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동네에 돌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 봄품이었다. 소문이 구체화될수록 동네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져갔다. 부모님은 우리가 살던 동네가 하루빨리 허물어져버리길 바랐고, 그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부모님은 골목을 쓸었고, 골목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면 묵례를 했다. 나는 우리 중학고 졸업생 중 소수만 진학할 수 있었던, 강 건너의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말수가 조금 더 줄었다. 우리 동네까지는 스쿨버스가 오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스쿨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일반 버스를 타고 가야만 했는데, 그래서 나는 몇 배나더 피곤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뒤 버스를 갈아타고 밤늦게집에 오는 날들이 많았기 때문에 해지와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간혹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조퇴를 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는 해지가 집에 없기 일쑤였다. 그렇게 일찍 집에 돌아와봤자 혼자 있게 되는 날들에는 처음 이사왔던 날 아버지가 내게 아파트 단지를 보여주었던 옥상에 쭈그려앉아, 사라져가는 태양의 빛줄기가 쇠락한 골목과 남루한 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검버섯 핀 노인의 얼굴을 쓰다듬듯이..
그러면 그 손길을 따라, 동네는 쪽잠을 청하는 고단한 노인처럼 - P93

주름이 깊게 팬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해가 지고 나면 대기에남아 있던 온기도 노인의 마지막 숨결처럼 느리게 흩어져갔다. 몸에 한기가 깃들어 더이상 앉아 있기가 힘들어지면 그제야 나는 쭈그렸던 다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라한 골목이 어째서 해가 지기 직전의 그 잠시 동안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지는지, 그때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그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동안 내 안에 깃드는 적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고독이 달콤하고또 괴로워 울고 싶었을 뿐.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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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7-18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 문장이 이렇게 좋은가 검색해 봤더니 백수린 작이군요. 어느 소설집에서 그의 단편을 읽을 적이 있어요. 우울한 사춘기 시절이 느껴지는군요.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쓴 맛이 느껴지는...
누구나 느껴봤음직한.

그레이스 2021-07-18 15:20   좋아요 1 | URL
여기 작품 다 좋아요
그 중에도 <시간의 궤적>이 좋았어요
 
프레드릭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07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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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예술적 재능과 그 발현이 어떻게 공동체에 온기를 전하는가를 그린 멋진 우화(寓話). 사회가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할 때, 구성원은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고, 그 보람은 그 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를 풍요롭게 한다. 그런 이유에서 프레드릭의 주인공은 프레드릭 만이 아니라 이름이 없는 4마리의 들쥐들도 포함한다.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양식을 모으는 들쥐 4마리. 그러나 프레드릭은 혼자 풀밭에 앉아서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들쥐들은 그에게 왜 양식을 모으지 않고 있냐고 묻는다. 그는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고 말한다. 겨울이 되고 5마리 들쥐 가족들은 모아놓은 양식들을 먹으며 지낸다. 아직 추운 겨울이 끝나려면 멀었지만 양식은 바닥이 났다. 들쥐들은 프레드릭에게 네 양식들은 어떻게 되었니?”라고 묻는다. 프레드릭은 드디어 여름동안 모아두었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들쥐들은 이야기를 듣고 박수를 치면서 프레드릭에게 넌 시인이야!”라고 한다. 프레드릭은 수줍게 말한다. “나도 알아.”라고.

 

친구들의 칭찬에 프레드릭이 나도 알아라고 대답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위 위에 올라가 공연을 펼친 프레드릭에게 들쥐들은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양식이 다 떨어지고 봄이 오려면 아직 먼, 추운 계절에 그들은 햇볕의 따뜻함과 색깔을 실제로 느끼고 보는 것 같았다. 박수를 치고 좋아하는 그 순간 떨어진 양식 걱정 따위는 날려버리는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것이다. 공연자 프레드릭은 이미 들쥐들의 눈빛 속에 숨소리에서 그런 변화를 감지했고, 그들과 교감했다. 그러니 나도 알아는 커튼콜을 하는 예술가의 희열 같은 것이다그 희열은 정체성, 존재감, 유대감 등과 관련된 감정일 것이다.

