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발끝까지 쇠사슬에 묶인, 머리부터 발끝까지 형용할 수 없는 비참. - P12

음악이 시작되고 춤판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자키에게 크고 작은 감사를표했다. 다시 한번 자키는 생일날을 아주 잘 골랐다. 그는 그들의 속박된 일상을 뛰어넘는 공동의 긴장감, 집단적 불안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더욱커지고 있었다. 지난 몇 시간은 그 불쾌한 느낌을 상당히 떨쳐내주었다. 사림들은 돌이켜 볼 수 있는 다정한 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그다음 생일잔치가 있어서, 빈약하나마 기운을 재충전해서 다음 날 아침의 노역, 또 그다음 날 아침과 긴긴 하루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외부의 수모로부터 내면의 인간 영혼을 분리해주는 그들만의 원을 만듦으로써.
- P39

너무 빨리 달려 어지러웠다. 불가능한 속도였다. 아무도 부르는 이가 없었지만 그들의 두려움이 뒤에서그들을 불러댔다. 그들이 사라진 것이 발각되기까지 여섯 시간이 더 남아있었고 추적대가 그들이 있는 곳까지 도착하려면 한두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러나 두려움은, 농장에서 날마다 그랬듯이 벌써 추적을 시작했고, 둘의속도를 따라잡았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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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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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 올가 토카르축


할머니의 자매들, 이모할머니들은 모이면 밤에 이부자리를 깔고 옛날이야기를 하셨다. 전쟁을 겪은 일, 인민군이 들이닥쳤을 때 남편을 마루 밑에 숨겼던 이야기, 물난리, 아이들을 잃을 뻔한 이야기....
나는 잠이 들었다가 깼다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아마도 설화쯤으로 들었을지 모르겠다. 누워있던 나는 어느새 일어나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 빠져 들어갔다. 새벽 미명에 누군가가 ‘날을 샜네’ 하면 그때서야 나를 발견하고, ‘너는 언제 깼냐고 어서 자라고’ 한마디씩 하고 서둘러 눕는다. 잠자리에 들며 불을 끄고서도 마저 하지 못한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이야기는 끝이 나고, 날이 훤히 밝았다.

나는 이렇게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모여 잠을 자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그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살아온 세월을 얼기설기 짓게 되고 그것은 하나의 설화가 되어 기억이 되고 경험이 되었다.


토카르축이 쓴 태고의 시간들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로,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마을의 모습으로...

인생의 시간 중 어떤 사건을 계기로 다른 시간대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을 기준으로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과 사물이 다르게 인식되는 것을 경험한다. 어린 시절 어떤 사건이 드문드문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그 이후의 기억이 더욱 촘촘하게 남아있는 것은 더 오래된 기억이 지워져서일까? 오래 전 기억은 아마도 깊은 어딘가로 침잠해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속의 기억들이 띄엄띄엄 저 밑바닥으로 가라 앉았다가 불쑥 떠올라 나의 서사를 만든다.

‘태고’의 모든 존재는 배경과 기타등등이 아닌 그들만의 시간을 가진 주체로서 존재한다. 그들의 시간은 전쟁, 학살, 피지배와 같은 태고의 역사 속에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건너뛰며 존재한다. 시간의 배열과 서사의 짜임이 탁월하다.


“여기가 태고의 경계야.” 루타가 말하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지도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태고가 끝나. 더 가봐도 아무것도 없어.”
……
“그들의 눈에는 그저 모든 게 그런 것처럼 보였을 뿐이야. 여행을 떠나 이 경계에 다다르는 순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거지. 그들은 아마도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더 가면 키엘체나 러시아가 있을 거라는 꿈을 꾸고 있을 거야. 한번은 엄마가 화석처럼 굳어 있는 사람들을 내게 보여준 적이 있어. 그 사람들은 키엘체로 가는 길 위에 서 있었지. 눈을 뜬 채, 꿈쩍도 하지 않았어. 끔찍해 보였지. 다들 죽은 사람들 같았어.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서 꿈을 기억으로 받아들이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전부 이런 식인 거지.”
……
“이 경계는 타슈프를 지나고, 볼라를 지나고, 코투슈프를 지나 계속 이어져 있어. 하지만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 경계는 기성품처럼 준비된 사람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 우리는 그들이 어딘가에서부터 여기로 온다고 느끼지. 내가 가장 무서운 건,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야. 마치 솥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말야.” 148~149p


‘태고’라는 것은 무의식을 만들어낸 어떤 시간일까? 우리가 과거의 어느 시점에 겪은 어떤 사건으로부터 만들어진 무의식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듯이, ‘태고’의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일어난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전쟁으로 우리 안에 생겨난 집단적 무의식과 분단선과 같은 공간적 경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러므로 ‘태고’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들을 지배하는 기억을 의미하고 그것은 공간이 되어 그들을 가둔다. 당시를 살았던 자들이나 그의 자녀들이나 그 자녀들의 자녀들도 그 ‘태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태고는 공간이고 시간이며 기억이다. 무의식을 만들어 낸 원형 같은 것, 그래서 태고일까?


