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의 세월편을 보며 오래전에 원서로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이 생각났다. 작가가 쓰는 단어의 반복과 리듬 속에서 집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던 것이 기억으로 남아있다. 짧은 글에서 받았던 느낌이 <등대로>에 그대로 살아있었다.

<속상하고 창피한 마음>이라는 미발표 유고작품집에서 단편을 발견하고 반가워 읽었다. 제목이 the Haunted house 였는데 유령의 집으로 ...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역시 번역본에서는 그 느낌을 못 살리고 있다.
어쨋든 50개의 작품 중에서 스치듯 읽었는데 기억하고 소환해서 확인하는 기쁨은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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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22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착착착 / 세이프 세이프 세이프 아니 뭔가 샥 샥 샥의 느낌인듯요. 원서의 리듬을 느껴보고 싶지만 그냥 생각만요. ㅎㅎ

그레이스 2021-04-22 10:28   좋아요 0 | URL
^^영어의 리듬과 정서를 둘 다 살리기 어려울듯요.;;
그 단어가 갖고 있는 고유한 것은 살리기 힘들듯 해요.^^
그래도 샥샥샥이 좀더 가깝네요.

초딩 2021-04-22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등대로 원서로 한 페이지 넘어가는 문장 한 번 보고 싶네여! :-)

그레이스 2021-04-22 18:17   좋아요 1 | URL
올렸습니다
time passes 2
 

불친절한 직역을 읽느니 차라리 원서를 읽는게 나을듯하다는 생각이다.
<등대로> 번역서 4개 중 가장 가독성이 높은 책이다(나에게)
세월 파트중 읽고 또 읽게 되는 부분! 너무 좋아서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 이유일것 같다.
원서도 세월편이 좋았다.
그녀의 글은 비유나 상징을 뛰어넘어, 세계의 또다른 현상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진다.
밤의 냄새로 가득찬 바람, 어둠으로 채워진 공기가 지나가는 집의 두런거리는 소리를 듣는것 같다.

그리하여 모든 불이 꺼지고, 달도 지고, 가는 비가 지붕을 두들기면서, 거대한 어둠이 퍼붓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그런 홍수를, 넘쳐나는 어둠을 이겨 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어둠은 열쇠 구멍과 틈새로 기어들고, 창문의 블라인드 주위로 새어 들고, 침실로 들어와, 여기서는 물병과 대야를, 저기서는 빨갛고 노란 달리아꽃이 담긴 화병을, 또 저기서는 서랍장의 각진 모서리와 단단한 형체를 집어삼켰다.
가구들만 알아보기 힘든 것이 아니라, 몸이건 마음이건 간에 이건그 남자〉, 〈이건 그 여자라고 분간할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때로 무엇인가를 움켜쥐려는 듯 또는 밀쳐 내려는 듯 손이 들리고, 누군가는 신음하고 누군가는 잠꼬대를 하는 듯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거실에도 식당에도 계단에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녹슨 경첩이나습한 바닷바람에 부푼 목재를 통해, 바람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자락들이 (워낙 낡아 빠진 집이었다) 모퉁이를 돌아 기어들기도 하고 용감하게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새어 든 바람은 거실로 들어와 너덜거리는 벽지를 가지고 놀면서 좀 더 오래 버텨 보겠어? 언제쯤 떨어질 거야? 묻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벽을 쓸면서, 벽지에 그려진 노랗고 빨간 장미들에게 시들어 버릴 거야? 묻는듯이, 휴지통에 담긴 찢어진 편지들과 꽃과 책과 이제 바람 앞에 노출된 이 모든 것에게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부드러운 태도로) 아군이야? 적군이야? 얼마나 오래 버틸 거야? 묻는 듯이, 생각에 잠겨지나가는 것이었다.

