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아버지와의 불편하고 소원했던 관계를 설명하면서,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먼 해변에 버리고 온 일을 기억한다. 그 고양이가 자신들보다 먼저 집에 돌아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고양이를 버렸지만 집을 찾아온 고양이를 다시 버릴 정도로 무정하지 않다는 것일까? 상황에 수동적이라는 것일까? 그 시절에는 그것이 비난을 받을 행동이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설명한다. 불운했던 삶과 중일 전쟁 참전까지.
아버지가 난징함락 전위부대인 보병 제20연대 소속이었던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보급부대인 치중병 제 16연대 소속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게 된다. 그로 인해 아버지의 군인시절 정보를 더 알아볼 용기를 내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하이쿠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글들을 찾아보며, 전쟁으로 인해 괴로웠을 아버지의 심정을 더듬어 헤아리는 아들의 마음을 읽게 된다. 전쟁에서 겪었던 포로처형 경험을 짧게 말한 것이 다였음에도 그 상처를 자신이 계승했음을 고백한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 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 –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 51p 『고양이를 버리다』
자신은 그저 평범한 아버지의 평범한 아들이라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세상은 다르다. 아버지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아들의 것은 다르다. 하지만 그 사이에 단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세상은 연속되고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산둥성 가오미 둥베이, 붉은 수수밭으로 피바다를 이루는 곳이다. 1927년과 1939년 2번에 걸친 항일전과 관련한 비극적인 역사가 있었던 곳이다. 이 전투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피와 할머니의 피로 적셔진 검은 흙과 붉은 수수밭의 대비는 이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수와 그 참혹함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전쟁터 한가운데서 학살을 목격한 사람들은 피비린내와 차라리 붉은 수수밭으로 대치되는 시체로 가득한 풍경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장소는 …… 장소는 더 이상 사랑과 욕망으로 취했던 옛날의 붉은 수수밭이 아닌 유린당한 사람들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모옌의 『붉은 수수밭』을 읽으면서 중국대륙을 훑고 간 1937년 중일전쟁을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함께 읽은 것이 『난징대학살』이었다. 난징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이다. 난징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곳에서 이러한 양민학살이 자행되었다. 난징은 오, 송, 양나라 때의 성도이었다. 장제스의 군대와 일본군의 격전지였다. 1937년12월 13일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의 민간인에 대한 만행에 대한 자료와 사진은 끔찍한 것이었다. 난징에는 이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잔인한 살인을 명령하게 된 의도는 전쟁에서 ‘감정을 무디게 하기’라는 설명을 읽었다. 전투에서 두려움 없이 적군을 살상하기 위해 방어능력이 없는 양민을 죽이는 것으로 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분개를 떠나 전쟁과 인간의 잔인성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하며 할 말을 잃게 된다. 아연실색.
그런데 이러한 학살의 가해자 편의 서술이 담담한 것은 더욱 우리를 당황시킨다. ‘국가의 전쟁이었고, 자의적인 것이 아니었고 징병이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윗세대가 벌인 전쟁이고 나도 그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투 말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에서 일본의 청년들을 태평양전쟁에 보내기 위한 선동적인 활동을 했던 늙은 화가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회환과 자긍이 오가는 그의 마음은 자신이 살았던 세계가 무너지고 부유하는 세상에서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가치를 붙들고 있는 인간의 누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쟁은 모두에게 상흔을 남긴다. 그러나 그 상처를 말할 때 태도와 내용은 분명히 달라야할 것을 요구받는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의 질문이 떠오른다. ‘조상의 죄에 대한 후손의 책임’에 대한 질문.
혈연에 대하여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려했던 작가 하루키도 결국 자신 안에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정체성과 역사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본다.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 97p 『고양이를 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