 

이런 감동의 박수 속에서 무대 인사를 하기 까지 프레드릭은 매일 이야기를 생각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졸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그는 앉아서 이야기 속에 햇빛을 담고 색깔을 칠한 것이다. 예술가는 한 작품을 창조하고 완성할 때 까지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한 작품을 내놓기까지 공동체는 조금 다른 듯 보이는 예술가의 삶을 인정해 주고 그의 작업을 지지해 주어야 한다. 들쥐들이 프레드릭에게 함께 양식 모을 것을 강요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의 수혜자는 예술가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이다. 예술이 사회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고 한 사람이 고통을 이겨나가는데 영감을 주는지는 어느 정도 진리가 되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의 작가 유제프 차프스키는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수용소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쇠약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프루스트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도 기억에 의존해서. 영하 45도의 추위에 강제노역으로 녹초가 된 동료 포로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과는 관계없는 강의를 들으며 다가올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잊을 수 있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 순간이 생애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프랑스 문학에 감사를 전한다. 추운 겨울, 양식이 떨어진 들쥐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프레드릭은 차프스키를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마음의 도피처, 위로와 치유, 나침반을 삼았던 문학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들쥐들이 프레드릭의 이야기에 공명한 때는 등 따시고 배부른때가 아니라 오히려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추운 겨울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양식만이 아니라 철학과 예술의 위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다가올 추운 겨울을 대비하여 당신은 양식을 모으겠습니까? 아니면 프레드릭처럼 햇빛과 색깔이 담긴 이야기를 모으겠습니까?’와 같은 질문은 하지 말자. 이런 질문은 혼자서 추운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 존재에게 해당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홀로 살아남은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다. 여기서 들쥐들의 공동생활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개미와 베짱이우화도 꺼내지 말자.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불안해하고, 모으고 저장하는 일에 모두 몰두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양식을 만들고, 누군가는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과 욕망대로 무언가를 하고 서로에게 빛이 되고 색깔을 입히며, 공동체의 무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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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 2021-07-16 16: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예요^^
틸리와 벽, 파랑이와 노랑이,헤엄이...
그레이스님 말씀대로 리오니는 ˝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를 풍요롭게˝,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나아갈지를 늘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 같아요.우화지만 늘 묵직한 그림책^^

그레이스 2021-07-16 16:42   좋아요 4 | URL
이 그림책은 파도 파도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림은 예쁜데
이렇게 묵직하게 리뷰해도 될까? 생각했어요^^

청아 2021-07-16 16: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개미와 베짱이에서 실은 베짱이도 프레드릭같은 재능있는 친구였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소처럼 일하지 않으면 마냥 노는 것 처럼 생각하는 경쟁사회. 빌게이츠도 해마다 아무것도 안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던데 생각하는 걸 헛되다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겠죠. 읽어보고 싶네요!😉

그레이스 2021-07-16 16:49   좋아요 4 | URL
^^ 아이들 멍때리고 있을때도, 공부 안하고 뭐해? 했던 기억들이 막...ㅠ!
ㅎㅎ

scott 2021-07-16 16: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칼데곳 상을 받은 그림책은 믿고 봅니다. 마지막 문단 너무 좋아 여러번 읽고 또 읽고 [누군가는 양식을 만들고 누군가는 이야기를 만든다] 7월!무더위에 지쳐 무너지지 않기롱 ^ㅅ^

그레이스 2021-07-16 17:02   좋아요 4 | URL
scott님도 무더위에 지치지 마시길.~♡

독서괭 2021-07-16 17: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읽어봐야겠어요! 따뜻한 책소개 감사합니다~~

붕붕툐툐 2021-07-16 20: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양~ 프레드릭 뭔가 낯익은데, 그레이스님 페이퍼 읽으니 꼭 읽고 싶네용!!

그레이스 2021-07-16 20:27   좋아요 2 | URL
좋은 그림책은 다양한 각도에서 주제를 던져주죠.
아마도 제가 못본 걸 툐툐님이 보실거예요^^

단발머리 2021-07-16 2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표지는 익숙한데 안 읽은 듯 해요. 한때 동화책 매니아였으나 ㅠㅠㅠ 저도 함 읽어볼래요!!