층계나 깔개를 희미하게 비추는 빛, 구름을 벗어난 어느 별이나 떠도는 배에서 어쩌면 등대에서 비쳐 드는 빛의 인도를 받아, 이 가느다란 바람들은 계단을 올라가 침실 문 주위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야 했다. 다른 무엇이 소멸하고 사라지든 간에, 여기 있는 것만은 굳건하다. 여기서는 저 미끄러지는 빛들에게, 침대 위에까지 몸을 굽혀 더듬는 저 바람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건드릴 수도 파괴할 수도 없다고, 그러면 그들은 지친 듯이, 유령처럼, 마치 깃털처럼 가벼운 손가락과 깃털처럼 가벼운 끈기라도가진 듯이, 감은 눈과 느슨히 쥔 손가락들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는피곤한 듯 옷자락을 접으며 사라질 것이었다. 그러고는 여기저기 쑤석대고 비비대며 계단의 창문으로, 하인들의 침실로, 다락방의 상자들로 갔다가, 돌아 내려가 식탁 위의 사과들을 희끗하게 비추다가, 장미 꽃잎을 뒤적이기도 하고, 이젤 위의 그림을 만지작거리고, 깔개를솔질하기도 하고, 마룻바닥에 조금 흩어진 모래를 쓸어 가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단념하고는 모두 동작을 그치고, 한데 모여서, 함께 한숨지으며, 지향 없는 탄식을 일제히 내뱉으면, 부엌의 어느 문이 화답하듯 활짝 열렸다가 아무것도 들여보내지 않은 채 쾅 닫힐 것이었다.
(베르길리우스를 읽고 있던 카마이클 씨도 촛불을 불어 껐다. 한밤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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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4-21 2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럼 저도 <등대로>는 열린책들로!!^^

새파랑 2021-04-21 2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열린책들로 읽어보고 싶네요 ㅎㅎ

scott 2021-04-22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울프 여사의 번역은 최애리님 번역이 쵝오 입니다. ^.^
 

콘스탄티노플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그리스 메가라인들이 이곳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비잔티움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기록되어있다.
여기서 또 같은 내용을 보니 반갑다.
옆에 두고 생각 날때 마다 보기 좋은 책이다.
아이들하고 함께 한챕터씩 읽어나가는 것도 유익하다.


오스만제국의 최전성기를 구축한 술탄은 1520년에 즉위한 술레이만 1세다. 명소로 꼽히는 술레이마니에 모스크는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1557년 이스탄불의 중심부에 건설되었다. 높이 54미터, 직경27미터나 되는 거대 돔을 만들고 건물을 에워싸는 네 개의 첨탑(미나레트) 표면도 치밀하게 장식했다. 
이 모스크를 설계한 건축가 미마르 시난은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미켈란젤로와 어깨를나란히 한 천재로 꼽힌다. 오스만제국에는우수한 그리스도교도의 아들을 이슬람교로 개종시켜 고급관리나 예니체리‘라 불리는 황제직속의 엘리트 군인으로 육성하는 제도가 있었다. 시난도 원래는 그리스교도 집안의 그리스인이었다.
1616년에는 시난의 문하생인 메메트아아가 건축을 담당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완성되었다. - P90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에서 언뜻 이스턴‘ 즉 ‘동방‘을 연상할지모르지만, 이 도시명은 그리스어의 ‘이스 띠 뽈린(도시로)‘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터키 인근에 사는 그리스인은 동로마제국 시대에부르던 이름에 따라 현재도 이곳을 그리스풍 호칭인 ‘콘스탄티누폴리‘라고 부른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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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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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을 읽고서야 전에 읽었던 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시구로를 한참 열독할 때 읽었다. 발췌해놓았던 것을 확인하고 어이가 없다. 바쁘게 읽었거나, 집중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억지로 의무감에 읽었거나 ……, 후자인 듯, 아니, 둘 다인 것 같다. 어차피 들었고 읽었던 기억이 희미하니 빠른 속도로 다시 읽었다. 뒷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흡입력이 이시구로의 다른 책보다는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영국에서 상하이로 다시 영국으로의 장소의 이동, 1930년에서 1937년과 1958년의 시간적 배경, 그리고 1910년대의 상하이 조계에서의 회상으로 이어진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의 구성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렇게 시공간을 넘나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1930년, 1931년 1937년 1958년으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주인공의 기억 속 진실이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다 읽고 나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를 애써 생각해야 하는 책이 있다. 이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 많아서 그럴까? 이 주제가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 소설이 던지는 문제의식이랄까 주제는 줄리언 반스의⟪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나 이언 매큐언의⟪속죄⟫와 맥을 같이 한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알 수 없을 때가 많다는 것. 드러나는 모습은 더 많은 이유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편견은 보고 있는 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판단의 칼날은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파탄으로 이끈다.

