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거의 10년이 흘러 칠레에서도 한국에서도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피투성이의 카니발‘에 대한 기억은 오늘도 내일도 우리를 저 깊은 곳으로부터 위협할 것이다. 이 작품들은 유약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암흑과 공포에서 눈을 돌리려는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잠시 들렀을 뿐인 이 작은 미술관에서, 예기치 않게 날카로운 자극을 받았다. 이런 미술작품을 일상적으로 제작하고 감상하고 끊임없이 악몽을 반추하면서 그리고 그것과 싸우면서 이 지역의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두 번의 세계대전, 나치즘과 유대인 대학살, 그리고 냉전에 의한 동서 분단이라는 역사를 겪은 독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역시 독일답다고 생각했다. 그와 똑같이 식민 지배, 남북 분단, 그리고 군사정권이라는 역사를 겪어온 조선 민족에게, 그 역사들과 길항할 미술은 있는 것일까? - P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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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에도시대를 열며 그가 지금의 도쿄 에도에 세운 도시계획의 원리와 배치, 건축 등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휴식을 취하며 사이사이 읽기 좋은 책.
재미있다.
무로마치의 헤이안 시대에서 에도 막부 시대로 넘어가는 역사적 배경과 에도의 지정학적 의미를 잘 전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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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국인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으시죠? 혹시 제가 당신이 평생 동안 만난 최초의 한국인이 아닌지요?"
그녀는 잠시 말없이 있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눈은 인공적이리만큼밝은 청색이었다. 그녀는 미소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했다.
"아니요." 단어를 고르듯이, 그녀는 천천히 대답했다. "실은 우리 마을에도 한국에서 양자로 온 아이들이 있어요. 스웨덴 전체로 따지면 상당수가 될걸요."
나는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았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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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위안싱페이는 중국 고전문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도연명집전주陶淵明集箋注』, 『도연명연구陶淵明硏究』가 눈에 띈다. 도연명의 작품 전체를 주해하고 도연명 연구에 권위가 있는 학자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에서는 후대 화가나 선비들이 도연명의 시를 제재로 그린 그림들, 그림에 붙인 발문들, 그 그림을 감상한 사람들의 글들, 그리고 도연명에 대한 추화시인 화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소명태자 소통이 그의 작품을 모아 『문선(文選)』에 몇 편 선록한 뒤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도연명을 활발히 그리기 시작한 것은 송대(宋代) 부터이다.

송(宋)의 이공린(李公麟)이 그린 2폭 「귀거래혜도(歸去來兮圖)」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그린 것이다. 이공린의 이 작품은 후대에 그려질 그림에 도연명의 모습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현존하는 도연명 관련 그림의 화법은 대체로 이공린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202p) 이공린의 작품으로 알려진 모사본 미국 워싱턴 프리어 미술관 소장 7폭 연명귀은도(淵明歸隱圖)는 많은 사람이 이 그림의 배경이나 도연명의 모습을 따라 그렸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국화, 소나무, 술은 도연명을 나타내는 것들로, 그림에서도 도연명을 이미지화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귀거래사(歸去來辭)와 관련된 그림은 원, 명, 청 시대로 가면서 그 원형을 따르다가 자유로워지고 다양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존하는 도연명 관련 그림의 화법은 대체로 이공린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서화가 중국 본토 보다는 타이뻬이와 미국에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워싱턴 프리어 미술관과 타이뻬이 고궁박물원이 그 소장지의 예다. 이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언젠가 가서 직접 보고 싶은 그림들이 보인다.

이 책을 보는 즐거움은 그림을 통해 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 흥취(興趣)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림과 함께 그림의 제재(題材)가 된 시구를 옆에 써놓고 낙관을 찍는다. 글씨도 한 편의 예술이었으니 그 글씨가 흘러간 자취와 낙관의 모양과 찍힌 자리, 남겨놓은 여백은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을 완성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낙관의 주인은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힘을 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그림에 붙인 발문들을 보며 시대를 흘러 유명한 문사들을 거쳐 간 오딧세이를 상상하게 된다. 옹방강, 소동파 등의 감상자들의 이름을 마주하는 즐거움이 있고, 수장인(收藏印)을 남긴 여러 후대인들의 손길과 숨결도 느낄 수 있다. 건륭감상(乾隆鑑賞)이라는 수장인은 청대(淸代)에 도연명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분명 닭이 그려져 있지 않은데 소리가 들리는 듯한 그림, 술 취한 사람과 취하지 않은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데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 모습, 세 사람이 고개를 젖히면 웃고 있어 그들의 옷차림과 신발까지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는 발문이 붙여진 그림, 도대체 지필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과 글을 읽는 아비의 모습, 술 취해 부축을 받는 도연명의 모습.…… 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 그림들이 많다. 한편 망중한을 즐기고, 농사일 하고, 벗을 그리워하는 그림에서도 도연명의 자태는 표표하다고 말한다.