그레이스 2021-07-16 20:53   좋아요 3 | URL
후기 기다릴께요~^^

mini74 2021-07-17 19: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랑 정말 좋아했던 그림책이에요. 프레드릭 정말 좋아했는데 *^^*역쉬 밥만 먹고 살 순 없지요 ㅎㅎ

그레이스 2021-07-17 20:06   좋아요 2 | URL
^^
레오 리오니책 좋죠^^~♡

희선 2021-07-17 23: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러 사람이 함께 무언가를 하면 그걸 하지 않는 사람을 안 좋게 여기기도 하는군요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싶어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생각납니다


희선

scott 2021-08-06 15: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추카~*

그레이스 2021-08-06 16: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mini74 2021-08-06 15: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래이스님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08-06 16:5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청아 2021-08-06 15: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려욤(엄지척)♥

그레이스 2021-08-06 16:5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독서괭 2021-08-06 16: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6: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1-08-06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완전 축하드려요~!! 당선의 달인이십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7: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페넬로페 2021-08-06 17: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의 달인,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프레드릭‘은 저도 너무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 더불어 기뻐요^^

그레이스 2021-08-06 17: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21-08-06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책마저 이렇게 풍성하게 써주시는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8: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그림책이 워낙 메시지가 풍성해서요...^^

초딩 2021-08-06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앗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9:18   좋아요 0 | URL
우앗^^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1-08-06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9:1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8-06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저마다 의미있는 것이고, 그 의미는 다름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08-06 20:1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름은 생성을 가져오죠.^^

희선 2021-08-07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모두가 같은 걸 하지는 않아도 괜찮겠지요 따로 하기도 하고 같이 하기도 하면 좋을 텐데...


희선

그레이스 2021-08-07 09: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따뜻한 희선님 ~

bookholic 2021-08-07 0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기품있는 글들 늘 기다려집니다~~^^

그레이스 2021-08-07 09:44   좋아요 0 | URL
기품;;;;
감사합니다~♡
북홀릭님도 축하드려요 ~♡♡

하나의책장 2021-08-14 0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08-14 07:5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08-1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08-14 11: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곳으로서는 드물게 폭우가 쏟아지고, 코를 골며 잠든 브리스의 옆에서 홀로 긴 시간 뒤척이는 새벽이면 나는 오래전 비아리츠에서 내가 잃어버린 반지를 찾기 위해 언니와 식당으로 되돌아갔던 일을 떠올린다. 다행히도 화장실의 세면대 위에 그대로 놓여 있던 반지를 찾은 후 우리가 식당 밖으로 나왔을 때 거리에는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다. 어쩌면 좋을지망설이는 사이, 언니가 먼저 우산을 펼쳐 들고 빗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우산을 써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비였다. 언니는 이내 우산을 접더니 비를 쫄딱 맞은 채 나에게 빗속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우리는 폭우 속을 달렸다. 웃음을 터뜨리면서. 머지않아 거짓말같이 비가 그치고 해가 날 거라는 사실에 관심조차 없는사람들처럼, 지금도 그날을 추억하면 빗속을 뛰어가는 언니와 나의 모습은 손끝에 닿을 듯 생생하고,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울고싶어진다.
- P39

지호와 나는 어려운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일상을 벗어나서, 우리가 가난하지만 행복한 신혼부부였던 시절을 알고 있는 당신들과 함께 지내면 우리의 관계가 거짓말처럼 예전같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거겠죠. 나는 당신 부부와 함께 보낸 그 며칠 내내 나와 지호의 관계에 골몰했어요. 그런 까닭에 그 긴 시간 동안 쌓인 침묵의 벽을 깨고 당신이 나를 만나자고 했을 때는 당신에게도 심경의 변화가 일어날 만한 사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한 번도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배낭여행을 하던 중 당신 부부를 처음 만나 함께 지냈던 시간은 고작 사흘, 그로부터 몇 년 후 지호와함께 다시 찾은 베를린에서 체류했던 시간은 오 년, 고작 오 년 사흘을 함께 보냈을 뿐인 우리는 서로와의 재회에서 무슨 기적을 바랐던 것일까요? 우리가 감당하며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 오 년도사흘도 허망하기는 매한가지인 시간일 뿐인데요.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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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라딘에서 최근에 산 책들입니다.
<사기>를 읽었으니 <한서>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한서 열전이 나왔네요!
벽돌두께로 3권! 일단 알라딘에서 리뷰 당첨 상금으로 한권 샀습니다.
나머지는 한권씩 사기로 계획중이구요
어차피 1권 읽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테니.
냐쓰메 소세키 전집은 <마음>과 <그후>를 빼고는 다 있습니다.
그 두권은 웅진이랑 민음사 걸로 있는데... 아시죠?
왠지 살것만 같은 예감!
이가 빠지것 같아서 말이죠^^
도련님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갖고 있었는데 샀으니까 결국 사겠죠?^^;;
양심은 있어서 중고 기다렸다 샀습니다. ㅋ
그리고 나머지는 플친님들 추천 책들과 중고 알림 신청해놓은 것 들요.

