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셀림 - 근대 세계를 열어젖힌 오스만제국 최강 군주
앨런 미카일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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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스만 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수없이 많았던 여러 이슬람 왕조들 중 하나라는 걸 기억하기라도 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 테고난공불락의 요새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켰던 주인공이자1차 세계대전의 참전국이라는 점까지 안다면 역사덕후쯤 되지 않을까?


방금 말한 사건들은 세계사적으로도 꽤 중요한 일들이었다우선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이 1453년이었고1차 세계대전은 1915년이다엄청나게 오랫동안 존재했던 나라다건국부터 멸망까지 600년이 넘게 지속되었고전성기에는 오늘날의 튀르키예키프로스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전역세르비아불가리아알바니아사우디아라비아 일부예만 등등에까지 이르는 엄청난 영토를 보유한 나라였다.


당연히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나라였다하지만 그런 오스만 제국임에도 그 나라에 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우리로부터 먼 나라라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지만정작 프랑스나 영국이 멀긴 더 멀다서아시아 역사에 관한 전반적인 관심의 저조함그리고 어쩌면 이슬람에 대한 반감 같은 것들이 복합하게 엮여있는 건 아닐까 싶다.(애초에 그냥 역사에 관심이 없을 가능성도...)





이 책은 그런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확립했던 술탄 셀림 1세에 관한 이야기다. ‘술탄은 이슬람 세계의 정치 지도자를 가리키는 명칭이다그의 할아버지가 바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킨 메흐메트 2세다셀림은 그런 나라를 물려받아서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위대한 정복왕이었는데동쪽으로는 오늘날 이란 지역을 지배하던 사파비 제국을 밀어내고남쪽으로는 당시 이집트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전반을 지배하던 맘루크 제국을 멸망시키고는 칼리파’ 직위를 차지한다. ‘칼리파는 이슬람 세계의 정신적(종교적최고지도자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책은 셀림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일대기를 묘사한다덕분에 본문만 해도 758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 되었는데글씨 크기도 크고줄 간격도 넓어서 눈에 부담은 적었다여기에 적절하게 나누어진 챕터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 번에 그리 부담없이 쉬어가며 읽을 수도 있었고책의 편집 쪽은 좋은 점수를 줄만한 책.


당대의 사회 풍습들문화와 관습들특히 정치적인 상황이라든지인물들의 판단과 사고 등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서확실히 재미가 있다여기에 당시 유럽의 상황을 함께 더해서 시간적 감각을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이 정도 알찬 책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다만아쉬운 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으니...





이 정도로 두꺼운 책을 쓰려면 시간도 적잖게 들어가고오랫동안 서술의 대상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애정도 생기기 마련이다그런데 이런 애정이 지나치면 서술의 공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게 문제한 마디로 말하면 저자는 이 책의 주인공인 셀림이 마치 우주의 흐름을 바꾼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물론 이 문장은 살짝 과장되어 있다)


당연히 이 정도로 큰 나라라면그 시대 주변의 여러 민족과 국가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다른 나라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오스만 제국의 확장에 대항해 나름의 반응을 보일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문제는 이 주변국들의 결정을 오스만제국이 내린 결정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는 점.


예컨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 서술 중 하나는콜럼버스가 아메리카로 간 이유가 오스만제국 때문이었다는 것이다콜럼버스는 오스만제국을 넘어서는 동쪽의 세력과 연합해 오스만 제국을 포위한다는 (약간은 허황된계획을 실현하려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고결국 그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건 오스만 제국 때문이었다는 식원인(遠因)과 원인(原因)을 구분하지 못하면 이런 실책에 빠지기 쉽다.


오래 전에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항장이었던 고선지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다놀랍게도 그 책에는 유럽 문명의 아버지 고선지 장군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붙어 있었는데그가 유럽 문명의 아버지인 이유는 당나라와 아바스 왕조 사이의 결정적인 전투인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가 패함으로써당시 당나라가 갖고 있던 각종 기술이 서양으로 넘어가서 후에 큰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다만 자신이 서술하는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좀 과해 보인다는 건 확실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서술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갖고 있었는지이슬람에 대한 우호적 서술과기독교 세력에 대한 비우호적 서술이 자주 교차되곤 한다예를 들면 28쪽 하단부에는 그리스도의 유산과 마찬가지로셀림 이전의 제국과 세계가 있었다면셀림 이후의 제국과 세계가 있었다는 문장이 있다그리고 첫 휴지부에는 줄표와 함께 기독교인은 이런 비교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겠지만이라는 삽입구가 더해져 있고.


