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심장 여행 - 생명의 엔진, 심장에 관한 놀라운 지식 프로젝트 매력적인 여행
요하네스 폰 보르스텔 지음, 배명자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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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좀 상식적이다. 심장에 좋은 것은 결국 규칙적 운동과 채식위주의 좋은 음식,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줄이기, 섹스다. 기관 설명도 좀 복잡한 편인데, 좀 더 그런 부분이 쉬우면서도 상식이상의 설명이 많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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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시대는 끝났다 -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 4인의 도발적 젠더 논쟁
해나 로진 외 지음, 노지양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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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동일한 출판사인 모던 아카이브에서 나온 사피엔스의 미래를 읽었다. 제법 재밌었으며 이 책역시 비슷한 형태로 주제만 달리한 것 같아 꽤 기대가 됐다. 제목부터 상당히 자극적이지 않은가. 같은 종족의 절반을 부정하는 주장이라니. 하지만 책은 생각만큼 재밌진 않았다. 솔직히. 사피엔스의 미래가 알랭드 보통같은 인물과 스티븐 핑커 같은 인물로 나뉘어 첨예하게 진짜 당장이라도 싸울 것 처럼 대립했다면 '남자의 시대는 끝났다'는 이게 약했다. 일단 찬반 패널이 모두 여자인것 부터가 좀 그랬다. 자신들의 시대가 끝났다는데 남자가 나왔어야 하는거 아닌가! 남자는 사회자가 고작이다.

 물론 그게 출판사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멍크 디베이트라는 토론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니 말이다. 네 명의 인물 토론 인물중 모두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스트다보니 첨예한 입장차이는 적은 편이었지만 가장 견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커밀 팔리아였다.

 팔리아는 페미니즘이 현대 과학과 생물학의 성과를 부정하는 행태를 비판한다. 이것은 오히려 페미니즘을 뒷걸음치고 고리타분하게 만드는 것이며 페미니즘은 현대 과학과 생물학이 내놓은 남여 차이에 대한 결과와 성향의 차이를 인정하고 새롭게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필요하다면 자연의 힘을 거슬러야겠지만 자연의 힘과 자연자체를 부정할수 없다는 팔리아의 말은 과학이 보여주는 성의 물질적 정신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현대사회에 있어 그것이 차별로 작용하는 것은 배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드러내는 말인 것 같다. 학업에 집중하는 성향이 여성이 앞선다고 해서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만을 공부시킬 수는 없으며 남성의 운동능력이 여성에 앞선다고 해서 여성들을 스포츠에서 배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한쪽 성이 어느 부분에 있어 더 나은 성향을 지니곤 있다지만 그 부분에서 부족한 다른 성이 그러한 능력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마치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비율처럼 자연은 한 쪽성에 특정분야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도 적은 비중으로 그 반대쪽 성에 그 분야에 적은 비중을 두어 만일에 대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자같은 여자와 여자같은 남자가 적지만 있는 것은 이때문일 것이다. 

 커밀 팔리아는 페미니스트라면 무척 조심할 부분일 듯한 예쁜 여자에 대한 동경도 과감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심지어 부러워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많은 여성들은 스스로를 남자에 비해 적지않게 치장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돈을 쓰면서도 이것이 자신들 간의 성 경쟁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팔리아는 그것은 분명 성경쟁이며 이러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 페미니즘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성 경쟁은 어찌 보면 목표대상인 남자의 무지한 인지수준을 넘어서기까지해 남자들은 여성의 외적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반면 경쟁자인 상대 여성은 이를 귀신같이 포착한다. 

 팔리아의 의견 외에도 책에는 남여의 관계에 있어 생각할 부분이 여러곳 있었다. 우선 남여 평등시대가 서구 유럽사회와 북미의 선진국가를 중심으로 상당히 진척되었음에도 여전히 사회의 최상위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남성이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이를 근거로 여성이 열등하다고 말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런 사회들 조차도 아직 여성에게 완전히 평등하게 기회와 문을 열었다고 보기엔 그 사회들의 여러 수치가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또한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보다 훨씬 더 빨리 법적으론 평등권을 획득한 흑인들 역시 유럽및 북미사회에서 백인들과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던 무게추를 돌리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남성보다 보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이며 개방적인 사고에 어울리는 여성들이 이런 성향이 더 요구되는 미래 사회에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전진할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간혹 조직의 최고 위치에는 싸이코 패스같은 성향의 사람이 적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관계형 뇌를 갖고 이에 따라 관계와 배려를 중시하는 여성의 성향으로 볼때 최고의 위치가 이런 성향을 계속 요구한다면 좀더 시간이 지난다해도 여전히 최고의 위치에 있는 여성의 수는 부족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런 자리라면 여성 스스로가 거부하지 않을지. 아니면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라면 이런 다소 남성적인 위계적 조직 자체를 지금으로선 조금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로 바꾸어나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미래 사회에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남여 차이는 선악의 관계와도 밀접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으로 요즘 사회에서는 악에 집중하고 이를 해결하는데 상당히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생물에게는 악보다는 선이 오히려 희귀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악과 선은 상당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지구상의 생물중 인간은 이를 말하고 느끼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있다.

