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이유와 그 연결에 숨어 있는 놀라운 과학
톰 올리버 지음, 권은현 옮김 / 브론스테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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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목이 영어 제목과는 좀 다르다. 영어 제목은 THE SELF DELUSION인데, 이것은 자아라는 환상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자아'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요소 아니던가. 그런 자아를 강조하다 보면, 개인에 매몰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고립되어 있지 않다. 개인은 개인이 아니다. 개인을 홀로 존재하는 자아라고 한다면, 그런 자아들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 책은 그 점을 내내 강조한다. 자아가 환상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수많은 관계 맺기를 통해서 존재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주에서부터 미생물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한글 제목은 영어 제목을 풀이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너무도 거대해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중 어느 연결이 끊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지점에서 연결이 끊긴다면 자신이 지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환경에 들어설 수 있다.


너무도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너무도 길고 방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공간이 모두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연결을 잊고, '자아'라는 환상에 갇혀 살기도 한다. 연결의 끊김이 바로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음도 인식하지 못하고, 연결을 되살리는 쪽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오로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과학기술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그는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지낼 것을 이야기한다. 자연과 더불어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결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만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런 연결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이런 삶은 자연과 우주와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사는 삶이기도 하고, 또한 '나'라는 몸으로 국한시키더라도 내 몸에도 수많은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최근 과학이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인 중심주의에서 연결성을 중심에 놓는 사고와 행동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느 한 나라만 잘 살아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을 저자는 실과 천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실의 삶에서 벗어나 천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자아정체성의 범위가 넓어지고, 자신이 하나의 실이라던 인식에 머물지 않고 전체 천의 웅장함을 볼 수 있게 관점이 바뀌면서, 우리는 모든 인류의 더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한 노력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291쪽)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관계가 바로 인간이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을 사회적이라는 말로 한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사회뿐만이 아니라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고, 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 우리가 그런 인간이란 생각을 지닌다면 개인에 매몰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우리는 인간이다. 사람 사이... 아니 모든 존재 사이. 즉 이 사이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의 끈을 만들며, 또 서로 엮여 살아가는 존재.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실들이 모여 이룬 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올이 나가면 천도 망가진다. 다른 실들이 온전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연결된 세상을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살아야 하는 세상. 이때 우리는 인간만이 아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들, 보이지 않는 존재부터 볼 수 없는 존재까지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연결되어 살아감을 이 책의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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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세계
션 B. 캐럴 지음, 장호연 옮김 / 코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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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이냐 우연이냐를 많이 따진다.눈먼 시계공이라는 말도 있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우리 삶이 과연 정해진 대로 살아질까? 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만 하면 될까?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의 삶에는 우연이 없다는 말일까?


과연 그럴까? 인간 숫자가 70억 정도 되는 이 지구에서 과연 모든 일들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질까?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멸종들도 필연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의문들이 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 그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한계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필연을 생각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도 그런데, 그 상상이 인간의 한계를 짓는다고도 해야 한다.


신의 뜻대로라면 인간이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자유의지는 없다는 말도 있지만, 자유의지라고 해도 과연 필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내 뜻대로 한다는 의미의 자유의지라면 내 뜻대로에는 수많은 우연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우리는 우연으로 이루어진 세계, 우연이 만든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된다.


왜 하필 그때, 또 똑같은 일을 당하고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른 경우, 그리고 인간의 유전자가 거의 비슷하지만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는 이유 등등.. 결국은 우연이 작동한 결과라고 한다.


우연히 어떤 것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살아남아 다시 퍼뜨리고, 강화되고, 거기에 다시 우연이 발동하여 돌연변이가 생기고, 돌연변이가 널리 퍼져 우세종이 되는 현상. 이러한 현상들에 어떤 필연성을 찾기보다는 우연으로 인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몇억 분의 일이라는 확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우연이 작동한다. 그 점은 우리도 안다. 하지만 단지 모든 것을 우연에 기대지는 않는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노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여기에 또다른 우연이 개입해서 다른 변화가 일어난다.


이 말을 저자의 말을 빌리면 '우연은 창조하고, 자연선택은 발명품을 퍼뜨린다'(156쪽)고 할 수 있다.


왜 저자는 이렇게 우연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이것은 바로 인간의 자율성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신에게 인간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아닌, 수많은 우연으로 인류가 지구상의 지배종이 되었고, 또 수많은 우연으로 인간 유전자에 많은 변이들이 생기며, 그런 우연들이 살아남음으로써 지구상에서 생명들이 살아가게 했다는.


책은 처음에 지질 발견부터 시작한다. 단층이 생겼고, 거기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는. 멸종이 이루어졌는데, 멸종을 무엇이 일으켰느냐는 추적으로 부터. 추적의 결과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고, 그 충돌로 인해서 많은 생물들이 멸종했다고 한다.


