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인간 2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2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아고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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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다.

 

1,2권을 합치면 총 분량이 800쪽이 넘는 대작이다. 1800년대에 이렇듯 장편소설을 썼다니... 그것도 인류의 미래를 상상해서,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해서 말이다.

 

1권이 개인사를 중심으로 작품이 전개되어 흥미가 떨어졌다면, 2권은 역병으로 인한 인간들의 갈등과 죽음이 묘사되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특히 전세계적인 재앙을 앞에 두고 인간들이 취하게 되는 모습들이 이 소설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어서 과거의 소설이 아니라 현재를 볼 수 있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종말을 앞둔 사람들이 취하게 되는 세 가지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우선 정착민과 이주민의 갈등이 이 소설에 나타난다. 자신들이 살던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들이 그 곳에 가서 이미 정착해 있던 사람들과 함께 살면 좋겠지만,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된다.

 

서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들, 그것은 기존에 살고 있던 집단과 이주해 온 집단을 막론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지니는 태도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들이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데, 평화로운 해결보다는 무력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 소설에서 이 점이 제일 먼저 나오는데, 대륙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영국 사람들을 약탈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약탈만으로는 인류가 생존할 수 없다. 하여 에이드리언으로 하여금 이들이 평화적으로 서로 합의를 보게 만든다. 이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다.

 

종말이 눈 앞에 닥쳐옴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장점들을 충분히 살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에이드리언이나 또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어서, 최근에 온갖 재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돕는 오히려 유토피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사회학적 통찰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자신이 살던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는 모습이다. 이미 폐허가 된 곳에서 살 수는 없는 일. 또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곳에서 사는 일 자체는 공포다. 그러기에 다른 곳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집단 이주를 한다.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듯이, 지금도 살기 힘든 사람들이 좀더 살기 좋은 나라를 찾아 떠나듯이 집단 이주를 하는 모습이 이 소설에 나오고 있다.

 

현실이 힘들다면 그곳을 떠나는 것, 이미 고쳐질 가능성이 없으면 떠나는 것, 당연한 일이다. 지구가 살기 힘들어지면 우주를 개척하여 그곳으로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났다고 해도 이미 지구 전역에 재앙이 번졌을 때는 그 어디도 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 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재앙에 직면하지 않게 미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해주고 있다.

 

역병이라도,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 재앙이라도, 사실은 인간이 최대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 대비는 할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 소설에서도 이런 재앙의 징조는 나타났다고 할 수 있는데(1권에서), 당시 시대의 한계이겠지만, 의사들의, 과학자들의 노력이 묘사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것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이런 것이 예언서의 역할 아니겠는가. 예언서에 있는 대로 된다가 아니라,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라 하는...

 

세 번째는 사이비 종교가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있을 때 그들에게 감미로운 환상을 제공하는 사이비 종교가 창궐한다. 이런 사이비 종교가 창궐했을 때는 이성의 힘으로 이를 막을 수 없다.

 

소설에서 에이드리언이 합리적인 말로 이들을 설득하려 해도 이들은 한사코 그의 말을 부정하고, 사이비 종교 지도자의 말에 따른다. 그것이 그들을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못할지라도 그들은 사이비 종교 지도자를 따른다. 그리고 종말을 맞는다.

 

이런 점은 근대나 현대를 막론하고 비일비재한 일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무언가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자신을 맡기려는 태도, 자신의 책임을 다른 존재에게 넘기고 그것에 안주하는 태도.

 

이런 태도는 어려울 때 더 잘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도 한다. 과학기술이 최첨단을 달리는 지금 시대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으니...

 

그러니 이 소설은 종말을 맞게 되는 인간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그 종말을 맞이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종말이 닥쳤을 때 인간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이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조금 무섭다. 인류가 종말이라는 재앙을 아직은 맞이하고 있지는 않지만, 소행성의 충돌로 지구 멸망의 위기가 닥친다는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도 많고, 인류 종말을 예언하는 예언서들도 있는데...

 

이 소설은 인류 멸망이 역병이라고 하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쓴 역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대책은 없는...

 

그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러나 그런 재난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깨우쳐 주고 있다.

