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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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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게 되어 내용을 간단히 알아보니 오래전에 영화로 먼저 이 작품을 봤던 생각이 났다. 그때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를 크리스찬 베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찾아보니 비고 모텐슨이었다. 반지의 제왕 아라곤. 둘을 헛갈리다니 사람의 기억은 참. 어쨌든 소설을 다시 봤는데 책 내용이 짧은지라 영화로 거의 책 내용을 그대로 담아낸듯 했다.

 끝까지 이름이 나오는 남자는 그냥 미국의 평범한 남편이었다. 아내를 두고 있었고, 아내는 임신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는 커튼으로 집의 창을 모두 가린채로 바깥의 지옥을 보게 된다. 지옥이 뭔지는 나오지 않는데 핵전쟁일수도, 소행성이 떨어진 것일수도, 미국이 자랑하는 옐로스톤 공원정도의 대분화가 일어난 것일수도 있다. 셋중 하나일 것 같은 이유는 전세계가 온통 불탔고, 살아남은 사람들 전체가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할정도로 대기질이 좋지 않고, 하늘이 먼지로 뒤덮였다는 묘사가 꾸준히 나오기 때문이다.

 하여튼 부부의 집은 무사했고, 아내는 이 지옥속에 아이를 낳는다. 남편은 커튼을 항상 가린채로 아내와 불안하게 살아간다. 바깥은 이제 인간의 지옥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곧 식량 부족에 당면했고, 인간의 야만성이 다시 도래했다. 한층은 여전히 문명에 젖어 살아남은 생존자들, 한층은 종교에 귀의해 집단 자살을 하거나 무모한 선택을 한 이들, 다른 한층은 폭력을 일삼으로 다른 이들을 약탈하고 심지어 식량으로까지 삼는 식인종들이다.

 아내는 이런 지옥을 견디지 못했다. 끝까지 만류하는 남편을 물리치고,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며 바깥으로 나아갔다. 아내가 자살을 했을지,아니면 이 지옥속에서 식인종에게 당했을지는 모른다. 집도 위험해졌는지 남자는 아들과 집을 나서 방황한다. 집은 아마도 북미대륙의 꽤 북쪽에 있었던 듯 하다. 사방이 추웠고, 그래서 남자는 해안선을 따라 아들과 남쪽을 향한다. 목적지는 없다. 가진 지도에 의존해 그져 남쪽이라면 뭔가 있을거라는 희망뿐이다.

 남자가 가진 것은 마트의 카트와 그안에 싫은 통조림들과 물, 라이터, 방수포, 약간의 가솔린, 그리고 겨우 두발 남은 리볼버 권총한자루다. 책 제목처럼 그들은 길을 따라 남하한다. 하지만 길은 길을 편하게 가게 해주면서도 불안하다. 약탈의 시대에 다른 사람들도 길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길을 이용하기도 피하기도 하면서 계속 나아간다.

 가는 와중에 빈집이나 건물에서 식량을 보충하고, 그게 실패하면 며칠을 굶어 위기에 봉착하기도 한다. 한번은 오래 굶은 그럴듯한 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의 한 창고는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들어가는 것을 만류하고 들어간 아버지가 본 것은 식인종들에게 붙잡혀 갇혀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식량이었다. 남자는 경악하지만 그들을 돕지 못한다. 자기 자신과 아들 하나를 지키는 것이 급급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운이 좋기도 했다. 이런 지옥의 날을 대비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저택의 벙커를 찾아내어 아들과 모처럼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히터를 켜고,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며 만찬을 즐겼다. 마냥 그곳에 있고 싶었지만 저택은 너무나도 노출되어 있었다. 남자는 안전을 위해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가면서 길잃은 노인을 만나기도 하고, 죽어가는 이를 만나기도 했으며, 한 아이를 만났고, 자신들의 카트를 훔친 도둑을 만나기도 했다. 남자는 아이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들 모두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지옥속에서 태어났음에도 마냥 착하기만 한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면서도 야속해한다.

