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생각한다.

사랑은 감정의 파도에만 휩쓸리고 지적으로는 잠에 빠진,

생각 없는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항상 생각하느라 분주하다.

먼저 사랑이 담긴 생각이 있어야

행위가 뒤따르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알렉스 켄드릭, 스티븐 켄드릭, 『사랑의 도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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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
마이클 호튼 지음, 김재영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저자는 ‘미국제 영성’을 영지주의적 신앙과 동일시한다. 바른 교리보다 특별한 감정적 고양의 상태를 더욱 우월한 것으로 여기며, 인간적인 노력으로 절대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으며 종종 이를 위해 주술적 형태의 신앙행위를 동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를 가르치면서도 성/속, 영/육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이 혼합주의적인 신앙이 이미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책 전체에 걸쳐 저자는 오늘날 이 영지주의적 신앙이 어떻게 교회 안에 부활해 사람들의 생각에 깊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인간의 생각에 기초한 종교가 아닌 하나님의 방식과 기준에 따른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로 돌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2. 감상평 。。。。。。。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그분에 관해, 이 세상에 관해 말씀해주신 계시의 내용을 근거로 성립된 신앙체계라는 면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다. 기독교 신자는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것 안에서만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실제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을 연구하고 사유해왔음에도 신학 전 분야에 걸쳐서 여전히 완전히 이해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신론에서는 하나님의 존재의 방식에 대한 이해가, 인죄론에 관해서는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관해, 구원론에 있어서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라는 교리들이 완전함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적으로 이런 애매함과 불가해한 부분을 하나님의 속성에 기인한 ‘신비’로 인정하고 그들의 무지함을 겸손하게 인정해왔다. 영지주의는 바로 이런 신비를 인간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려 이해 가능한 수준의 설명을 제시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에서 비롯되었다. 당연히 이런 시도는 어제 오늘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다를 어항에 담으려는 시도는 잘 해야 실패로, 최악에는 어항을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는데도, 모든 것을 인간 지성으로 담아내려는 이러한 시도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문제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기독교에 대한 관점들(특별히 영지주의적 접근, 즉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치 않고, 인간 중심의 종교로 재배열하려는 시도들)이 얼마나 쉽게 오염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제 영성’으로 통칭되는 이러한 인간본위의 신앙행태는 우리에게 너무나 편하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때문에 단시 신학적 자유주의자들만이 아니라 복음주의자로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도 이러한 경향들이 자주 발견되는 것. 저자가 경고하는 대로 성경의 계시가 말해주고 있는 방식과 한계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파괴적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다만 영지주의 자체가 워낙에 잡다한 사상들을 통칭하는 이름이기에 ‘아닌 것은 모두 영지주의’라는 식으로 설명되는 느낌이 드는 부분과, 수사적인 표현들이 종종 등장해 내용이 반복되기만 하는 것 같은 부분이 보이는 것은 좀 아쉽다. 전자야 영지주의 자체가 가진 문제이긴 하지만, 후자 쪽은 전작과는 달리 저자가 좀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걸까 싶다. 물론 주제와 동떨어진 내용을 덧붙인 것과는 다른 부연이긴 하지만 말이다.

 

     책 속의 어느 구절처럼 ‘진리보다 솔직함을, 실재보다 감정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한, 기독교는 더 이상 생명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유일한 종교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여러 종교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바른 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면서, 이 주제에 관해서 가장 실제적이고 분명한 교훈을 담고 있는 좋은 책이다. 읽고, 위기에서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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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타조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카림. 어느 날 집에 있던 아내로부터 급히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청각 장애인인 큰 딸의 보청기가 동네 저수조에 빠져버렸다는 것.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니 철없는 둘째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쓰레기로 가득 찬 저수조에 물고기를 키워 돈을 벌겠다고 하다가 도와주던 누나의 보청기를 잃어버린 것. 결국 보청기는 찾아냈지만 완전히 망가져버렸고, 새 보청기를 사기에는 너무 비싸다. 심란한 마음으로 일을 하다가 타조 한 마리가 도망치는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 해고까지 되고 만다. 도시로 나갔다가 우연히 오토바이 택시 일을 시작하게 된 카림. 과연 그는 딸을 위한 새 보청기를 살 수 있을까?

