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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넘어 인문학 - 미운 오리 새끼도 행복한 어른을 꿈꾼다
조정현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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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서문에서 어릴 적 어머님이 사주신 동화전집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 말한다. 그리고 저자의 어머니는 동화전집을 보고 눈이 빛나던 작가를 보고 그걸 사준걸 후회하신다. 그토록 힘든 글쟁이의 길을 가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외에도 누구나 동화 전집이나 위인 전집, 혹은 백과사전 한질씩은 갖고 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딱히 놀것도 없던 시절이고 마냥 밖에서 놀수 만은 없는 경우도 있으니 그럴때는 이런 책과 함께 했을 것이고 몇번이고 계속 읽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어릴때의 뇌는 책이든 영화든 만화든 두세번 보는것을 이상스레 지겨워하지 않았다.

 지금 아이들은 매우 다르다. 간혹 이런 동화를 당연히 읽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의외로 읽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매우 당연시 되었던 동화교육에 대해서도 과거와는 달리 말이 많다. 어려서부터 선과 악이 분명한 일방적 도덕을 주입한다는 비판, 남여 관계가 너무 전통적이고 불평등하다는 비판, 과거의 가치관을 너무 주입한다는 비판등등.

 하지만 아직도 아이들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동화를보고 있으며 그 교육적 효과를 옹호하는 측도 만만치 않다. 작가는 이 책에서 그런 동화를 가지고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서문에서 인문학을 어렵다 하셨는데, 지나친 겸양이셨다. 동화 하나와 인문학 서적 하나를 엮어 재밌고 다양한 주제로 생각보다 깊이 있게 책을 엮었다.

 이솝의 당나귀와 아버지와 아들에서는 주체적 사유 없이 이사람 저사람의 말에 휩쓸리는 어리석은 인간 군상이 나오며 여기서 사유없이 자본의 힘이 휩쓸려 이리저리 소모되며 사는 현대 사회의 사람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를 한병철의 피로사회와 엮어낸다. 그리고 인어공주의 사랑에서는 축복받은 조건에서도 모든 걸버리고 달려나가는 사랑의 무모함과, 더불어 자신의 사랑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모습에서 사랑의 숭고함과 다른 이를 위한 보편적 희생을 찾아내기도 한다.

 책은 전체적으로 이런 식으로 짜여져 있으며 중간중간 저자의 고민과 성찰이 담긴 통찰력 있는 매력적인 문장들도 있었다. 몇 개 뽑아 봤다.

 

p58

삶은 영위하는 생명이란 외부로부터 흡수한 것을 다시 외부로 배출하는 존재입니다.

 

p74

사실 행복이란 아무 사건도 없는 평범하고 심심한 삶이다.

 

p78

우리는 대부분이 자기 중심적이라 상대에게 잘해주고 싶을 때 조차 자기 기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나와 우리 마누라는 서로를 기쁘게 해주는 선물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

 

p82

개선장군은 모름지기 상례(喪禮)로 맞이 해야 한다. -노자

(개선장군을 위해 개선문을 세우고 잔치를 하지만 사실 개선장군은 수많은 적과 민간인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을 묻고 온 사람이다. 역사상 이런 배려를 한 재상이나 왕, 관리가 있었을까?)

 

p107

사랑은 원래 불가능이라는 연료로 인해 존재를 태워버리는 것이다

 

p128

사랑의 근본적인 모순은 하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서로 다른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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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국사 : 전근대편 쟁점 한국사
한명기 외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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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의 여러 한국사 전공자들이 우리나라 역사중 아마 자신의 전문분야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시대별로 엮은 책이다. 이것은 전근대편으로 고조선부터 조선일부까지를 다룬다. 전근대편이라 고조선이나 삼국, 남북국, 가야, 부여등을 기대했지만 대부분의 글이 고려에 집중되어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송호정 교수가 쓴 부여부분이 아쉬웠는데, 담담하게 담아내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해 축소적으로 보는 느낌이 많았다. 글도 부여가 제목이지만 부여보다는 고조선부터 시작해 부여로 이어지는 글을 썼고, 그 부분에서도 그런 느낌을 적잖게 드러내고 있다. 지도가 가장 적나라했는데, 3세기 부여전성기 영역지도였다. 부여는 뭐 그렇다 쳐도 삼국과 가야가 완전히 정립한 시기임에도 신라, 백제, 가야의 명칭은 없고 마한, 변한, 진한으로 짙게 표시해 사실상 삼국이 막 세워진 듯한 느낌을 주는 지도였다. 

