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공-마카르 전집을 시작하기 전에 썼던 실험소설과 같은 테레즈 라캥서문에서 에밀 졸라는

테레즈 라캥에서,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능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좇아가려고 노력했다. 나의 두 주인공들에게 있어 사랑은 필요의 만족이다. 살인은 그들이 저지른 간통의 결과이며, 그들은 마치 늑대가 양을 하듯 살인을 한다. 내가 그들의 회환을 촉구해야 했던 부분은, 단순한 생체조직 내의 무질서, 파괴를 지향하는 신경체계의 반란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영혼은 완벽하게 부재한다.” (테레즈 라캥서문 중, 에밀 졸라)

라고 말했다.

 

나나는 영혼이 부재한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로서 사람들 가운데 던져진 것이다. 그녀로 인해 그 주변 사람들이 어떤 자극을 받고 어떻게 추락하는가를 보여준다. 나나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오히려 그녀 주변인들의 생각, 감정, 동기들이 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나나와 달리 그 주변인들이 보여준 반응과 삶의 진행 방향은 예측이 가능한 보편성을 띄고 있다.

 

그녀가 파리의 한 극장 19세기 비너스로 등장함으로, 무대 뒤 여배우들의 불행한 삶과 그들을 찾는 파렴치한 귀족들의 모습이 함께 조명된다. 그녀의 소문이 파리 귀족들의 사교계에 퍼져감에 따라 이미 파괴되고 해체된 그 가정의 폐부가 드러난다. 그녀를 좋아했던 스타이너, 라 팔루아즈, 뮈파, 조르주, 필리프, 슈아르, 방되브르 등 남성들은 파산과 불명예를 면치 못한다. 그들의 은밀했던 욕망이 발각되고 노골화 되며, 스스로를 구별했던 사회적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나나의 주인공은 나나가 아니다.(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도 안나 카레니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스만 대로에 있는 나나의 3층 집 모습-금칠을 한 의자나 탁자 같은 요란스러운 사치품이, 조그만 마호가니 원탁과 피렌체의 청동을 흉내 낸 아연 촛대 등 중고 상점에서 산 중고품들과 극심한 대조-성실했던 첫 남자로부터 너무 일찍 버림받고 수상한 남자들의 손에 넘어간 여자임을 짐작하게 한다. 나나는 출발이 어려워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고, 신용 추락과 추방 위협으로 발에 족쇄가 채워진 여자”(48p).

나나의 집에 초대되어 온 여인들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조르주에게 그 여인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다그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녀들의 삶은 대부분 환경과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카롤린 에케는 보르도에서 하급 사무원의 딸로 태어났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그런 딸을 버렸다가 일 년 동안 생각한 끝에 재산을 보전해주려고 다시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클라리스 베스뉘는 생토뱅쉬르메르에 살던 어느 부인의 하녀로 일했는데, 그 부인의 남편이 그녀를 이런 길로 진출시켰다. 시몬 카비로슈는 가구 상인의 딸로, 교사가 되고자 생탕투안 교외에서 기숙학교를 다녔다. 마리아 블롱, 루이즈 미올렌, 레아 드오른 등은 모두 파리 거리에 버려진 여자들이었다. 스무 살까지 샹파뉴의 황무지에서 소를 지켰던 타탕 네네도 그런 여자였다.”(131p)

 

여배우의 분장실에 노크도 없이 들이닥쳐 나체나 다름없는 그녀를 바라보는 세 남자(보르드나브, 왕세자, 뮈파 백작)의 파렴치한 시선과 무대 뒤쪽 구멍을 통해서 훔쳐보는 관음증의 시선은 권력이다.

 

백작과 왕세자는 놀라서 서 있었다. 거대한 침묵 속에서 깊은 한숨 소리, 관객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일 저녁 여신 비너스가 나체로 등장할 때마다 같은 반응이 일어났다. 뮈파 백작은 그 광경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휘장의 구멍에 눈을 갖다 댔다. 각광이 무지개처럼 둥글게 눈부시고, 극장 안은 갈색 연기가 가득 찬 것처럼 침침했다. 줄지어 앉은 관객들의 얼굴이 흐릿한 배경을 이루는 가운데, 나나의 흰 몸이 발코니 좌석에서 꼭대기 좌석까지 가리면서 크고 뚜렷하게 솟아났다. 그녀의 등과 팽팽한 허리와 활짝 편 두 팔이 보였다.”(199p)

 

드가의 <스타>라는 작품에서 발레리나가 춤을 추고 있는 무대 막 뒤의 남성을 연상하게 한다.

<The Star, L’Etoille>, 에드가 드가, 파스텔1976년경, 오르세미술관

에투알은 프랑스어로 프리마돈나 또는 프리마 발레리나를 뜻한다.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점은 드가가 정면이 아닌 위에서 발레리나를 내려다보는 듯이 연출했다는 것과 그녀 뒤쪽에 정체 모를 남자의 존재를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드가는 파스텔을 써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당시 타락한 발레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배가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20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발레리나들은 최하층 계급 출신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들은 부유한 후원자와의 은밀한 만남을 통해 생계를 이어나갔다.”(14p, 드가, 이연식, 아르떼)

 

시점과 익명의 남성의 모습으로 이 그림 안에 존재하는 귀족 남성들의 권력을 보여주고 있다. 왕세자와 포주 라 트리콩이 함께 무대 뒤에 들어와 있는 것은 라 트리콩의 저택에 찾아오는 귀족들과 차이가 없다. 극장의 단장 보르드나브는 하필 왕세자가 연극을 보러 온 날, 라 트리콩을 들여보낸 사실에 화를 낸다. 극장의 모든 여배우들과 거래를 하고 있는 라 트리콩과 보르드나브가 하려는 일이 다르지 않다.

 

나나가 파리 근교 퐁데트로 이사 오자, 그곳 저택에 살고 있는 귀부인들은 일종의 강박관념을 표출한다. 화가 났고 저녁때면 마치 동물원에서 도망쳐 나온 짐승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것처럼 막연한 불안감”(238p)을 느꼈다. 자신들의 경계 안으로 들어온 하위계층 여인에 대한 배타적 감정이다.

 

그녀를 사랑하는 뮈파 백작은 포슈리가 쓴 나나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내용을 읽고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나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빠져든다. 반대로 자신의 부인의 사생활을 알게 되고 살의를 느낄 정도로 분노하는 것은 그가 이제껏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겼던 신앙과 명예 모두가 위선이었음을 보여준다.

 

나나의 사랑을 받고 그녀를 소유하려는 남자들의 시도는 매번 실패한다. 나나의 욕구는 채워도 끝이 없고 예측을 할 수 없다. 이런 사람 앞에서 사람들은 당혹스럽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상황은 퐁탕과의 관계에서다. 폭력을 휘두르는 퐁탕에게 매달리고, 그 폭력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왜곡된 단계까지 나아가는 그녀에게서 보편적 고통을 읽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는 그녀가 돈을 지불하고 산 악습이 되었고, 따귀를 얻어맞으면서도 떠날 수 없는 필요가 되었다.”(343p)

 

나나를 좋아했던 남자들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마치 깊은 구렁 속에 세워진”(520p)것 같은 그녀의 저택을 찾아온 무수한 남자들이 바친 재산과 육체와 이름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에밀 졸라는 그것을 모든 사람들 위에서 두려움과 복종심을 불러일으키며 군림하고 있는 준엄한 튀일리 궁전의 심장 한가운데에 질러대는 발길질이라고, 그것이 바로 피를 통해 물려받은 그녀 집안의 무의식적인 원한과 보복심”(564p)이었다고 말한다.

 

갑자기 사라졌던 나나는 천연두에 걸려 돌아왔고, 파리 한 호텔에서 죽는다. 그녀에게서 전염되어 민중을 망쳐놓았던 효소가 그녀 자신에게 옮겨갔고 비너스는 썩었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에밀 졸라의 평가다. 단지 사람들의 위선을 드러내는 욕망덩어리, 빌런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그녀가 죽어가고 있을 때 거리에서는 군중이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라고 외치며 몰려가고 있다. 보불전쟁이 터졌고 그들은 승리를 장담한다. 그러나 나나에 의해 파헤쳐진 프랑스 제3제정 사회는 전쟁에 의해 다시 한 번 패망으로 나아갈 것이다.

