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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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주간 아사히라는 잡지에 2년가량 연재한 에세이를 책으로 엮었다. 단독 작업은 아니고 안자이 미즈마루라는 작가와 함께 내용을 진행했는데, 미즈마루는 이 책에 들어가는 여러 그림들을 직접 그리기도 했다.(원래가 미술 전공)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제대로 접해 본 건 처음이다. 그저 뉴스나 이웃 블로거들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났던 게 전부인데, 일본의 우경화에 쓴 소리를 하는 등 개념 작가 정도의 이미지만 있었을 뿐이다. 사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작정하고 쓴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냥 편하게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들을 적당한 아재 유머를 섞어 늘어놓은 것에 불과해서 작가로서의 무라카미를 만났다고 하기에는 좀 부족할 듯싶다. 워낙 편하게 써놓은지라 읽는데도 딱히 부담 없이 술술 넘어갈 수 있었다.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책의 주제라든지 하는 부분보다는 작가 자체를 좀 더 알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사람 좋은, 보통 호인(好人)’이라고 부를만한 아저씨랄까. 가끔은 얼근히 취해서 조금은 시끄럽게 떠들더라도, 성실하게 자기 일은 해 내는 그런 사람. 소탈하고 조금은 샤이(shy)한 면도 있는 그런 멋있는 중년.(이 책은 20년 전에 쓰인 거다) 물론 금세 친해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책 제목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어서, 알라딘의 책소개에도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책 전반에 고양이 이야기가 주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은 겨우 몇 편에 걸쳐 나올 뿐이고, 나머지는 좀 더 일상적인 대화였다. 그런데 그렇게 적은 분량 중에도 무라카미가 키웠었던 고양이 이야기가 제법 인상적이다. 20년이 넘는 수명도 그렇고, 새끼를 낳을 때마다 무라카미를 옆으로 와서 손을 붙잡았다는 일화도 그렇고... (그래도 너무 짧으니 아쉽)

 

     가볍게,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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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고양이 1~2 세트-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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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주인공 바스테트는 파리에서 집사인 나탈리와 함께 살고 있는 암고양이다. 녀석은 종간 소통이라는 큰 뜻을 품고 주변의 생물체들과(쥐라든지, 새라든지, 나중에는 심지어 사자와도) 대화를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중. 얼마 전에는 이웃집에 사는 피타고라스라는 이름의 똑똑한’(주인으로부터 일종의 수술을 통해 머리에 단 USB단자를 통해 직접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수고양이를 만나 인간과 고양이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집사가 새로 사온 텔레비전 속 세상은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곳곳에 테러가 발생하고, 광기에 휩싸인 인간들이 폭동으로 치달으면서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도 집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문명이 파괴되고 도시의 지배자가 된 쥐떼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인류와 고양이들의 역사와 문명을 보존하기 위해 나선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주변의 고양이들과 생존자들을 설득해 센강의 한 작은 무인도에 방어진지를 쌓고 결전을 준비한다.

 

 

2. 감상평 。。。。。。。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글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그것도 종간 소통을 추구하는 오만한(고양이는 원래 오만하다!) 암고양이의 이야기라면 손에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검은색 고양이 얼굴이 박힌 표지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집어 들었다.

 

 

     ​물론 모든 고양이 이야기가 그렇듯, 이 작품 역시 고양이를 통해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다.(이점은 참 아쉬운 부분이다. 정말로 고양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까) 그 커버를 한 장 벗겨내면, 작가가 오래 전부터 일관되게 추구해 온 한 가지 주제에 이른다. 일종의 범신론적 자연주의라고나 할까 뭐 그런. 여기에 동양의 선불교나 뉴에이지적 명상을 통한 물아일체 같은 도구들이 적당히 버무려져 있다. 긴박한 상황에서 주인공 바스테트는 피타고라스와의 교미를 통해, 혹은 명상을 통해 특별한 의식의 지점에 이르는데, 그 마침내 정신적 자유에 이르게 된다는 식.

 

     여기에 또 한 가지 코드는 무식하고 광신적인 종교인들과 합리적이며 뛰어난 엘리트 과학자들이라는 설정들이다. 베르나르의 작품에서 종교인들은 거의 일관되게 문제만을 일으키는 몽매한 이미지인데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종교인들은 종교 일반이 아니라 서양의 주류 종교, 즉 기독교를 가리킨다. 일단 작가 자신이 선호하는 동양의 신비 종교쪽은 해당사항이 없으니까.

