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9
넬라 라슨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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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블랙웰스 섬을 지날 때, 백인 기사가 모는 리무진이 우리 곁을 지나갔다. 차 안에는 세련된 흑인 셋, 즉 흑인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거만하게,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우리를 향해 달걀노른자 같은 눈동자를 굴렸고, 나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 위대한 개츠비피츠제랄드

 

1925년, 피츠제랄드의 소설에 표현된 이미지즘이다.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뉴욕의 풍경을 바라보는 한 백인의 감상이다. 탁월한 유미주의로 읽혀지지만 리무진에 탄 그들 흑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보고 있는 동일자의 사유가 보인다. 패싱1929년에 쓰여진 것이니 동시대의 작품이다.

 

패싱은 주로 어떤 구성원을 특정한 범주로 생각하거나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유색인종의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혈통을 감추고 백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소설 중 브라이언이 말하듯 흑인사회의 사람들은 패싱을 비난하면서도 용납하고, 경멸하면서도 부러워하고, 극도로 멀리하면서도 눈감아준다.

 

아이린의 피부색은 어둡지 않다.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시카고 드레이튼호텔 스카이 라운지에서 차를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에 분노와 경멸,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에서 아직 흑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장소가 있던 시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이 흑인인 것이나, 심지어 그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어떤 장소에서 쫓겨난다는 생각이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그것이 드레이튼 측에서 취하리라 예상되는, 제아무리 정중하고 세련된 방식이라 할지라도 그랬다.”(23p)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시선의 주인공은 오래전 뉴욕 할렘에서 함께 자란 클레어다. 잠시 백인 행세를 하던 아이린은 백인사회의 일원이 된 하얀 피부의 클레어를 만난다. 그녀는 자신의 인종을 감추고 백인과 결혼해서 화려한 삶을 살고 있다. 2년 후 클레어는 아이린을 찾아온다. 남편의 눈을 피해 뉴욕에서 파티에 참석하고 그들과 교제한다.

 

아이린의 눈에 어렸을 적 클레어는 모질고, 감정이 전혀 없어 보였다.”(15p) 그녀는 항상 위험의 극단에 서있다. 타인의 감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천성적으로 배려심이 부족한 사람이다. 아이린은 클레어와 연관되면 자신은 목적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느낀다.”(71p) 클레어의 아름다운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은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아이린으로서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63p) 아이린은 클레어가 불편하고 피하고 싶으나 그녀를 만나면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그런 자신이 싫다. 그렇게 클레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아이린은 클레어 켄트리에 대해 의구심과 죄책감을 갖게 되고 그것들은 커져간다. 클레어를 초대한 댄스 파티는 아이린의 삶에 흔적을 남기게 될 중요한 시점이 된다. 클레어는 아이린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고 아이린 부부의 가라앉아 있던 불안한 요소들을 떠오르게 한다. 클레어가 자신의 삶으로 퇴장할 때 마다 브라이언은 불행과 불안에 휩싸이고, 자기 안으로 깊숙이 틀어박히고, 아이린은 그의 상태에 대해 무력감을 경험한다. 집에서 열리는 티파티에서 클레어를 바라보는 브라이언의 복잡한 시선을 깨닫고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 아이린은 클레어의 남편이 아내가 흑인임을 알게 되거나, 클레어가 병에 걸려 죽는 상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는 조용히 부르짖었다. 인종 때문에 겪는 고통이 아니더라도 여자로서, 한 개인으로서, 스스로의 일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고통을 겪고 있지 않느냐고, 너무도 비인간적이고 부당했다.”(133p)

 

아이린의 존재 안에는 이미 여러 개의 경계가 새겨져 있다. 클레어의 내면에 침투한 동일자는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고 가장하게 한다. 아이린의 경우 배제를 겪고 있다. 인종과 성과 관련된 권력으로부터. 경계의 철학자 푸코에 의하면 동일자가 타자를 배제하고 추방하는 지식 권력은 신체에 새겨지는 생체권력(bio-pouvoir)으로 작용한다. 클레어와 아이린 모두 양상은 다르지만 그 권력의 지배를 받고 있다.

 

브라이언과의 갈등을 오래된 것으로 여기려는 아이린의 생각은 무력감만 더한다. 할렘가의 흑인사회와 미국의 인종주의에 환멸을 느낀 브라이언은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고 싶어 했으나 아이린은 뉴욕에서의 삶을 지키고 싶어 했다.

 

그녀는 남편의 상실을 메꿔주기 위한 그녀의 모든 노력, 모든 수고로움, 그녀의 방법이 최선임을 증명하기 위한 그 모든 조용한 노력들, 그를 위한 모든 헌신, 드러나게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덧없어진단 말인가?”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아이들 남편에게 닥칠 일들을 떠올리며 불안해한다. 그 불안은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경계와 배제와 관련된 존재의 불안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노력이 덧없게 느껴지고 실제로 덧없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서운 상상이 현실로 나타날 때, 그것이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상상일 때, 그 상상의 주체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 추락한 클레어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 아이린은 안타깝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클레어의 팔에 손을 댄 장면 이후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에, 그녀의 혼란스러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순간을 모호함으로 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클레어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린의 불안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클레어의 죽음은 아이린의 상상 속에서 이미 여러 번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린은 클레어의 죽음에 안도한다. 클레어는 아이린이 지키려는 가정, 남편, 아이들을 무너뜨리는 존재였으니까. 아이린이 감사의 흐느낌이 밀고 올라오는 걸 막으려 했다”(156p)는 극단적 감정 상태는 추방당하고 감금된 타자의 몸부림이라는 생각이다.

 

하얀 흑인, 그것은 배제와 억압 속에서 타자들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동일자의 가치척도를 내면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일자는 이처럼 자신이 핍박한 타자들의 피부, 타자들의 내면에까지 침투한다.”

(342p 철학자와 굴뚝청소부,2003년판, 이진경)

 

우리에게 경계가 많아질 때 그것은 언젠가 나를 배제하는 권력으로 작용한다. 이미 우리는 많은 경계를 경험하며 살고 있다. 그 경계들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타자로 배제되는 경험을 한다. 혹시 배제된 경계 안으로 잠시 외로운 패싱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경계가 사라지게 되면 패싱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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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9 00: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감사의 흐느낌,,,,
다인종 다문화 시대에도 경계를 구분짓는
피부색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인 것 같습니다.

