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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주의 인사 ㅣ 소설, 향
장은진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동하 씨, 냉장고를 부탁해, 화분도. -세주(p.10)
여름휴가를 맞이해 어디에 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려고 했던 동하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취방에 있는 세주의 빨간 냉장고를 보게 된다. 크지 않은 술냉장고 전용이였던 냉장고, 게다가 왠 화분 하나도 놓여 있다.
세주와는 이미 일 년 전에 헤어진 상태다. 하지만 집의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아 그녀가 들어올 수는 있었던 상태. 무더위에 씻고 나온 동하는 당연히 냉장고 안에 맥주라도 있을거란 부푼 기대로 문을 열지만 충격적이게도 그곳엔 책이 있다. 뭐 이런 경우가...

너무나 기이한 상황에 결국 동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세주의 친구에게 DM을 보내고 다행히 연락이 닿게 된다. 알고보니 세주가 주변에 이런 식으로 물건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아니면 맡긴 건지도... 특이점이라면 그때마다 화분은 하나 있었던 것인데 그녀가 식물 상점을 했다는 사실을 이를 통해 알게 된다.
게다가 그녀의 친구는 세주가 동하에게 냉장고에 책을 담아 선물을 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책은 세주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였다고. 관용의 의미를 가진 문샤인 산세베리아와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책 그리고 냉장고. 이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미 헤어진 여친이 남긴 책을 읽으며 만족하고 화분을 잘 키우고자 애쓰는데 그와 동시에 연락이 닿지 않는 그녀의 행방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야기는 세주와 헤어진 후 한참이 흘러 그녀가 남긴 것들로 인해 그녀를 행적을 찾는 동하의 이야기가 나온 뒤 세주의 이야기가 나온다.
세주의 삶은 참으로 기구했고 안타깝다. 자신의 생일 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었다는 자책감으로 인생을 살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하나 뿐인 가족이였던 할아버지 역시 소박한 꿈조차 함께 할 수 없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세주는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되는 일이 없는 애였다. 취중에 왜 나만 사는 게 이렇게 힘드냐고 하소연도 했다.(p.22)
동하가 세주의 사연을 알기 전 취중에 거낸 그녀의 말은 돌이켜보면 너무나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렇게 끝이 났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오히려 이별한 이후 서로를 이해하고 또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책도 책이지만 동하가 문샤인 산세베리아를 제대로 키워보려고 애쓰는 모습은 결국 세주와의 재회를 바라는 마음과 맞닿아 있다. 꽃을 피우면 우리는 만나게 되지 않을까하는 바람처럼...
잔잔한 분위기 속 펼쳐지는 이야기에는 한 마디로 딱 잘라 정의 내리기 힘든 두 사람의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이다가 또 서로에게 닿아 보듬고 위로를 해주는게 아닐까 실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극적인 사랑이 넘쳐나는 세상 속 이런 감정과 대화 속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한 단계 성숙해진, 어른이 되어가는 둘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