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의 습격 - 먹거리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놀라운 기록
유진규 지음 / 황금물고기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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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를 둘러싼 논쟁의 현장을 가다

음식,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꼭 필요하다는 것은 육체의 생명을 이어가는데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으로서 음식만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까지 포함된다. 많은 사람들은 식도락을 즐긴다고 한다. 거창하게 식도락이라고 하지만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맛을 즐기기 위해 먹은 음식이 식도락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침치나 라면 하나라도 즐기며 먹는 것이 좋은 것이리라.

 

이러한 음식은 나라와 민족마다 독특한 특성을 가진다. 역사를 이어온 음식 문화 속에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고기를 주로 먹거나 야채를 주로 하는 식단은 사람들이 살아온 자연환경과 사회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그 나라와 민족에게 아주 적합하고 유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음식문화가 흩트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건대이후 산업사회에 접어들며 산업화, 세계화라는 흐름에 힘입어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패스트푸드로 일컬어지는 음식이며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리하여 세계적으로 비슷한 음식으로 통일화되어가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다국화 된 농축산물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물 중에는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키워진 농축산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적불명이며 어떤 경로를 통해 키워진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는 것이다.

 

이 음식이 문제라고 한다. 현대인들의 성인병이나 심장질환 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음식이고 이 음식에 대한 다양한 편견이 만들어졌고 그에 의해 우리의 음식문화가 영향을 받고 있다. 하여, 먹지 말라고 하는 음식은 날로 늘어나고 이러다보면 향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을 것인가? 안전한 먹을거리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SBS스페셜의 ‘옥수수의 습격’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음식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하고 있다. 옥수수가 문제라는 것이다. 옥수수라고하면 어릴 적 추억뿐 아니라 현대에도 훌륭한 간식거리가 분명한데 무엇이 문제라는 것일까? 옥수수가 문제라는 것은 옥수수로 만든 사료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 사료가 전 세계 가축들의 여물통을 점령하면서 그로부터 온갖 이상 현상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옥수수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종이, 마분지, 텍스타일, 접착제, 배터리, 세제, 코팅재료, 물감, 잉크, 크레용, 분필, 염료, 플라스틱, 아세트산, 살충제, 성냥, 유기용제, 화장품, 1회용 검과 접시’를 비롯하여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제품으로는 ‘맥주, 술, 탄산음료, 피자, 유아식, 캐러멜, 껌, 아이스크림, 햄, 식초, 치즈, 초콜릿, 사탕, 젤리, 잼, 땅꽁버터, 케첩, 시리얼, 식빵, 팬케이크가루, 과자, 콘플레이크 등 실로 다양하다.

 

그렇다면 옥수수의 어떤 성분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여기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지방산의 일종인 오메가-3 지방산과 오메가-6 지방산의 균형이 무너져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오메가-6 지방산은 체내에 지방을 축적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비만, 심장병, 고혈압, 알레르기, 불임, 폭력성 증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각국 여러 나라들을 직접 취재하며 각 나라의 농업실태와 가축을 생산하는 시설 등을 확인하며 예전에 초지였던 곳이 옥수수 농장으로 바뀌는 현장을 확인하며 이렇게 변화된 배경을 살핀다. 또한 의사들에 의해 기피식품인 고기나 지방 등을 적극적으로 먹으면서도 비만이나 알레르기 등 우리의 신체의 이상이 있는 부분을 개선한 사례들을 살핀다.

 

‘옥수수의 습격’에서 제기하는 음식의 문제는 균형의 문제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함유된 각종 요소를 적절하게 균형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우선 질좋은 음식재료가 생산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재배된 좋은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모든 인류가 풀어야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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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스캔들 - 내 심장은 그댈 향해 뛰고 있소
홍지화 지음 / 작가와비평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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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사랑이라 이름 할 것인가?

세상구경 중에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 불구경과 싸움이라고 한다. 그런 세상구경에 하나를 더한다면 남들의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어쩜 사랑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흔히 말하는 아가페 보다는 에로스가 더욱 관심을 끄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속내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지만 말이다.

 

사람들의 이러한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책이 선 보였다. 그것도 일반사람들이 아닌 유명한 거장들의 사랑이야기를 담았기에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는 이미 충족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름하여 ‘거장들의 스캔들’이 바로 그 책이다. 이미 인류의 연애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남자와 여자를 포함하여 여덟 명의 대 문호들을 거론하고 있다. 그 주인공으로는 빅토르 위고,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에드거 앨런 포,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그리고 그 유명한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그들이다.