 즉, 인간에게는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이 있는 셈인데 나는 이 선악개념은 다른 것을 얻어오는 과정에서 인간이 느끼고 판별한다고 생각한다. 지위든 물질적인 것이든 성이든 그것을 얻어오는 과정에서 폭력성과 지나친 이기심, 과도한 추구가 있다면 사람은 이를 악으로 느낀다. 하지만 그것을 얻는 과정이 비교적 비폭력적인 편이고 배려와 과정에서 나누는 협력이 있으며, 적당함이 있다면 이는 선으로 느끼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정의하는 것과는 달리 어찌보면 악이 보다 정의의 중심이고 그 반대행위가 선이되는 셈이다. 즉, 선이 악의 그림자인 셈이다. 인간이 자신 외의 다른 존재가 무언가를 얻어오는 행위에 대해 선과 악이라는 가치판단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악이거나 선일 경우 자신의 생명과 소속집단의 생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체는 필연적으로 결핍된 존재인만큼 다른 존재로부터 무언가를 가져와야 하므로 이와 같은 선악판단은 상당히 본능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동물에 비해 다른 존재로부터 의존성이 덜한 식물이나 무생물에 인간이 선악판단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다른 존재로부터 무언가를 얻어오는 과정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생물도 결핍된 존재이므로 피할수 없는 만큼 인간의 선악가치판단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반응이나 감정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보다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인간이 상당히 당연시 되는 악에 비해 어떻게 보면 보다 효율적으로 다른 존재로부터 무언가를 얻고 의지할 수있는 협력이라는 이타성을 향해 진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동물들의 사회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상당한 스트레스는 주겠지만) 우두머리 침팬지의 다른 영아 침팬지 살해나 암컷들의 독식은 실제 인간사회에서는 상상할수 없는 압박과 비난을 받기에 실현 불가능하다. 

 선과 악을 말하려다 보니 말이 길어지긴 했지만 원래 하고 싶었던말은 인간의 성에 국한되 선악 판별을 하자면 남성이 맡은 부분이 인간존재 전체가 짊어져야할 악의 부분을 보다 많이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종내에서 열량을 얻기 위해 남자가 주로 담당한 것은 다른 동물에 대한 사냥이며 이는 상당한 폭력성을 요구한다. 또한 다른 성을 차지하기 위한 종내 성경쟁이나 이를 위한 지위획득을 위한 경쟁에서 남성이 보이는 과도함과 독점, 비협력성은 상당하다. 반면 여성은 열량획득을 위해 주로 식물을 채집했고, 성경쟁이나 지위경쟁 역시 남성의 그것에 비하면 치열함이 덜하고 훨씬 덜 비폭력적이며 자신들간의 관계 구축이 육아나 남자들이 비운 집을 지키기에 유리했다. 주로 악을 담당해온 남성의 이런 성향은 그 필요성이 직접적으론 줄고 비교적 평화적인 다른 형태로 줄어든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총기난사라던가, 싸이코 패스의 잔혹한 범죄 등의 형태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발현되기도 한다. 물론 소수의 여성 역시 남성의 이런 부분을 갖고 비슷한 행태를 보이기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긴 하다.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친구를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자라고 칭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성은 인간이 어쩔수 없이 지어야할 악을 등에 지고 가야만 하는 존재들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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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 GRIT -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앤절라 더크워스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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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내에서 함께 일하는 원어민에게 그릿의 뜻을 물어보았다. 의외로 한참을 고민하더니 예상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무슨 남쪽지방에서 먹는 음식인데 채소같고, 감자 갈아놓은 것 같은 그런 설명이었다. 원어민이 검색해준 사진을 보니 감자갈아놓은 샐러드 같은 그림이 있었다. 가장 먼저 말하는걸 보니 아무래도 이게 제1번 뜻인 것 같았다. 그리고 두번째로 사람 성격인데 열정이나 뭔가를 장기적으로 노력하는 뭐 그런거라고 말했다. 이게 책 그릿이 말하는 것이다. 한참을 어렵게 설명하는 것을 보면 그릿이란 단어는 생각만큼 미국에서 잘 쓰이지 않는 것 같기도 했지만 반면 뜻을 말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저자가 만들어낸 이상한 단어는 아니란 것도 분명했다.

