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김현 지음, 산제이 릴라 반살리 외 각본 / 북스퀘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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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명의 존엄을 넘어선 그 무엇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을까? 살아가다보면 무엇인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있다. 하지만 그런 소망은 때론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거나 묻히고 만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이루려고 하는 것이 또한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이루고 싶은 무엇을 가진다는 것은 꿈을 가진다는 말 일 테니까? 꿈이 사람의 삶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바꾸는지 그 꿈을 향해 질주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그렇기에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이 무기력하고 허무한지도 충분히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그것과는 다른 꿈을 가진 것이라면 어떨까? 꿈은 희망, 설레임, 미래 등과 결부되어 또 다른 삶을 충족시키는 일이다. 이런 것과 정반대의 꿈을 가진다면 어떨지 짐작도 못하는 일이 있다. 보통의 그것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꾸지 않을 꿈이기에 더 간절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 ‘청원’은 바로 자신의 목숨을 마칠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간절하여 국가에 청원할 정도로 말이다. 타고난 생명을 스스로 결정에 의해 마무리하고자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선 ‘청원’이란 국어사전의 개념으로는 ‘국민이 국가기관에 대하여 일정한 사항을 문서로써 진정하는 것을 말한다. 국민은 국가기관에 대하여 일정한 희망이나 의사를 문서로써 제출함으로써 권리의 구제·위법의 시정 또는 복리증진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볼 때 사회적 규범이나 법률로 허락되지 않은 무엇인가에 대한 용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청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다.

 

몇 년 전 ‘안락사’라는 말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생명을 의도적으로 끝내게 한다는 것이다. 한 환자에게 그 안락사가 실제로 허락되어 행해졌다. 이를 둘러싸고 찬, 반 양론의 말들이 많았던 것이 생각난다. 이 소설 ‘청원’이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안락사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잘나가던 마술사, 그것도 최고의 마술사에게 허락된 멀린이라는 호칭을 받은 마술사가 사고로 인해 목 아래 부분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온갖 의학적 시술을 통해 치료를 했지만 현실적으로 회복 불가능이라는 확정판단을 받았다.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는 삶을 타인의 도움으로 연명한 시간이 14년이다. 그사이 자신의 마음을 담은 수기를 출간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늘 그의 마음 속에는 이제 그만 이 삶을 마칠 수 있길 희망하는 것이다. 그것을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국가에 ‘청원’을 냈다. 바로 스스로 목숨을 마칠 수 있도록 국가에서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찬, 반의 여론이 팽배하지만 법원은 그의 청원을 기각한다. 다량한 노력을 하지만 상소심에서도 기각 당한다. 이제 마지막 결정을 스스로 내리게 되는데 그를 보내냐 하는 친구와 지인들은 어떤 마음일까?

 

‘췅원’은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절박한 심정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청원에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숭고한 사랑의 마음이 늘 함께 한다. 그의 친구들뿐 아니라 1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곁을 지켰던 사람과의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있다. 그래서 더욱더 절절함이 느껴진다.

 

영화 ‘청원’을 소설로 새롭게 바꿔 출간한 것이라는 점은 어쩌면 영화에서 얻은 느낌을 눈으로가 아닌 상상 속에서 재현하는 것이기에 절박함에 대한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가에서 안락사를 인정하는 나라가 얼마나 되는지 모를 일이지만 이 문제는 법률로 정해진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넘어서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선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아내고 있어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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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의 루브르
박제 지음 / 이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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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고 따로 읽어내는 그림이야기

