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쓰는 만년필입니다
첫번째가 요즘 즐겨쓰는 중국산 만년필, 디자인과 필기감 좋아요
두번째가 중국산 어중이 떠중이들 개중에는 마름현상이 심한 것들도 있어요. 주로 밖에 들고 나가는,애들이예요
마지막 사진 두개가 워터맨과 펠리칸 세일러들이예요
같은 펜들 눕혀놓고, 세워놓고 찍은 사진요
얘네들은 소중하니까^^
워터맨이 많네요^^

추가로 요즘 모으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 !

그리고 ‘피네티 기가 저널‘ 그리고 트위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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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30 0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우아
스피치리스 입니다 ㅎㅎㅎ

서니데이 2021-06-30 01: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만년필 마니아이신가요.
잘 맞는 펜이 있는 건 좋은 일 같아요.
사진 잘 봤습니다. 좋은밤되세요.^^

그레이스 2021-06-30 09:16   좋아요 4 | URL
같이 사는 사람이 마니아구요
저는 옆에서 얻어쓰는? 사람요
그래서 잘 몰라요.
만년필 세계도 어마어마 하더라구요.

라로 2021-06-30 02: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넘 늦게 이 페이퍼를 봤나봐요!!흑흑
저도 보고싶어요, 다른 분들이 보신 사진들,,왜 깨졌나???ㅠㅠ
나쓰메 소세끼,,저는 달랑 한 권 읽어본 작가,,,뭐든 모으는 일은 참 애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님처럼 모으는 작가가 몇 있어요.^^;;

앗! 뭐죠?? 댓글 올리고 나니까 보이는 사진들은???ㅎㅎㅎㅎㅎㅎ
워터맨 카렌 하얀색으로 들이고 싶은데 완전 품절,,ㅠㅠ 그거 넘 이쁘구요
펠리칸은 필감이 어때요??? 저는 펠리칸은 주니어만 갖고 있어요. 그런데 막쓰기 좋네요.

그레이스 2021-06-30 09:13   좋아요 3 | URL
펠리칸은 필사하는데 좋아요
잉크가 많이 들어가서...
잉크 남은 양도 보이구요.
트위스비가 탱크식이죠? 컨버터가 아니라.

필기감도 좋구요
ef닙도 잘 안말라요^^

하이드 2021-06-30 05: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만년필 구경 좋아요. 전 워터맨은 한 번도 안 써봤네요. (눈독) 일본 만년필 세필이 지금까지는 저한테 제일 맞았어요. 다이어리에 끼워두고 매일 쓰는건 카웨코구요. 세일러, 플래티넘이 제일 많아요. 만년필 사진 종종 올려주세요!

그레이스 2021-06-30 09:20   좋아요 2 | URL
ㅎㅎ
주는 거 받아쓰는 처지라^^
그런 것 치고 많긴 하네요^^

얻게 되면 또 올릴께요

새파랑 2021-06-30 07: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만년필과 소세키책 모음은 너무 멋지네요~!! 역시 뭉쳐야 멋있는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1-06-30 08:31   좋아요 3 | URL
^^

다락방 2021-06-30 08: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라로님 페이퍼에서는 만년필용 가죽케이스 보고 이런게 있구나 신기했는데, 그레이스님 페이퍼에서는 저렇게 또 만년필 꽂이를 보게 되네요. 아 정말이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은 세상입니다.

저는 소세키 작품 모으신 게 너무 좋네요. 저는 소세키를 모으지 않지만 누가 한 작가의 작품을 모으는 거 보면 그게 그렇게나 좋더라고요. 히히.

그레이스 2021-06-30 08:58   좋아요 4 | URL
다이소제품이예요^^
‘도련님‘ 중고로 샀는데 너무 헌책이라 실망했어요 ㅠ
함께 꽂아놓으니 조금 괜찮네요.

청아 2021-06-30 08: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흐앙~♡♡ 만년필 디자인에 취향이 묻어나는군요!! 멋져요👍

mini74 2021-06-30 14: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책들 모아놓으니 너무 예뻐요. 만년필, 아이가 갖고 싶어해서 몇 개 사줬는데 학교 갖고다니다 어느 순간 놔두고 가더라고요. 이유를 물었더니 ㅎㅎ 선생님이 만년필보곤 우와~~~ 하시더니 글씨보곤 헉! 하시더라고 ㅎㅎ 완전 악필이거든요. 그 덕에 만녀필 제가 쓰고 있지요. 소중하고 예쁜 만년필, 부럽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06-30 15:04   좋아요 4 | URL
^^;;
만년필로 글씨쓰려면 연습이 필요하죠.ㅋㅋ
그런데 만년필로 쓰면 늘어요^^

레삭매냐 2021-06-30 17:5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만년필보다 소세키 컬렉션에
더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문구쟁이 < 책쟁이여서
겠죠...

