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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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전에 읽은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는 인간의 정신적 행복과 불멸적 생존을 향한 인간의 과거 여정과 미래상을 그린 책이었다. 하라리는 책에서 행복은 심리적기둥과 물질적 기둥이 받치고 있는 유리천장같은 비유를 했었다. 하라리의 주제가 호모데우스인 만큼 행복에 관하여 더 깊게 다루진 않았는데 그런 아쉬움을 다소 달래줄 책이 있었으니 바로 '행복의 기원'이다. 

 책은 행복에 관한 접근으로 인간을 철저히 동물로 보고 진화론적 관점에서 행복을 고찰한다. 대부분의 인간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행복하려고라고 대답한다. 그외 여러가지 각론적 대답이 있을순 있다. 성공하려고, 돈을 많이 벌려고,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려고, 심지어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봉사하려고 등등. 하지만 그 뒤의 공통적 총론은 결국 행복이다. 그런데 이 행복 역시 알고보니 각론에 불과한 것이. 행복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생겨난 심리적도구 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생명체가 가진 모든 생김새와 습성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생존과 짝짓기를 위한 도구라는 진화론의 중요한 핵심이 들어가있다. 물론 정신적 도구도 마찬가지다. 

 행복과 관련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자신의 감정을 쾌와 불쾌로 양분한다. 이는 그 감정이 생긴 경험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보다 생존과 관련한 결정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함이다. 불쾌의 감정은 그것을 피함으로서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고, 쾌감의 감정은 그것을 계속추구함으로서 역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은 쾌감의 감정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행복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행복 역시 인간의 감정이라는 점에서 기인하는데 인간의 감정은 두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오래가지 않는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지속시간은 평균 3개월정도이다. 금메달의 영광도, 부모나 배우자의 죽음도 유통기한은 3개월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백일장을 지내는 것일까? 다른 하나는 감정반응의 기준선이 상대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가 다음 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다면 그 기분은 반대의 순서와 천양지차일 것이다. 이런 감정의 특성은 적응때문인데 적응은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게 심리적 도구가 있는 것은 결국 모두 행복이라는 감정의 계속적 추구를 위한 생존도모라고 할수 있다. 지속이 길고 절대적이라면 인간은 가장 큰 쾌감을 얻은후 더이상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응은 결국 이를 막고 생존을 위해 인간을 계속움직인다. 이 적응으로 인해 인간은 행복이란 도토리를 향해 철장에 갇혀 쾌락의 쳇바퀴를 영원히 굴리는 다람쥐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행복에 관해 최근 많은 다양한 심리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결국 공통적으로 밝혀진 것은 두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이며 다른 하나는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에 크게 관련한다는 것이다. 이 유전적 특성은 외향성이다. 객관적 삶의 조건이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기에 작가는 외향성에 더 주목한다.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의 개인차에는 이 외향성이라는 유전적 변인이 약 50%나 관련한다고 한다. 내성적으로 태어나면 참 힘든세상이다. 이 외향성의 특성은 자극을 추구하며 자기 확신이 높고, 처벌을 피하기보다는 보상이나 즐거움에 초점을 둔다(여기까진 맘에 들었다.) 그리고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며 이성을 잘 꼬시고 그에 따라 첫경험시기가 빠르며 성관계 경험도 많다(여기서 좋지 않았다.)

 실제로 행복 상위 10%집단과 불행 상위10%집단을 비교 연구해보니 행복집단이 자신의 시간중 72%를 타인과 보내고 있었으며 불행집단은 겨우 48%의 시간만을 타인과 보내고 있었다. 또한 행복한 집단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원을 다른 사람과 관련한 것에 쓰는 경향이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그들은 공연이나 여행같이 다른 사람과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데 시간과 자원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불행집단은 당연히 물건 같은 물질적인 것에 시간과 자원을 많이 쓰고 있었다. 

 전제로 돌아가면 이 외향성에 우리 뇌는 어째서 행복감을 선사하는 것일까? 그것은 외향성이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데 타인과 어울려 돕고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자원과 지원을 얻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손해이기에 우리 뇌는 행복이라는 강력한 자극으로 이 손실감을 상쇄하고 외향성에 적극적으로 보상하는 것이다. 이것이 외향성이 행복감과 관련이 있는 설명이다. 그리고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무조건불행한 것도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도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사람이 무조건 쾌감만을 주는 것은 아니며 양날의 검처럼 함께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불쾌감을 주기도 하는데 내 생각에 내향적 사람은 적극적 쾌감의 추구보다는 불쾌를 좀더 피하는 성향을 볼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향성이든 외향성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성향이다. 사회적인 부분도 필요한데 작가가 주목한 것은 그 사회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성향이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무엇인지는 다 알고있지만 저자는 개인과 집단의 뜻이 충돌하는 경우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로 구분한다. 저자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의 행복수치가 서구권의 행복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의 원인으로 집단주의를 지목한다. 

