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향상과 대체, 읽어가면서 멈추게 되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서사의 배경이 되는 시대정신을 가리키고 있다. 욕망의 대상이 되고, 갈등의 원인이 되고, 가려진 진실을 암시하면서 플롯을 구성해 나간다. ‘향상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향상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대체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암시와 압박을 받는다. 실제로 실적부진, 업무 부적격성 등의 이유로 대체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소설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미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고 있다. 향상되지 않으면 대체되는 세상에서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의 고유함은 무엇일까를 사유하게 되는 소설이다.

 

 클라라는 AF(Artificial Friend). 인공지능 로봇으로 아이들의 친구로서 생산되었다. 태양으로부터 동력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은 전개의 과정에서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매장 쇼윈도에 전시되어 있는 클라라에게 끌려 바라보고 있는 조시와 눈이 마주치고, 조시가 자신을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클라라는 조시의 친구로 판매되어 그녀의 집으로 간다. 조시는 유전자 교정치료-향상치료부작용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태이다.

 

 소설 속에서 사회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향상이라고 하는 유전자 교정 치료를 받게 한다. 그렇게 해서 더 나은 계급의 교육을 받고 지위를 얻게 해주려는 것이다. 그들은 향상된 계급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우수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야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 조시의 엄마 크리시는, 많은 부모들이 하는 것처럼, 딸에게 향상치료를 받게 했다. 조시의 언니 셀은 이 적응과정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한편, 조시의 친구 릭의 엄마는 아이를 잃는 것이 두려워 향상치료를 거부한다. 그리고 릭의 장래를 걱정하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클라라의 엄마 크리시가 향상된 신제품 AF-B3가 아닌 클라라를 선택한 이유는 클라라의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능력때문이다. 혹시 조시가 부작용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게 되면, 클라라로 대체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 아이를 잃었는데도 크리시는 자녀의 향상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 욕망은 자식의 생명의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강하다. 자신의 욕망을 조시에게 대한 투사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계급과 그 경계가 뚜렷한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떠할까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어쩌면 소설 속의 사회와 다름없기 때문에 향상이란 단어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조시의 아빠 폴은 이 계획을 알고 있는 클라라에게 묻는다. 조시의 모습과 행동과 말투는 이어갈 수 있지만, 마음을 배울 수 있겠느냐고.

 클라라는 대답한다.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이 아주 많은 집하고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신중하게 연구해서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320p)

 

폴은 다시 질문한다.

 하지만 네가 그 방 중 하나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다고 해 봐. 그리고 그 방 안에는 또 다른 방이 있고, 방 안에 방이 있고 그 안에 또 있고 또 있고. 조시의 마음을 안다는 게 그런 식 아닐까? 아무리 오래 돌아다녀도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방이 또 있지 않겠어?”(321p)

 

 클라라의 대답처럼 마음은 신중하게 연구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일까? 폴의 질문은 의식의 영역을 넘어서 끝없이 이어지는 무의식의 세계를 연상하게 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과연 이렇게 복잡한 인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클라라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신뢰와 의지,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의 감지, 그로 인한 불안감, 조시를 위해 희생하는 결단 등이다. 또한 투사나 동일시의 모습도 보인다. 마음을 가진 존재가 겪는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학습하고 모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마음의 형성은 타고난 기질, 기억과 상처, , 외적으로는 문화와 전통 등 셀 수 없는 인자와 요인들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또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면 폴의 말대로 방에서 방으로 감추어진 영역들이 끝없이 드러난다. 과연 학습해서 모방할 수 있을까? 아빠 폴의 질문처럼 시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마음, 사람을 특별하게 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마음이 존재한다면 배울 수 있는 것일까?

 

 이 소설에서 클라라의 태양숭배는 독자를 난감하게 한다.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태양을 섬기며 클라라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한다. 죽음과 상실이라는 인간의 불안에서 출발한 원시종교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적인 마음의 경향을 억제하는 신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클라라의 의식에 이 신앙이 생겨나는 과정과 쿠팅스를 파괴해야 한다는 동기를 갖게 되는 과정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것도 인공지능 로봇의 선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어색함은 아직 알지 못하는 영역을 구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마음은 볼 수도, 느낄 수도, 무게를 달 수도, 해부하여 갈라 보일 수도 없다. 오랫동안 마음의 좌소(座所)에 대해 알고자 했지만 밝혀진 것은 없다. 마음은 영혼과 호환되며 언급되어 왔고, 마음은 뇌 손상과 같은 것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는 것등을 알 뿐이다. 게리 콜린스는 마음 탐구에서 마음을 사고, 학습, 문제해결, 의지, 인식, 집중, 기억, 주의, 그리고 사상과 감정의 경험 등을 포함한 우리의 정신 활동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길버트 라일은 의지, 정서, 성향, 자기인식, 감각과 관찰, 상상력, 지성 등으로 마음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마음의 개념, 길버트라일)

 학문의 분야마다 학자마다 마음의 정의가 다르다. 정의조차 부정확한 것을 모방할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까?