갯츠비 올려주신 문장 영화 속에서 스치듯 별 생각 없이 봤는데 패싱 작품과 영상을 보고 나니 달리 보이네요 ^ㅅ^

그레이스 2021-12-29 07:05   좋아요 6 | URL
다인종 다문화 시대인데 그 경계는 더 높아지는 듯 해요
저는 이 시대 뉴욕하면 개츠비와 바틀비의 월스트리트가 생각나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1-12-29 02: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경계가 사라질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차별하거나 다르게 보면 안 된다 생각하면서도 사람은 그런 걸 쉽게 하기도 하네요 자신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보이고 싶어하기도 하는군요 있는 그대로가 가장 좋다고 하지만...


희선

그레이스 2021-12-29 07:12   좋아요 5 | URL
또다른 경계가 생기겠죠
그 시대 사회를 장악하는 지식권력에 따라 경계는 생길테죠. 따라서 경계 허물기 담론은 끊임없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희선님 항상 감사합니다.

mini74 2021-12-29 08:01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읽으며 예전 남과 북이란 미드에서 흑인과 백인사이에서 태어났지만, 하얀피부로 백인으로 자란 여주인공이 생각났어요 진짜 엄마는 유모로, 혹여 밝혀질까 두려워하던. 하얀 흑인 이란 말이 참 슬프네요. 경계허물기가 끊임없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그래이스님 글에 공감합니다 ~~

그레이스 2021-12-29 14:40   좋아요 7 | URL
저는 왜 이렇게 대댓글 달때 실수를 할까요?
아차 하고 다시 수정하려고 하니 이미 좋아요 누르심. ㅎㅎ

scott 2021-12-29 11:27   좋아요 3 | URL
저도! 눌렀습니다 좋아요! 🖐

미니님 그 드라마 혹쉬!
리처드 아미티지가 나왔던 북과 남!??


그레이스 2021-12-29 08:4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드라마 봤어요
그때만해도 굉장히 놀랍게 보였는데.
자꾸 읽고 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죠?
경계허물기는 예술부터 ^^
공감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12-29 08:5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경계가 사라지는 날이 오겠죠? 미국사회 뿐만아니라 우리나라도 이런 경계가 많은것 같아요. 사람대 사람으로만 서로를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레이스 2021-12-29 09:12   좋아요 6 | URL
새파랑님 글 보니 경계를 걷어낸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서니데이 2021-12-30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회마다 서로 다른 차별과 차이가 있겠지요. 그게 좋지 않은 것들이어도 달라지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레이스님, 날씨가 다시 차가워졌습니다.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2-30 23:27   좋아요 2 | URL
예!~오랜시간 걸려왔고, 걸리겠죠
이제 2021년도 하루 남았네요
Happy new year! 서니데이님~!

Breeze 2021-12-31 09: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경계도 많죠.
그 경계가 사라지는 날이 올까요? 의문이긴 합니다.
그레이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그레이스 2021-12-31 09:43   좋아요 1 | URL
예~
브리즈님~
하나가 사라지면 또 하나가 생겨나고 하겠죠.
Happy New Year!
브리즈님

페크pek0501 2022-01-02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 중 브라이언이 말하듯 흑인사회의 사람들은 ‘패싱’을 비난하면서도 용납하고, 경멸하면서도 부러워하고, 극도로 멀리하면서도 눈감아준다.˝ - 인간의 이중성이 느껴지네요.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라는 소설에서도 이런 게 많이 포착됩니다. 본래의 인간과 보여지는 인간의 차이를 느끼게 되면서 저 자신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

그레이스 2022-01-02 21:32   좋아요 2 | URL
케이크와 맥주 얼른 봐야겠어요;;
사놓고 아직 못 읽었거든요^^

독서괭 2022-01-09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엇 저도 이 책 읽고 개츠비가 생각나서 리뷰에 써야지 생각만 하고 못 쓰고 있었는데! 이제야 이 리뷰를 봤네요. <패싱> 참 인상적인 소설이었습니다.

그레이스 2022-01-09 23:15   좋아요 1 | URL
같은 생각이셨다니 반갑네요
예~ 제게도 오래 기억될 작품인듯요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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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우골리노와 아들들>의 조각상, 이 소설을 장악하고 있는 이미지다. 왜 주인공 루시는 이 조각상에 마음이 붙들려 있었던 것일까? 처음 이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녀는 , 하고 속으로 외쳤다.”(103p) 13세기 이탈리아, 권력싸움 끝에 아들들과 함께 탑에 갇힌 우골리노와 아들들은 굶어 죽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아들들이 자신들을 먹어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다.(이 이야기는 각색된 것으로 그의 시체에서는 육식의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루시는 그 조각을 보기 위해 몇 번이나 그 미술관을 일부러 찾아갔다.

<Ugolino and His Sons>, Jean-Baptiste Carpeaux(French, 1872-1875), 대리석, 1865-1867


두 번째 이미지는 병실 창밖 밤이면 환한 불빛이 기하학적으로 밝혀지는 크라이슬러 빌딩의 풍경”(9p)이다. 병실을 찾아온 어머니와 4일 동안 병실에서 기억의 아픈 파편들과 대비를 이룬다. 가난한 유년 시절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화려한 세상, 자신에게 꽂히던 사람들의 무심하고 차가운 시선을 상징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지독한 가난, “너희 식구들한테서는 냄새가 나”(18p)하고 달아나던 아이들, 배고픔, 방임과 체벌, 유기와 폭력의 기억들과 겉도는 대화의 대조는 아직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따금 예고 없이, 부모님이 충동적으로 사정없이 우리를 때리기도 했는데때리는 사람은 대체로 엄마였고, 대체로 아빠가 보는 데서였다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푸르죽죽한 피부와 침울한 태도를 보고 그 사실을 눈치 챈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19p)

 

고립되고 지적 성장에 있어 자극과 도움을 받지 못했던 그녀는 예절, 말의 뉘앙스, 눈초리의 의미들에 대해 스스로 터득해 갈 뿐이었다. 그녀는 그런 일에 무지했었다. 시간이 흐른 뒤 길을 걷다 떠오른 기억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음과 자신의 유년이 얼마나 어두웠는가를 깨닫는 순간의 묘사는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답다. 역설적이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바람에 휘는 나무 우듬지를 볼 때, 또는 이스트 강 위로 나지막이 걸린 11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이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으로 가득 차는 순간들이예기치 않게찾아오기도 한다. 그 앎이 너무 깊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고, 그러면 나는 가장 가까운 옷가게로 들어가 낯선 사람과 새로 들어온 스웨터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21p)

