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그리스 메가라인들이 이곳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비잔티움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기록되어있다.
여기서 또 같은 내용을 보니 반갑다.
옆에 두고 생각 날때 마다 보기 좋은 책이다.
아이들하고 함께 한챕터씩 읽어나가는 것도 유익하다.


오스만제국의 최전성기를 구축한 술탄은 1520년에 즉위한 술레이만 1세다. 명소로 꼽히는 술레이마니에 모스크는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1557년 이스탄불의 중심부에 건설되었다. 높이 54미터, 직경27미터나 되는 거대 돔을 만들고 건물을 에워싸는 네 개의 첨탑(미나레트) 표면도 치밀하게 장식했다. 
이 모스크를 설계한 건축가 미마르 시난은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미켈란젤로와 어깨를나란히 한 천재로 꼽힌다. 오스만제국에는우수한 그리스도교도의 아들을 이슬람교로 개종시켜 고급관리나 예니체리‘라 불리는 황제직속의 엘리트 군인으로 육성하는 제도가 있었다. 시난도 원래는 그리스교도 집안의 그리스인이었다.
1616년에는 시난의 문하생인 메메트아아가 건축을 담당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완성되었다. - P90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에서 언뜻 이스턴‘ 즉 ‘동방‘을 연상할지모르지만, 이 도시명은 그리스어의 ‘이스 띠 뽈린(도시로)‘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터키 인근에 사는 그리스인은 동로마제국 시대에부르던 이름에 따라 현재도 이곳을 그리스풍 호칭인 ‘콘스탄티누폴리‘라고 부른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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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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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을 읽고서야 전에 읽었던 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시구로를 한참 열독할 때 읽었다. 발췌해놓았던 것을 확인하고 어이가 없다. 바쁘게 읽었거나, 집중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억지로 의무감에 읽었거나 ……, 후자인 듯, 아니, 둘 다인 것 같다. 어차피 들었고 읽었던 기억이 희미하니 빠른 속도로 다시 읽었다. 뒷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흡입력이 이시구로의 다른 책보다는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영국에서 상하이로 다시 영국으로의 장소의 이동, 1930년에서 1937년과 1958년의 시간적 배경, 그리고 1910년대의 상하이 조계에서의 회상으로 이어진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의 구성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렇게 시공간을 넘나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1930년, 1931년 1937년 1958년으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주인공의 기억 속 진실이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다 읽고 나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를 애써 생각해야 하는 책이 있다. 이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 많아서 그럴까? 이 주제가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 소설이 던지는 문제의식이랄까 주제는 줄리언 반스의⟪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나 이언 매큐언의⟪속죄⟫와 맥을 같이 한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알 수 없을 때가 많다는 것. 드러나는 모습은 더 많은 이유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편견은 보고 있는 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판단의 칼날은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파탄으로 이끈다.

주인공 크리스토퍼 뱅크스가 월도프와 런던에서 만난 세라 헤밍스의 태도, 그녀와 세실경의 관계는 오해와 비판을 일으키기 쉽다. 크리스토퍼와 사교계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녀의 삶은 신분상승과 화려한 생활을 위해 결혼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세실경의 태도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세라 헤밍스와 결혼하지만 그녀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만난 그들의 본심은 겉으로 보는 것과 달랐다. 세라 헤밍스를 통한 경험은 가리워진 진실을 암시한다. 크리스토퍼는 어릴 적 상하이 저택에서 보고 경험하고 알고 있는 사실 뒤에 다른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상하이 조계에 살면서 아편밀수와 연루되어 실종된 아버지와 어머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삼촌에 대한 기억을 쫓아 상하이로 온 그는 새롭게 밝혀지는 단서들을 만난다.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찾아 간 곳 난징은 전투가 한참이었다. 이곳에서 일본군이 되어있는 어릴 적 친구 아키라를 만난다. 부상을 당한 아키라와 한 밤을 지새우고 그는 영국대사관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를 구하려는 그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삼촌을 만나 자신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구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후에야 홍콩의 요양시설에 있는 어머니를 만났고, 그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그렇게 크리스토퍼 뱅크스는 유년기에 묶여있던 상처를 치유 받는다.

작가는 영국으로 건너가기 전 상하이에 살았던 기억을 소설의 배경으로 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경험했던 영국인들과 일본인들의 생활과 에피소드 역시 소재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유년기의 불안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던 아키라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을까 아님 또 다른 친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내의 국제 조계에서 일어난 납치 사건 당시와 중일 전쟁의 중국은 불안정한 모습이다. 제 2차 대전이 끝난 후 1958년의 홍콩은 새로운 세기를 맞는 것처럼 안정을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크리스토퍼 뱅크스처럼.

