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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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명암을 미완으로 남겼다. 마지막 작품이라는 무게의 시선으로 만난 첫인상은 흔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가벼운 스토리에, 이런 작품을 연재하고 있던 나쓰메 소세키는 죽음을 예감하지 못했던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의 글쓰기는 삶이란 나와 타자간의 충돌과 한 존재 안의 이중적 욕망의 갈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메시지로 정돈되고 있었을까? 그의 수필이나 연설문·시론들에 비교해서,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는 작가의 마지막 소설은 예상 밖의 가벼움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치질 수술을 결정하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 쓰다는 침울한 기분으로 처음 발병했을 때의 격심했던 고통을 기억하면서 불쾌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주위 사람들이 그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점잔을 빼고 있는모습에 쓰다는 불쾌해진다. “자신의 육체는 언제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과 어쩌면 바로 지금 어떤 변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18p)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더구나 자신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의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전차 안의 승객들은 그의 눈길에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19p)에 대한 자각은 앞으로 쓰다가 타자들과 만들어갈 관계에 대한 전망을 하게 한다.

 

남편 쓰다의 냉정함이 서운한 오노부는 처음 만남을 추억하며,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남편 때문에 외롭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하지만 나처럼 못생긴 사람은 다시 태어나기라도 하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어.”(239p)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자존감이 낮아져 있다. 한편, 외부에서는 보는 부부의 모습은 오노부가 쓰다를 손 안에 넣고 자유롭게 놀리는”(247p)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쓰다도 그녀에게서 언뜻언뜻 비치는 강인함에 불편함을 느낀다. 오노부는 재빠르고 영리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이다. 사랑하는 남편 앞에서만 자신의 성품을 누르고 있다.

 

쓰다와 오노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격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관계망을 형성하며 일상을 이룬다. 감춰진 과거는 관계 안에 감춰져 있던 위기를 조명하고 쓰다와 오노부의 불안을 조성한다. 쓰다의 누이 오히데와 친구 고바야시의 암시와 요시카와 부인의 행동은 오노부를 불안하게 하고, 오노부는 남편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럼 얘기해주세요. 제발 얘기해주세요. 숨기지 말고 여기서 다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단숨에 안심시켜주세요.”(451p) 그녀의 진심이 진실보다는 안심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쓰다의 옛 연인이었던 기요코의 소식을 알려주며 그녀가 있는 온천장으로 요양 가도록 하는 요시카와의 의도를 알 수 없다.

 

오노부에게 쓰다의 비밀을 암시하는 고바야시는 이상주의자이다. 사회주의자로서 근대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식인이다. 그는 요시카와 집안과 오카모토 집안(오노부의 고모부 집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쓰다의 실체를 드러낸다. 고바야시는 쓰다의 사랑을 허위라 하고, 쓰다는 고바야시의 사상을 무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고바야시는 오노부의 외로움을 들여다본다.

 

부인, 저는 남한테 미움을 받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일부러 남이 싫어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제 존재를 남에게 인식시킬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적어도 남의 미움이라도 사려고 합니다. 그게 제가 바라는 겁니다.”

오노부 앞에 마치 딴 세상에서 태어난 듯한 사람의 심리 상태가 펼쳐졌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고 또 누구에게나 사랑받도록 해나가고 싶으며, 특히 남편에게는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속마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외 없이 세상의 누구에게나 들어맞으며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그녀는 처음부터 확신하고 있었다.(253p)

 

미움 받는 행동이라도 해서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사상을 세상 앞에 보이려고 하는 그의 간절함은 세상과 융화될 수 없는 사상가, 지식인의 모습이다. 그 절절한 외로움 앞에서 오노부는 자신의 외로움을 확인한다.

 

 

미완이지만 이 작품에는 수미쌍관이 있다. 도입부에 등장한 레일 위의 전차는 후반부 온천으로 향하는 그가 탄 경편의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도입부, 병원에서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 쓰다의 생각은 레일 위를 달리는 전차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우연, 우연, 하는 이른바 우연한 사건이라는 건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짐작이 안 될 때 쓰는 말”(19p)이라고 한 푸앵카레를  떠올린다.

후반부, 온천으로 향하는 쓰다가 탄 기차(경편)는 탈선하고 여러 번 앞으로 밀었다 뒤로 되돌리는 과정을 반복한 뒤 제자리로 돌아온다. 함께 탄 노인들은

또 늦어지고 말았군, 친구, 덕분에 말이야.”