 개인주의가 심리적 자유를 허락하는 반면 집단주의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즉, 타인이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리며 이로 인해 행복의 본질이 뒤바뀌게 된다. 따라서 내적인 기준보다는 누구나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외부적인 것이 기준이 되어버리며 과도한 사회적 성공과 물질적 추구만을 하게 되는 경향이 짙어진다.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며 돈이 이러한 기준으로 쉽게 사용되는데 돈 역시 생존과정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으로 타인의 보호와 도움의 대체재라고 볼수도 있다. 실제로 실험전에 돈의 사진을 잠깐 보여준 것 만으로도 실험집단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타인을 덜 돕고, 도움도 덜 받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돈이란게 발명된지 오래진 않아 타인들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행복감에 비하면 많이 모자란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결국 약간 모순되는 것럼 느껴질수도 있지만 사람에 둘러쌓여도 집단주의로 인해 그 불쾌감이 크다면 외향성이란것이 주는 행복도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행복에 기원에 관한 아주 시원스런 대답은 아니지만 책이 갖는 전체적인 방향성은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재밌고 짧으며 쉽게 잃을수 있는 책이다. 물론 개인성향에 따라 기분이 좋지 못할수는 있다. 앞부분에 다양한 심리실험이 있는데 그부분도 재밌다. 보여드리며 마친다.

 

1. 거의 모든 암컷은 자식을 갖지만 수컷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사회가 일부일처제라 지금의 성비는 비슷하지만 보통 일반 포유류 의 성비는 3:7로 암컷이 압도적이다. 이는 소수의 수컷만이 암컷을 차지하고 나머지가 도태되며 일어나는 현상인데 이로 인해 암컷은 잃을게 없으니 전체적으로 안정지향의 전략과 성향을 보이며 수컷은 모든 것을 거는 극단적인 전략과 성향을 선호한다.


2. 근친은 유전적으로 좋지 못한 것으로 동물들은 대개 생득적으로 근친을 탐지한다. 인간은 이 탐지기능이 없어 근친을 파악하는 요소로 이 다른 성이 유아기에 나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했느냐로 탐지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공동마을에서는 근친이 아니어도 공동육아로 인해 공동마을 남여간 혼인비율이 지극히 낮다. 또한 가임기의 여대생들은 근친을 피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와 연락을 하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든다. 초등동창과 결혼한 당신은 뭔가를 넘어선 것이다.


3. 성경쟁으로 남성들은 남자의 비율이 높은 지역에 거주할 수록 카드 빛과 부채율이 높아진다. 성적 경쟁심때문이다. 


4. 남자들에게 만화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재밌는 캡션을 달게 했다. 한 집단에는 잘하면 상금을 준다고 했고 다른 한집단에는 그냥 캡션들 달면서 아름다운 여인과 해변을 거니는 걸 상상하라고 말만해줬다. 결과는 여인 집단의 압승. 훨씬 창의적이고 재밌는 캡션들 달았다. 이를 피카소효과라고 한다. 왜인지는 피카소의 인생을 조금만 반추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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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정 2017-08-0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책을 다시한번 읽은 것 같이 내용이 떠오르네요. 잘 읽고 갑니다.

닷슈 2017-08-08 18:37   좋아요 0 | URL
저도 일전에 쓰신 이책 리뷰잘봤습니다
 
강자의 조건 - 군림할 것인가 매혹할 것인가
이주희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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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시드마이어의 문명5 게임을 좋아한다.(이미 6탄이 나왔는데도 거의 5년째 5탄만 하고 있다.)

거의 중독수준인데 이 게임의 중독성은 코에이사의 삼국지에 비할바가 아니다. 게임 문명에는 참으로 다양한 문명이 등장하는데 다 내노라하는 문명들이다.(안타깝게도 한국문명은 기본판에는 항상 없고 확장판에서나 간신히 등장하곤 한다) 때문에 게임 문명과 관련해서 이 책을 참 재밌게 읽었다. 문명 게임에서 등장하는 몇몇 유닛과 지도자의 명성과 지역의 명칭들에 대해서도 좀더 잘 알게 되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이번에 본 책 강자의 조건에서 선정한 강자들은 게임 문명에 모두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로마, 몽골, 영국, 네덜란드, 미국이 강자들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들의 공통 분모로 다양한 종교와 인종, 사고에 대한 관용과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사회의 다원성을 강자의 조건으로 꼽았다. 

 우선 시대순으로 로마부터 시작한다. 주지하다시피 로마의 시조는 늑대젖을 먹고자란 로물루스 형제다. 이 형제들은 거의 초기엔 산적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여자가 부족했는지 인근 사비니 부족을 초대하여 거짓연회를 베푼후, 남자들을 공격한 후 여자들을 취한다. 이 지저분한 전술에 격분한 사비니 남자들은 술에서 깨어난후 로마인을 공격하나 패한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양편에 남편을 두게된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그리고 로마인들의 혜안으로 그들은 하나로 융합하고 심지어 왕들도 서로의 지도자가 공동으로 하게 된다.

