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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2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4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4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샤펠로에 위치한 봉쾨르 여관 창문에서 목을 빼고 바라보는 제르베즈의 시선에 몽마르뜨 언덕과 푸아소니에르 시문(市門)이 들어온다. 회색빛 성벽, 피가 흥건한 도살장의 피비린내와 악취, “파리의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결처럼”(14p,1권) 보이는 노동자들의 행렬은 그녀가 살고 있는 도시 외곽의 모습이다. 지도를 살펴보다가 몽마르뜨 북쪽에 위치한 생 드니 수도원이 눈에 띄었다. 273년에 몽마르트에서 처형당한 생 드니(성 디오니시우스)가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걸어가서 쓰러진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왜 생 드니가 눈에 띄었을까? 디오니시우스의 이야기는 형이상학을 배제한 에밀 졸라의 실험소설론에 반대되는 내용일지 모르겠다. 처형장이었던 몽마르뜨, 도살장, 생 드니의 공동묘지 쪽으로 향한 시문은 죽음을 향하고 있다. 어쩌면 이 소설 속 구뜨도흐에 살고 있는 이들은 잘려진 목을 들고 몸뚱어리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르베즈가 머물던 봉쾨르 여관이나 공동주택은 가난의 때로 찌든 장소다. 그런 그곳에도 햇빛이 잘들고 화분이 놓여진 창문을 가진 공간이 있다. 그녀가 잠시 소유했던 세탁소도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방은 그 방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로리외 부부의 방은 제르베즈에게 역겨운 공간이고, 구제의 정돈된 집은 그녀가 좋아하는 그 주인의 삶을 담고 있다.
플라상에서 제르베즈의 어머니는 “20여 년 동안 그녀의 아버지 마카르에게 가축처럼 부림을 당하다가”(68p,1권) 생을 마쳤다. 걸핏하면 어머니에게 폭행을 가했던 아버지는 술에 취해 돌아온 밤이면 “팔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거친 애정행각을 벌이곤 했다.”(68p,1권) 그녀는 자신이 다리를 저는 것은 그런 날 밤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14살 때 아이를 낳았다. 랑티에는 그녀와 클로드, 에티엔을 버리고 떠났다. 랑티에가 떠난 후 함석공 쿠포는 집요하게 구애를 해오고, 그들은 결혼을 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나나가 태어난다. 성실하게 일하던 쿠포는 지붕에서 추락한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제르베즈는 세탁소를 차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듯하지만 가파른 전락의 길로 들어선다.
“자신이 높이공중으로 던져졌다가 떨어지면서 포석의 튀어나온 모양에 따라 앞뒤가 결정되는 1수짜리 동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82p1권)는 제르베즈의 소망은 빵을 배불리 먹고, 몸을 누일 조그만 방 한 칸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남자한테 맞지 않고, 자신의 침대에서 죽는 것이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녀의 이 작은 소망조차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된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 일도 하지 않았고, 배불리 먹기는커녕 허기를 달래기도 힘든 지경이며, 오물 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 딸은 거리의 여자가 되었고, 남편에게 얻어맞는 것은 일상”(309p,2권)과 이젠 길거리에서 죽는 일만이 남은 삶을 생각하며 헛헛한 웃음을 터뜨린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그녀가 가엾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던 시대의 비참함이다.
쿠포와의 결혼식 날 이벤트들은 모두 암시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둥 번개가 치고, 빗속을 뚫고 산책(결혼식 후 행사)을 가는 그들, 그 산책 중 예정에 없었던 루브르의 경험, 만찬과 술취함, 고성과 다툼, 바주즈 영감과의 마주침(156p)으로 끝나는 그 하루는 그들이 살아갈 생활에 대한 암시다. 가난함 속에서도 살아가야하고 살아가는 중에 루브르와 같은 일상을 벗어난 순간도 맞을 수 있다. 장의사인 바주즈 영감을 마주치고 몸을 떨었던 제르베즈는 죽음을 원하는 비참함에 떨어지고 그가 만든 관 속에 눕게 된다. 루브르에서 보았던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쿠포의 추락을, 루벤스의 <케르메스>는 배가 터지도록 먹어대던 잔치와 알코올 중독, 욕구에 순응하는 삶을 전망한다.
더러운 세탁물이 널려있는 불결함이 가득한 곳에서 술 취한 쿠포와 “입 한가득 주고받는 뜨거운 키스는 점차 쇠락으로 향하는 그들의 삶에 닥쳐온 첫 번째 추락의 순간과도 같았다”(233p,1권)는 의미는 무엇일까? 더 이상 쿠포의 술냄새가 역겹지 않았다는 것은 쿠포의 삶이 지친 그녀의 몸에 배어 들어왔다는 의미일지 모르겠다. 몸의 유기와 방치 상태를 향한 추락의 시작이다.
제르베즈의 생일잔치는 그들의 가파른 전락을 예고하는 정점이고, 변곡점이다. 곳곳에 암시들이 있다. 르라 부인의 애절한 노래를 배경으로 랑티에를 향해 돌진하는 쿠포의 분노는 영화의 역설적인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클래식 사운드를 배경으로 빗속에서 살인을 하는 장면.