올가 토카르축은
“예술은 신화적 언어의 수호자이다. 내게 신화는 기억이다. 신화는 우리가 종으로서의 연속성을 보존하고, 세상을 정돈하는 역할을 한다. 융의 견해처럼 나도 신화가 종의 기억을 구성하는 조각이라고 생각한다. 신화는 학습할 필요가 없으며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는 그의 사상을 나는 믿는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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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1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설연휴 가족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0^

그레이스 2021-02-10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게 있는줄 몰랐네요
며칠 게으름 피웠는데 다시 열심히 써야겠어요^^
scott님 감사합니다 ~~
 
사이토 다카시의 2000자를 쓰는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루비박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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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자를 쓰는 힘, 글의 신체성에 관하여


이 책에서 말하는 ‘쓰는 힘’이란 200자 원고지 열 장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다. 저자는 매일 분량을 정해 놓고 쓰는 훈련을 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공적인 글을 쓸 것을 강조한다.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독서가 필요하고, 특별히 글쓰기를 위한 독서를 하라고 한다. 문장력을 향상시키고 말하는 능력도 길러주기 위해서는 독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좋은 문장을 쓴 사람들은 방대한 양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에 관하여 끈기 있게 깊이 생각하는 것도 문장력을 향상 시켜주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독서와 글쓰기와 말하기와 관련된 글 중 인상적인 부분이다.

나는 보통 한 시간 반 정도의 강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강연을 할 때는 마치 워드프로세서로 문자를 빠르게 타이핑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주어와 술어가 서로 호응하고 있는지, 혹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다음 이야기와 어떤 식으로 연결될 것인지 하는 글의 구성, 즉 각 절과 장의 연결이 머릿속에서 착착 정리된다.……
문장력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말도 조리 있게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사고력도 향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자신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것인지를 항상 확인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44p

글쓰기는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을 예로 들며 설명한다.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데, 그때마다 ‘이 책에 이런 부분이 있었나?’하고 새삼 놀란다고 한다. 그것은 작가가 이 소설을 즉흥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그만큼 철저하게 구성했기 때문이라고...
글쓰기에는 우연이 없다. 무의식적으로 문장이 술술 떠올라서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업을 통해 글을 쓴다. 글을 통해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가 책 속에 쏟아 넣은 방대한 의미에 압도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창조한 의미와 가치이 세계인 것이다.

가치 창조의 글쓰기라는 점에서 비평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작품을 비평할 때는 그 작품과 접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만남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비평문을 쓰는 참된 의미이기도 하다. 독자에게 그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시야를 넓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렇게 독자의 뇌와 작가의 뇌가 서로 감응해서 불꽃이 튀는 듯한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비평이다. 48p

그는 글쓰기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의식적으로 글쓰기 훈련을 거듭하면 공적인 감각을 지닐 수 있으며, 내 글을 남에게 언제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다.
‘사적인 공간이니까 아무것이나 써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한다면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사적인 이메일을 쓰는 것을 글 쓰는 계기로 삼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 마음 자세로는 기본적인 문장력을 함양할 수 없다. 글쓰기란,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 내용을 올바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한 공공성을 의식하지 않으면 글쓰기는 완전히 사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히 자기만족이나 개인적인 감정의 발산에 그치기 쉽다. 그러므로 글을 쓸 대에는 사적인 모드와 공적인 모드를 자유자재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자 53p

온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 『다가오는 말들』 그리고 이 책은 모두 공적인 글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동의하는 부분이다. 대상이 있는 글쓰기는 그 대상을 설득해야 하므로 논리를 세우고 조리가 있어야 한다. 문장이 다듬어 질 수 밖에 없다. 글에 대한 책임도 갖게 되어서 자신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진다.

‘문체’는 글쓴이의 고유한 스타일이다. 이것은 연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몸과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몸을 보면 누구인 것을 아는 것처럼, ‘이 글은 누구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문체이다. 사이토 다카시는 이것을 ‘글의 신체성(身體性)’이라고 한다. 문체는 ‘이 글은 누가 쓴 것’인지를 알리는 도장과 같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더욱 글에 책임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글의 신체성’이라는 말이 내게는 인상적으로 다가온 반면, 글에 대한 책임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나의 글은 여전히 비문이 많고, 뜻이 모호하고, 성찰이 부족하다.
이 책은 글을 쓰는 데 실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다.
더불어 지속적인 글쓰기에 대한 자극을 받았다
가볍게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옆에 두고 가끔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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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열린책들 세계문학 122
페터 한트케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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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의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등에서 생각의 흐름은 공간의 이동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낯선 장소로 여행하며 불안이라든가 아니면 과거에 대한 회상과 관련된 생각의 흐름을 읽게 된다. 이 작품 역시 이러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인 주인공은 산책을 하며 작품에 관한 생각들과 그 글로 인한 두려움, 망상, 현실과 환상의 혼동을 경험한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 이러한 산책이나 여행길에서 경험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언젠가 거의 1년 동안 언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이래로 작가에게는 자신이 과거에 썼고, 앞으로 쓸 수 있다고 느낀 문장 모두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말로 표현되지 않고 글로 쓰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언어가 그로 하여금 깊이 숨을 쉬게 했고, 그를 세계와 새롭게 맺어 주었다.
11p