누구덕분에 말이죠?”

경편 덕분이지. 하지만 이런 일이라도 없으면 졸려서 안 되네.”(523p)

라는 느긋한 대화를 이어간다. 그들은 이 경편이 늘 탈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예상하고 있었다.

푸앵카레의 말처럼 인생에서 만나는 우연이라고 하는 사건들은 사실 예측 가능한 것들이다. 인생의 단계·시기마다 겪어야 할 일들이 찾아오고 관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노부의 행동에서도 사람들에 대한 예측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소설은 쓰다가 기요코를 만나고 미완으로 마친다. 그가 온천마을에 도착해서 나는 지금 이 꿈꾸는 듯한 것이 연속된 곳을 찾아가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꿈, 지금도 꿈, 앞으로도 꿈, 그 꿈을 안고 다시 도쿄로 돌아간다.”(524p)라고 생각한 것처럼 결말이 날지 모르겠다. 그럼 그는 무엇 때문에 도쿄를 떠나 거기까지 갔을까?

 

쓰다는 적막한 마을을 지나며 희미한 전등 불빛과 그 빛이 닿지 않는 곳에 가로놓인 커다란 어둠을 비교했을 때”(524p) 꿈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암을 만들어내는 빛은 희미하다. 그래서 꿈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지식인의 이상도 과거의 사랑도 희미한 빛이다. 도쿄에 있는 아내 오노부는 현실이고 그가 만나러 가는 기요코는 꿈이다. 빛과 어두움, 현실과 꿈은 삶에 혼재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타인들과의 관계가 끼어들고, ‘명암을 만든다. 인생은 관계가 만들어낸 의미들로 이루어진다. 그 관계망의 점들에 사람이 있다. 지나온 시간 속의 사람, 관계, 사건이 만들어낸 의미는 현재의 나를 비추는 빛이다.

 

놀라운 일은 이와 동시에 현재의 내가 천지를 다 가리고 엄존하고 있다는 확실한 사실이다. 일거수일투족의 하찮은 것에 이르기까지 이 ()’라는 존재가 인식하면서 끊임없이 과거로 이월하고 있다고 하는 부정할 수 없는 심경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기준을 두고 자신의 뒤를 돌아다보면 과거는 꿈이 아니다. 아주 명백하게 현재 나를 비추고 있는 탐조등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정월이 올 때마다 나는 역시 보통 사람과 같이 평범하게 나이를 먹고 늙어 쓸모없게 되는 상태가 된다.

생활에 대한 이 두 가지 관점이 동시에 그리고 모순 없이 공존하고, 상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의 논리를 초월하고 있는 이상한 현상에 대해 나는 지금 아무것도 설명할 의도가 없다. 혹은 해부할 수완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연초에 즈음해서 나 자신은 한 형체 두 모습이라는 견해를 품고 내 전 생활을 다이쇼 5(1916)의 조류에 맡길 각오를 할 뿐이다.”

(188~189p 점두록」 『나의 개인주의 외나쓰메 소세키)

 

점두록은 그가 명암을 연재하기 몇 달 전에 쓴 글이고 같은 해에 나쓰메 소세키는 작품을 미완으로 둔 채 삶을 마감했다. 말한 것 처럼 그는 일거수일투족의 하찮은 것에 이르기까지 인식하면서 끊임없이 과거로 이월하고 그 과거로부터 현재를 탐조한다. 그렇게해서 조명되는 그의 안에 공존하는 두 모습에 대해서 설명할 의도가 없다. 그런 글쓰기를 명암에서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힘을 빼고 애써 부인하지도 강조하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읽었다. 5년 전 죽음 앞에까지 갔었던 작가는 오히려 가벼움을 취하여 삶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가볍게 보였던 작품은,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중요한 의미들을 생성했고, 미완의 여백에 무게를 채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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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2-11 0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소세키 소설 다 보시고 이렇게 상도 받으셨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1-12-11 08: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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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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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가 힘을 빼고 쓴 듯한 작품. 삶에는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고, 현실과 이상이 함께 간다. 미완의 열린 결말에 사건들을 채워넣는다. 우연이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을 때 쓰는 것이라 한 푸앵카레를 기억하며, 새삼 삶은 예측 가능한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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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지나고까지』 『행인』 『마음은 나쓰메 소세키의 에고 3부작이라고 한다. 춘분 지나고까지에서는 감춰져있던 불안의 원인이 드러나고, 행인에서는 불안이 쌓이고 증폭된다. 마음에서는 자살로 갑작스럽게 진전하는 것을 보게 된다. 행인에서 이치로는 죽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종교에 입문하거나, 내 앞에는 이 세 가지 길밖에 없네라고 말했다. ‘죽거나마음에서, ‘종교에 입문하거나에서, ‘미치거나행인에서 주인공들이 가는 길이다. 이렇게 나쓰메 소세키의 주인공들의 삶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음의 화자(話者)는 어느 바닷가에서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알게 된다. ‘는 도쿄로 돌아와서도 선생님 집을 찾고, 계속되는 방문과 교제 속에서 선생님의 학문과 사상에 존경심을 갖는다. 선생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에게 선생님은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나가 떠드는 건 죄스러운 일이지”(41p)라고 말할 뿐, 그 이유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는 과거의 어떤 일이 선생님을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음을 짐작한다. 어느새 는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의 임종을 위해 떠나오던 날 선생님의 정원에 서있던 목서 한그루는 그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았고,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후에 는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암시와 커다란 의미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처음 자신에게 보였던 선생님의 냉담한 태도는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할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24p)였음을 깨닫는다. 고향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그에게 선생님으로부터 한통의 편지가 도착하고 선생님의 비밀이 드러난다.