많은 생물들의 멸종을 일으킨 소행성 충돌은 필연일까? 아주 적은 확률로 일어난 우연이다. 이 우연이 생명체들의 존속을 갈랐으니... 그렇다면 이런 우연에서도 살아남은 종들은 어떤 종들일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을 창조한 생명체들이다.


결국 우연이 생명체들의 몸에 무언가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고, 이래서 우연이 창조하고, 자연선택이 퍼뜨린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 인간은 과거를 학습하는 능력이 있으니, 그러한 우연으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되었을 터. 우리는 우연으로부터 창조와 지속을 학습했고, 이런 학습이 바로 인간의 자율성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우연은 자리할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신의 존재에 대한 비판이 이 책6장에서 오순절 교회 목사들이 독사를 들고 설교하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우연을 강화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우리 세상은 우연이 우리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일이 많다. 


그러니 신의 뜻대로가 아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니, 살아 있는 동안 삶을 즐겨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우연에 대처하는 인간의 자율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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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 연세대 최우수 강의 교수가 들려주는 미생물학 강의
김응빈 지음 /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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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보이는 존재보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더 많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소리도 많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기도 한다.


미생물. 아주 작아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생명체들. 그런 미생물에 대한 책이다. 미생물을 부정적으로도 그렇다고 마냥 긍정적으로도 보지 않고 그 자체를 알려주는 책.


미생물 하면 바이러스를 떠올리고, 병원균이라고 생각해서 박멸해야 할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미생물을 모두 박멸한다면 사람들도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우리 몸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은 우리에게 병을 일으키는 경우보다 우리 몸을 지켜주는 역할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는데 미생물은 꼭 필요하다.


항생제가 발달해서 미생물들을 죽여서 우리 몸에서 많은 미생물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질병들이 나타나고 있기도 한다.


그러니 미생물을 배척하기보다는 미생물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생물에 관해서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읽기에 좋다. 여기에 미생물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어서 좋기도 하고.


아주 높은 기온에서도 살아남는 미생물이 있고, 아주 낮은 온도에서도 살아남는 미생물도 있으며, 아주 깊은 심해에서도 살아남는 미생물이 있는가 하면, 우주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생존하는 미생물이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 몸에 있는 미생물들도 어떤 때는 우리에게 이로운 역할을 하다가도, 어떤 때는 우리 몸에 해로운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하니, 미생물이 환경에 따라서 다른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해로운 역할을 하는 미생물이 몸에 있다고 해서 모두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 몸의 면역체계가 무너질 때 질병이 발현한다는 사실. 그러니 미생물에 책임을 돌리지 말고 인간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런 식으로 다양한 미생물, 그리고 미생물 발견의 역사, 미생물과 우리가 공존해야만 하는 이유 등등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미생물들에 대한 이야기니 읽어볼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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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붉은 사랑 -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그대가 있었다
림태주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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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택배가 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시킨 물품이 없는데 무슨 택배? 자세히 읽어보니 보낸 사람이 벗이더군요.


벗이 웬일로 택배를, 무엇을 보냈을지 궁금해 하던 차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오고, 받아보니 천혜향 한 상자입니다.


웬 천혜향? 벗은 농사를 짓지 않는데, 천혜향을 보냈다는 것은 부러 마음을 먹었다는 얘기입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할겸 전화를 했더니, 벗이 그러더군요.


"봄이 왔어. 봄향기를 선물하고 싶었어."


그렇습니다. 벗은 봄을, 이 포근하고 따스한 봄을 혼자만 보내기가 아쉬웠던 겁니다.


봄을, 봄향기를 벗이 아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봄을 내 마음에 심어놓았습니다. 벗이 보내준 봄향기가 온집안을 감싸고 있습니다.


봄은 옅은 색깔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읽고 있던 림태주의 책과 비교해보니, 봄도 붉은 사랑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붉은, 밝고도 따스한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이렇게 봄이 다가왔습니다. 마음이 포근해졌습니다. 정말 봄이구나, 벗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책도 그렇습니다. 책은 4계절을 각 장으로 나누고 그에 관한 글들이 있지만, 각 장들이 모두 사랑입니다.


따스한 사랑입니다. 계절에 따라 연상되는 색들과 상관없이 모두 붉은 사랑입니다. 그렇게 이 책은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삶의 요체는 축적과 차지가 아니라 비움과 나눔이다. 조문을 가면 먼저 죽은 자들은 늘 이 두 가지를 명명백백하게 알려 준다. 이것은 사유가 아니라 삶의 감각이다. 이 구체적인 감각이 무뎌지고 만져지지 않으면 그때를 죽음이라고 한다. 죽은 자의 것 중 기릴 것이 있다면, 그가 살아서 얼마나 나누고 베풀었는가이다. 그것을 산 자들은 덕망이라 부른다. 삶을 감각하고 있는가. 나여.' (233쪽)


그렇습니다. 이 글에서 말한 비움과 나눔, 벗은 그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벗으로 인해서 삶을 감각하게 됐습니다. 잠시 무뎌졌던 내 삶의 감각을 깨우는 봄향기를 벗이 보내주었습니다.