「도화원기(桃花源記)」는 도연명은 진나라의 유민(流民)이 산속에 들어가 마을을 이룬 것으로 썼으나 후대로 갈수록 사대부들에 의해 이상향으로 바뀌고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역시 그 영향을 받은 그림으로, 이 책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림뿐만 아니라 많은 문사(文士)들이 도연명의 시에 화운(和韻)한 화도시(和陶詩)를 소개하고 있다. 눈에 띈 사람들은 소동파나 이백, 조맹부, 건륭제였다. 동파(東坡) 소식(蘇軾)은 도연명의 시를 좋아했고 배우고 많은 화도시를 남겼다고 한다. 건륭제가 도연명의 빈사(貧士)에 화운한 시를 보며 과연 한 나라의 황제가 가난한 선비의 마음을 알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명나라의 선비였던 조맹부가 청나라에 출사한 자신을 향한 비난에 도연명을 그려 대답했다는 것을 보니 모든 시대와 사조, 모든 처지마다 공감되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다. 동파(東坡) 이후로도 도연명의 작품 수보다 훨씬 많은 화도시들이 창작되어져 왔다.

다음은 소식의 화도시이다. 참으로 도연명의 신운(神韻)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
손님 하나 내 집 문 두드리고
마당 앞 버들에 마을 매었네.
텅 빈 마당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닫힌 문 앞에서 한 참 서 있네.
주인은 책 베고 누워
꿈에 평생의 벗을 만나고 있네.
갑자기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술잔을 쏟아버렸네.
허겁지겁 옷 입고 일어나 손님께 사과하니
꿈에서 깨어도 모두 실례하여 민망해라.
그예 고금사를 이야기하니
답하지 않아도 얼굴 정다워라.
나에게 어디에서 왔냐 하기에
무하유의 땅에서 왔다고 말해주었네.

-264p


1,600여년이 지나도록 많은 도연명을 그린 그림과 화도시가 창작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당연히 그의 글 안에는 오랜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의 정서를 끌어올리고 마음을 달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귀거래사」와 「도화원기」는 화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문학 제재이다. 출사한 선비들에게는 동경할 만한 내용일 것이다. 복잡다난한 생활 속에서 망중한의 한 때를 동경하는 것이리라.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들이 겹쳐진다.)

도연명은 명말 청초의 유민화가에게 인기가 많았다는데, 그 역시 도연명이 두 왕조를 섬기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여 추숭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자신이 그런 길을 가지 못한 것을 덮으려 오히려 도연명을 앞에 내세운 것이 아닌가 한다.

도연명의 시를 읽으며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림을 보면 그 곳에 내가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노래하지만 거기에 배어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이 그 많은 그림과 화도시로 공명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잊은 작가는 분비물에 대해 쓸 뿐’이라고 했던 윌리엄 포크너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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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가장 최근에 나온 도연명 전집이다. 각 시마다 그리고 시의 수마다 해석을 붙였다. 이 해석을 다 읽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어떤 때는 시를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짧은 지식을 가진 나에게는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함께 읽었던 『도연명을 그리다』의 저자 위안싱페이의 해석을 참고하고 있어서 병행 독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화가들의 그림의 제재가 되었던 귀원전거(歸園田居), 음주(飮酒), 책자(責子), 오류선생전(五柳先生專), 의고(擬古),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중점적으로 감상했다. 그리고 부록에 붙여진 심약(沈約)의 「도잠열전(陶潛列傳)」,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도연명문집 서문(陶淵明 文集 序)」, 위안싱페이의 「도연명의 향년에 대하여」를 통해 도연명이나 그를 세상에 소개한 소명태자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아주 유익한 자료였다.

<음주> 20수는 한 세트의 시다. 당연히 같은 시기, 즉 의희 13년 가을에 지어졌을 것이다. 이해 9월은 유유(劉裕)가 북벌해 장안(長安)까지 이르렀고, 다음 해 6월에는 상국(相國)이 되고, 송공(宋公)에 봉해지며, 최고 예우인 구석(九錫)이 내려졌다. 2년 뒤 7월 유유는 송왕(宋王)으로 승진하고, 그다음 해 6월 유유는 바로 찬탈해 황제를 칭한다. <음주> 20수는 마침 진 왕조가 장차 망하고, 유유가 찬탈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에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연명은 일찍이 유유의 참군(參軍)을 지냈고, 유유의 권세가 날로 높아지던 무렵이니, 자연스레 어떤 사람은 도연명에게 다시 나가 유유에게 의탁할 것을 권했을 것이지만 도연명은 단호히 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음주> 시 안에

