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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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상과 대체, 읽어가면서 멈추게 되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서사의 배경이 되는 시대정신을 가리키고 있다. 욕망의 대상이 되고, 갈등의 원인이 되고, 가려진 진실을 암시하면서 플롯을 구성해 나간다. ‘향상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향상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대체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암시와 압박을 받는다. 실제로 실적부진, 업무 부적격성 등의 이유로 대체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소설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미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고 있다. 향상되지 않으면 대체되는 세상에서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의 고유함은 무엇일까를 사유하게 되는 소설이다.

 

 클라라는 AF(Artificial Friend). 인공지능 로봇으로 아이들의 친구로서 생산되었다. 태양으로부터 동력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은 전개의 과정에서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매장 쇼윈도에 전시되어 있는 클라라에게 끌려 바라보고 있는 조시와 눈이 마주치고, 조시가 자신을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클라라는 조시의 친구로 판매되어 그녀의 집으로 간다. 조시는 유전자 교정치료-향상치료부작용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태이다.

 

 소설 속에서 사회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향상이라고 하는 유전자 교정 치료를 받게 한다. 그렇게 해서 더 나은 계급의 교육을 받고 지위를 얻게 해주려는 것이다. 그들은 향상된 계급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우수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야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 조시의 엄마 크리시는, 많은 부모들이 하는 것처럼, 딸에게 향상치료를 받게 했다. 조시의 언니 셀은 이 적응과정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한편, 조시의 친구 릭의 엄마는 아이를 잃는 것이 두려워 향상치료를 거부한다. 그리고 릭의 장래를 걱정하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클라라의 엄마 크리시가 향상된 신제품 AF-B3가 아닌 클라라를 선택한 이유는 클라라의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능력때문이다. 혹시 조시가 부작용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게 되면, 클라라로 대체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 아이를 잃었는데도 크리시는 자녀의 향상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 욕망은 자식의 생명의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강하다. 자신의 욕망을 조시에게 대한 투사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계급과 그 경계가 뚜렷한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떠할까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어쩌면 소설 속의 사회와 다름없기 때문에 향상이란 단어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조시의 아빠 폴은 이 계획을 알고 있는 클라라에게 묻는다. 조시의 모습과 행동과 말투는 이어갈 수 있지만, 마음을 배울 수 있겠느냐고.

 클라라는 대답한다.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이 아주 많은 집하고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신중하게 연구해서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320p)

 

폴은 다시 질문한다.

 하지만 네가 그 방 중 하나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다고 해 봐. 그리고 그 방 안에는 또 다른 방이 있고, 방 안에 방이 있고 그 안에 또 있고 또 있고. 조시의 마음을 안다는 게 그런 식 아닐까? 아무리 오래 돌아다녀도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방이 또 있지 않겠어?”(321p)

 

 클라라의 대답처럼 마음은 신중하게 연구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일까? 폴의 질문은 의식의 영역을 넘어서 끝없이 이어지는 무의식의 세계를 연상하게 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과연 이렇게 복잡한 인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클라라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신뢰와 의지,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의 감지, 그로 인한 불안감, 조시를 위해 희생하는 결단 등이다. 또한 투사나 동일시의 모습도 보인다. 마음을 가진 존재가 겪는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학습하고 모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마음의 형성은 타고난 기질, 기억과 상처, , 외적으로는 문화와 전통 등 셀 수 없는 인자와 요인들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또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면 폴의 말대로 방에서 방으로 감추어진 영역들이 끝없이 드러난다. 과연 학습해서 모방할 수 있을까? 아빠 폴의 질문처럼 시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마음, 사람을 특별하게 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마음이 존재한다면 배울 수 있는 것일까?