벗이 보내준 봄향기, 이 봄향기가 림태주의 책을 내내 감싸고 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할 것 없이 사랑으로 충만한 글들입니다. 그 글들에서 붉은 사랑을 느끼고, 붉은 사랑에서 봄향기를 느낍니다.


시작입니다. 사랑의 시작.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짚어보는 일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그렇게 봄향기를 나만이 아니라 주변으로 퍼뜨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봄, 이 봄향기와 같이 마음이 따스해지는 그런 글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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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3-03-14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향기 품은 페이퍼네요. 친구분과 함께 세상에 봄향기를 마구 퍼뜨리고 계시구요. ㅎㅎㅎ 책 소개도 감동입니다. ^^

kinye91 2023-03-14 13: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봄향기가 세상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해러웨이 선언문 -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
도나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 옮김 / 책세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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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자꾸 손이 가는 사람이 있다. 이해하려면 그 사람만 집중적으로 읽어도 될까 말까 한데, 그렇게 하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읽지 않으면 무언가 마음이 찜찜하고...


그런 사람들 중에 해러웨이가 있다. 언젠가 해러웨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꼭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한 장의 잎사귀처럼]을 읽고는 잠시 뒤로 미뤄뒀다. 아직은 해러웨이를 읽을 때가 아니구나.


그러다가 해러웨이 선언문 중에 [사이보그 선언]이 자꾸 언급되는 책을 읽게 됐다. 이거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구입했다가, 미루다 미루다 읽다가 또 손을 뗐다가 다시 읽다가.


그럼에도 잘 이해가 안 된다. 나중에 좀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읽어봐야겠다. 그럼에도 사이보그나, 반려종 선언에 들어있는 의미를 내 나름대로 추측한다.


해러웨이의 주장을 이해했다기보다는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외쳤는데, 해러웨이는 '인간은 죽었다'고 외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신이 죽으면 그 자리에 인간이 들어서야 한다. 유발 하라리 말대로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가 되어가고 있는 인간이다. 벌써 인간은 신의 자리에 올라섰다. 니체가 19세기에 외쳤던 신은 죽었다가 21세기에 와서는 현실이 되었다고 할까.


니체식의 초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이미 인간은 지구에서 군림하는 유일한 종이 되지 않았는가. 지구를 좌지우지하는 인간. 


아직 공식 명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인류세'라는 지구 역사에서 한 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인간 아닌가.


이렇게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올라섰다면, 이제는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인간은 죽었다'고 외쳐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을 죽이지 않고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러웨이가 쓴 두 선언문을 나는 '인간은 죽었다'는 외침으로 읽었다.


인간이라고 할 때는 주로 남성을 지칭했는데, 해러웨이는 그를 부정한다. 이제는 남성만이 인간이 아니다. 여성을 비롯해서 성소수자들뿐만 아니라, 사이보그까지도 인간의 대열에 합류한다.


여기에 반려종까지 합세해서 이 지구라는 장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인간은 죽었다. 해러웨이가 대담에서 '아기 대신 친족을 만들자'가 다음 선언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때 친족엔 인간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사이보그를 비롯해서 다양한 종들이 포함된다. 그렇게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 얼마 전에 읽은 [빅이슈]에서 뜨개질에 관한 글을 생각나게 했다. 해러웨이 역시 다양한 종들이 뜨개질처럼 서로 엮어서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그 과정이 결코 단순하지도, 단일하지도, 또 쉽지도 않겠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나는 종 안팎에서 맺어진 모든 윤리적 관계는 관계-속의-타자성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라는 가늘고 섬세하며 질긴 실로 뜨개질한 편직물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며, 함께 살아감으로써 존재한다. 누가 있으며 누가 생겨나고 있는지 묻는 것이 의무다.' (178쪽) 


'다른 이와 나누는 애정, 헌신, 솜씨에 대한 열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191쪽)


이런 해러웨이 글을 읽다보면, 같은 인간들끼리도 잡아먹지 못해서, 또 같은 정당 안에서도 제 권력만을 위해서 상대를 비방하고, 상대가 무너지기를 바라는 말과 행동을 하는 존재들을 보면 이들은 도대체 어떤 종일까 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이들을 배척하더라도 그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러웨이는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고 한다.


진화론을 믿지 않는 창조론자들에게 '진화'라는 말을 빼고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어떤가 제안한다.


'"창조/보살핌"파의 사람들은 기독교인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 윤리적인 자연 관리의 실패에 정말 화가 나 있어서, 동물을 더 잘 보살피고 기후를 망치지 않으려 대단히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화"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문을 열고 나가버리겠지만, 좋은 관리란 어떤 것인지 물으면 실용적인 대화를 할 수가 있지요.' (355쪽)


이렇게 함께 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같은 종에서도 같은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안 되는 사회에서는 더욱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인간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기때문이다. 인간과 다른 존재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시대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아이보다는 친족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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