 

갱부의 주인공 청년이 막장에서 사내를 만나고 그의 숙소를 찾으며 한동안 그의 곁에 있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던 것처럼 마음의 화자 역시 선생님에게 비슷한 인력을 느낀다. 막장에서 만난 사내가 그곳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마음의 화자에게 선생님이 과거를 편지로 고백하는 것도 유사하다. 이렇게 그들은 그들의 삶을 고백함으로 청자(聽者)에게 삶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나는 내 과거의 선과 악 모두를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할 생각이네.”(274p)

 

지금의 화자와 같은 나이 때, 대학시절 선생님에게는 친구 K가 있었다. K는 이상주의자였고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K를 돕고자 선생님은 자신이 묵고 있는 하숙집을 소개한다. 하숙집 딸(아가씨)을 사랑하게 된 K의 마음을 알고 선생님은 질투심에 휩싸이게 된다. 초조해진 선생님은 비겁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의 옆방에서 친구 K는 목숨을 끊는다.

 

행인에서 여인을 두고 지로가 미사와와 벌였던 보이지 않는 갈등과 신경전은 마음에서 K로 인해 선생님의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와 병행한다. 처음에는 없었던 아가씨에 대한 감정이 K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 생겨난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이다. 행인에서 지로는

거기에 우리가 깨닫지 못한 암투가 있었다. 거기에 인간의 타고난 이기심과 질투가 있었다. 거기에 조화로도 충돌로도 발전할 수 없는, 중심을 결여한 흥미가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내 비겁함을 부끄러워했다. 동시에 미사와의 비겁함을 미워했다. 하지만 비열한 인간인 이상 앞으로 몇 년을 교제한다고 해도 도저히 그 비겁함을 없앨 수는 없으리라는 자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굉장히 불안해졌다. 또 슬퍼졌다.”(76p, 행인)

라고 생각한다. 불안과 슬픔은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왜 우리는 그런 감정의 천박함을 알면서도 사로잡히고 끌려갈까?

 

친구 K의 사인(死因)을 생각하며, 처음엔 실연 때문이라고 단정했지만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갑자기 결심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며, 선생님은 오싹함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 자신도 “K가 걸어간 길을, K와 똑같이 가고 있는 거라는 예감이 때때로 바람처럼 가슴을 가로질렀기 때문”(267p)이라고 한다.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외로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상과 현실을 일치시키지 못한 자의식 과잉 상태의 두 사람은 그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행인의 이치로는 '말라르메의 의자'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기껏 의자 하나 잃고 마음의 평화가 흐트러진 말라르메는 행복한 사람이지. 난 이제 대부분 잃었네. 겨우 내 소유로 남아 있는 이 육체마저 거리낌 없이 나를 배신할 정도니까.”

(381p, 행인)

이 세상에 거할 곳이 없는 존재, 그 육체마저도 거절하는 것처럼 느끼는 그는 H와 동행한 여행에서 극도의 불안과 고독을 토로한다. 밥을 먹는 그는 육체의 거절은 극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위태롭다.