 

 이 소설에서 클라라의 태양숭배는 독자를 난감하게 한다.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태양을 섬기며 클라라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한다. 죽음과 상실이라는 인간의 불안에서 출발한 원시종교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적인 마음의 경향을 억제하는 신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클라라의 의식에 이 신앙이 생겨나는 과정과 쿠팅스를 파괴해야 한다는 동기를 갖게 되는 과정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것도 인공지능 로봇의 선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어색함은 아직 알지 못하는 영역을 구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마음은 볼 수도, 느낄 수도, 무게를 달 수도, 해부하여 갈라 보일 수도 없다. 오랫동안 마음의 좌소(座所)에 대해 알고자 했지만 밝혀진 것은 없다. 마음은 영혼과 호환되며 언급되어 왔고, 마음은 뇌 손상과 같은 것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는 것등을 알 뿐이다. 게리 콜린스는 마음 탐구에서 마음을 사고, 학습, 문제해결, 의지, 인식, 집중, 기억, 주의, 그리고 사상과 감정의 경험 등을 포함한 우리의 정신 활동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길버트 라일은 의지, 정서, 성향, 자기인식, 감각과 관찰, 상상력, 지성 등으로 마음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마음의 개념, 길버트라일)

 학문의 분야마다 학자마다 마음의 정의가 다르다. 정의조차 부정확한 것을 모방할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까?

 

 대체계획은 조시의 회복으로 취소된다. 조시가 부작용을 이겨내고 건강해진 후에 클라라는 말한다. 자신이 조시를 대신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어머니, , 멜라니아, 아버지가 가슴 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조시의 특별한 무엇인가는 조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442p) 대체는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인간의 특별함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는 것이다. 마음을 모방할 수 있는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일 것이다.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엄마 크리시가 조시의 언니 셀의 대체 로봇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능력으로 인정받는 경쟁사회는 한 인간이 마주할 대체라는 암울한 개인의 운명을 예고한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 의한 대체인 것이다. 미래에는 유전자 조작으로 향상된 한 인간에 의한 것이거나,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향상대체라는 매커니즘이 끌고 갈 계급사회와 인간소외에 대한 해답은 곧 소멸될 AF 클라라에 의해 제시되었다. 한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의 사랑이다. 공존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사랑은 희망을 가리키는 키워드이다.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메리 올리버

(328p 로봇시대 인간의 힘구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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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05 22:3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하 ㅠㅠ 그레이스님. 글을 어쩜 이렇게 고급지고 그레이스하게 쓰시는 거죠., 부럽게 ㅠㅠ 인간의 특별함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다는 말 너무 좋아요. *^^*

그레이스 2021-07-05 22:45   좋아요 7 | URL
;;;;;
감사합니다 ~♡
사랑!
최고의 진리죠^^

초딩 2021-07-05 23:36   좋아요 6 | URL
매우 인정합니다! :-)

붕붕툐툐 2021-07-06 21:11   좋아요 2 | URL
저도 격한 공감! 괜히 그레이스님이 아니심!!

새파랑 2021-07-05 23:3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관한 책은 언제나 좋더라구요~!! 리뷰에 쓰인 마으메 대한 이야기 너무 멋지네요 👍 전 올해 나온 책중 이 책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1-07-06 06:25   좋아요 4 | URL
마음에 관해 이것저것 찾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scott 2021-07-06 00: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레이스님의 이문장에 밑줄을 쫘아악!५✍⋆*

만일 ‘향상‘된 유전자 치료가 가능하다면
전 치료 받고 싶은 곳이 많습니다!

이책 미국에서는 베스트 진입조차 못했고
영국에서는 초반만 왕창 팔렸다가
지금은 독자들이 찾지 않는
자극적인 SF를 원했던것 같습니다
영미권 독자들은
그럼에도 영국은 이번에 여름 휴가 필독 30권에 클라라를 넣어줬는데 ( *ฅ́˘ฅ̀*)

그레이스 2021-07-06 06:29   좋아요 5 | URL
이시구로의 책은 항상 자극적인 내용은 없는것 같아요
우리가 고민했던 것들 역사에서 이미 쟁점이 되고 있는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듯요
하지만 그것들은 오랜동안 머릿속에 남아서 고민하게 하는 것 같아요.^^

희선 2021-07-07 0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로봇이 더 사람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요 겉모습만 같다고 그 사람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면 클론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클론도 다른 사람이죠 사람이 가진 마음과 사랑이 희망이겠지요 좀 엉뚱하기는 해도 클라라도 조시를 많이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희선

그레이스 2021-07-07 07:11   좋아요 2 | URL
♡~
클론은 로봇보다 더 생각할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어슐러 르귄이 쓴 소설 읽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원더북 2021-08-05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ㅎㅎ 저 이 리뷰를 다른 곳에서 먼저 읽었는데 그레이스님셨군요! 여기서 다시 읽으니 더 반갑습니다^^

