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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은 동경한다. 불행한 아이들의 동경은 가슴 아프다. 바라봐 주는 부모, 평온한 저녁, 따뜻한 식탁 등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게 누리는 것들을 꿈꾸고 있어서 비극적이다. 정원, 그것은 가족에게 얻을 수 없었던 행복, 고요함의 공간이고, 소년의 동경이다. 변하지 않는 어른들과 세상에서 유년의 정원은 문을 닫고 한줄기 빛의 기억으로만 남는다. 가부장제의 폭력 앞에 소외당하는 여성의 삶과, 어른들이 자신의 상처에 몰두하느라,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의 상처는, 독재 아래 묵인하며 견디는 민중들의 신음과 겹쳐진다. 한 가족의 상황도 그 역사를 닮았다.
상처가 많은 할머니, 그의 외아들인 아버지, 그 사이에서 매일 상처받는 어머니, 자신들의 상처에만 골몰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동구는 자신의 말을 마음속에 감춘 채 어른들의 감정쓰레기통이 되어간다.
“아주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들은 손바닥 위에 얹힌 눈송이처럼 어느 결에 스르르 잊히기 마련이지만, 어느 하루, 뒤꼍에서 맞이한 어느 봄날은 꿈결에 보았던 한 장면처럼, 현실감이 퇴색되어 오래된 수채화처럼 어렴풋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입으로는 앙앙 울고 귀로는 엄마가 내 엉덩이를 치는 철썩철썩 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는 미풍에 실려 긴 대각선으로 내 눈앞을 지나가던 벚꽃 잎 하나를 가만히 쫓고 있었다. 꽃잎은 매끄럽지 않은 사선을 그리며 한들한들 바닥까지 내려와 마당 모퉁이를 두르고 있던 버드나무의 흰 솜털과 노란 송홧가루의 품속으로 파고 들더니 오랜 동무라도 만난 듯 함께 구르고, 튀어 오르고, 아장거리다가 마침내 내 시야를 벗어났다. 모처럼 유람을 떠나는 아씨마님들처럼 유유하고 평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엉덩이에 감겨드는 맵짠 매질의 아픔은 기억나지 않는데 투명한 햇살, 눈앞의 허물어질 듯 아물거리는 아지랑이 속에서 초라하지 않게 추락하던 그 꽃잎의 기억만은 어찌 그리 선명한 것일까.(22p)”
9살이 떠올리는 더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엉덩이를 맞던 아픔보다는 어른들의 화와 설움이 뒤섞인 분풀이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과, 그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동구의 마음이 처연(悽然)하기까지 하다.
동구는 터울이 많이 나는 동생 영주를 좋아하고 잘 돌본다. 9살 남자아이가 여동생을 돌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동구는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 3학년이 되어도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동구가 난독증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아버지는 그 문제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고, 할머니는 엄마의 탓으로 돌린다. 오히려 식구들의 관심은 어린 영주가 한글을 읽는 사실에 기뻐하며 관심을 둔다. 3학년이 된 동구의 담임 박영은 선생님은 이런 동구의 외로움과 상처를 알아보고, 방과 후에 한글 공부를 한다. 그러나 한동안 그들의 수업은 한글을 읽고 쓰는 공부가 아닌 말하기 공부다. 가족들에게 받은 서운함과 부모님의 불화로 인한 속상함과 영주를 향한 질투, 엄마에 대한 연민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말하도록 도와준다. 선생님의 질문을 처음 받을 때는 예리한 것으로 가슴 속의 가장 여린 살점을 찔리는 것 같았지만 대답을 하면서 동구는 후련한 감정을 느낀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물어본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다들 착하고 똑똑한 영주, 미련 맞고 덜렁대는 동구라고만 생각했다. 커튼을 젖히고 무대 뒤편으로 가보면 그곳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영주, 생각 깊고 마음 넓은 동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처음으로, 어두운 무대 뒤편에 쪼그리고 있는 착하고 멋진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갑자기 조바심이 나고 숨이 가빠지면서 시키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작해 버렸다.(112p)”
할머니, 아빠, 엄마는 원망을 하고, 화를 누르고, 폭발시키고, 외면하다가 대화하는 법을 잃어 버렸다. 동구가 자신의 감정을 선생님에게 했던 이야기는 가족들이 들어줬어야 하는 것이었다. 동구가 선생님과의 방과 후 수업을 통해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고, 자존감을 회복할 때, 그들은 여전히 대화할 줄 모르고 깊이 멍들어 갔다. 영주의 죽음은 이 가족이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고, 그 사고마저 며느리의 탓으로 돌리는 할머니와 어머니는 함께 살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할머니를 이해해보려 노력했던 동구의 결심은 어른인 나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박영은 선생님과 선생님의 대학 선배와 고시공부를 하는 주리 삼촌의 대화에서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청년들의 가슴앓이를 보게 된다. 유신시대의 막을 내렸던 10.26 사태 이후 ‘서울의 봄’을 기대했던 청년들은 12.12 군사 반란으로 더 짙은 어둠가운데 갇혔음을 알려준다. 선생님은 광주에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 동구의 유년기는 유신시대가 끝나고 80년대 새로운 군부독재가 시작되는 시점에 막을 내린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어른들도 변하지 않는다.
할머니처럼 “세상을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한편 그 사람에 맞춰서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341p)”라고 생각하는 동구의 마음은 군부독재라는 너덜너덜한 헌 신발을 신는 민중의 체념을 닮았다.
산동네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은 3층집, 아주 가끔 문이 열려 있을 때마다 들여다보던 잘 가꾸어진 정원, 나무와 꽃과 연못을 찾아 날아들던 곤줄박이를 바라보는 것은 동구에게 즐거움이었다. 그 아름다운 정원은 비록 남의 소유이긴 하지만 동구의 유년기와 9살 소년의 꿈을 상징한다(『아홉 살 인생』의 뒷산을 떠올리게 한다). 동구가 그 정원과 작별하는 마지막 장면은 유년기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대문이 닫히면서, 아름다운 정원의 정경이 차츰 좁아지더니 마침내 가느다란 광채의 선이 되었다가, 갑자기 시야에는 녹슨 철문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 하지 않으려 한다.(350p)”
그렇게 다짐하고 반복하지 말자고 외쳐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은 세상, 이전의 경험으로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책임을 회피하는 영리함만 배운 것 같은 사람들, 그 가운데서 체념하고 희생하는 누군가가 생겨난다.
나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어른이 아니라 칼날 같은 의식으로 살아있어 계속 성장하길 바란다. 그럴 수 있을까?
“땅을 갈고 파헤치면 모든 땅들은 상처받고 아파한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 피우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빅토르 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