사람이 몸의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하는 모든 대상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인식하는 대상을 자신이 주목하는 시각에 의해 재구성하고 그를 근거로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공감을 받을 때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여 한 시대를 대표하는 표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포함하여 자연을 인식하는 내용이나 방식 또한 구전되어온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그 대상이 되곤 한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창작활동의 산물인 그림, 사진, 시, 소설, 음악 등은 그렇게 대상을 인식하고 그 속에 창작자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들이 각각의 영역에 따라 표현되는 방식의 차이로 나타난 모습이다. 이러한 창작물에는 창작자가 담아놓은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다시 대상으로 삼을 때 이 대상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해석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는 반복되거나 읽혀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때의 이야기는 원작자의 의도와 공감을 이루거나 또는 전현 다른 이야기가 될 때도 있다.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실례를 그림을 해석하고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사람들에 의해 화인하게 된다. 박제의 ‘오후 네 시의 루브르’는 그림이라는 대상이 원 창작자가 모티브로 삼아 그림 속에 담은 이야기와 그 그림을 보는 작가가 읽어내는 이야기를 동시에 비교 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대상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대상을 읽어내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책 ‘오후 네 시의 루브르’는 저자가 프랑스 왕가의 궁전이었다가 예술품을 소장한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그림들 가운데 선별한 70여점의 그림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는 책이다. 30여년을 프랑스에 거주하며 저술과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는 빈번하게 찾은 루브르에서 자신이 보고 경험한 그림의 세계를 화가들이 살아온 실제 생활을 바탕으로 그림에 얽힌 이야기와 그 그림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실들과 출처를 밝혀 상세한 해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선정한 70여점의 그림을 일정한 주제로 다시 나눈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을 그리다’의 초(肖)는 초상화를 중심으로 살피고 있으며 ‘거친 세상을 그리다’의 속(俗)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보여 지는 모습을 주로 담았으며 ‘바깥세상을 그리다’의 풍(風)은 배경이 되는 자연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며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을 그리다’의 성(性)은 성을 주제로 한 인물군상을 담았고 ‘영원한 어머니의 슬픈 아들을 그리다’의 성(聖)은 기독교의 내용을 담은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렇게 네 가지 큰 분류로 작품들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화가들의 그림들에 관한 내용을 읽어가다 보면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각에서 표현한 그림들을 만나게 된다. 그림을 그리게 된 원 이야기는 같은데 화가들은 그 속에서 자신이 주목하는 스토리를 재구성하여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렸다. 이는 대상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자신이 주목하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으며 이런 과정 속에 예술가들의 창작의 자율성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뿐 아니라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읽어내는 데이도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예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빗장’이라는 그림을 읽어내는 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저자 박제는 이 빗장에 대한 해설에서 그림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열정적인 사랑이 끝난 후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읽고 있으나 같은 그림 빗장을 다른 이야기로 읽는 사람도 있다. 아트파탈(휴먼아트, 2011)에서 빗장에 대해 이연식은 이제 막 사랑을 나누려는 주인공들이 빗장을 잠그려는 모습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같은 화가의 같은 그림을 두고 읽어 내는 이야기가 차이를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가인 화가가 그림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화가마다 다르듯 동일한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이야기로 읽어 내고 있다. 이는 화가가 그림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그림을 대하는 관람자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어 그림을 보는 재미만큼이나 책을 읽어가는 재미가 좋다.

 

400여 페이지를 훌쩍 넘어가는 제법 두꺼운 책이지만 부담 없이 읽히는 또 다른 점은 선명한 도판을 보는 재미에다 저자의 개인적인 관점이 곳곳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일지라도 그 작품을 대하는 저자의 솔직한 심정의 표현이 곧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관객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와 통하는 것이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곳 루브르 박물관처럼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미술관이 있고 그곳이 소장하는 예술품을 관객들과 공감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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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파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아트파탈 - 치명적 매혹과 논란의 미술사
이연식 지음 / 휴먼아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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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어느 사회나 어떤 시대나 금기사항은 있었다. 사회적 규범이나 법률로 하지 말아야 할 것, 해서는 안 되는 것 등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마치 국방부에서 작성한 읽지 말아야할 도서 목록에 올라온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일처럼 말이다. 금기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음란’, ‘폭력’ 등이다. 이것들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금기시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합의된 이유일 것이다.

 

‘금기’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에 의하면 ‘종교적 관습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접촉이나 언급이 금지되는 일’이라고 한다. 또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이 금지되는 것에는 행동과 말 양쪽을 포함하며 터부(taboo,tabu)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금기의 기준이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기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위의 말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권위나 권력을 가진 측에서 그 권위나 권력을 지켜가려는 의도가 다분하게 들어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 금기는 사회적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범위나 대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창작자의 자유의지나 자율성이 중요한 덕목이 되는 예술계 특히 미술이나 영화 등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이 영화가 아닐까 한다. 19세 관람가능이라는 등급을 전해두고서도 화면에 이상한 처리를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역사적 맥락을 살펴 그 현상을 파헤쳐 보는 책이 이연식의 저 ‘아트파탈 : 치명적 매혹과 논란의 미술사’다. 미술은 애초부터 ‘음란’하기 위해 존재했다고 전재하며 동서양의 미술작품 속에 나타난 누드 작품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살피고 있다.