 국사교과서에서는 삼국을 세운 시기를 그보다 이 삼백년 정도 전으로 보고 있으며 3세기 정도면 삼국이 고대국가로서의 틀을 제대로 정립한 시기로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이 시기를 사실상 건국시기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은데, 아무래도 송호정 교수는 그 견해를 따르는 것 같다. 역사는 물론 해석이 필요한 학문이고, 사료도 워낙 없는 시대라 그렇다. 나 역시 비전문가로 서로 상충되는 주장의 글을 볼때마다 널 뛰기를 늘 달리하는 편이라 항상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선덕여왕 즉위와 관련하여 성골이 무엇인지 해석한 부분이다. 나는 성골을 항상 양부모가 모두 성골인 경우를 의미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에서는 그럴 경우 성골이 갑작스레 선덕여왕 즉위즈음에 씨가 마른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근친혼이 아무리 많았더라도 오랫동안 소중히 관리되어 왔으며 신라 왕족의 성씨가 3개나 되는 만큼 사실 근친혼에 의한 사멸도 좀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책은 그래서 성골의 개념이 선덕여왕 즉위 즈음으로부터 상당히 최근에 생긴 개념이며 그 범위도 더욱 좁았을 것이라고 본다. 당시 신라는 삼국중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이고 왕권강화를 위해 적극이용하였는데, 법흥왕의 그 시초이며 이차돈 사건은 관련한 유명한 사건이다. 법흥왕의 아들 진흥왕은 아버지 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자식들을 불교신화에 등장하는 4가지 유명한 왕들로 이름붙였다. 불교 신화에는 철륜, 동륜, 은륜, 금륜의 왕들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뒤로 갈수록 전세계의 지배가 완성되어 간다. 그래서 책은 진흥왕 자신을 철륜으로 삼고, 첫째 왕자를 동륜, 막내인 진지왕을 금륜으로 이름붙였다고 보고 있다. 막내인 진지왕이 금륜인 것으로 볼때, 역사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둘째 은륜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진흥왕의 손자인 진평왕 역시 만만치 않다. 진평왕은 스스로의 이름을 백정, 즉 석가모니의 아버지로 자칭하였고, 당연히 부인도 석가모니의 부인인 마야부인으로 명명한다. 아들은 당연히 석가모니가 되어야 하는데, 불교의 계율상 해탈한 석가모니의 인간으로의 재탄생은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진평왕에겐 아들이 없고 다행히 딸만 있었는데, 그 딸의 이름이 덕만으로 선덕여왕이다. 덕만은 본디 남자로 태어났어야 한나 중생의 구제를 위해 여자로 태어나게도니 불교의 인물이다.

 이런 양상으로 보았을 때 신라의 성골은 사실상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고 진흥왕을 그 시작으로 하며, 진흥왕과 동륜태자, 진평왕, 선덕여왕의 적장자 직계 왕족라인 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게 책의 해석이다. 이 해석대로라면 왜 그렇게 쉽게 성골이 사멸했고, 여성인 선덕여왕이 여자임에도 어떻게 왕위 죽위가 가능했는지 설명이 된다. 사실 선덕여왕 이전에는 아들이 없는 경우 공주의 남편, 즉 왕의 사위인 갈문왕에게 즉위를 물려주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이다. 

 즉, 성골은 글자 그대로 왕권강화를 위해 불교라는 종교를 이용하여 성스러움을 부여한 진흥왕 적장자 라인의 협소한 개념이며 이 강한 파워로 선덕여왕의 무리한 즉위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대동법이다. 대동법은 조선의 수취체계 중 가장 문제가 컸던 공납으로 인한 비리와 백성들의 고충을 막고자 공납을 쌀로 대신하는 제도다. 대동법의 발상은 오래되었지만 전국적인 실시에는 거의 100여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흔히 이를 두고 양반계층의 기득권보호를 위한 강한 반발을 그 주원인으로 보는게 통념이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책은 조선의 양반계층은 상당히 도덕성이 높은 계층이었고, 고려와는 달리 음서를 통한 보장이 적어 한번 세도가가 되어도 자손 대대로의 권력 유지가 어려웠음을 지적한다. 아버지의 끝발로 어찌 관리가 된다하더라도 결국 실적이 필요했고, 그 자손의 자손은 결국 과거를 붙어야 권력이 유지되기 때문. 그래서 책은 대동법을 반발한 집단은 양반계층이 아니라 백성의 고혈에서 이익을 누리고 있는 집단 때문으로 보고 있다. 

 대동법 실시전에 백성들은 무려 60말을 공납용으로 사용하였는데 대동법 시행이후에는 12말 수준으로 줄었다 그렇다면 중간에서 48말을 착취한 집단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책에서는 그 집단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공납을 대행하는 상인 집단들과 그들과 결탁한 지방 아전들이 그 집단이 아닐까 싶다. 고을 수령 역시 양반으로 교체되는 사람이기 때문. 

