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평점 :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g/a/gazahbs/IMG_233-449-1.jpg)
소중한 존재의 죽음은 남겨진 이에게 큰 상실을 넘어 상처를 안겨준다. 가까운 존재일수록 그 상처 속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법. 그렇기에 재즈 뮤지션이였던 아빠가 죽고 이제 열네 살이 된 베니에게 일어나는 기묘한 일들은 어쩌면 베니가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충격의 일환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베니에게 온갖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아빠의 죽음 이후다. 이렇게 말하면 왠지 유령의 존재가 말을 걸어오는 걸까 싶겠지만 아빠도 있지만 온갖 사물들도 있다. 게다가 이 목소리는 우호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 정반대인 경우도 있어 이를 걸러 들을 수 없는 입장에서는 꽤나 난처한 상황이다. 목소리라고 하지만 일종의 감정과 느낌이 소리로 들린다고 봐야 할 것이다.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g/a/gazahbs/IMG_233-449-2.jpg)
아빠의 죽음 이후 베니가 온갖 목소리를 듣는다면 엄마 애너벨은 저장강박증이 심해졌다. 모자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필요해보이지만 그렇지 못한것 같아 한편으로는 안타깝게도 느껴진다. 특히나 베니의 입장은 당장 목소리들이 들리니 일상 생활이 곤란하지 않을까?
결국 베니가 온갖 소리들을 피해 도망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도서관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제는 책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게 시작되는 소년과 책의 대화, 책은 흥미롭게도 베니와 책의 시선에서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엄마가 온갖 물건들을 버리지 못해 그 속에 갇혀버린 삶을 사는 것처럼 베니는 온갖 소리에 갇혀 그 소리로 인해 일상이 파괴되고 학교에서는 졸지에 문제아가 되어버린 후 정적 그 자체인 공공도서관으로 도망치는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현실 속 유일한 도피처가 아닐까 싶다. 그런 공간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까지 한.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g/a/gazahbs/IMG_233-449-3.jpg)
그렇게 찾아 온 무한한 정적의 공간에서 그동안 베니가 도서관 밖에서 들었던 온갖 사물들의 다양한(비아냥비명, 공격, 도발 등) 목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책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또 자신이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다양한 삶을 사는 존재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점차 자신 안에 존재했던 상처와 상실의 아픔을 치유해나가는 동시에 자신조차 잊고 살았던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게 된다.
뭔가 큰 울림을 주는 책이다. 온갖 목소리가 자신에게 들리지만 정작 자신의 목소리를 잊은 채 살아가던 소년, 그 목소리들을 피해 무한한 정적의 공간에 들어 온 후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간다니...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가는 소년의 이야기는 마치 인생에서 겪게 되는 커다란 상실의 순간 우리가 어떻게 그 위기를 이겨내야 하는지를 베니의 상황과 베니의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들어주는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인 루스 오제키는 선불교의 승려라는 조금은 특별한 이력을 가졌는데 그래서인지 책의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도 이런 영향이 반영된게 아닐까 싶다. 자기 안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외부의 요인이 아닌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가 깨닫고 또 나아가 그 문제의 해결책 역시 그 대화 속에서 스스로 찾아가며 한단계 성장해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무려 8년에 걸쳐서 집필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지난 2022년여성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는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이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을거란 생각에 작품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던것 같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