 이런 로마의 확장 방식은 역사적으로 계속 이어져 삼니움을 비롯한 주변 라틴소국들과도 이런 식의 통합을 하게 된다. 즉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면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로마제국의 동등한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용은 노예에게도 이어져 가정에서 일하는 노예의 경우 수십년을 일한 후 독립하여 자유민이 될수 있었고 자유민의 다음 후손은 로마시민권을 가질수 있었다. 대대손손 노예가 아니라 나 하나 고생하면 자손은 당당한 로마시민으 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노비가 알면 경천동지할 노릇이다. 

 로마에 위기가 찾아오니 카르타고와의 전쟁이다. 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한 한니발의 아버지 바르카는 본국에 실망한 나머지 일가를 이끌고 스페인으로 바르셀로나 지역으로 이주한다. (바르카의 이름을 따서 바르셀로나가 된 것이다.) 이 일대를 평정한 후, 그 아들 한니발은 로마를 침공한다. 그것도 5만대군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서. 한니발의 작전은 이러했다. 알프스를 넘어서 로마 정예를 깨부순 후, 로마동맹을 흔드는 것. 실제로 본국과 동맹간의 차별이 심했던 과거 아테나와 스파르타, 페르시아는 정예병이 깨어지자 동맹이 배신하며 전체가 뿌리부터 흔들리며 자멸했다. 이런 역사의 교훈을 한니발은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전투의 천재인만큼 한니발은 칸나이 전투와 여러 전투에서 로마군을 궤멸시키나 로마 동맹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관용과 다양성에 기초한 로마의 제국확장방식때문이었다. 이미 로마와 동등한 시민인 동맹들은 좀처럼 배신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니발의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긴 로마는 아시다시피 한동안 역사의 주인공으로 군림한다.

 다음은 몽골이다. 몽골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만큼 수십만 대병을 몰고 다닐거라고 생각했는데 몽골이 세계정복시 운용한 병력은 고작 10만 가량이다. 하긴 수나라도 근거리인 고구려 원정에 백만을 동원하며 병참에 애를 먹었으니 수천킬로미터를 원정하는 몽골병사는 당연히 소수정예일수 밖에 없다. 몽골의 칭기즈칸 역시 관용과 다양성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벌하는 나라들마다 인력을 흡수해나갔다. 빠른 정벌을 위해 항복을 권하고 불응할시 무자비한 살육이 따랐지만 일단 항복하거나 제국의 일원이되면 동등하게 대우하며 그들의 기술을 흡수해나갔다. 오죽하면 프랑스군이 몽골의 한 장교를 잡았는데 알고보니 영국국적이었다고 한다. 유목민은 공성전과 수전에 약할수 밖에 없는데 다른 문명의 기술을 흡수하여 공성무기를 만들고 수군을 양성하여 이슬람의 높은 성벽과 남송의 양자강 방어선을 무력화시켜 대제국을 이룰수 있었다. 

 이는 사상에도 영향을 미쳐 몽골의 수도 카라코룸에서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도간의 종교토론이 일상회되었으며 기독교도인 몽골의 대칸도 참여하였다. 몽골은 동과 서를 역사상 처음으로 이어 사상과 문물의 교류를 이끌어 왔으며 정복된 나라들도 제국의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세번째는 엘리자베스 치하의 영국이다. 당시 유럽의 패자는 스페인이었다. 이들은 레판토해전에서 오스만 해군을 무찌른 만큼 해군이 막강했으며 그래서 별칭이 그 유명한 무적함대이다. 당시 영국은 유럽의 삼등국가로 일개 도시국가인 밀라노공국보다도 세수가 적을 만큼 가난했다. 이런 영국이 감히 스페인과 대적하게 되는데 이는 종교전쟁과 연관이 크다.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는 카톨릭의 신봉자였고, 당시 신교가 난립하는 네덜란드 독립전쟁중이었다. 펠리페는 스페인이 커진 방식 그대로 영국의 신교문제도 정리할겸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부당한다.(펠리페의 이름을 딴 나라가 필리핀이다.) 거기에 도버해협바로 건너편에 있는 네덜란드를 순망치한으로 여긴 영국이 네덜란드에 병력을 지원하자 전쟁을 결심한다. 