 어쨌든 책은 대동법으로 인한 세금제도의 개선으로 조선왕조의 수명이 100년 이상 늘었다고 보며 망국을 앞둔 19세기에 이르러 세도정치로 대동법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부담이 다시 대동법 이전 시기로 회귀하였음을 보인다. 

 책은 가볍고 잘 읽힌다. 여러 저자의 견해를 엮에 체계성은 없고, 중첩되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일독할만하독 생각된다. 독서력이 높고 한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3-4시간이면 독파가 가능하다. 다음 근대편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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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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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난 남여가 서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르러 가정을 꾸리는 방식은 매우 자연스럽다. 지금은 연애결혼이 무척 일반적이서 그 이외에 다른 방식의 결혼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된다. 하지만 연애결혼은 과연 인류역사에서 얼마나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웠을까?

 사실 얼마전만해도 연애결혼은 상당히 소수의 것이었다. 70-80년대만해도 중매결혼이 훨씬 많았으며 연애결혼을 했다고 하면 의외의 경우였고, 때에 따라선 다소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였다. 과거의 결혼에서는 연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얼마나 나이가 찼는지, 직업은 어떠한지. 집안은 어떠한지, 어느마을 어디 출신인지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상대방의 얼굴은 심한 경우는 혼례식장에서, 좀 낫다면 중매장소에서 처음 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알랭드 보통은 이 소설에서 이런 형태의 결혼을 합리적 결혼이라고 칭한다. 지금도 물론 우리나라에 이런 형태의 결혼이 남아 있기는 하다. 아마도 잘나가는 대기업이나 힘있는 집안의 결혼이 그러할 것 같고, 나이가 엄청나게 차서 무척이나 당사자들과 집안이 급한 결혼이 그럴 것 같으며,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곳에서 주로 여성을 데려오는 다문화 결혼의 형태가 그러할 것이다. 이런 경우를 보면 확실히 자유연애를 통한 결혼이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바로 이런 결혼을 문제삼는다. 보통은 이런 형태의 결혼을 '낭만주의 결혼'이라 칭한다. 낭만주의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로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결핍된 뭔가를 채워줄 수 있는 상대, 그래서 자신과 다를수 밖에 없는 상태, 그래서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같은 상대를 찾아내어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져든다. 여기에는 사회 분위기도 일조한다. 나이가 찰수록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대부분 결혼을 하며 그에 따라 나와 시간을 보내줄 사람도 묘하게 사라진다. 거기에 나이 든 사람들 중 혼자라서 완성된 사람보다는 둘이어서 완성된 사람이 많아보이는 착각마저 든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된 결혼생활은 보통에 의하면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수많은 영화와 이야기에서는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과정만 보여줬지 그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도통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라비와 커스틴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신혼초 이케아에서 집을 꾸밀 작은 컵을 가지고도 싸우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램프를 고르는 과정에서였다. 서로의 다름으로 완벽해질 수 있다는 착각은 이제 시작이며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오는 스트레스는 서로를 미친사람으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니 그런 사람을 선택한 내가 미쳤던 건지도 모른다.

 낭만주의에서 사랑은 흔한 노래가사처럼 서로의 다름 그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그런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미 부부는 서로를 매우 잘탐색하여 서로의 좋은점과 나쁜점을 매우 잘 알고 나쁜점을 개선시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과정은 매우 공격적인 경우가 많고 상대방도 희한하게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민감하다.

 그러던 부부에게 아이가 생겨난다. 아이는 탄생과 동시에 예방주사에 대한 안내장을 제외하고는 어떤 다른 지침이나 조언없이 집으로 들어온다. 알랭 드 보통은 아기보다는 일반 가전제품이 더 상세한 취급 설명서와 함께 온다고 했다. 이문장을 읽고 한참 웃었다. 아이는 대단한 존재이고 초기에 가진 철저한 의존성과 자기중심주의, 연약함을 통해 부모의 사랑을 이끌어낸다. 부모는 아이의 양육을 통해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자아를 초월해나간다. 부부간의 사랑에서도 못 이룬 일이다. 그래서인지 연애시절 그토록 남편을 사랑하던 아가씨는 엄마가 되는 순간 그 사랑의 방향타가 완전히 바뀌곤 한다.

