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분석한 많은 글 중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표현은 "필수와 비필수가 재정의되는 현상," 쉬운 말로 "뭣이 중한디!" 였다.   

이 표현은 대파와 매우 관계가 깊다. 오늘 처음으로 대파를 따로 주문해서 배송받아 봤다. 파만큼은 무농약도 피하고 꼭 유기농만 고집하는데 이번엔 이런저런 인증마크 없는 대파를 사보았다. 사실 욱해서 샀다. 모든 채소 중 구매 빈도와 소비량으로 봤을 때 나와 가장 친한 채소가 바로 대파! 실은 대파의 뿌리, 모든 육수에 필수 재료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파로 우려낸 육수 특유의 알싸한 향을 너무도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주로 이용하는 친환경식품 매장에서 벌써 몇 번째나 대파 뿌리를 댕강 잘라내고 몸통만 남긴, 소위 보기 좋은 대파를 가져다 놓는다. 문의해보면 대파뿌리에서 흙이 쏟아져서라나? 항의 아닌 항의로 '온전체 대파'를 원한다고 소비자의 소망을 전하지만 간혹 그렇게 파뿌리 잘린 댕강 대파가 진열되어 있다. 며칠 전에도 수북하게 진열대에 쌓인 유기농 대파에서 머리부분이 다 잘려나가 있는 것이다! 뿌리 없이 몸통만 달랑 남은 대파가 비닐 봉지 안에서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데, 나는 보자마자 화가 났다.


대파가 뿌리 내리며 얼마나 애썼을까? 그 뿌리는 분명 쓰임이 있거늘, 게다가 얼마나 요긴할 텐데.... 소위 진열대에서 좋아 보이라고 댕강댕강 뿌리를 잘라 놓다니! 다시 전화 걸어 항의(?)해보았자, 이 매장은 또 이러겠구나 싶은 마음에 울화도 치밀었다. 단지 파뿌리 육수 못 내서 화나는 것은 아니다. 

.


화 나는 마음에 뿌리가 두꺼워 보이는 아무 대파나 사보았다.(근데 농약과 비료 드신 점보 대파이다 보니 파뿌리를 끓여도 특유의 알싸한 좋은 향이 안...덜....난다....이것도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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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3-23 06: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뿌리를 넣고 끓여야 향이 좋군요?! 몰랐어요. 저도 앞으로 쓰레기 취급 안 하고 잘 써야겠네요! 일단 뿌리 있는 걸 구해야겠지만^^;

건수하 2024-03-23 08:48   좋아요 3 | URL
뿌리를 잘 씻어서 육수낼 때 쓰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만 잘라서 따로 냉동하기도 했었는데 잘 씻기가 힘들다는.

bookholic 2024-03-23 08: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875원짜리 대파 사신 줄 알았어요...^^

건수하 2024-03-23 08:47   좋아요 2 | URL
저도 그 얘기인 줄 알았네요 ^^

얄라알라 2024-03-23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75원대파가 요새 유행인가요?분위기 못맞추는.저 ㅎㅎ포스팅에.875숫자가 없는데 요새 마케팅 유행어인가...이리.눈치가 없어요

독서괭 2024-03-23 09:28   좋아요 1 | URL
ㅎㅎ요즘 핫한 정치기사예요^^

얄라알라 2024-03-23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그말씀이시구나...^^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4-03-23 1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파>하니 열이 솟구치지만~~
얄라님의 대파 글에 다시 진정되며
이제부터 뿌리도 소중히~~해야겠어요.

stella.K 2024-03-23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트에선 보통 그렇게 팔지 않나요? 재래시장이나 창고형 매장 같은 곳은 뿌리째 파는 것으로 압니다. 그럴 때 한 두 사람 항의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고 떼로 들끓고 일어나야 하는가 봅니다. 울나라가 언제부터 대파뿌리 먹기를 이러고 먹고 살아야하는 것인지. 흐흑~
대파가 그렇게 좋다는군요. 농약 안치고 한 겨울을 이겨낸 뿌리 채소라고 어떤 사람은 1년치 먹을 걸 사 둔다는군요. 저도 많이 먹어 두려고 합니다만 생각만큼은 잘...ㅋ

그레이스 2024-03-25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생태발자국 줄이기"로써 로컬푸드 운동은 사실 책으로만 접했지 평소 그다지 신경쓸 처지가 아닙니다. 동서남북 시멘트로 겹겹 둘러싸인 아파트 공화국, 텃밭은 커녕 흙 밟기 어려운 환경에 사는데 어찌 "로컬 푸드"를 꿈꾸겠나요?

