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키비아데스(Alcibiades, BC450?~404)는 대 아이아스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다. 아이아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하다가 오딧세우스에게 빼앗기고 수치심과 분노로 자결한 사람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유능한 장군 크리아니스의 아들이다. 가문도 좋을 뿐 아니라 용모도 아름다웠고 사교술도 뛰어나고 전쟁에서의 지략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발음을 흉내 내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관심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가 알려지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와 가까이 지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소년인 그를 아끼고 사랑해서 가까이에 두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전투에서 위험에 빠진 알키비아데스를 구해주기도 하고, 알키비아데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알키비아데스 또한 소크라테스를 존경해서 그를 몹시 사랑하고 따랐다고 한다. 반면 알키비아데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교만하고 난폭한 태도를 보여서 정적이 많았다고 한다.
알키비아데스가 활동한 시기는 델로스동맹이 깨지고 스파르타 연맹과 아테네의 연맹이 패권을 놓고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기이다. 많은 전쟁에서 알키비아데스는 공을 세우기도 하고 웅변술도 뛰어나 그의 가까이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정적들을 만든다. 이 때문에 모함을 받고 재판을 받기도 하고 결국은 탈출해서 스파르타와 페르시아를 위해 전투에 참가한다. 자신이 가진 자금으로 군사를 모아 용병으로서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 그리스 고대 도시국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던 같다. 아직 국가주의라는 것이 탄생하기 훨씬 전이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근대의 정의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스를 침공했던 페르시아로 도망가서 여생을 마친 그를 영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시대 역시 그런 그를 영웅전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페리클레스에게서 모든 것을 물려받았으나 그 정직함만은 물려받지 못했고, 소크라테스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지만 그 도덕성만은 배우지 못했다”고 그를 평가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1장 알키비아데스 편을 읽고 정리하면서 오래 전 읽었던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이 떠올랐다. 새로 출간된 『감정의 혼란』에 대한 리뷰가 올라오는 것을 자주 본 탓이기도 했다.
주인공과 교수의 감정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이 인상적으로 각인 되어 있어서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관계로부터 자연스럽게 연상된 것 같다. 이 소설에서 대학교수의 서재에 걸려 있던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하나의 복선이었다.
「책상 위에는 라파엘의 <아테네의 학교>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 나중에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특히 사랑하는 그림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종류의 교수와 정신의 표현을 상징적으로 완전한 종합체를 이루도록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의식중에 나는 소크라테스의 완고한 얼굴 속에 그의 이마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은 이 교수에게서 지적인 욕망을 채운다. 그의 강의에 매혹당하고 굶주린 듯 빨아들인다. 한 마디 한 마디, 몸짓, 손짓까지 욕심 사납게 집어삼키고 돌아와 끌어안고 어루만지고 간직한다는 표현은 지적 욕구가 아닌 성적인 욕망을 나타내는 묘사이다. 그의 삶에서의 습관조차도 그의 가치관에 의해 버려지거나 새롭게 조종당하는 것을 본다. 마치 연인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러나 때때로 보이는 차가운 반응과 사적인 삶에서 보이는 미스터리한 모습은 주인공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교수의 모습은 마치 파우스트의 옷을 입고 발푸르기스의 밤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바그너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교수의 고백으로 냉정과 열정을 오갔던 태도의 정체가 드러난다. 함께 주인공의 혼란스러웠던 감정의 이유도 밝혀진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모든 기억이 맹렬하게 물결치고, 마치 하나의 암호가 모든 이해할 수 없었던 보고의 말을 한꺼번에 다 풀어 준 것 같았습니다. 내게는 지금 무섭도록 모든 것이 명백하게 되었고, 그날 밤의 애정적인 그의 방문과 그의 늘 무뚝뚝했던 변명이 죄다 알려졌습니다. 그 날 저녁의 그의 방문과, 감격하여 달려든 내 열정에 대해 언제나 그가 무뚝뚝하게 회피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127p
주인공이 교수를 떠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논문집을 펴내며 현재의 자신이 있게 된 ‘정신적인 생명 과정의 가장 깊은 비밀’이 바로 이 교수와의 만남에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청춘의 진실과 함께.
주인공이 느꼈던 감정의 혼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교수의 열정을 따라가면서 탐욕스럽게 집어삼킨 지적 욕망의 끝에는 동성애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때 주인공은 감정의 혼란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그 혼란스러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주인공이 카타르시스나 극치를 경험한 것의 정체가 육체적인 욕망이었는지 지적인 것으로 인한 것인지 혼동했을 수도 있었을까? 인간의 욕망의 끝은 결국 종착점에 이르러 한 곳에서 만나는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이나 그 뿌리의 웅덩이 속, 또는 하수도 속과 같은 그런 곳에서만 진실로 위험한 정열의 야수가 인광을 발하며 숨어서 각양각색의 괴기한 유혹 속에 남 몰래 연결되기도 하고 분열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
-131p
츠바이크를 한참 탐독할 때 읽었던 『정신의 탐험가들』이 또 하나의 고리를 만든다. 심리 치료의 세계를 개척한 학자 안톤 메스머와 메리 베이커 에디, 프로이트에 이르는 정신의 탐험가들에 관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이다. 프로이트에서 출발해 융, 정신분석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책이었다. 지금은 절판 상태. 츠바이크가 계속 꾸준히 읽혀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다시 출간될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