 아이에게 초기에 얼마나 부족함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공하느냐는 향후 아이의 애착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애초에 완전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애착문제를 가진 부모에게 그런 것이 가능할리가 없다. 어찌보면 낭만주의 결혼의 문제는 바로 이부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는 아이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누구나 겉으론 겸손한척 해도 아이를 위해 완벽함을 추구한다. 보통은 이를 '그저 또 하나의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완벽함의 표본을 창조하려 하는 것이다. 평범한은 통계상 정상임에도 결코 최초의 목표가 되지 못한다. 그 결과 아이를 어른으로 키우는 데 너무 막대한 희생을 치른다.'라는 문장으로 담아낸다. 여기에는 학부모로서 아이에게 줄 고통과 시간 비용의 허비,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아이의 분노와 좌절, 절망,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아이에게 그렇게 할지도 모르는 비관이 섞여 있다. 어쩌면 항상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하는 인간에게 이런 양육 태도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커가고 그러다 남자인 라비에게 외도의 기회가 생기고 그는 매우 손쉽게 이에 응한다. 여자는 아내인 커스틴보다 훨씬 젋고 아름답다. 자신에게 왜 이여자가 이러는지 모를지경이다. 남자에게는 젋고 이쁜 새 여자가 최고라는 속설처럼 라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지만 그녀를 택할 경우 잃게될 모든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평화로운 가정, 헌신적이고 지적이며 세련된 아내, 때론 짜증나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들, 자리잡은 집과 직장에서의 지위, 이 모든 것을 말이다. 남자는 결국 선을 넘지는 못하지만 한번의 외도는 두고두고 마음속에 가시로 자리 잡는다. 삼키지도 내뱉지도 못하는 그런 것으로.

 가정불화는 점점커지고 부부는 마침내 상담센터를 찾아간다. 한때 그런곳을 찾는게 이상하고 돈이나 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던 그들이지만 상담의 결과 서로의 약점과 방어기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대화하고 다가가는 법을 알게된다. 이제 상담센터는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심리치료사들은 대단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남자는 결혼 16년만에 드디어 자신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그는 성장과정에서 그리고 아무도 유전적으로 비롯되었을 자신의 약점과 내면을 속속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상대방의 그러한 것들 역시 받아들이고 이해할 준비가 되어간다. 인생의 절반을 넘어 어릴때에 비하면 원하던 것의 절반도 얻지 못한 보잘것 없고 실패한 삶이지만 그건 그러한 것이 아니라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는 낭만주의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일독 후, 책은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준다. 중간중간 이어지는 알랭 드 보통의 설명 때문인것 같기도 하고 여러 에피소드를 엮고 심리를 드러내는 심리에세이나 감정에세이 같은 느낌도 많이 주기 때문이다. 결혼과 그 이후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과 그것을 담아낸 문장들은 정말 시원하고 아프며 재밌다. 그리고 분명 이 책은 소설의 주인공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10년 이상이 지난 부부에게 가장 크게 다가갈 것이다. 많은 분들이 번역에 대한 지적을 하였는데, 솔직히 나는 별 문제를 느끼진 못했다.

 낭만주의에 빠져 우린 결혼을 하고, 보통의 말처럼 결국 결혼이 낭만주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책임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타인애를 통해 완성되어 가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곤 한다. 낭만주의로만 이루어진 결혼은 결국 하나의 환상이고 어찌보면 자기애로만 구성된 낭만주의 결혼의 결과는 이혼이다. 오늘날 3쌍중 한쌍이 이혼하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히려 비민주적이고 자아가 부정된 결혼인 과거의 합리주의적 결혼이 오랜 결혼을 지속했다. 시대적 요인도, 시민성이나 개인의 대한 관심도 크게 부족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 시대 그사람들은 강제성으로 인해 낭만주의를 넘어섰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의 결혼이 훨씬 낫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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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7-11 07: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옛날 동화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다보면,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대요.‘하는 대목이 생각나네요. 결혼 전의 모험, 대립, 갈등 등은 결혼 후 수많은 시간에 비하면 극히 짧은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 듯 합니다.^^:

닷슈 2017-07-11 08:53   좋아요 2 | URL
요 소설도 딱 그런 대목에서 시작합니다 그후로를 다룬작품으론 슈렉 시리즈가있죠
 
낙엽이 지기 전에 - 1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
김정섭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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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제1차대전은 이름만큼 굉장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그 동생뻘인 2차대전에 비한다면 잊혀진 전쟁이나 다름없다. 둘의 발생 시기차가 고작 20년정도 차이에 불과하고 1차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새로운 세계질서가 사실상 2차세계대전을 잉태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전쟁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의 정도는 다소 놀랍다. 2차대전하면 정말 많은 것이 생각난다. 히틀러, 무솔리니, 도죠히데키등의 전범자들은 물론이고 2차대전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 책 등의 저작물도 정말 많다. 하지만 1차대전의 그것들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워호스 정도의 영화가 간신히 생각이 나는 수준이다.

