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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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인생이란 말이 있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삶을 의미한다. 그만큼 갱도에서 노동하는 삶은, 인생의 막다른 길을 만난 사람들의 희망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 갱부가 되기 위해 주인공은 걸어가고 있다. 19세의 방황하는 청년은 길에서 죽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집을 떠났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던”(26p) 그가 임자, 일할 생각 없나?”(25p)라고 말을 던진 사내 쪽을 돌아본다. 자기도 모르게 그를 향해 가는 발걸음은 사람의 인력(引力)이 그만큼 강하다는 사실”(26P)자신이 박약한 존재”(27P)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생각한다. 19세의 청년은 홀로 길에서 불안했다. 갱부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자신이 그 생활에 적합한 사람인지 상관없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또 다른 불안함으로 향한다.

 

갱부가 되기 위해 가는 길은 기차를 타고, 걸어서 산을 넘고, 낯설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는 기행문의 페이지가 된다. 역에 내려 마주친 낯선 고장의 경치는 숙취에 시달리는 몸처럼 흐리멍덩했던 영혼을 깨우는 명료한 풍경이었고, 역참을 나서서 큰길 한가운데서 바라본 길은 한없이 길고 끝까지 외줄기”(79p)로 이어졌다. 인생에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는 그런 순간이 있다.

 

임자, 일할 생각 없나?” 조조씨의 제안은 광산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 계속되고,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잘 알아보는지, 그의 시도는 실패하지 않고, 두 사람이 합류한다. 빚을 지고 길로 내몰린 붉은 담요’, 배고픔을 해결하는 본능만 남은 꼬맹이’, 이들은 시선을 의식하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예의라고는 없는 부류다. 불편하다. 좋은 집안의 도련님인 주인공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들을 만나고 주인공의 갈팡질팡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들은 광산으로 안내하는 조조씨를 따라, 거듭해서 다가오는 산등성이를 넘고 밤길을 걷는다. 높은 산 고개를 향해 밀려오는 구름에 휩싸인 네 사람의 풍경은 압권이다.

 

네 사람 다 구름에 떠밀리는 듯한, 휩싸이는 듯한 모습으로 구름 속을 올라갔다. …… 산 채 묻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일을 말한다. ……내 몸으로 내 몸을 보증할 수 없는, 또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의 구름은 정말 기쁜 것이었다. 네 사람이 떨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고 뭉치기도 하면서 구름 속을 걸어갈 때의 경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세계에서 분리된 네 개의 그림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네 개인 그대로 끌리어 합치듯이, 튕겨져 멀어지듯이,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네 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구름 속을 오르지 걷기만 할 때의 경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138p)

 

동행의 뒷모습은 여행자의 불안을 사라지게 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고, 기억에 각인된다.

 

마침내 구리광산에 도착한 그가 숙소에서 만난 갱부들은 그를 당황스럽게 한다. 


고개를 들고 보니 조금 전의 그 얼굴들의 눈이 모두 이쪽을 보며 빛나고 있었다. “이봐!”하는 소리가 어떤 얼굴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얼굴에서 나왔다고 해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어떤 얼굴이나 다 사나웠고, 자세히 살펴볼 것도 없이 그 거친 얼굴에 경멸과 조롱과 호기심이 분명히 새겨져 있다는 것은 고개를 들자마자 발견한 사실이었다.”(169p)

 

이 장면은 시각과 청각을 사용해서 주인공의 두려움을 극대화시키는 탁월한 유미주의적 표현이다. 나도 이봐!”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고, 사나운 낯빛으로 일제히 이쪽을 보고 있는 얼굴들의 집합 속에서 당황하는 주인공이 된다. 나쓰메 소세키의 다른 소설에도 그렇듯 이 작품에서도 그림 같은 표현은 탁월하다. 항상 숨을 멈추고 장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들의 조롱 속에서 갱부가 되겠다는 주인공의 고집은 젊은 날의 치기일지 모른다. 이 광산에서 갱부가 되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가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일 수도 있다. 굿길(갱도)을 따라 들어간 주인공의 끝없는 하강도 동행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길이다. 가이드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굿길의 가장 밑바닥에서 만난 한 사람은 그에게 여행을 끝내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 준다. “청년기는 정()의 시절이야.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정의 시절에는 실패하는 법이네. 자네도 그럴 거야. 나도 그랬어.”(279p)라고 한 그는 자신의 실패를 통해, 청년기의 괴로움을 공감해주고 조언해줄 수 있는 어른이었다. “야스씨의 훈계가 나의 초지(初志)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갖고”(283p) 주인공의 귀에 울렸다.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당분간은 이 사람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에서 누구와 만나는가 누구와 동행하는가는 중요한 사건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나고 동행했던 사람들이 다 소중한 사람이었고, 알게 모르게 나는 그들을 의지했다는 사실이다. 19세의 청년에게는 더욱 중요하다향방이 없는 인생의 길에서도 동행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순간을 만든다. 그리고 인생의 좌표는 수정된다.