2021-08-05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8-05 11:43   좋아요 1 | URL
지금 이 글도 수정해야 해요 ㅎㅎ

원더북 2021-08-05 11:45   좋아요 1 | URL
그래이사에 달려 있는 수많은 리뷰 중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리뷰였어요^^

그레이스 2021-08-05 11: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coolcat329 2022-10-12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글 너무 잘 읽고 갑니다. 조시와 아버지가 나눈 인간의 마음에 대한 대화, 덕분에 다시 읽었구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책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 ‘유전자 교정치료-향상치료‘라는 말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그레이스 2022-10-12 22:08   좋아요 1 | URL
댓글 달아주셔서 제가 리마인드 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부끄럽네요. 감사드려요~~~♡

보물선 2024-06-26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문단 너무 좋네요. 별로라고 생각했던 소설 내용이 덕분에 ‘향상‘ 되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2024-06-26 15: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향상으로 받아주시다니 ^^
 
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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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죽음의 징후들은 시시각각으로 나타나고, 육신은 존엄을 잃어간다. 그 과정에 순응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담담한 서술 뒤에 감춰진 딸의 감정은 낯섦과 경악이다. 죽음은 폭력이다. 그 앞에 누구든지 홀로 있게 하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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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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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음에 있는 생각을 다 말하고 살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침묵과 묵인은 불안이 현실이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관념이 묵인의 이유가 되고 불안의 원인이 될 것이다. 침묵이 깨지고 숨겼던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 수치심이 불안의 자리를 차지한다. 어느 시대나 마음과 양심을 지배하는 관념이 있다. 이 관념은 불안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조종하여 욕망을 침묵하게 한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소설 속 지로는 그 시대 기준으로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지식인이다. 사소한 행동과 표정, 억양 하나도 예민하게 알아챈다. 긴장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관조하는 쪽을 택한다.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응해주거나 피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대한다.

 

오사카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한 지로는 어머니의 먼 친척인 오카다의 집에 머물며 친구를 기다린다. 오카다는 지로의 부모님에게 신세를 진 사람들이다. 그의 집에 머무는 것이 불편하게 보이는 것은 부부 둘만 있는 풍경에 끼여 있는 자신의 존재 때문인 것인지, 부모님에게 신세를 지던 사람의 덕을 보는 것에 대한 체면 때문인지, 아님 오카다가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하지만 처세나 실익에 밝은 사람이어서인지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수치심의 문화를 엿보는 것 같다.

 

친구 미사와와의 사이에서도 예민한 감정의 교류를 본다. 친구가 입원한 병원 다른 병실의 알지 못하는 여인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그저 상대방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느끼기만 할 뿐이었는데도 둘 사이에는 묘한 경쟁기류가 형성된다.

 

[나는 걸으면서 내 비겁함을 부끄러워했다. 동시에 미사와의 비겁함을 미워했다. 하지만 비열한 인간인 이상 앞으로 몇 년을 교제한다고 해도 도저히 그 비겁함을 없앨 수는 없으리라는 자각이 있었다. 나는 그 때 굉장히 불안해졌다. 또 슬퍼졌다. ]

-76p

 

이 비겁함에 대한 부끄러움은 이 소설의 전반에 걸친 정서이고, 그의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감정이다. 그의 불안과 슬픔은 앞으로 올 상황들에 대한 전망이고 암시이다. 비겁하게 될 것이고 비겁할 수밖에 없는…….

 

집에서 어머니의 가사일 돕는 오사다의 결혼 상대를 만나기 위해 어머니와 형 내외가 오사카에 도착한다. 형 이치로는 아내와 동생의 관계를 의심한다. 그는 부인하는 지로에게 형수의 마음을 시험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지로는 형의 요구를 어처구니가 없다고 거절하지만, 결국은 들어주게 된다. 이 집안에서 이치로의 위치와 이치로의 독선적인 성격을 가늠해보게 한다. 이런 요구를 하는 이치로에게서 부끄러움 보다는 분노나 괴로움을 더 보게 된다. 왜일까? 이기심 때문일까? 수치심을 숨기는 것일 수도 있고, 의심과 질투심이 수치심을 이길 정도로 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의 괴로움은 의심 때문일까? 분노 때문일까? 질투 때문일까? 외로움 때문일까? 비겁함에 때문일까? 이것도 알 수가 없다.