 

 대체계획은 조시의 회복으로 취소된다. 조시가 부작용을 이겨내고 건강해진 후에 클라라는 말한다. 자신이 조시를 대신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어머니, , 멜라니아, 아버지가 가슴 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조시의 특별한 무엇인가는 조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442p) 대체는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인간의 특별함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는 것이다. 마음을 모방할 수 있는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일 것이다.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엄마 크리시가 조시의 언니 셀의 대체 로봇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능력으로 인정받는 경쟁사회는 한 인간이 마주할 대체라는 암울한 개인의 운명을 예고한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 의한 대체인 것이다. 미래에는 유전자 조작으로 향상된 한 인간에 의한 것이거나,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향상대체라는 매커니즘이 끌고 갈 계급사회와 인간소외에 대한 해답은 곧 소멸될 AF 클라라에 의해 제시되었다. 한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의 사랑이다. 공존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사랑은 희망을 가리키는 키워드이다.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메리 올리버

(328p 로봇시대 인간의 힘구본권)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5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1-07-05 22:3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하 ㅠㅠ 그레이스님. 글을 어쩜 이렇게 고급지고 그레이스하게 쓰시는 거죠., 부럽게 ㅠㅠ 인간의 특별함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다는 말 너무 좋아요. *^^*

그레이스 2021-07-05 22:45   좋아요 7 | URL
;;;;;
감사합니다 ~♡
사랑!
최고의 진리죠^^

초딩 2021-07-05 23:36   좋아요 6 | URL
매우 인정합니다! :-)

붕붕툐툐 2021-07-06 21:11   좋아요 2 | URL
저도 격한 공감! 괜히 그레이스님이 아니심!!

새파랑 2021-07-05 23:3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관한 책은 언제나 좋더라구요~!! 리뷰에 쓰인 마으메 대한 이야기 너무 멋지네요 👍 전 올해 나온 책중 이 책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1-07-06 06:25   좋아요 4 | URL
마음에 관해 이것저것 찾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scott 2021-07-06 00: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레이스님의 이문장에 밑줄을 쫘아악!५✍⋆*

만일 ‘향상‘된 유전자 치료가 가능하다면
전 치료 받고 싶은 곳이 많습니다!

이책 미국에서는 베스트 진입조차 못했고
영국에서는 초반만 왕창 팔렸다가
지금은 독자들이 찾지 않는
자극적인 SF를 원했던것 같습니다
영미권 독자들은
그럼에도 영국은 이번에 여름 휴가 필독 30권에 클라라를 넣어줬는데 ( *ฅ́˘ฅ̀*)

그레이스 2021-07-06 06:29   좋아요 5 | URL
이시구로의 책은 항상 자극적인 내용은 없는것 같아요
우리가 고민했던 것들 역사에서 이미 쟁점이 되고 있는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듯요
하지만 그것들은 오랜동안 머릿속에 남아서 고민하게 하는 것 같아요.^^

희선 2021-07-07 0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로봇이 더 사람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요 겉모습만 같다고 그 사람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면 클론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클론도 다른 사람이죠 사람이 가진 마음과 사랑이 희망이겠지요 좀 엉뚱하기는 해도 클라라도 조시를 많이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희선

그레이스 2021-07-07 07:11   좋아요 2 | URL
♡~
클론은 로봇보다 더 생각할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어슐러 르귄이 쓴 소설 읽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원더북 2021-08-05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ㅎㅎ 저 이 리뷰를 다른 곳에서 먼저 읽었는데 그레이스님셨군요! 여기서 다시 읽으니 더 반갑습니다^^

2021-08-05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8-05 11:43   좋아요 1 | URL
지금 이 글도 수정해야 해요 ㅎㅎ