세월의 흐름이 묻어서 더 멋진
소세키 컬렉션이었습니다.

그레이스 2021-06-30 18:09   좋아요 3 | URL
세월의 흐름이 묻은 책!
위안이 됩니다 ^^

붕붕툐툐 2021-06-30 23: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일하게 사고 싶은게 저 현암사 소세키 전집이에요~ 너무 예뻐서.. 한 권도 제대로 못 읽었지만.. 근데 아마 꽂을 자리 없어서 못 살 거 같아요. 대리만족 하고 갑니당~^^

scott 2021-07-01 0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흔적이 뭍어나는 만년필들!
얼마나 많은 잉크병들이 비워졌을지 그레이스님의 취향이 묻어 나네요
잉크 채우고 클린 하는게 귀찮아서 전 기냥 카트리지 끼워쓰지만
가격 이런거 떠나서
펜촉과 그립감이 뛰어난 제품이 제일 좋더군요.
비싸면 모셔 놓게 됨 ^ㅅ^
 

그녀는 일자리를 잃으면서 자유도 빼앗겼다 카멀과 로즈, 코니 조와 함께 다이아몬드 커피 독에 앉아 있을 자유, 비용 먼저 따져보지 않고 투스크린 리츠에서 저녁을 보낼 자유. 통조림공장이 폐업한 지 몇주 되지 않아 그녀는 모아둔 돈을 다 썼고, 당연히 아버지가 분명히했듯이 집으로 들어오는 실업수당은 전부 식비와 생활비로 들어갔다. 가족은, 특히 홀아비 가족은 힘을 합쳐야 했다.
- P42

그것은 아버지가 그녀에게 원하는 바였다. 아버지는 펠리시아가 매과이어 피그스에 취직하기에는 자격이 부족했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했다. 그녀가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면 실직 상태를 벗어나면서도계속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아버지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오빠들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할 수 있을 터였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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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6-29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유에 대한 표현이 좋네요. ^^

그레이스 2021-06-29 10:55   좋아요 1 | URL
현실적이죠. 이런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독서괭 2021-06-29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있는데 흥미진진해요~^^

그레이스 2021-06-29 12:39   좋아요 1 | URL
약간 긴장하면서 읽고 있어요^^

초란공 2021-06-30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궁금해집니다.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을 책일지...책소개에는 뭔가 긴장감이 느껴지는 소설 같기도 하구요. ^^

그레이스 2021-06-30 12:39   좋아요 0 | URL
여러가지 생각할 지점이 많았습니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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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놈아, 너는 어찌 이 늙은 애비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하느냐.”

죽은 세자를 안고 우는 영조의 비탄의 말이다.

공부가 국시고 예법 또한 국시다

영조의 이 말에서 이미 관객은 영화가 줄 메시지의 방향을 짐작한다.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 영화 사도

 

아들과 아비의 뒤늦은 대화가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독의 시선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 비극이 집안일이고 부자간 갈등으로 이해되어야 할 사건인가? 공부지상주의,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러나 조선왕조에 단 한번 등장한 일물(一物, 뒤주를 뜻함)에 의한 왕위계승자의 죽음, 정조의 병신처분’(1776, 정조즉위년)으로 혜경궁 친정의 몰락 등은 영화의 이 해석에 동의할 수 없게 한다.


역사란 궁극적으로 기억과 망각의 시뮬라시옹으로 존재한다’(팩션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김기봉)고 했나? 역사가 어떤 거대담론에 의해서 과거의 기억과 망각을 결정하는 언어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역사영화는 말할 것도 없이 작가와 감독의 시선 안에 갇혀 재현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래서, 다시 뽑아들었던 책이 바로 이덕일의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였다.

