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 테마가 있는 역사기행, 태백산에서 파진산까지 그 3년간의 기록
박기성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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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천 년 후 다시 현장을 가다
수십 년 전, 나의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이 많은 사람들을 연사의 현장으로 안내하고 역사적 사실과 현실의 자신을 이어가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또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책을 통해 그날을 상상해보거나 정통역사서를 공부하는 방법도 그것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렇게 역사를 가까이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통해 접근하는 역사는 당시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이해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역사가 자신과 무관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역사로 접근하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선 대단히 의미 있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최근 한권의 책에 주목한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이라는 이주한의 저작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인 식민지사관과 민족사관의 대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론권력의 지배적인 조선후기에서 그 권력이 조선총독부 권력으로 이어지고 다시 미군정의 핵심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는 시각에 대한 비판을 주로 담아내고 있다. 이는 역사를 볼 때 무엇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한다.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되 당시 시대적 상황과 비교분석하며 종합적으로 살피는 자세가 필요함도 더불어 제시한다. 또한 역사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사라지며 기록에 남는 것이 전부 일 때가 많다. 하여, 역사를 읽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충분히 발동해야 하는 상황과 직면하게 된다.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는 바로 그 역사를 읽는 사람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펼쳐지는 지를 잘 알려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잡지 ‘사람과 산’에서 책을 만들어온 경험을 살려 ‘삼국사기’(1145, 고려 인종 23년)에 나오는 역사적 현장을 답사하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삼국사기의 맥을 살핀 결과를 모은 책이다. 그 기반은 삼국사기로 삼았다. 저자 박기성이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기본서로 삼은 것은 ‘삼국사기’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며, 정사라고는 하지만 편찬시기가 고려시대로 이미 몇 백 년 지난 시대의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사실에 따른 한계점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고 할 수 있는 분야의 일을 찾아서 하기에 글 속에 즐거움이 묻어있다. 불충분한 사료의 기록, 달라진 지명과 변한 들과 산천으로 정확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저자의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상황이 책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역사계에서 정사로 자리매김한 삼국사기를 전적으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한 역사기록이지만 바로 삼국사기를 기반으로 현장을 발로 누빈 결과다. 이런 상황은 전문 사학자로 고증을 해야 할 의무를 가진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저자의 발품과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순간도 매력적인 측면이 있지만 또 하나 이 책이 가지는 흥미로움은 ‘궁화운홀>궁불은홀>활불은홀>활벌성? 궁화운홀의 화를 불>벌로 읽으면 궁벌성이나 활벌성이 된다’ 처럼 단어의 변천에 대한 저자의 추적이다. 이렇게 상상력을 동원한 저자의 발굴의 노력에 힘입어 삼국사기의 기록을 확인해 간다. 더불어 삼국사기의 불완전한 틈을 메우고자 활용하는 ‘일본서기’에 대해 저자의 태도다. 일본서기가 날조된 기록이라고 전재하면서도 일본서기의 기록을 적극 수용하는 듯 보이는 태도에 의구심이 일기도 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로써는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기가 버거운 점도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연맹, 왜 등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흐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고 이 책을 따라간다면 보다 현실적인 흥미가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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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2 - 노르망디의 코리안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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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
역사의 특정한 시기에 주목하는 이유가 뭘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해결되지 못한 과제가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시각을 달리하면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그 시대를 주목하면 자신들이 가진 무엇을 읽어버리기라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과거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시도 자체를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일제침략 시대는 그럴지도 모른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편에 서서 같은 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살아 그때 얻은 권력과 부를 통해 오늘도 당당히 살아가는 세상이니 말이다. 

과거를 올바로 청산하지 못한 관계로 현실에서 만나는 모순의 많은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발목이 잡힌 우리는 그것을 알지만 해결할 힘이 없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 힘을 이용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묻어두자고 한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못한 과거는 그대로 있을 뿐이다. 해결될 날이 오기를 기대라며 말이다. 

