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소녀 아키아나 - 그녀의 삶, 그림, 에세이
아키아나 크라마리크 지음, 유정희 옮김 / 크리스천석세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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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의 존재를 난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어떤 일들이 지금도 내가 깨닫지 못하는 이 순간에 일어 나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며, 우리가 절망의 순간에 기적을 바라며, 기도를 하는 것 또한 그런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였다. 아키아나 크라마리크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이 책의 발견과 함께 알게 된 셈이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셋째로 태어났고, 부모 모두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였으며, 그 누구도 아키아나에게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그녀 스스로가 하느님과 영적 세계를 체험하고 이를 자신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아키아나의 이야기를 보면서 어느 한편으로는 혹시 신앙 간증에 관한 책이 아닌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류로 결정짓기엔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싶다.

그녀가 가진 태생적 배경 어디를 봐도 아키아나는 하느님을 접할 기회가 없었음을 감안할 때 신비를 넘어 기적같은 이야기가 분명하다.

 

아키아나는 4살을 기점으로 놀라운 경험을 자신의 엄마에게 얘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키아나는 초창기 그림은 거의 목탄이나 연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물론 4살 수준에서는 뛰어나긴 하지만 아직은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에서는 뭔가 감정이 느껴진다. 실제 그녀는 사람들의 감정적인 면을 느껴서 그것을 그림으로 담아 냈던 것이다.

 

 

아키아나의 5살 때 그림들

 

이 책에서는 아키아나가 그린 그림들에 대거 소개되고 있는데 그 또래의 아이가 그렇다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독특하고 매력적인 어떤 감각과 감정적 표현히 확실히 나타난다. 아키아나는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영적 소재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위의 사진 속 오른 쪽 그림은 아키아나가 9살에 캔버스 위에 유화로 그린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는 작품이다. 그리고 왼쪽은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를 그리고 있는 모습과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마치 살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 같은 사실감과 생동감은 물론이고, 표정과 손짓 등에서 살아 숨쉬는 감정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받을 수 있는 소감이다.

 

아키아나의 성장기 동안의 영적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진 그림과 시를 보자면 단순히 종교적 의미에서만이 아니라도 그녀의 삶이 경이롭고 신비로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현재에 그 가치가 상당하다는 그녀의 그림은,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뭔가 특이하고 아름다워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천국, 천사, 하느님의 세계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존재를 알려 주기 위해서 아키아나는 선택된 소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가 경험한 것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아키아는 지극히 소수의 선택된 재능으로 태어난 것 같다.

 

종교적으로 그녀를 평가하고 싶은 마음도, 또한 종교에 대해 논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그녀의 놀라운 재능을 몇몇만 보기엔 아깝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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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 - 능력주의 사회와 엘리트의 탄생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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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먼저 본격적인 얘기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아이비리그라고 불리는 대학을 2010년 학생 정원이 많은 순서대로 소개해 보면, 컬럼비아대학교, 하버드대학교,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코넬대학교, 예일대학교, 브라운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 다트머스대학교이다. 아마도 이 전체를 제대로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우리에겐 하버드나 예일이라는 대학교가 마치 아이비리그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기억으로 내가 처음으로 아이비리그라는 단어와 그중에서도 하버드대학교라는 단어를 들어 본건 <7막 7장>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비리그의 파워를 잘 알지도 못했거니와 입학과 졸업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해를 거듭해 갈수록 아이비리그에 입성한 우리나라의 학생이 있다 싶으면 언론매체는 앞을 다투어 그 사람을 보도하고, 그 사람의 수기는 어느새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다. 심지어 어떤 이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행보를 담은 책을 펴내기도 한다. 이렇듯 어느새 아이비리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자 호기심의 대상을 넘어서서 글로벌 엘리트를 위한 하나의 단계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책의 제목에서도 미리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아이비리그의 설립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현 주소까지의 거의 모든 내용을 다양한 통계 자료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비교적 객관적인 논점에서 들여다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비리그에 입학한 국내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렴풋이나마 수박 겉핥기 식으로 들을 수 있었던, 잘 포장된 이미지의 아이비리그가 아니라 진짜 아이비리그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미국내의 대학들에 대한 솔직한 내용도 읽을 수가 있다. 물론 주된 이야기는 아이비리그에 초점을 맞추고는 있지만 아이비리그의 현재 상황과 여러 문제점, 동시에 강점 등에 대해서 논할 때 미국 내의 여러 대학 자료들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이비리그가 어떻게 능력주의 사회와 엘리트의 탄생에 기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파생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까지가 아이비리그의 설립과정에서부터 자세히 나온다. 이 책이 설립 연도에서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결코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그 어느 소설책 못지 않게 흥미로운 것은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재산과 마찬가지로 교육과 학벌 마저도 유산되는 한국의 사회의 단면을 공정성의 롤 모델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의 아이비리그의 진화 과정에서 고스란히 볼 수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크게 현실감있게 다가 오지 않는다. 여러 통계 자료에서도 보여지듯이 부모의 자산과 아이비리그 입학생의 성정이 정비례하고, 나아가 그나마 공식화할 수 있는 SAT 이외의 것들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비리그의 빛이 일부 상류층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자가 중간 중간에 희망적인 해석이나 의도를 눈물겨울 정도로 끼워 넣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교육의 대물림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아이비리그라는 말이 왠지 그들만의 리그로 들린다면 괜한 망상일까.

