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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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곡'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다. 국사 시간에 배운, 삼정의 문란으로 조선이 혼란해질 때, 그 삼정의 문란 가운데 환곡이 잘못 운영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환곡이 어려운 사람을 구제해주는 역할을 하려는 취지에서 어긋나 백성들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쓰였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은 이러한 환곡을 조선의 복지제도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제도라고 하고 있다.


즉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백성들의 삶을 생각함은 굶주리는 백성이 없게 해야 한다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한 정책이 바로 환곡이라는 점이다.


먹을거리가 없을 때 빌려가서 추수가 끝난 다음에 갚는, 그것도 아주 싼 이자를 지불하고 갚은, 지금 말로 하면 저이자 대출을 받아 생활할 수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그냥 생각해도 좋은 제도다. 그런데 쌀을 어떻게 빌려주지? 빌려줄 쌀이 있어야지. 그러한 쌀을 확보하는 방법은 환곡과 세금의 연결이다.


환곡이 세금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환곡과 세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즉, 국가의 곳간이 차 있어야 베풀 수도 있는데, 그러한 곳간을 채우는 수단이 환곡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환곡은 늘 일정한 수준이 비축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풍년이 들어 빌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도 환곡은 창고에서 썩고 있어서는 안 된다. 유통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상태라면 환곡은 흉년이든, 풍년이든 백성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보태서 받아야 한다.


그런 제도, 즉 늘 빌려주고 이자를 붙여 받아야 하는 제도라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모두가 될 수도 있다는 데 문제가 있지만.


조선초기에는 그럭저럭 싼 이자로 운영이 되던 환곡이 조선 중기부터 이자가 많아지더니, 후기에 가면 아예 환곡으로 인해서 사회가 휘청거릴 정도가 됨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바로 세금과 환곡을 연결시킨 데서 나온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환곡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리, 부패 등이 만연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증세를 했느냐 하면 하지 않았으니, 세금은 오르지 않았는데,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지출은 늘었으니, 그 사이에 온갖 비리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한다.


왕-지방관-백성의 처지에서 환곡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지방관들 역시 환곡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환곡이 바로 지방재정이니, 그것을 유지 관리하는데 꽤나 어려움을 겪었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작 필요할 때 빌리지도 못하고, 또 쭉정이를 받아와 알곡으로 갚아야 하는 현실이 되기도 했다고 하니.


복지제도가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작용을 하기도 함을, 조선시대 환곡을 통해서 볼 수 있기도 하다.


저자는 조선시대 복지제도를 이야기하면서 지금 우리 시대에 어떤 복지제도가 필요할지 생각해 보자고 한다. 과거 복지제도를 이야기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고 한다.


선별복지냐, 보편복지냐 지금도 논쟁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는 환곡은 증세 없는 선별복지의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던 제도라고 하면서, 지금 우리는 조선시대 환곡 제도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복지제도를 생각하자고 한다.


자신은 보편복지가 옳다고 생각한다지만, 독자가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더라도 그것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시대 복지제도를 이야기하는 것, 지금 우리 시대 복지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복지제도를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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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 - 편견과 차별에 저항하는 비폭력 투쟁기
외즐렘 제키지 지음, 김수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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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의 공통점은? 종교인이라고 답하면 일반적이다. 종교인보다 더 구체적으로 가면 이들 모두 유일신을 믿는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이들이 믿는 신은 같은(

?) 신이다. 같다고 하면 안 되겠지만, 이들의 뿌리는 같다.


그런데도 이들의 갈등은 심하다. 심하다고 하기보다는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혐오한다.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서로 혐오하지 않고 잘 지낸다고? 아니다. 세계 역사를 보면 유대인을 기독교인들도 혐오했다.


수많은 유대인들 학살을 생각해 보면 수긍이 된다. 무슬림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이슬람 교도라고 불리는 무슬림들은 많은 혐오와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또 다른 국가 사람들을 편견과 혐오로 대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는 혐오와 편견이 넘쳐나고 있다.


