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의 재발견 -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500년 고려 역사를 만나다
박종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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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역사에서 고려처럼 다이나믹한 나라가 있었을까? 고구려를 떠올리면 강한 기마군단이 떠오른다. 백제하면 우아한 백제금동대향로가, 신라하면 토속적인 아름다움이, 조선하면 성리학이 떠오른다. 그런데, 고려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수많은 외침속에서 꿋꿋함을 잃지 않으려 처절히 노력했던 고려! 화려한 상감청자와 고려불화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려사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읽고, 고려의 역동성과 개방성, 진취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1. 고려의 역동성

  고려사회만큼 역동적인 왕조가 우리역사에서 있었을까? 호족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문벌귀족이 그 우아함을 뽐내는가 싶더니, 무신정변에 의해서 그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다. 치열한 대몽항쟁을 거쳐 80여년 동안의 원간섭기에 접어든다. 우리는 원 간섭기를 암울한 시기로 기억한다. 그러나 저자 박종기는 이 시기를 '기회와 희망의 시대'로 보았다. 

  원제국에 의해서 고려라는 나라는 유지되었다. 원제국 치하에서 나라를 유지한 유일한 나라가 고려이다. 어디 그뿐이랴, 고려의 왕은 원제국의 부마이다. 제국에서 서열상 상위에 있었다. 쿠릴타이에도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이 시기에 부곡민들은 혼란을 기회로 삼았다. 능력으로 신분상승을 이루었으며, 자신만의 신분상승이 아니라, 부곡을 현으로 승격시켜 그의 고향사람들도 신분상승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공녀로 끌려간 기황후는 원제국에서 제1황후가 되었다. 

  고려인들은 혼란의 시대를 기회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고려 사회의 역동성을 더했다. 고려사회의 역동성은 신진사대부를 잉태하며 황혼을 맞이한다. 그들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탄생시킨다. 


2. 고려의 개방성

  고구려 각저총의 씨름 벽화를 보면 이상한점이 있다. 큰코의 이국적 인물이 씨름을 하고 있다. 단일민족 신화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장면이다. 고구려의 힘은 개방성에 있었다. 다양한 종족들이 고구려라는 용광로 속에서 융합되어 강한 고구려를 탄생시켰다. 

  고구려를 이은 고려도 마찬가지이다. 광종의 개혁정치를 도운 쌍기도 중국 후주사람이었다. 광종이 그의 재주를 탐내어  사신으로온 쌍기를 중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중국과 거란, 발해, 여진등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려에 귀화하였다. 고려사에 기록된 중국계 귀화인이 무려 40명에 달하고, 고려사 열전에는 기록된 인물만도 10명이다. 학문적 능력있는 인물만 고려에 귀화한 것이 아니다. 거란과의 전쟁속에서 수많은 거란인들이 고려에 귀화하였다. 거란 기술자들이 고려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타국의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사람은 문화를 가지고 이동하기에 문화도 사람과 함께 고려에 들어왔다. 고려라는 용광로는 귀화인들의 문화를 하나로 녹여내어 고려의 문화를 꽃피우는 자양분으로 사용했다. 


3. 고려의 진취성

  고려태조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하였다.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는 것은 고려의 일관된 정책일 수밖에 없다. 고려는 끊임없는 북진시도를 했다. 왕건이 청천강에서 영흥만에 이르는 영토를 수복했으며, 80만 대군을 이끌고온 소손령에 맞서서 서희는 단신으로 맞서 강동6주를 획득했다. 

  어디 이뿐이랴! 숙종과 예종 시기에 여진 정벌을 위해서 별무반을 만들었다. 예종은 아버지 숙종의 위업을 계승하여 윤관으로 하여금 여진정벌을 명령한다. 윤관은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9성을 쌓는다.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에 근거해서 고찰해본다면, 동북9성의 위치는 두만강 일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토를 개척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힘들고 중요했다. 결국 여진족에 그 땅을 돌려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려의 북진정책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반원자주개혁을 하던 공민왕은 유인우를 시켜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도록 명령했다. 유인우는 천리장성을 넘어 우리땅을 수복했다. 공민왕은 이성계로 하여금 요동지역을 공략하도록하기까지 했다. 