 

하버대의 학부 학장 해리 루이스는 2006년에 출간한 <영혼 없는 수월성>이란 책에서 "부자들은 하버드를 '쇼핑몰'로 여기고 저소득층은 신분 상승을 위한 '구명 보트'로 여긴다"고 썼다고 한다. 물론 누군가에겐 아직도 아이비리그가 확실히 신분 상승의 수단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당시 그와 그의 아내 미셸이 아이비리그 학력이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 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설립 당시를 생각한다면 확실히 아이비리그는 기회균등과 평등의 이념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비록 현재에 와서는 대학에 기업 윤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무시할 순 없지만 이런 부작용의 이면에도 사회에 기여한 바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아이비리그의 빛이 어둠과 그늘을 양지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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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개, 크리스마스 미네르바의 올빼미 36
그렉 킨케이드 지음, 유동환 옮김, 화자 그림 / 푸른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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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기견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집중되고 있는 때에 흥미로운 책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 책이다.

더군다나 떠돌이 개의 이름이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진짜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듯 해서 더욱 흥미로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작가 스스로도 유기견을 키우고 있듯이, 이 책은 단순히 유기견에 대해서 관심을 갖자는 일차원적인 접근이 아닌 유기견을 통해서 주변의 삶이 변하는 모습을 이야기로 풀어 나감으로써 유기견에 대해 좀 더 깊이있는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인 것 같다.

 

코너씨는 어느날 자신의 가족들이 돌봐주던 강아지 제이크가 떠난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코너씨는 제이크가 뭔가 자신이 해야할 임무가 있어서 떠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제이크는 떠돌아 다니다가 무려 100 킬로미터가 떨어진 토드네 마을까지 온다. 조지와 메리 앤의 아들 토드는 지적 발달 장애를 가진 20대의 청년이다. 장애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깨끗하고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조지와 메리 앤에겐 소중한 존재이다.

 

토드는 아버지인 조지의 농장 일을 돕고 있던 어느날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 동안 개를 데려가서 돌봐주는 얘기를 듣게 되고 조지에게 자신들도 개를 동물 보호소에서 개를 데려오자고 얘기한다. 하지만 조지에게는 청년시절 베트남 전쟁을 떠난 자신을 기다리다 죽은 터커과 베트남 전쟁에서 자신을 살리고 죽은 굿 찰리라는 개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지는 다시 한번 강아지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기가 두려운 것이다. 동물 보호소에서 데려 온 강아지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끝내면 돌려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드가 기대하는 모습에 조지는 동물 보호소에서 강아지를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운 반으로 동물 보호소에 간 두 사람은 한참을 살펴 본 끝에 까만색 강아지를 데려 온다.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개는 토드를 따르고, 조지 자신에게 친숙하게 군다. 토드는 개를 데려 나오는 그 자리에서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이 시점에서 보자면, 발달 장애를 가진 주인공 소년 토드 맥크레이와 유기견의 만남에서, 뭔가 사회로부터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두 존재가 앞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줄 모습이 기대되는 책이기도 하다. 측은지심에서였든, 단순한 호감에서였든지 간에 토드가 그 유기견에게 '크리스마스'라고 이름을 지어 준 순간 크리스마스는 이미 하나의 존재 가치로 거듭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데려온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토드는 보호소에 있는 나머지 개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줘서 다른 개들이 크리스마스만이라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토드의 개 입양 프로젝트는 지역 방송국에 소개되고, 토드의 프로젝트는 의외의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자 토드는 조지와의 약속대로 크리스마스를 보호소로 데려다 준다. 그러나 반 이상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개를 기른다는 사실을 알고나자 오히려 조지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젊은날의 아픈 과거와 상처 때문에 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면서 조지는 진정으로 개가 필요한 사람은 토드가 아니라 자신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데리러 간 보호소에서 크리스마스가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 실망한 채로 집으로 돌아 온다. 하지만 자신이 굴려버린 공을 바라 본 순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크리스마스다.