 필사적으로 살아가던 아버지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부자를 노린 누군가 남자에게 화살을 쏘았고, 남자는 바로 응전했지만 한발을 허벅지에 맞는다. 가진 약품으로 소독하고 치료하며, 직접 외상을 꽤매기도 한다. 삶이 늘 고통인지 남자는 이런 수술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위기는 넘어섰지만 워낙 쇠약해진 나머지 남자는 며칠을 버티다 결국 죽는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를 두고 가지 못하지만 다행히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순교자들도, 식인종도 아닌 아직 문명을 간직한 남자였다. 아이는 그 남자를 따라간다.

 아이가 새로운 남자와 남쪽을 갔는지 거기서 무엇을 보았을지는 나오지 않는다. 어찌보면 아이는 홀로 끝까지 문명을 간직했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것은 이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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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리커버 특별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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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알랭 드 보통을 만든 그의 사랑시리즈 3부작중 하나다. 작년에 최근작인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고 올해 리커버판으로 나온 이것을 샀다.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이 이미 50대가 되어 결혼의 온갖 맛을 알아버린 보통이 쓴 것이라면 이 책은 아직 20대 정도의 나이에 쓴 것이다. 책 내용에서도 세월이 느껴진다. 워크맨이 등장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자동차 공장 몇개를 정리해서 한국이나 말레이시아의 자동차산업을 육성하는가 그 나라전체를 먹여살린거란 말도 나온다.(2018년인 지금은 한국과 프랑스, 영국간의 경제규모는 큰 차이가 없다.)

 보통의 책 답게 연애와 관련한 날카로운 심리묘사나 재밌는 그림이나 도식으로 표현하는 사랑과 연애관계는 이 책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그리고 볼때마다 그의 연애 소설은 내가 심리책을 보는 것인지 소설책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약간 가벼운 철학책을 보는 것인지 헛갈리게 하는 맛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보통은 남자임에도 상당히 여성중심의 서술을 한다. 작가를 모르고 본다면 여성작가의 책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사랑일까에도 결핍되고 사랑에 굶주린 두 남녀가 나온다. 서로 결핍되고 굶주렸으며 성까지 다르니 그들은 당연히 끌릴 수 밖에 없다. 여자 주인공은 앨리스다. 가정환경은 불우했다. 물질적으론 나쁘지 않았고, 사업가인 아버지를 둔 덕에 국제경험이 매우 풍부하다.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워낙 국제적으로 크다보니 민족성이나 국적이 주는 느낌 같은 것이 부족하다. 거기에 이기적이고 자녀에 관심이 없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안정적이고 지탱해주는 것을 갈망하게 되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고,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제 겨우 24세에 불과하다.

 남자는 에릭이다. 잘생기고 몸도 좋은 편이며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은행에서 일하는 이유도 자못 놀라운데 공부를 잘해 의사가 되었지만 의사란 직업이 주는 돈벌이가 본인의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하긴 영국은 의료가 공공서비스이니 그럴지도.) 나이는 31세이며 많은 형제와 함께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상당히 말이 재치있고, 유머가 있으나 은행가라서 그런지 경쟁적 사회를 선호하는 편이며 사회적 약자의 경우 무능한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둘은 한 파티에서 만난다. 앨리스는 특유의 의존적 성격으로 자신의 연애공백기가 계속되는 것에 적지 않은 불안을 느끼고 있었고, 그 자리로 에릭이 훅 치고 들어온다. 굳이 그런게 아니어도 에릭은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조금 튕겼던 앨리스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그와 잠자리를 갖는다. 그리고 깨어나서 둘은 연애란걸 조심스레 시작한다. [서양의 일단 자고 연애를 시작하는 이런 문화는 좀처럼 적응이 안된다. 한국도 성관계가 보다 빨리졌지만 여전히 성관계는 연애 이후에 일어나는 편이다.]

 둘은 상당한 성격차이를 보이는데 앨리스는 정치적으로 좌파적이고 문학을 비롯한 책읽기를 좋아하고 다소 내성적이고 의존적인 반면, 에릭은 우파에 가깝고 책을 굳이 읽는다면 '코만도'나 군사관련 책을 읽으며 매우 외향적이고 내적인 대화들을 쓰잘데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이런 서로의 차이는 초기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피로도가 점차 쌓여간다.