 책, '낙엽이 지기전에'는 이런 1차대전을 다룬다. 1차대전이 발발하던 당시의 국제적 상황과 주요정책결정자들과 그들의 성향, 그리고 사라예보사건 이후, 각 나라들의 복잡하고 급박했으며 어리석었던 의사결정들, 그리고 그것들이 연결되어 전쟁이 이루어지고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장면들을 딱딱하지 않고 생생히 보여준다. 저자도 의도했다고 말하지만 주로 묘사로 서술되어 약간은 소설같은 기분도 느낄수 있었다.

 우선 18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은 유럽의 떠오르는 신생 강대국으로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의 주도하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알자스 로렌지역을 차지한 상태였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를 격퇴했음에도 더 이상의 팽창은 주저하였으며,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는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정책을 구사했다. 그래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등 가급적 모든 유럽국가들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구축해나갔다. 식민지정책에도 부정적이어서 식민지정책이 가져올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과 다른 유럽국가들과의 관계악화를 우려했다. 즉, 비스마르크의 정책은 신생제국 독일의 무리한 확장보다는 그것을 유지하고 유럽내에서 지위를 인정받으며 안정화하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지금의 독일 정책과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황제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키면서 상황은 급반전한다. 독일의 공업수준이 최대치에 이르며 국내시장이 포화에 이르자, 새로운 시장으로서 식민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고 여기에 황제의 야심도 더해졌다. 이에 독일은 새로운 식민지 개척을 위해 적극나서지만 그를 위해서는 제해권을 잡고 있으며 전세계에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는 영국을 제압해야 했다. 이 때부터 제해권을 둘러싼 독일과 영국의 건함경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무리한 건함경쟁에도 모로코를 둘러싼 힘의 외교전에서 사실상 영국과 프랑스에 패배하고, 러시아 오랜 경쟁관계인 영국과 합작하기 시작하자  독일은 사실상 건함정책을 포기하고 유럽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만다.

 이는 자신들의 팽창이 초래한 바이지만 이로 인해 독일은 지상군위주로 전환하며 1차대전 전략의 근간이되는 슐리펜 계획을 세운다. 슐리펜 계획은 프랑스 부분의 서부지역을 공세할때 벨기에 부분으로 우익기동하고 방어가 강한 프랑스 부분의 좌익 부분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편성한 후, 전력을 집중시켜 단기간 내에 프랑스를 제압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후, 러시아 부분의 동부전선에 서부전선에서 생긴 여유분의 병력을 증가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간다는 것이 핵심전략이었다. 이 슐리펜 계획은 1차세계대전에서의 전략적 패배와 외교적 여지를 크게 줄여 사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듯 1910년대 유럽은 독일-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이탈리아의 삼국동맹과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삼국협상이 팽팽이 맞서는 상태였다. 이런 와중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 사라예보를 순방중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간섭하는 슬라브계인이 저지란 사건이었다. 사실 첫번째 암살시도는 폭탄에 의한 것이었는데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황태자와 경호책임자는 무리한 순방을 계속해 황태자부부는 결국 실패한 테러를 포기하고 돌아가던 또다른 암살자 눈앞에 나타나 사살되고 만다.

 이 사건에 피해자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자국의 발칸반도에서의 영향력 강화와 제국의 황태자암살이라는 손상받은 위신을 만회하고자 세르비아에 강력한 경고장을 날리려고 한다. 하지만 거기엔 러시아란 문제가 있었다. 발칸반도에 많은 슬라브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세르비아에 대한 강력한 조치는 러시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독일제국에 협조를 요청한다. 놀랍게도 빌헬름2세와 독일 정책자들은 이런 오스트리아의 물음에 무한한 협조를 약속하는 유명한 백지수표에 가까운 협조를 약속한다. 그리고 빌헬름2세는 어처구니 없게도 이긴박한 순간에 그같은 결정을 내리고서도 무책임하게 3주간의 북유럽요트여행을 떠난다. 이 같은 독일의 강경한 협조요청에 놀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상당히 호전적으로 돌변하여 세르비아의 주권과 자존심을 건드는 최후통첩을 날린다.

 세르비아는 당연히 거부할수 밖에 없었으며 이 사태를 주시한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의 이런 태도의 배후에 독일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독일의 침공의지를 과대하게 위협적으로 평가한 러시아는 선제공격에 대한 군부의 압박, 그리고 독일에 대한 공포로 인해 총동원령을 내리고 만다. 러시아 황제와 관료들은 사실 부분동원령을 내리려고 했으나 당시 러시아의 후진적 상황과 독일에 대한 공포는 이를 허락치 않았다.

