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 고전의 숲 두란노 머스트북 2
블레즈 파스칼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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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물리학에 특별한 재능을 소유하고 있었던 파스칼은 기독교 신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대 교회가 지니고 있던 문제에 대해 제법 깊은 사고를 했지만, 오늘날 그를 종교적 개혁과 연결시켜 떠올리지 못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결국 어느 정도 당시 교회구조에 대한 순응으로 돌아섰던 인물이다.


팡세는 그런 파스칼이 남긴 아포리즘이다. 수백 개의 그리 길지 않은 경구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복잡한 전승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 애초에 어떤 순서로 쓰여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판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나 같은 일반 독자들이야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연구자의 경우에는 의사소통을 위한 기본적인 장절 배치에 대한 합의가 안 되는 건 조금 난감할 듯도 싶다.


책의 전체적인 볼륨이 꽤나 크다. 그만큼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인데, 각각의 항목이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서, 아무 데나 펴놓고 읽기 시작해도 상관이 없다. 애초에 이 경구들의 정확한 순서가 확정이 안 되어 있으니, 전체 구조에서 뭔가를 얻으려 해봤자 소용이 없다. 주제별로 모아놓은 이 책의 구분에 따라 읽어갔다.



종교, 정확히는 기독교에 관한 내용이 참 많다. 당시의 철학이란 곧 기독교에 관한 내용이기도 했을 테니까. 뭔가를 깊이 사고하려면 교회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떠나기 쉽지 않았으리라. 그 외에는 귀족과 같은 지체 높은 이들이 보여주는 모순적 행태 등이 또 자주 발견된다.


파스칼은 가장 비판적으로는 건 허위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건 교회 안에서도 왕궁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이다. 본질을 놓치고 껍데기에 집중하면서 벌어지는 모순은 우스울 지경이지만, 정작 그 안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보지 못한다. 물론 이런 문제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약하고, 흔들리기 쉽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인간 본성에 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인간이 언제 자주 실수를 하는지, 어떤 착각을 하고, 무슨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놓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인간의 특별함을 믿고 있었다. 인간은 너무 많은 곳에서 약점을 지니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특별한 자질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조금은 씁쓸하지만 위로가 되는 부분.



책의 상당부분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단편적인 단어와 문구들로 채워져 있다. 모든 부분을 꼭 다 읽어 내려가지 않더라도, 우연히 책장을 넘기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만나기만 해도 좋을 듯하다. 두껍지만 너무 겁 먹지 말고 조금은 마음 편히 들춰봐도 괜찮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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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웅 2022-09-02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스칼에 대한 더 깊은 연구요망
 
포르투나의 선택 2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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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술라가 죽었다. 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철저하게 숙청하고 독재관이 되어 권력을 손에 넣은 그는, 원로원 중심의 국정운영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각종 입법 작업을 모두 마치고는 전격적으로 정계은퇴를 한다. 누가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그럴 만한 위치도 아니었고), 애초에 6개월이었던 독재관의 임기 역시 그에게는 예외가 적용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오직 자의에 의해서 퇴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을까? 이 정도 법적 장치라면 누가 오더라도 한동안은 체제가 잘 유지될 거라고 예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역시 잠시 불안감을 드러냈듯, 법과 체제라는 건 한 순간에 뒤집힐 수도 있고, 역사란 늘 진보하는 것도 아니라는 게 곧 드러날 터였다. (이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와 민족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또 하나의 동기는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 느낄 수밖에 없는 피곤함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이번 권에서 술라는 꽤나 자주 이런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 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은 누가 짐작이라도 할까. 많은 최고 권력자가 결국 부패하거나 폭군으로 치닫곤 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최고 권력자가 되기를 원한다. 민주화 시대가 된 이후에는 왕이 아닌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이름으로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대한 욕망은 강렬하다. 문제는 자신이 정말로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느냐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 여러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되는 걸 보면 더욱 와닿는 부분인데, 막상 그 자리에 대한 욕심이 눈을 가리면 그런 건 보이지 않는 듯하다. 본인도, 참모들도, 지지자들도.



책의 또 다른 축은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카이사르는 소아시아의 작은 왕국을 오고가면서 자신의 기량을 뽐낸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폼페이우스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술라의 영향력이 줄어가는 원로원 안에서 자신의 당파를 만들면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다.