  

낯선 사내를 무작정 따라 나서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인신매매를 떠올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그 여정을 쫓았다. 그가 그 길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며 그가 도착할 곳이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조조씨의 무심한 듯 능숙한 제안은 도덕 감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막장인생처럼 보이는 태도는 보는 사람을 더욱 초조하게 한다. 광산에 도착한 주인공의 외로움이 내게로 전이된다. 갱도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그의 이동은 추락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동행의 존재는 그를 혼자 걷게 하지 않았고, 충동으로 치닫지 않도록 해주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갱도의 바닥에서 만난 야스씨가 중요한 의미가 되듯, 우리는 절망의 가장 밑바닥에서 큰 전환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으로 인해서! 그리고 갱도에서 올라가는 것이 더 힘든 것처럼, 삶의 제자리로 가는 길도 멀고 힘이 든다. 그럼에도, 돌아가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갱부의 삶을 엿본 주인공은 제자리로 돌아갔을까?

 

손을 놓치기라도 하면 시커먼 어둠 속으로 거꾸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 어깨가 빠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일곱 번째 사다리의 중간쯤에서 화염과 같은 숨을 내뱉으며 노동의 어려움을 절감했다. 그러자 뜨거운 눈물이 눈 안 가득 차올랐다.”(2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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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19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그레이스님의 독서 👍
갑자기 왜 책 제목이 광부가 아니고 갱부인지 궁금해져서 찾아봤어요 ㅎㅎ 인터넷에는 안나와 있는 같아요 ㅜㅜ

그레이스 2021-09-19 23:10   좋아요 3 | URL
광부는 광산의 형태에 따라 갱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을테고 갱안으로 들어가서 일하는 광부를 갱부라고 표현하는것으로...
여기서는 갱도를 굿길이라고 번역했어요
굿길은 순우리말!

사금을 캐던 사람들도 광부!^^

그레이스 2021-09-19 23:10   좋아요 3 | URL
광산에서 광물을 캐는 노동자는 광부,
갱도내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은 갱부.

새파랑 2021-09-19 23:18   좋아요 3 | URL
아하 ㅋ 저는 왠지 갱도 안에 들어가야만 광물을 캘수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나봐요. 저런 차이가 있었군요 🙄

막시무스 2021-09-19 23: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삶의 제자리로 돌아갔나요? 의지만 가지고 끝났나요?ㅎ 근데 뜽금없이 소설의 구성이 단테 신곡을 닮았다는 느낌은 왜 드는건지!ㅎ 소세키 소설에 대한 편견으로 뭔가 우리 개화기 분위기 같을꺼라 생각했는데 올려주신 후기보면서 깜짝 놀랍니다. 전작까지 즐겁게 정주행하시고요!ㅎ

그레이스 2021-09-19 23:55   좋아요 4 | URL
여행을 한다는 면에서는 그럴 수 있겠네요 ^^
질문하신 답은 스포가 될듯하여...!^^
감사합니다.

막시무스 2021-09-19 23:55   좋아요 4 | URL
ㅎㅎ 클래식한 구성상 빛이 살짝 비치는 제자리쪽을 바라보는데서 막이 내리는 걸로!ㅎ

그레이스 2021-09-19 23:57   좋아요 4 | URL
소세키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잘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서 소재를 얻었다고 합니다.