 불만은 앨리스에게서 시작되고 커져나간다. 모든 일상이 앨리스보다는 에릭 중심으로 진행되며 에릭은 앨리스의 독특한 부분은 낮게 치부한다. 책을 좋아하는 것을 폄하하고, 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것은 쓸데없는 분쟁으로 여기며, 골동품을 좋아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앨리스는 에릭에게 의존하며 그의 이런 면들을 그져 억지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생각하고 덮어나가지만 슬슬 한계상황이 다가온다.

 그리고 뭐가 문제인지 알게하는 남자가 나타나니 바로 필립이다. 골동품을 사러가는 것을 거부한 에릭덕에 친구 수지덕에 앨리스는 필립과 골동품가게를 가게 된다. 둘은 취향이 잘 맞았고, 필립과 이야기하면 앨리스는 자신감이 살아나고 진정 자기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앨리스는 에릭에게 점차 불만을 드러내고 에릭은 위기감을 느끼고 이를 맞춰나가지만 앨리스의 이별통보를 피하지 못한다. 에릭은 거의 처음으로 사랑을 앨리스에게 말하나 모든 것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이렇게 앨리스는 자신을 알아주는 필립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이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해준다면 이 책은 보다 어렸을 적 20대의 연애를 다시 느끼게 해주는 기분이 들어 재밌다. 둘을 굳이 비교하자면 낭만적 연애쪽이 보다 완성도가 높고 짜임새가 있지만 같은 작가가 훨씬더 나이가 들어서 쓴 책이니 이렇게 비교하는 건 공정치 못하단 느낌이다.

 사랑에 관련한 보통의 다른 두 초기작도 보고 싶어졌다. 사랑과 연애과정, 결혼을 다루는 보통의 솜씨는 상당하다. 지금까지 본 두 책만 본다면 일종의 공식도 느껴지는데 서로 성장배경과, 유전인자부터 제법 많이 다른 두 남녀가 등장해, 서로의 다름과 비슷함으로 사랑에 빠지지만 그 다름과 비슷함으로 위기에 빠지며 그런 그들에게 다른 매력적인 남여가 등장해 다른 전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 과정을 재밌는 비유와 표현과 철학자들, 일종의 비유적 공식으로 재밌게 버무리는게 보통의 작품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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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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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진주귀고리 소녀 출처-네이버블로그]

뒷글에서 역자는 모나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만큼 매혹적이지도 않고, 여러 의미를 보이는 미소가 비웃는 것 처럼 보였다고 한다. 가장 끌린 그림은 얀 베르메르의 진주귀고리 소녀라고 한다. 뭔가 우수에 찬 눈빛에 촉촉한 입술과 큰 눈동자, 사연이 있어 보이는 얼굴. 거기에 검은 배경까지. 그래서 진주귀고리소녀를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칭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자나 역자는 이를 기분나빠할 것 같다. 화가인 얀 베르메르 역시 별로 유명치 않다. 남긴 그림도 적으며 당대에 유명한 다른 네덜란드 작가들에 빛이 가렸다.

 소설 진주귀고리 소녀는 이 사연있어 보이는 얼굴의 주인공과 화가인 얀 베르메르에 대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저 소녀의 이름을 그리트로 정했다.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활동지인 네덜란드 소도시 델프트에 살고 있으며 네덜란드 답게 이 도시에도 운하가 있다. 그리트의 아버지는 타일을 만드는 타일쟁이였는데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며 그리트의 집 가세가 급격히 기운다. 아버지는 공장과 더불어 양눈을 잃었고, 삼남매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리트는 집을 돕기 위해 남동생과 여동생을 나두고 하녀가 되기로 한다.

 그리고 그리트가 하녀가 된집은 운명적이게도 얀 베르메르의 집이었다. 얀 베르메르는 화가였다. 대책없이 아이를 많이 낳고 있었는데 베르메르는 무려 11명의 자식을 두었다고 한다. 그 집에서 그리트는 고된 하녀생활을 하며 주말에만 집을 향한다. 생활은 고되었지만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될 수 있었고, 꼼꼼한 성격의 그리트는 하녀역할을 잘 해 큰 마님의 눈에 든다. 하지만 웬일인지 베르메르의 아내 카타리나와 선배 하녀 타네커는 그리트를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긴다. 거기에 베르메르의 딸 중 한명인 코넬리아는 이상스레 그리트를 자꾸 괴롭힌다.