 

형수의 마음이 진짜 지로를 향하는지, 아님 그저 형의 의심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형의 요구에 따라, 형수와 함께 간 여행에서 둘의 대화를 보면 형수의 말 속에서 묘한 기류를 감지하기도 한다. 거기에 지로가 흔들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어머니조차 이 세 사람의 관계로 인해 불안해 하지만 이들 사이에 있는 긴장의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고,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이런 긴장과 불안함, 외로움 때문에 결국 이치로는 신경증 증상을 보인다.

 

[형의 설명에 따르면 파울로는 프란체스카의 시동생으로 그 둘이 남편의 눈을 피해 서로 사랑한 결과 마침내 남편에게 들켜 죽임을 당한다는 슬픈 이야기인데 단테의 신곡에 쓰여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슬픈 이야기에 대한 동정보다는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형의 심사에 대해 일종의 불쾌한 의심을 품었다.]

- 261p

 

형 이치로는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동생 지로에게 이야기 하고 태도를 요구한다. 나쓰메 소세키가 살았던 시대는 여전히 도덕과 관습이 지배하던 시대이다. 자유롭기를 원하나 관습과 도덕에 지배를 받아 살 수 밖에 없는 집안의 기대를 온몸으로 받던 장남이치로는 안개와 삼줄에 묶여있는 것처럼 느꼈을지 모르겠다. 형은 형수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잘 모르겠다. 시작은 원하지 않는 결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언뜻언뜻 아내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관습과 도덕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다는 의식 때문에 서로의 감정을 의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아내 역시 희생자다.

 

남자는 싫어지기만 하면 도련님처럼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으니까요. 저 같은 사람은 마치 부모가 화분에 심어 놓은 나무 같아서 한번 심어지면 누가 와서 움직여주지 않는 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어요. 가만히 있을 뿐이지요. 선 채 말라 죽을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어요.” 

- 299p

 

그런데 이 호소의 이면에서 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강함을 전기처럼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강함이 형에게 어떻게 작용할 지에 생각이 미쳐서 오싹했다고 한다.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이치로를 더 답답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치로는 친구 H와 여행을 떠난다. H는 지로에게 편지를 보내고, 이상 행동을 보이는 이치로와 여행에 대해 쓴다. 편지를 통해 이치로가 아내를 구타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반항하지 않는 부인을 보며,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하는 이치로의 고백은 비루하다. 자신의 비루함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이치로를 이해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나의 망설임의 이유는 그가 좋아했던 사람은 오사다였다는 사실을 묵묵히 암시하고는, 게걸스럽게 밥을 먹고 쿨쿨 잠을 자고 있는 이치로의 고독과 괴로움이 전달되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 중 그 어떤 곳도 맘에 들었던 곳이 없는 이치로, 미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예민한 사람 이치로가 택한 삶의 방식 때문에 안타깝다. 말라르메는 의자 하나를 잃었지만 자신은 삶의 거의 전부를 잃었다고 말하는 이치로, “죽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종교에 입문하거나세 가지 길 밖에 없다던 그가 안타깝다.

 

타인의 괴로움의 깊이를 알게 되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없다. 나는 여전히 이치로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쪽에 서있다. 하지만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루해질 수 있는지를 헤아린 작가의 고독과 괴로움의 깊이를 가슴 아프게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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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08 00:4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소세키가 ‘그후‘ 부터 시작해서 ‘문‘ 그리고 ‘행인‘의 작품 속에서 자기와 다른 인물, 자기와 비슷한 인물을 등장시켜서 다른 인물들이 소세키 자신과 비슷한 인물을 공격하고 분석합니다.
‘행인‘에 등장하는 형이 실제 소세키와 아주 많이 닮았습니다. ‘행인‘의 압권은 동생 지로가 형을 공격하고 분석하는 부분....

그레이스 2021-06-08 00:55   좋아요 5 | URL
그런것 같았어요
소세키의 삶이 너무 비극적이더군요
가족들로 인해...