 

에밀 졸라의 작품에는 당대 회화 작품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많다. 목로주점나나에는 드가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여러 번 등장한다. 세탁부, 발레리나, 무대 뒤의 남성들, 경주마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다. 실제로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을 쓸 때 그의 세탁부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카페 테라스의 여인들>, ,에드가 드가,1877

경관의 모습이 눈에 띄면 혼비백산하여 군중 사이로 달아나는 겁먹은 여인들의 행렬을 헤치고 얼른 자리를 떴다법률과 경찰의 힘이 하도 공포스러워서 어떤 여자들은 경관이 거리를 쓸다시피 하며 다가와도 정신나간 사람처럼 카페 문 앞에 그냥 붙박여 있었다.”(339p 『나나』)


<목욕통The Tub>, 에드가 드가, 1886, 파스텔, 60×83, 오르세 미술관

"화장대 밑에는 찌그러진 양철 주전자와 더러운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와 거칠게 만든 노란 도자기 물병들이 놓여 있었다또한 주위에는 금간 대야며 이 빠진 뿔빗을 위시해 뒤틀리고 닳아빠진 값싼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아무런 거리낌 없이 재빠르게 옷을 벗어던지고 세수하는 것이 생활화된 두 여자에게는 잠깐 들르기만 하면 되는 그 방의 더러움이 마음에 걸리지 않는 듯 했다."(202p,나나)



수잔 발라동을 모델로 그렸던 르누와르와 로트렉의 그림들도 나나와 주변 여성들의 삶에서 보인다. 수잔 발라동에게서 그녀들의 삶을 보기도 한다. 모델, 세탁부, 발레리나, 여배우. 가난하고 고단했던 19세기 여성들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그 시선을 우리 시대의 여성들에게서도 거둘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더 화려해지고, 위장되고, 은폐된 그녀들의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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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7-04 08: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쉬잔 발라동....의 손녀들이 21세기 초반까지 몽마르뜨 한 구석에서 분홍색 카페를 열었더랬는데요.
ㅎㅎㅎ <나나>는 읽은지 몇 년 안 됐는데도 별 재미 없이 훅 지나쳐 쓰신 리뷰 읽어도 오, 그랬나? 하는 게 별로 없네요.
전에 로트렉에 관심이 있어 익숙한 쉬잔 발라동 얘기에만 ㅋㅋㅋㅋ (사람이 이러면 안 되는데.....ㅜㅜ)

그레이스 2022-07-04 08:34   좋아요 4 | URL
^^;;
그랬군요
제게도...
로트렉, 수잔 발라동 모두 강한 인상을 주었어요.^^

mini74 2022-07-04 08: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저도 나나 읽으면서 로트렉의 여자들 떠올랐어요. 드가의 시선보단 로트렉의 시선이 더 따뜻해보여 좋았던 ~ 알고나니 그 예뻐보이던 발레리나가 되려는 아이와 그 옆에 앉은 엄마의 그림이 그냥 모녀사이가 아니라 포주관계 처럼 ㅠㅠ 보였어요 ㅠ

그레이스 2022-07-04 08:51   좋아요 3 | URL
예 맞아요
실제로 아이를 통해 돈을 벌려는 엄마들이였다고...
넘 슬펐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아이를 기생으로 보내거나, 부잣집 첩으로 보낸 일도 많았잖아요!
가난, 돈과 맞바꾸는 대상이 된 여성의 몸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듯요.

바람돌이 2022-07-04 09: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이 소설 읽기 힘들거같은 느낌이.... 나나라는 여성을 하나의 인간형의 대표 뭐 이런걸로 배치하고 독자가 감정이입하기 힘들게 그린다면 진짜 그녀의 삶의 과정을 보는게 고통스러울거 같은 느낌이에요. 에밀 졸라 책 1권 읽었는데 역시 읽기 쉽지 않았던....

그레이스 2022-07-04 10:04   좋아요 2 | URL
나나는 오히려 쉽게 휙휙 넘어가는 책인데... 다 읽고 나면 돌아가서 새기게 되요.
19, 20세기 파리의 예술계도 막 떠오르고...^^;;

얄라알라 2022-07-04 0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술사를 그토록 진지하게 공부하시는 그레이스님의 <나나>리뷰는 장르를 넘나드네요.정말 재밌게 읽고 갑니다. ‘에투왈‘ 뒤 검은 양복 넓게 다리 벌려 지지하고 선 남자의 의미를 몰랐을 때는, 무대 위에 서는 건 다 행복인줄 알았어요.

에밀 졸라는 플친님들 극찬 리뷰로 간접, 다시 접하는데
그레이스님 옮겨주신 테레즈 라켕 서문 문장, 포스를 풍깁니다.
<나나>를 중딩 때 읽다보니, 완전 껍질만 두드리고 제목만 외우고 지나간 거 같아요
다시 읽어야할 시점이네요

그레이스 2022-07-04 10:08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저도 목로주점 넘 오래전에 읽고 다시 읽으니 다른 책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독자에게서 의미가 생성된다는 말! 느끼게 되죠?!

저는 무대 뒤에 남자와 서있는 발레리나도 눈길이 가요
선택받은? 프리마돈나 뒤에서 그들이 기다리는 것의 정체! ㅠㅠ

2022-07-04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05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7-05 12: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나나인데 나나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ㅋ 생각해보니까 루공마카르 총서는 <나나>를 빼고는 제목에 사람 이름이 없는거 같아요 ~!! 나나를 읽을때 뭔가 시각적인게 강하게 느껴졌었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

그레이스 2022-07-05 14:30   좋아요 3 | URL
ㅎㅎ
저는 주변 인물들의 몰락에 더 관심이 가더라구요^^

에밀졸라의 작품은 회화적인 인상이 강해요... 저에게!

서니데이 2022-07-05 15: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발레리나를 생각하면 예쁜 의상이나 화려한 동작 같은 것도 있지만, 언젠가 보았던 발 사진이 생각나요.
그만큼 고된 직업 같다고 생각했어요.
드가의 그림을 보면 전체적으로 밝지 않아서 발레리나가 더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오늘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7-05 17: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수진님 발 사진 유명하죠?
피나는 노력으로 프리마돈나까지 되는 건 감동이죠!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세요~~

희선 2022-07-06 03: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나를 좋아한 남자들은 마지막 이 안 좋군요 나나가 개미지옥... 그건 꼭 나나 때문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대나 그 사람들 때문이겠네요 시대가 시대여서 나나는 다르게 살기 어려웠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07-06 13:06   좋아요 3 | URL
그렇죠?
나나는 귀족이었더라도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싶긴해요.
나나를 좋아한 남자들과 귀족여성들, 그녀와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것이 중요하겠죠?

서니데이 2022-07-06 1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어제보다 더 더운 것 같아요.
습도가 높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레이스님, 날씨는 많이 덥지만 맛있는 점심 드시고,
시원하고 좋은 오후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7-06 14:18   좋아요 3 | URL
예~
이 더운데
오전 내내 싱크대 청소하고 에어컨 틀었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시원하게 보내세요~♡

2022-07-08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08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7-08 18: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글도 명작 ! ㅎㅎ 축하드려요 그레이스님. 무슨 책 사실건지 궁금합니다. 따라 살려구요 ㅎㅎ

그레이스 2022-07-08 18:37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제가 미니님 따라 사고 있는걸요!!^^

그레이스 2022-07-08 19:33   좋아요 3 | URL
그른데
이 페이퍼던가요?
7월에 썼는데...?!
저도 뭘로 받았는지 잘 모름 ㅋ

그레이스 2022-07-08 19:35   좋아요 3 | URL
미니님
저 이거 아니고 홀로코스트네요^^
그냥 7월거 미리 찜해주시는걸로?!
ㅋㅋㅋㅋ

mini74 2022-07-08 19:42   좋아요 3 | URL
ㅎㅎㅎ 그레이스님 👍

서니데이 2022-07-10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주말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7-10 19:35   좋아요 2 | URL
예~
매번 먼저 안부인사 전해주시는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세요~

프레이야 2022-07-19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테레즈 라캉의 서문 문장을 영화 박쥐를 보며 떠올렸더랬는데 다시 만나네요. 에트왈의 그림 보기도 그렇고 저 시대의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과 환경을 꼬집은 그림과 소설로 나나를 대표해 보게 되네요. 안나 카레니나도. 그레이스 님 그림 읽기 참 좋습니다^^

