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동안 죽음과도 같은 잠을 잔 올랜도, 몽롱한 상태의 시간이 지난 후, 사샤를 기억하고 흐느껴 운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는다. ‘토머스 브라운경의 길고 경이롭게 비틀어진 사고의 섬세한 표현을 살펴보았다’는 것은 쉬운 책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올랜도가 고독에 빠지는 방식이다. 그렇게 책에 빠져 들어가며, 슬픈 기억이 사라지고, 자신이 있는 저택과 재산이 사라지고, 하인들이 사라지고.... 철저한 고독에 빠진다.
당시 읽고, 쓰고, 출판하는 행위는 귀족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끊임없이 쓰기를 욕망했고, 사람들을 피해 격정적으로 펜을 잉크에 담갔다. 그렇게 고통을 받아왔다.
자신의 원고들이 담겨진 삼나무 서랍 앞에 선 올랜도!
읽어가면서 나를 멈추게 한 장면이 바로 여기다. 삼나무 서랍 앞에 적혀진 원고의 제목들. <아약스의 죽음>, <피라무스의 탄생>,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히폴리투스의 죽음>, <멜레아그로스>, <오디세우스의 귀향>.
이 지점에서 나는 이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인생의 위기에 처한 신화적 인물의 이름들이다.
『일리아스』에서 <아약스(아이아스)의 죽음>은 그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와 미덕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아이아스는 죽은 아킬레우스의 투구를 누가 받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오딧세우스와 공을 다툰다. 결국 투구는 오딧세우스에게 돌아가고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 아이아스는 죽음을 택한다. 명예를 잃어버린 것은 아이아스에게는 목숨을 잃은 것과 다름없는 위기이다. 트로이 전쟁 10년 시점에서 보여주는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갈등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과, 여인, 전리품, 아킬레우스의 투구 이것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들이지만 그것을 획득하는 자는 명예와 존귀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물러설 수 없는 것이다. 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오딧세우스의 항해는 신들과 이름 모를 섬들에 사는 요정들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 오딧세우스의 ‘집으로’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순식간에 그동안의 고생이 무색할 만큼 쉽게 이루어진다.
티스베와 티라무스가 집 사이에 놓인 벽의 작은 구멍을 통해 서로를 욕망하는 사랑 이야기는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티스베>로 유명하다.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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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는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이다. 아버지 아가멤논에 의해 제물이 된 이피게네이아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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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레아그로스의 아탈란테에 대한 사랑과 경주와 그의 죽음 역시 허무하다.(토마스 불핀치의 <신화의 시대>)
이들의 인생의 어려움은 한 사건이나 한 가지 행위로만 자초한 것이 아니다. 신들의 경쟁과 질투, 순간의 판단, 우연들이 겹쳐진 시간들의 결과다.
올랜도는 신화와 현실의 인물들을 변형시키고 재창조 한다. 뒤에 올 이야기들은 예측할 수 없다. 잉크병을 끌어당기는 평범한 행위도 이야기에 영향을 준다. 이어지는 글쓰기에 대한 은유들은 탁월하다.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 대부분은 미지의 바다에 떠 있는 배의 항로와 같다. 돛대 꼭대기에 오른 선원들은 망원경을 수평선 쪽으로 향한 채 저기 육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다. …… 기억이란 재봉사이고, 더군다나 변덕스러운 재봉사이다. 기억은 안팎으로, 위아래로, 여기저기 바늘을 놀린다. 우리는 다음에 무엇이 올지, 이후에 무엇이 이어질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탁자에 앉거나 잉크병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과 같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동작도 서로 무관한 수천 개의 단편적인 조각들을 뒤흔들어 놓아, 때로는 밝은 조각이, 때로는 어두운 조각이 빨랫줄에 걸린 열네 명 가족의 속옷이 돌풍에 나부끼듯 매달려 까닥이고 펄럭이다가 떨어진다.]
-82p
책을 읽어갈 때 모르는 고전이 나오면 절망과 찾아보는 행위들로 맥락이 끊어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그러나 아는 내용들이라는 안도감은 잠시뿐이다.
올랜도를 읽다 말고 신화와 호메로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을 기억하고 사색하기 위해 여러 번 멈춰야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부터 1928년까지의 역사는 오히려 읽어가는 재미를 더해준다. 『창문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의 이른 형태라고 해야 할까?)
문학의 자취를 따라 드리워 진 신화와 호메로스의 긴 그림자를 보게 된다. 플로베르는 “모든 위대한 작품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디세이아”라고 했다고 한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이펙트』에서 호메로스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 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뿐 아니라 이슬람 문학 속에 나타난 호메로스의 편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역사로서, 관념으로서, 상징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호메로스는 길잡이별과 같다.
애덤 니컬슨은 호메로스의 작품들과 연관되어 있는 신화와 역사, 고고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작품이 쓰여 진 시대를 전후로 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설화나 작품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호메로스는 요소요소마다 역사적 단서를 전달하고 있다. 일리아스의 도입부에서 성문너머로 펼쳐진 벌판의 풍경가운데 봉분이 높게 솟은 미리네의 무덤은 청동기 시대 유라시아 전체에서 발견되는 유의 무덤이다. 이 대목에서 소름이 돋는다. 고고학자의 눈에는 문학작품에 그려진 풍경에서 단서가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호메로스에 관련된 책들을 읽다보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는 여러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안에 담긴 보화는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주 자주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시점을 맞이한다.
올랜도에 대한 감상을 쓰기도 전에 이 부분부터 써야 했다. 이 지점에서 생각이 맴돌고 차올라서 정리하지 않고 가면 체한 것 같은 기분으로 읽게 될 것 같았다. 지금 돌아보면 신화나 호메로스, 그리스 비극을 읽어 놓기를 잘한 것 같다. 비록 놓치고 온 것이 많겠지만, 그 작품이 거론 될 때마다 되새김질 하는 풍요로운 시간들을 갖게 된다.
올랜도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마르마라 너머, 저 멀리 그리스 평원을 바라본다. (놀라운 시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자신의 문학의 원형인 신화와 호메로스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해답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분명 파르테논 신전일 것이라 짐작되는 희고 기다란 줄 한두 개가 보이는 아크로폴리스를 알아보았을 때, 그녀의 동공과 더불어 그녀의 영혼도 확장되었다.]
- 149p
결국 나는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파네스의 대화까지 찾아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