 

이 책을 시작하며 작가는 고등학교 국어시간 읽었던 한중록을 떠올린다. 혜경궁의 일관된 메시지는 이 비극이 영조의 이상성격과 사도세자의 정신병의 충돌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중록내용과 의도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그 단서를 영괴대(靈槐臺)’비에서 찾았다고 한다. 이 비영조실록에 기록된 사도세자의 모습은 한중록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중록은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1편만 정조 때 쓰고 2~4편은 정조 사후에 기록했다. 기록 시기만 생각해보아도 혜경궁의 의도는 친정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이 없음을 밝히고자 함임을 알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나경언의 고변이었다. 나경언은 먼저 형조에 1차 고변을 했고, 이 형조에 넣은 원서로 인해 왕을 청대하게 된다. 1, 2차 고변서의 내용은 읽고 불에 태워서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1차 원서에 왕을 청대할만한 심각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면 그것은 역모에 관한 것 외에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심각한 내용이라도 일개 상민이 왕을 만나기위해서는 누군가 중간에서 힘을 쓰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품에서 흉서를 꺼낼 때 까지 아무런 제지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배후의 존재를 추측케 한다. 2차 고변서의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세자의 비행에 관한 일이다. 영조는 나경언을 무고죄로 죽인다. 그러면 세자의 비행에 대한 고변이 거짓이란 말인가? 문제는 1차 고변의 내용인 것이다. 고변의 핵심은 변란이 호흡사이에 있다는 말이었다. 즉 세자가 군사정변을 일으키리라는 고변이었다. 영조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보다는 나경언의 고변에 대한 예단을 지니고 있었다. 나경언의 고변 20여일 후 세자는 뒤주 속에 갇히게 된다.

노론의 힘에 의해 왕위에 오른 영조는 경종독살설에 시달렸다. 대표적인 사건이 나주벽서사건이다. 영조의 탕평책은 이 사건으로 무너지게 된다. 영조의 군주로서의 정체성은 노론의 힘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소론에 가까웠다. 세자의 대리청정 기간에 보여준 친소론적 모습은 영조나 노론이 위기를 느끼게 했을 것이다. 세자의 죽음을 전후로 노론의 영수인 혜경궁의 아버지 홍봉한의 행적은 나경언의 고변의 배후에 그가 있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정조 즉위 후 처분들은 정조가 이것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작가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역사에 숨어있던 진실을 드러냄으로 다른 시각과 추론을 제시한다. 그는 이 책의 다른 제목 사도세자의 고백1판과 2판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가해자와 피해자는 역사 속에 묻혔다. 그리고 240년의 세월이 지나 나의 손에 의해 재구성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 담긴 것이 역사의 진실이라고 강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Hans-Georg Gadamer진리와 방법에서 하나의 작품은 일단 형태화하고 난 후에는 그 창작자나 해석자의 의식으로부터 독립되어 자기 자신의 고유한 존재방식을 갖는다.’라고 말했듯이 독자적인 생명력을 얻어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한중록이 그랬던 것처럼.”

 

읽은 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 이 책을 떠올려 보면 조금은 편향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의 문제제기는 한 가지 관점으로 알고 있던 사건을 정치, 외교, 군사 등 보다 넓은 시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창덕궁 규장각이 있는 후원으로 가는 입구에 정조 때 동궁전이 서있다. 아마도 경희궁과 창덕궁에 머물던 영조와 창경궁에 있던 사도세자의 거리가 너무 멀어 그 사이에 신하들의 당쟁이 끼어든 것은 아닐까하여, 정조가 아들을 가까이 하기 위해 창덕궁 안에 동궁전을 두었다는 해설사의 말이다. 잠시 가슴이 저릿했다.

 

한중록을 통해 알고 있던 사도세자의 모습은 기억된 과거는 역사가 되고 망각된 과거는 역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세검정에서 사초를 씻는 행위는 이 사실을 의미하는 퍼포먼스다.

로마사에 대한 기번과 몸젠의 시각이 다르고, 시오노 나나미에게는 제국주의 사관이 숨어있다. 역사가는 자신의 역사관을 입증하기 위해 사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하는 사료들을 최대한 수집하고 그것들을 통해 진실에 가까운 역사를 재현하려 한다. 하지만 그 작업이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기록의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결국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읽는 사람에게도 철학과 균형 있는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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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6-28 23: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잘 읽었습니다. 마주칠때마다 당황스럽고 속터지는 이 사건. 얽히고 설킨 것들의 결과였군요.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어야했는지 원망은 가시질 않네요.😭

그레이스 2021-06-28 23:38   좋아요 3 | URL
늘 불안했던 영조와 사도세자를 둘러싼 세력과의 긴장이 있었고, 세자는 외교에 있어서도 영조와 다른 의견이었다고 합니다.
영조의 불안과 긴장이 세자의 연약한 성격에도 영향을 주긴 했겠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만화를 보면 중립적인 시각으로 이 사건을 그리고 있긴 합니다.

scott 2021-06-29 0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국 세자는 정치의 희생자 인것 같습니다.
한중록은 집안의 명예회복을 위해 쓴것
아들 정조 보다 15년이나 더 살다간 헌경 왕후, 혜경궁 홍씨

이책 다큐로 만들어지면 좋을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1-06-29 00:46   좋아요 2 | URL
처음 읽은 후로 그동안 두번은 더 읽었습니다.^^ 이덕일 역사책은 모두 읽을만 합니다!