 

오랫동안 죽음을 생각하던 선생님은 노기대장의 죽음과 그의 글을 읽고 갑자기 실행에 옮긴다. “노기씨는 그 35년간 죽자, 죽자, 하면서 죽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야.”(273p) 죽을 당시의 고통보다 살아온 35년이 더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자 죽음을 결행한다.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자들에게 트리거가 될 수 있는 것들은 도처에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마음을 그 주인을 배반한 다른 존재인 듯 쓰고 있다. 자신을 타자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는 윤리적인 위상과 존재론적인 위상의 이중구조가 있다고 가라타니 고진은 이야기한다. 타자(대상)화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대상화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양심을 위배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당시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하다. 시간이 지난 뒤 여전히 과거에 과오를 저질렀던 마음을 떨어뜨려 대상화 하지 못하면 그 안에 갇힌 신경증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반성도 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의 힘으로, 그것도 오직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절망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그는 변함없이 절망 속에 있는 것이며, 자신으로서는 얼마간 분투했다고 여길지라도 그렇게 분투하면 할수록 점점 더 절망의 늪에 빠질 따름이다. 절망이라는 차질은 단순한 차질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관계하는 차질, 또 타자와의 관계 속에 놓여 있는 차질이므로, 자기 혼자를 상대로 삼은 관계 속에서의 차질은 동시에 자기라는 관계를 만든 힘과의 관계 속에서 무한히 반영되는 것이다.” - 키르케고어, 죽음에 이르는 병

(31p, 나쓰메 소세키론 집성)

 

실존주의를 거론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절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때때로 몸서리쳐지는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이 있고 그것이 오래 지속될 때 우리는 그 절망에 갇히게 된다.

 

신경쇠약을 앓았었던 나쓰메 소세키는 그의 작품 안에서 주인공들에게 그의 자아를 투영하고 있다. 그가 이것을 어떻게 극복했을까는 그의 에세이나 편지글들에서 알 수 있다. 그의 유리문 안에서라는 수필을 보면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이런 만남들, 서신들, 그리고 작품은 그가 자신 안에 갇히지 않고 자신과 잘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깊은 연애에 뿌리내린 열렬한 기억을 빼앗더라도 그녀의 상처에서 떨어지는 피를 시간으로 씻어주려고 했다. 내가 본 그녀에게는, 아무리 평범해도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늘 삶보다 죽음을 귀중하다고 믿고 있는 나의 희망과 조언은 결국 불쾌감으로 가득 찬 이 삶을 초월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것을 실행하는 자신이 평범한 자연주의자임을 입증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도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가만히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다.” (228p 유리문 안에서」『긴 봄날의 소품)

 

오늘 행인마음으로 동아리 회원들과 토론하며, 만일 이 책들을 혼자 읽고 끝냈다면, 감상이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 의미를 생성하는 만남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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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0-22 01: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관계 맺기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어쩐지 저는 둘 다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거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사람은 잘하는 것처럼 본다고 해도...


희선

그레이스 2021-10-22 06:24   좋아요 4 | URL

저도 잘 못합니다.
말씀대로 누구나 다 서툴겁니다.
지금 대하고 있는 그 사람은 유일한 사람이기때문에...^^

persona 2021-10-22 03: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을 너무 메이지유신으로 인한 과거와 새 시대의 분리랑 관련 지어서 생각했었나봐요. 일본학 수업 때도 그렇게 리포트 써서 내고. 새롭네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1-10-22 06:27   좋아요 4 | URL
저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읽었어요.
일본학 수업 재밌겠는데요.
나쓰메 소세키 말고 다른 책들도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persona 2021-10-22 12:27   좋아요 0 | URL
근현대 문학 수업이라 시대별로 대표작만 쭉 읽었어요. ^^ 지금 생각나는 건 나중에 극우 정치인이 된 이시하라 신타로의 태양의 계절이랑 카프 문학처럼 좌파로 유명한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공선이 언뜻 생각나네요. 한쪽은 한때 태양족을 양산하며 대히트했다는데 독자들이 무엇에 반한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한쪽은 내용전달에 치중한 나머지 작품성이 떨어진다는데, 이게 팩트였다는 게 충격이라 두고두고 생각나고 좋았어요. 저는 전공투나 육체파 예술사조는 좀 이해를 잘 못했고 주로 여성작가나 전후파 문학을 잘 읽었던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1-10-22 17:22   좋아요 1 | URL
전쟁과 문학, 고바야시 다키시를 읽는다라는 책을 주목했었어요
공산주의자로서 군국주의를 비판했던 작가고 일본의 태평양전쟁을 반대하다가 사형을 당했다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관심이 가는 작가였어요
게공선, 찾아봐야겠네요.