 

사람들도 이런 기억의 방문을 받으면서 통과해나가겠지만 그들은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자신은 타인을 잘 알지 못하고, 삶은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는 그녀의 생각이 슬프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지 조차 알지 못했던 소녀가 유년의 루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의 고통스런 기억으로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도 가둬두었다. 그녀가 갇혀 있곤 했던 트럭에서의 기억은 모호하고 희미하지만 존재의 그림자로 남아있어 순간순간 두려움으로 튀어 나온다. 그녀의 기억 속의 집은 갇힘, 돌아가면 다시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운 장소였다.

 

추수감사절이라 집에 돌아온 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학생활이 꿈일까봐 두려웠고, 눈을 뜨면 다시 이 집에서 영원히 머물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안 돼. 그 생각을 한참 하다 나는 겨우 잠이 들었다.”(35p)

 

외로움은 루시가 맛본 인생의 첫 인상이었고, 그것은 숨어 있다가 존재를 일깨워주곤 했다. 그런 그녀는 나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98p)라고 한 블랑시 뒤부아의 대사를 기억한다. 그 대사처럼 그녀는 사람들의 친절에 위로를 받고 눈물을 흘린다. 헤일리 선생님, 제러미, 몰라, 세라 페인, 그리고 매일 병실을 찾아오는 친절한 의사.

 

우연히 만났던 소설가 세라 페인의 워크숍에서 참여하고, 세라페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루시를 격려한다. 그것은 학대이야기가 아니라 사랑 이야기이고 전쟁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평생을 하루도 빠짐없이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124p)라고 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흔들리지 말고 쓰라고 한다. 그러나 세라 페인의 글 역시 뭔가를 피해 빗겨 서있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기 어렵다. 작가 엘리베스 스트라우스 자신의 고백이기도 하다.

 

작가가 되려면 냉혹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야,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곳일리노이 주 앰개시에는 가지 않을 거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켜잡고 인생을 헤치며 앞으로,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거야!”(204p)바로 이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냉혹함이다.

 

<우골리노와 아들들> 조각을 바라보던 그녀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도 알고 있겠구나하고 그 조각가 말이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103p) 라고. 무엇을 알고 있었다는 것일까?

 

딸에게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 과거에 딸에게 했던 잘못을 입에 올리지 조차 못하는 엄마는 지인들의 실패한 결혼과 불행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겉도는 이야기 속에서 엄마의 진심은 무엇일까? 엄마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간 딸에게 제발 가달라는 애원을 하는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조각가가 알고 있었던 것은 그것일까?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며, 입을 찢고 있는 우골리노의 고통을! 조각을 바라보는 은밀한 순간 그녀가 조각상에서 얻은 사실은 우린 모두 불쌍한 인간”(104p)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상처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상투적일까? 하지만 누구나 상처를 갖고 있다. 치유 되었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족으로부터 전혀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했던 그녀가 의지한 것은 오히려 낯선 사람들의 친절이었다. 루시의 치유는 자신을 바라보는 냉혹한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신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냉정함이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이제 병실 창밖의 크라이슬러 빌딩의 불빛처럼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당당할 수 있다.

자신을 가두었던 기억들로부터 자유를 얻은 사람은 고백한다.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2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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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28 00: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루시의 마음이 느껴져서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배움의 발견이란 책 속 주인공과 닮았단 생각도 했었지요. 문장들 다 좋지만 특히 마지막 두 문장 넘 와닿습니다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1-12-28 00:31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저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문장들이 아름다워서 더 슬프구요ㅠ

scott 2021-12-28 00: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 상처 받은 인간 ㅠ.ㅠ
루시 바턴 작가님의 자전적 스토리!
그레이스님 리뷰는 언제나 내게 감동을 ^ㅅ^

그레이스 2021-12-28 00:46   좋아요 4 | URL
자려고 하다가 댓글 달아요.^^
감사해요 ~~♡

새파랑 2021-12-28 06: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자전적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상처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는 정도는 다 다를 것 같아요.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너무 공감가고 멋진 말이네요~!!

그레이스 2021-12-28 06:57   좋아요 5 | URL

새로운 풍경 속에 있는 그녀의 말에 감동했습니다.
작가는 루시 바턴이기도 하고 세라 페인이기도 한듯요.

다락방 2021-12-28 09: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루시 바턴을 두 번 읽었거든요. 그런데 그레이스 님의 이 리뷰를 보니 완전히 새로운 루시 바턴을 읽은 느낌이에요. 이 리뷰를 읽은 후에 읽는 루시 바턴은 또 새로울 것 같아 다시 루시 바턴을 보고 싶네요. 그러고보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야말로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독한 가난에 대해서 썼지만 그것에 대한 작가 개인적 감정이나 관심은 떨어뜨려 둔 것 같아서요. 아 또 읽고 싶네요, 정말.

그레이스 2021-12-28 10:10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읽으신 감상을 보고 싶어요
서재에서 찾을 수 있겠죠?
제가 워낙 늦게 읽어서...^
감사합니다 🍊

공쟝쟝 2021-12-31 15:30   좋아요 2 | URL
저도... 동감해요... 제게는 올해의 발견이었던 <루시바턴>
루시바턴에 나오는 이미지들을 이렇게 그레이스님의 소개로 읽으니까, 정말... 감동이네요... ㅜㅜ 그리고 진짜.... 아...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까 싶고, 이렇게 멋지게 독해해내는 이웃이 있어 좋고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2-31 16:28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의 말씀이 더 감사합니다.
몇시간 남지 않은 2021년 책읽기로 마무리하시겠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레이스 2021-12-28 11: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금 보니 오타와 비문 작렬!
수정하면서, 역시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
이런 글을 읽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感謝萬萬입니다. ;;

희선 2021-12-29 0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상처없는 사람은 없겠지요 어릴 때부터 사랑 많이 받은 사람도 있겠지만, 살면서 다른 사람한테 상처받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걸 마주하면 모든 삶이 감동을 주는군요 그런 걸 느낀다면 좋을 텐데...