쯧쯧 속세의 어리석은 놈들아, 咄咄俗中禺
또한 마땅히 황기를 따라야지. 且當從黃綺
잠시 이 마실 것 함께 즐기시길, 且共歡此飮
저의 수레는 돌릴 수 없다오, 吾駕不可回
한번 갔으면 곧장 마땅히 그만둘 일이지, 一往便當已
무엇을 하려고 다시 우유부단하는가? 何爲復狐疑
깨달으면 응당 돌아옴 생각해야지, 覺悟當念還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도 버려지나니. 鳥盡發良弓

등의 문구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소생(邵生), 삼계(三季), 벌국(伐國) 등의 말로서 진나라가 망하게 될 것을 암시했다.
-953p, <도연명의 향년에 대해>⟪도연명연구⟫ 위한싱페이


「음주(飮酒)」라는 시를 감상하며 나 역시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와 정서를 그렇게 읽었다. 출사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달리 수레를 돌려 세상과 이별했던 것은 그가 살았던 격랑의 시대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고뇌 가운데 시작되었으나 후에는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 같다. 국화 한 송이에서, 술이 익어 갈건에 술을 거르는 행위에서, 갑자기 술을 들고 찾아온 노인과의 대화에서, 산중에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에서… 그런 작은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마음. 필사적으로 보였던 그 마음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일치가 되는 순간을 다음 시에서 발견했다.


42-5.
사람 사는 곳에 오두막 엮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 없구나.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지,
마음 멀어지니 땅은 절로 외지노라.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고,
유연하게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
산기운은 해 저물면서 아름답고,
날던 새 서로 더불어 돌아오누나.
이 안에 ‘참된 뜻’이 있으니,
말하려 하나 이미 말 잊었노라.
-361p, 「음주(飮酒)」 중 제 5수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고, 유연하게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는 도연명의 시 중 절창으로 여겨진다. 그 의미를 여러 번 되새기다가, 바로 그가 지향했던 삶의 순간을 불현 듯 경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시에는 적막함, 외로움, 작별의 아쉬움, 그리움, 고뇌도 있지만, 흥취가 넘치고, 재미있는 순간들도 등장한다. 술과 관련된 시가 주로 이런 정서가 많았는데 그는 마음이 어지러운 것을 가라앉히기 위해, 더 나아가 자신을 잊고 일치되는 순간을 적극적으로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시고 흥취를 즐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손님들 있어 늘 함께 머물러 지내는데,
취향은 까마득하게 경지를 달리하네.
한 선비는 늘 홀로 취해 있고,
한 사내는 한 해 동안 깨어 있네.
깨고 취해서 또한 서로를 비웃나니,
말을 해도 각기 받아들이지 못하네.
-388p, 「음주(飮酒)」 제 13수

술을 그쳐볼까(止酒)는 술을 끊을 수 없는 이유를 대는 재미있는 시이다. 번역이 재미있게 된 것 같다. 애주가들이 좋아할 만한 시라는 생각이다.

맛있는 것은 채마밭 아욱에 그치고,
크게 기뻐함은 어린아이에 그치네.
평생 동안 술은 그치지 아니하나니,
술 그치면 마음에 기쁨이 없기 때문.
저녁에 그치면 편히 잘 수가 없고,
새벽에 그치면 일어날 수가 없네.
날이면 날마다 그걸 그치고 싶으나,
몸의 순환이 그쳐서 다스려지지 않네.
……
417p 「술을 그쳐볼까(止酒)」 중

「책자(責子)」라는 시에서 그는 종이와 붓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보고 실망감을 짧은 시 한 구절에 담고(“아들놈이 다섯이나 있다 하나, 모두 지필을 좋아하지 않네” -『도연명을 그리다』), 술이나 마셔야겠다고 마무리 한다. 그 실망감을 억지로 감추려는 것인지 아니면 생긴 본성대로 살라고 놓아주는 것인지 잘 알지는 못하겠다. 웃음과 함께 그의 마음을 지나간 서늘한 한 가닥 바람을 느꼈다. 부모 마음은 똑같으리라는 생각에…….

그는 어떤 마음으로 도화원기를 썼을까? 어떤 권세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농사 짓고 고기 잡아 굶주릴 걱정 없이 한가할 때 시 짓고 사는 마을을 그렸을까? 도화원 사람들이 나가서 말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건만 떠나면서 길목마다 표시를 해두고 밖에 나와 사실을 알리는 방문자가 얄궂다. 독자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마을을 다시 찾지 못하는 엔딩에서 안도한다. 도연명의 마음도 같았으리라.

그가 지키고 싶었던 도화원은 그의 마음이었을까? 시시때때로 세상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휘저어지지 않으려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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