주인공 크리스토퍼 뱅크스가 월도프와 런던에서 만난 세라 헤밍스의 태도, 그녀와 세실경의 관계는 오해와 비판을 일으키기 쉽다. 크리스토퍼와 사교계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녀의 삶은 신분상승과 화려한 생활을 위해 결혼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세실경의 태도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세라 헤밍스와 결혼하지만 그녀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만난 그들의 본심은 겉으로 보는 것과 달랐다. 세라 헤밍스를 통한 경험은 가리워진 진실을 암시한다. 크리스토퍼는 어릴 적 상하이 저택에서 보고 경험하고 알고 있는 사실 뒤에 다른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상하이 조계에 살면서 아편밀수와 연루되어 실종된 아버지와 어머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삼촌에 대한 기억을 쫓아 상하이로 온 그는 새롭게 밝혀지는 단서들을 만난다.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찾아 간 곳 난징은 전투가 한참이었다. 이곳에서 일본군이 되어있는 어릴 적 친구 아키라를 만난다. 부상을 당한 아키라와 한 밤을 지새우고 그는 영국대사관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를 구하려는 그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삼촌을 만나 자신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구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후에야 홍콩의 요양시설에 있는 어머니를 만났고, 그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그렇게 크리스토퍼 뱅크스는 유년기에 묶여있던 상처를 치유 받는다.

작가는 영국으로 건너가기 전 상하이에 살았던 기억을 소설의 배경으로 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경험했던 영국인들과 일본인들의 생활과 에피소드 역시 소재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유년기의 불안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던 아키라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을까 아님 또 다른 친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내의 국제 조계에서 일어난 납치 사건 당시와 중일 전쟁의 중국은 불안정한 모습이다. 제 2차 대전이 끝난 후 1958년의 홍콩은 새로운 세기를 맞는 것처럼 안정을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크리스토퍼 뱅크스처럼.

전쟁이라는 거대한 흐름 뒤에 가리워진 개인의 삶의 진실들, 국가라는 거대한 의미 아래 감추어진 개별자의 인식과 삶의 의미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사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체된 인간들. 작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진실에 대해 많은 작품을 쓰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 소설에서 아키라에 주목하게 되었다. 작가의 내면에 남아있는 자아를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유년기의 아키라는 상하이에서 일본에 돌아가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잘못을 저지른 결과에 대한 벌이 일본에 보내지는 것이 될까봐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일본 본토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당시 일본 지식인의 자화상인가 하는 생각이다. 중일전쟁의 전장(戰場)에서 만난 아키라는 더욱 불안 증세를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서 이탈해 도망쳐도 중국인들에게 해코지를 당하고 있는 거할 곳 없는 일본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극우로 치닫고 있는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도 돌아갈 수도 없었던 일본 지식인의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상하이에서 영국에서의 작가의 정체성의 한 부분을 형성한 정서라는 생각이 든다.

전체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고아와 같은 정서와 정체성을 갖게 한다.

전쟁터 장면은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에서의 시가전을 기억나게 했다. 인터내셔널 조직원인 프랑스인이 국공합작이 깨지고 중국군과 공산군이 전쟁을 벌인 1927년 상하이 전투에 참전한다. 그의 참전의 목적은 공산혁명이라는 대의를 이루기 위함이다. 반면 이 소설 ⟪우리가 고아였을 때⟫에서는 한 인간의 잃어버린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주친 전투다. 사상적 대의이든지, 개인적인 사건이든지 서로 얽힐 수밖에 없다. 참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내가 이곳에 도착한 이후 내심 충격을 받은 것은 이곳에 사는 모든 이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치명적인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곳에 도착해 이 주 동안 지위가 높든 낮든 이들시민들과 나눈 교제를 통틀어 정직한 태도로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문명 세게 선체를 집이삼키려 위협하는 큰 소용돌이의 중심부인 이곳에서 사람들이 딱하게도 공모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자주 목격한 젠체하는 변명으로 책임 회피 그 자체에만 골몰해 사태를 엉망으로 만들어 왔다. 그리고 지금 그런 그들, 이른바 상하이의 엘리트들이 여기에 모여, 운하 저편의 중국인 이웃들이 겪는 고초를 경멸어린 어조로 논하고 있는 것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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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15 2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체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고아와 같은 정서와 정체성을 가지게 한다.]우와 그레이스님의 이 문장은 밑줄 두줄 쫘악[전체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고아와 같은 정서와 정체성을 가지게 한다.]우와 그레이스님의 이 문장은 밑줄 두줄 쫘악 ५✍⋆* 난징 대학살 시대에 집단 수용소로 끌려갔던 영국 작가 JG발라드가 당시 십대 였는데 영국으로 가족과 함께 돌아 온후에도 수년간 스스로 몸과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고아‘라고 느꼈데요이 작품의 주인공 ‘아키라‘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아버지 모습을 투영 시켰죠. 상하이 태생으로 중국에도 일본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않은 씩씩한 사나이로 기억 하더군요 자신의 아버지를,,,