희선

그레이스 2021-12-29 19:56   좋아요 3 | URL
직면하는게 쉽지 않으니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겠죠. 저도 쉽지 않은것 같아요. 글을 쓸때 저 자신을 보면.

scott 2022-01-07 17: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추카!!
탑에 갖힌 우골리노가 용돈을 줌요 ^ㅅ^

그레이스 2022-01-07 18:55   좋아요 3 | URL
굶주린 그에게서?^^ㅋㅋ
감사드려요~

mini74 2022-01-07 17: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래이스님 축하축하 ~ 무슨 책 사실지 궁금해요 ㅎㅎ

그레이스 2022-01-07 18:56   좋아요 4 | URL
살 책이야 많죠!
고민해야할듯요 ㅋ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1-07 17: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그레이스님 글은 뭔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

그레이스 2022-01-07 18:54   좋아요 4 | URL
감사해요~^^

청아 2022-01-07 18: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바구니 담았어요~!!당선 축하드려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2-01-07 19:02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물감 2022-01-07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해요 ㅎㅎ
기회되면 이 책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당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2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1-07 2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전 지금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기 시작했어요.읽고 나면 이 책도 읽어 보려구요^^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2 | URL
예~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2-01-07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thkang1001 2022-01-07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22-01-07 21: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이제 리뷰 쓰기 활활 불타실듯요^^

그레이스 2022-01-07 21:4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러블리땡 2022-01-08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좋은 밤 되세요 ~

그레이스 2022-01-08 09:16   좋아요 2 | URL
감솨합니다
좋은밤이었습니다^^
북플도 못 들여다보고 잤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페넬로페 2022-01-08 00: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같은 책 2권의 투혼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1-08 09:1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연말연초에 넘 바빴는데 리뷰 상금주시니 감사하고 ㅎㅎ
책 사들이고 더 바쁠듯요 ㅋㅋ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1-08 09:18   좋아요 3 | URL
아아!
같은책?!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한 권은선물해서 리뷰상금 받았나봐요.~♡

희선 2022-01-08 01: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어쩐지 살면서 자신과도 화해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레이스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2-01-08 09:38   좋아요 2 | URL
끝이없죠 ㅠ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잘못하니까...!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2-01-08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2022년 쭉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2-01-08 22: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 알라딘 서재 글쓴지 1년 됐으니(1년적 쓴 글들 알라딘에서 알려주는데 못읽겠더라구요^^)
새내기는 벗었죠ㅋㅋ
감사합니다~
북홀릭님 2022년도에도 함께 쭉 이어가요~♡

독서괭 2022-01-09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1-09 23:15   좋아요 0 | URL
감사드려요 ~♡

하나의책장 2022-01-10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1-10 05: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연민은 그의 윤리적 어젠다 맨 앞줄을 차지한다.”고 석영중 교수는 말한다. (매핑도스토예프스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연민(compassion)이란 주제로 통합된다. 1846년 벨린스키와 결별 후 페테르부르크의 급진적인 젊은 지식인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던 시기, 1848년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젊은 시절에 쓰여진 이 작품들에서 연민은 노골적이고 불안정한 방식과 흥분된 감정으로 전달되고 있다. 시베리아 유형(流刑) 시절을 지난 후, 그 주제(主題)는 가라앉아서 작품 저변을 묵직하게 흐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자라고 청소년기 이후 줄곧 페테르부르크에 살았던 도시의 작가이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투르게네프와 톨스토이, 막심 고리키와 같은 체취를 느낄 수 없다고 E.H.카는 말한다. 그의 공간감(空間感)’은 그들과 다르다.

닫혀진 방 안에서는 생각조차 닫혀진 것이 된다고 그의 작품 속의 한 인물이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은 그의 많은 소설의 모토로 쓰여 진다. 톨스토이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지배적인 인상은 공간감(空間感)이라고 최근의 한 비평가는 말한 바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효과는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닫혀진 느낌을 주는 데 있다. 자연의 넓은 시야에 결코 눈을 두지 않는 그의 관찰력은 무한한 인간의 기상에로 더욱 응축되어 간다.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에게는 일종의 사색적 거리감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생활에서도 작품에서도 대도시의 협소한 구속적인 긴장의 희생자였던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이러한 거리감이 전혀 없다.”

(14p, 도스토예프스키 평전E.H.카)

 

한편, 석영중 교수는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흐르지 않는 시간과 막힌 공간은 정체된 인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돈, 죽음 같은 삶에 대한 환유라고 말한다. 유년기 아버지가 의사로 재직한 모스크바 빈민병원 인근에 거주하며 목격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과 17세에 페테르부르크에서 홀로 살게 된 경험들이 미친 영향으로 본다. 그의 작품 죄와 벌에서 수없이 배회하는 페테르부르크의 거리가 주는 숨 막히는 폐쇄성을 떠올리게 된다.

 

약한 마음에서 사랑에 빠진 바샤 슘코프와 그의 절친 아르까지 이바노비치, 이 젊은이들의 불안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극한 행복감을 느낄수록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바샤와 그가 떠난 후 삶의 허무를 느끼는 아르까지가 살고 있는 페테르부르크는 철권 황제 표트르가 조국 러시아를 선진 문명 수준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건설한 도시다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매력이과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지어진 거대한 바로크·로코코·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 유유히 흐르는 운하에 반사되는 다리와 가로들, 거기에 발트해에서 몰려오는 짙은 안개와 눈보라, 여름이면 며칠씩 계속되는 백야까지 더해지면 환상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53p 매핑 도스토예프키석영중)

그러나 석영중 교수가 말하듯, 환상적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때에는 곧 최대의 약점이 된다.

 

강 양쪽 기슭의 모든 지붕들로부터 연기의 기둥이 교차하기도 흩어지기도 하면서, 마치 거인들처럼 차가운 하늘을 따라 위로 올라갔는데, 이 모습은 옛 건물 위로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는 것처럼, 허공 위에 새로운 도시가 세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강한 자든 약한 자든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움막이든 이 세계 강자들의 기쁨인 금으로 장식한 궁전이든 그들의 모든 집들과 함께, 이 황혼녘 이 세계 전체가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 꿈의 세계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 꿈의 세계는 곧 사라지고 연기가 되어 어두운 푸른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기괴한 생각이 가엾은 바샤의 혼자 된 친구에게 찾아 들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심장은 마치 이 순간 그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어떤 강력한 느낌으로 인해 갑자기 끓어오른 뜨거운 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는 이제야 이 모든 불안감을 이해하고, 자신의 행복을 견뎌 내지 못한 가엾은 바샤가 왜 정신이 나갔는지 알 것 같았다.”