 어처구니 없게도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이런 러시아의 행동에 매우 놀란다. 휴가를 다녀온 빌헬름 2세는 이와 같은 러시아의 대처에 사촌지간인 니콜라스 러시아 황제에 서신으로 상호자제를 호소한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니콜라스의 손과 빌헬름의 손을 떠난 상황. 러시아의 총동원령에 오스트리아도 총동원령으로 대응하였으며 위기를 느낀 프랑스는 영국에 도움을 요청한다. 당시 조용하면서도 영광스러운 고립적 외교로 유럽대륙의 문제에 비간섭으로 일관하던 영국 역시 상황이 급박해진다. 프랑스와의 동맹으로 프랑스 함대는 지중해 연안에 집중해있엇고 이에 북해 부근의 프랑스 영해는 영국이 보호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신생중립국의 벨기에의 중립역시 영국의 이루어놓은 것이라 전쟁발발후 사실상 이루어질 독일의 벨기에 진격은 영국의 위신을 깎는 일일것이기 때문. 거기에 프랑스를 잃은 후, 영국이 과연 무사할 것인가라는 실제적 질문도 함께자리했다.

 프랑스가 이미 총동원령을 내리고, 독일 역시 이에 대응해 총동원령을 내리고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한 후 룩셈부르크를 침공함으로써 전쟁은 사실상 시작되고 만다. 사라예보사건 이후 정확히 한달 후의 일이었다.

 초기 전황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압도적 군사력으로 서부전선에서 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제압하였고, 이로 인해 프랑스를 빠른 시간안에 침공할 수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육군 역시 초기전투에 실패하여 퇴각하는 상황이었다. 동부역시 마찬가지여서 삼소노프가 이끌던 러시아군을 탄넨베르크에서 격멸하는 성과를 올린다. 러시아 군의 전사자는 무려 40만에 달했고, 독일은 겨우 1만에 그칠만큼 대승이었으며 이후 러시아는 동부전선에서 이렇다할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독일에 계속밀리게 된다. 당시 러시아군은 병참능력이 떨어지고 심지어 통신역시 암호화하지 못하는등 후진적인 군대였으므로 패배는 자명했다. 그리고 대패이후 삼소노프는 자살한다.

 이에 고무된 독일의 몰트케는 서부전선의 2개군단을 동부전선으로 수송하는 치명적 판단 착오를 범하게 되고 연합군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 마른전투에서 승리한다. 이로 인해 서부전선을 고착되고 만다. 당시 유럽 각국의 지휘관들은 신속한 공격전을 선호했는데, 이는 빠른 공격이 적의 영토로 신속하게 진격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상대편지휘관으로 하여금 역시 신속한 공격전을 선호하게 만들었다. 1차대전의 발발위기에서 서로 빠르게 총동원령을 내려 서로의 동원령을 부추겨 전쟁을 발발하게 만든 것도 이와 같은 신속한 공격전에 대한 상호간의 공포때문이었다. 또한 신속한 공격전에 대한 선호는 전쟁을 빨리 끝날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낙엽이 지기전에 이다. 전쟁을 선포한 장군과 관료, 황제들은 모두 전쟁이 조기 종료될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유럽의 하천지형과 자잘한 산맥들은 진격을 어렵게 만들었고, 기관총과 장거리 사정포의 등장으로 속도감있는 진격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물론 병사들은 무거운 장비로 속도를 내는 것 자체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전장이 교착되자 서로 점령하기 어려운 긴참호가 형성되었다. 1차대전이 참호전이라 불리는 이유다. 당시엔 이런 참호를 돌파할만한 전차도 공중지원도 없었다. 그러한 무기는 2차대전에 등장한다. 어쨌든 참호는 포탄이 떨어지지 않게 끔 폭은 넓지 않으면서 쉽게 조준되지 않게 구불구불 미로처럼 깊숙이 파졌다. 참호안 환경은 매우 열악하여 쥐와 민달팽이, 이, 사람의 오물, 시체 등으로 고약한 냄새가 났다. 냄새가 참호 수 km까지 퍼져 적들은 참호가 있음을 정찰없이 파악할 지경이었다. 안에서의 위생환경도 열악해 병사들은 발목이 세균성 감염으로 썩어나가는 참호족염에 시달리고 오한과 고열에 죽어나갔다. 포탄으로 인한 공포도 상당하여 신경쇠약증에  걸리기 일쑤였고, 이로 인한 정신병으로 전후에도 고통받게 된다.