아! 그리고 <호프만의 허기>는 다락방님 리뷰 읽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다가, 구매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어 놓았었는데 집에서 발견했어요.^^

커피 마시면서 멍때리고 앉아있다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글자를 제 눈이 자각한 순간 이 책을 발견한거죠. ‘보는것‘에 대한 감각의 역사가 기억나는 순간이었습니다!ㅋㅋ
남편이 오래전에 사다논 책이래요. 오랫동안 우리집에 있었다고 하네요;;

아침부터 에어컨 켜고 앉아 책놀이 하다가, 이 무더위에 출퇴근하고 실외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께 죄송한 생각이 듭니다.
모두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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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14 10:57   좋아요 9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들이 책 산 거 구경하는 게 세상 제일 재미있어요. ㅋㅋ
한서열전 다 읽으시면 꼭 알려주세요. 저 벽돌책의 위엄이 대단합니다!!

그나저나 호프만의 허기 오, 저는 모르는 아주 오래도니 버전인듯 합니다. 그레이스 님도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리뷰는 폴스타프 님의 것이 아닌 제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폴스타프 님은 아직 안읽으셨을걸요? ㅎㅎ)

그레이스 2021-07-14 10:59   좋아요 6 | URL
아!
그런가요?
두분이 항상 리뷰와 댓글로 함께 등장하셔서...ㅋ
제가 착각했나봅니다
위에 글 수정하겠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07-14 11:07   좋아요 3 | URL
그러네요
방금 리뷰 다시 확인했습니다.^^
죄송해요.

다락방 2021-07-14 11:37   좋아요 4 | URL
어휴 무슨 말씀이세요. 죄송하실 거 전혀 없습니다!! 저는 리뷰 읽고 책 사놓고서는 왜 샀는지 완전 다 까먹어버려요 ㅎㅎ

mini74 2021-07-14 11:0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한서열전 ㅎㅎㅎ 흉긴데요. 타타르인의 사막. 현대미학강의 ㅎㅎ 반가운 책도 보이고.~ 저도 한서열전 궁금합니다 저 두께에 세권이기까지 하다는 거죠 ? ㅎㅎ

그레이스 2021-07-14 11:10   좋아요 5 | URL
사실 21세기 북스인가에서 한서 완역 10권 도서관에서 빌려 눈으로 훑기만 했는데요
민음사 저자 강의 듣고 사기로했어요

scott 2021-07-14 11:1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우와 ! 그레이스님 7월 무더위 이책들과 집콕독서의 시간을!!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한권씩 독파하는 스릴까지!
소세키 전집 너머로 보이는 언덕위의 구름까지
제가 읽은책 안 읽은책 손가락으로 꼽아봐여 १✌˚◡˚✌५

그레이스 2021-07-14 11:30   좋아요 6 | URL
앗 시바 료타로!
눈밝은 scott님
전 아직 못 읽었어요
그냥 배경일뿐예요
남편이 좋아하는 작가라...^^

얄라알라 2021-07-14 11:1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현암사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한권한권 북디자인이며^^ 그레이스님 서가에서 현암사 책들이 더 우아한 그레이스로 자리 잡았네요^^

그레이스 2021-07-14 11:31   좋아요 5 | URL
😀

붕붕툐툐 2021-07-14 12: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기 읽고 싶은데~ 어디 츨판사로 읽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용?ㅎㅎ 진짜 한서열전의 위엄~👍👍
낯익은 책이 보이면 왤케 반가운지-읽지도 않았건만ㅋ- 그레이스님 행복한 독서 예약이네용~ 남편분이 사둔 책 발견이라니~ 로맨틱함!!^^