단지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나타난다. 행동이 바로 폭력으로 나타나고, 더 심한 경우에는 전쟁으로까지 치닫는다.


사람들 사이에 장벽이 처진다. 너무도 두꺼워서 넘을 수 없는 장벽. 외부의 장벽이 아니라 내부의 장벽이다. 이 장벽은 철벽이다. 깨뜨릴 수가 없다. 그래서 편견은 더 강화되고, 편견이 혐오로 더 나타난다. 혐오는 배제를 부르고, 배제하기 위해서 폭력을 부르기도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혐오는 일방이지 않다. 양방일 가능성이 많다. 아니, 가능성이 아니라 양방이다. 서로가 자신은 편견이 없고, 특정 집단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편견으로 대하고 혐오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는 책을 읽고, 소식을 듣고, 그런 사람들만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계속된 편견의 강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된다.

 

이런 상황. 무슬림 여성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 편지를 받은 사람. 협박을 받은 사람. 그런 사람이 생각을 바꿔서,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을 만나기로 한다. 그래, 그들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만나봐야겠어.


그러면서 자신에게도 혐오 감정이 있었음을, 편견이 있었음을 깨달아 간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사람들을 뭉뚱그려 판단하지 않게 된다.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으로 만나게 된다.


세상에 혐오가 넘칠수록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포기하지 않고 대화하는 길만이 혐오를 없애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대화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려 한다. 


이 책은 그런 과정을 담았다. 무슬림을 쫓아내려고 했던 극우민족주의자들부터, 종교인, 무슬림, 유대인, 평화운동가들까지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한다.


혐오는 결코 일방향이 아님을, 혐오는 쌍방향임을, 그래서 힘들더라도 계속 대화해야 함을. 아직은 평화의 길이 멀지만, 포기하지 말아햐 한다고. 이 책의 저자 외즐렘은 말한다.


혐오와 편견은 다른 집단(종교, 민족, 국가 등)간에만 있지 않다. 같은 집단 내에서도 혐오와 편견이 작동한다. 그래서 더욱 더 대화가 필요하다. 


혐오와 대화를 시작한 외즐렘. 그 과정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임을 깨달아가는 저자의 모습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 역사 편견에 사로잡혀 혐오 표현을 너무 쉽게 하고 있지 않나. 혐오 표현이 말을 넘어 행동으로까지 가지 않나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에 나온 구절 중에서 계속 생각해야 할 구절을 적어본다.


'그들의(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는 그런 불공정을 만들어 낸 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평등하게 법을 해석하지 않는 지방정부나, 인턴 자리를 만들지 않는 기업들을 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대신 그들은 분노의 화살을 서로에게 겨냥하며 상대를 비난한다.' (75쪽)


'이름, 종교,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지유권을 누리는 민주적 공동체 안에서 모두 환영받는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내 임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폭력은 대화를 대신해서 변화를 창출하는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101쪽)


'불평등은 좌절감과 적대감을 낳는다. 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압력을 받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서로에게 달려들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인종 혐오의 대부분은 불평등이 그 씨앗이 되고 있다.' (128쪽)


'민주주의 문화를 이루는 필수 요소에는 서로 다른 견해를 존중하는 태도와 열린 토론 과정이 포함된다. 이런 태도와 과정이 보장되면 우리는 폭력이 아닌 말을 사용해서 안전하게 전쟁을 할 수 있다.' (205쪽)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나와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는다. 그 대신, 치열한 논쟁을 한다. 설혹 취약층 사람들이 불공정한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찾더라도, 그들이 보기에도 내가 하는 반대 주장이 명백히 보이도록 말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독재의 차이다.' (216쪽)


'우리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꼭 매달릴 것이 아니라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손을 꼭 잡아야 한다.' (4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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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 우리가 영화를 애정하는 방법들
김도훈 외 지음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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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다섯 명의 글쓴이가 있다. 모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나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적어도 20대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이들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라떼는'이 되기 쉽다. 하긴 요즘은 20대도 '라떼는'이라고 욕먹을 때도 있다.