만화로 읽는 게공선이 있네요

persona 2021-10-22 13:32   좋아요 1 | URL
저는 蟹工船이 원제라 게공선이 익숙한데, ‘게잡이 공선’으로도 번역되어 있어요. 지만지 책도 이렇게 번역돼 있더라고요. 문학성 없다고 평가되어 왔지만 그가 취재를 하여 글을 쓰는 작가라 그런 것 같고요. 르포로 읽으면 일본의 조지오웰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 젊은 열정과 진지함이 가득한 작가였는데 이 작가가 오래 살아서 필력이 더 영글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저는 실제 사건이라 해서 생각이 많았기도 하고 감히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읽고 싶으셨다니 더요. ^^

그레이스 2021-10-22 13:35   좋아요 1 | URL
일본의 조지오웰이라...!
더 관심이 가네요^^
자세한 소개 넘 감사합니다.
꼭 읽어봐야겠어요

새파랑 2021-10-22 08: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동아리 재미있을거 같아요~!! 이렇게 한 작품이 아니라 세 작품을 연결해서 페이퍼를 읽으니 소세키의 의식흐름이 잘 느껴지네요. 마음이란 참 어렵고 신비한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1-10-22 08:33   좋아요 3 | URL
사람들의 감상이 다 각각이지만 또 공감하고 끄덕이는 부분이 일치할때 희열도 있습니다.
토론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깊어지는 걸 느끼구요.
마음 어렵죠!

mini74 2021-10-22 0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삶의 의미를 생성하는 만남, 부럽습니다. 미치거나 죽거나 입문하거나. 이 말에 고뇌의 깊이가 딱 느껴져요 ㅠㅠ 그나저나 그레이스님 글 보며 야금야금 모은 소세키책운 언제 시작하나ㅠㅠ 싶습니다 ~~

그레이스 2021-10-22 08:56   좋아요 2 | URL
^^
미니님에게도 소세키 소설 좋으면 좋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10-22 09: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 동아리 모임에 가시는가
봅니다.

저희 달궁 오프는 과연 언제나
가능할 지... 부럽삽니다.

그레이스 2021-10-22 09:59   좋아요 2 | URL
저희도 온라인으로 하고 있어요
꿋꿋하게...ㅎㅎ

페크pek0501 2021-10-22 1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 을 언제 읽을지 모르겠네요. 사 놓고 못 읽고 있는 책 중 하나예요.
올해 안으로 읽어야겠다, 로 정합니다. ㅋㅋ

그레이스 2021-10-22 14:03   좋아요 2 | URL
응원합니다~~
으쌰으쌰
리뷰도 기대합니다.
전 사놓고 못 읽는 책이 한수레, 일거서라고 해야할까요. ㅋㅋ

서니데이 2021-10-22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들은 읽고 독서토론을 하시는 거군요.
혼자 읽는 것과는 또 다르다고 하는데, 여러 사람의 생각도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좋은 금요일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0-22 19:20   좋아요 1 | URL
예 감사해요
서니데이님도 좋은 시간 되세요

희선 2021-10-23 0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주가 참 빨리도 갑니다 그것보다 하루하루가 빨리 가는군요 요새는 해가 짧아져서 빨리 어두워지는데, 여전히 게으르게 지내서... 언제쯤 덜 게으르게 지낼지... 부지런하게 지내자가 아니고 덜 게으르게 지내기예요

그레이스 님 주말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1-10-23 10:49   좋아요 0 | URL
오늘 상강이 지나고 나면 입동이 오겠죠?

정말 시간이 빨리 갑니다.
한해를 뒤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는 계절이네요.
희선님도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래요~♡
 
우미인초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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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하고 숨막히는 묘사로 시선을 잡아놓는다. 작가의 theory로 끌고가려는 의도때문에 스토리가 단순해졌으나 그것이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묘사와 플롯이 탁월하다. 왜, 우미인의 무덤에 피었다는 꽃, 현종의 양귀비일까? 죽음을 염두해 둔다면 욕망은 도의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메세지를 전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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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1-10-19 15: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었던 <우미인초>입니다.ㅎ
초반에 좀 안 읽혔어요. ㅋㅋ

그레이스 2021-10-19 15:07   좋아요 3 | URL
저는 진도가 잘 안나갔어요
매 장마다 공간과 심리에 대한 묘사가 단번에 읽기에는 너무 좋아서...^^
매번 한편의 시나 에세이 같았어요.

scott 2021-10-19 1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번역 하신 송태욱님
우미인초 번역 하다가
지구를 떠나 버릴 정도로 고생 했다고 합니다

여러번 읽어야 할 책!