그러던 제가 옥천 장령산 자연휴양림 부근, "옥천 로컬푸드 직매장"를 이용해본 후 달라졌습니다. 다른 지역가면 '로컬푸드 직매장'을 검색하는 게 습관이 되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직매장들이 제공하는 "식품 + 제품"은 해당 지역민이 직접 납품하기기에 품질에 신뢰가 가고 식품의 경우 매우 신선, 저렴합니다.


단 아쉬운 점은 옥천 로컬푸드 직매장의 경우 온라인 주문이 불가능해요. 매장에 전화를 걸어, 제가 원하는 판매자분들의 정보를 문의한 후에 직접 연락을 드렸어요. 바로 "장앤장"의 대표 "장경숙"님이신데요. 이 분이 운영하시는 블로그에 들어가봤더니 닉넴이 "메주미인"이시더라고요^^ 이름에 가득 담긴 정체성과 음식 철학!!!

Photos = Korea Tourism Organization 


"옥천 로컬푸드 직매장"에 납품하시는 물품을 개인에게도 판매하신 다기에 핸드폰 문자로 주문드렸습니다. (작년 겨울에 이어 이 번이 두 번째 주문입니다. 장류는 유통기한이 상당히 길 터인데도, 장경숙 대표님은 가급적 엊그제 어제 담은 신선한 제품을 보내주시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두 번 구매 모두, 제조일자가 주문일 다음 날짜로 찍혀 있었어요.)


자연과 가까운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

시멘트 벽에 둘러 쌓인 아파트에 살면서, 된장 담기는 커녕 메주콩과 일반 콩 구별도 못하는 게으른 도시까막눈인 제가 이처럼 정직한 발효식품을 먹을 수 있으니 생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발효음식 이 전통을 누가 지켜갈까, 지켜질 것인가 막연한 두려움이 제게 있어요. 기회가 되면 옥천 이원면에 장경숙 대표님 뵈러 가서 이런 저런 귀한 말씀 직접 듣고 싶어집니다.


* 광고성 글로 오해하실까봐 살짝 걱정되네요^^ 올린 사진은 내돈내산 제품 사진이고 저는 이 업체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음식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이었으니 오해하시지는 마시어요^^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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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3-10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메주 사서 된장 담궈볼까 생각하다가... 후속으로 밀려오는 여러가지 생각에 슬며시 잊어버려요 ㅋㅋ

얄라알라 2024-03-11 00:06   좋아요 1 | URL
저랑 레벨이 다르십니다^^ 저는 된장 담그는 수업, 고추장 담그는 수업을 들어봤으나....돌아서서 바로 잊어버렸어요. 메주는 꿈도 못 꾸어요.

그레이스님에게 밀려오는 후속 생각에 냄새도 포함이 된 걸까요?^^

hnine 2024-03-10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옥천이면 제 집에선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저도 언제 한번 방문해보리라 맘먹고 있는 곳이랍니다.
설마 메주를 구입하셨다는 건 아니겠지요??

얄라알라 2024-03-11 00:05   좋아요 0 | URL
^^:;; 네 설마 ˝메주˝는 설령 얻는다 해도 어떻게 어디에 쓰는지도 제대로 모릅니다. 제가 된장과 청국장을 구매한 판매자님 닉넴이 메주미인이시더라고요.

얄라알라 2024-03-11 00:35   좋아요 0 | URL
hnine님, 여유 되실 때 동선 잘 짜셔서 다녀와보시면 좋죠. 제가 검색해봤을 땐, 다른 로컬직매장에 비해 옥천 직매장이 매출도 높고 지역 농민들과 상생하여 활기 넘치는 것 같았어요^^

2024-03-11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24-03-12 09: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경로를 찾으셨네요. 먹거리가 점점 엉망이라서 가뜩이나 공기도 나쁘고 물도 나쁘고 플라스틱과 환경호르몬을 왕창 섭취하는 시대에 모처럼 좋은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이네요. 부럽습니다.

얄라알라 2024-03-13 12:54   좋아요 2 | URL
비행기에 마늘장아찌 태워서 transient님께 보내드리고 싶네요.....^^ 넘 건강한 맛입니다^^;;;; 마늘 냄새가 몸에서 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런 자연 가까운 맛이 정말 좋아요
 
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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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손을 떼지 삶을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한 때 수입의 1/3을 책 사는 데 쓰고, 비행기로 박스 째 책을 실어 나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오랫동안 책에 치여 살았다. 서가는 물론, 옷장과 수납장 구석구석을 책으로 채우며 뿌듯해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적 디딤돌 없이 살면서 물질로서의 책이 거추장스러워졌다. "많이" 쟁여 둘 게 아니라 한 권을 읽더라도 뼈와 피 삼는 게 중요하겠다 싶었다. 가벼워지고 싶었다. 한 밤 숲 속에서 흰 빵 흘리는 헨젤처럼 야금야금 책을 버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3000권 넘게 내보냈다.