그레이스 2022-07-19 12: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역시 프레이야님은 영화로 연결되시는군요!^^
박쥐 찾아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22-07-19 12:35   좋아요 1 | URL
박 감독이 테레즈 라캥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대요. ^^

그레이스 2022-07-19 12:3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그렇지 않아도 검색해봤어요.
맘 굳게 먹고 봐야할 영화인듯하여;;; 내용만 읽어보고 있는 중이예요^^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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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가 있다. 질문이나 대답이 필요 없다. 그들은 상대방이 듣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생각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하려는 태도 때문에 끼어 들 틈도 없다. 가끔 긴 시간 계속해서 들어주는 것이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 작품은 그런 느낌을 준다. 연속되는 쉼표(,), 하이픈(-), 콜론(:), 세미콜론(;) 들과 괄호들 때문에 끊기고 돌부리에 걸렸다.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고 있는 작가의 독백을 듣고 있는 것 같다. 여백이 없는 글들은 독자가 사색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처음에는 문장부호들과 삽입구를 걷어내고 맥락을 읽으려 했다. 차츰 익숙해지면서 그 흐름에 의식을 맡기게 되고, 동시에 작가의 고통과 고독, 회환에 깊이 침잠(沈潛)해 들어갔다.

 

우리의 본능이 우리의 본능에 반하여 작동하는 것이, 말하자면 우리의 반()본능이 우리의 본능을 대신하고, 더욱이 본능인 것처럼 작동하는 것이 이미 아주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9p) 작가가 반복하는 말이다. 말장난처럼 들리는 이 말이 그에게는 적나라하고 비참한 진실이다.

 

작가는 해명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아무 할 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으며 안 될 것 같은 어떤 억누를 수 없는 강박에 압도당한 채, 또 내가 우려하는바, 마친 내가 나의 현존을 끊임없이 갈망하기라도 하는 듯, 스스로를 내던질 정도로 과장된 친절함으로 철학자에게 해명한다.”(10p) 이 해명을 촉발한 것은 철학자와의 대화이다.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은 일종의 의무에 대한 태만 행위라고 말하는 철학자에게 아니요!”라고 본능적으로 반박한다. 그의 본능은 반()본능이 대신하고 있다. 다름에 대해서 해명하는 그는, 아이를 원하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안 돼!”하고 울부짖었던 때를 기억한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격앙된 감정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 자신을 보고 마치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가오는 아내를 받아들였다. 결코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애정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실을 묵인하고 결혼 생활을 이어갔고, 결국은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녀에게 그의 상처와 불임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가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것은 자신과 같은 고통 받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망설임 없이 안 돼!”라고 울부짖었던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고 그의 흐느낌은 서서히 가라앉았지만, 하나의 물음이 되어 형태를 갖추어 가기시작했다. “혹시 네가 검은 눈동자를 가진 딸아이로 태어나지는 않을까? 너의 작은 코 주위에는 주근깨가 엷게 흩어져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네가 고집 센 아들인 것일까? 너의 눈은 회청색 조약돌처럼 근사하고 힘찰까?”(26p)

 

그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해명과 같은 글쓰기를 시작한다. “의식적인 자기청산의 길고도 긴시작이었고, 그가 계속 반복하는 표현으로 빌자면, 그것은 하늘 높이 파고 있는 나를 위한 무덤을 향한 최초의 삽질”(27p)이었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그 첫 번째다. 그 정체성의 이미지는 빨간 잠옷을 입고 있는 대머리 여자다. 폴란드 유대인 전통인 셰이틀(유부녀들이 머리를 밀고 쓰는 가발)을 벗고 앉아있는 친척 아주머니를 목격한 후, 그 이미지는 자신을 규정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었다. 사회적 혐오의 분위기와 맞물려 그 모습은 창녀, 마녀의 이미지와 결합 된다. 그것은 자신을 정의한, 필연적이고 유쾌하지 않은, 기이한 이미지였다.

그의 결혼, 양육과 같은 본능에 대한 반()본능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부모의 이혼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가정과 학교, 나아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인 가부장제에 그 근원을 둔다. 더 나아가 아우슈비츠는, 각각의 삶의 표상이자 행위이며, 그 가부장제 정신의 지배를 받아 온 개인의 모임인 인류가 통째로 꿈을 꾸기 시작한다면”, 매혹적인 살인마와 같은 인물이 반드시 탄생한다. “전부로서의 개별적인 삶, 그 전부가 전개되어 가는 역학”(57p), 학살을 부른 전체주의는 가부장제로 귀착되고, 그는 자신의 부모와 선조가 믿은 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다.

 

그는 종전 후 그가 아직 수용소에 있던 시기에 그 원형을 체험했다. 화장실에서 세면대를 닦고 있던 독일군과 마주친 기억이다. 독일군 병사가 그를 위해 세면대를 닦고 있었다는 것은 세상의 질서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독일인들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그토록 사실적인 것이다.”(84p) 그는 이것을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셋방살이와 연결시킨다. 그는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에서 멀어지기로 작정했고, 아니 반()본능이 본능이 되었고, 모든 것이 환원되는 자본도 거절한다.

 

소외감, 이름에 들러붙어 있는 불가해한 수치심, 허무……. 이런 감정들이 그를 괴롭혔으나, 그는 부조리함을 비웃으려 한다. 여전히 유대인 혐오가 공공연한 세상에서 그는 말한다.

 

내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결국 나에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대인이라는 추상적 관념으로서 그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체험으로서 그것은 나에게 모든 것을 의미 한다; 추상적 관념으로서 그것은: 빨간 잠옷을 입고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대머리 여자다, 체험으로서의 그것은: 나의 삶이다, 말하자면 나의 생존, 내가 살고 있는 정신적 실존 약식이며, 정신적 실존 양식으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하다,”(127p)

 

그는 존재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런데 그것은 하늘 높이 파고 있는, 나를 위한 무덤을 향한 삽질이라고 한다. 죽음과 실존은 뗄 수 없다. 그러기에 실존적 글쓰기는 무덤을 파는 삽질이다. 그리고 그의 글은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이므로, 땅속이 아닌 하늘에 있다고 한 것이 아닐까?

 

단단하게 사유를 쌓아가던 그도 예상치 못한 작은 사건에 흔들린다. 재혼한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아저씨에게 인사 하렴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사건은 그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연약하면서도 완강한 그의 삶을 드러낸다. 그는 기도로 글을 마친다.

오 하느님!

저를 가라앉히소서

영원히

아멘.”

제목에 사용된 카디시(유대인의 기도)와는 반하는 내용이다. 그 격정이 고통스러워 가라앉혀 달라는 호소일 것이다.

 

깊은 상흔은 통증을 기억한다. 통증이 찾아오면 자신을 굳건히 세워왔던 철학도 신념도 신앙도 흔들린다. 그 흔들림과 격정 앞에서 절망하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이다.

 

의식의 흐름을 쫒아가기 어려웠고,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는 책이다. 작가가 쌓은 사유만큼이나 고통이 헤아려진다. 어려웠다고 작품을 낮게 평가할 수 없다. 가끔은 어려운 문장보다 내 독서력을 탓하며 별 다섯 개를 주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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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7-02 21: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임레 작품의 역자들이 다르네요
운명을 번역 하셨던 유진일 교수님이 전부 번역 해주셨어야 하는데 ^^

그레이스 2022-07-02 21:09   좋아요 3 | URL
번역이 별로였던 것은 아니었어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그대로 직역한듯요. 부호나 삽입구를 없애면, 작가의 글을 훼손하게 되는 문장이어서 직역이 옳았다고 봅니다^^

어쨌든 임레 케르테스 털고 갑니다^^
후련하네요
나중에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운명 마지막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희선 2022-07-03 02: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의식의 흐름으로 써서 읽기 힘들기도 하군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건 죄 때문이다 하는 말도 있는 것 같은데... 업 때문인가 자신이 겪은 걸 자기 아이한테는 겪게 하고 싶지 않기도 하겠습니다 다른 세상이라 해도 같은 일이 또 일어날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2-07-03 08:22   좋아요 3 | URL
전체주의가 살아나면 그런 비극은 또 일어나겠죠!
스스로를 연약하고 완고하다는 말이 공감됐어요.

