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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랜드 - 모든 것이 평평한 2차원 세상
에드윈 애벗 지음, 윤태일 옮김 / 늘봄 / 2009년 9월
평점 :
플랫랜드는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계보다 한차원이 부족한 2차원의 세계다.
우리는 누구나 2차원의 세계를 창조해본적이 있다. 도화지에 뭔가를 그려서 말이다.
책은 소설이지만 거대한 서사는 없다. 크게 2부인데 1부는 우리가 당연히 이해 못하니 플랫랜드에 대한 설명이 2부는 어쩌다 보니 플랫랜드의 한 정사각형이 3차원 세계에서 온 구를 통해 3차원의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플랫랜드에 전파하려는 노력이다.
이 책에서 재밌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플랫랜드를 정말 재밌게 창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사회를 통한 현재 사회의 비판일 것이다.
플랫랜드의 모든 것들은 다 도형이다. 사람, 사물, 뭐 등등 할 것없이.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들이 다 직선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사각이든 오각이든 높이가 없는 상태이니 다 길이가 다른 직선으로 보인다. 이들은 놀랍게도 서로간의 감별법을 개발했는데 하나는 정말 본능적으로 만져서 '느껴보는 것'이고 하나는 '시각감별법'이다. 다소 무식한 만져보는 느낌법은 상류층에겐 금지되고 있으며 상류층은 유독 안개가 많은 플랫랜드에서 각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상대적으로 더 또렷이 보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착안해 상대방이 어떤 각형인지를 통찰하는 놀라운 시각감별법을 사용한다. 상류층은 이 감별법을 공부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며 전문가도 따로 있을 지경이다.
플랫랜드에서 방향의 구분은 인력과 비에 의해서다. 플랫랜드의 모든 것들은 한쪽방향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는데 그 부분을 남쪽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플랫랜드에서는 비가 항상 오는 방향이 있는데 그곳을 북쪽으로 정했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런 현상으로 볼때 플랫랜드는 살짝 기울어져 있는 평면일 것 같다. 그러니 아래 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고 빗방울은 그 반대에서 내릴 수 밖에.
플랫랜드에서 남자는 모두 다각형인데 반해 여자는 직선에 불과하다. 여자를 한차원 낮은 존재로 상정하는데 플랫랜드에서 지적수준은 한 내각의 크기와 절대적으로 비례하므로 여성은 지적수준조차 낮은 존재다. 그런 여성에게도 무서운 점이 있으니 플랫랜드에서 살인의 방법은 도형을 파괴하는 것인데 당연히 각이 뾰족한 것이 유리하다. 때문에 직선이어서 각이 무한히 날카로운 여성의 무력이 남성을 상회한다. 이에 옆에서 보면 직선이어서 볼수 있지만 앞이나 뒤에서 보면 점이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여성을 구분하기 위해 플랫랜드에서 직선 여성은 항상 기묘한 동작을 지속하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한다. 마치 이슬람의 히잡같다.
각이 많을 수록 지적수준이 높아지므로 신분이 가장 높은 도형은 원이다. 물론 진정한 원은 없으며 각이 워낙 많다보니 원으로 간주되는 이들이 성직자 계급으로 이 사회를 지배한다. 플랫랜드에서는 자손대로 갈수록 각이 하나씩 늘어나는데 정사각형이 남자아이를 낳으면 정오각형의 아들이 나오는 식이다. 물론 차원이 낮은 여성은 심지어 원이 낳았어도 여전히 직선이다.
삼각형에 직선이 하나 붙으면 사각형이 되는 셈이니 매우 직관적인 진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항상 그런것은 아니어서 육각형이 갑자기 십각형이 되는 등의 진화의 도약이 있기도하다. 플랫랜드에서는 사실상 정삼각형부터가 사람 취급을 받는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밑변이 매우 짧아 아주 뾰족한 이등변삼각형이다. 이들이 자손대대로 열심히 살아가면 대마다 조금씩 맽변이 넓어져 언젠가는 정삼각형에 도달하여 사람취급을 받게 된다. 참 놀라운 설정.
이처럼 플랫랜드는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 설정과 사회비판이 더 재밌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층, 남녀차별, 종교에 대한 비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보수층의 노력등 독특한 세계관에 사회 비판이 잘 어우러진 매우 독특한 소설이다. 근데 더 놀라운 건 이 책이 100년 정도 전에 나온 것이고 심지어 쓴 사람이 수학자도 아닌 교장선생님이라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