전쟁이라는 거대한 흐름 뒤에 가리워진 개인의 삶의 진실들, 국가라는 거대한 의미 아래 감추어진 개별자의 인식과 삶의 의미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사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체된 인간들. 작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진실에 대해 많은 작품을 쓰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 소설에서 아키라에 주목하게 되었다. 작가의 내면에 남아있는 자아를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유년기의 아키라는 상하이에서 일본에 돌아가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잘못을 저지른 결과에 대한 벌이 일본에 보내지는 것이 될까봐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일본 본토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당시 일본 지식인의 자화상인가 하는 생각이다. 중일전쟁의 전장(戰場)에서 만난 아키라는 더욱 불안 증세를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서 이탈해 도망쳐도 중국인들에게 해코지를 당하고 있는 거할 곳 없는 일본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극우로 치닫고 있는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도 돌아갈 수도 없었던 일본 지식인의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상하이에서 영국에서의 작가의 정체성의 한 부분을 형성한 정서라는 생각이 든다.

전체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고아와 같은 정서와 정체성을 갖게 한다.

전쟁터 장면은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에서의 시가전을 기억나게 했다. 인터내셔널 조직원인 프랑스인이 국공합작이 깨지고 중국군과 공산군이 전쟁을 벌인 1927년 상하이 전투에 참전한다. 그의 참전의 목적은 공산혁명이라는 대의를 이루기 위함이다. 반면 이 소설 ⟪우리가 고아였을 때⟫에서는 한 인간의 잃어버린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주친 전투다. 사상적 대의이든지, 개인적인 사건이든지 서로 얽힐 수밖에 없다. 참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내가 이곳에 도착한 이후 내심 충격을 받은 것은 이곳에 사는 모든 이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치명적인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곳에 도착해 이 주 동안 지위가 높든 낮든 이들시민들과 나눈 교제를 통틀어 정직한 태도로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문명 세게 선체를 집이삼키려 위협하는 큰 소용돌이의 중심부인 이곳에서 사람들이 딱하게도 공모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자주 목격한 젠체하는 변명으로 책임 회피 그 자체에만 골몰해 사태를 엉망으로 만들어 왔다. 그리고 지금 그런 그들, 이른바 상하이의 엘리트들이 여기에 모여, 운하 저편의 중국인 이웃들이 겪는 고초를 경멸어린 어조로 논하고 있는 것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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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15 2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체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고아와 같은 정서와 정체성을 가지게 한다.]우와 그레이스님의 이 문장은 밑줄 두줄 쫘악[전체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고아와 같은 정서와 정체성을 가지게 한다.]우와 그레이스님의 이 문장은 밑줄 두줄 쫘악 ५✍⋆* 난징 대학살 시대에 집단 수용소로 끌려갔던 영국 작가 JG발라드가 당시 십대 였는데 영국으로 가족과 함께 돌아 온후에도 수년간 스스로 몸과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고아‘라고 느꼈데요이 작품의 주인공 ‘아키라‘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아버지 모습을 투영 시켰죠. 상하이 태생으로 중국에도 일본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않은 씩씩한 사나이로 기억 하더군요 자신의 아버지를,,,

그레이스 2021-04-15 22:21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아키라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네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4-15 22:32   좋아요 2 | URL
‘가지게 한다.‘
표현이 어색해서 ‘갖게 한다‘로 바꿨습니다. ㅋ
따로 떼어보니 이상하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4-15 2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처음 읽은줄 알고 읽다보니 전에 읽었더라는(1Q84 1권 이였습니다 ㅎㅎ)
이시구로 📚이라니 이것도 읽어야 겠습니다^^
 



알키비아데스(Alcibiades, BC450?~404)는 대 아이아스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다. 아이아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하다가 오딧세우스에게 빼앗기고 수치심과 분노로 자결한 사람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유능한 장군 크리아니스의 아들이다. 가문도 좋을 뿐 아니라 용모도 아름다웠고 사교술도 뛰어나고 전쟁에서의 지략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발음을 흉내 내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관심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가 알려지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와 가까이 지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소년인 그를 아끼고 사랑해서 가까이에 두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전투에서 위험에 빠진 알키비아데스를 구해주기도 하고, 알키비아데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알키비아데스 또한 소크라테스를 존경해서 그를 몹시 사랑하고 따랐다고 한다. 반면 알키비아데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교만하고 난폭한 태도를 보여서 정적이 많았다고 한다.