새파랑 2021-06-08 01: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서점가서 이책 구경했는데 ㅎㅎ 리뷰 보니까 쓸쓸한 기운이 느껴지네요. ‘문‘과 ‘행인‘ 꼭 읽어야 겠어요^^

그레이스 2021-06-08 06:44   좋아요 5 | URL
행인, 춘분지나고까지, 마음 은 사람의 마음을 주제로 한 ego 3부작이라고 부르나봐요
읽어보려구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서니데이 2021-06-08 01:0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리뷰의 첫문장과 마지막 문단의 첫문장이 좋았어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때로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도 결국은 일부에 불과한 것 같은 때가 있어요.
그레이스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밤되세요.

그레이스 2021-06-08 06:38   좋아요 5 | URL
감사해요
따뜻한 서니데이님!
맞아요 자신도 다른 사람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죠.

바람돌이 2021-06-08 01: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비겁함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일것 같네요. 다시 알라딘에서 소세키 열풍이 부는건가요? 그레이스님의 리뷰로 이 책도 조용히 보관함으로 옮겨놓습니다. ^^

그레이스 2021-06-08 08:03   좋아요 5 | URL
저는 항상 늦죠^^
뒤쫒아가느라 바빠요;;;
놓지는 것도 많고...
열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온기라고나 할까요?^^

레삭매냐 2021-06-08 09: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세키의 책들은 사두기만 하고
여전히 안 읽고 있네요 그것 참...

그레이스 2021-06-08 10:06   좋아요 3 | URL
그 심정은 저도 공감!
ㅋㅋ

모나리자 2021-06-08 10: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은지 오래된 작품이어서 가물가물합니다.ㅎ
형수가 도련님에게 말한 인용문장은 새록새록하네요.
언제 읽어도 좋고 그리운 소세키의 작품!!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1-06-08 11:55   좋아요 4 | URL
예 .
감사합니다.
소세키의 좋은 작품 소개해주세요.
모나리자님도 행복하세요~

mini74 2021-06-08 13: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속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닮은 듯한데 또 나름 다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 그레이스님 리뷰보니 너무 읽고 싶어요. 일단 쟁여 놓고 *^^*

그레이스 2021-06-08 13:54   좋아요 2 | URL
저도 소세키 다른 책 정해두고 있는데 먼저 읽어야 할 책들때문에 잠시 멈췄어요 ㅠ
천천히 읽어가야죠^^
 
무기여 잘 있어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9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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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땅에서 전쟁을 하고 무수한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

사선의 전장이 가까운 마을.


휴가에서 돌아온 주인공 헨리는 마치 여행자와 같은 태도이다. 군의관 리날디처럼 시시덕거리고 수작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전쟁처럼 심각한 상황에서는 진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캐서린을 만났을 때도 끌리는 마음을 진지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랑했던 약혼자를 전쟁에서 잃어버리고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과 상실에 두려워하는 캐서린에게는 그의 태도가 분노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헨리에게 끌리는 마음조차도 불안이 덮치고 삼켜버린다. 그녀의 불안은 비가 올 때 고조되고, 비는 죽음을 암시한다.


이들의 사랑은 전쟁의 한가운데 있는 드리워진 죽음과 공포, 고통 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영화 속 헨리의 대사는 아마도 “I CRUSH YOU!”...

 

부조리한 전쟁의 한가운데서 도피해 온 헨리. 죽음의 현장에서 도망했지만 죽음은 도처에 있다. 해리 포터 영화를 보면 디멘터라는 존재가 있다. 나타나지 않아야 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 인간의 행복한 기억을 빨아들이고 불행한 기억만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 그야말로 죽음과 같은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인간의 죽음을 비유할 수 있는 적절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삶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은 언제든지 인간을 덮쳐오고 그것은 갑작스럽다.

 

스위스에서의 행복한 두 사람. 잉태된 생명을 기다리는 하루하루는 역설적으로 비극을 향한 긴장을 고조시킨다. 결국 캐서린은 아이를 낳다가 죽고 이야기는 헨리의 슬픔을 공감하기에는 너무나 간단하게 끝나버린다.