(144~145p 약한 마음」)

 

오늘날 마천루가 세워지는 거대도시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불안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혼까지도 끌어들여서부동산 투자를 하고 전전긍긍하는 세태 속에서 이상주의자들은 길을 잃게 마련이다. 결이 다르지만 양쪽 모두 불면의 밤을 지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지구상에서 가장 추상적인 도시에서 젊은 몽상가들은 불안과 분열된 감정을 안고 길을 잃는다. 백야가 찾아오고 사람들이 동시에 여행을 떠난 후, 텅 빈 도시에서 몽상가의 불안은 더욱 극대화된다.

 

불안감이 꼬박 사흘 동안 나를 괴롭혔고 나는 그동안 줄곧 그 불안감의 원인을 알아내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집밖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이 사람도 없고, 저 사람도 없고, 또 그 사람은 어디로 가버렸나?) 집 안에서도 도무지 좌불안석이었다. 이틀 밤을 나는 고민했다. 대체 나의 작은 공간에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가? 어째서 이 공간에 남아 있는 것이 이다지도 거북한가?…… 바로 그거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 별장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인 것 같았고 실제로 나는 이방인이었다!”

(228~230p 「백야」)

 

이런 주인공이 거리에서 나스젠까와 같은 슬픈 여인을 만난다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낭만주의가 그렇듯, 네 번째 백야의 밤 그의 사랑은 보상받지 못하고 아프게 끝이 난다. “나의 밤들은 끝나고 아침이 되었다는 주인공의 독백은 환상이 끝나고 차가운 현실 속으로 돌아와 있는 젊은이에 대한 연민을 일으킨다. 그리고 , 천만에, 천만에!”로 시작되는 절규는 이상주의자의 운명과 같은 아픔을 전한다.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는 여인의 행복을 빌어야 하는 것은 몽상가가 짊어져야할 불행이다.

 

, 천만에,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 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310p「백야)

 

지극히 낭만주의적이지만 이런 마음이 흔하지 않은 요즈음 마음 한편을 흔드는 아픔을 느꼈다.

 

꼬마영웅에서 보여주는 11세 소년의 감수성과 유년시절 사랑의 감정은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유년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말하는 그 소년의 눈물, 크리스마스트리와 결혼식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16세의 신부, 정직한 도둑에서 아스따피 이바니치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에멜랴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거칠지만 솔직하게 전달하는 연민을 읽는다.

 

연민은 가장 중요한, 어쩌면 유일한 인간 실존의 법칙이다

연민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전부다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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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6 17: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룰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연민인거 같아요. 글이 참 좋아요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1-12-16 18:03   좋아요 5 | URL
항상 공감해주시고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

새파랑 2021-12-16 18: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애장하는 <백야>네요~!! 도선생님은 정신분석도 잘하시지만 이런 연민의 글도 너무 잘쓰셨더라구요 ㅜㅜ
소세키에 이어 도선생님 전작 하시는군요 ^^

그레이스 2021-12-16 19:01   좋아요 4 | URL
이미 읽었던 작품이 있어서 전작 리뷰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1-12-16 19: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젠 도스토옙프스키!!!!^^
묵직합니다.
연민.....
읽어봐야할 작가인데 말이죠^^

그레이스 2021-12-16 19:23   좋아요 4 | URL
언제 읽어도 좋은 작가입니다
많은 작가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운...
위대하면서도 연민을 자아내는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러블리땡 2021-12-17 0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1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 내년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그레이스 2021-12-17 07:5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러블리땡님도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건강하세요
내년에는 더 행복하시길...!

희선 2021-12-17 02: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옙스키 하면 도박으로 돈을 다 날려서 글을 썼다 생각하기도 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군요 그때 사람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글을 썼네요 오래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이 보는군요 저는 아직 못 봤지만...

그레이스 님 서재 달인 축하합니다 오늘부터 춥다고 하니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1-12-17 07:57   좋아요 3 | URL
희선님 감사합니다~
예술가들의 양면성이겠죠? ^^

고양이라디오 2021-12-17 1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민‘ 도스토옙스키를 잘 표현하는 단어네요! 도선생님 전작 읽고 싶었는데, <백야> 꼭 읽어볼께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2-17 10:53   좋아요 2 | URL
😀
초기작을 읽는 즐거움이 있어요~~!

파이버 2021-12-17 11: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단 한 작품도 읽지 못했는데, <백야>가 궁금해지네요 책의 분위기가 요즘 날씨와 어울려 보입니다.

그레이스 2021-12-17 11:30   좋아요 3 | URL
감사드려요~
백야 함 경험해보고 싶은데 🤔 언제쯤 가능할까요?!

thkang1001 2021-12-17 14: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021년 서재의 달인!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22년에도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이 잘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레이스 2021-12-17 15:0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구단씨 2021-12-17 14: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끼 작가님의 책이 너무 어려워서요. 가지고 있지만 완독을 못했어요.
어제 겨우 일러스트로 재탄생한 죄와 벌을 읽었답니다.
근데 작품들 다 궁금하긴 해요. ^^

그레이스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12-17 15:01   좋아요 2 | URL
일러스트 리뷰 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모나리자 2021-12-17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1-12-17 17:4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21-12-17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죄와 벌>을 두 번째 읽을 때야 비로소 소설의 여기저기에서 ‘1아르신의 공간‘이 언급되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무덥고 질식할 것만 같은 여름 날씨가 시베리아와 대비되는 기후 같이 느껴졌구요.
사람에 대한 ‘연민‘에 주목하신 부분이 특히 공감이 됩니다. 문학전문가가 쓴 책들에는 <죄와 벌>이 공리주의니 무신론/유물론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저는 정작 ‘외로운 인간들의 모습‘이 줄곧 보였던 것 같았거든요. 제가 아직 소설을 읽는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그레이스님의 글이 반갑구만요^^