알키비아데스가 활동한 시기는 델로스동맹이 깨지고 스파르타 연맹과 아테네의 연맹이 패권을 놓고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기이다. 많은 전쟁에서 알키비아데스는 공을 세우기도 하고 웅변술도 뛰어나 그의 가까이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정적들을 만든다. 이 때문에 모함을 받고 재판을 받기도 하고 결국은 탈출해서 스파르타와 페르시아를 위해 전투에 참가한다. 자신이 가진 자금으로 군사를 모아 용병으로서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 그리스 고대 도시국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던 같다. 아직 국가주의라는 것이 탄생하기 훨씬 전이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근대의 정의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스를 침공했던 페르시아로 도망가서 여생을 마친 그를 영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시대 역시 그런 그를 영웅전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페리클레스에게서 모든 것을 물려받았으나 그 정직함만은 물려받지 못했고, 소크라테스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지만 그 도덕성만은 배우지 못했다고 그를 평가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1장 알키비아데스 편을 읽고 정리하면서 오래 전 읽었던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이 떠올랐다새로 출간된 감정의 혼란에 대한 리뷰가 올라오는 것을 자주 본 탓이기도 했다.



주인공과 교수의 감정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이 인상적으로 각인 되어 있어서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관계로부터 자연스럽게 연상된 것 같다. 이 소설에서 대학교수의 서재에 걸려 있던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하나의 복선이었다.

 

책상 위에는 라파엘의 <아테네의 학교>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특히 사랑하는 그림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종류의 교수와 정신의 표현을 상징적으로 완전한 종합체를 이루도록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의식중에 나는 소크라테스의 완고한 얼굴 속에 그의 이마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은 이 교수에게서 지적인 욕망을 채운다. 그의 강의에 매혹당하고 굶주린 듯 빨아들인다. 한 마디 한 마디, 몸짓, 손짓까지 욕심 사납게 집어삼키고 돌아와 끌어안고 어루만지고 간직한다는 표현은 지적 욕구가 아닌 성적인 욕망을 나타내는 묘사이다. 그의 삶에서의 습관조차도 그의 가치관에 의해 버려지거나 새롭게 조종당하는 것을 본다. 마치 연인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러나 때때로 보이는 차가운 반응과 사적인 삶에서 보이는 미스터리한 모습은 주인공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교수의 모습은 마치 파우스트의 옷을 입고 발푸르기스의 밤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바그너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교수의 고백으로 냉정과 열정을 오갔던 태도의 정체가 드러난다. 함께 주인공의 혼란스러웠던 감정의 이유도 밝혀진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모든 기억이 맹렬하게 물결치고, 마치 하나의 암호가 모든 이해할 수 없었던 보고의 말을 한꺼번에 다 풀어 준 것 같았습니다. 내게는 지금 무섭도록 모든 것이 명백하게 되었고, 그날 밤의 애정적인 그의 방문과 그의 늘 무뚝뚝했던 변명이 죄다 알려졌습니다. 그 날 저녁의 그의 방문과, 감격하여 달려든 내 열정에 대해 언제나 그가 무뚝뚝하게 회피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127p

 

주인공이 교수를 떠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논문집을 펴내며 현재의 자신이 있게 된 정신적인 생명 과정의 가장 깊은 비밀이 바로 이 교수와의 만남에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청춘의 진실과 함께.

 

주인공이 느꼈던 감정의 혼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교수의 열정을 따라가면서 탐욕스럽게 집어삼킨 지적 욕망의 끝에는 동성애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때 주인공은 감정의 혼란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그 혼란스러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주인공이 카타르시스나 극치를 경험한 것의 정체가 육체적인 욕망이었는지 지적인 것으로 인한 것인지 혼동했을 수도 있었을까? 인간의 욕망의 끝은 결국 종착점에 이르러 한 곳에서 만나는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이나 그 뿌리의 웅덩이 속, 또는 하수도 속과 같은 그런 곳에서만 진실로 위험한 정열의 야수가 인광을 발하며 숨어서 각양각색의 괴기한 유혹 속에 남 몰래 연결되기도 하고 분열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131p

 

츠바이크를 한참 탐독할 때 읽었던 정신의 탐험가들이 또 하나의 고리를 만든다. 심리 치료의 세계를 개척한 학자 안톤 메스머와 메리 베이커 에디, 프로이트에 이르는 정신의 탐험가들에 관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이다. 프로이트에서 출발해 융, 정신분석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책이었다. 지금은 절판 상태. 츠바이크가 계속 꾸준히 읽혀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다시 출간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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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4-14 2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감정의 혼란 읽으면서 그리스식 멘토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레이스님글, 고개 끄덕이며 잘 읽었습니다. 너무 좋아요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어린시절 동화책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레이스님 글 읽고나니 제대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편한 밤 보내세요 ~