그레이스 2021-04-15 22:21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아키라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네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4-15 22:32   좋아요 2 | URL
‘가지게 한다.‘
표현이 어색해서 ‘갖게 한다‘로 바꿨습니다. ㅋ
따로 떼어보니 이상하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4-15 2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처음 읽은줄 알고 읽다보니 전에 읽었더라는(1Q84 1권 이였습니다 ㅎㅎ)
이시구로 📚이라니 이것도 읽어야 겠습니다^^
 



알키비아데스(Alcibiades, BC450?~404)는 대 아이아스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다. 아이아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하다가 오딧세우스에게 빼앗기고 수치심과 분노로 자결한 사람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유능한 장군 크리아니스의 아들이다. 가문도 좋을 뿐 아니라 용모도 아름다웠고 사교술도 뛰어나고 전쟁에서의 지략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발음을 흉내 내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관심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가 알려지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와 가까이 지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소년인 그를 아끼고 사랑해서 가까이에 두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전투에서 위험에 빠진 알키비아데스를 구해주기도 하고, 알키비아데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알키비아데스 또한 소크라테스를 존경해서 그를 몹시 사랑하고 따랐다고 한다. 반면 알키비아데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교만하고 난폭한 태도를 보여서 정적이 많았다고 한다.

알키비아데스가 활동한 시기는 델로스동맹이 깨지고 스파르타 연맹과 아테네의 연맹이 패권을 놓고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기이다. 많은 전쟁에서 알키비아데스는 공을 세우기도 하고 웅변술도 뛰어나 그의 가까이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정적들을 만든다. 이 때문에 모함을 받고 재판을 받기도 하고 결국은 탈출해서 스파르타와 페르시아를 위해 전투에 참가한다. 자신이 가진 자금으로 군사를 모아 용병으로서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 그리스 고대 도시국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던 같다. 아직 국가주의라는 것이 탄생하기 훨씬 전이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근대의 정의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스를 침공했던 페르시아로 도망가서 여생을 마친 그를 영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시대 역시 그런 그를 영웅전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페리클레스에게서 모든 것을 물려받았으나 그 정직함만은 물려받지 못했고, 소크라테스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지만 그 도덕성만은 배우지 못했다고 그를 평가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1장 알키비아데스 편을 읽고 정리하면서 오래 전 읽었던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이 떠올랐다새로 출간된 감정의 혼란에 대한 리뷰가 올라오는 것을 자주 본 탓이기도 했다.



주인공과 교수의 감정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이 인상적으로 각인 되어 있어서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관계로부터 자연스럽게 연상된 것 같다. 이 소설에서 대학교수의 서재에 걸려 있던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하나의 복선이었다.

 

책상 위에는 라파엘의 <아테네의 학교>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특히 사랑하는 그림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종류의 교수와 정신의 표현을 상징적으로 완전한 종합체를 이루도록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의식중에 나는 소크라테스의 완고한 얼굴 속에 그의 이마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은 이 교수에게서 지적인 욕망을 채운다. 그의 강의에 매혹당하고 굶주린 듯 빨아들인다. 한 마디 한 마디, 몸짓, 손짓까지 욕심 사납게 집어삼키고 돌아와 끌어안고 어루만지고 간직한다는 표현은 지적 욕구가 아닌 성적인 욕망을 나타내는 묘사이다. 그의 삶에서의 습관조차도 그의 가치관에 의해 버려지거나 새롭게 조종당하는 것을 본다. 마치 연인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러나 때때로 보이는 차가운 반응과 사적인 삶에서 보이는 미스터리한 모습은 주인공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교수의 모습은 마치 파우스트의 옷을 입고 발푸르기스의 밤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바그너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교수의 고백으로 냉정과 열정을 오갔던 태도의 정체가 드러난다. 함께 주인공의 혼란스러웠던 감정의 이유도 밝혀진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모든 기억이 맹렬하게 물결치고, 마치 하나의 암호가 모든 이해할 수 없었던 보고의 말을 한꺼번에 다 풀어 준 것 같았습니다. 내게는 지금 무섭도록 모든 것이 명백하게 되었고, 그날 밤의 애정적인 그의 방문과 그의 늘 무뚝뚝했던 변명이 죄다 알려졌습니다. 그 날 저녁의 그의 방문과, 감격하여 달려든 내 열정에 대해 언제나 그가 무뚝뚝하게 회피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127p