 그리트는 시장의 푸줏간이나 야채가게로 심부름을 가는 일도 많았는데 특히 푸줏간을 자주갔다. 그건 그리트의 고기고르는 솜씨와 흥정하는 재주가 제법 괜찮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리트는 시장엘 자주가서 바람을 쐬고 친동생을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푸줏간집 아들 피터가 그리트에게 보이는 눈이 심상찮다. 그리트는 이상스레 그의 손톱 밑의 빠지지 않는 핏물과 고기 냄새가 싫었다. 피터가 제법 근사한 외모의 소유자였음에도 말이다. 시장엔 카타리나의 아이들을 데려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이들과 시장에 나선 어느날 그리트는 자신의 친여동생을 만나고 반가워하는  동생을 향해 심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자신의 여동생과 비슷한 또래의 집주인 아이들의 심기가 불편해질까봐서였다.

 동생에게 전할 미안할 마음을 털어버릴 요량으로 주말만 기다리던 그리트에게 비보가 전해든다. 자신의 집이 있는 구역이 전염병으로 격리된 것이다. 수개월후 격리는 풀리나 그리트의 여동생은 전염병으로 죽고만다.

 상심에 빠진 그리트에게 큰 마님은 다락방의 청소를 맡긴다. 다락방은 베르메르의 작업화실이었다. 그곳엔 많은 신기한 물건과 그림이 있었고, 그런 그림들을 그리트는 좋아했다. 그리트는 타고난 예솔적 기질이 좀 있었던 탓인지 청소하는 과정에서 물건들의 배치를 잘 기억하고 손대지 않았으며 이게 마음에 든 베르메르가 그리트에게 물감을 만드는 일을 시키기 시작한다.

 남자 안주인의 이런 행태는 그리트의 위치를 불안하게 한다. 카타리나와 타네커는 이일을 계기로 그리트와 더욱 멀어지게 되었으며 큰 마님은 이를 염려하면서도 묵인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과 그림 그리는 속도가 시원찮은 사위가 그래도 그리트가 작업을 도운 이후로는 속도가 제법 붙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리트는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피터외에도 베르메르에게 그림을 청탁하는 부호는 툭하면 추문을 던져댔다. 그가 최종적으로 원한 것은 바로 그리트의 그림이었는데 이는 그리트를 더욱 곤란하게 했다. 이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하고 어려운 부모님의 형편을 돕는 피터에게도,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에게도, 카타리나와 타네커에게도 허용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처녀여성이 그것도 하녀가 그려진다는건 여러모로 곤란한 시대였다.

 그럼에도 그리트는 모델이 된다. 싫었지만 좋기도 했다. 사실 그리트는 얀 베르메르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얀 베르메르와 큰마님 역시 매우 곤란했으나 작업을 맡기로 한다. 돈은 현실적으로 필요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림은 완성되나 뭔가 허전했다. 감각이 예민한 그리트 역시 이를 알았다. 빈 공간을 메울 무언가는 바로 베르메르의 아내 카타리나의 진주귀고리였다.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감히 자신의 아내의 진주귀고리를 착용할 것을 명한다.

 그리트는 거부하고 싶었으나 힘이 없었다. 하녀이기에 그를 사모하기에 그리고 그림을 보고 싶었기에 받아들여야 했다. 귀를 뚫는 과정도 아팠다. 자신의 적은 급여를 틀어 마취약을 샀고 바늘을 달궈 한쪽 귀를 뚫어냈다. 그런 그리트에게 베르메르는 매정하게 반대쪽 귀마저 뚫기를 지시한다. 반대쪽은 그림에 나오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림은 그렇게 완성된다. 당시는 여성이 머리카락을 드러내는게 정숙치 못한 것으로 취급되어 그리트는 모자를 항상 썼지만 베르메르가 추천한 천을 머리에 터번처럼 둘렀다. 입을 열고 있는 것 또한 정숙치 못한 것이었으나 베르메르가 요구했다. 우수에 젖은 눈은 방금 생살을 뚤어낸 귀의 아픔일수도 복잡한 마음이 만들어낸걸수도 있었다.