 

저자는 이를 위해 먼저 음란함에 이르게 되는 생각의 도구들인 알몸과 성기 등에 대해 살핀다. 절정에 대해 살핀다. 또한 종교 속에 나타난 음란함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성과 성에 관련된 시각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비교 분석한다. 세상의 근원, 올랭피아, 풀밭 위의 식사, 레다와 백조, 여인숙에서, 빗장 등의 작품이 저자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팜 파탈’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춘화’를 통해 동양의 한국, 중국, 일본을 비교하는 점이다. ‘팜 파탈’은 여성의 성을 매개로 남자들을 몰락시킨다는 점인데 ‘유딧과 살로메’를 통해 다르게 나타나는 여성의 성을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춘화는 성적인 생각에 이르게 만드는 장면 묘사가 중심인데 한중일 삼국의 춘화에 나타나는 차이로 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 춘화에는 키스는 물론 성기를 제외한 몸의 다른 부분을 적극적으로 애무하는 모습도 없다. 이는 이들 나라의 문화적 차이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지만 춘화가 남아 있는 절대적 수량에 의해 다 살피지 못하는 점도 있다는 것이다.

 

서양미술의 역작이라고 평가되는 여러 가지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여성의 누드가 포함되어있다. 신화나 전설, 성서 이야기 등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 속에 나타난 누드는 무엇이며 이런 표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자는 음란함의 기준이 '공식적인 영역'에서 인정할 수 있느냐, 아니면 '비공식적인 영역'에 머무르도록 해야 하느냐에 따라 각 시대의 기준이 달랐다고 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하면 산화나 종교화에 등장하는 누드는 당시 시대상에 의해 허락된 부분과의 타협의 결과로 보고 있다. 이후 19세기 현대 미술로 접어들면서도 공식적인 부분과 비공식적인 부분에 대한 입장과 견해에 의해 달라져 왔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창조적 활동을 유난히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도 금기는 존재한다. 금기의 기준이 저자의 말대로 ‘비공식적 영역’이라는 경계에 한정될 경우 대부분 인정된다. 하지만, 미술이나 영화 등 표현 예술의 경우 비공식적 영역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예술가의 창작물이 대중과 호흡하지 못한다는 것은 예술의 영역을 극도로 제한하는 일과 관련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개인적 영역에 국한되었던 금기의 영역을 비록 서적이라는 형태일지라도 공식적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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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2-0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기를 공식적인 영역으로 확장한 책이라니, 무척 흥미로운걸요? `금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흐물흐물거리는 굴이에요. 예전에 어떤 광고에서 소녀가 굴을 먹는 장면이 있었는데, 기독교 재단에서 격렬하게 비판했다고 하죠. 늘 한 구석에 존재해왔지만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던 금기에 대해 어떤 서술을 했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네요. 추운 겨울날, 살포시 들렸다 갑니다 :)
 
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 - 이순구의 역사 에세이 너머의 역사책 5
이순구 지음 / 너머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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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 한다
고등학생 아들이 어머니를 죽였다. 죽은 어머니를 집안에 방치하고 부패되어가며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창문을 열고 문틈을 막았다고 한다. 무슨 기막힌 사연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수사결과는 의외다. 학교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자신을 억압했다는 것이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요인이라고 한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 참은 잘못된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혼란스럽다. 그 혼란스러움 속에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실종과 가족의 해체가 가져온 사회적 파장을 감당치 못할 만큼 우리 사회의 혼란스러움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해방 후 사구문화의 도입과 더불어 산업화의 진행과 맥을 함께하며 가족의 해체는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전통적 가치관의 출발점이었던 가족의 해체가 가져온 사회적 파장은 다양한 현태로 표출되었지만 그것이 전통적 가치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아한 오늘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사회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의존도, 가족 구성, 부부사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친밀도 등을 볼 때 가히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전통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삶을 영위했던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사이의 갈등을 넘어 새로운 가치관의 정착에 의해 어느 정도 그 방향성을 찾아가는 듯하다. 