 

읽기가 지지부진했던 1권에 비해 2권에 들어서서는 읽기에 속도가 붙었다. 마치 1권이 마라톤을 하는 사람과 같은 속도였다면, 2권은 특급열차를 타고 달리는 속도와 같다고나 할까.

 

뒷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빨리 빨리 읽게 된다. 그만큼 흥미롭다. 여기에 재난 상황에서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으니... 더욱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도 많고.

 

최후의 인간. 이 소설의 맨 앞에서 예언서라고 했고, 실제로 소설의 제일 앞부분에서 어느 동굴에서 발견한 글들을 짜맞추었다고 했으니, 예언서 형식을 띤 소설... 현재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그 미래를 다시 현재에 끌어오는 그런 소설.

 

지금 우리는 메리 셸리가 말한 2000년대를 살고 있다. 비록 그가 말한 최후의 인간만이 살아남은 2100년은 되지 않았지만, 지금 세상엔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설마? 이 소설처럼.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자본의 욕망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이 소설에서처럼 인간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이 소설에서 귀족들이 위기 때 자신들의 권리를 양보한 것과 같이 자본도 인류를 위해서 충분히 양보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이 소설에서처럼 최후의 인간만이 남지 않고, 인류가 다양한 인류가 계속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런 생각도 하게 만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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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인간 1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1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아고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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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

 

내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였다. 그녀가 영국 낭만파 시인인 셸리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그 책에 나와 있는 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그 때 그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 생명체를 만들어낸 박사의 이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매우 재미있게 "프랑켄슈타인"을 읽었기 때문에, 또 100년 전에 이미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복제 문제와 비슷한 문제제기를 했다는 그 총기 때문에, 이 책이 나왔다는 기사를 본 순간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도 "최후의 인간"이지 않은가. 뜻하지 않은 일로 인간들이 멸망해가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한 소설이겠지 기대하면서, 상당히 흥미진진하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1,2권으로 분리되어 출판되었는데, 지금은 1권만 읽은 상태.

 

주요 등장인물은 여섯 명이다.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라이오넬, 그리고 그의 여동생 퍼디타. 왕자이었으나 아버지가 왕위를 포기하여 귀족이 된 에이드리언과 그의 누이 아이드리스, 여기에 야망을 지닌 사람인 레이먼드, 그리고 그리스 귀족 출신의 여자 에바드네.

 

1권에서는 이 중에 세 명이 세상을 뜬다. 바로 에바드네와 레이먼드, 퍼디타. 그리고 이들의 죽음은 곧 다가올 비극을 예비하고 있는데...

 

단순한 사랑이야기로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에이드리언이 에바드네를 사랑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에바드네는 레이먼드를 사랑하고, 그러나 레이먼드는 퍼디타와 결혼하고, 라이오넬은 아이드리스와 결혼을 하고, 에바드네는 결국 영국을 떠나고 반쯤 정신이 나가있던 에이드리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전개되고 있으니, 이 정도면 흔한 연애소설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첫부분에서는 잘 읽히지 않는다. 이 정도 사랑의 갈등이야 지금 세상에서는 별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1권의 중반부를 넘어서부터 그리스와 터키의 전쟁이 나오고, 그 전쟁에 그리스를 위해서 레이먼드가 참전하면서부터 갈등이 심화된다.

 

이제부터는 단순한 사랑의 갈등이 아니라 사회 문제가 대두된다. 이는 레이먼드의 죽음과 더불어 불길하게 다가온다. 

 

레이먼드의 죽음이 전쟁으로 인한 죽음이라기보다는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물론 그는 소설 속에서 폭발로 인한 사고로 죽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광범위하게 나오고, 그것은 전쟁의 비극과 더불어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린다.  

 

소설에서 먼저 그리스-터키 전쟁에 참전하다 부상을 당해 영국으로 귀국한 에이드리언이 전쟁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스 전쟁의 진짜 이유는 드러나지 않았어. 그럴싸한 이유를 뒤에 잘 숨겨두었던 거지. 296쪽.

전쟁이라는 격한 시간 속에서 인간의 탈을 쓴 악마로 변모한 거야. 297쪽.

 

다음에 레이먼드를 찾아 그리스에 왔다가 그와 함께 참전한 라이오넬이 목격한 전쟁의 참상, 전염병의 위협이다.

