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2 (단풍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2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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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따뜻한 이야기 “불편한 편의점”의 후속편이 나왔다. 용산구 청파동의 한 작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다양한 문제를 품은 여러 인물들이 와서 서로 교류하며 점차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는, 온통 날이 서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읽는 내내 감동과 만족감을 주었다.


이번 편에서는 전작의 중심인물이라고 할 만한 독고가 편의점을 떠나고 그 자리를 대체했던 곽씨마저 야간 알바를 그만둔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 홍금보(물론 별명이다)가 독고와는 조금 다른 성격으로, 하지만 비슷한 포지션에서 편의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연이은 취업 실패로 낙담해 있는 소진,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장사가 안 돼 고민인 최사장, 가정이나 학교 어디에도 정을 붙이지 못한 채 편의점으로 피난을 오는 고등학생 민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그려진 후 이번에는 홍금보 자신의 이야기와 전편에서도 진상 아닌 진상이었던 편의점 사장 영숙의 아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잘 짜인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한 편 한 편 보는 느낌. 조만간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사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편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금은 귀찮게 구는 야간 알바직원이 편의점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조금씩 대화를 하면서 그들 안에 있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틀은 이 소설만의 트레이드마크고, 이미 한 편 크게 인기를 끌었으니 후속편도 비슷한 분위기로 나오는 것도 썩 나쁘지 않았다. 또, 전편에 등장했던 반가운 캐릭터들이 다시 카메오 형식으로 등장하는 것도 흥미있었고.


이번 편에서도 역시 중요한 해법은 대화였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세상에서, 먼저 누군가 핀잔을 들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청하는 대화의 요청이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결국 그 대화의 과정에서 서서히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다는, 전편부터 이어져 오는 일관된 메시지.


이번 편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기억에 남지만, 그 중 가장 애착이 생기는 건 전편에도 등장했었던 철없는 사장의 아들, 그리고 이번 편에선 어머니로부터 그 편의점을 물려받아 사장이 된 민식이다. 사업에 몇 차례 실패하고 사기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던 그의 과거 서사를 통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잠시 보여준 뒤, 작가는 그 역시 진솔한 대화로 자신의 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그렇게 그 또한 홍금보와 호형호제 하며 조금씩 “오너알바”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와 닿는다.




소설 전체에 코로나 시대의 흔적이 짙게 배어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시간을 정해 어디에 모이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기. 지구를 휩쓴 전염병의 가공할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라지만, 그 덕분에 사람들은 대화를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린 감도 있다.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족 간 다툼이나 심지어 가정폭력이 더 늘었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다.


요즘은 사실 어딜 봐도 대화보다는 날선 대립이 더 자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편안하게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 할 자리가 꼭 필요하지 않은가. 소설 속 편의점과 같은 곳이 좀 더 많아진다면 마스크를 벗은 후에도 좀처럼 열리지 않은 우리 사회의 숨통이 조금 터질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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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목사 부부의 대화로 시작한다. 그들은 한 사내아이를 입양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들은 아들을 사고로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또 아이를 입양하려는 것부터가 무리였지만, 왠지 남편인 석호(김민재)는 재촉하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그들에게는 이미 다른 아이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입양하려는 아이인 이삭(박재준)는 시력에 문제가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 결국 실명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름부터가 뭔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주는 복선인가 싶었지만,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입양하려고 했던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싶었지만, 이 역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 것도 없었다.


새로운 아이가 집에 들어오자, 이미 있던 부부의 아이들은 새 아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 속 어디에도 부부는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거나, 갈등이 일어날 때 적절한 개입과 조정을 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이쯤 되면 감독이 가정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




그렇게 입양된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이상한 존재를 느낀다. 공포 영화 답게 안경을 벗고 있을 때 조금은 희미한 모습으로 나와 영화를 보는 사람도 함께 헷갈리게 만드는 수법을 사용하는데, 이미 앞서 이 부부 사이에 죽은 아이가 있다는 정보가 있었던 이상 아이의 귀신일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는 상황.


