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층 갈색 목조건물의 고구레빌라에서 벌어지는, 정확히 말하자면 고구레빌라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7명의 연애 이야기가 바로 <고구레빌라 연애 소동>이다.
첫번째 주인공은 마유다. 고구레빌라 203호에 살고 꽃집 아가씨이다. 현재 아키오라는 남자친구도 있다. 낡긴 했지만 나름대로 고구레빌라가 마음에 들어 꽤 오래 살아 오고 있는 세입자이다. 그런 마유에게 3년 전 훌쩍 떠나버린 전 남자친구 나미키가 불청객처럼 나타난다. 그뒤로 언뜻보면 이상한 두 남자와 한 여자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처음의 불편하고 화나던 마음과는 달리 마유는 나미키에 대해서 점차 이해해 가게 되고, 나미키는 나타났을 때처럼 그렇게 불현듯 떠나게 된다. 그런 마유에게 아키오는 말한다. 이렇게 낡은 고구레빌라에 살고 있었던 이유가 혹시 언제가 돌아올 것 같은 나미키를 기다린 것은 아니냐고.
두번째 주인공은 고구레빌라의 주인 할아버지인 고구레씨다. 여느 가장과 마찬가지로 가족들 먹여 살리다가 인생 다 보낸 노인이다. 그런 그가 어느날 지기의 죽음을 계기로 섹스가 미치도록 하고 싶어진다. 차마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전전긍긍이다. 아내에게 넌지시 얘기하니 남세우스럽다고 말한다. 그뒤부터 어떻게하면 섹스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그 즈음 아내와 자식들이 살고 있는 본가에서 나와 비어 있는 고구레빌라로 들어와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마유의 남자친구 아키오로부터 출장서비스를 알게되고 서비스를 받기로 한다. 하지만 하필 그때 아내가 나타나고 서비스 나온 치나쓰의 재치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치나쓰가 위기 모면으로 들어가게 됐던 옆방의 여대생과 늦은 오후 어색하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정도는 되었다. 고구레는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혀 모르던 남과 그냥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세번째 주인공은 고구레 빌라를 지나다 그곳에 사는 존(고구레씨의 강아지)의 지저분한 모습을 보고 꼭 씻겨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애견미용사 미네가 주인공이다.
어느날 전철역 건물 기둥에 솟은 돌기가 자라 남근 모양으로 자라는 걸 지켜본 아가씨다. 왜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은데 자신에게만 보이는 걸까. 그런던 차에 자신과 같이 그 돌기를 보게 된 이가 있으니 그는 바로 야쿠자 마에다이다. 마에다가 기르는 강아지도 미네. 그 우연한 기회로 둘은 친해지게 되고 미네가 일하는 애견숍에 마에다는 주기적으로 찾게 된다. 그리고 미네는 그 남근의 정체를 두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이유가 과거 자신의 아픈 경험과 유사한 경험을 마에다 역시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살인.
여기에서 마에다는 미네를 위해 그녀가 그토록 하고 싶어하던 존의 목욕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과정이 참 의외다. 이 남자 진짜 여자를 위할 줄 안다. 그녀가 늘 마음쓰여 하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결해 주는 남자가 진짜 남자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내내 신경쓰여하던 전철역의 돌기도 없애준다.
그리고는 3년간 출장을 간다는 말과 함께 자취를 감춘다. 그의 부하는 말한다. "그동안 미네씨는 자신에게 돌보도록 부탁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 미네는 과연 누굴까? 미네 자신. 아니면 미네와 이름이 같은 그의 애완견. 그것도 아니면 둘다.
