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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일주 ㅣ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2년 6월
평점 :
19세기 말,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철도가 건설되고 운하가 완공되는 등 세계열강은 경쟁적으로 길을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얻기 위한, 길이었는가는 제국주의 국가들 또는 침략자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시사한다. 1869년에 미국의 대륙횡단철도가 완공되고, 같은 해 수에즈운하가 개통되고, 1870년에 인도내륙관통철도가 개통된 시기가 배경이다. <모닝 크로니클>지에는 세계일주 하는데 80일이면 된다는 기사가 실린다.
혁신클럽에서 포그는 80일간 세계일주 할 수 있는가에 관한 논쟁하고, 2만 파운드가 걸린 내기를 한다. 포그와 그의 집사 파스파르투는 1872년 10월 2일 수요일 오후 8시 45분에 기차를 타고 런던을 출발한다. 브린디시를 경유하여 수에즈와 아라비아 해를 지나고 봄베이에 도착, 거기서 인도를 가로질러 이동한다. 캘커타에서 홍콩, 홍콩에서 상하이를 거쳐 요코하마, 요코하마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여행을 한다.
필리어스 포그는 영국 신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조금 지나쳐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는 런던의 신사라면 들어야 할 왕립연구원, 러셀협회, 학술협회 등 여러 단체 어느 곳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혁신 클럽 회원이다. 수학적 정확성, 경제적인 걸음과 동작, 냉정하고 이성적인 태도, 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움 등으로 그를 특징 짓는다.
“필리어스 포그는 11시 반에 새빌로의 집을 나와, 오른발을 왼발 앞으로 575번 내딛고 왼발을 오른발 앞으로 576번 내디뎌 혁신 클럽에 도착했다.(24p)”
반면, 필리어스 포그의 집사인 파리 출신의 파스파르투는 정반대의 인간형이다. 정직하고, 호감형이며, 정열적이고, 친절하고 다정하다. 체격은 크고 늠름하며 힘이 장사다. 포그가 아폴론이라면 젊은 파스파르투는 디오니소스다.
누가 주인공일까? 이 여행을 계획하고 착수한 사람은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지만 모험은 파스파르투의 몫이다. 그는 자신을 고용한 포그의 여행이 성공하도록 도우려고 최선을 다하고, 그의 인품에 감동하고 진정한 사랑을 보낸다. 그러느라 위험가운데 던져지기도 하고 걸식과 서커스를 하기도 한다. 독자는 포그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파스파르투의 마음은 매순간 읽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약속된 시간 안에 런던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파스파르투가 들고 온다. 작가는 행동하는 파스파르투에게 무게를 두고 있는 듯이 보인다.
작가가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그의 모험 소설에는 포그와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고 한다. 작가가 당시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면, 영국 신사인 포그를 풍자적으로 읽게 된다. 프랑스인의 눈에 비친 신사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지난 수에즈는 프랑스인 레셉스에 의해 건설된 운하다. 영국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수에즈가 완공되었다는 표현은 프랑스인 쥘 베른의 시선을 엿보게 한다. 인도에서는 ‘서티’라는 관습의 희생될 뻔 한 아우다 부인을 구하고 그녀는 이 여행의 새 멤버가 된다. ‘서티’는 지방 토후들이 죽었을 경우 아내들을 함께 화장하는 제도다. 홍콩의 마약 소굴 묘사는 아편전쟁이란 역사적 사건을 상기시킨다. 홍콩과 함께 작가가 그리는 중국, 일본의 풍경은 오리엔탈리즘을 생각하게 한다.
미국의 대륙횡단열차는 1863년 센트럴 퍼시픽 회사와 유니온 퍼시픽 회사가 각각 서와 동에서 출발하여 경쟁적으로 시공한 철로 위를 달린다. 이 철도를 놓는 길이에 따라 정부로부터 재정과 주변 땅을 받기로 약속되어 있어서, 두 회사는 경쟁적으로 공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센트럴 퍼시픽 지역은 중국인들이 동원되었고, 유니온 퍼시픽은 인디언들의 지역을 지나게 되어 많은 희생이 있었다. 이 사업은 1869년 완공되었다. 이들 포그 일행이 열차여행을 하던 중 인디언의 공격을 받고, 다시 파스트루트는 인디언들의 포로가 되었다가 포그에 의해 구해진다.
이들의 여행 중 홍콩까지는 영국령이라는 표현에서 19세기말 영국의 제국주의 상황을 보게 된다. 포그 일행이 여행한 곳 대부분이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의 영토이거나 한때 식민지였던 곳이었다. 그들이 놓은 길은 식민 수탈과 착취, 자국의 번영을 위한 것이었다. 쥘 베른은 이 부분에 각성이 없었던 듯하다. 독자의 비판적 읽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어린 시절 읽었을 때는 그들을 은행 강도로 오해하고 쫓으며 발목을 잡는 형사 픽스 때문에 마음을 졸였었다. 결말의 반전 때문에 날짜변경선을 알게 되었고 절대 잊을 수 없도록 각인되었다. 역시 이번에 재독하면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에즈를 두고 벌였던 영국과 프랑스와 오스만 투르크의 각축, 문화다원주의와 인권의 문제, 아메리카 원주민, 이민자들의 삶, 유럽의 시선으로 본 아시아의 모습 등을 생각해본다. 19세기 제국주의가 갖고 있는 20세기의 전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그 욕망을 지나칠 수 없다.
여행은 아름답게 끝이 난다. 예상치 못한 장애들을 해결하느라 쓴 경비들 때문에 포그는 금전적인 이익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명예와 사랑을 얻었다.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을까? (366p)”
나는 무엇을 위해 여행할까? 낯선 장소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지나온 여행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