‘아버지의 길 1’은 주인공 김길수의 파란만장한 여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무슨일이 일어나더라도 살아남아 아들이 있는 조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대 절명의 과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일본과 소련의 전쟁에서 소련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갇혔을 때까지만 해도 그 다짐은 현실의 고통을 이어나가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상 속에서 전쟁이 주는 인간성 말살을 온몸으로 겪으며 삶의 의미를 잃어가게 된다. 살아남아 조선으로 돌아가 아들을 만나야 한다는 신념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점점 무너진다. 하지만,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돌아가야 할 조선에 있지 않겠냐는 고려인의 이야기에 희미해져 가는 신념을 다시 갖게 된다. 소련군의 일부가 되어 독일과 전투에 참여하면서도 이제는 자신이 돌아갈 조선과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보고 싶고 만나야만 하는 아들과의 대화는 현실을 이겨가는 힘으로 작용하지만 독자들에게는 가슴 아픔을 전해주는 전달자로 등장한다. 전쟁, 죽음, 살인, 조국, 독립 등과 같은 이념은 사라지고 오직 가슴 속에서 울리는 슬픔만이 남았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아버지의 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다수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터로 끌려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죽을 목숨인지 알면서도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사람이 가지는 뜨거운 마음을 나눈다. 권력과 부에서 소외된 그들만이 살아가는 방식일지라도 언제 어느 때나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보여주는 인간성의 발현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최대한의 행복을 구하려는 노력은 인간으로서의 본능이자 권리이자 스스로에 대한 의무야.”라는 외침은 그런 인간이 보여주는 한 측면이 아닐까? 시대의 흐름, 민족의 독립, 전쟁과 같은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다양하다. 최대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지만 행복의 가치를 무엇에 두느냐는 사람에 따라 달라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  

인간의 가치는 바로 자신이 살던 시대의 시대정신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가치를 말살하는 환경에서도 그 가치를 빛나게 하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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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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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닌 우리 모두의 역사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니다. 미약하게나마 그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생존해 있다. 가뭄에 계곡물이 모이듯 긴 시간을 두고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서 겨우 듣게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직접 겪었던 일이지만 이렇게 외면당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른 것이 아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찌된 것인지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 받았다는 사람이나 정부기구 역시 이웃집 불구경보다 못한 처사를 보여준다. 왜 그럴까? 잊고 싶은 기억이 때문인지, 아니면 부정하고 싶은 과거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은 지난 시간이고 또한 그것은 우리 모두의 시간이다. 

역사교과서 왜곡, 정신대 할머니, 독도문제 등 한일 양국 간 현재 진행형의 이러한 문제의 출발이 바로 일제침략기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현안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 또한 지난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모든 것의 중심에 청산하지 못한 이제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이재익의 ‘아버지의 길’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사라지고 있는 우리민족의 뼈아픈 과거를 다루고 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항일운동, 독립무장투쟁,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동포들의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다. 저자 이재익이 밝힌 바에 의하면 ‘아버지의 길’을 쓰게 된 모티브는 2005년 한 방송사에서 기획한 ‘노르망디의 코리안’이라는 방송이라고 한다.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우리의 근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실을 슬프게 그러내고 있다.  

김길수, 조선에서 태어나 제2차세계대전의 격전지 노르망디 전투에서 독일군으로 참전하여 미군의 포로로 잡힌 사람이다. 연합군의 승리를 전하는 사진 한 장 속 인물로 조선사람이 어떻게 그곳에서 포로가 되었으며 더군다나 독일군으로 참전하게 되었을까? 그는 어떤 인생역정에 대한 호기심은 매워가는 과정이 바로 이 작품에 담겼다. 김길수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는 과정에 바로 우리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역사의 가혹한 수레바퀴가 있으며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한 맺힌 그리움과 절규가 녹아 있다. 