 

이들 거장들의 사랑 이야기에서 저자 주목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고 그런 스캔들의 주인공들이 문학사의 큰 획을 그었던 대 문호들이어서가 아니라 특별히 주목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겉으로 드러나는 점은 거장들의 ‘연애’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애정의 행위’를 주요하게 살피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추구가 아닐까 싶다. 무엇을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거장들의 스캔들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보인다. 흔히 짝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마음이 그것 아닐까? 살아생전 겨우 두 세 번 본 것이 다이지만 평생토록 가슴에 담고 자신의 작품의 주제가 될 만큼 간절했던 사랑도 있다. 수많은 남자들의 삶을 파괴하기도 했지만 마흔이 넘어서야 첫 임신했던 살로메의 남성편력도 있고, 평생 동안 사랑을 찾아 다녔던 사랑중독증환자라 불러도 좋을 괴테,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랑도 있다. 무엇보다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만드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이야기에서는 현대사회에서도 수용하기 힘든 사랑의 모습이 보인다.

 

건강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서 육체와 정신이 분리될 수 있을까? 이 말은 남자와 여자 사이 우정을 이야기 할 때 주로 들먹이는 말이다. 인류가 보여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랑의 모습에서는 이 둘의 적절한 조화가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경우에는 지속적인 사랑을 꾸려나가기 어려운 점 또한 확인 시켜주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서로 진심어린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꽃이 열매를 맺을 때, 그것이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다.”라고 보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열매는 무엇을 의미할까?

 

거장들의 스캔들에서 보여 지는 사랑에서 그 답을 찾자면 ‘영혼의 자유’가 아닐까? 하지만 이 말은 지극히 관념적이다. 사랑이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기에 실제 생활에서 다양하게 겪게 되는 감정상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없다. 수수깨끼 같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사랑에서도 그것이 정답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 수만큼 사랑의 모습은 실재한다. 그 모든 사랑이 다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인간의 감정은 인간이 가지는 본래적 속성에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사회 문화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감정도 있다. 거장들이 숱하게 애정행각을 벌이는 대상이 유부남 유부녀인 것이 문화권에 따라서는 금기되고,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변하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감정의 표현도 달라진다. 그렇기에 사랑에 앞서 보다 접근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바라볼 때 각각의 존재를 나와 같은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 어쩜 이것이 저자가 말한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과 맥을 같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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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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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사상이 담긴 옛집을 읽는다

집이 사람에게 주는 가치는 무엇일까? 현실은 집이 가지는 본래의 가치를 생각하기 이전에 재산 증식의 일환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의미가 더 커 보인다. 언제부턴가 사람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이나 조건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맞는 집을 마련한다는 의미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보다 큰 평수, 역세권, 집이 있는 위치 등을 고르는 이유가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을 찾는 의미가 아닌 같은 크기의 집이라도 위치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현실을 반영하여 주거환경이 처한 조건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잘못이라는 것보다는 사람들에게 집이 주는 본래의 의미를 찾아보자는 생각이다. 집을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면서 집 장만이 살아가는 목표가 된 현실에서 집의 주인인 사람의 가치를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이다.

 

집이 가지는 사전적 의미는 ‘자연적, 사회적 침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여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건축물’이다. 이러한 집의 의미를 충실하게 살린 시대는 현대사회라기보다는 선조들이 살았던 지난 시대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지난 시대라고 하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비교적 가까운 조선시대를 의미한다. 그때도 일반 백성들은 집 한 칸 마련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여 여기서 이야기하는 집은 조선을 이끌어간 세력인 사대부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집은 주로 목재와 흙으로 지어졌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집은 대부분 이런 사대부들의 집이다. 우리가 옛집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집들이 선비들의 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바로 그러한 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을 이끌어간 주체 세력이었던 사대부들의 집들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집 주인의 독특한 세계관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집을 찾아내고 그 집이 담고 있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읽어 내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성향에 따라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삶의 지향은 일상생활에서의 몸가짐이나 자세뿐 아니라 주거지인 집이나 공부방의 역할을 했던 사랑채와 별채 등의 건축에도 반영되었다. 저자가 집을 읽는다는 의미가 바로 집에 담긴 그들의 사상을 엿보는 것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가이며 시인인 저자 함성호의 눈을 사로잡은 집들은 어떤 집일까? 독락당, 양동마을과 향단, 산천재와 도산서당, 고산 윤선도와 다산초당, 김장생의 임이정, 우암고택과 팔괘정, 윤증고택과 암서재, 남간정사 등이다. 이들 모든 건축물은 수 백 년의 세월을 이겨내며 오늘에 이르렀다. 세월 속에서도 집을 건축한 집 주인의 정신이 오롯이 살아있으며 후손들에게 집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역사적 흔적인 것이다.