초반은 확실히 폼페이우스가 앞서나가는 모습인데, 조금은 무리하게 얻어낸 지휘권을 가지고 도착한 히스파니아 내전에서 그의 활약은 미미했다. 카이사르 못지않은 군사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명성과는 다른 모습인데, 하긴 20대의 젊은이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게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폼페이우스의 훗날을 예상할 수 있는 점이 몇 개 보인다. 그는 세르토리우스라는 강력한 적 앞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도 잠시 침울해지기는 했으나 끝내 자부심은 잃지 않았다(뭐 여기에는 그가 가진 재력이 한 몫을 하긴 했겠지만).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더 큰 인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큰 장애물이다.


또, 폼페이우스는 일단 자신의 전술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평소 무시하던 메텔루스의 작전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여준다. 흔히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나가는 경향이 있고, 결국 더 큰 실패를 경험하기 마련인데 이런 면에서도 그는 조금은 더 성장할 수 있는 자질이 있었다.



시리즈 전체의 제목처럼, 일인자가 되기 위해 달리는 군상들의 모습에서는 역동성이 느껴진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그렇게 바라던 일인자가 된 후 말년이 행복해 보였던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함정. 마리우스도, 술라도.


대충 6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겨우 사흘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렇게 재미있으면 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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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
폴 존슨 지음, 김주한 옮김 / 포이에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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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2천 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사회학적으로 봐도 2천 년은 결코 짧지 않아서그 사이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들은 오늘날 기독교의 형태에 많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신학적으로 봐도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를 이끌어 오신그리고 그분의 교회에 허용하신 유일한 시간들이고쉽게 말하면 이 시간들에 관한 이해 없이 오늘날의 교회를 제대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교회는특히 개신교회는 역사 부분에서 특히나 취약한 것 같다종교개혁 이래로 개신교회는 단절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아왔고마치 그들이 성경 시대에서 바로 튀어나온 사람들인 양 착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이건 가톨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오늘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신앙의 각종 의식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신조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아는 일은 생각보다 우리의 신앙에 도움이 된다다들 학창시절 덮어놓고 외우라는 말이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기억하지 않는가.



기독교의 역사 전반을(이 책은 그 시작부터 20세 중반까지를 담고 있다다루고 있는 이 책은일단 그 볼륨에서부터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각주를 빼도 850여 페이지에 달하해서그냥 보고만 있어도 왠지 배가 부른 느낌이다이 한 권이면 얼마나 많은 날들을 새벽까지 즐길 수 있을까 하는..?


볼륨만이 아니라 내용도 알차다사실 어쭙잖은 저자라면 이 정도 두께의 책을 쓸 문장을 떠올리지도 못한다(두꺼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저자는 교회와 세상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다양한 자료들을 종합해 능숙하게 엮어낸다핍박을 받던 교회가 제국의 종교가 되고게르만족의 침범을 어떻게 흡수하면서 그들을 지도하는 자리에 이르렀는지군주들과의 권력게임에 참여해서 자신의 몫을 챙기려 하다가 어떤 변질을 겪었는지 등등.


특히 저자는 이 과정을 비판적으로 서술하려고 애쓰고 있다기독교교회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대부부분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고그 결과로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에 자주 서게 되는데이 책의 저자는 일부러 그런 관점을 피하려고 노력한다역사 서술에서 객관성은 꽤 중요한 요소니까.


다만 이 객관성이라는 요소가 무조건 서술 대상의 동기를 (안 좋은 쪽으로의심하거나깎아내리거나 하는 것으로 확보되는 건 아니다물론 이 책이 꼭 그런 식으로 쓰였다는 말은 아니지만분명 일정 부분에서는 그런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사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신앙의 특성상그 중 어느 한 쪽에 서게 되면 다른 쪽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는 측면도 분명 있긴 하다.


또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책의 서술이 유럽의 기독교 역사에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물론 기독교의 전성기가 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하긴 했고다른 지역의 기독교 역사에 관한 자료가 월등히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최소한 아시아 지역으로 한동안 꽤나 확장해나갔던 동방 기독교에 한 장을 할애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의식혹은 역사에 관한 감각을 갖게 되는 데는 따로 정도가 없다역사를 다룬 좋은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길러가는 수밖에여기에 이렇게 2천 년의 역사를 통시적 관점으로 써 내려간 책은 많은 도움을 준다한 번에 쭉 읽어나갈 수 있으니까물론 다른 모든 분야들처럼 꽤나 세분화된 오늘날의 역사계에서한 사람이 이런 식으로 전체를 써 내려가는 일에 약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그건 학자들끼리 다투라고 하면 그만이고.