Falstaff 2022-07-03 0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진석 번역의 다른우리 출판사 판으로 읽었습니다. 번역에 대해서 불만 없이 잘 읽었습니다.
짧은 작품이지만 정말 집중하지 않으면 읽다가 갑자기 어제 저녁에 먹은 소머릿고기 수육도 생각나고 하필이면 차 유리창에 들러붙은 까치 똥도 얼른 치워야 하는데, 같은 것도 생각나서 몇 번이나 읽다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그랬던 기억입니다.
이걸로 케르테스의 3부작을 다 마치셨군요! ㅋㅋㅋ 고생하셨습니다.

그레이스 2022-07-03 08:18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소머릿고기....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겠어요^^
잠시 집중력을 잃으면 흐름을 놓치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감사합니다.
그 번역 저희 집에도 있다는데...;;
ㅋㅋ

바람돌이 2022-07-03 14: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고통스러워서 뭔가를 쏟아부어야먄 할 거 같은 그런 느낌이 전해져오네요. 아 이 책 읽기 힘들거 같아요. 계속 작가의 고통에 같이 파묻혀야 할 거 같은 느낌이 그레이스님 리뷰에서 한껏 전해집니다.

그레이스 2022-07-03 14:59   좋아요 3 | URL
^^;;
힘들긴 했지만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예요

서니데이 2022-07-03 16: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날씨가 어제보다 더 덥습니다.
폭염이 며칠 계속될 것 같아요.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7-03 17:15   좋아요 4 | URL
^^
그렇네요
너무 덮네요
건강조심하세요

mini74 2022-07-04 08: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읽는데 눈 앞에 좌절이 쬐려보는 느낌입니다 ㅠㅠ 좌절 읽다 청소하고 딴 짓한 저 ㅠㅠ 태어나지~ 도 그런가요 ㅎㅎ 운명은 몰입해서 읽었는데 전 좌절부터 옆길로 ㅠㅠ

그레이스 2022-07-04 08:53   좋아요 2 | URL
ㅋㅋ
그렇게 눈싸움하시다가 읽어내시겠죠?!

젤소민아 2022-08-08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의 모티프를 구현한 다른 작품들이 일어섭니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 모두 태어난 ‘문제적‘ 아이들을 중심으로 작가의 세계관이 구현되고 있으나 이 소설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 거장들의 ‘다른‘ 시선들이 새삼 궁금해집니다. 모두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자극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8-08 10:10   좋아요 0 | URL
저도 말씀해주신 다른 소설들에 자극받습니다. 감사해요.~♡
 
좌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0
임레 케르테스 지음, 한경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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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에 이어 좌절은 지속되는 삶의 이야기다. 운명을 읽지 않고서는 좌절을 이해할 수 없다. 좌절을 읽고 나면 운명의 의미들이 생성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전작 운명의 원제는 Sorstalanság이다. 직역하면 ‘sors운명+talan없는+ság이라고 한다.(299p 운명민음사) 주인공이 운명이란 없다.’ ‘자신이 곧 운명이라고 했던 절규를 떠올리게 한다. 군중과 함께 걸어갔고, 화물차에 실리고, 가스실로 가는 행진에서 벗어나고, 지옥에서 살아온 것을 운명이라 여기는 것은 가혹하다. 자신으로 계속해서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좌절에서 이어지고 있다.

 

1(157p)에서 시작되는 소설의 주인공 쾨베시는 공항에 도착한다. 낯선 남자에게 묻고서야 그곳이 고향 헝가리의 공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쾨베시의 정체성과 그곳에서의 삶에 대해 암시한다. 공항 대합실에서 세관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공포를 느끼고, 이 공포는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살아남은 그는 죽음의 요구를 거역한 것으로 느낀다. 이 죄의식은 그의 삶과 모든 행위에 해를 끼쳤다. 절차를 마치고 정해진 거주지로 가는 길에 피아니스트를 만난다. 그는 거리의 사람인 듯 보인다. 그들이 앉았던 벤치, 피아니스트가 기다린다는 화물차는 죽음과 관련 있다. 수용소를 떠난 그의 거주지에도 죽음은 도처에 있다. 그가 사는 집 소년의 자살처럼.

 

쾨베시는 유대인으로 태어났고, 아우슈비츠로 끌려갔고, 죽음에서 제외된 작가 자신이다. 고국으로 돌아와 위()의 결정에 따라 기자, 공장노동자, 홍보부 직원으로 보내지고 해고되기를 반복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던 쾨베시는 작가 베르그를 찾아간다. 쾨베시는 베르그가 쓰고 있는 소설에 관하여 질문을 하고,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다. 무엇에 관하여 쓰느냐는 질문에 베르그는 은혜에 대하여 쓴다고 한다. “은혜필연적인 것이고 필연적이지 않은 것사는 것”(397p)이라는 베르그의 말은 그를 비껴간 죽음에 매여 있음을 의미한다. 생존자의 죄의식이다.

 

베르그의 소설은 독자를 향한 작가의 말로, 연극의 방백(傍白)을 떠올리게 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사형 집행관이란 제목이 붙어있는 그 글은 수용소와 생존의 경험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범죄는 한 사람을 살해함으로 시작된 자신의 폭력성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다. 단지 자신은 연기하라고 던져진 연극배우가 아니냐는 질문과 도덕적 평가는 절대적일 수 없다는 말에 쾨베시는 당혹해 한다. 쾨베시는 당신은 사형수입니까? 사형집행관입니까?” 라고 질문한다. “둘 다라고 대답하는 베르그에게 그럼 주인공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당신의 글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유예, 도피, 핑계라고 한다. 사실 이해하기 힘든 이들의 대화는 오랫동안 미궁에 빠지게 한다. 쾨베시가 돌아와 베르그에게 쓴 편지를 읽기 전까지.

 

쾨베시는 간수가 되어 독방에 갇힌 죄수에게 휘둘렀던 폭력에 대해 쓰며, 베르그에게 대답한다. 자신이 폭력을 휘둘렀던 이 에피소드가 3만 명의 주검으로 가는 길을 연 것으로 보이지만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의 살인이 불가피했다고 학살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의미로 읽힌다. 베르그의 전혀 다른 의미의 은혜는 사실 그에게 영겁의 벌과 같다고 쓴다. 은혜가 필연이고 살아가는 것이 필연이 아니라면 그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은 벌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베르그의 극단적인 사유를 비판한 쾨베시의 생각은 정신을 잃고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는 베르그의 모습으로 증명되는 듯하다. 유예나 도피, 변명이 아닌 그의 실존을 위한 글쓰기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쾨베시는 헝가리의 국경이 열렸으니 화물열차를 타고 탈출하자는 시클러이의 제안을 뿌리친다. 화물열차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곳으로 끌고 가는 메타포적 언어다. 그는 남겠다고 한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을 쓰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기에. 더 이상 밀려갈 수 없다.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거리에서 살면서 화물차를 기다리는 피아니스트, 탈출하는 시클러이, 글을 씀으로 유예, 도피, 변명하는 베르그, 자유를 위해 남아서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쓰기로 하는 쾨베시, 이 글을 쓰고 있는 노인 모두 임레 케르테스 자신이다.

 

전반부 150페이지 정도는 이 글을 완성하고 있는 노작가의 이야기다. 노인은 오랫동안 넣어놓고 보지 않았던 서류들을 꺼내 읽는다. 자신의 소설과 출판사의 거절 편지를 읽으며 글을 쓰던 순간을 회상한다. 당시에 작가는 아주 작은 자극만 있어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고”, 아우슈비츠는 소화되지 못한 고기완자처럼 그의 위장 안에”(78p) 있었다. 그것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그의 안에서 솟아올랐다. 쓸쓸한 지역을 볼 때, “황량한 공장 지대나 해가 쏟아지는 길, 집의 뼈대로 세워 놓은 시멘트 기둥, 동물의 냄새나 타르와 나무판자의 역한 냄새를 맡는 것으로도 충분했다.”(98p)

 

소설의 어느 지점에서 얼마나 힘이 들었으며 많은 고민을 했었는지, 어떻게 영감이 떠오르고 문장을 써내려갔는지 기억이 살아난다. 글을 쓰면서 아우슈비츠에 대한 기억이 생생해질수록 글은 점점 비참한 빛깔을 띠었고, 기억에 몰두하는 한, 작가는 소설을 쓸 수 없었다. 반대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기억이 중단되고 변화되었다. 경험을 쇠약하게 만들면서 글쓰기가 진행되었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사건 속으로, 보편적인 일 속으로”(99p) 들어가는 도약(跳躍)이었다.