 

모든 인류의 적인 전염병은 6월에 나일 강가에서 뱀의 머리처럼 사악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원래 전염병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도 감염이 시작된 상태였다. 그곳이 바로 콘스탄티노플이었다. 321쪽.

 

이런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그리스군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결국 그 두려움이 레이먼드를 홀로 콘스탄티노플 성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전염병은 여기서 언급만 되고 있을 뿐이다. 전염병의 위험성은 레이먼드와 퍼디타의 죽음 이후 라이오넬의 설명을 통해서 언급이 될 뿐이다. 아직은 영국에서 그 전염병의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있는 사람들이 우려를 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라이오넬은 전엽병의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다가올 여름에 감염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그리스는 테살리아 경계에 저지선을 세워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고 하네요. 402쪽.

 

여기서 1권이 끝난다. 아직 전염병은 영국에 상륙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주인공이 느끼고 있을 뿐이다.

 

이제 본격적인 종말 문학적인 요소는 2권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지금부터 거의 100년 전 소설인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과 유사한 일들이 묘사되어 있음에, 우리 인간의 역사가 이토록 반복을 거듭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쟁의 비인간성. 전염병의 위협.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두 가지 위협 아니던가.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거나, 고통을 받고 있으며, 에볼라 바이러스가 지구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 아니던가.

 

우리는 지금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로 떨고 있지 않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도 엄격하게 출입국을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한 해결은?

 

단지 공포 속에 빠져 있으면 안되지 않은가. 자, 소설 2권을 읽어보자. 어떻게 대처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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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교사는 어떻게 가르치는가 - 교실을 리드하고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52가지 수업 매뉴얼
더그 레모브 지음, 구정화.박새롬 번역 및 감수 / 해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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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최고의 교사는 제갈공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갈공명이라고 한 이유는, 교사들이 교실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수업 현장에서 하나하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명이 적벽대전에서 한 일을 생각해 보라. 조조의 생각과 행동을 꿰뚫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한다. 마치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처럼, 조조는 공명에게 완전히 속해 있었다. 공명이 지닌 그런 자세... 전지전능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전지전능이 신의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공명은 분석과 종합을 통한 예측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최고의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은 신이 될 수 없지만 수업 현장에서 공명처럼은 될 수 있다. 학생들의 상황을 한 눈에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이끌 수 있을까를 알고 있는 교사이기 때문에, 최고의 교사는 곧 공명이다.

 

그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최고의 교사가 되는가? 그것은 교사들이 수업을 잘 할 수 있는 기법을 익히면 된다는 것이다.

 

교육을 철학으로만 할 수 없으니, 철학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법을 익히고 그것을 수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만 좋은 수업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교실을 리드하고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52가지 수업 매뉴얼'이다.

 

사람들은 교육에서 전략과 기법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략이 교육철학에 해당한다면, 기법은 수업에서 행하는 행동, 태도 등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전략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기법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 눈에 보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위대한 가르침은 예술이다' 라고 하면서 '위대한 예술품은 부지런히 연마하여 익힌 기술의 결과'(5쪽)라고 한다.

 

그런 기술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하면서 용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전략과 기법에 대해서 보자.

 

교사와 같이 가르치는 직종에서는 대개는 '전략'이라는 용어를 많이 활용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흔히 가르치는 수단들을 가르칠 때 '전략(strategies)'이 아닌 '기법(techniques)'이라고 칭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전략'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보를 주는 식의 일반화된 접근 방식이라면, '기법'은 보다 구체적이고 특정한 방식을 말한다. - 9쪽

 

하여 기법은 누구나 익히고 연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식을 말한다. 수천 수만 가지의 기법이 있을 수 있어서 자신에게 맞는 기법을 찾아 몸에 익히는 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책을 끝맺는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교육을 예술에 비유한 까닭은 가르치는 일이 어렵고 신중함과 수완이 필요하며, 기법을 익히는 데도 일정한 기술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학교가 직면한 여러 문제 상황을 변화시키고 학업 성취 격차를 감소시킨 교사들의 지혜가 종합되어 있다. - 297쪽

 

그렇다면 이 책의 장점은 무엇인가?

