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를 펼치면 돈의 흐름이 보인다 - 다가올 기회를 읽는 30개국 세계경제기행
박정호 지음 / 반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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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교수는 내가 좋아하는 경제학자이다. 그는 다른 경제학자와는 다른면이 많다. 타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의 이론에 매몰되어 현실을 보지 못하는 반면, 그는 경제를 말하면서 국제 정세와 세계사, 지리학등 다방면으로 세상을 설명한다. 도그마에 갖힌 외눈박이 경제학자들과는 너무도 다른 시야를 지닌 학자이다. 그래서 그의 책을 과감하게 펼쳤다. 


  '세계지도를 펼치면 돈의 흐름이 보인다.'라는 다소 속물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조근조근 30여개국의 역사와 경제상황, 지리적 위치를 종합하여 쉽게 설명해주는 그의 책에 강한 매력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다. 

  그의 책을 읽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라는 분야별로 격벽을 쌓고 통섭을하지 못했던 내가 그 격벽을 깨고 세상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중 몇가지를 예로 살들어보자. 

  첫째, 네덜란드는 상업국가이다. 세계 최초로 증권 거래소를 개업했던 것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다. 하녀도 주식에 투자했던 시기에 우리는 조선의 왕들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다. 세계사는 격벽속의 지식은 통합되지 않고 잠자고 있었다. 현재 세계적 농업국가가 네덜란드라는 사실을 초등학교 시절에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업국가였던 네덜란드가 어떻게하여 세계적인 농업국가가 되었는지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사회시간에 배운 지식과 세계사 시간에 배운 네덜란드라는 한나라의 지식은 서로 다른 격벽속에서 잠을자고 있었다. 

  영국과의 연이은 전쟁에서 네덜란드는 패배했다. 그렇지만, 상업의 패권을 빼앗겼지만, 네덜란드가 가지고 있었던 상업국가로서의 DNA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농업에 상업국가 네덜란드의 DNA가 살아 숨셨다. 카카오를 전량 수입해서 11억 kg의 카카오 중에서 4분의 1은 곧바로 제3국에 재판매하고 나머지는 파우더와 버터 등으로 가공해서 다시 해외에 수출한다. 네덜란드는 상인의 농업을 하고 있었다. 상인이하는 농업은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걷어들이는 전통적인 농민의 농업과는 달랐다. 그것이 네덜란드가 농업국가로 우뚝설 수 있는 비결이었다. 

  둘째, 러시아의 숙원사업은 부동항을 찾는 것이다. 세계사 시간에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서 흑해와 블라디보스토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진출하려한 역사를 배웠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서 영국이 부던히도 노력한 역사를 흥미롭게 배웠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는 세계사라는 격벽 속에서 고히 잠들어있었다. 가끔 역사책을 들춰볼 때만이 그 역사는 잠에서 깨어났다. 

  환경뉴스를 보면서 지구온난화로 인해서 북극항로가 열린다는 기사를 자주 접했다. 투발루처럼 지구 온난화가 저지대의 약속국에게는 국토를 포기까지해야하는 위기이지만, 동토의 제국 러시아에게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기회의 시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지식도 환경이라는 격벽속에서만 살아있었다. 

  러시아에 대한 세계사 격벽속의 지식과 환경이라는 격벽 속의 지식은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박정호 교수는 두 지식을 만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숙원 사업인 부동항 문제는 최근들어 지구 온난화로 해결될 듯해 보인다. "107쪽


  "부동항 확보 = 지구온난화로 북극항로가 열린다." 이 쉬운 지식의 연결을 나는 이루어내지 못했다. 지식을 연결 시키면 지식의 벽을 허물 수 있다면, 나의 사유의 폭과 깊이는 더없이 깊고 넓어질 수 있다. 박정호 교수를 통해서 맞본 지식 연결의 기쁨은 너무도 컸다. 


