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장례식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30
치축 지음 / 고래뱃속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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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큼직하고 시원한 유화 느낌의 그림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미술 작품 도록을 보는 느낌의 동화책이다글씨는 한두 문장 정도로 최소화해서 구석 쪽에 배치했다그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짠한 느낌.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책의 주제로 적절할까 싶기도 하겠지만죽음이라는 게 어디 시간표에 맞춰 찾아오던 일인가개인적으로 주변인의 첫 죽음을 마지한 건 초등학생 때였다큰 아버지가 돌아가셨었는데교통사고였다이후로 친가외가 쪽의 할아버지할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셨고작은 아버지도 한 분그리고 아버지도 돌아가셨다.(첫 죽음과 마지막 죽음 사이에 20년 이상이 흘렀다)


     알고 모르는 여러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했지만죽음이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인 것 같다그건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하지만 그렇게 죽음을 멀리 떨어뜨려놓는 건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고려해 볼 기회가 사라진다는 말이기도 하다곳곳에서 나타나는 생명경시풍조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책에는 동물들이 어떻게 죽음을 마주하는지가 묘사된다죽어가는 친구가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따라가는 돌고래들이별의 순간 한 데 모이는 까마귀들죽어가는 친구를 끝까지 쓰다듬으며 함께 해 주는 코끼리들 등등그리고 마지막엔 사람들이 어떻게 죽은 이를 기리는지를 한 컷의 그림과 함께 묘사한다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사람의 죽음이었던 것 같다.


     작가는 그래도 다시 우리의 삶은 또 시작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어쨌든 산 사람들은 또 살기 위해 나서야 하니까괴롭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괴로움들을 견뎌내면서 조금씩 성숙해져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이런 어려운 이야기까지 가르치기는 힘들겠지만그래도 함께 읽어주다 보면 뭔가 와 닿는 부분도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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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고양이 - 닿을 듯 말 듯 무심한 듯 다정한 너에게
백수진 지음 / 북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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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에 사는 길냥이 나무를 입양해 5년 간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에세이로 엮어 낸 책원래는 한 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이라고 한다매체에 맞게 각각의 이야기의 분량은 그리 길지 않고한 눈에 읽기에 좋을 만한 정도다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무를 처음 만나고입양하는 과정그리고 함께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소동들고양이와 함께 살 때 느낄 수 있는 만족감 등대체로 가볍고 포근한 이야기들이지만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의 일종의 소회를 담고 있는 마지막 4장의 경우는 아주 조금 주변의 시선에 대한 진지한 반응이 담겨 있다.

 


     최근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보인다유튜브만 봐도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채널이 몇 개씩이나 존재하는 걸 보면(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왜 자꾸 나에게 고양이 영상들만 추천하는가...), 확실히 이야기가 되는 주제인 듯하다다만 그 중에서도 내가 계속 찾아보게 되는 이야기는고양이를 고양이로 인정하는 채널들이다.


     무슨 말이냐면종종 어떤 이야기들에서는 고양이를 지나치게 의인화해서 마치 사람인 양(대개 이 경우 어린 아이로 치부된다인위적인 구도를 만들려고 하는 경우들이 보인다일부에서는 카메라 앞에서 고양이가 좀 더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촬영을 앞두고 밥을 굶기기까지 한다는 소문도 있으니...(생명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들은 지옥에 떨어지길)