원더북 2021-08-05 11:45   좋아요 1 | URL
그래이사에 달려 있는 수많은 리뷰 중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리뷰였어요^^

그레이스 2021-08-05 11: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coolcat329 2022-10-12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글 너무 잘 읽고 갑니다. 조시와 아버지가 나눈 인간의 마음에 대한 대화, 덕분에 다시 읽었구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책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 ‘유전자 교정치료-향상치료‘라는 말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그레이스 2022-10-12 22:08   좋아요 1 | URL
댓글 달아주셔서 제가 리마인드 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부끄럽네요. 감사드려요~~~♡

보물선 2024-06-26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문단 너무 좋네요. 별로라고 생각했던 소설 내용이 덕분에 ‘향상‘ 되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4-06-26 15: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향상으로 받아주시다니 ^^
 

우리가 갓난아이로 세상의 무대에 나왔을 때, 인생이라는 연극은 벌써 오래전에 시작되어 있었다. 주인공, 무대 배경, 줄거리도 있었다. 인생을 처음부터 우리 손으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지각했다고나 할까? 우리는 가족사, 문화사, 진화사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전통 속으로, 갈등 속으로, 시대적인분위기 속으로 들어왔다.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막간에 문은 다시 한 번 반쯤 열린다. 우리는 숨죽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 어둠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다"라며 "시작 부분은 나중에야 비로소 예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연극의 규칙이다"라고썼다.
- P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 (mind)」은 중요한 의미에서 3원적이다, 즉 마음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3개의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생각은 오랜 세월 동안 논란의 여지가 전혀없는 공리(公理)처럼 간주되어왔다. 지금도 우리는 종종 마음이나 영혼은사고, 감정 및 의지라고 하는 세 부분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좀더형식적인 어투로 말하자면, 마음이나 영혼의 기능은 더 이상 환원이 불가능한 세 가지 상이한 양태인 인지적 양태 (Cognitive mode), 정서적 양태(Emotional mode) 및 의욕적 양태 (Conative mode)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밝히고자 하는 바는 정서 (emotion)라는 단어가 적어도 서너 가지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 「경향성 (혹은 동기)」, 「기분」, 「(심적) 동요 (動搖)」, 「감정」등이 그것이다. 동요 (agitations 혹은 commotions)를 포함해 경향성 (inclinations)과 기분(moods)은 발생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공적으로건사적으로건 도대체 발생하지 않는다. 즉 이것들은 행위나 상태가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다. 

이에 반해 감정은 발생사건 (occurrence)이다. 그렇지만 인간행동을 서술함에 있어 감정에 관한 언급이 차지하는 위치는 통상적인 이론들이 인간행동과 관련하여 차지하는 위치와 판이하다. 
기분 혹은 마음상태(frames of mind)는 동기 (動機)와는 달리, 그러면서도 질병이나 기후상태와유사하고 일정하게 사건들이 「결합된 일시적 상태이며, 그 자체가 발생사건 외부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기도 프루스트!

좋긴한데
얇아서... 소설 뒤에 부록으로 들어갈 양이라 ...
의아함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물건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이었습니다.(당시 영어판 번역서의 제목은 『과거의것들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나는 손에 들어온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열이 떨어지지 않은 내 상태가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였을텐데, 나는 책의 시작 부분과 콩브레 부분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나는 그 부분을 읽고또 읽었습니다.  - P27

