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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ㅣ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오래 전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소설을 읽고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화가 얀 페르메이르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화가의 이름을 베르메르라고 표기했었다. 그때만 해도 그림에도 화가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는 파란색을 만드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다른 작품 『여인과 일각수』에서도 태피스트리와 염색에 관한 묘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 후 미용실이나 뜬금없는 장소에 붙여져 있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브로마이드를 자주 목격했다. 그리고 소설과 같은 내용의 영화가 있다는 사실도,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의 명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진주 귀고리 소녀』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아마도 초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문과 달리 이 그림은 초상화가 아니라고 한다. 17세기부터 있었던 ‘트로니’라는 장르로, 인물의 표정 연구를 위한 그림이다. 램브란트나 프란스 할스의 그림에도 인물의 표정과 얼굴, 헤어스타일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그린 그림들이 많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터번을 쓰고 있는 머리 장식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 소녀의 표정과 얼굴에 비치는 빛의 효과 때문에 관람자들은 시선을 빼앗긴다. 그의 ‘트로니’는 성공적이다.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1663~1664,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페르메이르를 좋아하게 된 것은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을 본 후이다.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의 옅은 푸른색이 일으킨 감동이 잊혀 지지 않는다. 임신한 듯 넉넉한 상의를 입고 있는 그녀의 단정한 자세와 꼼꼼히 읽어 내려가는 손 모양과 편지에 집중하는 표정은 그 푸른색과 어울려 짙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를 가득 안고 있었다. 지도, 편지, 임신한 모습 이런 기호들을 읽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비친 푸른색은 그동안 어떤 그림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색이었다. 의자 등에 사용된 짙은 파란색 역시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눈이 시릴 정도로 환한 파란색보다 <편지를 읽는 푸른 옷 여인>의 신비로운 푸른색에 더 매료되었다. 나는 페르메이르의 파란색에 푹 빠지고 말았다.
페르메이르가 사용한 파란색은 당시 금보다 더 비싼 라피스라줄리로 만들어낸 색깔이라고 한다. 라피스라줄리를 갈아 분말을 만들고 이것을 녹일 때 호두 기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슈발리에의 소설 속 하녀가 이 작업을 한다. 호두 기름은 빨리 마르지 않는다.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의 크기가 작고, 많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화가는 “최소 서너 달 이상을 고심해가며 최고의 안료와 캔버스, 기름을 구했다.(143p)” 재료가 비싸고 작업과정이 더디기 때문이다.
저자 전원경은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만나기 위해 네덜란드의 미술관들과 <골목길>과 <델프트 바닷가 풍경>의 장소로 안내한다. 네덜란드의 역사와 그가 살았던 17세기 정치, 외교, 경제, 종교, 생활상과 당시 화단(畫壇), 화풍(畫風), 화가(畫家) 들을 소개한다. 네덜란드의 황금기 시대에 화가들 역시 황금기를 맞이하지만 페르메이르는 델프트의 외에서는 그리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고, 많은 작품을 그리지 못하는 그의 특성상 그림으로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다. 처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30대 후반까지의 평온했던 삶은 1672년 프랑스의 침공과 함께 재난을 만난다. 프랑스의 침공을 막기 위해 네덜란드는 수문을 연다. 이로 인해 처가 소유의 농지가 물에 잠기면서 페르메이르 일가의 자금 사정이 나빠지게 된다. 프랑스와의 전쟁에 패배하게 되면서 국가 경제는 위축되고, 자연히 그림도 팔리지 않았다. 1675년 파산한 페르메이르는 마흔셋의 나이에 쓰러졌고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소유하고 있었던 그림들은 헐값에 팔리거나 외상값 대신 건네졌다. 그의 후원자였던 판 라위번이 소유하고 있던 20점의 작품들은 그의 딸 막달레나 부부가 죽고 경매에 한꺼번에 출품되었고,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의 작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까지는 200년이 걸렸다.
저자는 네덜란드와 미국, 영국 등의 미술관으로 흩어진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을 주제나 시기별로 소개해주고 있다. 성서, 교훈, 사랑, 가정, 일 등의 주제들은 그 시대 화풍에 담겨있는 정신을 엿보게 했다. 이런 주제들을 담고 있지만, 나는 그의 그림에서 그만의 차별화되고 고아한 취미를 발견한다.
<저울을 든 여인>, 1664, 미국 국립미술관
이 책을 읽으며 만나게 된 또 하나의 작품이 <저울을 든 여인>이다. 아마도 저자의 감상과 해설이 와 닿지 않아서 자꾸 바라보다가 마음에 와 닿게 된 듯하다. 빈 저울을 손에 들고 있는 여인이 있는 그림이다. 숨은 의미를 찾으려면 ‘그림 속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한다. 여인의 뒤 벽에 걸린 그림은 액자가 약간 비뚤어져 시선을 끌고 있다. 그 그림의 내용은 ‘최후의 심판’이다. 앞에서 저울을 들고 있는 여인은 법의 여신을 떠올리게도 하고, 그녀가 잉태한 영혼의 무게를 달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해설을 하고 있다. 나는 여인에게서 그런 두려움이나 기원(冀願)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여인의 무심한 듯 나른한 표정 뒤에 뭔가 채워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스듬히 기울인 고개, 빈 저울을 올려 보는 손동작, 저울을 바라보는 무심한 얼굴은 서운함과 우울함이 어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화가의 아내 카타리나는 열한명의 아이를 낳았다. 결혼생활 중 많은 시간 임신한 상태였다. 임신한 여성은 불안하고 우울할 때가 많다. 화가는 무심하게도 그런 그녀에게 모델을 서달라고 했을까? 그리고 여인의 뒤 배경에 ‘최후의 심판’ 주제의 액자를 그려넣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교회는 세상의 마지막과 심판에 대해 경고하지만, 사람들은 그 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결혼도 하고 임신도 하고 일상을 살아간다. 심판이라는 무거운 경고 앞에서도 작은 일에 마음을 두고 서운해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상상일 뿐인데 화가의 의도가 얄궂게 느껴진다.^^ 내가 아무래도 임신기간에 서운한 게 많았나보다.
그림은 가끔 놀라운 일을 일으킨다. 감상자의 마음을 건드려 눈물을 쏟게 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서사를 끄집어내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도 한다. 페르메이르와의 처음 마주침에서는 서사가 필요 없는 색으로만 전달되는 감동이 있었다. 이번 만남은 작가의 삶과 그림 속 인물들의 감정에 나의 기억과 감정을 조응하게 했다. 깊은 여운이 남는 마주침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