     사실 도시라는 공간은 고양이에게 자연스러울 수 없는 자리다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 구조물들 속에서 고양이들의 건강과 생명은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다특히나 길에서 사는 길냥이들은 원래 수명의 1/3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이 외로운 생명들을 위해 먹이를 챙겨주고 쉴 곳을 마련해 주는 일은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다만 그 녀석들의 에 우리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건 조심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물론 자연스럽게 녀석들과 교감을 하게 되는 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이 책에서도 살짝 언급되듯인간의 시간과 고양이의 시간은 다르다우리가 보기에는 귀엽고아기 같다고 하더라도 사람으로 치면 성년이 된 경우가 많다어느 정도 인공적 환경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가능하면 녀석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책 전체에 묻어있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잘 와 닿는 내용이다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킥킥대면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도 많고개인적으로는 즐겁게 읽었다. 그리고 문장의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작가의 섬세함도 마음에 든다. 이런 집사와 함께 사는 고양이라면 그래도 행복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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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지붕집의 마릴라
세라 매코이 지음, 손희경 옮김 / 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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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머리 앤”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다면앤의 명랑함을 조용히 감싸주고 지지하는 두 명의 어른들을 보았을 것이다매튜와 마릴라가 그 주인공인데두 사람은 남매로결혼도 하지 않고 에이번리의 초록지붕 집에서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오고 있었다앤 시리즈에서는 이 두 사람이 핵심적인 보조인물로나 등장하는데이들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왜 그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 살고 있는지 같은 물음이 나올 만도 하다이 작품은 바로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앤 시리즈의 정식 스핀오프나 프리퀄 같은 작품은 아니다일단 작가가 다르니까. 80년 전 세상을 떠난 앤 시리즈의 루스 모드 몽고메리가 아니라 앤 시리즈를 사랑하는 현대의 작가가 상상해서 쓴 마릴라를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팬픽이다하지만 단순히 인터넷에서 떠도는 그저 그런 수준의 잡문들과는 달리나름 역사적이고 문학적인 조사 끝에실제 마릴라라는 인물이 살았을 법한 시대와 장소를 배경으로 입체적인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이 정도면 성공한 덕후라고 할 만하다.

 


     우선 가장 궁금한 건, 19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에서 왜 매슈와 마릴라가 당대의 일반적인 관습과 달리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초록지붕집에서 살아오고 있는가이다작가는 여기에 그들도 젊은 시절 사랑에 빠졌던 적이 있었으며그 과정에서 아픈 결별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대답을 제안한다사실 이런 대답은 너무 뻔해 보이기도 하지만뭐 딱히 좀 더 설득력 있는 추측도 많지 않으니까.


     다만 두 사람의 결별 과정은 조금은 달랐는데매튜가 마음에 들어했던 소녀는 시골 농부의 아내 따위는 되기 싫다며 도망쳐갔지만마릴라의 연인은 조금 더 복잡한 사건들이 연속되며 멀어져갔다는 설정이다이건 아주 엉뚱한 생각이 아니라 빨간 머리 앤의 한 구절이 단서가 되었다고 한다. ‘존 블라이드와 마릴라가 좋은 친구였으며사람들은 그 둘을 연인이라고 했다.


     10대의 남녀가 만나고 다투고오해하고 화해하는 과정들을 지나가면서마음과는 다르게 조금씩 거리가 생기는 모양이 퍽 안타깝다하지만 이걸 단순히 10대의 충동적 행동으로만 돌리기에는 조금 가벼은 이야기가 될 터때문에 작가는 이 지점에 마릴라의 집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하나 더한다.

 


     이야기에서 마릴라에게는 한 명의 오빠만이 아니라 동생도 있었다아니있을 뻔 했다그러나 출산 과정에서 마릴라의 엄마와 동생이 모두 세상을 떠나버렸고,(그 때 마릴라의 나이가 겨우 13세였다.) 그 충격으로 마릴라의 성격에도 극적인 변화가 생겼던 것 같다그녀는 초록지붕집을 지키기로 굳게 결심했고그 결심은 그녀 자신에게 지지가 되어주었다이런 면에서 보면 마릴라와 앤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던 마릴라에게도 아이에 대한 소망은 늘 있었던 듯한데그건 그녀의 친구인 레이첼이 열두 명의 아이를 낳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점점 커져만 갔던 것 같다그리고 마침내 후에 우리가 잘 알듯이 초록지붕집에 앤이 도착하게 된다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마릴라가 느꼈을 감정이 어땠을 지가 훨씬 더 강렬하게 떠오른달까.