  북진정책의 마지막 불꽃은 최영장군의 요동정벌론이었다.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으로 허약해진 고려의 상황에서는 현실성이 낮았으나,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자존심을 불태운 마지막 울부짖음이었다. 최영의 요동정벌론이 있었기에 명나라 주원장은 위화도 회군 이후에 철령이북을 돌려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최영의 요동정벌계획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고려의 북벌 시도는 조선왕조에서 계승되지 않았던가? 고려가 당시 국력으로는 지킬 수는 없었지만, 동북9성을 쌓은 그 역사적 경험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세종대왕은 윤관의 동북9성을 찾아보라고 명한다. 윤관의 실패를 거울삼아서 조선이 두만강 지역을 수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김종서 장군과 세종대왕은 6진을 개척하여 윤관이 실패한 고토회복의 꿈을 이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윤관이 뿌린 씨앗을 세종이 거둔 것이다. 끊임없는 고려의 진취성이 북진정책으로 이어져 조선 세종시대에 우리의 국토를 완성했다. 


  역동성과 개방성, 그리고 진취성을 갖춘 나라 고려!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있으며, 빠르게 세상이 변하는 인공지능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고려가 보여준 역동성과 개방성, 진취성은 우리가 다시한번 발휘해야할 우리의 숨겨진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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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전략 - 외교 역사와 이론으로 살펴보는 국제정치 속 오판의 메커니즘 그레이트 하모니 4
비어트리스 호이저 지음, 이혜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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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정보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것이 진실된 정보이고, 어느 것이 거짓정보인지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잘못된 전략을 수립하기 쉽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잘못된 전략은 정보의 부재나 정보의 오류만으로 빗어지지 않는다. 이책은 근현대 국제정치 속에서 벌어진 잘못된 전략의 근본원인을 탐구한책이다.

이책에서 제시한 확증편향을 비롯한 많은 잘못된 전략을 수립하는 원인들은 심리학에서 제시한 이론들이다. 학문의 벽이 허물어지고 심리학의 이론들이 뇌과학과 경제학을 넘어서 이제는 정치외교분야에도 활용되고있다. 통섭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다. 

어디 심리학 뿐이랴, 논어에 위정편에 있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하고, 아는 것을 안다고하는것 그것이 참된앎이다.'라는 말이 정치외교학에서도 중요시될 줄은 몰랐다. 저자 비어트리스 호이저가 말했듯이 가장 위험한 것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할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모르는 것 자체를 모른다면 제대로된 전략자체를 수립할 가능성이 없어진다. 논어 위정편에서 말한 공자의 말씀을 비어트리스 호이저가 정치 외교학분야에 맞도록 풀어 써놓은 듯한 서술이 인상적이다. 

  한가지 동의할 수 없는 저자의 의견도 있다. "너무적은 혹은 너무많은 지식"이 좋은 정책 판단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너무 많은 지식이 현명한 전략 수립에 걸림돌이 되는 시기는 지났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정보는 많을 수록 좋으며, 정보에 대한 분석과 판단옵션도 단시간에 제시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르대통령 납치, 현재 이란-이스라엘, 미국전도 인공지능을 도입해서 수많은 정보를 단시간 내에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지 않는가?


  정치외교학분야에서 현명한 전략 수립에 방해가 되는 요인들을 정리했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러한 잘못된 전략을 수정할 수 있는 힌트를 주는 책이다. 나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확실한 교훈이 남았다. 지식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으며, 지식은 융합되고 통섭되어야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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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3-25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보의 오류는 전쟁도 일으키지요. 현재의 이란전쟁이 아닐까요.

