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락 - 즐기고(樂), 배우고(學), 통(通)하다
윤승일 지음 / 중앙위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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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새롭게 읽는 방법
고전은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 어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물론 사람마다 조건이 다르니 이 기준 역시 천차만별일 것이지만 그래도 공통된 기준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고전을 어렵게 여기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조건이 고전이 쓰여 질 당시와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사고방식이나 생활환경의 차이로부터 고전이 담고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 바로 이것이 고전이 어렵다는 의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고전이 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성찰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통하는 바가 있어 지금까지 사람들 속에서 빛나는 것이리라. 이 통하는 바를 찾아낸다면 고전이 오늘날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작용할 것이기에 어렵다는 편견 또한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고전을 현대인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윤승일의 ‘고전 락’ 매우 의미 있는 작업으로 받아들여진다. 고전을 ‘즐기고 배우고 통하다’라는 부재를 달고 독자들 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공자, 맹자, 사기, 한비자, 전국책, 삼국지 등 오랫동안 독자들의 관심을 받아온 중국의 고전들에서 재미나고 유익하며 사람들의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3백40여개의 고사를 선택하고 이야기를 구성하여 짧은 문장으로 엮어냈다. 저자는 다시 이를 현대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짤막한 저자의 생각을 담아내 우리에게 전해준다. 

3백40여개 고사를 ‘세상의 틀 밖에서 세상을 생각한다’, ‘남들과 다르게, 거꾸로 보는 지혜’, ‘모든 것의 중심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 ‘기억하라, 시작하는 그대는 아름답다’ 등 네 가지 분류로 구분하고 있다. 이 분류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고사 성어들을 배열했다. 한자의 음과 훈을 달아 한자를 보는 재미도 있고 직접적인 해석도 달아 놓아 그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저자가 분류한 이 네 가지 내용을 보면 현대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지 등 지극히 실질적인 해답을 찾아내는 분류로 보인다.  

이 책이 저자가 2010년 가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고전 한 토막과 메시지를 이메일로 전하면서면서 시작했으며 이 이메일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면서 책으로 엮어졌다고 한다. 그렇기에 고전의 현대화라는 시각에 근접한 돋보이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을 접하기 어려운 현대인들의 생활 방식에 최대한 근접한 방식을 취한다. 고전에서 선택한 고사들이 만들어지는 배경을 핵심적인 내용만을 간추려 내 이야기해 주고 현대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 주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내용과는 다소 다른 뉘앙스를 전하는 제목 또한 고사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를 깊이 있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보여 책을 엮으며 저자가 고심한 흔적임을 생각하게 된다. 

고전을 통한 자기계발의 시도는 그동안 다양한 저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편집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양한 저자들이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고전을 현대인들이 접하기 쉽도록 연결하는 노력은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고전이 현대에도 충분한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희망으로 이끌어 가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고전은 늘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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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 - 우리도 반드시 알아야 할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임경택 옮김 / 동아시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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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과연 필요악일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한때는 호랑이나 마마와 같은 것, 때론 전쟁이나 배고픔처럼 사람들이 무섭게 느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에는 청년실업이나 유괴처럼 사회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무서운 일 중에 선두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사회적 조건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운명을 좌지우지할만한 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예상치 못할 파괴력으로 다가오는 자연재해나 이를 능가하는 핵관련시설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핵에너지를 비롯한 핵관련 무기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화석연료를 포함한 자원의 한계를 이야기하며 대체에너지원으로 핵연료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우리나라 역시 핵연료를 사용하는 원자력발전에서 상단부분의 에너지를 얻고 있다. 핵관련 이야기가 이러한 에너지 문제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흐름을 볼 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결부되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이는 북한의 핵관련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일이다. 