이런 책을 보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문제는 참가자가 있을까 하는 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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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문명 - 서구중심주의에 가려진 이슬람과 아프리카의 재발견
임기대 지음 / 한길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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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북아프리카를 동서로 나눌 때 리비아 서쪽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유목민족이다오늘날로 치면 모로코알제리튀니지 등지다물론 책에도 나오듯 현대에는 북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도 다양하게 이주해서 살고 있다고 한다.

 

베르베르족은 고대로부터 여기저기에 언급되는 사람들이다하지만 그들이 정치적 결사체로서 활동하거나 어떤 중요한 국가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잘 듣지 못했다말 그대로 사막의 유목민족이라는, (정치적인중요성이 덜한 느낌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에 관한 역하는 기록으로도 많이 남지 않아서 알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대 로마 제국이 이 지역을 지배하기 이전의 역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마우레타니아 왕국이나 누미디아 왕국 등에서 잠시 얼굴을 비치고이후에는 지속적으로 다른 민족들의 지배를 받아왔다이슬람 세력이 이 지역으로 들어온 이후에는 아랍 민족과 상당부분 동화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베르베르족의 전반적인 정보를 담아낸 책이다그들의 역사와 문화심지어 음식까지베르베르족에 관해 설명을 하려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통칭해서 베르베르족이라고는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역시 다양한 모습으로 주거주지와 마주한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분화되었다는 점이다여기에중세의 분류가 오늘날에는 또 맞아떨어지지 않는 면도 있고북아프리카 전역에 퍼져 사는 사람들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 복잡한 구성을 가진 사람들을 민족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서 언어를 기준으로 접근을 시도한다베르베르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전반적으로 비춰보면서 이들을 조명하는 방식물론 문제는 또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이 언어와 문제를 사용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쪽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베르베르족이라는 범주를 좁힌 후저자는 본격적으로 그 역사를 훑어나간다앞에서 간단히 요약한 것처럼그들은 독자적이고 강력한 국가를 세우지는 못한 채 대신 카르타고로마그리고 이슬람 국가들의 지배를 받았다특히 이슬람 세력이 북아프리카를 정복한 이후여기에 강력하게 동화된다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을 아랍인과는 다른베르베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그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베르베르인의 과거만이 아니라 근대와 현대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담아낸다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는 유럽 열강에 의해 멋대로 분할되었는데이 과정에서 베르베르인들도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이슬람 문화권이었던 아프리카에 기독교 문화인 유럽인들이 들어오면서피지배계층에 대한 통제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민족 간 분열 정책을 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알제리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 같은 경우는 그 땅의 베르베르인들을 좀 더 우대하는 정책을 폈고그 덕분에 꽤 많은 베르베르인들이 프랑스로 이주해 살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독립을 한 이후에는 또 이게 일종의 독이 되어서 그들에 대한 아랍인들의 억압의 빌미가 되기도 했으니...


확실히 이쪽 동네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잘 모르는 게 많아서호기심을 채워가며 흥미롭게 읽어볼 만한 이야기들이 많다근래에 베르베르인들에 의한베르베르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려는 움직임들이 늘어나고 있고여러 나라에서 일종의 투쟁에도 나서고 있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그 와중에 다른 나라의 분쟁에 개입해서 문제를 키우는 흑역사도 좀 보이고.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북아프리카의 원주민들 중 한 갈래인 베르베르인들에 관한전반적인 이해를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두껍고주제도 주제라서 읽기에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의외로 술술 넘어간다대학 1학년 교양과목 정도의 수준으로 편안하게 쓰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다만 이 대학 교양과목 수준이라는 말에 걸맞게책 초반의 도입부는 약간 지루하다뭔가 처음부터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는 교수 특유의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책의 나머지 부분의 서술 난이도와도 썩 잘 어울리지 않고뭐 그래도 크게 문제될 건 아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책 2장에 실려 있는티피나그라고 불리는 베르베르어 문자다뭔가 그림 같기도 하고 기호 같기도 한 문자가 예뻐 보이는데외국인들이 한글을 볼 때 그런 느낌이라고 하는 말을 언뜻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성경에도 나오는 이집트의 파라오 시삭(세손크)이 베르베르인이었다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이런 쪽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가볍게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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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3-23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제목에 혹해서 이미 예전에 ˝읽고 싶어요˝ 눌러 놓고도, 어떤 속내용인지 전혀 모르다가 노란가방님 덕분에!!!