그레이스 2021-07-14 14:05   좋아요 4 | URL
사기는 까치 민음사 올제 세개 출판사 병행했어요
한자어가 힘드시면 민음사가 좋아요

붕붕툐툐 2021-07-15 00:20   좋아요 2 | URL
세 개 병행~ 역시... 수준이 수준이...👍👍👍👍
감사합니다. 꼭 도전해 볼게욤^^

새파랑 2021-07-14 1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무려 5권이라는~!! 저도 소세키 전집 가지고 싶어요 ㅜㅜ

서재가 서점 같은 느낌이 드네요 완전 부러워요 👍👍

그레이스 2021-07-14 14:07   좋아요 3 | URL
분류해서 꽂기는 하는데 있는 책 찾는것도 하루종일 걸릴때가 있어요 ㅋ

겨울호랑이 2021-07-14 13: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서열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께가 만만치 않네요. 그레이스님 덕분에 책의 대강을 짐작하고 갑니다.^^:)

그레이스 2021-07-14 14:03   좋아요 4 | URL
함께 읽어요~~

독서괭 2021-07-14 13: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책 발견하기˝- 장서가들의 숙명인가 봅니다. 전 아직 그정도는 아닙니다. 더 많이 사야겠습니다(?) ㅋㅋ 한서열전 두께가 굉장하네요;;

그레이스 2021-07-14 14:03   좋아요 3 | URL
ㅎㅎ
망겔은 서점 피그말리온에서 책을 숨겨가기도 하더라구요
그에게서도 숙명같은 책에 대한 탐심이....!
ㅎㅎ

서니데이 2021-07-14 23: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마천의 사기는 두꺼울 것 같았지만, 반고의 한서도 상당히 두꺼운 책이네요.
생각했던 것보다 나쓰메 소세키의 책이 크게 보이기도 하고요.
사진 잘 봤습니다. 그레이스님, 더운 하루 시원하고 좋은 밤 되세요.^^

그레이스 2021-07-14 23:57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도 무더운밤 안녕히 주무세요~

희선 2021-07-15 01: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집에 있는 책을 사실 뻔했군요 그레이스 님이 사신 게 아니어서 있는지 몰랐지만, 마침 그 책이 보였군요 그렇게 찾아서 다행입니다 그레이스 님과 겹치는 건 나쓰메 소세키 책 정도네요 그렇게 많이 못 보고 잘 못 봤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보면 좋겠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는 듯합니다

사신 책을 책장에 꽂아두면 기분 좋을 것 같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1-07-15 05:18   좋아요 3 | URL
택배박스 뜯을 때가 제일 좋구요
꽂아놓을때도 뿌듯하구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압박감이 오죠^^
언제 읽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예뻐요 ~♡

하나의책장 2021-07-16 01: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들이 가득 든 택배 언박싱할 때가 제일 신나죠😚
전 벽돌책 너무 좋아해요. 거의 실패한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ㅎㅎ
뭔가, 책들로 가득할 것 같은 그레이스님 책장, 문득 궁금해지네요❣
 
프란시스코의 나비 -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권장도서, 개정판
프란시스코 지메네즈 지음, 하정임 옮김, 노현주 그림 / 다른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국경을 넘어 캘리포니아로 가면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국경이라는 말은 판치토(프란시스코)가 멕시코의 고향에서 자주 들었던 단어였다. 국경 너머에 있는 것은 희망이었고,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약속의 땅이었다.

 

판치토의 가족은 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를 향해 국경을 넘는다. 1940년대 국경을 넘는 불법이민자들이 그렇듯이 판치토네 가족도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 도착한 그곳은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텐트촌이다. 판치토의 가족들은 딸기수확이 끝나면 포도 농장으로, 포도 수확이 끝나면 목화 농장으로, 그들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이동을 하며 산다. 판치토는 학교에 다니게 되지만 잦은 이동 때문에 친구들과의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동생들이 태어나고, 아버지는 아픈 허리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날들이 많아진다. 형 로베르토는 농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시내에서 일자리를 찾아 한 곳에 정착하기로 한다. 판치토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그만 하고 싶어 한다. 로베르토가 일자리를 갖게 되고 판치토 역시 한 지역의 중학교에 계속 다니게 된다. 학교에서 독립선언문을 암기하고 있는 판치토 앞에 이민국 직원들이 들이 닥친다.