 

소설은 그 단순한 본성으로 인해 무언가를 중재할 때에만 소설이라고 불린다.”(99p) 그도 중재하기를 원했다. 다른 무엇보다 그 자신을 중재하기 원했다. 그를 내리누르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하지만 인간은 결코 자신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중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를 아우슈비츠로 데리고 간 것은 소설 속의 기차가 아니라 현실의 기차”(100p)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면 그는 무엇을 위해 글을 썼을까? 그 일의 본래적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하고 질문한다.(101p)

 

이제 그는 서류 뭉치들에서 다른 습작에서 그가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지냈음을 짐작하게 된다.

 

모든 확신을 잃어버렸음에도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나 자신에게 증명해야 했다. 나는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했다. 실제로도 시도하고 상징적으로도 시도했다. 때로는 실어증을 동반한 신경 쇠약증을, 때로는 공격적인 태도를 선택했다.”(124p)

 

이런 자신을 객관화시켰다. 그의 개성을 대상으로 변화시키고, 자신의 비밀을 보편화하여 약화시키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을 상징으로 증류시켜 버렸고, 소설 속에 자신을 이식시켰다. 그것은 자신의 동사를 잃어버린 것이고,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노인은 서류장에서 아이디어, 원고 초안, 미완성 원고”(153p)라고 메모가 적힌 다른 노트를 꺼낸다. 이 초고를 노인이 완성시킨 내용이 1장부터 8장까지 쾨베시의 이야기다.

 

퀘베시(작가)는 고국에 남기로 선택했고 투쟁했다. 거절된 원고를 들고 좌절감에 몸을 움츠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글을 쓰는 동안에 겪어 낸 것들이 그 소설보다 더 중요했다. 투쟁은 좌절을 넘어선다.

 

자기 자신과 그 운명과 마주하는 자유, 주변을 압도한 힘, 부득이하게 파묻힌 음모. 만일 이것이 작품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것이 인간의 작품이란 말인가?”(483p)

 

작가의 실존적 글쓰기는 삶이 지속되는 한 완성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작가 스스로는 중재하지 못하더라도 그 글을 읽는 사람은 중재할 수 있다. 자신을 객관화시켜 인류의 보편성으로 이식시키는, 그럼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의미를 전하는 작가의 고통스런 투쟁이 있기에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어려웠다. 책을 덮고도 의식은 작가의 글들 속에서 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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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7-01 17: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는 사람도 고통스러운 내용이라면 쓰는 사람의 고통은 더 컸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오늘부터 7월 시작입니다. 좋은 일들 가득한 7월 되세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7-01 17:37   좋아요 3 | URL
;;;;
헤아릴 수 없겠죠!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세요~~

새파랑 2022-07-02 0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도 <운명>과 비슷하게 작가의 담담하지만 깊은 고통이 담겨있는거 같아요. 표지부터 고통이네요 ㅜㅜ 어려운 책 완독 대단하십니다~!!

그레이스 2022-07-02 08:34   좋아요 3 | URL
;;;;;
뵈클린의 작품이죠?!
이 화가는 불안, 공포, 고통 등 인간의 심리를 잘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작가인듯요^^

서니데이 2022-07-02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폭염주의보라고 하는데, 날씨가 너무 덥습니다.
다음주까지 더운 날이 계속될거라고 해요.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7-02 19:55   좋아요 3 | URL
예 ;;;
무지하게 덥습니다ㅠ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세요

희선 2022-07-03 02: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여기 나오는 사람은 다 작가 자신한테 있는 점이기도 하겠습니다 마지막엔 쾨베시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자기 말로 글을 쓰는... 이걸 쓰고 작가는 조금 자유로워졌을지...


희선

그레이스 2022-07-04 08:55   좋아요 2 | URL

글을 쓰기로 하고 썼으니, 쾨베시인거겠죠!
자유롭기도,,, 어느 순간에 다시 제자리로 떨어진것처럼 여겨지기도 했겠죠;;;

mini74 2022-07-04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좌절읽고 이 리뷰는 읽겠습니다 그래이스님 ㅎㅎ 마지막 문단은 읽으면서 아 그레이스님도 힘드셨구나. 하며 위로받고 갑니다 ~~ 그 와중에 투쟁은 좌절을 넘어선다 문장 좋아서 눈도장 찍고 ㅠㅠ

그레이스 2022-07-04 08:58   좋아요 2 | URL
^^
예~~
힘들었어요
북플에 올라오는 책소개때문에 더 조급해지기도...
리뷰쓰기까지도 오래 걸려서...
6월에 읽은 책들 리뷰 이제 다 썼습니다.^^
눈도장!
감사!

막시무스 2022-07-10 2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좌절을 읽어야 운명을 좀 더 깊게 이해 할 수 있는걸까요?ㅎ 운명을 읽으면서 임레 작가님이 던져준 자유라는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보았는데 머리가 나빠서 정리가 잘 안되네요!ㅎ 올해안에 좌절은 힘들겠고 운명은 다시 읽어 보겠다고 지키지 못할 다짐을 해 봅니다!ㅎ 시원한 저녁되십시요!

그레이스 2022-07-10 22:09   좋아요 3 | URL
<운명>만으로 충분히 좋아요.
그런데 <좌절>을 보면 <운명>을 쓴 작가의 의도, 감정, 회환이 보이죠.
막시무스님도 시원한 휴식 되시길요

scott 2022-08-10 16: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추카!
계신곳 비 피해 없으셨길 바랍니다
서울 이틀 동안 무섭게 쏟아졌습니다 ㅠ.ㅠ

그레이스 2022-08-10 16:16   좋아요 3 | URL
저도 서울! ㅋ
저희는 침수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저절로 감사가 나오네요~
스콧님 축하도 감사합니다

mini74 2022-08-10 16: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헉 좌절 사놓고 아직 못 읽은 ㅠㅠ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8-10 17:01   좋아요 3 | URL
저는 옛날에 읽다 중단하고 잊어버렸던 운명과 좌절을 찾았습니다.
웃음밖에 ㅋ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0 1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운명도 그렇고 좌절. 서로 연결되는 것 같아서 제목을 어쩜 이리 지었을까 싶네요~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라 읽은 후에 참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레이스님의 리뷰는 항상 깊이가 있어 좋아요^^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8-10 17:02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화가님도 축하드려요
여기서 또!

새파랑 2022-08-10 17: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임레 케르테스 하면 그레이스님이죠~!! 당선 축하합니다 ^^

그레이스 2022-08-10 17:50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
새파랑님도 축하드려요~

미미 2022-08-10 18: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작품 저는 좀 어렵던데(그런데 사두었어요!!) 그레이스님 믿고 이 책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당선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2-08-10 18:5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믿으신다니 급긴장 됩니다^^
미미님께도 좋을거라 생각됩니다~♡

서니데이 2022-08-10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모나리자 2022-08-10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그레이스님~!!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이하라 2022-08-10 22: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기쁜 소식과 함께 편안한 시간되세요~~^^

그레이스 2022-08-10 22:3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 있는 곳은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평안하시길 바래요

희선 2022-08-11 0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자신이 힘든 일을 겪고 그 시간을 생각하는 건 쉽지 않을 듯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경험한 걸 잘 돌아보지 않기도 하네요 별거 아니다 해도 돌아보면 좀 나을지...