 


     책의 배경에는 이런 인물들 사이의 교차하는 감정선과 함께당시 노예제를 두고 벌어졌던 미국 내의 갈등들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에이번리가 속한 캐나다 안에서 군주제와 공화제를 두고 벌어지던 극심한 싸움 등도 잘 묘사되고 있다에이번리 같은 시골 마을에서도 문제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고부분적으로 이는 마릴라와 존 사이의 오해와 갈등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고결국 두 사람이 다시 친구가 되는 데 결정적인 사건을 불러오기도 한다.


     원작이 따로 존재하는데다가 팬심으로 쓰인 작품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 평가가 어느 정도 깎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아무래도 독창성이라는 부분에서 덜 평가를 받게 될 테니까하지만 작품 자체만 봐도 충분히 시대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볼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특히 루이스가 말했던 것처럼 문학이 주는 핵심가치인 다른 시대다른 장소에 서볼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마련해 줄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빨간 머리 앤의 팬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작품인데시기적으로 이전을 다루고 있지만일단 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은 꼭 읽어본 다음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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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간 세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부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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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작가 아사다 지로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앞서 언젠가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리뷰에서도 썼던 것 같지만아사다 지로의 작품 속 인물들에게는 따뜻함이 묻어 있고삶에 대한 깊은 통찰도 짙게 배어 있다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읽는 건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고향과 추억 같은 단어들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 작품은 정년퇴임을 맞고 송별연에 참여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쓰러진 다케와키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있다수많은 튜브에 감긴 채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를 찾아온 가족과 친구들의 사연으로 시작된 1장을 넘어서면이제 이야기는 조금 환상적인 단계로 넘어간다그를 찾아온 묘한 인물들과 함께 병원 밖으로 나가는 다케와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다케와키 자신도 이런 만남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문을 끊임없이 품지만병원 침대에 누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채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심정으로 함께 외출을 하는데그렇게 환상 속에서 만난 세 명의 여자들은 사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음이 작품의 결말부에서 드러난다개인적으로는 거의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어서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이런 구성을 떠올린 작가에게 박수를.

 


     이야기는 결국 가족을 주제로 한다정년을 맞을 때까지 성실하게만 일해 왔던 다케와키에게는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다바로 비어 있는 호적이다언제인지도 모르는 어느 날그는 버려졌고시설에서 자랐다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이제 손녀들까지 본 상황이었음에도 그에게 이 빈 호적이라는 부분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 상처였다사회적으로는 안정적인 위치에 올랐지만자신의 뿌리에 관한 질문은 좀처럼 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가끔 해외로 입양되었던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부모를 찾고 싶다고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이야기들을 보게 된다어떤 이유로든 자신을 생면부지의 외국인들에게 보내버린 부모임에도 다시 찾고 싶고만나고 싶다는 그 심리는 무엇일까어쩌면 나무가 뿌리가 없이 설 수 없는 것처럼우리도 뿌리를 확인해야만 바로 설 수 있는 걸까.

 


     읽을 때마다 만족을 주는 작가다다시 한 번 기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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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벌거숭이 화가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15
문승연 지음, 이수지 그림 / 길벗어린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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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전에 봤던 동화책 보다는 글씨의 양이 적고대신 그림이 더 많다작품 자체가 이야기 보다는 이미지 쪽에 더 집중한 느낌인지라 책의 주요 대상도 좀 더 어려 보인다글씨를 몰라도 그림만 보며 책장을 넘길 수 있을 만한.


     대신 색감은 훨씬 다채로운데스토리에 그림과 색칠이라는 소재가 들어가기도 한다엄마가 목욕물을 준비하시는 동안 두 어린 남매가 바디페인팅 물감을 꺼내 서로의 몸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려간다는 이야기그림과 함께 이야기를 통해 상상력을 확장시켜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화려한 색감의 그림들이 아이들의 시각을 적절히 자극해 줄 수 있을 것 같고그림으로 표현된 상상의 세계가 아이들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있을 듯하다그 상상의 세계가 눈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에도 그려질 수 있었으면 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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