이 문장은 두 가지 차원에서 부절적한데하나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옹졸하고 뒤틀린 심사를 가진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고다른 하나는 셀림의 실제 영향력이 그렇게 강했는지에 관해서 다른 의견도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점이다이 외에도 이런 부정확한 서술들이 몇 군데 더 보이긴 한다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어야 할 부분.



책이 나온 게 2022년 5월 31일인데한 달도 안 돼서 이 두꺼운 책의 리뷰가 알라딘 기준으로 여섯 개가 올라와 있다별점은 하나같이 만점인 별 5개를 주고 있지만리뷰의 내용은 심히 부실하다다들 출판사에서 홍보목적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글들이다요건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은.


물론 홍보수단이 제한적인 출판사들이 이런 식으로 책을 제공하고 리뷰를 요청하는 방식은 이해한다내 경우도 종종 그런 연락을 받곤 하니까다만 조금 더 성의 있게 책을 읽고 리뷰를 하면 어떨까 싶다괜찮은 책이 오히려 그런 리뷰들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수 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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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된 항해자 - 21세기 말레이 세계의 정화 숭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연구소 Asia+ 7
강희정.송승원 지음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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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의 3대 황제인 영락제는, 1405년 정화라는 이름의 환관을 수장으로 삼아 대규모 함대를 출범시킨다정화가 이끈 이 함대는 오늘날의 남중국해에서 출발해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들을 거쳤고최종적으로는 아라비아와 동아프리카까지 도착했다(정화 본인은 아라비아까지만 가고분견대를 보냈다는 설도 있다).


참고로 이 시기는 이미 동서양의 교류가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에서 일한 게 13세기 말이었고그보다 앞서 실크로드를 통해 다양한 문물과 사람들이 양측을 오고가며 교류했었다바닷길 역시 무역상들의 무대였고.


하지만 어쨌든 그 시절 이 정도로 멀리까지 나갔던 해양 탐험은 처음이었다콜럼버스가 탐험에 나선 건 아직 100년 후였으니까. 2만 명이 넘는 엄청난 인원들과 수백 척의 배로 이루어진 정화의 선단은 동남아 곳곳의 지배자들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도록 만드는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이 때 조공이라는 게 명분상 종주권을 인정하는 대신봉신국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이익을 크게 얻어가는 형식인지라어차피 중국인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다면 썩 괜찮은 선택이긴 했다조공을 바칠 때 함께 가져가는 상품에는 면세 혜택이 주어졌고당연히 이 조공무역을 통해서는 큰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은 흥미로운 내용을 덧붙인다그렇게 황제의 명령을 받아 인도양을 누볐던 정화가동남아시아 각국특히 말레시아에서는 거의 신적 존재로 숭배되고 있다는 것개인적으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말레이시아에는 특이한 성격의 종교적 건물들이 많다고 한다유교와 불교와 도교 신앙이 혼합된 사당혹은 사원이 그것중앙에는 불상이 있지만 한 편에는 정화의 형상이또 다른 편에는 관우상이 동시에 세워져 있는 모습니다이것도 재미있는데더 흥미로운 건 정화 모스크라고 불리는 이슬람 사원들이다대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 색으로 칠해져있고기와까지 얹어져 있는 중국식 건물인데 모스크의 기능을 한다는 거다.


그 배경에는 말레이시아에 이주한 화인즉 중국인들이 겪었던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이주한 건 식민지 시절로유럽의 통치자들이 일을 시키기 위해 중국 이주민들을 대거 정착시켰다고 한다물론 그 이전에도 소규모 이주는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데 말레이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배자들을 몰아내고 독립을 하면서 이런 상황에도 변화가 생겼다식민지배 시절을 거치며 소수의 이주 중국인들이 원주민보다 더 큰 부를 쌓으면서 그들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고,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화인들도 대거 공산당에 가입하고 정치기구를 만들어 인도네시아 정치에 개입하려 하면서 더 큰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60년대 후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수하르토 시절에는 강력한 반공주의의 결과로 중국 문화와 신앙전통 자체가 금지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화인들은 지역 문화와의 동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는데그것이 바로 정화 숭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사실 정화의 아버지는 서역에서 온 무슬림이었고그런 정화와 그의 일행이 인도네시아에 이슬람교를 전해준 인물이라는 것국민의 절대 다수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인들에 대한 반감을 줄여주는 데 이보다 좋은 소재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한 역사적문헌적 근거는 부족하다어떻게 보면 역사의 날조, “이것도 중국이 한 일이냐는 식의 비아냥거림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목숨과 재산이 달린 위기의 순간 화인들의 살아남기 위해 정화라는 인물을 끄집어 내고그를 모신 사당을 세우고그의 벽화가 그려진 모스크까지 세우는 모습(온갖 종류의 구체적 형상을 거부하는 정통파 무슬림들이 보면 경악하겠지만)은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한편으로 최근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는 동남아의 정화 기념사업들은중국 정부의 중국몽과 연결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중국 땅 밖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단합과 세력화의 중심 인물로 정화 신화를 이용하는 느낌이랄까고대의 문화가 다양하게 교류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걸 관찰하는 건 흥미롭지만그게 현실 정치에 이용되는 과정에서 윤색되는 모습을 보는 건 좀 우스꽝스럽다뭐 그게 중국의 일만은 아니지만.


