 의제를 결정하려는 모습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극서이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아주 사소한 예로 신호등을 들고 있다. 신호등이 교통안전을 지켜준다는 신화 속에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이기 보다는 그 신호체계를 무작정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 네덜란드의 한 마을에서 신호등을 없앨을 때 일어난 일을 들어, 우리들이 권력, 제도에 굴복하여 우리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자본주의 이론이나 맑스주의에서 비판하고 있는 프티부르조아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프티부르조아는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본성일지도 모른다는 것. 누구나 자신이 살 만큼의 땅과 집을 지니고 싶어한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자율성과 자유, 생계를 보장하는 방법이라는 것. 이런 프티부르조아들이 서로 협력하는 사회가 더 바람직한 사회일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시각이다. 사적 소유를 없애려고 했던 시도들이 무력화된 지금, 대자본이 모든 것을 잠식해 가고 있는 지금, 소농, 자영업자, 자유노동자 등 프키부르조아들을 배격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삶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점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아나키즘이 어떤 지점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온전한 개인성을 바탕으로 한 상호 협동. 바로 이것이 아나키즘이라는 생각. 그런 사회가 바로 유토피아 아닐까.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라, 모든 것이 표준화된 사회가 아니라, 우연에 기댄, 그러나 그 우연 속에서도 규칙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사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자기 개성을 뽐내면서도 서로 어울려 멋진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아나키즘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다시 다가온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

 

아래 생각하기에 좋은 문장.

65쪽. 카리스마의 핵심조건은 아주 주의 깊게 듣기와 반응하기다. ... 사회 밑바닥 계층 사람들은 대체로 최상위 계층 사람들보다 더 잘 듣는 편이다.

75쪽. 질서, 합리성, 추상성, 이름 일람표의 종합적인 명료성, 풍경, 건축술, 작업 공정 등은 위계 권력에 도움이 된다.

83쪽. 다양성을 지닌 환경에서 가장 잘 자라고 번성하는 사례가 꼭 식물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입증되고 있다. 인간의 본성도 역시 변화와 다양성을 좋아해서 협소한 획일성을 피하려는 성향을 지닌 듯하다.

109쪽. 개방성의 정도는 어떤 활동이나 제도(그것의 형식, 목적, 규칙들)가 그런 활동을 수행하거나 그런 제도 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욕구에 의해서 얼마만큼 수정되거나 병경될 수 있느냐에 따라 가늠이 된다.

113쪽. 포유동물들은 요란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것을 포함한, 얼핏 무질서해 보이는 놀이를 통해서 신체적 기능 조정과 신체적 능력, 정서적 조절, 사회화와 적응과 소속과 사회적 신호와 신뢰와 실험 등의 능력을 계발한다.

... 놀 기회를 박탈당한 인간들은 폭력적인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르거나 우울증에 빠지거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불신하는 경향이 아주 높다.

122쪽. 공립학교 시스템의 크나큰 비극은 그것이 대체로 단일 제품 생산 공장이라는 점이다. ... 이런 제품은 대체 어떤 제품일까? 그것은 협소하게 구획된 특정한 형태의 분석적 지성 혹은 재능이다.

134쪽. 우리의 일상 삶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관행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또 우리의 일상 관례들과 기대치에 너무나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136쪽. 나는 붉은 신호등 철거를 책임감 있는 운전법과 시민 예절을 훈련하는 온건한 형태의 연습으로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이건 내가 경험한 일인데...예전에 베트남에 갔을 때 신호등이 없었다. 알아서 차들과 자전거, 오토바이, 그리고 보행자들이 길을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문제는 없었다!)

137쪽, 교통 관리의 공유 공간 개념은 차량 운전자와 자전거 운전자와 보행자들의 지성과 양식, 주의 깊은 관찰에 의지하고 있다.

139쪽. 자주성과 자유는 상호부조의 정신과 더불어 무정부주의적 감성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144쪽. 하위 계급 사람들은 국가의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는 변경에서 살거나 작은 재산과 결부된 최소한의 권리 정도만을 누리며 국가 안에서 사는 두 가지 형태의 삶을 통해 상대적인 자율성과 자주성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많은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땅 한 뙈기와 자기 집과 자기 가게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엄청난 욕구는 주로 행동의 자유와 자주성과 그런 재산들이 제공해주는 안전이라는 현실적인 이익뿐 아니라 자신의 존엄성과 지위, 작은 재산과 결부된 명예(국가나 이웃 사람들의 눈에 비친)도 함께 확보하려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185-186쪽. 양적으로 우수성, 질을 평가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수량적인 감사 시스템에 주로 의지하는 것이 안겨주는 진정한 피해는 활발한 민주적 토의의 일부가 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들을 회의장에서 다루지 않고 중립적이라고 하는 전문가들의 수중에 맡기는 데서 온다. 원래 공적인 영역에 속해야 마땅할 것들을 그 영역에서 빠앗아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수많은 시민과 공동체의 삶의 기회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 과정에서의 이러한 사이비 탈정치화다.


아나키즘 사상가들과 선동적이지 않은 포퓰리스트들이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 확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민주적인 시민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참여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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