 그렇게 그림은 완성되고  못된 아이 코넬리아의 고자질로 모든 것을 뒤늦게 알아낸 카타리나로 인해 그리트는 그집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날은 피터가 그리트의 부모님께 청혼을 허락받으로 간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십년이 지나며 어느새 피터의 아내이자 푸줏간 안주인이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리트에게 타네커가 찾아온다. 그리트의 몸에선 어느새 그토록 싫어하던 고기냄새가 떠날줄 몰랐고, 피터처럼 손톱 밑 사이로 핏물이 빠지질 않았다. 십년만에 찾은 저택에서 그리트는 베르메르가 죽었으며 자신에게 유언을 남긴것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진주귀고리의 상속이었다.  

 그리트는 그 진주귀고리를 갖고 고민한다. 피터의 아내이며 과거에 하녀였고, 고기집의 안주인은 그리트에게 귀고리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물건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리트는 귀고리를 처분한다. 그리고 받은 돈 20길더중 15길더는 남편 피터에게 주려한다. 베르메르의 집은 피터의 고깃집에 15길더의 외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5길더만이 그리트에게 남았고,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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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무려 14년만에 봤다. 14년전엔 군대를 막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한 상태였는데 당시 수강한 교양과목 교수님이 한 학기동안 10여권의 책을 읽게하였고, 이 책은 그 중 하나였다. 어릴 적 중학교 선생님께서는 어릴 적 본 책과 나이가 들어서 본 책은 새롭고 다르다는 아주 당연한 말씀을 절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의 나에게 하셨던 기억이 있다. 이젠 그 말씀을 제법 이해할만큼 세월을 느껴서인지 책은 새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14년 전을 기억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과제로 읽은 책이 다 그렇지 않던가.  실제로 책을 다시 다 보고나서야 새로운 표지의 거북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되었으니 말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나에게 이 책은 자본주의 비판서로 다가왔다. 책이 바로 시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이 중요하고 우주 만물이 그러하듯 자본주의 사회 역시 시간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즉, 뭔가를 만들어내는데 시간이 반드시 소요되므로 동일 시간 내에 최대한의 생산을 하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생산성이라 부르며 매우 중시한다.

 그렇다 보니 자본은 항상 사람을 시간적으로 짜내며 그걸 효율성이라던가 생산성이 높다며 포장한다. 시계란걸 만들어내어 시간을 쪼개어 통제하고, 매우 장기간의 노동을 시키며 정해진 시간안에 누가 가장 문제를 잘 푸는가로 어려서부터 사람을 재단한다. 그리고 몇년전 시간이 자본주의의 핵심임을 잘 파악한 영화도 하나 있었다. 바로 인타임이다.

 

 

 출처-위아래 사진 둘모두 네이버 카페

 

인타임은 썩 잘만든 영화 같진 않았지만 굉장히 기발한 소재의 영화였다. 상당히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영화를 인상적으로 평가하였는데 아무래도 자본의 핵심인 시간을 찔렀기 때문인 듯하다. 현재 자본은 직접 빼앗는 것이 불가능한 노동자들의 시간을 비교적 간접적 착취 방식인 노동과 돈으로 환산하여 착취한다. 노동과 돈을 만드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타임의 세계는 다르다. 여기선 과학기술의 발달로 직접 시간을 주고 받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화폐는 사라지고 자본가들은 직접 노동자들에게 착취한 시간으로 영겁의 시간을 누리게되며, 노동자는 착취당한 시간으로 직접적인 생명의 위기를 느끼게 된다. 영화는 더 나아가서 시간마져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노동자들을 더욱 곤경으로 몰아넣는다. 어제까지 1잔에 5분이던 커피가 다음날엔 7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다시 소설 모모로 돌아간다. 모모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신비한 소녀로 부모도 없고 고향도 없으며 소녀자신조차 그걸 모른다. 한 허름한 도시의 상징처럼 더욱 허름한 원형극장에 소녀 모모는 자리잡는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모모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점차 소녀에 빠져든다. 소녀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는데 보고 있으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본심을 말하게 만드는 것과 오랜 시간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모를 돕는다. 미장이나 집을 고쳐주고, 음식가게 사장은 먹을 것을 주었다. 그리고 모모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아이들도 모모를 좋아한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모모와 함께 있으면 손쉽게 환상의 세계로 빠져 즐거운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회색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마을 어른들을 하나씩 꼬드기기 시작한다. 마치 소크라테스라도 되는냥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의 허름한 인생을 꼬집고, 성공하지 못한 인생을 꼬집고,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 하고 노느라 허비한 시간을 지적한다. 이에 자극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짜내기 시작하고 생산성을 높여나가기 시작한다.