막시무스 2021-09-20 00:03   좋아요 4 | URL
주인공이 이야기 해 줬군요!ㅎ 산시로부터 볼려고 했는데 요즘 탄광이야기를 너무 마니 만나서 인연인듯 하니 갱부로 소세키 입문해야 겠네요! 구매완료!ㅎ

파이버 2021-09-20 00: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보고 굿길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갱도였군요... 힘든 일임에도 사람이 좋아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거 같아요

주인공이 결국 돌아갔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속물?이라서 주인공이 좋은 집안의 도련님이라면 갱부로 남기에 아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레이스 2021-09-20 05:13   좋아요 4 | URL
좋은 집안 도련님이어서라기보다 그 시대 갱부들은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나봐요. 그래서...!

mini74 2021-09-20 2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글에 막 빨려들겠는데요. 소세키 소설인데 좀 낯설게 느껴져요 ~~

그레이스 2021-09-20 22:25   좋아요 1 | URL
조금 느낌이 다르긴하지만 사람의 마음, 풍경을 그리는 묘사는 소세키 맞습니다^^

희선 2021-09-21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한테 도움을 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겠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다 스승이다는 말도 있지만... 죽어도 좋다고 집을 나오다니, 이젠 그런 생각 안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09-21 17:45   좋아요 1 | URL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요~♡
 

원제가 사무라이

이럴땐 정말....!

˝이거 집에 있어.˝
<사무라이>가 집에 온날

지금 찾았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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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씨 2021-09-19 13:1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웃으면 안되는데 웃음이... ^^ 저도 개정판 제목 바뀐 거 모르고 두번 산 적이 있어서 남 얘기 같지 않습니다. ㅎㅎㅎ
근데 표지가 참 예(?)스럽네요. ^^

그레이스 2021-09-19 10:49   좋아요 5 | URL
새걸로 읽어야죠^^

mini74 2021-09-19 10: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뭔가 비장해 보이는 표지입니다 ~

그레이스 2021-09-19 12:37   좋아요 3 | URL
옛날 책 느낌 확 나죠?^^

막시무스 2021-09-19 10:5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헉! 이건 표지가 문화재 수준!

그레이스 2021-09-19 12:38   좋아요 4 | URL
안에 글씨도 예스러워요

파이버 2021-09-19 11: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건 잊으셨을 만도한데요… 표지와 제목이 너무 다르잖아요ㅠㅠ 찾으신게 더 대단하십니다

그레이스 2021-09-19 12:39   좋아요 4 | URL
어딘가에 있다고 ㅋㅋ
다른 책들도 있을거라고 해서 찾았는데 이것만 찾았어요

scott 2021-09-19 13: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서재에는 삼중당 문고 부터 지금은 사라진 고려원북스 문학집 더 거슬러 올라가 계몽사 전집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물 창고 ^ㅅ^

그레이스 2021-09-19 13:13   좋아요 3 | URL
ㅎㅎ
그책들은 처분한지 오래고, 절판된 책들은 갖고 있어요.
이제 이 책도 ...

새파랑 2021-09-19 14: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완전 클래시컬 하네요 😅 포스가 느껴집니다~!!

그레이스 2021-09-19 1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끔 이런 이벤트 좋긴한데 이젠 정리해서 버려줬으면 해요

Falstaff 2021-09-19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번역한 김갑수, 시인. 음악으로 말하자면 저 펑크와 악마주의부터 바흐까지 섭렵하는 놀라운 감성의 소유자....였다가, 꽁지머리 하고 종편에 등장해 전문 방송인으로 둔갑한 말 잘하는 이 맞죠? (요즘엔 안 나오더군요. 나이가 들어 그런가....) 아, 그이가 이 작품을 번역까지 했군요. 놀랄 노자 입니다. 저도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를 읽어봤는데, 참 글은 아스라하게 잘 씁니다. 인정!
김갑수, 방송인이 아니라 활자에 목을 거는 문인으로의 그가 그리워서 댓글 달았습니다. 인생이 다 그렇지요 뭐. ㅋㅋㅋㅋ
근데 이이가 일본어 번역을 했어요? 와우.... 저 같으면 이번 이벤트로 정리해서 버릴 것 같습니다만.... ㅋㅋㅋㅋㅋ 저 취했어요. 낼 이 댓글 지울지 모릅니다. 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9-19 19:28   좋아요 1 | URL
ㅎㅎ
폴스타프님 문인들을 향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순간을 많이 목격하네요~^^
‘인생이 다 그렇지요 뭐‘하시는 말씀 속에 그렇게 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읽혀집니다.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건강 생각하셔서...ㅠ

그리고 번역가 김갑수씨가 따로 계신걸로 알아요. 8개국어 하시는...^^
시인, 문화평론가 김갑수씨가 아니구요;;

Falstaff 2021-09-19 19:35   좋아요 1 | URL
아, 검색해봤더니 김갑수가 또 있군요!!
아이고, 갑수. 참 촌스런 이름 아녀요? 왜 글케 촌스럽게 이름 받은 사람이 많아요?