2011년 초 일본에서는 자연재해인 지진과 쓰나미에 의해 일본 원자력발전소가 피해를 입었다. 1986년 4월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건 이후 가장 큰 원자력발전소의 사건으로 이 사고가 발생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그만큼 식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무감각의 수준에 이른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감각적으로 대해도 좋을 만큼 원자력발전은 안전한 것일까?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을 읽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는 일본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더욱더 피부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문제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핵관련 정책의 변화를 비롯하여 국제적인 핵정책이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이미 핵무기를 개발한 나라들의 이해요구와도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일본은 지금 당장 핵무기 1,250발을 만들 수 있는 플로투늄을 추출하여 보관하고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 후 미국과 군사동맹을 비롯하여 자위대 무장에 있어 일본의 자위에 그쳐야 한다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군사강국의 지위에 올라있는 수준이다. 이 과정에 일본 핵발전의 속내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핵무기의 보유가 국제적으로 자국의 지위를 높인다는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치상황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말일 뿐이다. 

저자는 사실상 원자력은 ‘인간에게 허용된 한계’를 넘어섰다는 쥘 베른의 말을 인용하며 그 이유를 밝힌다. 그것은 원자력 에너지는 한번 폭주하면 인간이 통제를 하기 힘들다는 점과 원자력발전의 건설에서 가동까지 모든 부분에 걸쳐 비대화된 관료기구와 복수 대기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로 이는 기술자나 과학자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들어 인간 자체를 집어삼켜 버린다는 점이라고 한다. 핵원료에서 방출되는 방사능이나 핵폭발에서의 낙진 등을 걱정하는 것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사후 책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인류의 재앙을 불러오는 것임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현재 2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상업운영중이다. 이는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독일에 이어 세계 6위 수준의 규모다. 또한 한국표준형 원전이 건설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적으로 사용억제나 폐기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경향성을 보여준다.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 오는 것일까? 핵무기보다는 원자력발전소가 더 광범위하게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한 현실에 대해 누구보다 심각성을 인식해야 할 우리로써 의미심장하게 읽어야 할 텍스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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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젊은 그들 - 18세기 북학파에서 21세기 복합파까지
하영선 지음 / 을유문화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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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불투명한 미래는 사람의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하여, 많은 정치가, 사회학자, 철학자를 비롯한 학문을 하는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미래의 전망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현실적 요소들을 분석하며 전망을 내놓는다. 그렇게 내놓은 전망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희망적으로 설계하는데 실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이 현실의 분석을 잘못했거나 내놓은 전망이 불투명할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일도 이를 바탕으로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일은 그러한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여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정치현실이든 학문의 일선에 서서 장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을 주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역사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를 보고 그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평가하는 기준과 잣대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역사를 보는 이유라고 말한다. 이는 과거를 무시하고는 현재는 없으며 미래역시 현재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무엇을 봐야 할까?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 하영선의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 바로 그런 예시를 제시하는 모범답안처럼 보인다. 이는 우리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18세기부터 시작하여 지금 오늘의 문제를 살피고 있다. 하영선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국제정치 속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파악하고 복잡한 현실 국제정치의 맥을 잡아내며 미래를 전망할 것인가이다. 하여, 하영선이 주목하는 사람은 18세기 박지원, 19세기 정약용, 20세기 조선말과 일제시기 박규수, 유길준, 김양수, 그리고 해방이후 안재홍, 그리고 현대에 이용희와 복합파에 이른다. 이 흐름 속에 일정한 맥이 있으며 그 맥이 바로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과 미래를 전망하는 시각을 찾아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18세기는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담고 있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주목하며 또한 정약용의 저서 여유당전서 속에 나타나 있는 당시의 현실인식과 미래의 전망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왜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났는지 살피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제치하, 해방정국과 미군정을 지나 현대에 이르는 과정을 살핀다. 또한, 저자 하영선이 각각의 인물들과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으며 그들의 고민과 저자의 고민이 만나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알려준다. 그가 주목하는 인물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며 이미 많은 연구가 된 박지원이나 정약용 같은 사람도 있지만 김양수나 이용희 같은 생소한 사람도 있어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흥미로움도 있다. 