2026-03-30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
정병준 지음 / 돌베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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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준 교수가 현 앨리스를 추적한 계기는 1921년 상하이에서 찍은 한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사진속에는 우수에찬 현앨리스와 그녀가 연정을 품었던 것으로 알려진 박헌영, 그리고 그녀의 동생 현피터가 총 18명의 한국청년들이 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바라며 한시대를 살아간 그 젊은이들이 비극적 삶을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했다. 사실, 정창현이 쓴 '인물로 본 북한 현대사'라는 책을 통해서 그녀를 미국의 간첩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박헌영이 미국의 스파이일 수 있다는 주장에 무게 중심을 두게 되었다. 정병준 교수가 현 앨리스에 대한 책을 썼다고 했을 때에도 현 앨리스가 미국의 간첩이라는 나의 기존 지식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진실을 마주해야할 때이다. 그녀를 간첩으로 보았던 죄스러움을 덜기 위해서..., 그래서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의 책장을 펼쳤다. 


  정병준 교수는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경계인이란 어느 한쪽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두 세계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녀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대립속에서 공산주의에 친근감을 더 갖았다. 1919년 삼일 운동의 감동이 가시지 않은 1921년 상하이에서 찍은 한장의 사진 맨 앞줄 중앙에 박헌영이 있었다. 미국으로 유학가려했던 그는 미국에 가지 못하고 공산주의를 받아들인다. 삼일운동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독립운동에 끌어들였다. 그중 많은 사람이 공산주의 사상을 정신적 뿌리로 삼았다. 민족주의자였던 현순 목사도 공산주의에 깊은 관심을 갖았다. 현 앨리스를 비롯한 현씨 가문의 많은 사람이 공산주의의 세례를 받는다. 

  현앨리스는 삼일운동에 참가했던 남성과 결혼했지만, 그는 봉건적 사상을 가진 존재였다. 결국 그는 술과 여흥을 즐기는 나태한 지주로서 총독부산하 경상남도청 관리로 살아간다. 친일파로서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한때 정의로울 수는 있어도 그 정의로움이 길게 지속되는 것은 힘들다. 꽃피기는 쉬워도 열매 맺기는 어려운 것이 우리의 삶이다. 현앨리스는 그와 이혼을 선택한다. 첫째 딸은 그에게 남겨 놓고, 태중에 있는 정웰링턴과 함께 하와이로 온다. 미국에서의 삶은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고뇌의 시간을 선사한다. 

  비미청문회에 나온 한국계미국인은 자신이 미국 공산당에 가입한 이유를 미국에서의 흑인 차별 때문이라 말한다.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 이상향에 대한 열망은 만국의 노동자는 평등하다는 공산주의 사상에 함몰되게 만들었다. 공산주의에 친근함을 갖았던 현씨 가문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패망한 조선인으로서 미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일정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부평초와 같은 삶이었을 것이다. 당시 미국인들은 한국인이 미국이라는 말을 할때마다 me gook(나는 바보)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조롱했다.(166쪽 참조) 결국 한국계미국인으로 방황하던 그들은 사상적 뿌리를 공산주의에 내리게된다. 

  현애리스의 아들 정웰링턴도 공산주의를 사상적 이상향으로 여긴다. 정병준 교수는 웬일인지 정웰링턴이 갑자기 학업을 중단하고 1945년 10월 부터 1946년 6월까지 8개월간 선원이 되어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닌다고 말한다. 정병준 교수는 정웰링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정웰링턴이 방황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져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정웰링턴은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사회에서 유색인종인 그는 의사가 될 수 없었다. 


  "웰링턴은 성격이 좋았으나, 당시 의과대학 입학허가 방침에 따라 소수민족의 입학지원을 관례적으로 거절당했다." -259쪽


  꿈을 이룰 수 없는 자유국가 미국에서 정웰링턴은 좌절했다. 소수민족으로서, 유색인종으로서 흔들리는 정체성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불안한 미래가 정웰링턴의 마음을 더욱 요동치게 했을 것이다. 불안한 미래를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군대생활을 했던 나의 모습이 정웰링턴의 사진에 오버랩되었다. 내가 현실과 타협이라는 길을 선택하며 학자의 꿈을 버리고 교사를 선택했다면, 정웰링턴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평등'한 이상향 공산주의 세상을 꿈꾼다.