희선 2021-06-29 0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사에 적힌 게 맞기는 하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겠지요 적히지 않은 것도 알면 좋겠지만, 잘못된 쪽으로 상상하면 안 될 것도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 배우는 역사도 한쪽으로 치우칠 때가 많은 듯합니다 그런 거 그때는 하나도 몰랐지만... 지금도 아는 거 별로 없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1-06-29 06:36   좋아요 3 | URL
실증주의에 의한 역사기술이 누락시키고 왜곡시킨 부분이 많았구요. 이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때의 역사를 읽었었죠^^
감사합니다 ~

bookholic 2021-06-29 08: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덕일 님의 책들을 읽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다른 역사가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친한 선배 형님이 이덕일 님의 책도 그대로 다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정병설 님의 <권력과 인간>을 추천해 주셨는데요...
역사의 기록은 역사가의 생각이 안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덕일 님의 책도.. 정병설 님의 책도...
나중에 정병설 님의 <권력과 인간>도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그레이스 2021-06-29 09:29   좋아요 1 | URL
예 맞아요 .
이덕일 님도 치우쳐 있어서 균형잡고 읽어야 해요.
그동안 역사학계가 한 흐름으로 와서 이런 분의 역할이 필요했지 않았나 싶어요.^^
정병설님의 책도 알고 있는데 소개해주신 책은 못읽었네요.
정병설님이 이덕일님 상대로 소송하겠다고 했던 기사가 기억납니다. 재판까지 갔는지는 모르겠구요.

이덕일님이 적이 많은 듯요^^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1-06-29 19:34   좋아요 1 | URL
두 분이 소송 이야기까지 나왔었군요....
 

플로베르의 <살람보>를 주문했다.^^
카르타고의 유적지를 소개하며 <살람보>가 플로베르의 대표작이라고 이야기한 몇 줄 때문에....
아마도 유적지의 사진들과 포에니전쟁, 로마, 카르타고 고대역사를 읽던 향수?가 작용한듯, 기대만큼 좋은 작품이길...
<살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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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인 시민이 될 수 있다면 국가는 그들에 대한 투자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특수학교로 보내져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과 지원을 받았다. 교육 불가능", 나치가 사용했던 용어로
"무가치한 어린이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가차없이 처형되었다.
 비엔나에서 이런 판정과 살해 과정은 슈피겔그룬트spiegelgruna 라는 시설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겉보기에는 어린이병원을 닮은 시설이었다. 어린이를 살해하는 데는 수일에서 수주가 걸렸다. 항경련제인 페노바비탈phernsburbital 을 매일 먹이는 방법을 썼기 때문이었다. 분유나 코코아에 타 먹이거나 좌약 형태로 투여한 약물은 폐 기능을 조금씩 손상시켰다. 사망 원인은 보통 폐렴으로 기록되었다. 동원된 의료인들은 향후 연구를 위해 어린이의뇌를 적출하여 보존한 후, 가족들을 불러 자녀의 시신을 수습하게했다.
비엔나에서 활동하던 의사 중에 나치가 장악한 의료관료주의의영향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틀림없이 아스퍼거는 매일 그들을 만났을 것이다. 비엔나 대학병원의 스승 프란츠 함부르거 Hamburger 는 열렬한 나치당원이었다. 아스퍼거 자신도 비엔나 시의다양한 자문위원회에 소속되었다. 조직의 최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으레 충성스러운 히틀러주의자였다. 눈꼽만치라도 야심이 있는오스트리아인이 전문직종에서 살아남으려면 절대로 나치의 반감을 사서는 안 되었다. 그들과 잘 지낸다는 것은 곧 체제에 맞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 P446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세탁용 세제의 상표명은 퍼실persil이다. 원래 독일에서 생산된 퍼실은 지금도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세제다. 하지만 2차대전 직후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그 단어는 일종의 음산한 유머로서 당시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들이 나쁜 평판을지우기 위해 기울인 맹렬한, 때로는 터무니없는 노력을 가리키는말이었다. 연합군 측의 "비나치화 정책에 힘입어 영향력있는 위치에서 나치당원과 부역자를 몰아내려는 노력이 전개되자 사람들은허둥지둥 결백을 입증해줄 증인을 찾아다녔다. 홀로코스트의 광기에 사로잡힌 시대에 친절하거나 인간적으로 품위있는 행동을 했던순간을 유대인이 나서 증언해준다면 특히 가치가 있었다. 오명을씻으려는 사람은 종종 게슈타포에게 체포 협박을 당했다거나, 나치정책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희생자로 묘사했다. 나치에 보조를 맞춘 것은 책략일 뿐, 사실은 몰래 저항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노력이성공을 거두면 결백함 또는 "깨끗함을 인증하는 서류를 발급받았다. 그 서류를 페르질샤인, persilschein, 즉 "퍼실 증명서Persil certificate" 라고 불렀다. 그러나 심지어 그때도 페르질샤인에 대한 냉소가 팽배했다.
- P466