그레이스 2021-10-19 17:59   좋아요 3 | URL
번역 너무 잘 됐어요
우리 말도 어쩜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시는지...!
믿고 보는 번역!!

희선 2021-10-20 02:27   좋아요 2 | URL
scott 님 번역하시는 분도 이 책 힘들었군요 제가 이 책 본 다음에 한번 한국말로 옮겨 봐 하고 했는데, 무척 어려워서 힘들었습니다 읽는 것도 힘들었지만... 제대로 안 하고 넘어간 곳도 많고 그냥 아무렇게나 했습니다 어차피 혼자 하는 거니...


희선

서니데이 2021-10-19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번역이 좋다고 하시니, 다음에 기회 있다면 읽어보겠습니다.
차가운 저녁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그레이스 2021-10-19 19:15   좋아요 2 | URL
예 서니데이님두요~♡

레삭매냐 2021-10-20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제목의 소설이 소세키상
에게 있었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그레이스 2021-10-20 17:53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 전집 읽어가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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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누구나 가끔 우울할 때가 있잖아요.” 하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몰이해라는 벽을 칠뿐이다. 타인의 고통을 경청할 때 쉽게 하는 실수다. 고통을 일반화시킴으로 그들을 의지가 약하고, 참을성 없고, 별일 아닌 것에 징징거리는 존재로 만들 수 있다. 일반화의 오류이고 또 다른 가해다.

 

올리브가 아버지에게 보였던 반응은 옳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자살로. 그녀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바닷가에 세워져있는 케빈의 차에 올라타고, 우연히 만난 니나를 무릎에 누이고, 산책길에 쓰러져있는 잭을 발견하고 그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안부를 묻는 것에서, 눈에 보이는 경치로, 자신의 기억으로 옮겨간다. 그 이야기는 케빈으로 하여금 자신을 탐색하고 들여다보도록 한다. 그녀의 존재가 크게 느껴져서, “잠깐 동안 거대한 코끼리가 곁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82p) 받았다. “인간 왕국의 일원이 되고 싶은 순진하고 순한 코끼리, 앞다리를 무릎에 포개고 기다란 코를 살며시 움직이는 코끼리”(82p) 케빈의 환각으로만 볼 수 없는 올리브의 위력이다. 무감하고 무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 안의 상처가 같은 상처를 가진 타인에게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녀가 어서 떠나주길 바라던 케빈은 마음속으로 가지마세요, 키터리지 선생님. 가지 마세요.”(83p)하고 말한다. 그의 극단적인 선택 뒤에는 두려움이 있었고, 올리브가 그의 공간 안으로 밀고 들어가 함께 함으로 그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해안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단편들에 올리브 키터리지는 아픔을 찾아내는 탐조등처럼 등장한다. 한마디 지나가는 말로도 자신 가르쳤던 아이들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 그녀는 자신과 남편을 묶고 인질극을 벌였던 여드름투성이 소년의 얼굴을 떠올리며 소년원에 보낼 작업복을 만든다. 죽음을 떠올린 그들의 얼굴에서 지난날에 놓쳤던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자신의 상처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알아보는 그녀는 가장 가까운 남편과 아들에게는 상처를 남긴다. “그이는 힘든 시간을 겪었어.”(127p) 아들의 결혼식 날 수잔이 한 말을 듣게 된 그녀는 크리스토퍼가 뭐라고 말을 했을까? 크리스토퍼가 무엇을 기억했던 걸까?”라고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낀다. 아들 크리스토퍼는 우울증의 원인이 유전이라고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로부터 받은 감정적 폭력이 원인이라고 말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돌이켜 기억하면서 언뜻언뜻 기억나는 장면들. 그녀의 마음에 박혀있는 이 장면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올리브는 뉴욕에 살고 있는 아들을 방문했다가 이 사실을 직접 듣고 다시 확인한다

 

하지만 아들 뒤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올리브는 때로 이 모든 일 속에서도 깊은 외로움을 느끼던 때가 있었던 걸 기억했다. 그리 오래되니 않은 몇 해 전, 충치를 때우면서 치과 의사가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돌리는데, 외로움이 너무 깊어서인지 그것이 마치 죽도록 깊은 친절인 것처럼 느껴져 올리브는 샘솟는 눈물을 숨죽이며 삼킨 적이 있었다.”(403p)

아들 뒤에 서있는 모습, 치과의사의 손가락 때문에 흘린 눈물에서 외로움의 깊이가 느껴진다.