 

그러나 간호사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고 전등을 꺼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각상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나는 병실 밖에서 나와 병원을 벗어나 뒤로 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503p

 

캐서린의 죽음 후, 병원을 나선 헨리를 그린 마지막 장면이다. 소설의 이 마지막이 지나치게 간결해서 허무하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병원을 나온 헨리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길게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그 뒷모습은 죽음에 대한 애도도 상실에 대한 슬픔도 전달하지 않는다. 무력감만이 그의 발걸음을 따르는 것 같다. 그가 걸어가는 방향의 소실점 역시 허무를 가리키고 있다.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은 도피도 싸움도 할 수 없는 존재. ‘인간의 죽음은 실존에 대한 영원한 질문. 아마도 헤밍웨이는 소설을 쓸 당시 어떤 답도 대안도 없었던 것 같다. 던져진 존재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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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30 22: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던져진 존재! 오~♡ 이 표현 인상적인데요?!! 영화까지 나온 작품들이 많아서, 포장지 뜯지 않은 선물꾸러미 가진 것처럼 읽기전부터 설레요ㅋㅋㅋ

그레이스 2021-05-30 22:58   좋아요 4 | URL
‘하이데거‘를 읽고 나서 저도 ‘던져진존재‘라는 말이 가장 와닿았어요.
제가 자주 사용하기도 하는데, 사실 저는 인간존재를 던져진 존재라 생각하지 않지만 실존을 찾기까지 인간은 그렇게 생각할수밖에 없기에 이 말이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scott 2021-05-31 16:09   좋아요 2 | URL
[포장지 뜯지 않은 선물꾸러미 ]
미미님 표현에 감탄!!👍

청아 2021-05-31 16:12   좋아요 2 | URL
헤헷 ໒( ͡ᵔ ▾ ͡ᵔ )७~❤

새파랑 2021-05-30 23: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은 ‘무기여 잘있거라‘ 영화 엔딩인가 보죠?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 헨리의 시종일관 담담함과 냉소적인 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 비극적인 부분에서 마져도 ㅜㅜ
헤밍웨이의 문장이 전체적으로 다 왠지 쿨한? 기분이 드는거 같아요. 그래서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극호^^

그레이스 2021-05-31 06:30   좋아요 3 | URL
아마도 소설의 급작스럽게 느껴질만큼 간결한 엔딩때문에 영화의 엔딩이 기억에 남았던것 같아요^^

scott 2021-05-31 16: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죽음, 사랑, 도피, 죽음…]
헤밍웨이 인생 전체를 말해주네요
인간 헤밍웨이는 ,,,,,이지만
문장력은 인정 함요 (๑-﹏-๑)
 


 













그 순간 정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종 벌어지는 일이 네흘류도프에게도 일어났다. 처음에는 이상하고 역설적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농담처럼 보이던 것들이 점차 삶의 확신으로 나타났고, 결국은 그에게 있어 가장 단순한 부동의 진리가 되었다. 그래서 인류가 고통받는 그 죄악으로부터 구원받은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하느님 앞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죄인이며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처벌한다든지 교화할 능력을 부여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임을 이제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마태복음18장을 읽던 주인공 네흘류도프에게 일어난 각성의 순간이다.

왜 우연히 펼친 성경에서 마태복음18장에 끌려 들어갔을까?


"그러나 나를 믿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목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6)

라는 구절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으로 인해 비참한 삶을 살아왔고 무죄함에도 죄수의 신분이 된 여인 마슬로바에게 참회하기 위해 유형지까지 따라가면서 네흘류도프는 동행하는 죄수들을 보며 고뇌한다. 저마다 유형수가 된 이유가 무지하고 가난함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특히 무죄한 자들이 유형지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조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가난과 무지한 농민들, 마슬로바와 같이 무죄하나 힘이 없는 자들이 그에게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을 죄짓게 하는 존재는 부패한 국가, 귀족, 자기와 같은 지주일 것이다.


탐욕과 죄가 가득한 사람들이 만든 법과 권력은 다른 작은 자들의 죄를 교화할 수 있는가? 죄를 죄로 다스릴 수 있는가? 네흘류도프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답을 찾는다.


「사회와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사람들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합법적인 죄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타락상에도 불구하고 서로 동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네흘류도프는 명확히 깨달았다.