 

     특히 아쉬운 점은 이런 이해가 작품들이 늘어나는 데도 딱히 발전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게 그냥 위키백과 정도에나 나올 수준의(물론 종종 꽤나 잘 설명되어 있는 항목도 있다) 이해에 머물고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여러 작품들을 봤지만 그 안에서 종교에 관한, 그저 흥밋거리 위주를 넘어선 이해를 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들을 위한 투쟁과 대규모 전쟁씬 등은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다. 그리고 여전히 인간의 성품에 관한 흥미로운 통찰들도 몇 가지 보인다. 다만 딱 거기까지. 언제부턴가 베르베르의 작품을 보면서 독특한 소재를 한결같은 방식으로만 풀어놓는다는 감상이 늘어나는 듯하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서양인의 이미지가 처음엔 신기하고 흥미로울지 모르지만, 내용을 좀 더 충실히 채우지 못하면 그걸로는 충분치 않을 듯하다. 뭐 가볍게 보는 소설이라면 상관이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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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밤
한느 오스타빅 지음, 함연진 옮김 / 열아홉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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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노르웨이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북유럽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시골의 전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두껍게 내린 눈과 저녁이 되면 거리와 상점에 불이 꺼지고 주택 창을 통해 드문드문 빛이 비치는 곳, 주택가와 좀 떨어진 시내에도 별다른 놀이꺼리가 없어서 순회하는 놀이시설이 유일한 즐길 꺼리인 곳. 특별한 장() 구분 없이 단숨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확실히 그림을 그려낼 줄 아는 표현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우고 있는 비베케와 그의 아들 욘. 아홉 살 생일을 하루 앞둔 욘은 엄마가 자신을 위해 멋진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엄마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쓴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만, 비베케는 그런 욘에게 진지하게 관심을 쏟기 보다는 자신의 삶에 관해 생각하느라 바쁘다. 식사를 마친 후 욘은 이웃집으로 복권을 판매하기 위해 나가고, 비베케는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기 위해 나서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침 도서관 휴관일에 걸린 것을 알게 된 비베케는 이동 놀이시설에 갔다가 한 남자를 만났고, 그와의 환상적인 관계를 떠올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웃집에 갔던 욘은 한 노인에게 모두 복권을 팔고는 스케이트를 타고 있던 소녀들을 만나 그 집에까지 놀러가고. 같은 시간,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각각 묘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느껴진다.

     작가는 따로 장을 구분하지 않고, 겨우 문단만 바꿔가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묘사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글을 이어간다. 때문에 집중해 읽고 있으면서도 깜빡 하면 이게 비베케의 생각인지 욘의 이야기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런 방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따로 설명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이 뭔가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닌가 싶다. 영상으로 표현하면 그냥 장면의 전환이 두 공간을 오고가는 식이겠지만, 글로 보면 마치 두 사람이 정신을 공유하는 느낌이랄까.

 

 

     주인공 비베케의 책에 대한 사랑이 인상적이다. 문이 닫힌 도서관 앞에서 가져온 책을 반납기에 떨어뜨려 넣는 장면에서 작가는 이런 문장을 덧붙인다.

 

책을 바닥에 쌓아 두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오는 일과 같았다.”

 

      정말 멋진 문장 아닌가. 조금 앞에 마을의 작은 도서관을 묘사하는 문장도 예쁘다.

 

이 도서관은 화분에 심긴 예쁜 식물들이 있고 벽에 멋진 포스터도 많이 붙어 있어 일단 오면 정말 기분 좋은 장소였다.”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느낄만한 포인트를 이렇게 잘 짚어 내다니... 이 부분은 비베케가 갖고 있는 소녀 같은 감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누가 도서관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기분이 좋아질까. 이제 아홉 살이 되는 아들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비베케는 낭만적인 만남을 꿈꾼다. 그녀의 이전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런 비베케를 아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 듯하다. 순수함은 때로 엄청난 부담감, 혹은 책임감을 느끼게 만드니까. 책을 읽는 속도를 가지고 상대를 알 수 있다고 여기는 여자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이 날 밤 선뜻 처음 보는 남자를 따라 그의 트레일러에 머물고 드라이브를 하고 바에 가는 모습도 그런 순진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다만 독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좀처럼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는 게 함정. 하물며 집에는(사실 집 밖이지만) 어린 아들만 혼자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순진한 대담함은 유전이었던 건지, 욘 또한 처음 만난 사람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다닌다. 처음의 복권을 사 준 노인도, 소녀들의 집도, 그리고 처음 만난 여자의 차도. 그런데 우리나라 같으면 단숨에 유괴 같은 전개가 나올 것은 분위기에서도 이야기는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북유럽 시골 마을의 안전함인가..)