 

교육에서 요즘은 학생들을 중심에 놓고,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책은 교육의 중심을 교사에 놓고,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배움을 유발하는 것조차도 교사의 가르침이라는 얘기다. 학생들이 어떻게 배움에 이르게 할지를 최고의 교사들은 기법으로써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배움과 가르침이 상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이 시대에 뒤떨어진 이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시대에 뒤떨어진, 오로지 교사를 중심에 놓고, 교사의 기술만을 강조하는 책은 아니다.

 

아무리 배움을 중심에 놓더라도 교사의 역할이 있으니, 최소한 교사가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익혀야 한다는 주장이니, 어느 정도 받아들일 것이 있다.

 

물론 산업시대의 학생들처럼 엄격한 규칙, 관리 등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거슬리기는 하나, 거슬리는 부분은 건너뛰면 되는 것이고,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자신의 체형이나 기질, 성향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기법들을 나열하는 것은 그 기법들 중에 자신에게 맞는 기법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니 이 책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수업 현장에서 교사 자신에 맞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강화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것의 중심은 물론 학생의 배움에 가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52가지나 되는 기법들이 나와 있고, 그 기법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어 있어서, 그 기법을 당장 실험해 볼 수는 있다. 또 자신의 방식으로 몇 가지 기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게 이 책의 장점이다.

 

배움과 가르침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은 배움을 유발하고, 다시 배움이 가르침을 유발한다면 교육은, 아름다운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육을 예술로 만드는 교사, 바로 제갈공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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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할 거야 - 십대,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할 것들
강신주 외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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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을 보면서 세 가지 뜻이 생각났다.

 

제목이 "후회할 거야"인데...

 

너 지금 이렇게 산 다음 "후회할 거야?"라는 의문문인지, 너 이렇게 살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라는 명령문인지(왜 명령문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지금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 또는 일을 저질러 놓고 잘못 되었을 때 그 때 가서야 "후회할 거야"라는 평서문인지...

 

어쨌든 상관없다. 어떻게 받아들여도 되니 말이다.

 

아무런 힌트도 없이 제목만 "후회할 거야"인데... 읽으면서 적어도 이 책은 꼰대들(10대들은 기성세대들을 이렇게 부른다. 자기들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어른들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이 10들에게 훈계하는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10대들이 거부감을 가지고 읽지는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이라고나 할까?

 

가끔 어른들은 10대들은 가르쳐야만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무언가를 꼭 가르치려고만 드는 경우가 있다.

 

자신들의 삶을 기준으로 삼아 그 기준에 맞게 10대들을 재단한다고 해야 하나?

 

10대들이 알아서 잘 살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기준으로 불안감을 느낀다던지, 자신들이 해보지 않은 일이면 우선 반대부터 하고 본다든지, 삶을 경제적인 것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판단한다던지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그러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 이 책이 비록 10대를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10대들에게 훈계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10대의 곁에서 언제든지 응원해줄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너희들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해보라고... 그러나 그것이 꼭 성공할 것은 아니라고, 실패도 할 거라고.. 그래도 너희들 곁에는 누군가가 있다고... 또 너희들은 그것으로도 스스로 빛나고 있다고...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니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 하는 글이 하나도 없다. 그냥 이랬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알아서 결정하라. 후회없는 삶은 없다. 후회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도대체 후회를 하지 않는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겠다는 것인가 하고 주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글들이다.

 

21명의 멘토라고 할 수도 있는데, 참으로 다양한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갈 사람들이 자신들이 거쳐온 10대를 생각하고, 지금 거쳐가고 있는 10대들에게 함께 고민하자고, 함께 살아가자고 하는 글들이다.

 

10대든, 20-30대든, 40-50대든, 60-70대든 어느 나이 대를 막론하고 자신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음이 확실한데, 누가 누구에게 훈계를 한단 말인가. 그냥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이런 인정 속에서 서로의 삶에 대한 존중이 나온다.

 

적어도 이런 자세가 이 책에서는 느껴진다. 그렇다고 포기는 아니다. 네 삶은 네가 알아서 살아라, 내가 알 바 아니다. 이런 식의 느낌이 오지 않는다.