 전황은 점차 독일에 불리하게 흘러갔다. 제해권이 없으므로 해외로부터 원료 및 식량확보가 어려웠다. 동등한 해군력으로 영국에 대항할 수 없던 독일은 유명한 유보트 작전을 시행한다. 잠수함으로 적의 상선을 타격한 것인데, 그러던 중 아일랜드 인근에서 미국인 128명을 죽게한 초호화 여객선의 침몰로 작전은 소극적으로 변화한다. 미국의 참전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전장이 더욱 장기화되작 주전론자들의 무차별 유보트 공격이 다시 힘을 얻고 만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미국의 참전이었다.

 초기 미국은 겨우 1-2만 정도의 병력만 수송이 가능했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엄청난 병참능력을 보이며 1년만에 무려 100만에 달하는 병력과 물자들을 지원한다. 오랜 참호전에 지친 독일에겐 치명타였다. 거기에 초기 동맹을 약속했던 이탈리아 역시 배신하여 오히려 연합군에 가담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도왔다. 초기 패전하고 정신을 못차리던 러시아는 혁명이 일어났다. 독일은 러시아의 혁명을 부채질하기 위해 레닌을 특별열차까지 동원하여 러사이로 수송하였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혁명으로 더이상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웠던 러시아는 독일과 강화협정을 맺는다. 이는 영토와 큰 상실과 발칸반도에서 영향력을 상당히 잃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러시아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기에 러시아는 전세계가 곧 혁명화될거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동부전선에서 큰 여유가 생긴 독일은 여세를 몰아 프랑스 베르됭을 공격한다. 전략적 요충지는 아니었으나 프랑스의 자존심이 걸린 역사문화도시였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 곳을 집중타격하면 프랑스가 결사항전하여 프랑스의 나머지 힘을 모조리 짜낼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는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도 실패하면서 독일을 몰락의 길을 걷는다.

 먼저 불가리아가 항복하고 이어서 오스만 제국도 항복한다. 여기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항복을 하여 여러개의 나라로 쪼개진다. 이런 전황에 전쟁에 지친 독일내의 폭동과 항거 그리고 항복을 원하는 군부의 압박으로 빌헬름2세는 퇴위하고 항복한다. 전쟁의 결과는 비참했다. 1천만의 전사자가 나왔고, 1천만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다. 거기에 1천만의 군인이 부상을 입게 되었다.

 전후 독일은 연합국에 알자스 로렌과 라인란트를 빼았겼으며 폴란드의 독립을 허용하게 된다. 거기에 막대한 배상금까지 안게 된다. 이에 대해 영국수상 조지 로이드는 너무 가혹한 응징으로 실지에 대한 독일의 복수로 25년뒤 다시 한번 세계대전을 치룰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프랑스 수상 조르주 클레망스는 강화조약이 너무 약하여 독일을 예전처럼 쪼개어 놓지 못한 것을 한탄했고, 이것이 전쟁으로 이어질것이라 내다봤다. 입장이 서로 다른 둘은 정확히 미래를 예측했다. 둘의 의견은 모두 옳았다.

 1차대전은 가해자와 의도가 분명했던 2차대전에 비해 애매한 전쟁으로 불린다. 전쟁의 원인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1차대전의 발발 원인을 공격이 유리하다는 잘못된 믿음, 전쟁에 대한 위험을 모두 계산했다는 착각, 위기 상황에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정책결정자들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꼽는다. 그리고 안보딜레마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안보딜레마란 A의 안보 증진 노력이 B의 안보를 저해함으로서 B가 자신의 안보를 강화하고, 그로 인해 A의 안보가 저해되어 다시 안보를 강화하고자 하는 악순환을 의미한다. 실제로 1차대전 당시의 서로간의 불신과 정보부족 몰이해로 인한 총동원령이나 위협은 상대방의 총동원령과 위협을 가져왔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러한 1차대전의 상황을 한반도에 적용한다. 북한의 핵위협과 막강한 재래전력, 그리고 더욱 막강한 남한의 전력과 세계최강 미국군대의 전력이 한반도에 존재한다. 이는 서로 선제공격에도 불구하고 적을 완전히 섬멸하지 못하여 상대방의 2차공격으로 자기 역시 격멸에 가까운 상황을 양자가 맞게되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안보딜레마 상황이지만 전략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지적 도발로 인한 뜻하지 않은 전황의 극적인 전개로 전쟁에 치달을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의 방지를 위해 군위주의 판단으로 전쟁에 치달은 1차세계대전을 거울 삼아 군의 전문성을 인정하되 결정 및 판단에서 민간의 역할이 평소에 충분히 공유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의외로 한반도에 국한된 판단이라 다소 의외의 제안이기도 하다. 사실 한반도의 전쟁은 인계철선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한국으로의 침공을 자연히 남한을 포기할수 없는 미국의 참전을 의미하며, 안보를 위협받은 일본의 참전으로 이어질수 밖에 없다. 또한 미국과 일본의 참전은 당연히 북한을 순망치한으로 여기는 중국의 참전과 더 나아가서는 러시아의 참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1차대전과 매우 유사한데, 독일에게 오스트리아는 절대 잃을 수 없는 최후의 동맹이었고, 그런 오스트리아에게 세르비아와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력은 러시아를 막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러시아에겐 그런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태도는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졌으며, 러시아에 대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침공을 방관하는 것은 프랑스에겐 다음은 내 차례로 일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유럽에서 프랑스를 잃는 다는 것은 영국에겐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으며 자신들의 헤게모니가 위협받는 형국이었다. 이처럼 1차대전 당시 유럽 각국은 인계철선으로 연결된 셈이었다.