아름다움은 차치하고라도 프루스트가 하나의 일화를 다음 일화로 이끌어 가는 방식에 전율했습니다. 사건과 장면의 순서는 일반적으로 요구되는연대순을 따르지 않았고, 직선형 구성 방식 또한따르지 않았더군요. 그 대신 서로 관계가 없어보이는 생각의 연상이나 변덕스러운 기억이 하나의 일화에서 다음의 일화로 그 글쓰기를 추동해 가는 듯했습니다. 나는 무심결에 이렇게 자문하곤 했습니다.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두 순간이 어째서 화자의 마음속에서 나란히 자리 잡게된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내 두 번째 장편 소설을 위한 흥미로우면서도 더 자유로운 구상 방식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오직 책 속에서만 풍부함을 만들어 내는, 그 어떤 화면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내면의 움직임을 제공하는 방식 말입니다. 화자 생각의 연상과 자유롭게 흐르는 기억에 맞추어 하나의 구절에서 다음 구절로 나아간다면, 추상 화가가 화폭에 형태와 색채를 선택해 담아 내는 것 같은 방식으로 소설을 구성할 수 있을 터였습니다. - P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 자폐는 어떻게 질병에서 축복이 되었나
존 돈반.캐런 저커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64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역사니까. 하지만 자폐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임상기록의 역사는. 두껍지만 쉽게 읽혀서 생각만큼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날드 트리플렛은 최초로 보고된 자폐아이다. 1930년대에는 아직 자폐증이라는 진단명이 없었다. 트리플렛 부부는 아들 도널드를 요양원 시설에 보낸다. 엄마 메리 트리플렛이 아들을 과도하게 자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처음 보내진 곳은 결핵예방요양원이었다. 메리와 비먼 부부는 이 요양원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아들을 도와줄 의사를 찾는다. 레오 카너와 도널드 트리플렛은 그렇게 만났다. 메리는 아들에 대한 진단이 필요했다. 레오 카너는 1943도널드 T.’라는 소년이 등장하는 자폐적 장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다. 드디어 진단명이 붙여진 것이다. 이것은 조현병에서 나타나는 자폐증이나 자폐적이라는 용어를 차용한 것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관점을 발견한 것이었다.

 

자폐의 연구와 기록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트리플렛 부부를 시작으로 같은 증상을 가진 자녀들의 부모들로 모임이 형성되고 정보를 교환하고 자폐아들을 대상으로 한 치료와 연구의 역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진단명

육체에도 병의 증상은 있지만 정확한 진단명이 없다는 것은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치료의 시작은 진단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같은 증상을 보이던 아이들의 부모는 자폐라는 병명으로 모임을 갖게 된다. 그들에게 진단명이 있다는 것은 치료의 가능성, 아니 회복의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이고, 고통을 나누고 아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힘을 모을 수 있는 공동체가 생겼다는 의미였다. 진단명을 갖기 위한 부모들의 고군분투가 절실하게 전해져 왔다.

 

냉장고 엄마

병에 걸리면 원인을 찾게 된다. 초기 자폐라는 병이 세상에 알려 지게 되면서, 자폐아의 엄마에게 원인이 있다는 이론이 알려졌다. 베텔하임은 엄마들이 자녀들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것 때문에 겪는 최악의 정서적 장애라고 발표한다. 자폐아를 가진 엄마들은 소통할 수 없는 아이들과 사회로부터 오는 비난으로 이중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항상 죄의식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항하여 연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브루노 베텔하임의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 밝혀진다. 자폐는 심리적유발인자에 의한 부상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학자들

자폐 치료와 연구에 참여한 많은 심리학자들과 의사들이 있다. 초기 이들의 연구와 많은 논문들 치료로 인해 우리는 오늘날 자폐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고, 많은 자폐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초기 자폐치료는 축적된 지식이 없어서 그 자폐아들과 부모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미국에서는 주로 행동심리학자들에 의해 치료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언어와 행동장애가 나타나는 아동을 치료하는 방법들이 등장한다. 경악스러운 것은 처벌에 의한 방식인데 핫샷Hot-shot (가축몰이용 전기막대)에 의한 치료이다. 또는 소리지르고 때리고 사랑해주는 방식으로 그들의 행동을 교정했다. 그밖에 마약류를 투여한다든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한 것은 심리학자들이 성취와 명예에 도취하여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자폐아들을 이용했던 사실이다. 물론 헌신적으로 자폐치료연구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도 있다. 초기에 이렇게 헌신한 학자나 의사들의 경우는 대부분 자신의 자녀들이 자폐증을 갖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문적인 분야의 연구나 이론은 대립되는 가설과 주장이 난무하고 무리하게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있다.


유럽에서는 주로 생물학적인 원인을 규명하려는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영국의 학자들과 미국의 학자들간에는 상호교류도 이루어진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난 후 독일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는데, 히틀러 당시 이루어진 의학적 업적에 대한 혐오와 기피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 의사 아스퍼거에 의해 밝혀진 증후군은 로나 윙에 의해 영어권에 소개되었다. 이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 스펙트럼 포함되고, 이 증후군의 명칭은 후에 폐지된다.아스퍼거의 나찌 전력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정신지체 아이들을 슈피겔그룬트로 보내 죽게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대

자폐의 역사에 있어 치료와 연구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은 무엇보다 부모들의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여러 지역에 있는 자폐아들을 찾아 설문조사를 하고 네트워킹을 형성했다.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얻어내어 연구를 지원하고 자폐아들을 위한 국가정책지원 수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모두가 무관심하고 냉담한 환경에서 이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연대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냉장고 엄마라니헛소리인 것이다.