  박정호 교수가 찾은 마지막 지역은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 다리엔 갭이다. 파나마의 야비사와 콜롬비아의 투르보 사이에 존재하는, 길이 160km, 폭 50km의 정글과 늪지대로 지구에서 가장 우거진 오지가 다리엔 갭이다. 독충과 악어, 재규어와 아나콘다, 마약조직과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이 장악한 이땅에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향하는 이주자들이 있다. 박정호 교수는 "언젠가 다리엔 갭이 개발되는 시점이 우리 인류가 지금보다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시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인류가 다리엔 갭을 개발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에 맏겨두는 여유가 있을 때 우리사회가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있다고 믿는다. 세계를 개발과 투자의 시각으로만 보기 보다는 때로는 여유를 갖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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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김호기.박태균 지음 /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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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만큼 쟁점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좌우익의 극한 대립속에서 근대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수행한 대한민국은 그 내부에 갈등과 대립이 많을 수밖에 없다. '논쟁으로 읽는 한국현대사'의 40꼭지가 한국현대사의 모든 쟁점을 살핀 것은 아니다. 사회학을 전공한 김호기와 역사를 전공한 박태균의 조합으로 한국사회의 정치사적 쟁점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쟁점을 두루 살폈다. 

  다양한 쟁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폭넓게 조망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책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다양한 주제를 살펴볼 수는 있었지만, 깊이있는 성찰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깊이있는 성찰을 하려면 해당 주제의 책들을 읽던가, '논쟁으로 읽는 한국현대사'라는 책이 태백산맥 정도의 권수와 분량으로 늘어나야할 것이다. 해당 분야를 전공할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두꺼운 책 읽기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머리를 식힐겸 꺼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한국 현대사의 쟁점을 쉽게 정리하면서 새롭게 읽을 책과 관심가는 분야를 찾기에 좋은 책이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정독해볼 것을 추천한다. 300쪽 분량의 얇은 책이지만 절대 내용은 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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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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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트럼프의 등장" 어느 외국 기자는 그의 등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k로 시작하는 다양한 우리 문화 상품에 한껏 국뽕이 차오르지만 그를 "k-트럼프"라고 표현한 것을 직면하고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당선되는 날, 나는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보다 더 심하게 좌절했다.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가? 심각한 우울감에 TV뉴스를 보지 않았다. 박근혜 때보다 충격은 너무컸다. 한번은 모르고 그럴수 있다. 그러나 2번은 어리석은 것이다. 난 국민이 현명하다고 믿지 않는다. 박근혜를 뽑은 노인들을 보며, 인생의 지혜를 가진 노인분이라는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다. 그를 뽑은 국민을 보면서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땅의 민주화 운동을 하고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 정치에도 뛰어들었던 유시민은 어떠한 만감이 교차할까? "매불쑈", "다스베이다"에 출현하여 쏟아내는 그의 정치 평론은 때로는 너무도 통쾌했고, 때로는 너무도 탁월했다. 그리고 둘다일 경우가 더 많았다. 그의 비꼬는 형식의 논평은 그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최대한 냉정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그러한 몸부림은 이책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극단적 무능", "독재자 행태", "학습능력 결여", "비굴한 사대주의", "권력 사유화"라는 그가 인기 없는 이유에 격한 공감이 갔다. 이러한 자가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권좌가 되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겨지지 않다. 아니 그러한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어리석음이 이해되지 않는다. 집값이 더 오르길 바라며 그를 뽑은 사람, 집값이 올라서 심판하기 위해서 그를 뽑은 사람, 검찰총장이고 서울대를 나왔으니 잘할 것 같아서 뽑았다는 사람, 그냥 예전대로 뽑던대로 뽑았다는 노인들.... 그들의 어리석은 선택 후에 한국 경제 지표의 추락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로 이어졌다. 최고 통치권자는 위기를 예방하고 조정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능력도, 의지도 가지고 있는가?