그레이스 2021-09-19 19:53   좋아요 0 | URL
😅 ^^;;

서니데이 2021-09-19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전에 번역된 책들, 이제는 구할 수 없어서 귀한 책들 같아요.
전에는 이런 제목으로 우리 나라에 나왔네요.
그레이스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09-19 22:40   좋아요 1 | URL
예~
서니데이님도 명절 잘 보내세요

희선 2021-09-21 0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한국말로 나왔군요 언제 나온 책인가 찾아보니 1991년이네요 제목이 다르게 나와서 잊어버리셨겠습니다 본래 밑에 쓰여 있지만...


희선
 
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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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을 향하게 된 여로. 산정상에 내려앉은 구름 속을 걷는 네사람. 향방없는 삶의 순간도 사라졌다 나타나는 동행의 뒷모습으로 인해 아름다울 수 있다. 갱도에 난 굿길을 따라들어가, 칠흙같이 어두운 밑바닥에서 만난 한 사람은 그 여정의 의미가 된다. 만남은 인생을 바꾼다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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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9 01: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별 다섯!🖐

막시무스 2021-09-19 09: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판화 비슷한것 같은데 표지가 제목이랑 후기랑 잘 어울리는것 같습니다! 왠지 느낌 좋은데요!ㅎ

그레이스 2021-09-19 10:03   좋아요 2 | URL
갱부라고 해서 막장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여행기처럼 느껴졌어요^^
 

시각적인 표현.
탁월하다




그런데 내 가슴 위쪽이 계단 위로 드러난 것과 동시에 그 덩어리의 각부분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이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 얼굴, 사실은그 얼굴 때문에 완전히 위축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얼굴이 평범한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순수한갱부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 말고 달리 형용할 수가 없다.
갱부의 얼굴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있는 사람은 직접 가서 보는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도 꼭 설명을 해보라고 하면 대충 말하겠는데, 광대뼈가 둥글고 높이 솟아 있다. 턱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동시에 좌우로 뻗어 있다. 눈이 단지처럼 움푹 들어가 안구를 거침없이 안쪽으로 빨아들인다. 콧방울이 내려앉았다. … 요컨대 살이라는 살은 모두 퇴각하고 뼈라는 뼈는 모조리 함성을 지르며 나아간다고 평하면 될 것이다. 얼굴의 뼈인지 뼈의 얼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각진 얼굴이다. 격렬한 노역을 하기 때문에 빨리 나이를 먹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둥그스름한 느낌이라든가 따뜻한 느낌, 다정한 느낌 같은 것은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자면거칠고 난폭한 느낌이다.  - P167

그때 돌연 누가 불렀다. 나는 그때 마침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루미시보리‘의 허리끈을 고쳐 매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전기 장치라도 된 얼굴처럼 목덜미가 갑자기 땅겼다. 고개를 들고 보니 조금전의 그 얼굴들의 눈이 모두 이쪽을 보며 빛나고 있었다. "이봐" 하는소리가 어떤 얼굴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얼굴에서 나왔다고 해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어떤 얼굴이나 다 사나웠고, 자세히살펴볼 것도 없이 그 거친 얼굴에 경멸과 조롱과 호기심이 분명히 새겨져 있다는 것은 고개를 들자마자 발견한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발견하자마자 굉장히 불쾌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든 채 "이봐"
하는 소리가 다시 한번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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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9-18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오늘은 추석연휴 첫 날입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09-18 21:49   좋아요 1 | URL
예~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명절 되세요~
 

병에 잠복기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사상이나 감정에도 잠복기가 있다. 이때에는 자신이 그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감정에 지배당하면서도 전혀 자각하지못한다. 또한 그 사상이나 감정이 외계와의 관계로 의식의 표면에 드러날 기회가 없으면 평생 그 사상이나 감정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자신은 결코 그런 기억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는 이런 거라며 줄기차게 반대의 언행을 해 보인다. 하지만 옆에서 보면 그 언행은 모순되어 있다. 스스로 미심쩍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미심쩍다는 것은 모르더라도 엄청난 고통을 겪기도 한다. - P62