그만큼 세상은 확확 변하고 있다. 세대 간 차이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런 차이들이 우리 사회를 더 다양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차이를 다양함으로 인정만 한다면.


'라떼는'이 군림하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야기해 준다면, 꼰대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야기는 재미 있기 때문이다.


나하고 관계 없는 사람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인생.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다만, '그러니까 너도 이래야 해.' 하면 안 된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라떼는'은 '꼰대'가 된다.


자, 그렇다면 이 책은 '라떼는'에 머물러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인가? 아님, 영화는 이렇게 봐야 해라는 '꼰대'로 나아가는 책인가?


처음에는 글쓴 사람들이 영화를 만나는 이야기가 실렸다. 그래, 그들이 어떻게 영화를 만났고, 영화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냥 읽으면 재미 있다. 


우리도 한번쯤은 겪어봤을 그런 일들.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도 한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아주 오래 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어쨋든 어떤 나이 대가 읽든 앞부분은 재미 있다. 옛날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은 드무니까. 거기다 자신과 비슷한 세대 사람이 지내 온 삶을 엿보는 일 역시 재미 있으니까.


뒤로 가면 이제는 영화와 관계맺는 일 이야기가 펼쳐진다. 참 다양한 일이 있겠지만, 이들을 엮어주는 공통점은 영화다. 그래, 영화, 그 자체가 재미 있는데,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 재미 없을 수가 없다.


이들은 영화에 대해서 비평을 하지 않는다. 영화 비평, 화려한 말들과 전문 용어가 뒤섞여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따분하다. 그냥 자기 자랑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지 않다. 남에게 보이는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기 영화 이야기를 한다. 남들이 뭐라건 그냥 자기 맘 속에 있는 영화, 영화 감독, 영화 음악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이들이 이야기하는 '라떼는'은 강요하지 않는다.


강요를 당하지 않으니, 한발 더 나아가고 싶어진다. 책은 그 점을 파고든다. 그래, 영화에 관련된 글이 있지. 그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나.


답, 없다. 이 역시 자기들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몇 가지 원칙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임을 밝힌다.


따라하든, 따라하지 않든, 그건 읽는 사람 몫이다. 그냥 '나는 이래.'라고 말뿐이다. 이런 태도가 좋다. 읽기에도 편하다. 게다가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앙케이드1-7'이 재미 있다.


솔직하다. 마지막 앙케이트는 압권이다. "이 책의 예상 판매 부수는?" 다섯 명이 모였으니,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요즘 종이책이 잘 팔리는 시대는 아니다.


게다가 온갖 매체를 통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지금, 예전 영화 얘기를 하는 책이 잘 팔릴 턱이 없다. 영화는 보는 것이지 읽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들이 최대로 예상하는 부수는 1만부다. 그 정도가 팔렸는지 궁금하다. 5쇄 정도는 찍어야 한다는데.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이 책에 나온 말처럼 첫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책으로 따지면 제목이다. 제목이 그 역할을 하고 있나? 자신들의 글쓰기 기법을 말해 준 사람들이 쓴 책인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리콜이라는 말 때문에 읽을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리콜은 이미 나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시 불러온다는 말이니까, 분명 예전 이야기가 나올 거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런 기대가 책을 살 수도 있게 한다. 과거는 추억으로, 다시 펼쳐보고 싶은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이 책은 '라떼는'이 추억이 될 수 있음을, 꼰대가 아니라 추억에 잠기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 나온 영화들이 다 '라떼는'은 아니다. 최근 영화들도 많다. 그냥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읽으면 재미 있는 그런 책이다. 5인 5색이기도 하지만, 그 5인이 모여서 내는 공통된 색도 있기에 재미 있게 읽었다. 


덧글


잘 이해 안 되는 문장이 있다. 김도훈이 쓴 'CG지옥에 빠진 영화들'이란 글에서.

책에 실린 문장은 이렇다.