여전히 모르는 나라와 민족들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읽는 건 즐거운 일이다여전히 세상은 넓고내가 모르는 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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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국가, 거란 - 거란의 통치전략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109
김인희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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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초반 중국의 장성 이북 지역에서는 거란족이 크게 세력을 떨친다당시 중국은 5대 10국 시대라고 불리는 혼란기였고거란족은 지리적으로 북쪽에 위치한 5대와 관계를 맺으면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한족들을 포로로 잡아왔고후진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병력을 지원하면서 장성 이남 지역을 포함하는 연운 십육주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이 책은 약 200년 동안 존재했던 거란국또는 요나라에 대한 연구서다여러 명의 저자들이 참여해 각각 거란국의 외교언어와 문자행정기구학문(유학등을 살피고거란국이 가진 정통성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도 살핀다거란국에 대해서 매우 제한적인 정보만 알고 있었던 차에 꽤 흥미롭게 읽었다.


참고로이 거란국이 등장했을 시절 한반도에는 고려가 있었다왕건이 즉위한 게 918년이고야율아보기가 거란국을 세운 게 916년이니까 시기적으로는 거의 동시였다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드라마 대조영에서 대조영의 라이벌이었던 이해고그의 민족이었던 이진충손만영 같은 인물들이 거란족이었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지 않을까.



책은 이 거란국에 관해 몰랐던 다양한 정보들을 알려준다우선 흔히 아직 나라가 발전하지 않았던 시기에 거란이라는 국호를 썼다가 후에 ’(대요)라는 이름으로 바꿨다고 알고 있었지만, ‘거란이라는 국명은 거란족들 사이에서 계속 사용되었고, ‘는 한인들을 상대할 때 사용한 이름이라고 한다.


단지 나라 이름만이 아니라 거란국은 통치 제도에서도 이런 이원적 형태를 띠었다북부의 거런인들과 남부의 한인들을 다스리는 기구를 항상 두 개씩 만들었던 것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거란문자(대문자와 소문자가 있었다!)를 만드는가 하면거란인들보다 높은 비율의 한인들을 통치하기 위해 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했다그 덕분인지거란국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들어선 여진족의 금나라가 100여 년을 지속했던 데 반해거란국은 2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외정책에 있어서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거란국은 한인왕조들에 비해 호전적이지 않았다는 부분이다물론 어떤 나라가 처음 세워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무력의 사용이 필수적이었지만일단 나라가 자리를 잡은 후 거란은 중원을 향해 정기적으로 침공해 들어오는 식의 다른 이민족들과 달랐다는 것.


연운십육주를 할양받은 후송나라로부터 매년 공물을 받는 조건으로 우호관계를 맺은 전연의 맹약 이후 거란국은 이 맹약을 대체로 잘 지켰다협정을 맺은 거란국의 성종과 송나라의 진종은 형제의 관계가 되었고(이 때 송황제가 형이 되었는데그 이유는 나이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황제들의 관계도 여기에 근거해 서로의 족보를 정했다고 한다.



여러 명의 저자들이 각 분야를 나눠서 서술했지만참고했던 자료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인지 같은 내용이 반복해서 보인다총괄 편집자가 조금 신경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같은 서술이라도 다른 분야에서 인용하며 분석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겠다 싶기도 하고.


책의 부제가 거란의 통치전략 연구이다 보니거란국이 어떻게 융성했는지에 관해서만 볼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있다아무래도 국내에서 거란을 다루는 책 자체가 적으니까이왕이면 거란의 쇠퇴기멸망에 관한 상세한 분석 같은 것도 있었더라면 좀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뭐 이 정도만 해도 감사하지만.


대표저자인 김인희의 다른 책을 보다가 여기까지 끌려(?)왔다앞으로도 몇 권은 좀 더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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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3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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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 로마를 지배했던 독재관 술라가 죽으면서이번 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카이사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으로잘 생긴 외모에뛰어난 판단력까지 가지고 있던 그는 순조롭게(물론 해적에게 잡혀서 몇 달간 인질생활을 한다던가상관에게 찍혀서 중요한 임무에서 배제된다던지 하는 걸 순조롭다고 할 수 있다면관직의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한다.