 하여튼 저자는 책에서 그릿이란 아주 오랫동안 상위 목표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미국의 아주 살벌한 장교양성코스를 연구하던 중, 사람들의 높은 탈락율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 특성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것은 재능이나, 높은 SAT  점수, 강력한 신체적 능력, 학벌등이라고 생각하기 쉬웠지만 대답은 그릿이라는게 저자의 결론이었다.

 그릿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쉽게 눈에 띄는 것은 그릿의 결과물인데, 그래서 사람들은 높은 성과를 나타낸 사람들에게 아주 손쉽게 천재라고 칭하거나 타고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저자는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서 노력을 선천적 재능으로 파악해버림으로서 우리 모두가 경쟁에서 벗어나고 현실에 안주하며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의 경향이라고 이를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학생이나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인간같지 않은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 쉽게 천재라고 칭한다.(자신의 끈기와 오랜 노력을 천재로 치부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며 과연 그릿을 가진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이런 그릿은 크게 4가지의 심리적 자산을 갖는다.

 첫번째는 관심으로 무언가에 관심을 갖는 것을 그것에 대한 그릿의 시작이다. 관심은 대개 아동기보다는 중학교 무렵에 오는 편이며 자기성찰보다는 외부세계와의 접촉에 의해 생긴다. 어릴적 다양한 체험학습이 교육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관심사의 발견 이후에는 오랜 시간 주도적으로 관심사를 더욱 발전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교사나 부모등 여러사람의 지지가 중요하다.

 두번째는 의식적인 연습이다. 이는 1만시간의 재발견에서도 강조한 것으로 의식적인 연습을 위해서는 명료하게 진술된 도덕적인 목표와 완벽한 집중과 노력, 연습에 대한 즉각적이고 유용한 피드백과 반성과 개선을 통한 꾸준한 반복이 필요하다. 

 세번째는 목적의 개념으로 여기서 말하는 것은 가장 최상위의 목표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많은 만큼 여러개의 하위 목표를 피라미드구조로 갖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이 분명한 사람은 단 하나의 상위 철학을 갖으며 나머지 하위 목표들은 이를 위한 연결고리다. 하위목표는 언제든지 쉽게 바뀌고 없앨 수 있지만 상위목표만큼은 그럴수 없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그릿을 갖추기 위해선 이 상위목표가 나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중요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누군가의 상위목표가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릿을 위한 목표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아 다른 사람들과 세계가 평화롭고 하는것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희망으로 이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전진할수 있는 성장형 사고 방식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어려움이 닥쳐올시 포기하거나 정신적으로 붕괴하는 반면 그릿을 가진 성장형 사고 방식의 사람은 낙관적으로 해석하고 끈기 있게 새로운 도전을 추구해 나간다. 

 이처럼 그릿은 개인의 심리적 작용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여기엔 부모와 교사, 멘토등 외부 사람과의 상호작용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들은 지지와 냉담, 과업에 대한 요구와 비요구를 할 수 있는데 저자는 그릿을 키우기 위해선 지지와 요구가 같이 가는 현명한 양육방식이 적절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학교현장에서 수업과는 별개로 특별활동이 그릿을 키우는데 유용하다고 한다. 이 경우 특별활동에 1년이상 참여한 경우가 그릿을 키우는데 효과적인데, 특별활동을 자주 바꾸는 것은 그릿을 키우는데 유용하지 못하며 바꾸더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2-3년 이상 유지하는게 효과적이라고 한다. 물론 그릿이 높기에 특별활동에 잘 참여한 것일수 도 있지만 저자는 쌍방이 서로 상호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릿이 높은 사람들은 행복지수도 높다라는 결과까지 써붙이며 책을 마무리한다. 책 그릿은 전형적인 인간 능력에 대한 선천적 유전과 후전적 노력에 대한 책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그릿은 당연히 후자의 손을 든다. 물론 그릿같은 것역시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이냐고 물을수도 있다. 저자는 쌍둥이에 대한 조사 결과 그릿의 유전비율은 30%정도로 인간의 다른 특질의 유전정도와 유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후천적 환경과 노력에 의해 그릿을 충분히 키울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견해에 동의하는 편이다. 우선 모든게 유전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생물체의 생존에 너무 불리하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의 진화와 유전자는 상당부문 개체에게 주어지는 환경과 그 극복을 위한 노력에 대한 산물을 준비했을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것이 넘을 수 없는 한계란것도 유전적으로 분명하겠지만 생존하고 행복하고자 하는 개체를 위한 선물정도는 충분히 되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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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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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과 시대는 서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때론 시대의 변화를 미술이 추종하기도 하고, 어떨때는 미술이 사람과 시대를 앞서나가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살아생전에 그리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도 이때문이다. 그리고 때론  미술은 시대와 권력의 종 노릇을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미술을 하는데는 돈이란게 결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술은 그 사회와 당대의 썩어빠진 폐부를 정말 잘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미술과 시대는 그렇게 서로를 그려나간다. 