‘사람에게는 공기, 공기가 필요하단 말이지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1-12-17 22:28   좋아요 1 | URL
저도 반갑습니다 ^^
죄와 벌에 대한 감상 공감합니다.

han22598 2021-12-18 0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민.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전부다˝
아........연민 요즘 제 마음에 그 마음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요. 아 ㅠㅠ (그레이스가 필요한 것 같아요..22)

도끼옹 책....이제는 정말 읽어야 할지도요. ㅎㅎ그레이스도 서재의 달인!! 달인들의 축제의 날이네요 ㅋㅋ

그레이스 2021-12-18 08:52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연민,,,^^
함께 읽어요~~

페크pek0501 2021-12-19 14: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석영중 교수의 문학 강의를 유튜브로 듣곤 해요. 도스토에 대한 강의도요.
신문에도 기고하는데 멋진 분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1-12-19 14:06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한번 들어봐야겠어요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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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끌어안고 가야 할 나쁜 기억 한두 개쯤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니.”(206p) 괴로워하는 신디 쿰스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기도 올리브의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잭과 결혼한 조금 더 나이든 올리브는 여전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잘 알아본다. 그들을 찾아가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지나치며 너 캘러헌 씨 딸이더구나.…… 좋은 분이었는데 돌아가셔서 유감이구나.”(84p)라고 하는 짧은 말로 케일리에게 따뜻한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따금 자신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올리브는 전 남편 헨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괴롭다고 한다. 누구나 뒤를 돌아보면 다 후회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녀는 전보다 더 말이 많아지고 자기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신디처럼 항암치료를 하며 회복될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과 외로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을 찾아가서 어떤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나도 죽는 게 죽을 만큼 무서워. 그건 사실이야.”(206p) 올리브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녀가 공감하고 위로하는 방법이다. 몸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기고,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본 노년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알겠지만, 신디.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 …… 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207p)

 

올리브 키터리지는 큰 몸집으로 나타나 잊지 못할 위로를 남긴다. 삶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면서 그녀는 타인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채워간다. 어릴 때는 보지 못했던 2월과 3월 그리고 여름과 가을의 햇볕의 차이를 아는 것이 바로 인생의 황혼이라는 생각이다.

 

한낮의 빛이 끝을 향하면서 입 벌린 모습을 한 태양이 연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황홀한 노란색을 쏟아냈고, 그 빛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내리비쳤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말했다. “어쩜, 나는 늘 2월의 햇빛을 사랑했어.” 올리브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쩜.” 그녀는 경외감이 깃든 목소리로 한 번 더 말했다. “2월의 저 햇빛 좀 봐.”

(224p)

 

신디와의 대화, 그리고 신디가 잊지 못할 이 광경, 올리브가 자신이 2월의 햇빛을 사랑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외침은 소설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느꼈다.

 

잭과의 결혼이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가는 것”(212p) 이라고 말한 것처럼, 잭의 죽음과 홀로됨, 심장마비, 실버타운 메이플트리 입주도 인생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계절이 바뀌고 그때마다 빛이 달라지듯 삶이 변화해가는 것이다. 여전히 올리브는 사람들의 눈에 띄고, 탐조등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찾아낸다. 점점 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을 탐사하듯 대화를 이끌어간다. 사람들은 그 대화 속에서 외로움 불안 상처를 드러내고, 위로를 받고,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는다.

 

그녀 스스로도 잭에게서 신디에게서 이저벨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잭은 올리브에게 당신 기분 좋게 만드는 건 참 쉽구나”(244p) 라고 말한다. 그렇게 쉽게 기분 좋게 해줄 수 있는 반면 우리는 그 방법을 모를 때가 많다. 올리브가 스스로에게 고백한 것처럼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459p)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459p)고 생각한다. 늦은 건 늦은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누구나 나쁜 기억 한 두 개쯤은 끌어안고 살아가니까. 헨리를 보내고 잭과 결혼한 후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말을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 때 올리브가 가장 올리브다울 때다. 작은 친절에도 기분 좋을 수 있다. 사람들은 오래전 올리브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져가고 노화를 겪으며 죽음에 가까이 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서툰 일이다. 거듭되는 상실 역시 반복된다고 해서 적응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일지도 모르겠다. 홀로 있기를 좋아하고 누구의 간섭도 싫어했던 올리브가 수다스러워지는 순간을 보며 나이 들며 가장 두려운 것은 혹시 외로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뒤를 돌아보며 헨리를 외롭게 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기분 좋게 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이 그녀가 끓어안고 가야할 나쁜 기억일 테다.

 

나의 노년은 몇 월의 햇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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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5 18: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은 가을 9월의 빛^^

그레이스 2021-12-05 18:54   좋아요 5 | URL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새파랑 2021-12-05 19: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처럼 열정적인 분에게는 항상 햇빛이 가득한 5월일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1-12-05 19:34   좋아요 5 | URL
열정적으로 봐주시니 😊 감사

얄라알라 2021-12-05 19: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축언을 받고싶습니다!!!! 열정과 5월 너무 잘 어울립니다!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1-12-05 19:36   좋아요 3 | URL
ㅎㅎ
감사합니다.

Falstaff 2021-12-05 2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썼다 지웠다, 썼다가 다시 지웠다가, 또 썼다가 또다시 지우면서
아, 난 아직 이 작품에 대해서 토를 달 정도는 아니야, 파바박, 알아차립니다. ^^;;;

그레이스 2021-12-05 20:26   좋아요 3 | URL
댓글을 썼다 지웠다 하신 이유가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얼른 폴스타프님 서재로 가서 다시 리뷰 읽고 왔습니다^^

그레이스 2021-12-06 07:13   좋아요 1 | URL
아직 노년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라는 뜻이겠죠??^^

Falstaff 2021-12-06 08:58   좋아요 1 | URL
니옙. 그렇습니까. 아직은 뭐. ㅋㅋㅋㅋ

다락방 2021-12-05 20: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두 번 읽었는데 처음엔 2월의 햇빛을 그냥 넘겼거든요. 재독에서야 비로소 2월의 햇빛이 훅 들어왔고 여전히 다시 올리브, 는 2월의 햇빛으로 기억돼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지점이 많지만 2월의 햇빛으로 마무리 짓는 그 단편에서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그레이스 2021-12-05 21:08   좋아요 3 | URL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mini74 2021-12-05 2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 강아지가 거실에 누워 자는 걸 좋아하는데 시간에 따라 조금씩 장소가 바뀌어요. 햇빛 찾아가는 중인거죠 ㅎㅎㅎ 그레이스님의 노년, 몇 월일진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 따땃하길 바라봅니다 ㅎㅎㅎ