그럼 이 영화는 귀신을 다루는 공포영화인가 싶지만, 또 그걸 제대로 그려내지는 않는다(어쩌면 “못 한다”였을 지도). 시종일관 뭔가 있다는 느낌만 잔뜩 부여하지만 정작 그게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채 영화는 느릿느릿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또 이상한 성격을 드러내는 캐릭터는 부부의 맏딸인 주은(경다은)이었다. 새로 들어온 남동생을 처음부터 밀어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악마라고 소리치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모습. 덕분에 꽤나 민폐 캐릭터가 된다.


그리고 또 갑자기 등장하는 이웃집 청년. 그는 목사의 아내인 현우(박효주) 앞에 불쑥 나타나 나무에 매달려 있는 여자가 보인다느니 하면서 뭔가 분위기를 잡는다. 그런데 또 그의 아버지는 주인공 목사에게 와서 아들이 귀신에 들렸다느니 도와달라느니 하는 말을 하고, 알 수 없는 말만 반복하던 그는 또 영화 후반에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면서 나타나서 역시 미심쩍은 말을 던지는... 영화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





사실 영화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배우 박효주 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몇몇 드라마에서 인상적이었던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였지만, 이 영화에서는 영화 속 캐릭터처럼 처음부터 혼돈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그녀는 자신이 맡은 배역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주인공 부부를 목사 부부로 설정해 두고, 아이들이 알 수 없는 기도문을 외우도록 시켜둔 감독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마찬가지. 이건 어디서 배워온 관행인지... 대충 귀신, 축귀, 목사 가정, 입양 뭐 이런 것들을 조합하면 뭔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전반적으로 정신이 없었던 영화. 영화를 보는 내내 잘 집중이 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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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이 무엇이냐 - 사탄, 그 존재에 관하여
전원희 지음 / 이레서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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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사탄’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듣게 된다.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 좀 더 자주 듣거나, 가끔 듣거나 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소위 순복음 계열의 교회들에선 우리의 일상의 세세한 부분에도 사탄이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고, 반대로 현대주의적 사고에 익숙한 계열이라면 성경 본문에 나오는 사탄이라는 용어를 상징적으로 읽으려고 애쓸 것이다.


사실 성경 본문에서 사탄의 존재는 생각만큼 선명하지 않다. 그 기원에 관한 설명으로 자주 사용되는 에스겔서의 문학성 짙은 구절들처럼(의외로 이 책에서 그 부분은 다루지 않는다), 본문들은 사탄의 정체에 대해서는 별 단서를 주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그 언급도 그다지 잦은 편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니 이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것부터가 왠지 곤란해진다. 아는 게 부족하니 그 부족한 자리를 다양한 상상력이 채우곤 한다. 사탄의 능력과 영향력에 대한 온갖 소설들이 난무하게 된다. 당연히 이런 것들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이 책은 신구약 성경 본문과 중간기 문헌 속 사탄에 대한 언급들을 뽑아 종합해 놓은 작업물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탄에 관한 초기 언급인 스가랴서에서 사탄은 제한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하나님은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못살게 구는 것을 강한 어조로 책망하신다.


하지만 욥기에 이르면 사탄은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의 문제에 개입한다. 물론 이 때도 하나님의 제한 아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런 경향은 역대기에 이르면 좀 더 강해져서 사탄은 거의 독립적으로 다윗을 충동해 인구조사를 하게 만드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 안에서 사탄이라는 이미지가 점점 독립성을 갖는 존재로 발전되어 왔다는 주장이다.


교회에서도 구약의 이런 이미지는 대체로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사탄은 하나님의 제한을 받는 존재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로 묘사된다. 때로 사탄은 세상을 다스리는 자로, 그리고 성도를 악으로 꾀어내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에 의해 제압되고 만다.