  현앨리스는 미군의 통역관이자 정보원으로 활약한다. 미군정청 통신검열국에서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그녀는 남로당의 박헌영과 접촉한다. 그뿐아니라, 미군 내의 공산주의자와 박헌영이 만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한다. 적극적인 친공산주의 활동이 미군정 방첩부대에 적발되어 미국으로 소환된다. 그녀는 미국에서 '독립'이라는 친공산주의 신문을 발행하며 적극적인 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친공산주의 활동이 그녀를 미국의 스파이로 몰아 넣는 근거가 될줄은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 

  현앨리스! 그녀가 완벽한 공산주의자로서의 행보를하면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평등'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이상을 펼치기 위한 동반자로 자신을 받아주리라 믿었다. 첨단의 자본주의 미국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서, 사회주의 국가 북한을 이념적 이상향으로 여기고 있는 현앨리스의 분열적 모습은 비극적 선택으로 이어진다. 

  현앨리스와 정웰링턴 모자는 체코를 경유해서 북한으로 입국하는 길을 선택했다. 체코에서의 짧은 시간이 두모자의 마지막이 될줄은 몰랐을 것이다. 정웰링턴은 의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체코에 남아서 공부를한다. 의사면허를 취득하면 북한으로 가기로했다. 반면, 현앨리스는 모스크바를 경우해서 북한에 입국한다. 그리고 비극적 운명과 마주한다. 


  "마침내 이상향에 도달했다고 믿던 순간 샹그릴라는 죽음의 하데스임이 드러났다."-322쪽

  "스스로 운명의 개척자라고 생각했으며 사상의 조국을 찾았다고 생각한 현앨리스, 이득환, 이사민은 한결 같이 "미제의 정탐꾼, 스파이, 공작원"으로 몰렸다."-312쪽


 샹그릴라! 히말라야 산맥 속에 신비로운 불교사원! 고통도 늙음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지상 낙원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저승 세계를 지키는 하데스가 다스리는 죽음의 땅이었다. 김일성은 자신의 반대파를 제거하기 시작한다. 박헌영을 미제의 간첩으로 엮어내기 위해서 현앨리스를 미제의 간첩으로 규정한다. 결국, 하데스는 그녀의 목숨을 거두었다. 

  현앨리스의 아들 정웰링턴은 어떻게 되었을까? 외삼촌 데이비드는 편지에 "그는 의문사하였던 것이다."라고 썼다. 1963년 10월 28일 헤프 시립병원 해부실에서 독극물을 삼키고 정웰링턴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상적 이상향이라 믿었던 북한에서 그의 입국을 거부했고, 어머니 현앨리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현씨 가문은 비미국청문회에 나가서 자신을 변호하고 기나긴 법정투쟁을 이어가야했다. 정웰링턴 또한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집요한 수사와 법정투쟁을 이어가야했다. 북한에서도 미국에서도 안식처를 찾지 못한 정웰링턴은 체코인 애가 있는 돌씽녀와 결혼한다. 체코인으로 귀화하여 삶을 이어가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었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가 있는 저 세상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것이 현씨 가족들에게는 '의문사'로 받아들여졌다. 