 

인생 선배로서 진정으로 자신의 뒤에 오는 후배들에게 사람다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있는 글들이다. 그런 진정성이 느껴진다.

 

당위적인 말, 모범적인 말은 식상하다.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10대들에게 너희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다. 모든 일을 해봐라. 이 말도 식상하다. 현실이 그렇지 않음을 이미 10대들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10대들에게 말하고 있는 21명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담담히 이야기한다. 실패는 당연히 있다. 후회도 당연히 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을 안 해도 후회한다. 어차피 후회랄 거라면 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이 책에서 10대를 다양하게 보냈던 김현진은 말한다. 10대라는 기간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교집합을 찾을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63쪽)라고.

 

그렇다. 10대라고 해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한계는 10대를 지난 사람들 보다는 넓고도 멀다. 그래서 무언가를 한 번은, 또는 두세 번은 해볼 수 있다.

 

당연히 설렘도 가지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가지고, 그럼에도 무모함도 가지고 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교집합을 찾는 때'. 참 마음에 드는 말이다.

 

교집합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지. 거기에 당연히 후회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찾는 과정에서 후회를 하기도 하겠고, 하지 않아서 후회를 하기도 하겠지.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겠고.

   

꼰대스럽지 않아서 10대들이 쉽게, 재미있게, 그러나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10대와 만나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대들에게 꼰대처럼 훈계만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온 유명한 말. 이 말로 끝을 맺는다.

 

"carpe diem!"

 

덧글

 

행운 두 번째. 출판사의 서평 응모에 뽑혔다. 책을 보내준 출판사, 감사하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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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의 인문학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15
김석철 지음 / 돌베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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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인문학이라는 말은 많이들 하는데, 건축이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시 속에서 건축을 어떻게 인문학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다만, 주변 환경과 건축이 어울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고, 건축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결코 좋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건축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건축을 건축으로만 보지 않고, 도시 속에서 본다. 도시 속에서 본다는 말은 사람들의 생활과 연결지어 본다는 말이다.

 

도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고, 그 많은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도시 속 공간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도시라는 공간을 무시하고 건축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도시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건축을 살피고 있다. 그래서 건축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따라서 건축물에 대한 구체적인 사진 자료가 적다. 다른 건축 관련 책을 보면 건축물에 대한 사진이 정면, 측면, 평면 등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는 기대해서는 안된다.) 도시공학, 도시 설계에 관한 책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중심에 두고, 그 도시에 어떤 건축이 들어서면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를 역사적으로 고찰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여 건축을 건축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에 국한시키지 않고 도시라는 더 넓은 공간 속에서 사람들과 자연과 다른 건축들과의 관계를 살피면서 건축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한다.

 

총체적인 인간의 삶.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면 도시 설계 역시 인문학일 수밖에 없고, 이런 도시 설계에서 건축은 빠질 수가 없으니, 건축 또한 인문학이 될 수밖에 없다.

 

관료가 된 건축가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 현장에 있는 건축가라면 이렇게 전체적으로 건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를 이 책에서는 내내 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도시는 어떤가? 과연 인문학적인 도시인가? 인문학적인 건축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라는 답이 나와도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도시, 우리 건축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 추구한다면 우리나라 도시들, 세계에서 자랑할 수 있는 멋진 도시가 될테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거기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책에서 도시에 대해 한 말 중에 기억해 두어야 할 구절.

 

좋은 도시라고 하면 첫째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둘째 사람들이 도시적인 삶의 질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셋째로 당연히 아름다워야 합니다. 195-196쪽

 

삐딱한 덧글

 

사람이 참 삐딱하다. 긍정적으로 보아야 하는데, 한 번 비비 꼬아서 본다. 가끔은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이 책을 읽을 때 머리가 갸우뚱해지는 구절이 몇 있었는데.. 삐딱이의  글읽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44쪽. 그리스는 섬 문명이고 로마는 대륙 문명입니다. ... 그리스 문명의 핵심이었던 트로이와 ...