저자 하영선의 전공은 정치학이다. 정치학은 자국의 이해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국가 간의 힘의 관계나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기에 이렇게 역사 속의 사람들을 찾아 그가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그것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열악한 한국의 현실 속에서 세계열강에 둘러싸인 젊은 그들은 어떻게 외교 강국의 길을 찾았는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실리를 추구하는 국가 간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법 또한 현실과 유리되어 찾을 수 없는 것이리라.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일본의 막강한 세력 사이에 위치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여 그들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현실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 이 책의 요지라 여겨진다. 그가 주목하는 방안으로 ‘복합’이라는 용어가 있다. 무엇보다 현실정치가 이차원이나 삼차원이 아닌 다차원의 복합 성향을 가지기에 이를 대처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복합적으로 사고하고 그 속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이러한 방안이 현실화되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희망으로 밝혀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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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전방위적 지식인 정약용의 치학治學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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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보다 21세기에 더 빛나는 다산 학문
한 사람은 주로 한 가지 분야에서 기억된다. 특히, 역사적 인물 중에는 그가 남긴 다양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실이 주목되어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수 천 년 우리역사에서 한 가지 분야에 특출한 업적을 남기고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다수다. 한글 세종, 측우기의 장영실, 화약 최남선 등과같이 기억되는 것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한 가지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기도 어려운데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사람이 있다. 피폐해진 민생을 살리고 정치적 쇄신을 위해 정조가 활동하던 조선후기 사람으로 18년이 넘는 시간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 같은 사람이다. 이 사람을 통해 역사는 천재가 있음을 알게 한다. 

정약용(1762년(영조 38)∼1836년(헌종 2)은 조선후기 문신이며 실학자다. 그가 (1801년(순조 1))가 일어나 천주교도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를 갔던 신유박해에 관련되어 그의 둘째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당한 것이다. 이 유배기간 동안 강진의 거처에서 학문을 닦고 재자들을 길렀으며 이를 통해 성장한 사람들과 다산학파를 이뤄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방대한 서적을 출간한다. 18년이 넘는 유배기간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그의 학문적 열정은 식지 않고 계속되어 당시 학자들 사이에 주목을 받았다. 주의 주요저서로는 매씨상서평, 상서고훈, 상례사전, 악서고존,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총 500여권을 헤아린다. 

하면, 정약용은 유배기간 동안 강진에서의 생활이 어떠했기에 여유당전서에 포함된 5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서적을 출간할 수 있었을까? 정민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바로 그 문제에 대해 주목한다. 정약용이 남긴 저서는 특정한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경전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며 실제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정민은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정약용의 학문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 주목한 것이다. 정민이 평하는 장약용은 한마디로 ‘통합적 인문학자’라 규정한다.  

통합적 인문학자란 정약용의 저서를 분류하고 분석하면 경전을 연구한 경학자, 예론을 분석한 예학자, 목민관의 행동지침을 정리한 행정가, 아동교육의 실천적 대안을 만든 교육자이며 지난 역사의 맥을 찾을 줄 아는 역사가, 배다리와 유형거를 만든 토목공학자, 지리학자, 의학자, 법학자, 국어학자이며 시인 그리고 문예비평가로 이 모든 것은 실질적으로 정약요이 남긴 서적에 의해 관련된 항목을 찾아서 붙인 이름이다. 이렇기에 통합적 인문학자라고 한다는 것이다. 