그는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러 나선 목자의 심정을 유형지의 정치범들의 동정과 사랑에서 보게 되었고 사랑만이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슬로바의 결정은 어쩌면 네흘류도프를 훨씬 자유롭게 하고 그의 삶을 확장시켰다고 생각한다. 그 결정에 네흘류도프도 슬프고 당황했지만, 그녀의 결정 속에는 그를 향한 사랑과 더 큰 용서가 있었고, 그는 그의 삶을 앞에서 말한 약자들에게 헌신할 결심에 이를 수 있었다. 이것이 1만 달라트를 탕감 받은 자의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고 용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하는 사랑의 원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33

 

그는 결심한다. 마슬로바에게 참회하기로 하면서 시작했던 일, 토지를 파는 일부터 시작했던 정의를 실천하는 일을 위해 계속 전진하고 확장시킬 것을 결심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생명의 주인이며, 생명은 우리의 쾌락을 위해 부여된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만일 우리가 세상에 보내졌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의지와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기쁨만을 위해 살기로 결정한다면, 주인의 의지를 이행하지 않는 포도밭 농부의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셈이 된다. 주인의 의지는 이 계율들 속에 묘사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계율을 실천할 때에만 지상에 신의 왕국이 건설되고 사람들은 그에 걸맞는 은혜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곁들여 받게 될 것만을 구하고 있으니아마 그것을 찾지 못할 것이다.

내 필생의 사업은 바로 이것이다이제 한 가지 일이 끝나고 다른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진정한 자유와 새로운 생활 즉 부활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톨스토이에게 있어 문학은 사상과 윤리를 제시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사상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182512월에 러시아 귀족층 젊은 지식인들에 의해 데카브리스트 혁명이 일어난다. 이들을 12월 혁명당원(黨員)이라 한다. 러시아어()12월인 데카브리에서 유래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군은 파리로 입성하고(1815), 러시아 젊은이들은 파리에서 서유럽의 자유주의 사상과 정치에 영향을 받게 된다. 사실,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한 러시아는 프랑스 혁명 발 자유주의가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참전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군대의 젊은 장교들에 의해 혁명을 맞이했다.

이들은 왕정을 폐지하고 새로운 정치제도를 세우고, 전근대적인 농노제를 폐지할 것을 주장한다. 이 혁명은 실패하고 많은 당원들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이 혁명은 젊은 지배계층 지식인들에 의한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러시아의 문학계도 이들과 연관되어 있고, 그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푸시킨의 경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경험과 데카브리스트들과의 교유 등은 그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골리와 투르게네프, 곤차로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은 러시아 농민의 처참한 삶과 전제정치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데카브리스트 혁명의 정신이 19세기 문학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로트만은 18세기 러시아 문학과 독자들의 관계양상을 책에 따라 살기라고 표현했다. “독자들에게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책에 따라 살 것이 요구되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인들은 개인성, 자유, 도덕을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철학적, 이념적 사유를 문학으로 표현했다. 18세기 이후(푸시킨 이후) 러시아에서 철학자나 비평가, 정치가나 법률가, 언론인이나 역사가가 담당했을 문제가 문학의 대상이 되는 두드러지는 현상은 제정러시아의 현실을 역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19세기 러시아 중엽에 비평가 벨린스키는 러시아인을 책을 읽는민족으로 정의한 바 있다. “오직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자만이 러시아 인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여기서 민족을 결정짓는 요인은 피도 계급도 아닌 독서의 재능인 것이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작은 인간은 같은 계급의 프랑스인과 달리, 사회적 신분의 상승을 꿈꾸지 않는다. 그 대신 그가 꿈꾸는 것은 훌륭한 글쓰기이다. 러시아에서 작가는 언제나 일종의 비공식적 권력, 말하자면 두 번째 정부로 간주되어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의 통치자들(예카테리나 2세부터 레닌에 이르기까지)역시 부단하게 스스로를 문학가로 표상하려 시도해왔다. 레닌은 문학 비평가, 스탈린은 언어학자였으며, 흐루쇼프는 현대예술 비평가였고, 브레즈네프는 직접 소설3부작을 썼던 작가였다. 요컨대, 문학이면서 동시에 언제나 문학보다 언제나 문학보다 어떤 것이어야 했던 러시아 문학은 철학적 사유의 시험대이자 사회 변혁을 위한 프로그램이었으며, 민족의 과거를 이해하는 방법이자 미래를 향한 예언의 기초였던 것이다.