 이 책 시대를 훔친 미술은 대충 르네상스시기부터 근현대까지 유럽 사회의 시대 변화와 미술의 변화를 정말이지 잘 뒤섞은 책이다. 예술은 나에겐 부채와도 같은 편인데 항상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좀처럼 손이 가질 않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결코 많진 않지만 여러 권이 그러한 마음의 부채를 메우 듯 책장에 쟁여져 있는데, 연휴로부터 용기를 얻어 열어본 이 책을 열어보았다. 결과는 기대이상이었다.

 책은 일단  르네상스시기로 향한다.  르네상스 이전 시기 유럽 미술의 주제는 단연 기독교였고, 이는 인간중심의 르네상스시기라고 다르지 않다. 하지만 표현 방법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큰 차이가 생긴다. 과거 역원근법에서 선원근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역원근법은 전지전능한 신이 당연히 여러곳을 볼수 있다는 점에서 신의 관점을 시각화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원근법은 그림을 한 시점에서 보는 것으로 지금, 현존하는 주체의 존재를 시각화 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과 카톨릭으로 묶여 있던 철저히 예속된 공동체 상황에서는 존재할 수 없었던 근대적 개인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 상황으로 과거 민족개념이나 국가개념이 매우 미약한 상황에서 교황의 권위가 약해지고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였으며 신교의 등장으로 신앙 역시 다양해지고 있었다. 또한 서적의 보급으로 과거 낭독으로 이루어진 독서가 개인적인 독서인 묵독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러한 개인 탄생을 부채질하는 시대변화가 미술에 반영된 것이다. 

 신교의 등장으로 미술이 바뀌었다면 다음은 구교의 반격이었다. 카톨릭은 신교가 서적의 보급을 통한 언어 위주의 문자포교에 맞서 미술을 사용하였다. 이시기의 미술 유행인 바로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바로크 시대에서 미술은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조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당시 등장한 연극의 연출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강렬한 구성을 통한 종교적 고양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극적인 효과는 당시 종교전쟁 이후 등장한 절대왕정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종교적 열정과 예술의 영향으로 태동한 바로크가 세속화 하기도 한 것이다. 

 이 시기에 유럽의 북부 한 곳에서 독특한 나라가 탄생한다. 바로 네덜란드다. 나라가 독특하기에 그 나라의 미술 역시 독특했다. 다른 유럽 지역들과는 다르게 네덜란드는 시민 공동체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이기에 그들을 위한 미술작품이 다수 탄생한다. 마치 양반과 왕가에서 벗어나 백성을 위해 탄생한 우리의 민화같은 느낌이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이 귀족과 시민공동체를 기리기 위한 그림이 많아 탄생하여 주로 집단 초상화가 많았다. 또한 오랜 전쟁과 대항해시대의 도래로 남자들이 집안을 비우자 여성들이 가정의 가장과 직장인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자연히 여권의 신장으로 이어져 이 시기 네덜란드의 그림에서는 매우 독립적이고 남성과 대등해 보이는 여성이 드러나는 미술작품도 다수 등장한다.

 대항해시대의 도래는 당대 유럽인들의 사고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기 시작한다. 종교개혁과 지리상의 발견들로 기존의 세계관이 흔들리고 확장 분열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굳건했던 종교적 믿음이 흔들리고, 나홀로 신과 사제로의 의지 없이 새로운 세계 안에서 자기를 끊임없이 확증해야 하는 고독한 개인상이 등장하게 된다. 이는 누구보다 굴곡진 삶을 살았던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은 시기에 절대왕정의 궁전에서 세속화한 바로코는 급기야 로코코로 변화한다. 바로크가 다소 굵직하고 역동적인 남성적 취향의 예술이었다면 로코코는 섬세하고 변덕스러운 여성의 취향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정략결혼으로 정작 사랑의 자유를 갖지 못한 귀족과 왕족들의 로코코 취향은 목가적 사랑을 그리는 그림의 발전을 낳는다. 치열한 개인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시민세계에 비한다면 사뭇 유아적인 느낌마저 갖게하는 형국이다.