언젠가 말했듯이 내 기준에 좋은 책은 어떤 내용을 아주 잘 정리해 놓거나, 생각지 못했던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굳이 따지자면 전자 쪽에 속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면도 몇 가지 보이는데, 우선 저자가 구약 성경 속 사탄 개념의 발전으로 언급한 구절이 겨우 세 구절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세 구절로 정말 구약 시대 유대인들의 사탄에 대한 관점이 발전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간기 여러 문헌들에 나오는 사탄과 그것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름들을 정리, 소개한 부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다만 그런 나열식 소개가 책의 전반적인 논지를 강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약간 회의적이다.


사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지는데, 1부에서는 사탄 개념의 이해를 시간적 순서대로 설명하는 부분이고, 2부는 갑자기 축귀사역, 즉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으로 넘어간다. 그리고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실제로 경험하긴 했으나, 자선을 베풀고 섬기는 것으로 예수의 삶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았을 것이라면서, 오늘날에도 그들을 따라 제대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짓는다.


내가 이해를 제대로 못한 게 아니라면, 여기엔 제대로 된 논리적 긴밀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저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얼기설기 늘어놓다가 급히 결론을 지은 느낌이랄까. 저자가 결론부에서 주장하는 삶의 중요성을 부정한다는 게 아니라, 그저 이 책 전체의 결론으로 이런 내용이 나오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었던 작업물이었다. 물론 결론의 어색함을 빼더라도 참고자료로서의 기능은 여전히 할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원전 속 기록들을 정리해 둔 부분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현대 저자들(가끔 이 사람이 이 분야의 전문가 맞나 갸우뚱 한 경우가 보인다)의 해석을 늘어놓은 부분보다 좀 더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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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헌법 - 국회의원 박주민의 헌법 이야기
박주민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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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회의원 박주민이 쓴 헌법 전문 소개서이다. 헌법 전문에 이어 제1조부터 제130조까지, 그리고 부칙까지 헌법에 실려 있는 모든 조항들을 실었고, 여기에 간단히 저자의 안내 코멘트가 덧붙여 있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법 용어를 비법조인인 평범한 시민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풀어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헌법은 오랫동안 그저 상징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모든 권력기관에서 제정하는 법과 규칙들의 가장 상위에 있는 원칙과 비슷한 느낌인지라, 실생활에 막상 어떤 영향을 끼칠까에 대해서는 큰 효능감을 보여주지 않았다. 개헌 논의가 종종 나오긴 했지만, 대부분은 권력구조, 그러니까 대통령 임기를 어떻게 바꾸고, 단임제를 중임제로 하고 뭐 그런 얘기만 크게 보도되는 지라, 더더욱 그들만의 이야기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었다.


하지만 실제로 헌법 조문에는 우리의 삶에 꽤나 밀접하게 다가오는 다양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추천한 대법원장 후보자가 낙마를 한 적이 있다. 다양한 의혹들이 제대로 소명되지 않았기에 다수인 야당에서 임명제청안을 부결시켜버린 것인데, 비슷한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부적격의견을 받았던 여러 장관후보자들이 결국 대통령에 의해 임명 강행된 사례들을 보면 결과적으로 좀 다른 모양새였다.


이유는 헌법에 대법원장의 경우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내용(104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케이스는 국무총리(86조)와 감사원장(98조)도 포함되는데, 현대국가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인 행정부 권력의 비대화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서도 국회의 임명동의권이 좀 더 강화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 동의를 받아 임명된 감사원장이 지난 1년 반 동안 저지른 일들을 보면 국회의 동의가 또 만능은 아니겠지만.





헌법 조항 중에 흥미로운 내용들이 꽤 보인다. 농지에 관련해서 121조는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만 농지의 소유권을 주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고, 123조에는 국가가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두고 있기도 하다. 근데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만 짜는 건 위헌 아닌가?


또, 같은 조문에는 국가가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를 개선해 가격안정을 통해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농수산물과 관련해서 자주 제기되는 게 중간유통업자들의 폭리인데, 헌법에 따르면 이런 부분도 국가는 손을 대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 같고.