 

코너씨네와 토드네가 크리스마스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마스가 오히려 토드네를 선택하는 순간이다. 토드는 개 입양 프로젝트를 계기로 동물 보호소에서 일하게 되고, 토드의 소개로 개를 입양한 행크씨는 사회사업의 일환으로 낡은 동물 보호소의 개축 공사를 해준다.

 

이 모든 일들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아닌가 싶다. 나이 든 개 제이크는 작은 마을에 어느날 나타나서 조지를 비롯한 마을 전체에 크리스마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유기견을 소재로 하면서도 섣불리 캠페인을 강요하지 않는 점이 좋은 것 같다. 그저 유기견에 대한 지속적이고 진심어린 관심과 지원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가만히 일러 주는 그런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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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다잉 다이어리 -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제니스 A.스프링 & 마이클 스프링 지음, 이순영 옮김 / 바롬웍스(=WINE BOOKS)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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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과 고통을 지나는 시간과 동일어이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도 존재하는지는 알 순 없지만 병간호를 하다보면 단순히 환자를 돌보는 것 이외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환자의 고통을 지켜봐야하는 것에서부터 환자의 죽음을 위해 환자의 치료와 생명 연장을 위한 무수한 결정에 대한 고민... 다른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까지... 단순히 환자에 대한 간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모든 것들을 비교적 담담한 어조로 써내려 가고 있다. 어떨 땐 너무 냉정한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건 매일 매일 아버지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하고, 동시에 자신의 삶과 자신의 가족의 삶을 살아야하는 저자가 겪는 일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는 순서는 있지만, 죽는 순서는 없다는 말처럼 오래 살 거라 생각했던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후 온갖 병을 앓고 계신 아버지를 책임지게 된 정신분석의인 저자가 아버지의 5년에 걸친 호스피스 병상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처음 소개글에서는 "내가 나이든 아버지를 돌본 5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읽다보면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있거나 번역상의 오해가 있나 싶기도 하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돌본다는 개념은 자신의 집에서 모시거나 병원이나 요양원같은 곳에서라도 자신이 직접 간호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후자의 방법에서도 간병인을 두고 있는 경우다.

 

늙고 병든 아버지를 시설에 맞긴다는 것에 대해서 저자 역시도 죄책감에 고통스러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아버지의 건강과 회복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기관에 살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옳은 선택임을 안다. 자신이 살아 온 삶 역시도 계속 살아가야 하기에 두 가지를 모두 병행할 수 없다는 것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 그 누구라도 탓할 수는 없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판단할지 언정 결코 비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루 하루 쇠약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동시에 저자가 결정해야할 사항들도 점점 많아진다. 아버지의 보호자로서 아버지의 생명에 대해 결정을 해야하는 시점에 도래했을 때 저자가 겪는 심리적 고통은 아마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어머니는 시한부 6개월의 삶을 선고 받고, 병상에서 항암치료를 하다가 보내느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겉으로는 누구보다도 담담히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셨다. 자신의 정신이 온전할 때 정리를 해두어야 할 일들을 하나 하나 해나가신 것이다. 그랬기에 남겨진 우리 가족은 어머니를 조금은 편안하게 보내드렸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 아버지의 생명연장에 대한 고민을 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 이해가 간다.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계속해야 할까 아니면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도록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과 결정을 해야하는 자녀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결정권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든 그 자녀는 평생을 지내면서 후회와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가지고 살 것이다. 생명 앞에서... 과연 최선의 결정이 있을까 말이다...