 

 

레인맨

198812월 개봉한 영화 <레인맨>은 사람들에게 자폐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일으켰다. 이 영화는 자폐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관람객에게 자폐에 대해 효과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 더스틴 호프만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나에게도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와 영화의 메시지는 이제까지의 정신지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레인맨은 자폐증의 서사를 영원히 바꿨다. 대중은 자폐증이 어떤 상태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했고, 우호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힘은 지식보다 예술에 있다. 마음을 움직이니까.

 

 

어느 자폐인 이야기

1986년 템플 그랜딘의 책 어느 자폐인 이야기는 자폐인으로서 성공을 거두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도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는지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랜딘은 대학에 진학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가축관리에 관한 전문가이다. 그녀는 많은 자폐아의 부모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이 책은 다시 '최초의 자폐아' 도널드 트리플렛의 이야기를 하며 끝을 낸다. 제목은 행복한 사람이다. 2013년 그의 80세 생일파티를 위해 1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인 장면을 그리고 있다. 당시, 그는 최고령 자폐인이다. 그가 이 지역에서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나오고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 메리 트리플렛과 가족들의 공이 컸다. 또한, 그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시시피 포레스트라는 지역공동체가 그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폐인으로 미시시피 주의 소도시 포레스트라는 곳에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변화가 빠르지 않고 어려서부터 도널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지역에 평생을 살아온 것은 도널드에게 행복하고 안정된 느낌을 전해 주었을 것이다. 그는 여행도 하지만 주말에는 항상 포레스트로 돌아온다. 일요일마다 포레스트 장로교회에서 열리는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들에게 고무줄 총을 날리며 인사를 하고,골프장에 나가 골프를 즐긴다

그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가 행복한 사람인 이유는 바로 포레스트라는 지역공동체 때문인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 지역공동체가 어떠해야 함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우리나라에 님비라는 말을 처음 등장시킨 때부터 지금까지 장애인 학교에 대한 지역의 불편한 시선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린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폐의 역사와 관련하여 등장한다. 결국 어떤 역사이든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고통, 극복을 위한 분투, 헌신과 연대의 역사이다. 눈물겨운 그들의 이야기 곳곳에서 부모로서 나의 마음을 울렸고, 자폐 스펙트럼보다는 발달장애라고 힘주어 말했던 지인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자폐보다는 발달장애, 사회성 결여라는 말이 덜 절망적인 것이다. 수많은 밤을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면서, 자녀의 앞날보다는, 내일 당장 아이와 겪을 일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짓던 그들이 기억나서 눈물이 났다. 이 책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하고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도움은 줄 수 없더라도 공감하는 마음은 전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나의 생각은 도널드가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앞의 장면으로 돌아가게 된다. 졸업앨범의 친구들 사진 밑에는 "돈 너는 내가 학교에 다니는 내내 영감을 주었어. 언제나 행운을 빈다." 와 같은 축하 메시지들이 서명과 함께 남겨져 있다.

 

도널드는 자신의 앨범에 삐뚤빼뚤 축하 인사를 남겼다.


D.G.


내 자신에게 행운을 빌며.


D.G.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1-07-02 14: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엄마탓으로 돌렸다니 막 화가 나네요. 아이가 아프면 더 아픈게 엄마인데 ㅠㅠ 저는 자폐하먄 레인맨이 생각나요. 그 때 처음으로 자폐란 병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아요 더스틴 호프만 연기도 좋았고요.

그레이스 2021-07-02 20:25   좋아요 3 | URL
더스틴 호프만의 이 역에 대한 열정이 상 탈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즈음은 성인 자폐에 대한 영화들이 나오지만 그때는 레인맨이 처음이었다고 하네요.

레삭매냐 2021-07-02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레인맨에 나오는 노래
벨 스타즈의 <아이코 아이코>
를 참 좋아했었답니다.

무심한 듯 살짝 각도를 튼
얼굴의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
는 참 대단했습니다.

아, 이 사람은 진짜 배우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헌신과 연대의 역사를 현실의
모습이 참 씁쓸하기만 합니다.

그레이스 2021-07-02 20:31   좋아요 1 | URL
노래를 다 기억하시네요@@
저도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에 감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