앞에서 말한 대로 내 영혼은 숙취에 시달리는 몸처럼 한없이 흐리멍덩했다. 그런데 역을 나서자마자 예고도 없이 명료한, 맹인에게조차 명료한 그 경치에 딱 맞닥뜨린 것이다. 영혼만큼은 놀라지 않으면안 되었다. 실제로도 놀랐다. 놀란 것은 틀림없지만 지금까지 흐리멍덩해서 마지못해 배회하고 있던 타성에서 일변하여 진지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내가 앞에서 말한 일종의 묘한 기분은영혼이 몸을 뒤치기 전, 그러니까 경치가 참 명료하구나 하고 깨달은직후의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마음이었다. 그처럼 느긋하고 명백한 경치는 지금까지의 내 정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위세가 좋은것이었는데, 내 영혼이 아니, 이런, 하고 생각하여 진지하게 이 외계를대하기 시작한 것을 마지막으로 아무리 환해도 아무리 한가롭게 있어도 완전히 실세계의 사실이 되어버렸다. 실세계의 사실이 되면 그 어떤 후광도 고마움이 없어진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내 영혼이 어떤 특수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즉 환한 외계를 환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은 갖고 있으면서도 그걸 실감이라고 자각할 만큼 작용이날카롭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곧은길, 그 곧은 처마를 사실과 다름없는 환한 꿈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세계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명료한 정도와 그에 따르는 확실한 쾌감으로 타계의 환영을 접한 기분이 들었다. - P79

기울기 시작한 해에서 눈을 옮겨 그 푸른 산을 바라보았을 때저 산은 홀로 서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안쪽으로 쭉 이어져 있는 것일까하고 생각했다. 조조 씨와 나란히 점점 산 쪽으로 걸어가자 아무래도저편에 보이는 산 깊은 곳의 더 깊은 곳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고, 그산들은 모조리 북쪽으로, 북쪽으로 이어져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가 산을 향해 걸어가지만 그저 걸어갈 뿐 좀처럼 산기슭에 다다르지 않아 산이 안쪽으로, 안쪽으로 계속 물러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해가 점점 기울어 그늘진 쪽은 푸른 산의 윗부분과 푸른 하늘의 아랫부분이 서로의 본분을 잊고 적당히 남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기 때문에 바라보는 내 눈에도 산과 하늘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고,
따라서 산에서 하늘로 시선을 옮길 때 그만 산을 벗어났다는 의식을망각하고 하늘을 여전히 산이 이어진 것으로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하늘은 무척 광활했다. 한없이 북쪽으로 뻗어 있었다. 나와 조조 씨는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 P81

해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 올려다보았으나 양지는 어디에도 보이지않았다. 다만 해가 진 쪽이 희미하게 밝았고, 그 밝은 하늘을 등지고있는 산만이 눈에 띄게 검푸른 빛을 띠어갔다. 5월이었으나 추웠다.
이 물소리만으로도 여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더구나 지는 해를등으로 받고 정면은 그늘진 산의 색이란, 대체 무슨 색이라 해야 할까? 단순히 형용할 뿐이라면 보라색이라고, 검은색이라고, 푸른색이라고 해도 상관없겠지만 그 색의 느낌을 쓰려고 하면 잘 안 된다. 어쩌면 그 산이 당장 움직이기 시작하여 내 머리 위로 와서 왕창 뒤덮지않을까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추웠을 것이다. 실제로 앞으로 한두시간 안에 전후좌우 사방팔방이 모조리 그 산과 같은 불길한 색이 되어 나도 조조 씨도, 이바라키 현도, 완전히 한 가지 색의 세계 안에 휩싸이고 말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두 시간 전에 석양의 한 부분의 색으로, 한두 시간 후에 나타날 전체의 색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부분이 전체를 부추겨 당장 그 산의 색이 퍼져가겠구나 하는 예감이 마음 한구석에 들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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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8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갱부,,,도전 할지 말지 고민 중 ㅋㅋㅋㅋ

그레이스님 추석 연휴 1일 1소세키 옹 응원합니다~~

〃∩ ∧_∧
 ⊂⌒( ・ω・)
  \_ っ🌖c해피 추석~~

그레이스 2021-09-18 01:04   좋아요 1 | URL
좋은데요~~!

희선 2021-09-18 0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소세키 책 거의 다 보시겠네요 그레이스 님 주말이랑 명절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1-09-18 09:48   좋아요 1 | URL
현암사 전집은 다 보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희선님도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