그레이스 2021-12-05 22:11   좋아요 3 | URL
강아지^^

scott 2021-12-07 21:00   좋아요 2 | URL
햇살이 몸에 좋은 거 아는 똘망이!
૮ ฅ•ᴥ•აฅ

페크pek0501 2021-12-06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 를 좋아합니다. 이 책도 구매하려 했는데 놓쳤어요. ^^

그레이스 2021-12-06 16:38   좋아요 3 | URL
올리브 키터리지 좋아하시면 이 책도 좋아하실거예요^^

희선 2021-12-09 0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는 나이 들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고 달라졌네요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있기 좋아했다고 하니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았겠습니다 올리브뿐 아니라 올리브를 만난 사람도 전보다 나아졌을 듯합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12-09 06:30   좋아요 2 | URL
예~
희선님 ~♡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의책장 2021-12-14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즉 읽었지만, 그레이스님 서평 보고나니 더더욱 따스한 느낌이 들어요^^

그레이스 2021-12-14 20: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소세키의 작품을 읽어가면서 병행했던 책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세 번에 걸쳐 소세키의 시론을 썼고, 그의 주요 작품에 대한 해설도 한다. 당시 일본문학의 동향과 소세키의 삶,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심리, 철학, 알레고리 등을 설명하고 있다. 비평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지적으로는 이해하고 도움을 받지만 공감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도 같은 순간을 경험했다. 결국 감상은 나의 것이다. 저명한 학자의 비평에 사용된 방대한 지식과 깊이에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소세키의 작품에 나타난 의식과 자연을 다루며 시론을 시작한다.

작품의 주제가 이중으로 분열되어있고 심한 경우에는 서로 아무런 관계없이 별개로 진행되어 있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온 주인공들의 분열적인 모습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의 소스케나 그후의 다이스케가 그렇다. 우미인초이후 그의 장편소설에 철학이 자리 잡는다. “인간의 자연이란 사회의 법도에 등지고 서는 것, 그러나 인간은 그런 자연을 억압하고 무시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것에 의해 스스로를 황폐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2p) 이 때의 자연nature 즉 본성으로 해석된다.

소세키는 인간의 관계를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먼저 감각하고 있다.”(15p)

태풍의 시라이 도야와 달리 도련님의 주인공은 심각한 지식인이 아니다. 그의 소박한 정의감에는 자의식이 없다. 그러나 시라이에게는 자기를 절대화하려는 추악한 자의식이 에 들러붙어 있다. 후반부의 소설에서 존재와 의식 사이의 괴리는 더욱 나타난다.

 

내측에서 본 생 에서는 몽십야를 통해 작품들에 나타난 소세키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소세키의 심적인 기조가 되고 있는 것은 향해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는 표류감이라고 한다. 생의 근원과 종착지에 대한 고독한 인간의 질문이기도하다. “거기에는 문명비판가로서의 소세키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허공에 매달려 떨고 있는 한 남자가 있을 따름이다. 유령선의 이미지는 소세키의 생 그 자체이며, 동시에 메이지 일본의 표류감(漂流感)이기도 하다.”(92p)

 

문학론에서 소세키는 동양문학이란 부모가 있기 이전의 본래적 면모”()를 건드리는 무엇이고, 서양문학은 부모(가족)라는 제도와 닮은 무엇이라고 한다. 한눈팔기가 보여주듯이 소세키는 그런 제도에 농락당하고 있다. 그가 보통의 아이들처럼 가족을 자연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말한다. 그는 어떤 자의성에 노출되어 있었다. ‘어쩐지 모르게 기만당한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133p) 그의 평생에 걸친 불안정체성의 결여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것은 런던에서 더욱 극대화되었고, 근대 일본사회에서 어떻게 문학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그의 문학론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했다고 생각된다.

 

소세키가 처음 작품을 써낸 것은 사생문이었다. 이후 초기 작품에서는 이러한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당시 문학의 장르 중에 문이 있었다. 신문에 연재를 하게 되면서 소설을 쓰고 문단의 주류가 되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소설보다는 을 계속 썼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몇 작품에서는 플롯에서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소세키의 에크리튀르(사생문)에서는 상상계가 상징계의 억압을 거치지 않고 고스란히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소세키의 놀랄 만큼 풍부한 어휘는 모종의 대상이나 이미지를 환기시키는게 아니라 애초부터 언어가 그런 대상이나 이미지 없이 존재하는 것임을 열어 보이듯이 난발(亂發)되는 것이다.”(338p)

 

소세키는 10년 동안 쓰는 일을 통해 변했다. 기본적으로 신경증적인 근대소설을 사생문으로서 저회취미低徊趣味(사색에 잠겨 천천히 거니는 취향)을 통해 회피하고 있다. 그는 대학을 그만두고 직업적인 소설가로 바뀌어서 우미인초를 썼을 때 저회를 그만 두고 한걸음 더 내딛는다. 장식적인 미문이 더욱 많아지고 철학이나 이론의 골격을 담는다. 그리고 초기작에 없었던 층위들이 나타나고, 그 층위들이 뒤섞여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명암으로의 길을 성숙이라고 볼 수 있고, 작가의 치유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에 동의한다.