 당시의 해전은 일단 대포를 인사치레 가볍게 쏜후 접근하여 갈고리를 걸고 백병전을 벌이는 방식이었다. 사실 배위에서 싸울뿐 사실상의 육전이었다. 그리고 스페인은 배도 많고 육군도 당대 최강. 섬이라 아예 육군은 없다시피한 영국은 해전의 개념을 바꾼다. 일단 붙으면 지니 멀리서 화포를 사격하는 방식으로 하고 배 역시 이를 위해 가볍운 형태로 개량해 나간다. 당시 대포는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청동이 녹이슬지 않고 신축성이 있어 연사에도 깨어져나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동은 비쌌다. 청동은 업고 철만 많은 영국은 주철대포를 제작하였는데 가격은 삼분의 일 가량이면서도 그 성능은 우수했다. 결핍이 발전을 부른 것이다. 그리고 영국은 전쟁에서 해적도 등용하는 다양성과 관용으로 우수한 선박 및 대포기술자 역시 유럽 각지에서 확보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관용과 그로 인한 다양성의 확보는 승리의 키워드였다. 영국 부분에서 사략선이 나온다. 게임 문명에는 사략선유닛이 있는데 사실 해적선이다. 게임이지만 국가에서 해적선을 만드는게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 문명에서 해적은 사실상 국가와 연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다음은 오렌지의 네덜란드다. 오렌지도 나지 않는 나라가 왜 오렌지를 이렇게 좋아하는 싶었는데 오렌지는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공헌자 빌렘 드 오랴네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라고 한다. 이당시 역시 종교전쟁 시기로 네덜란드에는 칼뱅파 신교도가 많았다. 이는 칼뱅파의 교리가 소명주의를 핵심으로 해서인데 소명주의로 자신의 직업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카톨릭에서는 금융업을 죄악시 했는데 칼뱅파의 소명의식에 의하면 더이상 금융업이나 상인이라는 직업은 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네덜란드 입맛에 맞는 신교가 난립하자 스페인 펠레페 2세는 강도높은 신교도 박해에 들어간다. 이에 반박해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스페인은 패하고 만다. 

 이과정에서 남부의 10개주는 스페인에 순응해 독립전쟁에서 빠지게 되며 이 부분들이 지금의 벨기에가 된다. 스페인이 패한 것은 네덜란드와 영국 탓도 있지만 자멸의 원인이 컸다. 과거 스페인은 이슬람의 영향으로 유대인과 이슬람, 카톨릭 모두가 공존하는 다원주의 국가였다. 하지만 레콩키스타 이후 카톨릭 일변도로 변하게 되었고 그결과 나라의 힘을 불어넣던 유대인과 기술자 집단들이 사라지게 된다. 스페인은 당시 신대륙에서 들여온 은과 금이 넘쳐났는데 이를 제대로 운용할 전문 금융집단이 사라지게 된것이다. 스페인은 유럽 각지에서 전쟁을 벌이며 많은 자금이 필요하였는데 이자를 무려 40%나 물어야 했다. 

 이런 스페인의 자멸로 네덜란드는 독립후 빠르게 성장한다.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여 유럽 각지에서 인구가 유입되어 빠르게 인구가 성장하였고 전문가 집단을 확보하였다. 영국보다도 더 저렵하고 빠른 상선을 개발하여 화물운송량의 상당부분을 차지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각지의 무역지를 개척해나간다. 특히나 아시아에 진출하며 많은 투자가 필요해졌는데 이 때 등장한 것이 동인도회사이다. 근대적 주식회사의 개념으로 분산투자를 하며 수익의 일부를 가져가는 시스템이었다. 거기에 위험에 대한 투자까지 더해져 파생상품까지 등장한다. 

 마지막은 미국이다. 미국부분은 주로 흑인 인권운동에 초점을 두었는데 관용과 다양성이 국가를 성장시킨 앞의 4나라와는 약간 어긋난다. 미국은 남북전쟁후에도 흑인인권이 제대로 서지못했는데 이는 미국이 연방국가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흑인이 노예신분에서 벗어났음에도 남부의 여러주들은 흑인의 투표권을 무력화시키는 다양한 법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1960년대까지 이어지게 되며 이때서야 다양한 인권운동으로 흑인들의 인권이 확보되어 간다. 재밌는 점은 이전까지 남부의 주들이 미국평균소득의 절반에도 못미칠 만큼 가난했는데 오히려 흑인이 사실상의 노예신분에서 벗어나자 소득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거저나 다름없는 노동력의 확보로 혁신을 게을리한 남부가 여기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어찌보면 이 책은 세계역사에서 관용과 그로 인한 다원성이 빛나는 시기를 찾아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역사의 일부를 들춘 셈이지만 무척 재밌고, 사건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다. 쉽고 재밌게 써서 빠르게 읽을 수 있다.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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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슬로리딩과 함께 - 초등학교 전 학년 슬로리딩 수업 이야기
슬로리딩 수업 연구회 지음 / 살림터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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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독서교육은 사실 매우 단순한 편이다. 독서기록장 같은 걸해서 학기 내에 많은 책을 읽으면 상을 준다던가, 아니면 특정 책들에 대한 지식을 시험보는 독서골든벨, 독후감쓰기 대회 정도이다. 학급내에서라면 좀더 다양한 방법도 있겠지만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국어교과서에는 대개 문학 작품이나 글들이 필요한 부분만 파편으로 제시되는게 일반적이다. 알쓸신잡에서 작가 김영하씨가 교과서내 작품이 분절적으로 제시된데 아쉬움을 표한바 있기도하다. 하지만 교과서는 한 작품에 비하면 얇을 수 밖에 없고 다양한 학습주제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 어쩔수 없는 부분이 크다. 아마 시나 짧은 기행문이나 수필정도가 아니라면 분절되서 제시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문학작품 하나를 통으로 배우는 수업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하지만 이 책에 제시하는 슬로리딩이다. 일본의 한 교육자가 전후에 실행한 방법이라고 하는데, 글자그대로 책을 천천히 통으로 다 읽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초등 1-6학년 선생님들이 한 수석교사의 도움속에 슬로리딩 교육을 한 학기동안 적용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슬로리딩을 위해 교사들이 가장 먼저 고심한 것은 책 선정이다. 아무래도 학년 수준에 맞으면서 한 학기에 교과서로 배워야할 학습주제를 모두 담아내야 히기 때문이다. 책 선정이 끝나면 배워야할 교육과정내 성취기준을 책 내용과 연관시키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어찌보면 한 학기동안의 큰 계획인 셈이다. 더러 다른 교과와 연계한 교사도 있었지만 책 속의 대부분 교사는 국어과내에서만 수업을 실행했다. 