-김수환, 책에 따라 살기-유리 로트만과 러시아 문화, 25~26p

 

삶과 예술을 가르는 경계를 고의로 뚜렷하게 긋지 않는그들의 태도를 가리켜 벌린은 윤리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가 현대문학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지나간 시대의 계몽주의적인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문학을 읽은 뒤, 삶이 뒤따르는 것이야 말로 살아있는 독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문장을 쓰고 있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책만 읽을 뿐 뚜렷한 삶의 궤적이 없는 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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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11 20: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에 따라 살기>표지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전쟁직후 모습인가봐요? 어디선가 본것 같기도하고요. 저 상황에 책을 둘러보고 있다니...ㅠ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저의 일부는 러시아인♡ 좋은데요?!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5-11 22:52   좋아요 4 | URL
저도 표지를 보고 감동받았어요 ^^
예 미미님은 러시아인.

그레이스 2021-05-23 21:55   좋아요 1 | URL
2차대전 런던 공습때 폭격으로 무너진 서점의 모습이랍니다.
저도 어디서 봤나 계속 생각 중이었는데 찾았어요
<독서의 역사>에서^^

청아 2021-05-23 22:21   좋아요 0 | URL
와 감사합니당~^^♡

mini74 2021-05-11 21: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 적 가요무대에서 나오던 카튜사의 순정? 이란 노래 들으며 카튜사가 누굴까 궁금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 문장을 쓰고 잠시 다짐 ㅎㅎ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생각합니다 *^^*

그레이스 2021-05-11 22:53   좋아요 5 | URL
고민의 흔적이 삶에 배어들겠죠?!

그레이스 2021-05-11 22: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제 기호학 책 얘기 나누다가...
오늘 로트만을 인용하게 되네요.^^

새파랑 2021-05-11 22: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부활> 정말 좋아요~! 이 책 읽고 나서 책임질 줄 아는 삶에 대해서 생각했었는데, 다시 까먹고 살지만 ㅜㅜ 삶이 뒤따르는 독서를 하고 싶지만 쉽지는 않은 같아요. 저도 다짐만^^

그레이스 2021-05-11 23:10   좋아요 3 | URL
하지만 우리는 삶이 뒤따르지 못하게 하는 세상보다는 깨달은 내용대로 살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에 기울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5-12 00: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작품에 강조되는 ‘그리스도의 사랑‘ 은 갑작스럽게 전류처럼 다가가는 경우가 많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불교식으로는 ‘돈오돈수‘가 될까요... 분명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감작스럽게 모든 갈등을 뒤덮으며 사랑으로 마무리 짓는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마땅히 해야하는‘ 당위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레이스 2021-05-12 01:04   좋아요 3 | URL
예 톨스토이 작품에는 대부분 그렇죠.
전쟁과 평화도, 안나 까레니나도 사랑이 모든 것을 덮는 내용이 나오죠.
갑자기 설교조가 삽입되기도 하구요.
사랑은 톨스토이의 주된 사상이었다고 생각해요. 삶(사상)이 문학이고 문학이 삶이길 추구했던 작가여서 그런듯요.
저도 당위로 느껴져서 그 부분은 소설 같지가 않았어요. 글은 아름답지만.
그런데 그가 추구하는 사상을 실천하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 현실과 사상사이의 간극을 뛰어넘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겨울호랑이 2021-05-12 07:27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개인적으로 톨스토이를 좋아하지만, 작품 인물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톨스토이‘의 그림자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의 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같은 느낌이랄까요... 대체적으로 저는 작가와 작품을 구분해서 읽으려 하는 편입니다만, 그레이스님 말씀을 듣고보니, 톨스토이는 다르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덕분에, 새롭게 배워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5-12 10:53   좋아요 2 | URL
톨스토이는 톨스토이로, 고골리는 고골리로, 도스토예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로 읽죠.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더 끌려요!
댓글 주셔서 덕분에 저도 이런저런 문학에 대한 사유를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