'조지 루카스의 말은 맞다. 유화의 시대가 오면서 프레스코화의 시대는 저물었다. 그러나 특수효과의 시대는 아직 유화에서 프레스코화로 완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언젠가 CG기술이 지금보다 진화하는 날이 온다면 크리스토퍼 놀런 역시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포기하고 CG의 세계로 완벽하게 귀의할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영화는 이제야 아날로그의 시대에서 CG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을 뿐이다.' (175-176쪽)


이 문장에서 '아직 유화에서 프레스코화로 완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는 '아직 프레스코화에서 유화로 완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가 아닐까. 


앞에 '프레스코화의 시대가 한순간에 사라졌듯이 고전적인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시대는 거의 한순간에 사라졌다'(170쪽)는 문장이 있으니, 프레스코화는 아날로그 특수효과, 유화는 CG 특수효과에 대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문장, 다시 검토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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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독립선언 - 일본어사전을 베낀 국어사전 바로잡기
박일환 지음 / 섬앤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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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사전을 베낀 국어사전 바로잡기'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토박이말, 외래어, 외국어가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데, 그 말들을 많은 사람이 쓴다면 당연히 사전에 수록되어야 한다.


토박이말만으로 자기 나라 언어를 만들 수는 없으므로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말들이 널리 쓰인다면 그 말을 자기 나라 말로 삼을 수밖에 없다. 


사전이 사람들이 쓰는 말과 달리, 규범적인 말들만 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즉, 사전은 언어생활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므로 외래어를 실었다고 문제를 삼지는 않는다.


다만, 외래어를 받아들였는데, 사전이 그 말의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토박이말인지, 외래어인지 알 수가 없다. 사전이 말의 용례만이 아니라, 어원도 밝혀주면 언어를 더 넓고 깊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표준국어대사전을 비판하는 책을 여러 권 냈지만, 과연 사전 편찬자들이 그 책들을 읽었는지조차 의문이라고 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전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어렵고도 두려운 일이다. 글자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하고, 그 말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 말의 쓰임이 어떤지,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도 살펴야 한다.


많은 예산을 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하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좋은 사전이 나올 수 있다.


당장은 효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그리고 사전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들을 확보해야 한다. 


일제시대 조선어사전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어려운 일을 겪었는지는 '조선어학회 사건' 등을 통해서 알려져 있다. 그런 고초에도 불구하고 사전은 곧 나라를 대표한다고 생각했기에 많은 학자들이 사전 만들기에 참여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나라 국어사전을 갖게 되었고, 그 사전은 계속 보강되고 있다. 보강되어야 하는데, 예전만큼 사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니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되고, 지적이 되는데도 고쳐지지 않고 있지.


특히 일제시대 그렇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만들어내려 했던 사전이 일본어사전을 베낀 말들로 채워진다면, 그건 역사에 대한 거스름이고, 조상들에 대한 배신이다.


사전을 만들면서 특히 그 부분에 더 신경을 써야 했을텐데, 이 책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일본어사전 풀이를 거의 그대로 갖다 쓴 말들이 많은지...


또 일본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만, 지금 우리는 거의 쓰지 않는 말들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되어 있는지, 게다가 일본말에서 온 말이 분명한데도 그것을 밝히지 않아 토박이말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풀이도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이렇게 사전을 홀대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말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저자는 외래어, 외국어를 무조건 배제하자고는 하지 않는다. 말이 산다는 말은 외래어, 외국어를 배제하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쓰고, 이미 언중들에게 인식된 언어라면 그 뜻을 제대로 풀이하고, 그 말의 기원을 밝혀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쓰자는 말이다.


그래야 하는데, 쉽고 편하게 일본어사전에 있는 말들을 베껴쓰면 그것이 말이 죽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살리는 길, 먼저 사전을 제대로 만드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이 쓰는 말을 사전에 수록하고, 그 말의 뜻을 제대로 풀이하고, 쓰임과 기원을 밝혀주는 일을 사전이 해야 한다. 사전을 보면서 그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면 말이 살 수가 있다.