 마을의 생산성은 급격히 높아져 1년만에 그럴싸한 현대적 도시로 변모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보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으며 진정한 자신을 잃어간다. 그리고 모모도 더이상 찾지 않게 된다. 모모는 그런 마을 사람들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하고 회색신사들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짜낸 시간을 착취해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즉, 자본인 것이다.  

 이 부분이 영화 인타임과 소설 모모가 닿아있는 지점이다. 때문에 소설 모모와 영화 인타임은 자본주의 비판서가 된다. 요즘 교육 현장에선 온책읽기를 하고 사후활동을 하는 교육활동이 국어교육과정에 정식으로 도입될 정도로 활성화 되고 있다. 때문에 모모같은 책을 읽고 작가와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활동이 될거란 생각이었는데 책 모모가 출간된 것이 이미 1970년이고 작가 미하일 엔데는 고인이 된지 오래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모모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남기고 페이퍼를 마친다.

 

p151

우리는 시간을 갈망하지. 아 너희들은 그게 뭔지 몰라. 너희들의 시간을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 그래서 뼛속까지 너희들의 진을 빨아들이는 거야.

 

p153

아이들은 우리들의 천적이에요. 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오래전에 전 인류를 수중에 넣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사람보다 시간을 아끼게 하기가 힘들어요.

 

p240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인생을 먹고 살아간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죽은 시간이 되는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찌 주인의 시간일때만 살아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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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8-03-17 0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타임을 한번 봐야겠네요

닷슈 2018-03-17 00:32   좋아요 0 | URL
재미만으로도 볼만한 영화입니다 의미도 있구요

cyrus 2018-03-17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마저 자본가가 통제하는 세상. 정말 암울합니다. 이런 상황이 영화 속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직원이 일찍 퇴근하지 못하도록 윗선이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것도 시간 통제입니다.. ㅠㅠ

닷슈 2018-03-17 17:23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희망찬샘 2018-03-18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예쁘게 옷을 입은 책이 나왔네요. 하날 사야하나? 산 기념으로 또 읽어주어야 하나? 하는 갈등을 하게 되네요. ^^ 또 읽으면 또 다른 이야길 해 주겠지요?

닷슈 2018-03-18 09:47   좋아요 0 | URL
네 그럴겁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포르투갈은 사실 낯선 나라다. 유럽국가지만 남유럽 특유의 낮은 소득, 그리고 스페인에 가려져있다. 난 매번 지도를 볼때 마다 이 나라가 마땅한 지형적 경계선도 없이 이웃의 거대한 스페인에 먹히지 않은게 오래도록 이상했다. 스페인으로 여행가는 사람은 많지만 포르투갈로 향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과연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 포르투갈은 하나의 방문지로 삼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정도가 많이 생각난다.

 어쨌든 이 책은 그런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한다. 난 소설을 좀처럼 읽지 않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고 느낌이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문장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능력 역시 몹시 떨어진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은 좀 읽기가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직설적인 소설이 아니어서인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싶은게 무엇이었을까를 잘 모르겠다.

 책은 3장으로 구성됬고, 그 3장의 주인공과 시간적 배경이 다르다는게 모두 특이하다. 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처럼 이 3장을 묶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제목 포르투갈의 높은 산과, 주인공이 모두 남자라는 것이며 이들이 사실 몇가지로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연결점은 이베리아 반도에 살던 코뿔소, 그리고 침팬지, 기독교, 예수, 그리고 부인을 잃음 등이다.

 1장에서는 토마스란 남자가 등장한다. 시간은 대충 20세기 초입. 부유한 숙부를 두고 사업이 실패한 아버지를 둔 그는 숙부집에서 일하던 하녀와 눈이 맞아 사생아를 낳는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지 않아 전염병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아들을 한번에 잃는다. 거기에 아버지까지 이들을 뒤따른다. 충격에 토마스는 뒤로 걷기 시작한다. 세상의 부조리와 맞부딪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리고 미술관에서 일한던 그는 오래전 잊고 있던 대충 300년 전 한 포르투갈의 신부가 당시 식민지였던 상투메섬에서 남긴 이야기를 상기한다. 그는 노예제에 분개했고, 당시 노예의 중개지나 다름없던 상투메섬에서 이런 사람은 허용되지 않았다. 신부는 주교에 의해 파문되었고, 묘한 유적을 남겼다. 