 

 

     ​단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인지라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빠르고 긴박감 넘치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 이야기의 결말도 아 이렇게 끝나버리나싶은 면이 있으니까. 무슨무슨 문학상을 받았다는 걸 보면 문학성은 이런 애매함 가운데서 나오나 싶기도 하지만, 뭐 그건 잘 아는 분들의 기준이고.

     노르웨이의 시골마을처럼, 모든 것이 느리고 조용히 지나간다. 그 느린 속도에 함께 올라탄다면 괜찮은 두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그가 책을 읽을 때 안경을 쓸 것이라 생각했다. 금속 테로 된 둥근 안경. 한편으로는 그가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인지 천천히 읽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는 속도가 그 사람의 생활 리듬과 삶의 방식을 대변한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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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인생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정문정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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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에 들어가면 재미있는 통계 그래프가 있다. 연령별, 성별로 나누어 구매자를 표시하는 건데, 이 책의 경우 여성과 남성 사이에 극단적인 차이가 보인다. 20~40대 여성이 구매자의 대부분(74%).

 

 

     또 한 가지 포인트는 평점인데, 7.2점이면 나름 괜찮은 축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또 별 1개짜리도 적지 않다(17.8%). 이 부분은 성별 표시가 되어 있지 않긴 하지만 아마도 남성들의 평점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반되는 평가의 원인은 아마도 작가가 여성, 그것도 좀 세 보이는 여성(혹은 페미니스트?)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리뷰라든지 100자평을 보면 줄줄이 1점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면 대략 짐작이 가니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이 약간 씁쓸하다. 물론 책의 내용이 제목만큼의 명쾌함을 주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1점을 받을 만한(내 기준에 1점이란 전혀 읽을 만한 필요가 없는 책을 말한다) 건 아니니까. 사회적 약자로, 혹은 을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묘사는 나쁘지 않고, 충분히 공감이 가는 문구도 보인다.

      물론 특정한 사안에 대한 관점이 살짝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이건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책 자체에 특별히 공격적이라거나 극단적인 관점이 내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사는 원래 멘토가 아니며, 수많은 고민을 하는 인간 중 한 명 일 뿐이니, 그의 자존심을 자극하지 말고 감정을 가라앉힌 후 소통을 시도하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기억이 난다.

      이런 식의 평점테러는 정상적인 독자들의 책 선택을 방해하는 행위다.(당연히 과장된 찬사 일색의 평가들과 별 5개 남발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지만..) 책에 대한 평가가 주관성을 띨 수밖에 없다는 건 받아들여야겠지만, 소위 집단지성을 좀 발휘해보자고! 집단 난장판 말고.

 

      책 자체가 깊이가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제목에서 언급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으로 소개되는 내용이 썩 충분치 않다. 대체로 무시하거나 잘 돌려서 반박해보라는 건데, 그게 통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사실 문제도 되지 않았을 내용이 아닐까. 대개는 그런 식의 소극적인 저항도 할 수 없으니 문제. 하지만 어떤 100자평에 실려 있는 말처럼 비록 우리가 작가의 말처럼 당당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긴 하더라도, 누군가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응원의 마음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싶다.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자신을 잘 살피며 소중히 여기라는 조언은 누가 하더라도 기억해 둘 만하다. 관계에 관한 고민은 어느 한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개인적으론 책 한 권 읽고 기억해 둘만한 문장 몇 개 정도를 건져냈다면 그리 나쁜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게다가 책 자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라서 금세 읽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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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우 2021-09-10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소한 거짓 근거로 선동은 하면 안되죠ㅎㅎ 소수자의 폭력은 정당화된답니까?

노란가방 2021-09-10 17:35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신지?
 
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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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서울과 맞닿아 있는 가상의 도시 화양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퍼지기 시작한다. 눈이 빨갛게 된 후 며칠 만에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갔고, 마침내 도시 전체가 봉쇄되기에 이른다.

     유기동물을 돌보며 홀로 조용히 살아가던 재형과 그에 관한 반쪽짜리 기사로 재형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윤주, 소방대원인 기준과 간호사 수진, 사이코패스 동해 등의 인물들이 고립된 도시 안에서 겪는 극도의 혼란상을 그린 소설.