 

남편 헨리와 올리브는 인질 사건 때 서로에 대한 생각의 밑바닥을 다 내보이고 상처를 받았다. 헨리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 것이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은 내보이면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만약에 아이들이나 남편이 상처를 이야기 하며 내가 아이들에게 쏟았던 시간들을 부정한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오래 전 시간들을 기억하며 문뜩문뜩 가슴에 와 박히고 고개를 젓게 하는 어떤 순간들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걸음마를 하던 아이가 창턱의 제라늄을 만지려고 손을 뻗자 올리브는 아이의 손을 탁 때렸다. 하지만 올리브는 아이를 사랑했다! 맹세코 아들을 사랑했다” (262p)

 

산책길에 쓰러져 있던 잭은 몸도 마음도 지치고 약해져 있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는 올리브가 싫어하는 종류의 남자다. 공화당 지지자고, 편견투성이고,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딸이 댁을 미워해요?”라고 메일을 먼저 보내는 그녀는 조금 변해있다.

 

후우, 난 무서워요.” 하는 잭에게 , 그만해요. 난 겁먹은 사람은 싫어요.” 이렇게 말했을 그녀였지만 그저 그 옆에 가서 앉을 뿐이다. 그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헨리가 죽기 전 몇 년 동안 자신이 이렇게 헨리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눈을 감았다.”

,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483p) 하고 생각한다.

 

짐 오케이시에게 사랑을 느끼던 때, 헨리가 데니즈에게 사랑을 느꼈던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던 때, 헨리를 보낸 때로부터 지금 잭과 함께 있는 올리브는 변했다. 노년에서야 알게 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다. 그저 헨리를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 후회가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면 자동적으로 마음이가고 손을 뻗게 되는 그녀이기에 잭의 옆 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기에.

 

20년 전과 현재의 나는 다르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미숙하고 옹졸하고 생각이 거칠었다. 나의 기분에 갇혀서 타인의 말에 상처만 받았고, 다른 사람을 나의 처지에서 판단하고 분류하기 바빴던 생각의 흐름들. 나에게 관대할 수 없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관대할 수 없었던 시간들에 대해 생각한다. 1020년 후의 나는 더 성장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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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10-13 00: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괜찮죠?ㅎ 저에겐 작년 연말에 이 책 읽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던킨도너츠에 맥주 마셨던 아주 좋은 추억이 간직된 책입니다ㅎ 이 리뷰 덕분에 다시 올리브에 도전하고 싶어지네요!ㅎ 굿밤되십시요!ㅎ

그레이스 2021-10-13 00:59   좋아요 4 | URL
던킨도너츠 ^^
예 좋았어요~!
오늘 토론한 동아리분들도 다 좋았다고 하시네요^^
막시무스님도 굿밤요~✨

scott 2021-10-13 01: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겨울 음악회 ] 단편이 가장 좋았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하다니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 ^ㅅ^

그레이스 2021-10-13 01:03   좋아요 4 | URL
아 예 저도 좋았어요
사람들의 스치듯 하는 말에서 온 흔들리는 감정들.
우리의 신뢰는 무엇으로부터 온 것일까 라는 생각!

바람돌이 2021-10-13 01: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올리버는 진짜 주변에 있을듯한 사람이었어요. 이 책의 단편들은 문득문득 생각나는 그런 글들이랄까? 아마 올리버의 현실감이 그런 느낌을 주는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레이스 2021-10-13 20:37   좋아요 3 | URL
이 작품 보면서 상처와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 그 깊이는 함부로 헤아릴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새파랑 2021-10-13 08: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단편집인가 보네요. 전 올리브 시리즈(?)는 안읽어봤는데 ㅎㅎ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도 가까운 사람에게는 잘 안된되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걸 조금씩 고쳐 나가는게 성장하는 거겠죠? 😅

그레이스 2021-10-13 08:38   좋아요 4 | URL
단편집처럼 구성되어 있구요
올리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다 읽어야 해요.

각 장마다 제목이 있고 주인공들이 달라요. 올리브 마을 사람들이예요
장편으로 읽혀져요
어른의 성장소설!