“르라 부인은 먹고 남은 음식들 틈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쿠포 가족이 잔치의 후유증을 떨쳐내려는 듯 밤새도록 죽은 듯이 잠자는 사이, 열린 창문으로 몰래 들어온 이웃집 고양이가 예리한 이빨로 조심스럽게 거위의 뼈를 갉아 먹으며 결정적으로 거위를 끝장내고 있었다.”
(372p,1권)
제르베즈의 삶이 향하게 될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랑티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쿠포도 그것을 허용하고 잠자리까지 함께 하는 제르베즈도 한동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생각에서 자신을 놓아버리고 있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몸처럼. 삶에 진지하고 부지런했던 그녀에게서 게으른 천성이 드러나고 점차 그녀를 잠식한다. 그녀 안에 잠자고 있던 부정적 기질이 발현되고 커지는 것을 보게 된다. 가난과 게으름은 삶을 삼켜버리고 세탁부 일조차 할 수 없는 그녀는 배고픔으로 고통을 받는다. 배고픔에 지친 그녀는 충동적으로 몸을 파는 여인들의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도무지 오지 않을 것 같은 밤을 기다리면서 대로를 따라 마냥 걸었다.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바람을 쐬는 숙녀처럼.”(285p 2권)
쿠포가 알콜 중독으로 병원에서 죽어간 후에도 술은 서서히 그녀를 파괴해간다. 쿠포와 결혼 전 콜롱브 영감의 술집에서 보았던 증류기에서 받았던 암시는 현실이 되었다.
“기이하게 생긴 용기들과 코일처럼 둥글게 감겨 있는 수많은 금속관들이 달린 증류기는 음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연기 한 줄도 새어 나오지 않았고, 숨소리나 지하에서 코 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강력한 힘을 지녔으면서도 말이 없는 침울한 일꾼이 대낮에 밤일을 하는 것만 같았다.”(72p,1권)
도살용 도끼 혹은 곤봉이라는 뜻의 ‘라쏘무아르(L'Assommoir)’는 콜롱브(비둘기)나 봉쾨르(선한 마음)라는 이름보다 정직하다. 쿠포와 같은 노동자, 빈민층의 삶을 내려치는 도끼다. 그들은 제르베즈가 생각했듯 삶이 선사해준 적 없는 즐거움을 위해 술 취한다.
불안하기만 했던 나나는 거리의 여자가 되고 소설 『나나』가 어떻게 쓰여 질 지를 예상하게 된다.
제르베즈가 마지막까지도 놓지 않았던 사람에 대한 인정은 랄리와 브뤼 영감에 베푼 친절과 쿠포가 입원해있는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발길로 나타난다. 이런 선함은 삶에의 의지를 갖게 할 수 없었을까? 형이상학을 배제한 에밀 졸라의 소설에서는 없다.
“이보게…… 내 말 들리지…… 날세, 비비라게테, 여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하는 남자…… 잘 가게, 거기선, 거기선 여기서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거야. 이젠 편히 잠들라고, 어여쁜 부인!”(340p,2권) 바주즈 영감의 환송을 받으며 제르베즈가 떠나는 장면이다. 제르베즈가 그렇게 바랐던 죽음만이 그녀를 고통에서 놓아줄 수 있는 것일까?
“알코올중독과 나태함은 가족의 해체와 온갖 추잡함, 바르고 정직한 감정들의 점진적 상실을 야기하며, 종국에는 수치와 죽음을 안겨주고 만다. 이것이 바로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작금의 도덕론이다.”(6p, 1877년 서문)
에밀졸라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악취를 풍기는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한 노동자 가족이 돌이킬 수 없이 전락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가 『실험소설』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말하자면, 한 인물의 기질이 일정한 환경을 통과함으로써 나타나는 내면과 가정과 공동체에 미치는 재난에 관한 것이다. 일정한 정념이 일정한 환경과 상황에서 작용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정념의 메커니즘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르베즈가 구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졸라가 『루공 마카르』총서의 계획을 세운 것은 1868년 겨울에서 1869년에 이르는 무렵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설들 속에서 새로운 과학정신을 보여 주고자 했다. 『테레즈 라캥』에서는 기질의 반응을 연구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여기서는 그 작품보다도 더 뚜렷하게 환경이 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프랑스현대소설사』 미셸 레몽)
『루공 마카르』총서를 어떻게 읽어야할 것인가를 알게 된다.
드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화가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세탁부와 술 취한 여인도 등장한다. 서로 상반되나? 아니다. 그가 그린 발레리나 역시 도시의 그늘에 있는 여성이다. 스폰서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신분을 상승할 기회를 잡기 위해 딸을 무대에 올리는 어머니들 이야기는 이제 생소하지 않다. 제르베즈의 삶을 읽어가며 드가가 그린 여성들이 생각났다. 제르베즈가 바란 “올바른 사회”가 아니었음을 다시 확인한다. “그녀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올바른 사회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렇지 못한 사회는 몽둥이로 머리를 박살내듯 순식간에 여자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82p,1권) 그녀는 바람대로 살 수 없었고 “포석”(82p,1권)은 정의롭지 못했다.
위험으로 내몰린 노동자들, 중독과 자살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 유린당하는 몸… 에밀 졸라는 관찰한 현실을 소설 안으로 끌고 들어와 “사람들을 좋아하고”(68p,1권) “심성이 매우 여린”(82p,1권) 여인이 통과하는 삶의 결과를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 세계에서 당신의 삶은 안전한가? 라고.
<실내(강간)> 에드가 드가 ,1868~1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