네번째 주인공은 마유가 일하는 꽃집 여주인 사에키다. 남편과의 사이에 자녀는 없다. 남편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찻집을 가업으로 이어가고 그녀는 찻집 한켠에서 꽃집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부터인가 남편이 타주는 커피에서 흙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은데 자신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그리고 어느때부터인가 남편은 새벽 시간 어디론가 외출을 다녀온다. 무슨 연관이 있을까. 과연 바람이라도 났을까 싶다. 그렇게 복잡할 때에. 마유가 쉬는 날, 마유가 미용사라고 별명을 붙인 단골 여자 손님이 들어 온다. 그리고 그녀는 나가기전 사에키가 느낀 그 커피맛을 언급하고, 사에키가 생각하는 것이 맞을 거라고 말한다. 그날 밤 마유와 사에키는 미행을 하게되고 둘은 남편이 찻집 단골인 젊은 여인 마키노와의 불륜 현장을 발각하게 된다. 생각보다 침착해진다. 아마도 남편도 마키노도 그냥 서로의 만족을 위해 만나는 관계라 그럴지도 모른다. 결국 사에키는 남편과 그렇게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과연 그 마음 속에서는 서로 어떤 감정들을 품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섯번째 주인공은 고구레빌라 201호에 살고 있는 회사원 간자키다. 낡은 고구레빌라에 돈을 아껴 볼 요량으로 입주했지만 방음이 전혀 안되어서 모든 소음이 통과되는 고통속에 살고 있다. 그러다 홧김에 던진 청소기에 벽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발견하고서 빈 옆방을 동시에 사용하게 되면서 그 방 바닥에 난 구멍으로 아래층에 사는 여대생의 생활을 훔쳐보는 생활을 하게 된다. 모든 감각은 사라지고, 애초의 이 집에 있게된 목적도 살아지고 오로지 구멍 속 광경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지낸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자신 나름대로 평가를 내리기도 하고, 속으로 참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처음 의도와는 달리 그녀를 관찰하면서 여자의 심리나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고, 그녀를 진심으로 연민하게 된다. 그러다 그녀가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을 도와주면서 그녀와 안면까지 트게 된다. 그녀는 이미 간자키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름 쿨한 반전이기도 하다.
여섯번째 주인공은 고구레씨와 간자키 이야기에 나온 바로 그 여대생, 102호 미쓰코이다. 그녀가 간자키의 눈에 그토록 문란한하게 보이는 생활을 한 것은 그녀가 가진 조금 특별한 문제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난자가 생기지 않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미쓰코다. 그런 미쓰코는 간자키와 이제는 구멍으로 대화까지 하는 사이가 됐다. 임신을 못하는 미쓰코에게 친구 아키가 낳은지 한달된 아이를 맡긴채 사라진다. 일주일정도만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이다. 그날부터 아기는 하루카가 되어 미쓰코에게 빛과 같은 존재가 되고, 고구레의 아이돌이 된다. 아이를 낳을 수 없기에 하루카와의 하루하루는 미쓰코에겐 꿈만 같은 날들이다. 언제간 깨어날 꿈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즐거운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흐르고 이별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다. 미쓰코가 하루카와 고구레빌라 마당을 거닐때 도망치듯 사라졌던 아키가 돌아 온다. 아이 아빠가 될 남자와 자신의 집으로부터 정식으로 결혼허가를 받아 행복해 하면서 말이다. 하루카는 아키에게 안겨 언젠가는 기억 속 조각(Piece)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자신과 고구레 빌라의 추억을 뒤로하고 그렇게 떠나버린다. 그런 그녀를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이는 바로 구멍으로 그녀가 좋아하는 흑사탕 하나를 보내주는 간자키다.
마지막 주인공은 나미키이다. 바로 첫번째 주인공 마유의 전 남자친구. 마유를 떠났지만 마음속 깊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음을 깨닫고 본의 아니게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꽃집 근처에서 니지코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기묘한 동거를 한다. 니지코는 음식맛을 통해서 거짓말을 느끼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존재다. 그런 그녀의 재능에 부탁해서 전국각지에서 아내나 남편의 바람을 의심해서 보내온 음식을 먹어보고 이메일로 알려주는 일을 한다. 아버지가 물려 준 재산으로 생활하며, 자신의 죽음을 대비한 명함을 가지고 다니고 유서를 놔두고 다닌다. 나미키는 곧 떠날것임에도 불구하고 니지코와는 영원히 연결되었으면 싶어한다. 마유를 잃었듯이 그렇게 인연을 흘러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는 다짐한다. 그녀가 다시는 모래와 흙맛이 나는 음식을 먹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말이다.
이처럼 이야기는 각기 다른 7명의 사랑과 연애 심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7명이 제각기 연결 되어 있다는 것도 의미있는 것 같다. 전혀 남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랑과 연애라는 감정으로 서로의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소 변태스럽거나 불쾌할 수 있는 일들도 극적으로 그렇게 만들지 않은 점이 상당히 돋보인다. 배꼽빠지게 웃기지는 않지만 잔잔한 재미가 느껴지는 그런 책인 것 같다. 겉으로보자면 "저 사람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아?" 라고 생각되는 사람도 그 사람이 가진 삶의 무게나 사연을 알게 되면 "그렇군..."하고 수긍하게 되는 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고구레빌라 연애 소동>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서 위로받는다는... 사랑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사랑으로 치유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그런 소설인 것 같다. 평범한 듯 하지만 결코 시시하지 않은 이야기에서 읽는 즐거움을 알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