늦었지만 강추예요^^

다락방 2021-10-13 09: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은 글입니다, 그레이스 님. 덕분에 올리브 키터리지를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올리브 키터리지 역시 제가 여러번 읽은 책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시 올리브]도 진짜 명작이에요. 제 경우에는 [다시, 올리브]가 더 좋더라고요. 올리브가 더 나이들고 그리고 좀 더 변했거든요. 저 역시 제가 늙어가고 있기 때문인지 몰입해서 읽게 되었어요. 올리브 키터리지는 읽을 때마다 감상이 변하고 또 당연하지만 읽는 사람마다 다른 감상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좋은 책입니다. 여기에서 만나서 반갑고요. 올리브 키터리지, 다시 올리브가 있는 세상은 그 책들이 없는 세상보다 훨씬 나아요!

그레이스 2021-10-13 09:55   좋아요 4 | URL
퓰리쳐 상 너무 미국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았어요. <다시, 올리브>도 읽어볼 계획입니다. 감사해요~

레삭매냐 2021-10-13 11: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첫 번째 인스톨은 참 좋아서
두 번인가 읽고, HBO 드라마
인가도 구해서 보고 그랬었
는데...

후속작은 좀 그렇더라구요.
또 세 번째 인스톨도 나온
다고 하네요 -

그레이스 2021-10-13 11:31   좋아요 3 | URL
세번째 나오기전에 두번째 빨리 읽어야겠어요^^

mini74 2021-10-13 16: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다시 읽고싶어지는 올리브. 올리브는 중년여인들의 빨간머리 앤같은 느낌 ㅎㅎ 좀 무뜩뚝하지만 친구하고 싶은 츤데레에 반듯하고 따뜻한. 그레이스님 글 읽고나니 아! 이런 감정이 담겨있었구나 그래서 내가 감동받았나봐 하며 되돌아보게 됩니다 *^^*

그레이스 2021-10-13 18:50   좋아요 2 | URL
중년 빨간머리앤 ㅎㅎ
미니님은 정말 반짝반짝 하시네요^^

프레이야 2021-10-13 1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를 사랑하지 않기란 어렵지요. 제게도 넘나 소중한 인물이랍니다. 드라마 속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정말이지 올리브가 살아나온 거 같잖아요. 약국을 시작으로 4화인데 넘 좋았어요. 특히 다른 길, 에서 헨리와 그 병원 장면. 오금이 다 저려요. 누구나 사람의 바닥이 불쌍하구요.

그레이스 2021-10-13 18:56   좋아요 2 | URL
드라마 얘기들 말씀하셔서 왓차에서 챙겨봤어요^^
저는
공항 검색대에서 찢어진 팬티스타킹 때문에 신발 벗는것 거부하던 올리브의 표정이 너무 생생해서 가슴이 저렸어요 ^^
감사합니다 ~

프레이야 2021-10-13 18:59   좋아요 3 | URL
그죠 그 장면에서 넘 애처로워서 안아주고 싶었어요. 눈을 때굴때굴 굴리며.

그레이스 2021-10-13 19:00   좋아요 2 | URL
🫂

서니데이 2021-10-13 2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았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소설 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은가봐요.
그레이스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밤되세요.^^

그레이스 2021-10-13 21:14   좋아요 2 | URL
저도 여러분들과 공감해서 좋았습니다.
굿밤 ✨ 🌙 요~♡

붕붕툐툐 2021-10-13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막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데, 다들 너무 좋다고 하셔서 끝까지 꾸역꾸역 읽은 기분이네요~ 제가 섬세하지 못해서 그런가 싶기도 해요~ 그레이스님 리뷰와 다른분들 댓글을 읽어보니 3년쯤 후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10-13 23:25   좋아요 2 | URL
^^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
이유도 알 것 같은..!😁

희선 2021-10-14 0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뭔가를 처음부터 잘 알면 좋을 텐데, 그게 그렇지 않지요 책을 본다 해도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건 나중에 봐야 그렇구나 하는 것도 있잖아요 그런 게 있었나 싶기는 하지만... 저는 책을 보다 별로면 다음엔 그 작가 책을 안 보기도 하는군요 다른 건 괜찮을지도 모르는데... 책과 사람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1-10-14 07:16   좋아요 2 | URL
책은 읽다가 중단해도 되지만, 삶에서 시간은 계속 앞으로만 가니, 모든 것이 처음이고 불완전하지만 성장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