 학생들은 교사의 계획에 따라 한권의 책은 온전히 읽고 활동을 통해 국어수업을 한 학기 동안 해나간다. 책은 상황에 따라 아침시간이나 수업중에 읽기도 하고 책읽기의 재미를 위해 역할에 따라 연기하며 읽기, 역할극, 짝과 함께 읽기, 모둠별 읽기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학생들이 책에 나온 어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자신만의 단어카드 만들기, 감정카드 만들기, 단어 책자 만들기, 사전찾기 등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고, 책의 내용을 세세히 이해하기 위해 책의 내용을 요약하기, 인상적인 부분 책자 만들기, 모둠별 책 내용퀴즈 내기 등등의 방법도 많이 사용되었다.

 하나의 책을 한학기 내내 읽고 활동하니 무척 지겨울만도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교과서로만 진행한 수업보다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있었고 무엇보다 책을 읽기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에게도 자신이 두꺼운 책 하나를 소화해내고 문자책이 주는 즐거움을 알았다는게 가장 큰 소득인 것 같았다. 하나의 인상적인 국어수업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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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07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기록장은 책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나열ᆞ정리한 기록물입니다. 어떻게 보면 독서기록장은 일기와 비슷해요. 그래서 작성된 독서기록장을 상대방에게 공개하는 일이 드물어요. 독서기록장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교사인데, 단순히 얼마나 많이 썼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라서 피드백을 바랄 수 없습니다. 독서를 좋아하지만, 독서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독서기록장을 일기처럼 써오던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이건 & 호킹 : 우주의 대변인 지식인마을 8
강태길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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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대한 입문용 책으로 괜찮은 것 같다. 대폭발 이론과 별의 일생, 시공간에 대힌 이론, 블랙홀, 외계인의 존재등 호킹과 세이건의 연구부분들을 잘 다루었다. 이시리즈는 항상 뒷부분의 양 학자의 만남을 넣는데, 96년에 했다는 이것 진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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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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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열심히 이야기 한 사람에게 다음은 무엇일까? 당연히 미래에 대해 논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과거에 대해서 말할때는 우리는 여러가지 역사적 정황을 독수리의 눈으로 꿰뚫고 이리저리 퍼즐조각을 맞추며 하나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물론 그것도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다 내다본 미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서구가 지배하게 됐어. 이래서 한국이 분단되었어. 이래서 일본 제국이 망했어 등등. 이런 걸 정말 잘쓴 책이 총균쇠이고 사피엔스이며,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역사학자인 유발하라리는(사실 역사학자란 감도 별로없다. 워낙 총방위적이어서, 경력 찾아보고서야 알았다.)과거의 퍼즐에서 미래의 동향을 보고 쭉 이어지는 퍼즐을 이 책에서 맞춰냈다. 영화계엔 전작보다 나은 속편이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책은 솔직히 사피엔스보다 인상적이었다. 사피엔스도 물론 대단했지만 그게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자기만의 관점으로 잘 종합한 느낌이었다면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의 관점에 있지만 미래의 동향을 살펴 과거와 이어지는 인간의 미래를 설득력있게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더욱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전공인 역사학은 물론, 진화론, 4차산업혁명의 사물인터넷, 컴퓨터 과학, 심리학, 경제학 등등 여러 학문을 이용해 녹여냈다.