  현앨리스의 동생 현피터는 자서전적 기록을 남겨 현앨리스의 삶을 세상에 알렸다. 현앨리스와 정웰링턴은 세상 어느 곳에 현실을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샹그릴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현실 속에 샹그릴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샹그릴라를 만들겠다는 이상적 시도가 오히려 현실을 지옥으로 만드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세상 어느 곳엔가 이상 세계가 있다고 믿기보다는 불완전한 이땅을 이상향에 가깝게 고치려 노력했다면 현앨리스는 불행의 종착역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현실을 고통도 늙음도 죽음도 없는 샹그릴라로 만들수있다는 인간의 오만함이 현실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이 불만족스러워 역사의 갈림길에서 이상을 쫓았던 그들에게 이상적 조국은 없었다. 무엇이 현명한 선택일까?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제한된 정보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우리에게 냉철한 현실 인식과 현명한 선택은 참으로 힘들다. 그러기에 현앨리스와 정웰링턴 모자의 비극적 죽음이 더욱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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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
정병준 지음 / 돌베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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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산장군의 내전 6월 11일 1942
최능익씨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야 우리의 통신이 지완하고 우리 활동에도 불소 - P192

한 영향이 밋첫습니다. 중국군사회의의 명령으로 조선의용대는 한국독립•군과 연합하였는데 우리 의용대는 한국독립군 제1로군으로 인준하고 전일한국독립군이엿든 제2로군은 중국군사회의에 인준치 안엇음니다. 중국군사회의에서 단만 본인이 부사령이 되엿다고 공포하고 아직까지 총사령은임명치 안엇습니다. 한국 임시정부는 이청천씨로 총사령을 임명하였으나한국독립군은 한국 임시정부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고 임시정부가 임명하멋다는 총사령은 아모 효력이 없는 것이올시다. 
-김원봉이 최능익에게 보낸 편지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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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3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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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국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 작업이다. 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웠다할지라도 개별 국가의 역사를 제대로 안다고할 수 없다. 아무리 유럽을 중심으로한 세계사 서술이 이뤄지고 있다할지라도, 영국의 역사는 세계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배울뿐이다. 영국사를 잘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명화를 통해서 역사를 이해하고, 역사를 통해서 명화를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책에 눈이 갔다.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의 책장을 넘겨보자. 


  나카노 교코는 영국 역사 전체를 서술하지 않았다. 켈트시대부터 중세까지의 영국역사는 과감히 건너뛰었다. 영국 역사의 근대시기라 할 수 있는 튜더가부터 스튜어트가와 하노버가까지의 역사를 명화와 역사로 재미있게 버무렸다. 단순히 명화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가계도를 도표를 깔끔하게 정리하여 역사 이해를 도왔다. 사실 한국의 역사책들을 읽다보면, 지도와 도표, 가계도를 첨부해서 책을 만들었다면, 독자의 이해를 많이 도왔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많이드는 경우가 많았다. 지도와 도표, 가계도를 책에 삽입하는 것은 나카노 교코만이 아니라, 일본에서 출판되는 역사책의 친절한 특징이기도하다. 

  이책의 가장큰 재미는 명화를 감상하며 역사를 읽는 것이다. 특히, '찰스 1세의 시신을 보는 크롬웰'이라는 작품 참으로 인상적이다. 참수형을 당한 찰스1세의 머리가 몸과 결합되어 관에 누워있을줄은 몰랐다. 왕의 머리를 발로차며 왕에 대한 분노를 달래려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했는데, 왕의 시신에 대한 예우를 하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나카노 교코는 명화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게 했다. 딱딱한 논문 스타일의 역사책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 책과 같은 역사책이라서, 영국역사에 대한 흥미와 이해도는 책장을 넘길 수록 높아지고 깊어졌다. 빅토리아 여왕이 남성에게 심리적으로 의존적이었다는 이야기, 아들을 싫어하는 전통을 가진 하노버가의 이야기를 다른 역사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이기에 읽을 수 있는 쏠쏠한 재미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다가 책날개를 보었다.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시리즈가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합스부르크, 부르봉, 로마노프, 프로이센의 역사를 명화로 읽을 수 있다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 그래, 이들책도 나의 독서 리스트에 넣어 놓자. 앞으로 읽을 '명화로 읽는' 역사 시리즈에 가슴이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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