​*

서두가 길다. 책을 거의 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내용을 기억하기 어려운 전문서적만 주로 집으로 모신다. 800번대 책을  사는 일은, 1년에 1권? 책 덕후치고는 야박하다. 그런 내가 어젯 밤 서점에 다녀왔다. 이미 두 번이나 읽었는데도 [순례주택] 을 갑자기 소장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이 소설은 전체를 놓고 보아도,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따로 보아도 좋다. 작가의 인생관과 지혜를 그득 담아 놓았다. 게다가 그것은 나의 지향과 상당히 공명한다.

​**

[순례주택]의 주요 캐릭터 순례 할머니는 "순례(巡禮)"로 개명했다. 이름처럼 무소유와 홀가분함을 지향한다. 17억 빌딩 주인이면서 시세보다 훨씬 월세를 싸게 받고, 통잔 잔액이 1000만원 넘지 않게 관리한다. 세신사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산 집이라서 "때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런 순례씨가 20년을 남친 삼았던 할아버지의 친 딸은 "원더 그랜디움 Wonder Grandium"아파트에 산다. 엄밀히 말하면 딸과 사위가 제 아버지의 집을 뺏다시피 무단점거한 것이다. 딸은 아버지 재산을 행여라도 빼앗길까 순례씨와 아버지의 결혼을 결사반대하고 순례씨를 '동거녀'라며 폄하한다. 한술 더떠서 순례씨가 사는 '빌라촌' 주민을 길고양이 취급했다. 딸의 남편도 만만치 않은 속물이어서,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데 장인어른과 4명의 누이의 지원금으로 살았다. 그 돈으로 대학을 마쳤는데 이후로도 도움만 기대한다. 염치도 없다. 그들은 고층 아파트 "Wonder Grandium"처럼 고층의 삶을 지향할 뿐, 땅에 발 딛게 될 경우 두발로 서지도 못할 인간형이다. 큰 딸 '오미림'도 그런 엄마아빠를 닮아서 "드라이클리닝 냄새 가시지 않은 잘 다려진 옷을 입고 BMW mini타고 출근하는 미래를 꿈꾼다. 공부는 잘해서 전교 1-2등 권이다. 반면 동생 오수림은 반에서 12-13등 짜리라고 제 엄마아빠에게서 "모지리" 취급 당하지만 [순례주택]에서 가장 당차고 똘똘한 캐릭터이다. 


****


수림이 엄마아빠처럼  '상대적으로' 조금 더 학교를 다녔고 '상대적으로' 조금 더 좋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정직하게 사는 선량한 사람을 멸시하는 속물.  "나" 화법만 쓰지 "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 적 없는 젠체들, 교육 받은 예의범절로 저열함을 감춘 사람을 나는 싫어한다(내가 그럴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다). 대신 사람 내면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초감각과 제3의 눈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대한민국 공교육을 통해서 잘 길러지기 어려울 감각이다. 그런데 [순례주택]의 중학생, "오수림"은 그런 제3의 눈을 가졌다. 수림이는 아마도 유은실 작가가 본인의 할머니를 본따서 입체감을 더했을 캐릭터일 터인데 "생활지능"이 높고 삶을 독립적으로 살 힘을 지녔다. 즉,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존재이다. 나이만 40~50살이지 아직도 덜자란 '덜어른' 수림이 엄마아빠와는 달리...




유은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재미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그 분의 인생경험과 인생 롤모델은 과연 무엇이길래 이런 작품을 썼을까? 너무 재밌어서....어쩌지. 3번 읽고나니 이제 유은실 작가에게 팬레터를 쓰고 싶어진다. 본격적인 [순례주택] 리뷰를 다음 번으로 미루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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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3-06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까지 이 책이 건축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청소년 소설이었군요. 아, 이런~
글치않아도 소설이라고 쓰셔서 오타 아닌가 했었다는. ㅋㅋ
저도 얼마전부터 다시 안 읽을 책은 슬금슬금 버리고 있습니다. 그래봐야 새 책 들여놓을려고 버리는 꼴 밖엔 안되지만. 이젠 기증도 중고샵에 가지고 나가는 것도 다 귀찮더군요. 근데 얄라님 이 책 좋아라 하시니 갈등 생기는데요? ㅎㅎ

얄라알라 2024-03-06 11:55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추천 받기로는.....서너번이나 오프라인에서 열렬히 추천 받고도 ‘표지가 구려서‘ + ‘건축관련‘ 책인가 싶어 안 읽었어요 ㅎㅎㅎ 저랑 비슷하신 생각을 하셨네요.