 

집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보통의 경우 집을 비롯한 건축물은 본다는 의미가 맞을 것이다. 집을 본다면 무엇을 보는 것일까? 건축물인 집이 무엇으로 어떻게 지어졌는가가 우선이 될 것이다. 건축자재는 무엇이고 어떤 형태의 집이며 몇 칸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비롯하여 어떤 위치에 있는지 등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보는 것이리라. 하지만, 저자는 집을 읽는다고 한다. 이 읽는다는 점에 주목하면 같은 집을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관심을 가지고 읽어가는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건축물에 대한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을 느끼게 된다. 우선, 저자의 조선시대를 뚫어보는 역사적 지식과 학문에 대한 열정이 주목된다. 조선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지태해온 학문적 배경이 되는 성리학을 알지 못하고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역사학자나 사상가들을 넘어서는 혜안이 보인다. 하여, 저자의 눈에 보이는 집은 그냥 집이 아니다.

 

저자는 한국 건축사는 당대의 지배이념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변화 한다는 것이기에 양식사가 아니라 정신사로 읽어야 한다는 가설을 확인하는 과정이 이 책을 집필하는 동기였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집은 건축물 자체가 주목되는 것이 아니라 그 건축물과 자연이 함께 어울려지는 점을 동시에 봐야 한다고 한다. 하여 조선의 집은 어떻게 생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 위치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런 점을 주목한 책이기에 눈으로 보여주는 측면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집을 볼 수 있는 사진은 한정적으로 제시되어 있으며 그 사진 또한 독자들의 눈을 제한한다. 이런 구성은 집을 읽는다는 관점에 충실한 반영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글을 통해 머릿속에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자의 시각으로 볼 때, 퇴계 이황이 지었던 도산서당, 우암 송시열의 암서재와 팔괘정, 고산 윤선도의 보길도, 다산 장약용의 다산초당, 윤증의 고택 등은 그냥 일반인이 살아가는 살림집을 넘어 그들이 지향했던 학문과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긴 또 다른 세상을 구현한 것이다. 그렇기에 집이 위치한 곳이나 담장하나 대문이나 마당 등에 그들이 담았던 학문의 세계는 일상으로 회귀되어 구체화 된다. 저자는 이를 차분한 발걸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한 전문가의 눈으로, 옛 사람의 삶이 담긴 역사적 흔적을 찾아가는 역사적인 눈으로 때론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내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집에 담고자 했던 학자들의 학문과 세계관 그리고 조선을 이끌었던 사상가들의 사상사를 함께 읽는 재미를 전해주어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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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의 신체지도
샌드라 블레이크슬리 & 매슈 블레이크슬리 지음, 정병선 옮김 / 이다미디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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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관심으로 선택한 전공이 심리학이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있던 전공수업에 실망하여 도대체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대단히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심리의의 한 분야인 발달심리학이나 지각심리학이 바로 그 대상이 아니었나 싶다. 심리학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구체적 학문의 영역에 들어가면서 혼란을 겪게 된 사례다.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심리학 시간에 공부하고 있으니 어쩜 당연한 의문일지 모르지만 당시엔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겪으며 사람이 외부적 자극을 받아 이러한 정보를 적절하게 처리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는 결국 마음의 작용에 의해 행동을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에서 몸과 정신활동의 상호작용으로 그 사고의 영역을 넓혀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사람의 몸과 정신활동의 상호작용을 올바로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여전히 의문 속에 있는 것이 인지과정과 정신활동에 대한 것이다. 전문 학자들도 수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어 우리 몸이 가지는 신비를 하나씩 풀어가고 있는 점을 볼 때 대단히 어려운 부분이며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님을 알게 된다. 나의 이러한 관심은 일반인이 가지는 지극히 일반적 흥미를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뇌 속의 신체지도’는 뇌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던 샌드라 블레이크슬리와 과학 전문 저술가 매슈 블레이크슬리의 공동저작물이다. 이 둘은 모자관계라고 한다. 저자들이 주목하는 점은 마음과 몸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연결의 과정에 뇌 속에 신체지도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신체지도(Body Map)'란 우리의 몸과 내장 기관, 그리고 신체의 주변공간까지 모든 것이 뇌 속에 부호로 지도화 되어 있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지도 덕분에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실제 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자극과 환경의 변화에 적절한 결정을 하개 만들어 일상생활을 매끄럽게 영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신체지도는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상황의 변화나 조건이 달라지는 것에 영향을 받으며 적극적으로 이에 대응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하여 신체지도는 자라고 수축하고 변형되면서 우리의 필요에 부응하며 단순히 신체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주변의 공간으로까지 확장된다고 한다. 이를 확인하는 증거로 제시되는 것이 옷을 입거나 벗을 때, 자전거를 탈 때, 연장이나 도구를 사용할 때 등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뇌 속의 신체지도’는 현대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의 연구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분야의 실제 사례들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도록 이끌고 있다.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이 다른 정상에 서 있는 운동선수들과 아떤 차이가 있는지, 간질이나 자폐증 환자들이 보이는 증상을 해석하는 부분에서도 이를 설명하고 있다.