 

건강했던... 사랑했던 아버지가 자신의 몸에 대한, 정신에 대한 자유의지를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겪는 고통을 저자는 자신이 내담하는 환자들의 상담치료를 통해서 오히려 위로받기도 한다. 그들의 사연을 들어 줌으로써 자신이 겪는 고통과 고민을 스스로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10월의 어느날 아버지는 돌아 가신다.... 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도래하면 슬픔은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좋은 남자가 죽다..." 어머니의 부고를 알리는 신문에 실은 그 문장 그대로 저자는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고자 한다. 어머니의 죽음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기억하며, 어머니의 삶을 추모하며 했던 그 말을 딸은 아버지를 위해 남기는 것이다.

 

제목처럼 "웰 다잉" 이라는 말은 마지막에 나오는 생명 연장에 대한 결정에 있어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치료를 연장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책의 내용은 그저 "웰 다잉 다이어리"라기 보다는 그냥 호스피스 다이어리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다만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해... 좀더 준비된 자세가 필요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남겨질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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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점심
엘리자베스 바드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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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파리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왠지 낭만과 로맨스가 떠오르는 도시가 파로 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리에 관련된 여행서도 제법 많이 읽은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이전까지의 여행서나 에세이와는 달리 미국출신의 영국 거주자였던 작가 자신의 파리 정착기를 담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작가 본인)도 일종의 파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학회에서 우연히 만난 "그웬달" 이라는 한 파리 남성과의 점심 식사를 위해 파리로 갔던 그녀의 인생은 영국과 파리를 오가게 만들고, 그와의 동거 기간을 거쳐 파리 남성의 아내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전까지의 파리관련 도서들이 대부분 파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는, 약간의 피상적인 여행자의 입장이나 임시 체류자의 입장에서의 서술이라면 이 책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환상에서 현실로 발을 내딛는 정착인이 입장에서 서술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이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프랑스인 특유의 감성이나 특징들을 엿볼 수 있고, 비롯 엘리자베스가 거주하는 지역에 한정적이긴 하나 파리의 진짜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마냥 환상적이고, 로맨틱해 보였던 모습들이 내가 그 속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도 그렇지만은 않다는 조금은 겁나기까지한 이야기들도 나온다. 그녀는 더이상 여행자도 아니고, 파리를 마냥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다. 이젠 그녀 스스로가 파리에서 살아갈 사람이고, 그들의 삶에 자신의 삶과 생각을 맞춰서 조정해야 할 때도 생기는 것이다.

 

가끔은 너무나 다른 인식과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일종의 문화적 쇼크로 힘들어 하는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주변인으로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 가고자 하는 그녀만의 노력은 가끔 눈물겹기도 하다.

 

자신에게도 분명 꿈이 있었고, 인생 5개년 계획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어느날 돌아보니 집근처의 시장에서 신선한 채소와 생선을 파는 곳을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고기를 제대로 주문하는 기술이 얼마나 필요하는지를 깨달아 가면서 파리 남성의 아내로서의 삶에 발을 들여 놓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겪는 그녀의 변화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 혼란과 함께 그녀를 알던 가족과 친구들의 반문에 대해 스스로가 길을 잃어 버리는 경험으로 힘들어 하기도 한다.

 

파리에서의 삶에 정착하는 것이 그녀의 가족, 친구들에겐 그녀가 퇴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감정적 고통과 진지한 고찰에 대해서는 비교적 사실적으로 잘 쓰여 있다. 또한 그 이후 자신이 진짜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가고, 그를 통해서 그녀의 인생을 다시 계획하는 희망을 발견하는 과정도 잘 쓰여 있다. 그저 멋있기만 한 파리 정착기 였다면 그냥 다른 책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겪은 문화적, 감정적 불소통과 차이를 허심탄회하게 적고 있기에 마지막 그녀의 점심은 왠지 성공한 여성들이 전유물 같은 브런치의 이미지를 풍긴다.

 

 

그녀의 솔직한 고백담과 함께 이 책의 도드라지는 특징은 바로 각 장의 끝마다 마무리를 담당하고 있는 레시피들이다. 보통 3~4개의 레시피가 앞선 이야기와 함께 어울어져 나온다. 아주 자세한 레시피이기에 한번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다. 또한 그녀의 결혼식을 앞두고 그녀의 가족, 친지들이 자신들만의 레시피를 그녀에게 선물하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하겠다. 그렇기에 이 책은 사람 사이에서 음식이 가지는 놀라운 효과를 동시에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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