앞서 히스파니아 전선에서 세르토리우스에게 고전하며 톡톡히 교훈을 얻은 폼페이우스도 마침내 로마에 돌아와 집정관에 오른다앞서 술라에 의해 원로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기사계급에 머물기로 결정하면서기사 출신으로 집정관에 오르겠다는 묘한 고집을 부르던 폼페이우스는본거지인 피케눔 출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로 돌아와서 은근한 위협을 하며 집정관직을 요구한다.


확실히 정치적 감각이 떨어졌던 그였다군대를 데리고 허가도 없이 이탈리아 영토 안으로 들어와버린 그는당장 눈앞의 자리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이를 일깨워준 것이 당시 크라수스의 부관을 맡고 있던 카이사르였다. (그리고 자연히 훗날 삼두정치의 한 명이 된 크라수스도 등장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시종일관 돈 버는 것 말고는 별다른 능력이 없는 수전노로 묘사되었던 크라수스는이 책에서는 좀 더 우직한 인물로 그려진다물론 돈을 아끼려는 면모는 여전하지만비전도 정치력도 없는 그런 인물을 아니었다는 것그런 그 역시 카이사르의 중재 적분에 폼페이우스와 함께 집정관에 오르게 된다이제 카이사르가 이 두 사람을 어떻게 구워삶게 될지가 펼쳐질 듯.



마리우스와 술라라는 거대한 두 개의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또 다시 앞서 말한 거물들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서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이 어째서 그렇게 오래 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자연스러운 세대교체란 이런 걸까 싶은.


물론 이들이 다들 같은 정치적 색깔을 지녔던 건 아니다시골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마리우스는 원로원의지지 대신 자신의 신력과 민중들의 인기를 바탕으로 일곱 번이나 대제사장이 되는 업적을 세웠고반대로 명문귀족 출신이었던 술라는 그런 민중파들을 가혹하게 숙청하고 독재관이 되었고원로원의 권위를 크게 높이는 정책을 추진했다폼페이우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골출신이었고카이사르는 명문 귀족 출신이었다.


말하자면 로마의 권력자는 어느 한 집단에서 독점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들이 유입되고 있었다는 것비유하자면 야당과 여당이 정권을 주고받으면서 국가운영을 할 수 있는 인물들을 키워내고 있는 것 같달까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채로 로마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었다물론 항상 유능하고 선의를 가진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아니었지만.



매스컴을 통해서 벌써 수십 년째 세대 갈등/차이가 단골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이미 손에 뭔가를 쥔 사람은 오래도록 놓지 않으려고 하고아직 가진 것이 없는 세대는 그걸 빼앗으려고 하다 보니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다다른 말로 하면 세대교체가 잘 안 되는일종의 정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결국은 새로운 세대가 힘과 능력을 길러서 빼앗아 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뺏긴 사람 입장에선 속이 상하겠지만뭐 일이라는 게 다 그렇게 되어 가는 게 아니던가좀 더 일찍 물러나서 좋은 선배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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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돈의 역사 - 명화로 읽는 돈에 얽힌 욕망의 세계사
한명훈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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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의 다양한 장면들을 관련된 그림과 함께 짤막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총 다섯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파트마다 적게는 여섯 개, 많게는 여덟아홉 개 정도의 꼭지가 포함되어 있다. 각각의 꼭지도 그렇게 길지 않아서, 큼지막한 그림이 몇 개씩 포함되어 있는데도 예닐곱 페이지 정도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구성이라는 말.


목차만 읽어봐도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로 역사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경제에 관한 다양한 상식들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역사학의 하위 분야로서의 경제사이니,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가질 만하고, 컬러 도판이 잔뜩 실려 있어서 미술 쪽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도 한 번 볼만할 듯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실린 상당 부분을, 다른 책들을 통해서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몇몇 항목들은 새롭게 알 수 있었는데, 조선 시대 우리나라에서 서양에 비해 이른 시기에 꽤나 고도화 된 은 정련 기술이 발견 되었다는 내용이 그 중 하나다. 하지만 그 기술의 가치를 몰랐던 관리들에 의해 사장되었다가 결국 일본으로 수출되어 그쪽 경제 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씁쓸한 소식.


기초적인 상식 정도가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각 항목이 충분히 자세한 설명을 담아내기엔 적기도 해서, 뭔가 좀 설명을 하려다가 뚝 끊어지는 느낌이 종종 있다. 뭔가 깊이 배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읽다가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하면 관련된 또 다른 책을 찾아보는 동기 정도로 이용하는 게 바른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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