저자의 비판을 트집잡기라고 해서는 안 된다. 좋은 국어사전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떠한 비판도 받아들여야 한다. 검토해야 한다. 찾고 또 찾고,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잘못되었다면 바로바로 고려야 좋은 사전이 된다.


그런 좋은 사전이 나오길 고대하는 저자의 고심이 이런 책을 계속 내게 하고 있다. 국어학자라면 적어도 이런 책은 찾아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국립국어원에서는 언어에 관한 책들을 검토하는 부서가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적어도 자신들의 연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낸 책들을 통해서 우리나라 국어에 대해서 검토하고 정책을 마련하는 활동을 하는 곳이 국립국어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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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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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을 읽는 일은 즐겁고도 재미 있다. 특히 그 작가의 작품을 졸아한다면 더더욱. 작가가 어떻게 그 작품을 썼는지 엿볼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글을 쓴다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지만.


김초엽이 쓴 이 책은 자신이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SF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 그리고 책과 글쓰기 작업에 얽힌 이야기들을 싣고 있다. 처음부터 책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지만, 도대체 무엇을 SF소설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굳이 장르를 나누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글을 쓰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으니, 이들이 굳이 장르를 나누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제목과 같이 이 책에는 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읽어야 했던 책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책들. 그런 책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읽으면서 야, 나도 이 책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그 많은 책을 다 따라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내게 필요한 책들을,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겠지 하는 생각도 한다.


서점, 작은 서점, 그렇다. 우연히 들른 책방에서 만난 책들이 큰 기쁨을 주는 때가 있다. 어떤 책을 사야지 하고 목표를 정하지 않고 서점 이곳저곳을 서성이다가 발견한 책. 아니 눈에 띤 책. 그런 책들이 더 기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가끔 헌책방을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책방에서는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쁨이란... 김초엽도 이 책에서 그런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았는데...


이런 수필집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소설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작가가 쓴 수필까지 찾아 읽지는 않는다. 그런데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책과 우연들이라니... 그럼 책도 우연인가? 하는 생각.


꼭 정하지 않아도 읽어야 할 책들, 내가 관심을 갖지 않다가도 우연한 기회에 읽을 기회가 생긴 책들. 나는 김초엽 작가와는 반대로 과학 종류의 책은 잘 읽지 않다가 최근에 좀 읽는 편인데...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그쪽 방면의 책을 읽었던 작가와는 반대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문학부터 읽다가 그러다가 SF소설을 읽고, 이거 과학을 모르면 잘 이해를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쉬운 과학책을 찾아 읽고, 그러면서 과학책들도 재미 있는 책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읽은 책 중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까인데, 읽은 책을 또 읽는 경우도 있고, 분명 읽은 책인데 읽었단 생각도 들지 않는 책이 있어서, 그러면 왜 읽는가 회의도 들곤 했는데...


기억을 하지 못해도 내 몸, 내 마음 속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때 읽은 책들이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와 또 미래의 나를 연결해 주고 있으며, 나를 다른 사람들, 다른 존재들과 연결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록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읽은 책들이 우연처럼 내게 다가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고 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책은 모든 존재를 연결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명, 함께 울림을 경험하게도 한다. 시공간을 넘어서. 그런 점에서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주고, 김초엽의 이 책 역시 다른 책들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우연들,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 관심 속에서 생겨난 우연들. 그런 우연은 공명을 이룬다. 함께 울린다. 이 책 역시 그렇게 마음을 울리고 있다.  


김초엽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전보다 더 흥미롭고 복잡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결코 읽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눈길도 주지 않았던 책을 우연히 펼쳐드는 순간이 있다. 투덜거리며, 의심을 가득 품고, 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그런 우연한 순간들이 때로는 나를 가장 기이하고 반짝이는 세상으로 데려가고는 했다.

  그 우연의 순간들을 여기에 조심스레 펼쳐놓는다.' (11쪽. '들어가며'에서)


자, 김초엽의 우연의 순간들을 만나고, 다시 자기 자신의 우연한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 또한 좋지 아니하겠는가. 우리도 책을 만나러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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