 

소세키의 읽기를 통해 한 작가의 유년기의 상처와 분열적 감정, 정체성 결여로 인한 불안, 생래적 고독이 작품 안에 녹아드는 과정을 보았다. 주인공들의 면면에는 작가의 자아의 단편들이 담겨있다. 이 쓰기 과정을 통해 거리를 두고 자신을 살피는 일이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명암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통해 존재의 문제를 질문했고 치유를 경험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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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27 23:1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많은 것이 담긴 책들, 그 전작을 모두 읽는다는건 이렇게 작가와 가까워지는거군요. 전작다읽기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그레이스님 *^^* 대단하세요 👍

그레이스 2021-11-27 23:19   좋아요 6 | URL
감사합니다
11월까지는 끝내려고 해서 서간문이나 다른 것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마치기로 했어요
후련하네요
미진함이 있어도 당분간은 다른 책에 빠져볼 생각입니다

페넬로페 2021-11-28 00: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키> 전작 읽기
수고하셨고 넘 대단하십니다👍👍

그레이스 2021-11-28 08:52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덕분이죠~!

scott 2021-11-28 00:4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진정으로 대단 하십니다!👍👍👍👍
저는 한 작가 전작 완독의 열정을 불태워도
다음날 다른 책으로 눈이 ( ʘ̆ ╭͜ʖ╮ ʘ̆ )돌아가 버립니다 ㅋㅋㅋ

알라딘
담달 그레이스님의 소세키옹 리뷰들 전부
뽑아 달롸!
∩(︶▽︶)∩

그레이스 2021-11-28 08:50   좋아요 3 | URL
저도 한눈 많이 팔았어요^^
생각보다 오래 걸린 이유 ㅋ

스파피필름 2021-11-28 07: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전작읽기 대단하셔요! 저 이중에 9권을 읽었는데 몇 년 지나니 다 까먹고 대략 소세키에 대한 이미지만 남은 거 같아요. 제목도 간단, 비슷해서 ㅎㅎ 언제 시간되면 한번에 쭈욱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11-28 08:52   좋아요 3 | URL
9권! 저보다 훨씬 선배셨네요^^

새파랑 2021-11-28 09: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고퀄의 페이퍼는 전작을 하지 않으면 쓸수없는 페이퍼네요~!!
세어보니 저는 소세키 여덟권 읽었는데 곧 따라읽어볼께요. 그레이스님 역시 👍

그레이스 2021-11-28 09:05   좋아요 2 | URL
부끄럽습니다.
이 평론집이 고퀄이고 도움을 받았을 뿐이죠 ^^
새파랑님은 저 처럼 오래 걸리지 않을듯!

지유 2021-11-28 1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작 읽기~ _ 정말 대단하세요!

그레이스 2021-11-28 12: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프레이야 2021-11-29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곁눈질하지 않고 완독 축하드려요.
쉽지 않은데 말이죠^^
전 사두고 완독은 못하고 있어요. 불끈!!
맘 단단히 먹고 도전하리라 다짐합니다 ^^

그레이스 2021-11-29 19:18   좋아요 1 | URL
으쌰! 응원합니다~

프레이야 2021-11-29 19:44   좋아요 2 | URL
이번 아니구요 ㅎㅎ 다다음에요

그레이스 2021-11-29 19:49   좋아요 1 | URL
^^~♡

희선 2021-11-30 02: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소설을 다 만나셔서 좋으시겠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평론도 함께 보시다니, 정말 공부하듯 책을 보셨네요 가끔 한권 보는 게 아니고 죽 이어서 보셔서 소세키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알았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11-30 06:40   좋아요 2 | URL
예~
감사합니다 ~!
오늘은 비가오네요
겨울비 소리는 조금 다른듯요

레삭매냐 2021-12-01 0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올랍습니다. 결국 해내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쨕 쨕 쨕 !!!

마냥 부럽삽니다.

그레이스 2021-12-01 05:1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 🍊

scott 2021-12-09 16: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

소세키옹 완독 추카 기념으로 확실하게 쏘쉼 ^ㅅ^

그레이스 2021-12-09 17:0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소세키옹 😊🙏

mini74 2021-12-09 1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놀랍지 않습니다 ㅎㅎ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12-09 16:59   좋아요 2 | URL
감사드려요
소세키옹에게도 ~^^

독서괭 2021-12-09 16: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이 페이퍼를 이제 봤네요. 그레이스님이 뽑은 소세키 명작 베스트3 이런 건 없나요?^^

그레이스 2021-12-09 16:59   좋아요 3 | URL
넘 개인적이라...
저는 산시로, 우미인초, 행인 입니다^^

독서괭 2021-12-09 17:02   좋아요 3 | URL
오호 적어두자🤓

scott 2021-12-09 17:02   좋아요 2 | URL
저는 소세키 옹 3대 걸작 산시로 -풀베개-우미인초 ^^

그레이스 2021-12-09 17:06   좋아요 2 | URL
풀베개와 행인 사이에서 갈등했으나 소세키 전작읽기로 들어서게 한 행인을 버릴수가 없어서^^
풀베개도 좋아요~

독서괭 2021-12-09 17:10   좋아요 3 | URL
공통작품인 산시로와 우미인초 적어두자🤓 감사합니다ㅋㅋ

새파랑 2021-12-09 17: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축하 드려요~!! 소세키의 장인 😄

그레이스 2021-12-09 17:11   좋아요 3 | URL
장인
이런 말은 제발...ㅎㅎ
감사합니다 ~~ 🍊

이하라 2021-12-09 18: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12-09 18:31   좋아요 4 | URL
감사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12-09 18: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말 쉽지 않은 한 작가의 완독입니다.
그레이스님, 소세키의 작품으로 2관왕 당선 축하드리고 너무 당연합니다~~

그레이스 2021-12-09 18:41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덕분입니다.
함께 읽어주셨잖아요~♡
페넬로페님의 읽기 응원해요~~🙆

서니데이 2021-12-09 2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2021-12-09 21:3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21-12-09 22: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정과 밝은 눈으로 길을 밝혀 주시는 그레이스님~ 완독과 이달의 페이퍼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풍성하고 감동스러운 생각을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2021-12-09 22:22   좋아요 4 | URL
이렇게까지 칭찬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란공님~ 올해 남은 한 달동안도 좋은 책 많이 소개 부탁드려요~♡

bookholic 2021-12-09 23: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2관왕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님께서 이렇게 열심히 소세키를 소개해 주셨는데,
저도 꼭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12-10 00:0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희선 2021-12-11 0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또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님이 쓰신 글을 보고 소세키 소설 보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몇 권 있는 책 앞으로 보면 좋을 텐데... 천천히라도 보겠지요


희선

그레이스 2021-12-11 08:4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예 천천히!

단발머리 2021-12-11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페이퍼 통해서 소세키를 다시 보게 됐네요. 집에 아직 안 읽은 소세키 책들도 한 번씩 쓰다듬어주구요.
소세키 완독과 이달의 당선작 2관왕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12-11 12:45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