 

 

 

2. 감상평 。。。。。。。                    

 

     이란의 한 시골 마을에서 날아온 따뜻한 가족 이야기. 거리상으로는 수천 km 떨어져 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도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전통적인 가장과 아내 자녀들의 모습, 다 같이 풍족하진 않지만 이웃이 어려우면 조건 없이 도와주는 시골의 정(情), 약사 빠른 도시 사람들과 그런 그들과 접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 등 우리의 지난 모습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상들이다. 감독은 이런 영상들을 통해 ‘결국은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아무리 말썽을 부리고, 시종일관 티격태격해도 결국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서로를 향한 깊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웃을 수 있는 이유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 저수조를 청소하며 물고기를 키울 꿈을 꾸는 것도, 자신 때문에 힘들게 일하는 아버지를 위해 길거리에 나가 꽃을 파는 이유도 다 그들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

 

 

 

     이런 차원에서 보면 급증하고 있는 깨어진 가정들은 심각한 손실이자 문제다. 어떤 사회 복지제도로 건강한 가정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난 가정을 국가(와 같은 거대권력) 주도의 공동체로 재편하려는 쪽도, 철저하게 경제적인 논리로만 해석하고 조작하려는 쪽도 반대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가정이란 경제논리, 정치논리 이전의 무엇인데, 돈의 세례를 받고 물질주의의 신자가 된 요즈음의 사람들은 이마저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부족하고 종종 오해가 빚어지더라도 가정은 소중한 건데 말이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다. 천편일률적인 헐리웃 산(産) 공산품 같은 영화도 나름 재미는 있지만, 한 땀, 한 땀 손으로 짜내려 간 듯한 수공예품 같은 이런 영화들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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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과거의 행적이 아니라
현재의 열매로 입증되는 것이다.

Salvation is
not verified by a past act,
but by present fruitfulness.
- John MacArth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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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선천적으로 한쪽 다리가 짧아 마라토너로는 불합격이었던 주만호. 하지만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페이스 메이커로 선수생활을 이어갔던 그였다. 시간은 흘러 사실상 은퇴를 한 상태였던 그를 대표팀 감독인 성일이 다시 불러들인다. 차세대 유망주인 민윤기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라는 것. 늘어나던 빚 때문에 결국 제안을 수락한 만호였지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만은 30km가 아니라 42.195km를 달리고 싶었다.

 

 

 

2. 감상평 。。。。。。。                    

 

     김명민이 주연인 영화다. 여기에 안성기가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적어도 주연급 배우들의 연기력이 논란이 될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또 다른 조연인 고아라도 여전히 외모로만 어필하는 연예인이 아니라 배우라는 말을 들으려면 노력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나아지고는 있다. 문제는 좀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다.

 

 

     스포츠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 때 고려해야 할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떻게 하면 그 경기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긴박함과 생동감을 살려낸 영상을 만들어 낼수 있는가고, 또 하나는 경기 외적인 갈등구조를 잘 만들어 경기의 결과와 갈등의 해소를 같은 고조점에서 만나게 할 수 있느냐다. 이 영화의 경우 첫 번째 항목에서는 나름대로 선전했지만, 두 번째 항목에서는 좀 어설펐다.

 

     일단 인물 구성이 좀 너저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주만호의 주변인물관계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보니 갈등 구조가 분명치 않다. 동생과의 소원해져가는 관계 회복인지, 자신을 이용하기만 하는 감독에 대한 도전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를 무시하는 동료 선수들의 시선에 대한 극복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저씨를 좋아하는 미녀 소녀와의 로맨스(?)인지 영화는 계속 오락가락 하다가 끝나버린다. 사실 개중에서도 고아라가 맡은 유지원 역은 제일 애매하다. 차라리 나머지 인물들이야 처음부터 조연급 배우들이 기용되었던 반면 고아라의 경우 그 정도로 축소시키기엔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그림은 좋아졌을지 모르겠지만 구도는 확실히 흐트러졌다. 차라리 이런 영화는 김명민의 연기력과 배역 소화력을 믿고 집중했더라면 나았지 않았을까.

 

 

 

     최근 여러 프로 스포츠들에서 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하거나 자기 팀에 불리한 플레이를 했던 선수들이 적발되어 잇따라 처벌을 받고 있다. 종목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스포츠란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자신과의 싸움이 기본에 깔려 있는 거고, 그 때문에 고대로부터 종종 신성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던 건데, 어이도 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 영화 속 주만호는 스포츠가 뭔지를 보여주고 있고, 김명민은 프로다운 배우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잠시나마 프로 선수들이라고 불렸던 그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뭔가를 좀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젠 당장 딱히 할 일도 없어졌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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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4-2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km를 골인 지점으로 삼고 달리는 페이스메이커가 주인공이라 그런지 영화도 7부 능선, 8부 능선까지는 좋습니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다만 결말 장면이 너무 작위적이네요. 갑자기 바이오맨이라도 된 듯 힘이여 솟아라 하고 금메달을 딴다는 것은...아무리 영화라지만 넘 했습니다.

노란가방 2012-04-20 12:32   좋아요 0 | URL
아... 은메달 아니었나요? ^^;;

saint236 2012-04-20 23:48   좋아요 0 | URL
은메달인가요? 그 정도로 집중이 안되었다는 말이죠. 금이든, 은이든, 동이든 주인공이 메달을 따는 것은 오버입니다. 마치 주인공이 총을 아무리 맞아도 안 죽듯이 이미 나가 떨어져야 하는데 계속 달리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노란가방 2012-04-21 00:04   좋아요 0 | URL
^^ 끝내야 할 때 못 끝내고 질질 끌었다는 느낌이 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