 이 책의 제목은 호모데우스인데 저자들이 워낙 인간의 특성을 하나하나 이야기할때마다 자꾸 호모에 미사여구를 붙이는 방법을 많이 사용하는지라 썩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잘쓴 책이니 그만큼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게다가 제목인 이 표현은 무려 책의 말미인 500페이지 가량이나 되어서 간신히 나오며 언급횟수도 5회 미만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하라리가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이 책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체험하고 알고 있는 전제가 있다. 바로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진화상 생존과 번식을 위해 설계되었지 행복하자고 설계되진 않았다. 그것은 아마 생존과 번식이 성공적일때 아주 한시적으로 주어지는 보상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생존과 번식의 일시적 성공으로 행복이 오래 지속된다면 인간존재는 더나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펜사우어는 행복을 불행의 한시적 그림자로만 보았고, 불교에서는 벗어나야할 덧없는 것중 하나라 보았을지 모른다. 하여튼 하라리는 이 행복에는 두가지 기둥이 있다고 보았는데 하나는 생물학적 기둥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인 기둥이다. 생물학적인 기둥의 종점은 아마도 드래곤볼의 프리더가 그리 갈망하던 불노불사일 것이고, 심리적인 기둥의 끝은 완벽하고 지속적인 정신적 행복 일 것이다. 

 인간역사는 이러한 행복을 향한 여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인류는 그때그때마다 자신들의 한계범위내에서 이를 나름대로 이룩하려고 노력해왔다. 수렵시대에 인간이 사용한 방법은 애니미즘이었다. 이시기 인간에게 먹이가 되고 때론 숭배와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동물들은 인간과 대화하는 존재였으며 때론 신이기도 했다.

 그랬던 인간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게 농업혁명이다. 이 농업혁명에서 인간에게 정신적 버팀목이 된 것이 바로 유신론적 종교이다. 유신론적 종교가 번성한 시점과 농업혁명간에 어느 정도의 시기적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볼수도 있다. 하라리는 농업과 유신론적 종교간에 농업계약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하라리는 초기 유신론적 종교를 농업사업으로 보는데 이 종교들의 초기신학이론, 신화, 전례들이 재배 식물 및 가축들과 인간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했기 때문이다. 즉, 유신론적 종교는 달라진 물적 상황에 대해 인간이 쓸만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여 정당화 한 셈이다. 

 하라리는 유신론적 종교가 겉보기와는 달리 신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신성시 했음을 통찰한다. 실제로 초기 유신론적 종교들은 인간에게만 다른 동물과는 차별적인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으며(기독교에서는 지배 및 관리의 지위를 부여하고, 가장 마지막 창조, 불교에서는 윤회의 하나이지만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이를 통해 인간은 사실상 창조의 정점이 되었다. 이 계약에서는 인간은 자연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신의 중재(비, 높은 생산량, 적절한 기후)가 필요해졌으면 그 대가로 인간은 제사의 형태로 신과 수확물을 공유하는 상상의 체계를 완성한다. 사람들은 어찌보면 애니미즘에서 매우 급진적인 변화형태인 농업계약을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였는데 이는 농업계약이 농업사회와 그 일상을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은 상호주관적 연결망을 확대하고 강화하는데 필수적인 물질적인 기초를 제공했으며 초아기 농부들은 집단의 신화를 보전하고 대규모 협력을 조직하기 위해 인간 뇌의 데이터 처리능력에 의존했으나 이의 한계는 분명했다. 이로 인해 농업혁명 이후 수천년이 지나도 인간협력망의 확대는 미약했는데 돈과 문자의 발명으로 인간은 이 한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간협력망이 점차 확대되고 발전해나가면서 과학혁명이 일어난다. 과학혁명은 경제성장 즉 자본주의라는 쌍두마차와 결합하여 인간의 힘을 더욱 극대화시키며 나아갔는데 이런 변화한 인간에게서 더 이상 유신론적 신은 필요치 않았다. 인간은 농업혁명을 통해 애니미즘 시대의 말하던 동식물을 침묵시킨데 이어 신마저 침묵시키고 1인극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던 존재였기에 근대 이후의 삶은 우주 안에서 끊임없이 힘을 추구하는 과정이었지만 존재론적으로 역시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과학혁명의 시대에 유신론적 종교의 자리를 대체한 새로운 종교가 인본주의이다. 인본주의는 인간 삶을 경험이라는 수단을 통해 무지에서 계몽이라는 점진적인 내적 변화의 과정으로 보며, 삶의 최종목표는 광범위한 지적, 정서적, 육체적 경험을 통해 지식을 온전히 발현시켜 나가는 것이다. 즉, 인간의 경험이 의미와 권위의 최종원천인것이며 이로 인해 인간 개개인은 소중한 존재가 된다. 이러한 인본주의는 3가지로 곧 분리되는데, 서구 자본주의 사회와 우리나라가 믿고 있는 자유인본주의와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가고 있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그리고 나치들이 신봉한 진화론적 민주주의가 그것들이다. 