미미 2021-04-14 2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글을 보니 츠바이크가 자신의 소설에서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관계를 염두해 둔것 맞는 듯! 역시 지식이 쌓일수록 이해 반경도 넓어지겠어요. 아아 저도 츠바이크의 절판된 책들 재출간을 바랍니다아! 😁

라로 2021-04-14 22: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재지수 : 23389점
마이리뷰: 18편
마이리스트: 0편
마이페이퍼: 43편
오늘 7, 총 777 방문

안녕하세요? 예전 알라딘 서재에서는 이렇게 특이한 거 서로 캡춰해주고 했는데,,,옛날 생각 나요.
제가 그레이스님 서재에 오늘의 7번째면서 777번째 방문자네요!! (혼자 의미를 두고 있는;;;)^^
이렇게 사유가 팽창하는 글 좋아해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1-04-14 23:07   좋아요 1 | URL
의미를 부여하는것 어째 설레이네요.
김춘수의 꽃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레이스 2021-04-14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모두!

새파랑 2021-04-14 2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되는군요. 그레이스님 완전 전문가시네요^^ 전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그냥 감정의 혼란만 느겼는데~역시 아는만큼 보인다는~!!

그레이스 2021-04-15 00:05   좋아요 1 | URL
올리시는 츠바이크 책 정보 많은 자극이 돼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제게 없는 책이어서 구입해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바람돌이 2021-04-15 0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 감정의 혼란 읽으면서 아테네 학당 얘기는 그런가 하고 넘겼는데 그레이스님 글 읽다 보니까 진짜 복선 맞네요. 하 또 이렇게 새로운 시각을 배워갑니다. ^^

scott 2021-04-15 1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츠바이크옹의 감정의 혼란은
결국 아테나 학당 그시기의 논쟁에 관한
인간의 지적 욕망을 향한 열뛴 토론을
한권에 소설에 담아 버린 ㅎㅎㅎ
 

어머님이 누워 계시던 방의 냄새가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다. 오늘도 닦고 치우며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을 기억했다. 아마도 어머님 홀로 계시다 돌아가셨다면 그런 청소가 되었을 것이다. 요양병원에 계셨더라면 침상 하나를 정리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새벽 2시 방문을 열었을 때 죽음에 이르는 사투를 벌이고 계신 것을 발견했다. 어둠 가운데서 거친 호흡을 내뱉고 계셨다. ‘체인 스톡스 호흡 Cheyne-Stokes respiration’이 시작된 것이다. 임종 직전에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숨을 몰아쉬는 현상이다. 거친 숨과 함께 엄청난 냄새에 당황스럽다. 손을 붙들고 찬송가를 불러드렸다.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와 함께 울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있다가 용변을 닦아 드리고 새벽 3시가 되어 방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몸에 밴 희미한 냄새를 느끼면서…·. 그리고 그날 밤 11시 30분에 소천하셨다. 불과 5일 전 일이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방 정리를 하면서도 그 마지막 밤이 계속 떠올랐다. 이미 저만큼 건너 가버린 그 분과 나의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 분 홀로 둘 수 없었다. 고독하고 힘겨운 시간을 함께 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 힘겨운 숨을 바라보며 저절로 빨리 평안을 맞이하시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편안한 죽음』을 읽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어머니가 암으로 병원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경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나의 경험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물리치료사가 침대로 다가와서 이불을 젖히고 엄마의 왼쪽다리를 들어 올렸다. 앞자락이 벌어진 잠옷 속으로 쪼글쪼글하게 주름 잡힌 뱃가죽과 음모가 하나도 남지 않은 치골이 드러났다.」
29p

자신의 엄마는 상처입기 쉬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창피한 일도 겪은 적이 없다고 한다. 깔끔하고 고상한 취향의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런 자신의 엄마가 병상의 침대 시트에 배설을 하고 관장을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 인간의 동물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커다란 용기였다고 한다.

누구나가 병상에서는 자존심을 세울 수 없다. 의학에 굴복하게 되고 존엄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도 어머니의 배설물을 치우면서 당신이 언젠가 며느리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상상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시고 있던 1년 반 동안 목욕도 시켜드리고 가끔 실수하신 뒤처리를 하긴 했지만 죽음을 앞 둔 거의 보름 동안 방문을 열기 전에 나는 쉼 호흡을 해야만 했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성큼성큼 다가서는 죽음의 징후가 내뿜는 악취와 새로운 상황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는 어머님의 두려움과 회환에 같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잘 보내드리자고 다짐을 거듭했지만 마지막 며칠은 긴 시간으로 여겨졌고, 병원에서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로 모실 것을 고민하기도 했다.