  그를 탄생시키는데 한국 언론의 역할이 컸다. 박근혜의 진면목을 목도했을때, 언론이 박근혜에 대한 마사지를 얼마나 잘 해주었으면 국민이 박근혜의 정신상태를 알지 못했는지 한탄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보수권력 앞에서는 작아지는 한국의 언론은 박근혜의 탄생을 도왔다. 그리고 그의 탄생도 도왔다. 진보 후보에 대해서는 메서운 언론의 칼날을 들이대는데 왜? 보수 후보에 대해서는 그 언론의 칼날을 휘두르지 못할까? 유시민은 한국 언론이 기득권의 일부가 되었다고 단언한다. 그렇다. 그들도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사는 회사원일 뿐이다. 그들에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사회 정의를 위해서,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정론을 펼것을 기대한 우리가 죄인이다. 사주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눈치를 보며 그들도 하루를 숨가쁘게 살 뿐이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전통언론이 기득권의 일부가 되었다면, 김어준과 "뉴스타파"로 대표되는 유튜브 기반의 언론인들이 진실의 파수꾼역할을 하고 있다. 기성언론은 김어준과 뉴스타파를 유튜버라고 부를뿐 언론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희망이다. 

 트럼프의 당선을 놀라는 언론 기사를 보았다. 트럼프의 당선을 이변이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면서, 당신들은 미국 주류언론의 기사를 통역했을 뿐, 진정한 분석을 할 줄몰랐고 하지도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미국 주류 언론은 헤리스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헤리스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문항을 만들었다. 고졸이하의 노동자들을 여론조사에 포함시킬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다. 그러니 헤리스와 트럼프가 박빙이라는 어리석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미국은 친민주당 언론이, 한국은 친 보수언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 유튜브를 기반으로한 진정한 언론인들은 반기를 들고 있다. 나는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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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주역 - 팔자, 운세, 인생을 바꾸는 3,000년의 지혜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강기진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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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은 점을 치는 책이다. 그런데, 그 책이 유교의 경정이되었다. 주역점을 치는 책이 괴력난신을 말하지 말라고한 공자가 가죽끈이 세번 떨어질 정도로 애독하던 책이라니 아이러니했다. 단순히 점치는 책이라면 공자가 이렇게 좋아할리가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주역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주역이 어려운 책이라는 공포(?)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십에 읽는 주역'을 먼저 읽기로 했다. 

  저자 강기진은 어려운 주역을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한자 하나 하나를 갑골문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 뜻을 깊이 있게 설명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튜버들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쉽게 주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중에서 박막례 할머니의 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는 거이여.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치고 장구 치고 니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164쪽)


  불교에서 강조하는 주인으로 살라는 말을 박막례 할머니는 70 평생의 긴 내공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언제나 주인으로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남에게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에게는 너무도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명예와 승진을 부추겨도 이에 휩쓸리지 않는 거목이 되고 싶었다. 박막례 할머니의 말씀은 거목이 되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 주었다. 

  강기진은 '붕'과 '우'의 차이를 갑골문을 들어 설명한다. 우는 서로 손을 잡은 상태를 뜻한다. 소꿉친구들이 이에 속하는 반면, '붕'은 같다는 뜻으로 동류라는 뜻이다. 같은 도를 추구하며 가은 길을 걸어가는 도반을 붕이라 한다. 

  그런데, 나는 우를 사귀려했다. 그것이 진정 사심없는 사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삶의 의미를 생각해야하는 우리는 붕을 사귀어야하지 않을까? 같은 뜻을 같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붕을 사귀어야한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려 고민하는 붕을 사귈 때이다. 