노란가방 2022-03-24 00:17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 어떻게.. 좀 더 읽어보고 싶어지셨나요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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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제목의 역사 관련 책들(“시시콜콜~”로 시작하는)을 몇 권 낸 저자가 복지라는 키워드로 조선시대를 읽어 내려간 책이다코로나 시대 이후 재난 지원금 같은 정부의 직접복지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감이 있지만이런 종류의 복지정책은 근대국가가 형성된 이후에나 나온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다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조선 시대가 어떻게 생각하면 일종의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말한다흥미로운 이야기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환과고독을 가장 먼저 챙기겠다고 선언한다환과고독이란각각 독신 남성독신 여성고아독거노인을 가리킨다농업이 주된 경제활동이었던 당시 의지할 가족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이었고이들이 국가적 복지의 주요 대상이었던 것이다태조의 이런 선언 아래 조선은 굶어죽는 백성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주된 목표였다.


조선 시대의 복지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큰 재해가 닥쳤을 때 긴급하게 지급하는 진휼춘궁기를 버티기 위해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 후 돌려받는 환곡그리고 땅을 떠나 구걸하며 다니는 백성들에게 죽이라도 먹이기 위해 시행하는 일종의 무료급식소인 시식이 그것이다이 정도면 제법 갖추고 있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제도가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했다특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백성들을 돕기 위한 제도라면 지출액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실제로 조선 왕조의 예산 가운데 이런 복지 지출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정부조직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지출했다고 한다문제는 이런 지출을 충당할 수 있는 수입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조선 왕조는 내내 낮은 세율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여기고 있었고큰 수익을 낼 수 있는(그리고 세금도 많이 걷을 수 있는상업활동을 억압하는 것을 기본적인 경제정책으로 여겼다돈이 나올 데는 없는데 베풀어야 할 곳은 많아지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실제로 이 업무를 담당하던 지방관과 아전들의 능력과 도덕성에도 문제가 생기기 쉬웠다맨날 잔치를 벌이고 술만 마실 것 같았던 지방관들은 엄청난 복지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 했을 정도고온갖 규제들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도 처벌을 받기가 쉬웠다여기에 오랫동안 지역에 자리를 잡은 아전들의 부정부패는 이제 갓 부임한 관리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어려운 시절에 곡식을 빌려주고 약간의 이자를 붙여 넉넉할 때 돌려받아 백성들의 경제적 안정을 꾀한다는 환곡은 지방 관아의 재정수입을 위한 제도로 변질되었고여기에 환곡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과정을 둘러싼 농간까지 더해지니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특히 학교에서 배웠던우리가 잘 아는 삼정의 문란이 일어난 조선 말에는 백성으로 사는 것이 끔찍할 정도.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능력이 없거나의지가 부족하면(나아가 악한 욕구가 개입되기까지 한다면정책이 제대로 집행되기가 어렵다적지 않은 왕들이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어쨌든 명분으로 내세우고공식적으로 이를 명령했더라도 일선의 담당자들이 그에 부응하지 못하면 왕 혼자서 어찌할 수 없었으니까.


현대 국가에 적용해 보면 대통령 하나를 잘 뽑는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된다정책은 굉장히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얽혀 있고실제 수행되기까지에 거쳐야 할 절차도 복잡하다슈퍼맨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식으로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반대로 생각하면 무능하거나 부패한 대통령이 당선되어도 금방 나라가 흔들리지는 않을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또 언제나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일은 좀 더 쉽더라.


 

조선의 복지 정책은 분명 애초의 기획의도대로 끝까지 집행되지는 못했다하지만 그런 정책들은 나름대로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후대에 일어난 부작용만을 보고 처음부터 그 의미를 모두 부정하는 것도 공정하지는 않을 것이다하나의 정책이 수백 년이 넘게 고쳐지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현실이 달라지는데 옛 법칙만 고집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한 번 만들어진 법은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다달라진 상황에 맞게 개정되어야 하고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어야 한다중요한 건 법의 목적인 사람을 구하는 일에 부합하느냐이고여기에는 문자로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의 노력이 필수적이다정치란게으른 사람들은 할 수도해서도 안 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어떤 정책과 고민들이 필요할까법과 정책을 맡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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