그자신의 실상을 밝혀 주고 생동감 있게 해준 몇 줄의 도움으로 그날 하루도 잘 지나간 것 같았다.작가는 저녁나절을 순조롭게 보낼 수 있으리라는 기분으로 자신의 책상에서 일어섰다.
13p

집을 나서던 작가는

정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가는 도중에 작가는 갑자기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후닥닥 서재로 올라가서는 거기서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방에서 땀 냄새를 맡았고 유리창에 증기가 낀 것을 보았다.
21p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들으며 글을 쓰던 작가는 목욕을 하고 옷을 입고 신발을 고쳐 신고 하는 동작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산책을 준비하며, 오랜 시간을 집안에 머문다. 머뭇거리듯 밖으로 나가기 전 긴 준비를 하고 나가다가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 단어를 고치고, 그제야 다른 감각이 돌아온다. 준비 시간이 긴 것은 자신이 작업하고 있던 글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외부로 향하는 감각이 돌아오게 하는.
그리고 산책길에서

걸을수록 일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서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작품 활동을 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40p

그의 작품에 대한 생각을 이 소설의 주인공의 생각을 빌어 표현한다.

<작품>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재료란 거의 중요하지 않고 구조가 무척 중요한 것, 즉 특별한 속도 조절용 바퀴 없이 정지 상태에서 움직이는 어떤 것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요소들의 자유로운 상태로 열려 있는 것, 누구나 접근 가능할 뿐 아니라 사용한다 해서 낡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40p

길게 이어진 골목- 출구라곤 도무지 보이지 않고 다만 굽은 길로 접어들 뿐인- 은 높은 집들의 지붕이 드리워져 이미 어둑어둑해진 반면, 길게 이어진 하늘은 골목의 잔상이 어린 듯 아직 밝았다. …… 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길이 좁아지는 곳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담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인정(認定)이 아니라 이해불능, 심지어는 적의였다. 그는 그들이 어떤 문학 텍스트의 의미나 의도, 배경을 지정해야한 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57p

작가가 매일 다니던 산책길, 일상적인 것들이 갑자기 낯설고 오히려 적의까지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단어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이제까지 써오던 문장들이 낯설고 의미를 상실한 순간들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작가는 저녁 산책길에서 무수한 얼굴들과 풍경들 그리고 환상을 통해 글쓰기를 상징한다. 의미와 상징을 읽어내지 못하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길을 잃게 된다. 나 역시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오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가 악몽을 꾸는 경우는 오로지 글을 쓸 때뿐이었다. 꿈속에서는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밤새도록 늘 똑같은 판결이 되풀이되었다. 무의미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래서도 안 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죄가 되는 일이었다. 예술 작품, 즉 책의 월권행위는 다른 어떤 죄악을 저질렀을 때보다 더한 영겁의 벌을 받게 되는 가장 고약한 죄악이었다. 그는 하루 일과가 끝나 버린 지금 이때에, 멀쩡한 정신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러 세상에서 영원히 추방된 자가 된 듯한 감정을 체험했다.
95p

산책길에서 다시 서재로 돌아오는 그는 <작가로서의 나> 일까? <나로서의 작가>일까? 수많은 환상과 열려진 의미와 상징 속에서 독자도 무엇이 실재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작가로서 보고 있는 세상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에 빠져있어 현실과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는 작가. 작품을 쓰기 위해 그가 잃어야할, 잃을 수밖에 없는 것들. 그것을 잃고 그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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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거의 10년이 흘러 칠레에서도 한국에서도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피투성이의 카니발‘에 대한 기억은 오늘도 내일도 우리를 저 깊은 곳으로부터 위협할 것이다. 이 작품들은 유약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암흑과 공포에서 눈을 돌리려는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잠시 들렀을 뿐인 이 작은 미술관에서, 예기치 않게 날카로운 자극을 받았다. 이런 미술작품을 일상적으로 제작하고 감상하고 끊임없이 악몽을 반추하면서 그리고 그것과 싸우면서 이 지역의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두 번의 세계대전, 나치즘과 유대인 대학살, 그리고 냉전에 의한 동서 분단이라는 역사를 겪은 독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역시 독일답다고 생각했다. 그와 똑같이 식민 지배, 남북 분단, 그리고 군사정권이라는 역사를 겪어온 조선 민족에게, 그 역사들과 길항할 미술은 있는 것일까? - P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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