정민이 정약용의 수백 권에 이르는 방대한 서적을 살펴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 많은 저술을 남길 수 있었는지 정약용의 공부법을 살펴 이 책에 수록했다고 한다. 정민 역시 정약용이 공부한 그 방법으로 체계를 세우고 초록을 하는 과정에서 현실에서도 매우 유용한 방법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해서 지식경영법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다산치학 10강 50목 200결’이라는 일정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큰 줄기를 세우고 다섯 가지 방법론과 네 개의 소분류를 더해 정약용의 공부법의 핵심을 파악하고 그 방법을 공유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 정민은 이런 연구과정을 통해 다산의 삶과 학문이 가지는 핵심가치를 분류한다. 그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인 비민보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간난불최, 실용을 우선하는 실사구시,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오득천조, 지금 여기의 가치를 다른 것에 우선한다는 조선중화 이 다섯이 그것이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다산의 편지글이다. 우선, 자식들에게 가족에게 닥친 어려움에도 굴하지 말고 스스로를 갈고 닦는 공부에 열중하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내용과 다산이 연구하는 분야의 결과를 둘째 형이나 벗 그리고 당파를 불문하고 당대 학자들에게 검증하고자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편지글을 통해 본 다산의 학문적 열의와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굳은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의 저자 정민은 이렇게 정약용의 공부법을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공부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등이다. 18세기를 살았던 사람의 삶이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충분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속에 진정한 공부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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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와서 미안해, 라오스
정의한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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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여행 다닐 뿐인 시각에 갇힌 라오스
무엇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그러기에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는 다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든다. 현대인들이 걷기, 쉼, 산행 등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자신의 주 활동 공간을 벗어나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만끽하거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과의 대화를 갖는 기회를 만들곤 한다. 다른 이름으로 여행이 그것일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여행이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자기 거주지를 떠나 객지에 나다니는 일, 다른 고장이나 다른 나라에 가는 일 등을 말한다. 비슷한 의미의 말로 관광이 있는데 이는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 풍속, 사적 등을 유람하는 일이고 한다. 딱히 구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대상을 돌아보는 동안 무엇에 중심을 두느냐가 아닐까 싶다. 즉, 여행하는 동안 나를 제외한 대상에 주목하는 것이 관광이라면 대상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주목하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몇 해 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시간을 흘려보낼 권리’라는 주제를 여행이라는 테마를 통해 알려주는 책을 통해 여행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 일이 있다. 최갑수의 ‘목요일 루앙 프라방’(예담 2009)은 바로 여행을 통해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리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 아닌가 싶었다. 최갑수는 라오스의 한 도시인 루앙 프라방에 머물며 스스로에게 쉼의 시간을 주었다. 그 쉬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돌아 본 심정을 글로 옮기고 엮어 책으로 발간 한 것이다. 

정의한의 이 책 ‘늦게 와서 미안해, 라오스’는 최갑수가 방문한 루앙 프라방이 있는 라오스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여행하며 보고 듣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두 책의 저자가 보여준 여행 일정은 같지 않지만 같은 곳 라오스의 루앙 프라방을 방문했다는 점에선 유사점이 있다. 하지만, 정의한이 보여주는 루앙 프라방과 최갑수의 루앙 프라방은 달라 보인다. 같은 사람이 같은 곳을 다시가도 똑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서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방문한 느낌을 봐도 여전히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 

최갑수에게 루앙 프라방은 스스로에게 ‘쉼, 머뭄’의 혜택을 주고자 했다면, 정의한에게 라오스는 대상과 자신의 교감 속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길이 아니라 대상을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으로 느껴진다. 하여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방문하지만 다른 곳을 방문한 것처럼 달리 보이는 이유가 이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정의한의 시각을 통해 바라보는 라오스는 독자인 나에게도 대상으로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행일정의 거점 도시를 방문하고 처음으로 하는 일이 하루 이틀 머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행자에게 머물 공간이 주는 마음의 안정감의 가치를 희석할 마음은 없지만 유독 머물 공간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의한의 라오스 여행기는 독자인 나에게는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이 여행기에는 라오스의 낫선 풍경이 주는 자연환경의 매력이 뛰어나게 묘사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라오스 사람들의 삶의 향기를 전해주는 것도 인색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 정의한은 무덤덤한 눈으로 그저 흘러가는 대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전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하기에 백번 양보해서 여행자의 마음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스스로를 위안해 보기도 한다. 

‘넌 지금 단지 여행을 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뿐이다.’라고 수없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저자가 붙인 이 책 제목이 ‘늦게 와서 미안해, 라오스’다. 늦게 와서 미안할 정도로 라오스가 매력적인 나라인지 이 여행기를 통해서 저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는 한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 거려진다. 이 책을 삐딱하게 읽은 나만의 느낌이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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