그렇다면 수 백 년을 이어왔고 현대인의 의식구조 속에 아직 남아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키는 가족에 대해 역사 속의 모습은 어떤가? 가장 가까운 역사 중 하나인 조선시대의 가족의 가치를 살펴 그 연유를 찾아보자. 이순구의 ‘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은 바로 조선시대 가족이 어떤 의미로 조선이라는 사회를 지탱하고 이어왔으며 그 유전자를 이어받은 현대 사람들과 사회 속에 이어지는지를 살피고 있다. 전통적 가치관의 실종과 가족의 해체에 직면한 우리들의 모습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잣대로 조선의 사회를 살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성리학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성리학이 조선을 이끌어온 학문과 사상적 기준이었다면 이 말은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 활동을 규정하는 것이었으리라. 하여, ‘수신’과 ‘제가’는 조선 사회를 조선이게끔 만들었음과 동시에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과 일상을 억매 풀어야할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조선을 지탱해온 한 축인 가족과 그 가족의 구성원의 일상 활동에 주목한다. 저자는 남겨진 기록 중 개인의 일기를 중심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구성하거나 일상의 모습을 살피고 있다. 적처와 적자, 종부, 종손, 양자, 서얼, 첩, 기생 등 가족의 구성과 가족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는 이러한 키워드를 쫒아 조선 시대 가족을 만날 수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21세기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의 근원에 대해 알 수 있다. 결혼을 ‘장가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나, 가족 내에서 조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지금도 남아 있는 그 흔적과 만난다. 조선이 건국되고 그 법률적 체계를 가져왔던 중국의 ‘대명률’ 보다 더 강화된 남성중심의 사회 구성이 구축되게 된 상황도 살필 수 있다.  

또한, 저자의 ‘도덕성’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수많은 열녀를 만들었고 가치판단의 기분으로 작용했던 도덕성이 오늘에 와서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는 도덕성의 강조로 인한 사회적 폐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에서는 수긍이 되나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도덕성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문이 든다. 특히,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비교에서 능력을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야기 한 경우라면 더욱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다.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가치관으로 변해야 한다지만 그래도 지켜가야 할 명제는 있을 것이다. 

‘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에서 만나는 조선의 가족은 의외성을 담보하고 있다. 이 의외성은 내가 살아가는 현 사회와 수 백 년 전의 사회를 비교하면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의외성으로 인해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관을 깊이 있게 살피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은 그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에서도 가치 있는 시각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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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치유하는 마음 여행 - 진아眞我 만나기 워크북
서광 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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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를 찾아가는 길
나의 불교에 대한 이해는 그리 많지 않다. 우연히 방송광고를 통해 불교대학을 접하고 불교의 교리에 대한 흥미에서 불교대학에 등록하고 2년여에 걸친 시간을 함께했다. 불교교리를 배우는 도중 유식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대학에서 공부한 심리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느낀 것이 유식이라는 분야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불교용어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배워가는 동안 유식이 곧 사람의 마음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다양한 형태의 수행과정을 통해 스스로 체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유식은 그리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야가 아님을 느낀다. 나를 포함한 세계와 나의 만남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가 그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이를 일아 간다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음은 굳이 불교의 유식이 아니라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바다. 하지만, 내 것으로 알고 있는 몸과 마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인식의 차이가 어떤 과정을 통해 내 안에서 일어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자아를 찾아가려는 사람 모두에게 무척이나 흥미 있는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흥미와 관심은 마음바로알기나 요가, 수행 등의 형태로 모습은 다르지만 자신의 마음 찾기에 관심을 가지는 형식들은 많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이해에 앞서 자신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으로 보기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보인다. 이 책 ‘나를 치유하는 마음 여행’은 바로 그 마음 찾기와 불교의 유식이라는 분야가 구체적으로 만나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의 저자 서광 스님은 자신의 수행과정에서 얻은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찾기에 올바른 방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이기에 자신의 마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재되어야 한다. 바로 그 마음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보고 올바른 마음 찾기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내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피고 마음을 찾아가는 주요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다음으로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유식과 유식 30송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이에 기반 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이 자신을 포한한 외부적 작용에 의해 받게 되는 고통에 대한 통찰을 통해 이를 극복하며 참 나를 찾아갈 힘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저자 서광 스님은 그동안 수많은 경험을 통해 이러한 마음 찾아가는 수행 과정에서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어 더욱 어렵게 만드는 수행과정에 대한 직,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힌다. 이론적 제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중요성과 실천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이 점이 다른 책들과 이 책을 가르는 기준이며 실천을 중시하는 저자의 시각이 잘 나타난 점이라 생각 된다. 하지만, 마음 찾기가 쉽지 않듯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유식이라는 분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닌 듯하다.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말뿐 아니라 불교 교리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에 만만치 않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시켜 놓은 마음 여행 자습서’라는 이 책에 대한 설명이 쉽게 다가오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환경을 포함하여 스스로 갖는 인식에 의해 현대인들은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에 빈번하게 노출된다. 이럴 때마다 매번 그 고통에 영향을 받아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당장 내가할 수 있는 무엇이 분명 있을 것이다. 외부상황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고통을 느끼는 강도와 횟수는 줄어들지 않을까? ‘나를 치유하는 마음 여행’는 이 물음에 일정정도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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