  책을 덮었다. 두꺼운 주역을 얇은 책으로 이해하려했다. 물론, 이 책한권 읽었다고 주역의 심오한 뜻을 다 이해했다고 믿지 않는다. 공자가 인생의 여로에 주역을 읽으며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려하였듯이, 나도 언젠가는 주역을 읽으며 인생을 이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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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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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경축하고 있을 때, 서울 중구에 있는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는 한무리의 노인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이든 현수막에는 "대한민국 역사 왜곡 작가 노벨상, 대한민국 적화 부역 스웨덴 한림원 규탄한다"라고 씌여있었다. 친일 반공에 뿌리를 둔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4.3과 5.18을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벌어진 사건이라 폄하한다. 그 사진을 보며 저 늙은 보수꾼들은 한강작가의 책에 담긴 어떠한 내용이 무서워 저리도 몸부림치는지 궁금했다. 때마침 큰딸이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에게 책을 넘겨 주었다. 200여 쪽의 얇은 책을 펼쳤다.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낯선 것은 2인칭 시점의 서술이었다. 도청에서 군인들의 총에 희생된 시민들의 시신을 관리하는 주인공 동허를 '너'라고 작가는 불렀다. 낯설었다. 중학교에서 1인칭 시점과 인칭 시점의 소설에 대해서 배웠지만, 2인칭 시점에 관해서는 배운 기억이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2인칭 시점은 강한 흡입력을 갖는다고 한다. 독자가 주인공을 자신이라고 감정이입하며 읽기에 흡입력이 강하다는 장점이 있단다. 그러나, 낯선 2인칭 시점에 나는 당황했고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 내려가는 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2장 검은 숨에서는 시점이 갑자기 1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군인 트력에 실린 시민들의 시체는 군부대에서 태워지고 있었다. 순간 주인공 동호가 죽었고, 동호의 영혼이 화자로 나왔다고 생각했다. 영혼은 '나'이고 동호의 육체는 '너'로 작가가 설정한 것인가? 순간 나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몸이 타들어가는 영혼은 동호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의 친구였다. 작가는 특유의 시적 언어로 타들어가는 시신과 이를 바라보는 영혼을 잔잔하게 묘사했다.

 3장에 들어서자 시점은 3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익숙한 시점이라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게다가 이책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시기 도청에 남았던 동호라는 15살 소년을 주인공으로,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각장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겪은 5.18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 5.18의 주인공은 동호 한사람일 수 없었다. 그 때 그 현장에 있었던 모두가 5.18 민주화 운동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기에 각장마다 주인공이 달랐다. 그에 따라 시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작가 한강의 탁월한 구성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3장은 이책의 하일라이트였다. 3장은 살아남은자의 슬픔을 말하고 있다. 3장의 화자는 5.18 당시 도청에서 벗어나 병원에서 밤을 세웠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5월의 학살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깊은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며 그녀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겪어야만했다. 이러한 그녀의 심정을 연극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루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99쪽)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루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100쪽)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노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101쪽)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102~103쪽)


  이후 4장부터 6장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겪는 자들이었다. 그 고통을 참아내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우리가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고인에 대한 애도를 통해서 그들을 편히 보내고 남은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의례이다. 5월 광주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 그 지인들은 고인을 애도할 수 있는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5월이 슬플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리라...


  저자 한강은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에서 자신이 '소년이 온다'를 쓰게된 동기와 그 과정을 적었다. 여린 감성의 한강은 5.18관련 자료를 읽으며 악몽에 휩싸인다. 저자 스스로 여러번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 '전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고통을 옆에서 보거나 듣다보면 그의 고통을 상담자도 그 고통을 함께 느낀다. 5.18의 기록을 읽으며 그녀는 그 때의 고통에 전이되었다.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은 많은 독자도 그 고통이 전이되었다고 토로한다. 그 고통을 함께 느낄때, 우리 모두는 5.18의 장례식을 치룰 수 있다. 그럴때 살아남은자의 고통을 겪는 이들도 인생의 장례식을 마칠 수 있다. 스웨덴 대사관에서 어리석은 시위를 하는 이들도 함께 이 책을 읽고 5.18의 장례식에 함께하길 바란다. 우리 모두의 슬픔은 모두가 애도해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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