일제의 침략만행이 극한으로 치닫던 1938년 9월, 한때 함께한 무장독립투쟁의 동지였던 아내가 자신과 아들을 버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키우며 대장간에서 힘겹지만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길수는 여덟 번째 생일을 맞은 아들 건우에게 줄 피리를 만들어 조금 일찍 집으로 가던 길에 조선인 징용병을 찾던 스기타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열차에 태워진다. 열차 안에는 비슷한 처지로 끌려온 사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스스로 입대한 사람, 장남인 형 대신에 입대한 열네 살의 어린 아이, 힘은 장사지만 애끓는 슬픈 사랑의 사연을 간직한 청년 등이 타고 있다. 온갖 고난을 뚫고 생사의 순간들을 넘어가며 이들은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면서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한편, 독립운동을 위해 산으로 갔던 길수의 아내는 게릴라 무장투쟁에서 혁혁한 성과를 보여주며 성장하지만 탈영병으로 신분을 위장한 배신자에 의해 일본군 포로로 잡히고 만다. 또한 슬픈 사랑의 주인공 역시 그 사랑하는 여인이 같은 부대안에 위안부로 끌려 온지도 모르고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추운 만주벌판 일본군 막사에서 군사훈련으로 생활하던 조선인 징병자들에게 처음 전투에 돌입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소련과의 전투가 그것이다. 1부까지의 이야기는 서두에 불과한 것일까? 아직 주인공 김길수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의 행로가 보이지는 않는다. 

처음 접하는 이재익의 글에서는 감정의 흐름이 최대한 억제되고 있다. 슬픈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 그 슬픔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흐려지는 것을 아는 것이리라. 슬프지만 억제된 감정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깊이와 폭을 증폭시키게 만들어 한층 감정의 깊이를 더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의 글이 가지는 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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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사람공부 - 사람을 아는 것의 힘 정진홍의 사람공부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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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 되기 위한 길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이런저런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 사회적 존재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 그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남과는 다른 무엇을 발휘하여 그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자신의 장점을 찾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남과 어울려 관계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사람 사는 기본방식이다.  

하지만,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모든 어려움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 받는 상처 중 가장 큰 상처는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라고도 한다. 일을 하는 도중 어려움은 버텨내면 되기도 하지만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어쩔 도리가 없이 감내해야할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어려움이다. 그렇다면 피할 수도 없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을 벗어날 해결책은 무엇일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결국, 사람들 사이로 더 깊숙이 더 친밀하게 들어가 그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 나와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사람을 나와 같이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 문제의 답을 찾는다면 결국 스스로가 다른 사람과 나와 구별될 수 있는 자신만의 장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내 삶을 꾸려간다는 것은 나 스스로 ‘나’되기 위함이다. ‘정진홍의 사람공부’ 역시 나로 나 자신에 대해 올바로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얻은 사람 이야기를 담아 놓았다. 저자가 자신을 알기위해 10여 년 동안 500여명을 알아가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해서 엮은 책이다.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로 우뚝 선 사람, 성공한 사람이라고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정상에 선 사람들을 직접 만나거나 책을 통해 만나면서 ‘사람공부’를 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가치, 기준, 방식 등을 찾아보고 그 안에서 그들이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을 탐구한다. 이러한 사람공부는 그 사람들에게서 무엇인가 배울 점이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주목하는 사람들은 세계 각지, 살아온 시대, 성별, 연령, 직업에 상관없다. 모두가 자신을 찾아가는데 스승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부터 시작되는 사람 탐구는 남미 혁명가 체 게바라, 우리나라 노래꾼 장사익, 재미 교포 이승복, 나탈리 포트먼, 한용운, 토니 휠러와 모린 휠러, 공옥진, 존 레논, 플라시도 도밍고, 송해, 인순이, 스즈키 이치로, 코코 샤넬 등으로 수없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려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또한, 사람 깊이 읽기를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이 나와는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집중적인 탐구를 하고 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자신이며 그 해결책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타산지석이라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공부해서 스스로 자신을 가꾸고 삶을 개척할 힘을 스스로에게서 찾자는 말일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만의 독특한 삶이 있듯 나 역시 나만의 삶을 꾸려나갈 힘, 그것을 찾아 사람공부에 매진한다면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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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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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
바야흐로 융합과 통섭이 강조되는 시대다. 수천 년 전, 인간 삶의 근본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상가와 철학자를 비롯하여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학문을 하며 통합적 시각을 기반으로 삼아 연구하고 토론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학문을 전개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역사의 시간을 더해가며 학문에는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위해 세분화 되어왔고 그 결과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로인해 사람들의 삶은 물질적으로 보다 풍요롭게 되었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런 학문의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이 예전보다 풍요로워졌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간소외현상으로부터 권력에 의한 인간성 말살, 부의 불균형 분배, 전쟁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노출되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데 있어 장애요소로 등장했다. 현대사회에 들어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학문간 벽을 허무는 융합과 통섭이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벽을 쌓고 경계를 강화하며 이를 넘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분위기 팽배하다. 학문의 도가 사라졌다거나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이러한 현상을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특히, 지난 과거의 오류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경우 사회 전반에 걸쳐 권력의 중심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결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맥은 유지되고 오히려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는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과거의 오류가 가장 심하게 남아 있는 분야로 교육계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일제 식민지시대 침략자의 의도가 관철된 정책이 해방 후 미군정으로 이어지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기에 국사과목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처럼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정책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 건제하는 것이리라.  