 절대왕정의 시기는 프랑스 혁명으로 그 끝을 점차 맞이 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기 예술은 바로크도 로코코도 아닌 신고전주의로 향한다. 신고전주의는 교훈적이고 영웅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역사화, 신화화, 초상화를 주로 많이 남겼다. 혁명기 이후 프랑스에서는 신고전주의가 쇠퇴하고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는데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프랑스에 반감이 강했던 독일에서는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향으로 독일식 낭만주의가 시작된다. 이 낭만주의는 프랑스의 그것에 비해 시대적 요구에 의하여 민족적 색채가 강했으며 자유를 갈망하는 개인을 자연을 매개로 표현하는 형태가 많아 유독 풍경화가 많았다.

 유럽엔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다. 산업혁명 시대는 뜻밖에도 산업화한 도시이외에도 미술에 있어 농촌을 재탄생시켰는데 이는 사람들이 산업화한 도시로 몰리면서 늘 있었던 농촌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엔 도시와 대비되는 농촌 풍경과 그 안의 인물들을 다룬 그림이 사실적인 형태로  그려졌다. 당시 그림엔 유독 농촌에서 일하는 여성이 많았는데 이는 남성을 도시와 문명, 이성으로 보고 여성을 농촌, 자연, 감성으로 여기는 계몽주의의 이분법적 철학
이 그림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기에는 상당히 오랜 기간 역설적이게도 도시의 노동자보다는 농촌이 주로 다루어졌다. 이는 초기 공장에서의 노동이 이렇다할 전문적인 노동의 형태를 띄지 못한 단순 노동이었기 때문이며 당시 공장의 노동형태가 마치 지옥처럼 극도로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산업혁명기에 인간은 여러가지를 발명하여 이른바 속도를 낳는다. 사람들은 늘 정적인 풍경만 보고 살았는데 증기기차등의 발명으로 빠르게 이동하여 마치 물결이나 띠처럼 느껴지는 풍경을 보게 된것이다. 이는 미술에 영향을 미쳐 자연의 한 순간이나 힐끗 본듯한 한 때의 인상을 남기는 인상주의가 시작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한때의 인상을 위해 야외에서 즉석으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당시 교통수단의 발달과 튜브형 물감의 발명은 이를 가능케했다.

 산업혁명기 이런 인상주의의 등장은 르네상스이후 줄곧 계속되어 온 본질을 그리고자 한 열망의 폐기를 의미했다. 이제 더이상 그림은 있는 그대로를 다양한 형식으로 담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상주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늘 명랑했는데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간의 자신감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이 작품에 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유럽의 풍요는 어디까지나 제국주의를 통한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수탈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수탈을 가능케 한 제국주의는 세계대전과 경제공황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며 이는 곧 인상주의의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20세기 들어 새로운 세기에 대한 새로움과 성공에 대한 예술가들의 갈망이 겹치면서 예술적 아방가르드가 시작된다. 당시 예술은 대중과 호흡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과 고지를 선점하려는 예술가들의 실험적 경쟁이 본격화한 시기였다. 그리젤다 폴록은 이시기 예술의 파괴성을 과거 예술인 아버지에 대한 참조와 그것에 대한 경의,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지위를 전유하고 강탈하고자 한 문화적 친부살해로 표현했다.

 이 시기에는 야수파와 입체파, 미래주의, 절대주의, 추상미술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미술이 등장한다. 입체파는 시공간에 대한 기본 개념을 뒤흔든 아인슈타인의 등장에 영향을 받았으며 추상미술은 오히려 예술의 주변지였던 유럽 변방국가들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예술의 지향점을 눈에 보이는 현존세계가 아닌 내적 필연성의 세계에 두었고 현실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공통적으로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는 오브제를 제작한 마르셀 뒤샹에 의해 처음으로 극복된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모처럼 국적을 잊고 예술적 공동체 의식과 보편성을 갖고 있었으나 이는 1차대전을 통해 무참히 깨져나간다. 몇몇 예술가들은 전쟁을 통해 전사했고, 살아남은 몇몇은 더이상 낭만적이거나 즐거울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은 이성에 근거한 서구문화 전체를 부정하는 다다로 이어졌다.

 책은 이 시기에서 마무리 된다. 역사와 함께 다룬 미술이라 쉽게 읽히면서 그 미술과 역사가 서로를 그려나간 변화가 인상적이고 아프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역사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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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상미술의 시대가 열렸을 때 이탈리아와 러시아 미술도 주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솔리니와 스탈린의 시대가 오는 바람에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었습니다. 시기적으로 타이밍이 좋지 못했습니다.

닷슈 2017-10-11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러시아 쪽은 철저히 이용하기도 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