 

판치토가 외우고 있던 구절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역설적인 그림 앞에 맥이 빠지고 허무하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자유와 행복의 추구의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에서 그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진리가 아닌 것이다. ‘국경 순찰대차에 태워져 형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10대의 판치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국경만 넘으면 보장될 것 같았던 행복은, 그 철조망이라는 물리적 경계 뒤에 언어, 국적과 같은 훨씬 넘기 어려운 장벽이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벽은 애벌레를 담고 있는 유리병이 상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교실 뒤에 있었던 병 안의 애벌레는 판치토를 닮았다. 실로 몸을 꼭꼭 감싸는 고치는, 숨겨두었던 판치토의 마음-엄마와 아빠와 형이 넓은 목화밭 안으로 사라진 뒤 기다리던 유년기의 두려움, 언어로 인한 고독, 선생님께 받은 외투가 커티스의 잃어버렸던 옷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느낀 수치심-을 상징한다.

한편 고치가 나비가 되고, 병속에서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희망적이다.

이 책의 첫 장에 인용한 토마스만의 말처럼,

세상의 문제는 사실 단 하나뿐이니…….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어떻게 열린 곳으로 나아갈 것이가?

어떻게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될 것인가?”

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순환을 깨뜨리고 나비가 될 것이기 때문에.

 

영어 제목은 The Circuit : Stories from the Life of a Migrant Child 이다. 불법이민 가정의 아이 프란시스코의 유년시절은 circuit(순환)이다. 그것은 판치토의 가족이 끊임없이 목화, 포도, 딸기 농장 사이를 떠돌아다닌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애벌레에서 고치로 또 나비로 변태해 가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가난의 순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다. 그들도 농장을 유랑한다. 그리고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농장주들의 횡포에 분노한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홍수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인간애에서 희망을 그린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멕시코에서 하와이에서 같은 고난의 시간을 보낸 역사를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작가에게서는 오히려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프란시스코 지메네즈는 멕시코로 추방된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형과 함께 일하며 가족들과 재회한다. 어렵게 학교를 다니고 꿈을 이룬다. 현재 콜롬비아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이 내용은 돌파 Breaking Through라는 후속 작품에서 소개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과거에는 작가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기회라는 것이 있었다.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느슨해진 철조망처럼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지와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미국의 국경선에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이 보여주듯 그런 희망을 생각하기 어렵다. 밖으로 장벽이 많고 높은 배타적인 사회는 내부에서도 경계가 많아지고 뚜렷해진다. 외부로 향한 잣대는 그 사회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은 내부에서도 효력을 발휘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배타적인 경계와 장벽이 높은 사회에서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다.

 

이 자전적 소설에는, 두 세대 이전,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본 인간의 행복추구권에 대한 역설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이방인들은 행복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난이라는 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은 과연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인가? 경계와 장벽을 만들고 추방하는 사회에서 과연 누구에게나 기회와 권리는 있는 것인가? 에 대한 논제들을 던져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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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13 20: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꿈을 이루고 어려웠던 과거를 책으로 써내며 진짜 나비가 되었네요. 그레이스님 글처럼 분노의 포도나 애니갱? 맞나요. 생각도 떠오르네요. 구분짓기와 국경선만 없애도 훨씬 평화로워질거란 글이 기억나요 *^^* 재미있는 책 소개 고맙습니다 ~< 찜했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1-07-14 07:14   좋아요 5 | URL
애네껜, 애니깽 ...
어차피 외래어니
김영하 작가의 <검은꽃>이나 청소년소설<에네껜아이들>이 유카탄반도에 이주했던 노동자들 이야기죠^^


scott 2021-07-14 0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저임금 불법 이민자들이 없으면 멈춰버리는 곳입니다
목숨 걸고 국경 너머온 부모는 그자리에서 사망하고 아이만 살았는데
이들 전부 코로나로 어디 수용소로 보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1-07-14 06:43   좋아요 2 | URL
ㅠㅠ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이들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