 

한 곡의 음악은 그 속에 다양한 기호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기호들이 상호작용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 몸도 각종 기관들이 이처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여 한 곳의 음악처럼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각기 영역이 충분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작용으로 우리 몸을 모든 것을 조율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 몸은 이해 불가능 한 것에서 과학의 발달로 그 베일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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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의 철학 - 언제 어디서든 거부할 수 없고, 상관해야만 하는 질문
마르틴 부르크하르트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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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럴까?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자

책과 나름대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에게도 철학은 낯설게 다가온다.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에 다양한 학문이 그렇다. 왜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일까? 혹 그동안 학문하는 사람들이 일반인들에게 학문과 관련되어 나름의 성을 쌓아두고 접근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해 본다. 사회의 어느 부분이든 자신들만의 고유한 영역이 존재하며 그 영역은 자신들뿐 아니라 이웃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정해주는 분위기와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니면 학문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표현하는 방식이 일반인들과 다소 차이가 있고 이러한 차이가 일반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러한 벽을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학문과 일반 대중 사이에 벽이 생기고 그로인해 편견이 날로 강화된다면 이는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학문의 영역이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동 떨어진다면 그 학문이 본래적으로 가지는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출발하여 그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해 가고 또한 사람들의 삶의 가치와 지향을 한층 높여가려는 것이 학문의 출발이라고 할 때는 더욱 더 그럴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의 철학’은 출발부터 학문에 대한 기존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있다. 특히,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거창한 이론이나 학설에 의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선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할만하다. 바로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도 지극히 당연하고 사소한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하면서 그렇게 당연하면서 사소한 것에 담긴 심오한 뜻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 안에 깃들어 있는 철학과 사상의 역사’다. 당연하고 사소하게 생각되는 키워드로 저자가 선정한 것들을 보면 금방이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알파벳, 동전, 하느님 아버지, 김나지움, 수사학, 진리, 법률, 십자가, 순결, 아르바이트, 시계, 세금, 개인, 자연, 역사, 진화, 섹스, 정보, DNA 등이다.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들 면면을 살펴보면 이러한 것들이 과연 당연하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저자가 당연하고 사소하다고 말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러한 것들은 동전이나 알파벳처럼 생활과 밀접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정치, 국가, 역사나 경제와 같은 다소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당연하고 사소한 것에 해당하는 키워드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그 말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근원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키워드의 원작자를 대부분 찾을 수 없다는 공통점을 이야기하면서 그 키워드의 의미가 담고 있는 본래의 뜻을 찾아 그 말의 어원까지를 살핀다. 그 속에서 자자가 주장하고 싶은 의미를 찾고 이를 통해 본래적인 사물이나 단어의 핵심으로 들어가고 있다. 철학과 사상의 근원에 대해 이렇게 사람들의 일상에 익숙한 것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이 사상가나 철학자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명제다. 이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분명하게 등장하지만 그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철학적 명제가 도출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며 마지막에 남는 것은 바로 철학이나 사상의 핵심을 담은 명제가 남는다. 이러한 명제는 수 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인간의 근본에 대한 유효한 질문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자자의 이러한 이야기는 당연하고 사소한 것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은 결코 아니다. 근본으로 시작점으로 찾아가 그 출발로부터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 있기에 그 시작점에서 보는 것은 진중하고 무거운 생각으로 연결된다. 바로 철학과 사상이 그것이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철학은 의문에서 시작한다고 전재했듯이 의문할 수 있는 사람의 ‘생각하는 능력’에 방점을 확실하게 찍고 있다. 또한 너무도 사소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 속에 그토록 깊은 사유의 결과가 담겨 있는 것인지 새삼 놀라게 된다. 하여, 우리 일상에 늘 익숙하게 접하면서도 그 구체적 실체에 접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생각의 습관을 돌아보게 만들기에도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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