-> 근데 왜 나는 그리스 역시 대륙 문명이라는 생각이 들지? 그리스 문명의 핵심이었던 알렉산더 대왕 때는 인도까지 진출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그리스 문명을 섬 문명이라고 하지? 섬 문명이라고 하면 영국이나 일본 정도를 이야기하지 않나 하는 생각

-> 왜 트로이가 그리스 문명의 핵심이지? 그리스 문명의 핵심은 아테네, 또 스파르타 아닌가? 트로이는 변방이다. 지금 터키에 그 문명의 유적이 있던데... 우리는 그리스 문명 하면 아테네, 또는 스파르타를 떠올린다.

 

51쪽. 이건 소소한 오타. '공자보다 시장이 더 크게 세상을 지배합니다.' 처음에는 공자의 사상같은 유교 논리보다 시장이라는 자본주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뒤 문맥을 보면 공자가 아니라 공장이어야 맞다. 생산 중심에서 소비 중심으로 변해가는 현대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81쪽.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 사람이 아니라 게르만 사람입니다.

->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아버지가 로마의 공동황제였던 콘스탄티우스이고, 어머니는 헬레나라고 분명하고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1권 14장"에 나와 있던데... 게르만 족의 침범으로 로마가 멸망하게 될텐데.. 어떻게 게르만 족의 사람이 로마 황제가 될 수 있나? 이 얘기는 출생지가 게르만 지역이라는 얘기인가?

 

86쪽. 북예멘은 자본주의화되고 남예멘은 쿠바보다 지독해 북한과 버금가는 수순으로 공산화되어 있습니다.

-> 쿠바보다 지독하다는 말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들린다. 요즘 쿠바는 유기 농업으로 또 자주국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나, 우리나라 사람들도 상당수 쿠바에 견학을 갔다온 걸로 알고 있는데... 지독하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그닥 좋게 읽히지는 않는다.

 

91쪽. 수문제는 대운하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 대운하를 만든 것은 수문제가 아니라 수양제인데...이건 바로 잡아야 한다.

 

95쪽. 경주는 고려 때 철저하게 파괴되기 시작해 조선 시대에 아주 없어졌습니다.

-> 그런가? 고려 시대에 수도인 개경(개성)을 두고도 세 군데의 중심도시를 선정해서 중요시 하지 않았나? 서경(평양), 남경(서울), 동경(경주). 또 다른 자료를 찾아보면 조선시대에서도 경주 수령은 부윤이라고 하던데.. 부윤은 상당히 중요한 도시에 부임하던 사또들의 벼슬이라던데...

 

182쪽.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은 지식인의 현실 참여가 이렇듯 엉성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문인들이 모여 시국 선언을 한다고 해서 현실 참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작품을 써서 현실을 개혁해야 합니다.

-> 뒷 구절은 동의한다. 좋은 작품으로써 현실을 개혁한다는 말. 그렇다고 문인들의 시국 선언을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작품활동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지명도 때문에 시국 선언은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오히려 문인들의 시국 선언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 피카소의 그림에 대해서야 감상자의 눈에 따라, 평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그냥 감흥이 안 온다 정도면 될 것을 '엉성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85쪽. ...집을 제주도에 설계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펜실베니아보다 못하지만...

-> 이건 상당히 거슬린다. 우리나라 제주도는 세계적으로도 아름답기로 소문한 곳 아닌가? 제주도의 자연풍광이 미국 펜실베니아보다도 못하다고 어떻게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지.. 이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18쪽. 조선조 문화를 보면 근 500년을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이 위대함이 아닌 교묘함과 간악함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세종대왕은 조선 왕조가 아닌 고려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고, 한글은 이미 그 전에 있던 것을 세종대왕이 집대성한 것입니다.

-> 이게 뭔 말인가? 조선 500년을 이렇게 비하하다니.. 이건 분개할 일이다. 조선이 비록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지만, 나름대로 우수한 문화를 이룩한 나라 아니던가. 소중화라고 지칭할 정도도 문화적 소양이 높았던 나라인데...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 세종이 어째서 고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지? 세종은 1397년에 태어났다. 조선은 1392년에 건국이 되었고. 분명 세종은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 이건 문제다. 바로 잡아야 한다.

-> 한글은 이미 그 전에 있던 것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문자인데... 세종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창제과정까지 다 밝혀졌는데... 참.

 

참 길게도 삐딱하다. 인문학이라는 말을 담고 있는 책이라면 이런 점들 하나하나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사실관계는 정확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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