 "집에 둔다면 아이는 건강한 아이 다섯을 돌봐야 하는 어머니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될 것이다." 헤르타의 어머니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 후 아스퍼거는권고한다. "슈피겔그룬트에 영구적으로 입원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함." 그 아래에 서명이 있었다. 한스 아스퍼거."
모든 청중이 아스퍼거의 편지가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그것은사형선고였다. 실제로 크체하는 헤르타가 1941년 7월 1일 슈피겔그룬트에 입원했으며, 세 번째 생일 다음날인 1941년 9월 2일 그곳에서 살해당했음을 확인했다. 기록상 사인은 폐렴이었다. 병원 문서보관소에 남아있던 기록에는 아이 어머니가 평생 비참한 꼴로 조롱당하며 사는 것보다 차라리 이런 길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데 눈물을흘리며 동의했다고 적혀 있었다. 헤르타의 부모 역시 나치 이념을지지했다는 것이 크체히의 평가였다. 그의 이야기가 불러일으킨 효과는 강력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청중은 프로그램 표지에 실린 아스퍼거와 소년의 사진을 힐끔거렸다. 크체히가 조용하고 감정없는목소리로 나치의 과거에 대해 더욱 마음 불편한 소식들을 전하는동안 축제 같던 분위기는 급변했다. - P475

레오 카너가 첫 번째 논문에서 기술한 지 거의 40년이 지난 1980 년에 발간된 DSM-III까지도 자폐증은 진단명으로 등재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정의 자체가 자주 달라져 1987년에 크게 바뀌었고,
1994년에도 다시 변경되었다. 2000년에는 약간 달라졌을 뿐이지만, 2013년에는 격렬한 논쟁과 함께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내용의김이 역시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증상 체크리스트를 구성하는단어 수는 처음에 약 70개였지만 한때는 600개를 넘었으며, 다음판에서는 300개로 줄었다가, 판이 두 번 바뀐 뒤에는 다시 확장되어 거의 900단어를 헤아렸다. 진단명 자체도 유아자폐증에서 자폐장애로, 다시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계속 바뀌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폐인을 식별하기 위해 개발한 증상 체크리스트가 끊임없이 개정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판에서는 16가지 진단기준 중 8가지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만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12개 기준 중 6개인 때도 있었다. 또 다른 판에서는 볼크마와 예일 대학의 브리안 라이카우Batan Recilions 의 주장에 따라 2,000개 이상의 진단 조합 중 하나에해당하면 자폐증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이런 양상은 1994년 아스퍼거 장애가 독립적인 진단명으로 추가된 이후 더욱 복잡해졌다. - P521

친구들이 갑자기 연락해 아이가 전화번호부를 외우는지, 이쑤시개 숫자를 기막히게 빨리 세는지 물어보는 바람에 귀찮아 죽겠다는 부모들이었다. 그러나 레인 맨>은 자폐증의 가장 초기부터 끈질기게 부모들을 괴롭혔던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외부인에게 자폐증이 어떤 상태인지 설명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오래도록 견딜 수 없을 만큼 외로웠지만마침내 모든 사람이 적어도 대충은 자폐증이 어떤 상태인지 알게된 것이다.
루스 설리번이 옳았다. 〈레인 맨>은 자폐증의 서사를 영원히 바꾸었다. 자폐인의 진정한 어려움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영화를 본절대 다수에게 그것은 여전히 타인의 급박함일 뿐이었다. 하지만1988년 이후 대중은 자폐증이 어떤 상태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했고, 동시에 전반적으로 자폐인의 모습에 우호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분명 진보였다. 자폐증이란 세계에서 최초로 배출한 스타인레이먼드 배빗 symond Eathat 이 가공의 인물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보다 먼곳까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살아숨쉬는 자폐인 중에서 스타가 탄생해야 했다.
- P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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