희선

그레이스 2022-08-11 12:21   좋아요 1 | URL
쉽지 않죠
글로 옮기는 걸 승화와 치유로 이야기하지만 끄집어내는 작업은 엄청 고통스러울듯요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08-11 0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언제나 읽어야만 할 책 주셔서 따라가기만 합니다**

그레이스 2022-08-11 12:2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저도 마찬가지~~~~♡

꼬마요정 2022-08-11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려요^^
읽고 싶은 책 넘나 많아집니다…

그레이스 2022-08-11 12:2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도 파묻힐 지경입니다 ㅋ

겨울호랑이 2022-08-11 1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가 던진 과제를 떠올리게 됩니다. 한 사람의 살인과 여러 사람을 죽인 학살 사이의 차이를 양적인 측면에서 판단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 생명 경시라는 ‘질‘적인 측면에서 생각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윤리판단 문제에 더해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범이 되지만, 여러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널리 알려진 말 사이의 관계에서 모두를 만족하는 적절한 해를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8-11 14:2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더 확장된 생각으로 이끌어주시네요^^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2-08-11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금요일, 주말, 광복절 되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2-08-12 00: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북홀릭님도 가족과 함께 행복한 연휴되시길 바랍니다~~

강나루 2022-08-12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되신거 축하드려요^^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8-12 07: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강나루님도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8-12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고, 다가오는 연휴가 행복한 연휴 되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2-08-12 09: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님도 행복하세요~~

독서괭 2022-08-12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2-08-12 12: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thkang1001 2022-08-12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8-12 12: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러블리땡 2022-08-12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ㅎㅎ 기회되면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이달의 당선작 되신것도 완전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8-12 23: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22-08-14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죽음에서 제외되었다고 자각하는 사람‘은 일종의 부채의식을 느끼게 되는 걸까요. 그래서 또 다른 내상을 입게 되는 것일까요. 묵직한 소설인 듯 합니다.

그레이스 2022-08-14 23:34   좋아요 0 | URL
그런듯요!
감사합니다.
 
운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임레 케르테스 지음, 유진일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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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하늘, 교회 종탑에 걸린 구름, 관목들 사이로 바쁘게 날아드는 새들, 언덕 위로 부는 시원한 바람 ……. 영어단편소설을 낭독하고 있었다. 읽기를 마친 나에게 원어민 강사가 단조롭게 읽어가는 내 음성이 오히려 슬프게 들렸다고 했다. 주인공 소년이 걸어가며 보았던 이 아름다운 풍경이 슬프게 읽혔던 이유는 전후의 슬픈 상황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임종을 신부에게 알리러 가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맥락을 알게 되면 이런 아름다움은 슬픔을 더욱 짙게 한다. 그리 좋지 않은 발음이었으나, 나도 나름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14세의 소년이었던 작가가 아우슈비츠를 향하는 장면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새벽녘이라 바깥 공기가 서늘하고 향기도 좋았다. 드넓은 들판 위로 회색빛 안개가 드리워 있었다. 잠시 후 트럼펫 소리처럼 강렬하고 가늘고 붉은 햇살이 갑자기 우리 뒤쪽 어딘가로부터 비쳐 왔다. 나는 일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아름답고 흥미로웠다. 집에서는 그 시간이면 항상 잠을 자고 있었다.”(86p)


아우슈비츠를 향하는 열차 안에서 창밖으로 보인 풍경에 대한 '나'의 감상이다. 목적지의 참혹함이 그 풍경의 아름다움과 대비되어 공포와 슬픔을 더 진하게 느껴진다.

 

역은 꽤 멋있었다. 이런 길이 일반적으로 그렇듯 우리 발밑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저 멀리에는 잔디가 줄지어 심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 노란 꽃들이 피고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아스팔트 길도 하나 있었다. 같은 모양으로 휜 일련의 기둥들과 그 사이에 있는 반짝이는 금속으로 된 가시철조망이 이 길을, 뒤에서 시작되는 들여다볼 수 없는 지역과 보이는 지역으로 나누었다.”(93p)


기차역에서 걸어간 길과 수용소에 대한 감상이다. ‘는 그 철조망 안에서 움직이는 죄수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을지 궁금해 한다. 죄수복을 입고 나와서, 상황을 어렴풋이 인지한 후, 바라본 풍경은 처음 인상과 다를 수밖에 없다. 밀쳐지면서 밖으로 나온 의 귀에 누군가가 등을 얻어맞는 것처럼 뒤에서 철썩하는 이상한 소리”(110p)가 들렸고, 울타리 쪽으로 밀려간 의 눈에 삭막한 마당들, 철조망 울타리들과 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후 계속해서 그의 삶을 따라다니는 냄새를 맡았다. 시각, 청각, 후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성은 그것들을 해석하지만,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다면, 감각은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주인공 는 사람들이 증오하는 유대인의 이름을 갖고 있다. 학교에서 상점에서 길거리에서 항상 정체성 확인과 자기검열을 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와 분노를 지니고 있는 십대이다. 아버지는 노동수용소로 떠나고, 새어머니와 함께 남는다. 학교에서 퇴출되고, 군수공장에서 일한다. 출근하던 중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내려지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열차에 태워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우슈비츠이고, 이곳이 학살 수용소라는 사실과 바람의 방향에 함께 불어오는 냄새의 정체를 알게 된다. 정보의 수용하고 수용소에 적응하는 과정은 지나치게 담담하게 그려진다. 아우슈비츠에서도 지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부헨발트로 이감되면서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시간이 사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란다. 끔찍한 현실을 수용하기에는 벅찬 14살 소년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부헨발트에 아침에 도착했는데 해는 비쳤지만 구름이 좀 있는 데다 가벼운 바람이 공기를 식혀 주어 상쾌하고 깨끗한 날씨였다. 그곳의 기차역은 아우슈비츠 역에 비하면 최소한 시골 냄새가 나고 플랫폼이 정감이 가서 마음에 들었다.”(133p)

아우슈비츠 도처에서 목격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런 감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군인들의 걸음에 방향과 속도를 맞춰 걸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까지의 모든 삶이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종잇조각과 막대기를 가지고 송충이를 성냥 통에 들어가게 한 기억이 있는데 그 경우와 좀 비슷한 것 같았다. 송충이는 계속 움직이고 꿈틀거렸다. 이 모든 생각에 나는 몸이 좀 마비되고 멍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웃음이 좀 나오기도 했는데 헝가리에서 헌병대로 이동하던 날 우리는 인솔하던 헝가리 경찰들이 허둥대며 부끄러워하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134p)

여기서 나는 마음의 병적 징후를 엿본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멍해지는 상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機制)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다시 차이츠로 옮겨지고, 성실하고 말 잘 듣는 죄수로 적응하던 는 강제노역 현장에서 감독관에게 구타를 당한 날 안에 있는 무언가가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손상되었다는 느낌이”(185p) 든다. 과민반응을 보이고, 쉽게 화를 내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행동했다. 다리에 부상을 입고 수레에 실려 가며, 죽음의 장소로 끌려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치료를 받기위해 옮겨진 병동 막사에서 음식 냄새를 맡고 눈물을 쏟는다.

이때 가슴속에서 한 가지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그 욕망의 비합리성 때문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끈질기게 욕망이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것은 이 멋진 강제 수용소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205p)

 

부헨발트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는 독일인 간호사와 의사의 호의로 완쾌된 후에도 계속 돌봄을 받고 그곳에서 종전과 자유를 맞이한다. 선의를 받는 태도 역시 일반적인 기대를 벗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무감한 반응이다. 그러고 보니 15살이면 지금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청소년이다. 무엇을 기대하나? 관념이 형성되기도 전에 악의와 선의를 몸으로 겪고 있는 청소년이 보이는 당연한 반응 아닐까?

 

'나'는 집을 떠났을 때와 비슷한 계절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기차역에서 만난 기자는 그에게 묻는다. 헝가리에 돌아와 부다페스트를 보니 어떤 느낌이 드냐는 질문에 증오심요”, 누구를 증오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모든 사람요”(266p)라고 대답한다. 세상을 위해 수용소의 일을 증언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을 뒤로 하고 집을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노인들의 격려-자유를 위해 수용소의 일을 잊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살아가라는-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끔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278p)고 대답한다.

 

는 말한다. 운명은 없다. 길을 걸어온 자신이 운명이라고 말한다.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보다 지금 이곳에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문제라고.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시간에도 행복 비슷한 것을 느낀 것처럼, 저만치 어디선가 행복이 피할 수 없는 덫처럼 숨어서 를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고 말한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인류의 모든 비참과 고통의 총합처럼 보이는 곳에서 살아나온 존재는 그 상처를 딛고 도저히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은 삶을 지속해가겠다는 각오를 한다. 인류가 학살에 관심을 두고 파헤치고 있을 때 처절하게 삶을 지속하고 있는 존재가 있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기에 작가의 후속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그의 삶에 주목하게 된다.