중고샵이 귀찮아 지셨으면, 그냥 빌려읽으시어요^^ 가볍게 가볍게 가벼운 삶을 !^^ 어떤 마음이신지 저도 알 것 같아요 ㅎ

그레이스 2024-03-07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한동안 ˝생활지능˝이란 말로 농담했습니다. 생활지능이 낮아! 하고...!^^

얄라알라 2024-03-10 11:45   좋아요 1 | URL
ㅎㅎㅎ농담으로 쓰기 넘 좋아요^^

저는 ˝생활지능˝이 바닥을 칩니다 ㅎ 오미림보다 더한..

2024-03-07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10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12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nan 2024-03-1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넓고 읽고 싶은 책은 많습니다. 오늘 얄라알라님 덕분에 또 한 권 읽고 싶은 책이 생겼습니다. 작년에 전자책 리더기를 산 이후에는 주로 전자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알라딘 구매이력은 늘고 있)는데 이 책 역시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생활지능이 높아지길 기대하면서~
 

언어 능력이 곧 생존지수였던 외국 생활, 현지인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을 귀쫑긋 세워 외우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 번 듣고 강렬해서 잊히지도 않는 표현현이 있었는데 바로


Let's capitalize our time!


정확한 워딩은 잊었지만, "시간을 자본화한다"는 그 개념,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수다가 서로 시간 낭비이니 이쯤 끝내고 남은 시간 각자 잘 쓰자는 의미가 모욕이 되지 않는 사회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긴 이제 우리 사회도 점점 더 "시간=돈," "돌봄 = 돈," "이야기 들어주는 (노동)= 돈" "(거의) 모든 게 돈"의 사회로 급속 전환 중이긴 하다.


옛 기억을 소환한 이유는 오늘 우연히 들었던 7살 꼬마의 말 때문이었다. 줄 서서 먹는 이웃마을 맛집에서였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주인분께서 500ml 사이다를 들고 오셨다. 사장님이 가시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귀여운 꼬마가 이렇게 말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세상 공짜 없다던데, 그냥 주네.




해맑게 웃는 꼬마를 나는 깜짝 놀라서 바라보았다.

'도대체 꼬마는 저 어른 말을 누구에게서 들어봤지?' '어떻게 저 어려운 말을 맥락에 맞게 쓸 수 있을까?'

꼬마의 부모님을 떠올려본다. 그런 말을 자주 쓸 것 같지 않은 분들이다. 그렇다면 꼬마가 다닌다는 어린이집 선생님? 그럴 리가.... 하지만 분명 아이는 그 말을 자주 들어보았을 터이다. 아이는 "세상에 공짜 없다고 어른들이 말했지만, 공짜가 있네요."의 뉘앙스 천진하게 말했으니까.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전모를 알면 아이가 슬퍼할 것 같다. 맛집의 규모가 작고 점심 피크타임이어서 5명의 손님을 4인석에 몰아 앉히셨던 사장님이 "미안해서" 사이다를 주셨던 것이다. "그냥"이 아니었다. 이유 없는 친절 없고, 세상에 공짜도 없다는 걸 보여주는 예시였다. "세상에 공짜 없다던데 아니네."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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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1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4-02-22 0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아.... 공짜가 아니었다니...🤣

얄라알라 2024-02-23 14:48   좋아요 1 | URL
은오니~~~이이~~~임^^ 락방님께서 왜 글 안쓰시냐고 하시던데^^ 바쁘셔서 만약 못쓰시고 계셨다면 이렇게 제 낙서같은 글에 댓글 남겨주시는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러게요 사이다가 공짜가 아니었어요 ㅎ

은오 2024-02-24 08:05   좋아요 1 | URL
얄님 글은 항상 잘 읽고있습니다~! 💕💕 댓글은 매번 달지 못해 제가 더 아쉬운걸요 ㅠㅠㅠㅠ
 


2027년 배경의 SF 영화 [Children of Men]을 보았던 이유는 순전히 배우 때문이었다.

크리스찬 베일

매즈 미켈슨

클리브 오웬

애정하는 배우들의 영화는 놓치지 않으려 하니까.

몇 년 전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불임이 표준이 된 세계, 마지막 남은 임산부와 태어난 아기라는 설정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줄거리를 슬렁슬렁 넘겼다.(그래서 지금도 줄거리 기억은 잘 안 난다. 오로지 주인공 클리브 오웬의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만 훔쳐 보았으니까.....) 특히, 영화 후반부의 이 장면.