아집은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무기다. 지킬 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것으로 믿고 있던 것에 새로운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이해받지 못할 일이다. 더구나 학문하는 학자들 사이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의견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 학문하는 자세가 아닐까? 하지만 학문하는 사람들이 아집을 내 세우는 것은 학문을 포기하고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기득권을 지키고자하는 것 이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우리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역사에 대한 해석으로 학자들 간에 전면전을 치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중심은 바로 사관이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중심에서 중심으로 이어져오며 그 기득권을 유지 강화해 왔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기득권에 흠집을 낼만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들에 대해 기득권자들이 행하는 태도가 비판이라는 가면을 쓰고 폭력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바로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는 이덕일의 관점에 정병설을 중심으로 유봉학, 안대회, 오항녕 등의 비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습이다. 어떤 주장의 옳고 그름에 앞서 학문하는 학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보기 드문 모습이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세간의 관심을 집중하게 만드는 역사의 이야기고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나름대로 생각을 가진 대중들이 먾은 현실이다 보니 흥미를 증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양편에서 주장하는 이야기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는 무엇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전문자료나 사료에 접근이 용이하지 않고 더군다나 사료를 본다고 하더라도 그 맥락을 잡아가는데 어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반 독자들로써는 양자사이에 벌어지는 논고의 근거나 주장하는 바를 통해 살피는 것이 우선되는 것이리라. 상대편의 주장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어떤 시각으로 설득해 가는가를 보면 신뢰가 가는 편이 가려지게 마련이다. 

이주환 저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그간 벌어진 이덕일의 주장에 대해 정병설을 중심으로 유봉학, 안대회, 오항녕 등이 제기한 비판에 대한 비판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한중록’과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롯하여 이덕일과 안대회, 오항녕의 저서를 두루 살펴본 사람으로써도 구체적 사항에 들어가서는 어느 편에 서야할지, 어떤 사람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봐야할지 난감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들 저자들이 자신의 저서에서 말하는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에 대한 이야기와 서로 대치되는 주장을 비교하면서 살핀다면 무엇이 올바른 시각인지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주자학, 노론이나 한중록, 사조세자, 정조의 죽음 등은 어쩌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정립하는데 필요한 한 요소로 작용하는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통해 그보다 근본적인 것, 바로 이 양자가 대척점에 서 서로에 대한 칼날을 드러내게 만드는 근본에 대한 관심이 바로 그것이다. 노론에서 일제침략시대의 권력자 그리고 미군정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오늘에 이르며 권력의 중심에 선 사람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엔 분명 한계와 특정한 목적이 있다. 이 특정한 목적은 자신들이 선점한 기득권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는 말에 무게중심이 간다. 역사를 보는 것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재를 올바로 살기위해 반드시 해야 할 책무이기 때문이다. 이 책무를 방기하고 자신의 이해요구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학자들은 그들이 역사를 보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듯 역사는 그들을 기록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행해질 역사의 평가를 어떻게 감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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