 

  

2. 감상평 。。。。。。。

     책장을 한참 정신없이 넘기다가 (1/4?) 문득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나도 의심스럽지만, 오래 전 읽어봐야 할 책 목록에 넣어두었던 제목만 보였고, 정말 작가의 이름은 생각조차 못했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이었다. 책 초반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호감이 가지 않는 주요 인물들의 성격, 그리고 책 전체에 깔려 있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실은 이 작가의 책을 앞서 두 권 읽었었다(7년의 밤, 종의 기원). 긴박감이 묻어있는 문장 덕에 금세 읽히긴 했지만(이건 작가로서 좋은 자질이다), 워낙에 독한 이야기들이었기에 읽고 난 후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읽은 두 작품의 주인공이 공통적으로 사이코패스이자 피해망상에 빠져 주변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인간들이었으니까.

 

      “종의 기원보다 앞서 나왔던 이 작품도 다른 두 이야기의 인물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동해라는 인물은 “7년의 밤영제종의 기원유진과 비슷한 뇌구조를 가지고 있어 초반 어그로를 강하게 끌고 있다면, ‘재형이라는 인물은 현수’(7년의 밤)처럼 답답하고 좀처럼 실수를 고치지 못해 이야기를 엉클어뜨린다. 덕분에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장에 무슨 끈적끈적한 게 묻어있는 듯한 찝찝함이 오래 간다.

 

      앞서 읽었던 두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의미. 이해하기 어려운 잔혹 복수극이나 피해망상에 빠져 광란의 살육을 벌이던 이야기들과는 달리, 이 작품에는 인간애와 용서, 인간과 동물의 교감, 생태주의, 사회비판의식 같은 것들이 보인다.(그리고 어쩌면 레드콤플렉스에 관한 내용도)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이건 뭘 말하려는 걸까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다만 그걸 드러내는 수단으로써 악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 마찬가지...

 

      작가는 악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는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자연히 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이런 종류의 강렬한 악을 전면에 배치하면 확실히 눈길을 끌기는 한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단지 묘사가 뛰어나거나 흡입력이 있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그런 식이라면 아침 막장드라마가 늘 작품상을 받아야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 단지 눈길을 끌게 만드는 것 이상이 아니라면 오히려 감점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아무리 소변기를 예술작품이라고 떠받드는 시대라지만, 똥을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걸 보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한 기자(윤주)의 반쯤은 공명심에 취한 특종욕심에 기초해서 낸, 하지만 팩트체크는 제대로 되지 않은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덕분에 기사의 고발 대상이었던 재형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데 실패하고 말았고, 그가 돌보던 유기동물들은 학살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사이코패스인 동해의 음모가 깔려 있었다는 건데, 선의(나름 진실을 드러내겠다는 윤주의 나머지 절반의 마음)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라는 사실.

 

      그렇게 초반부터 비호감이었던 윤주는 얼마 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어쩔 줄 모른 채 분명한 목적 없이 그저 바쁘게 뛰어다니기만 한다. 한편 자기만의 생각에 갇힌 재형은 행동해야 할 때 주저하고, 멈춰야 할 때 뛰어들기를 반복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후회만 반복하는 발전 없는 캐릭터인지라 주인공임에도 그닥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 사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우왕좌왕하고 있긴 하지만.

 

      그런데 그렇게 단순히 반쪽 사실을 담은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인가 싶을 때, 갑자기 등장한 빨간 눈의 전염병은 이야기의 성격을 급격히 바꾸는 동시에 판을 엄청 키운다. 이야기를 읽으며 이 빨간 눈이 뭘 말하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80년 광주가 떠올랐다. 소설 속 가상의 도시는 화양시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불볕이라는 뜻이다. 광주의 빛고을과도 묘하게 매칭되는 데다가, 화양시에 고립되어 군대에 의해 진압되는 시민들의 이미지는 광주에서 일었던 그 일과 묘하게 닮아 있다. 결정적으로 아직도 그들을 빨갱이라고 몰고 가는 이들도 있고.

 

 

     소설은 심각한 재난상황이 벌어지면 사람들이 극도로 무질서해지고 난폭해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상상에 기초해 내용을 전개한다. 일단 언론에서 대체로 그런 식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일반인으로서는 그런 선입관을 갖게 되겠지만, 레베카 솔닛이 쓴 이 폐허를 응시하라같은 책들을 보면, 많은 재난의 현장에서 오히려 시민들은 자발적인 질서를 수립해 혼란을 막아내곤 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사실적인 묘사처럼 보이던 이야기는 그야말로 딱 픽션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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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4-2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반에는 전개와 서사 구조가 마음에
들었었는데,

왠지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금 작위적인 결말도 아쉬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란가방 2019-04-23 14:07   좋아요 0 | URL
장황한 악의 이야기에서 뭘 말하려는 걸까 혼란스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