 자유인본주의는 인간 개개인이 유일무이하다고 보며 이로 인해 모든 개인이 세계를 경험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이를 위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므로 주요 의사결정은 개개인 혹은 민의에 의한 그대표들이 하게된다. 하지만 이는 개개인의 상충되는 경험에서 나오는 충돌(부자와 빈자, 그리고 제1세계와 제3세계 시민의 경험은 너무나도 다르다)을 어떻게 해결할것인가라는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러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 사회주의적 인본주의이며 이들의 세력은 몇십년전만해도 북서부유럽과 북아메리카와 극동아시아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세계를 석권하다 시피했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나와 내 감정에 대한 집착보다는 타인들이 어떻게 느끼고 내 행동이 그들의 경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주 관심사이다. 때문에 개인의 자아탐구보다는 세계를 판독하는 강력한 공동기구인 당이나 노조의 창설이 중심이며 의사결정은 이들이 한다.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진화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개인간 갈등은 분쟁의 씨앗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을 발전시켜나가는 진화의 추동력으로 본다. 때문에 인간을 평등하게 하고자하는 일련의 시대는 오히려 인간의 진화를 저해시키는 요인이 되며 우월한 인간에 의한 진화로 인간이 초인간에 이를수 있다는 것이다. 나치는 다윈의 진화론과 신에서 벗어난 니체의 초인간을 이에 활용했으며 그 결과는 끔찍했다. 하지만 하라리는 의외로 이 진화론적 인본주의에 주목하는데 이는  하라리가 보는 앞으로의 세계가 진화한 인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의 승자는 자유인본주의의며 하라리는 오늘날의 세계는 개인주의, 인권, 민주주의, 자유시장등 과학혁명과 인본주의의 계약이 낳은 산물들이 지배하는 세계로 보고 있으며 이들이 가장 힘을 발휘한 20세기에 인간은 역대 어느 정권과 인물도 감히 시도도 못해본 기아와 역벽, 전쟁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내었으며 이로인한 혜택은 인본주의의 이념처럼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하라리는 21세기에 인간은 더 나아가 불멸과 정신적 행복, 신성을 향해 나아갈 것으로 보며 이로 인한 혜택은 모든 인간이 아닌 초인간에게 집중될 것으로 예상한다. 

 지속적인 과학혁명의 결과 인간은 더욱 많은 것을 알아내었으며 이로 인해 손잡았던 종교였던 인본주의에 생각치 못한 치명적 결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자유인본주의에는 몇가지 전제가 있는데 인간이 단일한 자아로 구성되어 있고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에서는 인간을 분리할수 없는 존재(그래서 정치와 경제, 군사의 최소단위)로 보며 진정한 나는 자유롭다고 본다(그래서 선거권이 주어지고 범죄에 책임을 물음) 그리고 그러므로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에 대해 내가 가장 잘안다(그래서 합리적 판단과 합리적 소비를 한다고 생각)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최근 생명과학의 성과는 이를 주요 전제를 모두 뒷받침하지 않는다. 유기체는 알고리즘이고, 이에 따라 인간은 알고리즘으로 집합으로 판단되며 결국 분리할 수 있다라는 것이며 이로 인해 단일한 자아가 부정된다. 그리고 인간을 구성하는 알고리즘 자체가 자유롭지 않고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 및 무작위적 결정에 의해 좌지우지되므로 결국 인간은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이 둘로 인해 인간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알고리즘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과학에서는 인간의 자아를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로 나누고 있으며 자유의지는 없는 것으로 본다. 자기공명영상장치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인간은 이미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마음을 갖기전에 이미 모든것을 결정한 뇌부위가 활성화된다. 즉 내가 짜장면과 짬뽕중 고민을 하다 무엇을 먹기로 결정하고 주문하기도 얼마전에 자기공명장치만 있다면 그 점원은 이미 나의 의도를 알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내가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자유의지는 사실상 허상이며 의식의 흐름속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지속된 과학혁명은 더 이상 자유인본주의와 같은 배를 타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런 가까운 미래에 하라리는 새로운 파트너 종교로 기술인본주의와 데이터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실 데이터교보다는 아직 호모사피엔스인 우리에게는 기술인본주의가 더 희망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기술인본주의에 의해 탄생하는 새로운 인간이 인간 행복의 두 기둥인 생물학적 문제와 심리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한 존재인 호모데우스인 것이다. 