 

그의 후속작 좌절에서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출판 거절 편지를 받는 장면이 그려진다.

…… 귀하는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사용했으나 그것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도 끔찍하고 충격적입니다.…… 돌려 말하자면, 주인공의 특이한 반응 때문입니다. 물론 사춘기의 주인공이 자기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그렇지만 우리는 주인공이 유대인 수용소에 도착해서 왜 …… 보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화장터의 광경을……학생들의 고약한 장난처럼보는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 자신의 모든 것을 말살시키는 수용소 안에 있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말입니다. 주인공의 태도와 회고적인 보고들은 ……거부감을 주고 ……결말 부분을 읽어도, 소설의 주인공은 계속해서 수수방관하는 태도로……도덕적 평가를 내릴 수 없습니다.”(51p 좌절)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작품은 운명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편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이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어떤 평가를 내리는 편에 있는가에만 있다는 것이다. 그 학살의 현장을 지나온 사람들이 모두 같은 도덕적인 평가를 내릴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 왜 그 일을 겪는지, 왜 자신이어야 하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도덕적 평가는 이 비극을 읽는 독자에게 맡겨진 몫이다. 편집자의 편지에서 나는 이 비극을 만들어낸 전체주의의 그림자를 본다. 그 그늘 아래서 한 인간이 지속해가려는 삶에의 욕망을 무시하는 눈 먼 권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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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6-30 0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같은 일을 겪는다고 같은 느낌을 갖지는 않겠지요 저는 어릴 때 저를 생각하면 참 바보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잘 몰랐어요 지금도 모르는 거 많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아는 거 얼마 안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요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할 텐데...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아주 다른 걸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보면... 이 소설이 거절 당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책이 됐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2-06-30 08:49   좋아요 1 | URL

저도 어릴때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만큼 알고 있었다고, 결과가 더 나아지는가도 장담 못할듯요. 다 그렇진 않겠지만....^^

Falstaff 2022-06-30 05: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저한테 케르테스 임레는 삼부작 다 쉽지 않았습니다. ^^;;;

그레이스 2022-06-30 09:06   좋아요 2 | URL
예^^
하지만 <운명>은 어렵지 않죠!
<좌절>부터가 난관이 많죠?
읽어가면서 난관을 제거하면 메시지가 들어오더라구요^^
저도 힘들었습니다.
오래전에 다른 책으로 포기했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ㅋ
남편이 케르테스 임레?
집에 책 있는데! 하는 순간 기억났습니다.^^

어려웠지만 다 읽고 나서는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었습니다.^^

페넬로페 2022-06-30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개인으로서의 이유없는 고통과 아픔은 넘 가슴 아파요
그것도 어린 나이에요~~ㅠㅠ

그레이스 2022-06-30 13:28   좋아요 2 | URL
이런 글쓰기가 환영받지는 못했던듯요. 더구나 헝가리는 공산국가였어서 그동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도 했고, 지금도 그런듯 해요.

새파랑 2022-06-30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에 나온 ‘나 자신이 곧 운명이다‘ 이 문장이 너무 생각나더라구요 ㅋ 좌절 읽어야 하는데 읽어야 하는데 😅

그레이스 2022-06-30 14:05   좋아요 2 | URL
^^
예 그 문장에 메시지가 있죠?
<좌절>은 조급할때 읽지 마세요.
저도 모임에서 읽어야할 책들때문에 조급해져서 집중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scott 2022-06-30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헝가리라는 나라가 굉장히 모순 된 국가 입니다.
여전히 상류층들은 독일어(남부 억양이 강한)를 쓰고 있고

헝가리 대 문호로 칭송 받는 이들의 대다수들 모두 독일어 권에 작품을 먼저 발표 하고 있습니다 ^^

그레이스 2022-07-01 00:01   좋아요 1 | URL
예~
그들은 훈족의 지배하에 있었던 역사가 있어서, 언어도 그 계통인것으로 알고 있어요.
소설에서도 학교에서 유대인에 대한 쿼터제가 제일 먼저 생긴 나라가 헝가리라고 이야기하고 있네요.^^
오스트리아_헝가리 제국에 대한 향수가 있겠죠.^^
 

전쟁을 통과한 사람은 역사, 현상,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항상 깨닫게 된다. 특별히 수용소나 학살의 피해자였던 사람들의 경우 그 상처는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되어 인간됨이란 존재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을 보게 된다. 때론 그 경험이 굴레가 되기도 하고, 철학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홀로코스트는 반복되는 문학의 한 소재가 되었고, 여전히 적응할 수 없는 역사의 장면이다.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가장 충격적이었던 책은 엘리 위젤의 벽 너머 마을새벽이었다. 아침에 교수형을 당한 소년이 저녁까지 숨이 끊어지지 않은 모습을 보며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했던 누군가의 분노에 찬 신음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무리 중 누군가가 저 교수대에라고 했던 대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엘리 위젤이 194416살에 홀로코스트 수용소에서 경험한 내용이다. 지금도 게토, 인종청소, 수용소와 관련된 소설을 섣불리 잡지 못하게 한 책이다.

1945년 당시의 부헨발트 수용소 (아래쪽에서 2번째, 왼쪽에서 7번째가 엘리 위젤)




엘리 위젤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 임레 케르테스 역시 1944년 15살에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다시 부헨발트로 이감되고 거기서 1945년에 풀려난다. 자전적 소설인 운명에 담은 이야기는 엘리 위젤과는 결이 다르다. 엘리 위젤의 기록은 기사를 쓰듯 자세히 묘사되어있다. 반면, 임레 케르테스는 15살 소년의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다. 개인적인 고민에 빠져있던 십대 소년이 세상을 보는 가치관을 갖기도 전에 수용소와 같은 비참한 현실을 맞닥뜨리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너무나 잘 표현했다. 사유보다는 감각으로 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종전과 함께 부다페스트로 돌아간 소년의 혼란, 그제야 어렴풋이 인식하게 되는 모습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임레 케르테스는 이 운명을 시작으로 4부작을 썼다고 한다. 좌절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그리고 청산. 결국 나는 『좌절』을 펼칠 수밖에 없었고,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을 이어붙이는 듯한 이야기 속에 갇혀버렸었다. 감당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지닌 작가가 외부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고 내면의 자아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과 그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이들이 작가의 자아인 듯하다. 읽다가 앞으로 가서 다시 읽기를 반복한 끝에 읽기를 마치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운명은 감동적이다. 좌절을 읽는다면 운명은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좌절을 읽지 않았다면 운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세 번째 책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를 펼치게 된다.



6월이라 그랬나? 의도하지 않았는데 전쟁관련 소설을 이어서 읽었다. 시작은 하인리히 뵐의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였다. 아마도 그 전에 읽은 다다와 초현실주의봄의 제전이 그 시작을 만들었을 것이다. 독일군으로 2차 대전에 참전했던 하인리히 뵐의 경험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그가 전범으로 비판 받을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는 전쟁 중 탈영과 같은 전쟁터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을 했다고 한다. 징병되어 원하지 않는 전쟁을 해야 했던 그의 삶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까지 이르게 한다. 전후(戰後) 그는 전쟁 경험과 폐허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썼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읽어야 했고, 다시 열차는 정확했다를 주문했다. 어느 어릿광대의 전설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까지 읽을 계획이다.


엘리 위젤과 임레 케르테스, 하인리히 뵐과 귄터 그라스, 피해 집단과 가해 집단의 문학가들이다. 같은 시대를 통과했지만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엘리 위젤은 노벨 평화상을 나머지 세 사람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은 글의 결은 다르지만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왜 이런 고통에 놓이게 되는가? 이런 비참함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가? 인간은 본래 선과 악 어디에 속하는가?