 저자는 앞서말한 민관군의 대화 소통 시스템을 구축하면 국지도발 시스템을 잘 막을 수 있다고 하였지만 국제적인 상황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물론 한반도 외에 다른 지역에서 적대세력간에 국지도발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엔 과거에 비해 상호 경제의존도가 매우 높아진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차대전 당시 각 나라들은 비록 왕조시대이긴 해도 전쟁의 참상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애국심에 휩싸여 몇몇 어리석은 소수결정자가 수천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협조하였다. 이와 같은 일이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에서는 벌어지지 않을까, 적어도 이중에서 그런걸 막을 정도로 성숙한 시민사회는 미국정도가 유일해 보인다. 그다음으로는 우리가 가능성이 있어보이지만 북한 핵도발에 대해 다른 평화적 의견을 좌파정권도 함부로 입에 담지못할 만큼 우리의 안보환경도 상당히 우편향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책은 매우 쉽게 읽힌다. 어찌보면 소설과 교양역사책의 중간정도 느낌이기도 하다.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가독성이 높다는 뜻이다. 덕분에 1차대전에 대한 많은 것을 알수 있었다. 전쟁은 끔찍하다. 그리고 전쟁을 주장하는 자들은 매우 어리석으며 결국 전쟁에 대해 책임질수 있는 역량도 없음을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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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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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백년을 살아보니이다. 제목만 보고 그냥 꽤 오래 사신 분이 격동의 한국 20세기에 대해서 평한게 아닐까. 그리고 백년의 방점은 한국의 20세기가 아닐가 싶었다. 유시민작가도 반세기를 조금 넘게 살았지만 나의 한국현대사를 쓰지 않았는가.(생각해보니 그 책은 50년만 다뤘던 것 같기도) 그런데 저자 약력을 보니 정말로 100년을 살았다. 한국나이로 무려 98세.

 대한제국의 신민까지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의 신민에서, 일본의 엘리트 유학생, 해방후 공산주의에 고민하는 평안도 사람에서 남한으로의 탈출, 그리고 독재정권과 오늘 날의 민주정권까지. 정말 파란만장한 한국의 근대사를 글이 아닌 온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그런 사람이 인생의 소회를 다룬 책이 이 책이다. 읽어보니 전체적인 느낌은 한국의 온건한 기독교 우파같은 생각이다. 아직 반세기도 살지 않은 나같은 사람이 평하자니 웃기기도 하지만 평은 평일 뿐이다. 사실 저자의 삶은 많이 굴곡진 한국근대사에 비하면 덜 굴곡진 삶처럼 보인다.

 식민지 시기에는 일본에 유학가서 대학을 마칠수 있는 엘리트였고, 학도병에 끌려갈까 고민을 했을뿐 독립운동은 하지 않았다. 물론 신사참배로 학교를 강제로 쉬게된 경우는 있다. 공산정권하에서 탈출했지만 전쟁에 참전하지는 않았고, 독재정권하에서도 꾸준히 교수생활을 영위한 걸 보면 독재정권을 비호하진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항거하지도 않은 것 같다. 물론 역시 적극적으로 어용학자가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과거에는 식자층 자체도 적어 교수자체가 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처럼 굴곡진 한국사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유시민처럼 그리고 독립투사들처럼 살순 없고, 나역시도 그렇지 않은 삶을 살고 있기에 이런 삶을 함부로 비판하거나 나쁘다고 생각치도 않는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종교인이지만 근본주의를 배격하고 다른 것을 포용하는 생각 그리고 휴머니즘을 가장 근본적이고 이상적인 가치로 삼은 것은 인상적이었다.

 애국심이라는 것이 독재정권의 비호에 악용되고 오늘날에는 보수정당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프레임이로 굳어져 상당히 아쉽긴 하지만 애국심은 여전히 신경써야하는 중요한 가치인건 분명하다. 유시민이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것 처럼 국가와 시민과의 관계, 그리고 시민적 가치가 우선시 되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란게 전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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