「나는 죽어가는 이 여인에 대해 점점 더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병실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오랫동안 둘 사이에 쌓였던 어떤 회환 같은 것들이 치유되고 있음을 느꼈다. 」
154p

아마도 어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지키게 된 것은 이러한 의미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이니 어려움의 순간도 있었다. 굳이 대화가 없어도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분의 곁에서 손을 잡고 있었던 그 새벽 나는 눈물을 흘리며 치유를 경험했다.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어머님에게도 회환을 다 놓아버린 순간이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오래 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생각한 인간의 죽음은 피상적이고 추상적이었다. 인간의 죽음은 보다 구체적이고 디테일 하다. 병상에서 배설을 하고 악취를 풍기고 다른 이의 도움이 없이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은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숨소리를 듣는 실재이다. 거실과 방 사이의 방문 하나를 두고 현실과 비현실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죽음을 맞는 사람이나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나 물적인 상황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서 존재에서 무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죽음 후 그 존재는 거대한 것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보부와르의 말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남겨놓은 물건들을 치우고 냄새를 지우면서, 떠나간 자리에서. ‘그는 그가 없음으로써 완전한 無가 되기도 하고 그가 있으므로 온전히 존재하는 세계마냥, 거대한 존재가 된다.’

「자연사란 없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어떤 일도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상에 그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 사건이다.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다. 」
217p

이런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몸이 존엄을 잃어버렸을 때, 마지막까지 그 존엄을 지켜주어야 할 사람들은 옆에서 병상을 지키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의 삶을 지켜보았고, 삶을 함께 살았던 가족들이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머니와의 그 새벽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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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4-11 01:4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그레이스님 너무 장하고 멋있게 어머니를 잘 보내드리셨군요. 그거 쉬운 거 아닌데 진심으로 감동 받았어요. 담담하게 말씀하셨지만 많이 힘드셨을 거 같아요. 푹 쉬시면서 마음 추스리는 시간 오래오래 가지세요. 책의 치유력을 이미 경험하고 계시지만, 더 많이 경험하시기를🙏

그레이스 2021-04-11 01:4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2021-04-11 0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4-11 08:0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hnine 2021-04-11 07:0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정말 힘든 일을 겪어내시고 이렇게 차분하고 울림있는 글을 써주셨네요. 저도 5년전 아버지의 마지막을 옆에서 지켜본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않아요. 죽음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요.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천천히 마음 잘 추스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04-11 08:0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미미 2021-04-11 08: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그레이스님. 뭐라 위로를 해 드려야 할지. 그레이스님이 시어머님 곁에서 지켜주시고 손도 잡아주셔서 분명 큰 의지가 되셨을 거예요. 아픔없이 하늘에서 평온하게 쉬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1-04-11 09:3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수이 2021-04-11 09: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부아르 글을 덕분에 이렇게 마주할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그레이스 2021-04-11 10: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4-11 0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힘든 일이 있으셨군요ㅜㅜ 임종을 지켜보는건 정말 힘들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책을 통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힘내세요~!!

그레이스 2021-04-11 10:0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scott 2021-04-11 1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머님,,그레이스님의 따스한 온기, 마지막 사랑 전해 졌으리라 ㅠ.ㅠ 봄날 햇살 처럼 가신곳에서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1-04-11 12: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2021-04-12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4-12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자성지 2021-04-15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을 피안의 세상으로 보내고 얼마나 상심이 크셨습니까.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으며 한 번은 맞이할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어머니와의 삶이 언제까지나 이어질지 모르는 지금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주말에도 엄마와 함께하렵니다.
 

나의 양탄자는 빠름 빠름 빠름
표지만 읽음
우리가 고아였을때 읽는중인데 이것부터 읽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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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6-14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사놓고 몇페이지 읽다 말았네요.
놔뒀다 읽어야지 하고
오늘 북플보다가 손가락을 잘못 놀려서
6월에 읽고 있는 책으로 올라갔네요
지우려니 플친님들 좋아요 하신 수고가 죄송스러워서 차라리 책을 빨리 읽기로 했습니다^^
민망합니다.ㅋㅋ

새파랑 2021-06-14 20:03   좋아요 0 | URL
완독에 리뷰까지 기대합니다^^

그레이스 2021-06-14 20:04   좋아요 1 | URL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