만일 유대인과 독일군 신분이 서로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임레 케르테스가 좌절에서 징집당한 군인과 간수(看守)로서의 경험을 통해 던진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당신은 사형집행관입니까, 사형수입니까?"(417p,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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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6-26 21:0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는 몽상가ㅎㅎ🖐
이 글을 읽으니 <좌절>을 읽고<운명>을 재독해 봐야겠다 마음먹게되네요.
어제 로맹가리의 글을 읽었는데
게토에서 탄생한 유대인들의 유머에 대해 공격적이기도하고 고통스런 현실을 누그러뜨리는 일종의 혁명이라고 하더라구요. 거기선
솔 벨로,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맬러머드,브루스 제이 프리드먼, 필립 로스를 언급했어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갖게하는 끔찍한 전쟁이었음에도 이런 유머와 그들의 문학적 기록을 통해 인간의 무너뜨릴 수 없는 숭고함또한
보여주고 있는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2-06-26 21:13   좋아요 8 | URL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문학은 인류의 놀라운 발명품이고, 위대한 유산이란 생각입니다.

그레이스 2022-06-26 21:31   좋아요 4 | URL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시군요.^^
저도 로맹가리 읽어야하는데...^^

페넬로페 2022-06-26 21: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경험이라도 국가, 나이, 성별등에 의해 다 다른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그렇지만 모두 다 피폐해지고 트라우마가 평생 간다는 것은 공통적이겠죠~~

그레이스 2022-06-26 21:21   좋아요 7 | URL
그래서 폐허문학이라고 이름 붙였나봐요 ㅠ
15살 16살이 이런 사건을 어떻게 담았겠나 싶어요;;
하인리히 뵐만 9살 많고 세사람은 비슷한 나이예요. 다른 예술가들도 있겠지만 이 네 사람이 연결이 되네요.

새파랑 2022-06-26 21: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임레 케르테스의 <좌절>은 꼭 읽어야 한다는 말이군요~!! 첫번째 사진 너무 슬프네요 ㅜㅜ 그래도 왠지 저 속에서도 삶이라는게 느껴집니다~!!

그레이스 2022-06-27 08:05   좋아요 6 | URL
그리 잘 읽어지는 작품은 아니지만, 읽길 잘 했다는 생각입니다.
곧 리뷰하려구요^^

사진 너무 참혹한데 거기 엘리위젤이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 돋았습니다.
수용자번호로만 불리던 존재가 자기 이름을 다시 갖게 되는 순간이죠.

그레이스 2022-06-27 08:12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 <운명>을 먼저 읽어야하고 <좌절>을 읽으셔야 하는데,,,, 아마 <운명>은 읽으셨죠?

새파랑 2022-06-27 08:28   좋아요 4 | URL
운명은 읽었습니다~!!

mini74 2022-06-27 09: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ㅠ 소년이야기 너무 끔찍하네요 ㅠㅠ 운명 읽고 좌절 사놓고 읽다가 덮었다가 ㅠㅠ 덮밥도 아니도 ㅠㅠ ㅎㅎ 다시 힘내서 읽어봐야겠어요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2-06-27 09:09   좋아요 5 | URL
저도 <좌절> 오래 걸렸어요.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는 수월하게 읽히네요. 작가의 생각이 넘 가슴아프네요

레삭매냐 2022-06-27 1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엘리 위젤의 케이스는...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이 벌이는 폭압적인 통치에 대
해 옹호한 전력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네요.

하인리히 뵐의 <아담> 리뷰를
써야 하는데 선뜻 손이 나서질
않네요...

그레이스 2022-06-27 11:31   좋아요 4 | URL
그러게요
그래서 슬퍼요
인간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상처안에 갇혀서 세상을 보게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돼요.
그래서 묻게 되는것 같아요.
나는 사형집행관인지, 사형수인지...!

바람돌이 2022-06-27 1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후 문학들의 중요 지점은 피해자 가해자가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느냐, 그리고 그것을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애 또는 보다 근원적인 사유로 발전시킬 수 있느냐 하는거라고 생각해요.
저 작가들이 그런 성취를 어느정도 이루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저는 지금 그동안 독일인의 입장에서 쓴 글들은 못읽어봐서 하인리히 뵐 부터 한번 읽어보려구요.

그레이스 2022-06-27 12:34   좋아요 4 | URL
예 맞습니다.
바람돌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로 발전시키는 것!
작가의 일이기도 하고, 독자의 일이기도 하단 생각입니다.
👍

서니데이 2022-06-27 2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속 사람들 너무 말랐어요.
수용소라는 설명을 읽으면서 공포심을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밤되세요.^^

그레이스 2022-06-27 21:36   좋아요 3 | URL
예!
비참하죠!
서니데이님도 좋은밤 되세요.

scott 2022-06-27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임레 케레데스가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직시 하는 관점이 좋았는데
막상 헝가리에서는 대다수 인들이 임레를 좋아 하지 않다는 거에 놀랐습니다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이렇게 끊임없이 전세계에서 문학과 음악 영화로 재 탄생 시키는 문화의 힘이
부럽고
한 편으로 우리의 아픔은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
슬픈 ㅜ.ㅜ

그레이스 2022-06-28 10:38   좋아요 2 | URL
홀로코스트는 아무래도 더 오랫동안 예술의 주제가 되겠죠?
저마다 생각이 다르긴 하겠지만....
독일가서 소녀상 철거하라고 시위하시는 분들 ㅠ
집에 가서 더 배우라고 말을 들었다고 바뀔것 같지는 않고,,,
마음이 답답합니다.

희선 2022-06-28 0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해자와 가해자 처지는 바뀔 수도 있었겠지요 어릴 때 그런 일을 겪고 살아 남은 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나이를 먹은 사람도 그때 일을 다 잊지 못하더군요 지금 사람은 그때 일을 소설이나 다른 글로 보기도 하네요 그 사람들이 썼기에... 썼다고 해도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습니다 그런 걸 보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는데...


희선

그레이스 2022-06-28 05:16   좋아요 3 | URL
한 세대 모두가 겪는 트라우마죠
모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그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말아야하는데 반복되는 슬픔!
안타깝습니다

서니데이 2022-06-28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도 비가 오고 습도 높은 하루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6-28 17:5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세요 ~~^^

2022-06-29 0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9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7-08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임레 케르테스 =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

그레이스 2022-07-08 19:4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이 페이퍼였네요
저도 뭔지 몰라서...
노트북 켰습니다. ㅎㅎ

건수하 2022-07-08 2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

전 2차대전이 한참 전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유대인 홀로코스트 관련한 문학이 많은가 했는데.
그걸 직접 겪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있더라고요. 그분들이 지구상에서 다 사라진다 해도 문학 덕분에 후세 사람들이 그 일을 기억할 수 있겠죠..

그레이스 2022-07-08 21:40   좋아요 1 | URL
예 그렇겠죠
오랫동안 문학과 예술의 주제가 되어 왔으니...

mini74 2022-07-08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축하드려요 그레이스님 ㅠㅠ 제가 좀 그래요 ㅎㅎ *^^*

그레이스 2022-07-08 21:42   좋아요 1 | URL
ㅎㅎ
아녜요
저도 몰랐는걸요
ㅋㅋ
덕분에 정신차렸습니다

alummii 2022-07-08 2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7-08 21: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7-08 2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 중 두 개의 축인 독일과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의 사실을 철저하게 해부하고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한 편과, 그런 사실의 존재조차 은폐해버리려는 다른 쪽. 이러한 상이한 대처들 또한 어떻게 보면 거시적인 폐허문학의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2-07-09 22:43   좋아요 1 | URL
예, 그렇죠
문학의 기능이 바로 그런 것일텐데,,,
일본의 경우 그런것 조차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일본의 전체주의, 군국주의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희선 2022-07-09 0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도 잊지 않아야죠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전쟁이 세계에서 아주 사라지지 않아서 안타깝네요 그래도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님 글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할 겁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07-09 22:39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전쟁과 함께 찾아온 여러가지 힘든 상황이 있죠. 어서 끝나길 바래 봅니다.

bookholic 2022-07-09 0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즐거운 주말되시고요~~^^

그레이스 2022-07-09 22: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 봤네요^^
북홀릭님도 즐거운 주말과 휴일되시길 바랍니다~

scott 2022-07-1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더블 당선 축하 합니다

이곳은 폐허가 아닌
그레이스님 표 리뷰 맛집 ^ㅅ^

페넬로페 2022-07-11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축하!
임레 케르테스의 작품도 읽어야 하는데 언젠가는 읽겠죠~~

독서괭 2022-07-1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드려요!
이 글 못 읽었었네요. 임레 케르테스 작품들,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언젠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