여기에 현재는 운영되지 않는, 흥미로운 위원회가 하나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제90조에 나오는 국가원로자문회의라는 기구다. 의무설치 기구가 아니긴 한데, 이 회의의 의장이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정권교체가 되었다면 상대 당 출신의 전직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에게 자문을 하는 공식적인 자리가 만들어지는 셈인데, 잘만 운영 된다면 협치의 좋은 통로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또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는 듯하다.



물론 완전한 법이라는 건 있을 수 없지만, 적어도 헌법에 규정된 내용들만이라도 제대로 실천된다면 꽤나 괜찮은 나라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좀 더 자주 헌법을 이용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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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도 바울의 사회적 배경과 맥락 - 천막짓기와 사도직 신행신학 시리즈
로널드 F. 호크 지음, 이성하 옮김 / 알맹e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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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시기 가장 유명한 전도자였던 바울은 텐트메이커였다. 천막을 만드는 일로 자신의 사역에 필요한 경비를 스스로 충당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를 당대 랍비들의 전통 중 하나로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 전통을 따라 텐트를 만드는 기술을 배웠고, 틈틈이 일을 하긴 했지만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한 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좀 더 “고상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 이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조금 깊게 들어가 보면 이상한 부분이 하나둘 나온다. 바울은 얼마나 텐트를 만드는 데 시간을 할애했을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복음 전도가 우선이었고 텐트메이킹이 부업이었다면, 그 정도로만 일을 해도 정말 생계유지가 될 정도로 그 일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었을까?





이 책은 바울의 그 “부업”을 거의 “주업”의 자리로 끌어올린다. 당연히 이 과정은 세밀한 당대의 여러 문헌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구축된다. 우선, 랍비들이 따로 직업을 가지는 전통은 바울 시대 이후에 생겨난 것(아마도 예루살렘 함락과 그로 인한 경제적 곤궁에서 탈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생계를 위한 직업을 따로 갖는 전통은 오히려 그리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이게 절대적인 모습은 아니지만(수업료를 받거나, 유력자에게 의지하거나 심지어 구걸을 하기도 했었다), 분명 여러 그리스 교사들은 자신의 생계를 위한 일을 갖곤 했었다.


또, 그렇게 그들이 생계를 위해 일하는 작업장은 철학 강의나 토론을 위한 장소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특히 텐트를 만드는 일처럼 시끄럽지 않은 공간은 더더욱 이런 강의실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밤낮으로 일하고 있다(cf. 살전 2:9)고 말한다. 저자는 이것이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이른 아침부터 나가 일을 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전도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즉 바울의 “일”은 그의 사역의 중심에 있었다.


단지 실용적 차원에서만 “일”이 중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바울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값없이 주었다(cf. 고후 11:7)"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그의 “일”은 복음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전체적으로 볼륨이 작은 책이었지만, 꽤나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은 일을 하는 바울과 같은 인물이었다. 하루 종일 성경책만 파면서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식의 사역은 적어도 성경에 나오는 형태는 아니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목회자 이중직” 논란도 한심한 잡담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다른 일로부터 분리시켜 무슨 특별한 아우라라도 덧씌우려는 태도는 성경적이라기보다는 중세적 사고에 가까웠다.


여전히 몇몇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웬만한 중견기업 대표 못지않은 풍요로움을 누린다. 반면 절대 다수의 목사들은 말 그대로 생계의 위협을 느끼는 상태고. 이런 상황에서 목회자가 이중직을 해도 되니 마니 하는 소리는 말 그대로 배부른 자들의 훈장질에 가깝다.


바울은 당대의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걸 성경을 통해 보는 우리는, 단지 바울의 행동을 따라할 것이 아니라, 바울이 했던 고민을 오늘의 상황에 맞춰 하면서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새롭지만 오래된 고민을 하는 데 이론적인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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