 토마스는 이를 상기해내고 추적끝에 이 유물이 포르투갈의 한 높은 산의 성당에 있음을 알아내고 여정을 떠난다. 이유는 한 가지인에 그는 자신에게 이 모든 불행을 선사하는 신을 비웃고 싶었던것 같다. 그런 그에게 부유한 숙부는 당시 막 등장한 자동차를 준다. 영 내키지 않지만 자동차의 작동법을 날로 배운 토마스를 그럭저럭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매우 신기해했고,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이나 벼록이 옮기도 하고, 자동차에 적대적인 마부들에 의해 차가 크게 훼손되기도 한다. 가장 큰 사건은 잠에서 깨어나 차를 몰다 자신이 한 소년을 차로 치어 죽였다는 것이다. 소년은 포르투갈스럽지 않게 금발이었다.

 어쩔수 없다고만 생각한 그는 마침내 유물을 발견한다. 그것은 십자가에 매달린 평범한 예수상이었는데 문제는 그 예수가 침팬지였다는 것이다.

 2장은 2차대전은 눈앞에 둔 시점이다. 의사인 에우제비우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사랑하고 거기서 종교의 의미를 찾는 아내를 잃었다. 처음 상당부분은 아내와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뒷 부분에 아내가 갑자기 사고로 죽는 부분이 안와 영이상하다. 하여튼 아내가 가고 막 문을 닫으려는 병원에 한 여인이 찾아와 남편의 부검을 의뢰한다.

 부검에서는 남편의 시신안에서 갖가지 물건이 나온다. 토사물에 동전에, 침팬지에 새끼곰까지. 의문스런 부검이 끝나자 그 여인은 자신을 남편의 몸을 집처럼 생각하고 들어가고 에우제비우는 그 채로 남편의 몸을 꿰멘다. 그리고 그 죽은 남편과 아내는 오래전어렵게 얻은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졌는데 공교롭게 그 아이가 1장에서 토마스가 죽인 아이다.

 3장은 비교적 현대다. 포르투갈을 떠나 캐나다라 신선했는데 주인공은 상원의원 피터다. 아내 클레라를 잃고 한 기관에서 우연히 침팬지를 발견한 후, 본능적으로 끌려 무려 1만 5천달러에 그 녀석을 구매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포르투갈로 향한다. 캐나다는 침팬지가 살기에 너무 추웠다. 포르투갈까지가서 그가 향한 곳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다. 1장에 토마스가 찾은 그곳. 그곳은 피터에게 의미가 있다. 오래전 포르투갈에서 캐나다로 간 부모님의 고향으로 피터 일가의 고향인 곳이다.

 거기서 피터는 한 빈 허름한 집을 얻는다. 그리고 침팬지 오도와 살아간다. 캐나다에서 하던 상원의원도 그만 두고, 누이 동생과 아들과는 연락만 한다. 가족은 그립지만 그는 오도와의 포르투갈에서의 삶이 좋은 듯 하다. 못견디었는지 2년만에 피터의 아들 벤이 찾는다. 벤이 오고나서 한 문서가 발견되고 피터는 이 집이 과거 조상들의 집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침팬지 오도와 함께 바깥을 나서서 무려 3미터가 되는 이미 1장의 토마스 시절에도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이베리아 반도의 코뿔소를 발견한다. 그리고 좋지 않던 심장이 서서히 멎으며 오도의 품에서 죽음을 맞는다.

 소설의 내용은 대충 이러한데, 하고자 하는 말을 알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종교에 대해서 말을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그것에 비판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신비스런 느낌을 좀 주는 것 같기는 하다. 침팬지나 코뿔소를 통해서 근원적 자연에 대한 감정을 불러오기도 하며, 연결된 공간 속에서 시간을 초월한 인연이나 운명같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하고자 하는 게 무언지는 잘 모르겠다. 네겐 낯설고 기묘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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