 기술 인본주의는 여전히 자유인본주의의 끈을 붙든다. 아직 인간을 창조의 정점으로 보며 전통적 인본주의의 여러 가치를고수한다. 호모사피엔스가 한계에 도달한 것은 인정하나 그때문에 우리가 그 한계를 돌파한 호모데우스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하라리는 사실상 호모데우스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의 데이터 위주의 새로운 시스템은 개개인의 독자적 마음이 시스템의 속도를 떨어뜨린다고 보고 호모데우스가 될 인간의 마음기능을 오히려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자율주행차를 도입하는데 있어 개개인의 운전에 대한 재미를 강조하는 마음, 의학 발전을 위해 인간 데이터를 무제한 수집하는데 있어 개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 등등은 시스템의 속도를 상당히 떨어뜨릴수 밖에 없다. 때문에 하라리는 미래 인간이 성능이 다소 향상된 지금의 침팬지 위치에서 시스템에 매몰된 특대형 개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기술인본주의에는 하나의 문제가 더 잠복하고 있는데 인본주의는 인간의 의지를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문제는 현대과학의 성과로 인간의 자신의 의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점이다. 데이터교와 기술인본주의는 빅데이터와 딥러닝등으로 나를 관찰하고 나의 알고리즘을 나보다 정확히 파악하여 나의 정확한 의지를 제어하고 재설계해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이 의지가 과연 나의 의지인것인가라는 철학적 문제, 그리고 의지 자체가 또 하나의 맞춤 제품이되어 결국 인간 스스로가 무엇을 하게 되는지 모르는 존재가 되는 문제가 있다. 결국 호모데우스는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 대한 희망을 품긴 하지만 결국 데이터교의 방향으로 갈것으로 보는 듯하다. 데이터교는 컴퓨터 과학과 생물학에 뿌리는 두는데 우주는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들이 모두 데이터로 구성되고 그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따라 결정한다.

 하라리는 호모사피엔스 입장에서 보기엔 정말 암울한 미래를 제시해놓고도 미래는 여전히 알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피하기 어려운 다음의 3가지 발생 문제를 제시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1. 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러는 하나의 교리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리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의 처리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들을 더 잘알게 될 것이다.

  

궁금하다. 이렇게 되면 행복을 향한 우리의 영원한 항해가 과연 마무리될까?

아니면 유기체를 벗어서 행복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재설계될까?

하여튼 그리된다면 어쨌든 하라리처럼 인간을 더 이상 사피엔스라고 부르기엔 무리일것 같다.

상상하기가 어렵다. 유인원이 인간의 세계와 관점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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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1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7-08-01 22:26   좋아요 0 | URL
저도 이래저래 미뤘는데 막상보니 볼만했습니다

qualia 2017-08-01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판단에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다》라는 말 자체는 어불성설입니다. 왜냐면 유기체라는 개념은 생물학적이고 물리적인 생명체를 가리키는 것인 반면에 알고리즘은 그런 생명체의 생물학적·물리적 속성과는 원칙적으로 무관한 독립적인 것으로서 어떤 특정 작용이나 행동의 절차를 기술해놓은 일종의 법칙의 집합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유기체는 물리적 실체인 반면 알고리즘은 추상적인 기능적 절차나 프로그램 체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해서 유기체와 알고리즘을 동일 범주 차원에서 비교하거나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저런 식으로 말했다면 그는 개념 착종 오류에 빠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데이터”라는 개념 사용도 상당히 자의적이고 철학적으로 엄밀하지 못한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제 생각엔 “정보(information)”라는 개념을 유발 하라리가 자기식으로 “데이터”로 각색한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유발 하라리의 데이터 개념과 데이터교 얘기는 그닥 새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John Archibald Wheeler, 1911-2008)의 ‘It from Bit’이라는 정보이론적 우주론과 세스 로이드(Seth Lloyd, 1960-)의 양자 컴퓨터 우주론, 데이비드 차머스(David John Chalmers, 1966-)의 정보이론적 의식 이론 등등에 기본적인 생각의 끈이 연결돼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정보를 우주의 기본적 요소로 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데이터교 얘기도 결국은 정보를 (우주의) 기본 요소로 전제하고 끌어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해서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는 몇몇 측면에서 데자뷔 현상을 느끼게 합니다.

닷슈 2017-08-02 00:06   좋아요 0 | URL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많은 공부가 되는군요.
유기체도 알고리즘이다라는 말에는 저도 완전동의하지는 않지만 사람을 비롯한 유기체의 행동이나 의식을 알고리즘으로 어느정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이 프로그램 순서대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으며 그것은 알고리즘에 의한게 아니고 뭔가 다른거다라고 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인간에겐 뭔가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믿고 싶은 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것들이 사실 알고리즘인데 그게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는 편입니다. 알고리즘은 순차적이지만 상당히 복잡해 질수 있어 복잡한 행동도 알고리즘으로 표현한다면 어느정도 할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라리가 워낙 광범위하게 여러 학문을 갖다 자신의 논리에 붙이다보니 여러 개념들을 좀 불명확하게 쓴다는 느낌은 저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피엔스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하라리가 새롭운 것을 창안한다기 보다는 기존의 것을 자신의 논리로 잘 종합한다는 느낌을 받는 편이고 그것도 그것대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