 

주인공이 교수를 떠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논문집을 펴내며 현재의 자신이 있게 된 정신적인 생명 과정의 가장 깊은 비밀이 바로 이 교수와의 만남에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청춘의 진실과 함께.

 

주인공이 느꼈던 감정의 혼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교수의 열정을 따라가면서 탐욕스럽게 집어삼킨 지적 욕망의 끝에는 동성애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때 주인공은 감정의 혼란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그 혼란스러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주인공이 카타르시스나 극치를 경험한 것의 정체가 육체적인 욕망이었는지 지적인 것으로 인한 것인지 혼동했을 수도 있었을까? 인간의 욕망의 끝은 결국 종착점에 이르러 한 곳에서 만나는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이나 그 뿌리의 웅덩이 속, 또는 하수도 속과 같은 그런 곳에서만 진실로 위험한 정열의 야수가 인광을 발하며 숨어서 각양각색의 괴기한 유혹 속에 남 몰래 연결되기도 하고 분열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131p

 

츠바이크를 한참 탐독할 때 읽었던 정신의 탐험가들이 또 하나의 고리를 만든다. 심리 치료의 세계를 개척한 학자 안톤 메스머와 메리 베이커 에디, 프로이트에 이르는 정신의 탐험가들에 관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이다. 프로이트에서 출발해 융, 정신분석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책이었다. 지금은 절판 상태. 츠바이크가 계속 꾸준히 읽혀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다시 출간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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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4-14 2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감정의 혼란 읽으면서 그리스식 멘토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레이스님글, 고개 끄덕이며 잘 읽었습니다. 너무 좋아요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어린시절 동화책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레이스님 글 읽고나니 제대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편한 밤 보내세요 ~

청아 2021-04-14 2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글을 보니 츠바이크가 자신의 소설에서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관계를 염두해 둔것 맞는 듯! 역시 지식이 쌓일수록 이해 반경도 넓어지겠어요. 아아 저도 츠바이크의 절판된 책들 재출간을 바랍니다아! 😁

라로 2021-04-14 22: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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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7, 총 777 방문

안녕하세요? 예전 알라딘 서재에서는 이렇게 특이한 거 서로 캡춰해주고 했는데,,,옛날 생각 나요.
제가 그레이스님 서재에 오늘의 7번째면서 777번째 방문자네요!! (혼자 의미를 두고 있는;;;)^^
이렇게 사유가 팽창하는 글 좋아해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1-04-14 23:07   좋아요 1 | URL
의미를 부여하는것 어째 설레이네요.
김춘수의 꽃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레이스 2021-04-14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모두!

새파랑 2021-04-14 2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되는군요. 그레이스님 완전 전문가시네요^^ 전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그냥 감정의 혼란만 느겼는데~역시 아는만큼 보인다는~!!

그레이스 2021-04-15 00:05   좋아요 1 | URL
올리시는 츠바이크 책 정보 많은 자극이 돼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제게 없는 책이어서 구입해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바람돌이 2021-04-15 0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 감정의 혼란 읽으면서 아테네 학당 얘기는 그런가 하고 넘겼는데 그레이스님 글 읽다 보니까 진짜 복선 맞네요. 하 또 이렇게 새로운 시각을 배워갑니다. ^^

scott 2021-04-15 1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츠바이크옹의 감정의 혼란은
결국 아테나 학당 그시기의 논쟁에 관한
인간의 지적 욕망을 향한 열뛴 토론을
한권에 소설에 담아 버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