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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10만 부 기념 새해 에디션)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시선은 방송토론이나 인터뷰에서 시평과 신념을 펼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급진적인 말들을 했다. 그는 딸들과의 대화에서 그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올 때 할 말을 잃기도 한다. 그리고 일관성 없을 때가 많았고, 기분에 따라 하게 될 때가 많아서 앞뒤가 안 맞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과연, 그는 그 때 한 말들을 후회하는 것일까? 만일 그때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는 다시 하게 될 것이다. 후회하더라도 마음속에 있는 것은 말하고, 상처가 되더라도 생각하는 것은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가끔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한 말들이 나에게 족쇄가 되는 것을 느낄 때.
독서토론을 진행하는 자리에서 가끔 움찔할 때가 있다. ‘과연 나는 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 하고. 누군가 “당신 그때는 이렇게 말했잖아? 그런데 그렇게 살고 있나?”고 묻는 때가 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멈칫하게 한다. 가끔은 그렇게 쏟아놓은 말들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인 것을 확인할 때도 있다. 그 방식이 나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손해를 보게 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차라리 내뱉지만 않았더라도 조금은 돌아갈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역시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간다면 같은 말을 했을 것이고,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10년 20년이 지나도 몸서리치며 후회 할 치기어린 말들이 있을지라도…….
시선은 공중으로 흩어지는 말들보다는 글로 고착시키는 걸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아낄 줄 아는 사람들은 노출되는 자리를 신중히 삼갈 줄 아니 누군가는 내 또래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야 했지요.‘
-325p
말을 많이 하게 된 이유다. 사람들이 많이 보고 듣는 방송에서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어찌 다른 사람들처럼 스스로를 아끼고 싶지 않았을까? 당시 여자들이 당하는 비참한 상황에 대해 누군가는 말해야 했기에 기왕에 말을 시작한 자신이 그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의 거칠고 격한 말들은 고요하고 잠잠해지고 침묵사이로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보다는 글이 더 많아지고……. 인생을 마감하는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이제 남은 말들은 정말로 의미 있는 사람들하고만 쓰겠다’고 하며 대중과 작별인사를 한다.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고. 그 역사를 아프게 온 몸으로 겪어냈음에도, 자유롭게 사랑하고, 작가로서 당당하게 할 말을 했던 심시선, 그의 자녀들과 또 그들의 자녀들. 시선으로부터 이어져 온 것들은 심시선을 닮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르다. 3대가 산 시간이 다른 것처럼. 네 자녀는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를 기억하고 있다.
여성이지만 여성으로 살지 않고 엄마이지만 엄마로 살지 않았던 그녀의 자유로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거침없이 생각을 말하는 심시선의 삶 속에 강요된 것이라곤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음에도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마음껏 사랑하고 자유롭고 너그럽다.
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너그러울까?
여유가 없고 불안한 마음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향해 너그럽지 못했던 시간들을 기억해 본다. 아이들 키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쫓기듯 책을 읽고, 책 한권을 못 읽고 일어나 밥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에 가끔은 짜증이 난다. 빨래를 개며, 설거지 하며, 흘러가는 생각을 잡아두지 못해 안타깝다.
소설이지만 아이 넷을 키우며 화가로서 작가로서 심시선처럼 사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만큼 다른 곳에서의 희생이 있을 수밖에…. 노출된 삶이 그랬고, 그에게 꽂히는 대중의 시선이 그랬고, 자녀들에게 있었던 빈자리가 그랬을 것이다.
그렇듯 시선에게도 후회는 있다.
‘늘 철쭉이 흔하고 시시한 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봄이 와도 철쭉을 대단히 반기는 이는 없지 않나요? 그런데 어느 날 밤 산책을 나갔다가 송이 째 떨어져 있는 흰 철쭉을 보았고, 지나가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그 꽃을 비추는 순간 그것이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흰색이란 것처럼 보이는 그런 흰색요. 그것을 칠십대에야 깨달았으니, 늦어도 엄청 늦은 거지요.
여전히 깨닫지 못한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날은 바람 한 줄기만 불어도 태어나길 잘했다 싶고, 어떤 날은 묵은 괴로움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싶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이 그런 고민을 하겠지요. 철쭉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을 겁니다. 오로지 빛에만 집중하는 상태에 있지 않을까.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철쭉의 마음을 짐작해봅니다. 바깥의 빛이 있고 안의 빛이 있을 터입니다.
밤 산책에서 또 근사한 것을 발견하면 꼭 전하겠습니다.
―XXX라디오 짧은 코너 <작가가 보내온 엽서>(2004)에서‘
280~281p
어떤 모양으로 살던 치열하게 살아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이런 글을 남기게 될까? 지금은 모르지만 그때는 알게 되는 것이 있다는…. 그러나 조금 여유를 갖고 그 때 알게 될 작은 파편의 반짝임이라도 발견하게 될 수 있길 바래본다. 그 반짝임을 일견하게 하는 바람 한 줄기가 불 때 나는 그곳에서 볼 수 있기를…….
입안에 말이 고이는 것을 보니 봄이 온 듯하다. 나의 작고 방치된 정원에는 수반이 하나 있고 새들이 와서 몸을 씻고 간다. 그 모습이 내 아이들 어릴 적을 닮았다. 찬물에 머리를 대충 감고 히히웃는 것과 어찌나 비슷한지 모른다. 꾀바르고 곰살맞은 막내가 벌써 중학생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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