아가를 본 어른 사람들이 경이롭고 감격에 찬 표정으로 길을 터주는 이 장면은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오늘 어린이병원에서 딱 저런 표정으로 아가들을 보고 있었다. 그 대형 병원은 어린이 전문 병원인지라 대기실 복도에 아가들이 바글거렸다. 말이 좋아 아가이지, 엄마 몸 속에서 하루 종일 잠자던 태아의 모습과 크게 차이 안나는 쬐그만 신생아들도 있었다. 그 복도에서 1시간 이상 머물렀는데, 나는 챙겨갔던 책을 아예 꺼내보지도 못했다. 정확히는 책 꺼낼 생각조차 안났다. 병원 복도에 들고 나는 아기들의 물결에 마음을 빼앗기고, 아기들에 자꾸 머무는 시선을 애써 감추느라. 특별한 지인 찬스가 아니라면 일상에서 아가 보기 힘들어진 저출산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렇게 많은 어린 생명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자꾸 눈이 아가들에게 머물러서, 그 아가들의 부모님들이 싫어할까 조심해야 했다. 원체 아가를 너무도 좋아하지만, 내 시선은 틀림없이 끈적거렸으리라.

나도 모르게 '아! 미래를 위한 희망! 너희 작은 생명들....'이런 프로파겐다적 생각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가는 그냥 생명으로서 소중할 뿐인데, 나도 모르게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희망이라는 거국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딱, 영화 속 저 장면처럼......


이 영화는 2027년을 배경 삼는다. 근미래라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가까운 내일이다. 과연 2027년 대한민국의 거리 풍경은 어떠할까? 우리는 아가들의 옹알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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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16 12: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영화를 90년대 나왔다면 리얼리~? 하며 봤을지도.ㅋ 27년이래 봤자 얼마 안 남았네요. 2000년이 됐을 때도 세상이 되게 많이 바뀌어 있을 줄 알았는데 밥 먹고 화장실 가고, 태어나고 죽고. 세상은 돌고 도는 것 뿐이죠. 저는 애들 별로 안 좋아했는데 요즘은 좋더군요. 저도 나이 들었나 봅니다. ㅠ

얄라알라 2024-02-18 17:32   좋아요 3 | URL
2027년..
노스트라다무스 예언...때문에 21세기가 없는 줄 알았는데^^;;;

stella. K님 비오는 일요일 행복한 오후 보내시어요

레삭매냐 2024-02-16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별무소용
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들이 말한 막대한 예산이라는
말도 예산 전용으로 거짓말이라
는 걸 잘 알게 되었지만...

의료 교육 모두에서 소아과 기피,
한 때 최고의 직업이라고 불리던
교사가 불과 몇 년 사이에 기피
직이 되었다는 역설 등등 -

노키즈존이 점점 늘어나는 어느
나라의 서글픈 현실이네요.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미래의 단순 노동자로 보는 시선
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인구 절벽
은 이제 되돌이킬 수 없는 현실
이 된 느낌입니다.

얄라알라 2024-02-18 17:33   좋아요 1 | URL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근심 그득한 표정으로
레삭매냐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끄덕 공감합니다

이렇게 수도권에 건물을 몰아 짓는데 지방 소멸은 어떻할 것이며...암울해요

2024-02-20 0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02-22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가들 너무 이뻐요ㅎ 저도 귀여운 아가들을 보면 자꾸 눈이 가고 기분도 좋아진답니다ㅎㅎ

아기라는 말보다 아가라는 말 너무 정감가고 귀엽고 좋네요ㅎ

아가라는 말 검색해보니 정의 2, 3 번에 감탄사로 분류된 게 너무 웃기네요ㅎ 아기를 부를 때, 시부모가 젊은 며느리를 정답게 부르는 말이래요ㅎ

얄라알라 2024-02-23 14:49   좋아요 1 | URL
그 사전 매우 현실적이네요. 그런데 21세기에도 시어머니와 젊은 며느리 사이에 ˝아가˝라는 말이 쓰이나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ㅎㅎ우리도 이젠 미국처럼 차가운 호칭으로 부르게 될 날도 곧 올것 같아서요

근데 저는 이 글 올릴 때 저 멋진 배우님들 언급하는 댓글이 하나라도 달리지 않으까 했는데 얼굴에 빠지는 건 저만인가봐요 ㅎㅎ

고양이라디오 2024-02-23 16:02   좋아요 1 | URL
아ㅎㅎㅎ 저는 남자라서 이쁜 배우 아니면 관심이 없다는...ㅎ

크리스찬 베일은 저도 좋아하는 배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