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서점에서 그럴 때가 있습니다. 하도 책을 많이 골라서 고른 책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 이런 책들은 다음에 가 보면 팔리고 없습니다. 100% 그렇습니다. 중고서점에는 언제나 저와 같은 부류의 책사냥꾼들이 넘쳐나니까요.

 

그렇게 해서 놓친 책들은 무척 많습니다. 아까워해도 소용이 없죠. 그냥 내 책이 아니려니, 하고 생각하면 맘이 조금은 편합니다. 그래도 가끔씩 후회를 하곤 하지요. 그러다가 놓친 책을 다시 중고서점에서 만나면 그땐 고민할 여지가 없습니다. 닥치고 구매해야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이상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책탐이 아주 심해지는 증상이지요. 중고서점에서 인문 절판본은 무조건 삽니다. 책에 대한 욕심이 주기를 타는 듯합니다. 돈이 없어도 계속 카드로 긁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중고서점에 두번 다시 나올 책이 아니야! 그러니 이런 책은 닥치고 사야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을 때입니다.

 

저번 달 구입한 책이 60권을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알라딘 중고서점을 검색하면 사야할 책이 다시 수두룩해 집니다. 수중에 여윳돈은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인데, 중고서점에 들러 책을 보면 '이건 지금 사야돼!'라는 내면의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다..랄까요. 귀를 막고 애써 나오면 환청 비슷한게 들리면서 책이 눈에 아른 거립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 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입한 책들이 쌓여만 갑니다. 처분할 책도 쌓여가긴 합니다만, 사제끼는 책은 그 배를 넘습니다. 정말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고민을 한다해도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귀를 막고도 '이건 사야해!'라고 해서 산 책들을 처분하지 않고서는 정말 요원한 일입니다.

 

근데, 돈이 없어도 '이런 책은 사야해!'라는 책이 뭐가 있냐구요? 흠...그건 개인의 사정과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습니다만, 저같은 경우는 예전부터 모으던 시리즈 중 일부 책이 절판인 경우입니다. 절판되고 나서 시리즈를 알아 헌책방을 전전하며 모으는 책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제 오랜만에 흙서점에 갔습니다. 거기서 책을 10여권 정도 구입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한 권은 이미 소장중이던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부랴부랴 바꾸러 갔지요. 6천원 짜리 책이었는데 같은 금액의 다른 책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금액에 맞게 책의 구색을 맞추던 중 거기서 그제 안보였던 책을 찾았습니다. 바로 입장총서의 한 권인 르네 톰의 <카타스트로프의 과학과 철학>(솔, 1995)였지요. 훑어 보니 중간 중간에 수학적으로 매우 어려운 이론들이 나오더군요. 그냥 건너 뛰고 읽어도 무방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카타스트로프 이론이 수학적 이론과 맞물려 있어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뭐, 어려워서 읽지 않아도 그만입니다.ㅎ 컬렉션 했다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ㅎㅎ

 

 

제가 지금까지 구색을 맞추지 못한 총서 시리즈가 몇 개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솔출판사의 입장총서 시리즈와 민음사의 이데아총서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헌책방을 전전하는 총서 시리즈들입니다. 이데아총서의 경우 6권 정도 빠져 있고, 입장총서의 경우는 절반 정도 모았습니다. 그런데 중고서점에서도 이들 시리즈는 정말 발견하기 힘듭니다. 우연히 만나지 않고는 하늘에 별 따기 입니다(특히 내게 없는 책!). 이런 책들을 중고서점에서 만나면 닥치고 사야합니다.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지(액면가의 2배 3배를 부르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않는 한에서요.

 

 

그리고 딱 2개 이빨이 빠진 총서가 있습니다. 예전에 종로서적에서 나온 현대 철학 시리즈(전22권 완간)입니다. 2권 <현상학 강의>와 <자연 과학 철학>만 없습니다. 근데, 위 입장총서 중 한 권을 고른 바로 아래에 <현상학 강의>가 꽂혀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이야~!'라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런 책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닥치고 사가지고 왔습니다. 근데, 좀 읽어 보니 매우 어렵군요. 현상학에 대한 기초가 돼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훗설이 현상학 개념에 대한 구상을 어떻게 했는지 보여주고 평가합니다. 훗설이 설정한 현상학에 대한 개념 추이를 초기부터 후기까지 고찰하는 책이기에 입문책이긴 하지만 매우 어렵다는 인상입니다. 기술적 현상학에서 선험적 현상으로 이행하는 설명 부분이 특히 난해합니다만, 훗설 현상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분명히 도움이 될만한 책입니다.

 

 

 

그제 흙서점에 갔던 날도 아주 운이 좋았지요. 거기에서 저는 발터 슐쯔의 <철학의 부정>(이문, 1988)과 솔 크립키의 <이름과 필연>(서광사, 1988)을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크립키는 분석철학 책을 읽을 때 언제나 등장하던 이름이었지요. 크립키의 주저인 이 책을 작년 반디문고에서 보고 구매를 망설였던 적이 있습니다. 결국 놓고 왔지만 그 이전에 서광사에서 나온 책이 있었는지는 몰랐는데, 만나니 매우 반가웠습니다. 그냥 닥치고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가격은 1500원..ㅋ

 

 

 

 

발터 슐쯔의 <철학의 부정>은 비트겐슈타인 비판서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과 책은 제가 이날 처음 본 겁니다. 소장하고 있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책들의 서지목록에도 슐쯔의 책은 언급된 바 없었습니다. 그 유명한 레이 몽크의 책들에도 없었습니다. 주어캄프 세계인물 총서로 나온 <비트겐슈타인>이나 한길 로로로 중 한 권인 <비트겐슈타인>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별 볼일 없는 책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넘겨 구경하고 몇 페이지를 읽어보니, 이 책은 정말 대박인 책이더군요. 이 책은 <논고>와 <탐구>를 아주 간결하게 소개해 주는 입문서이자 저자 나름의 비판을 곁들인 안내서였습니다. 이렇게도 얇고 좋은 책이 서지목록에 없다는 게 정말 이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비트겐슈타인에 관심이 많아 입문서들은 거의 다 소장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주저들도 나름 소장하여 읽어왔습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2차 문헌 중에서 이 책만큼 간결하게 비트겐슈타인의 <논고>나 <탐구>를 소개하고 해설해 주며 비판하고 있는 책은 못봤습니다. 그것도 아주 평이하게요. 물론 비트겐슈타인이 쓴 책 자체가 난해하여 용어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나름 관심있게 비트겐슈차인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이런 책은 만원도 아깝지 않지만 저는 1000원에 데려왔습니다. 정말 행운이지요~

 

 

어제는 신림점에 갔다가 몇 년 전 반디 문고에서 들었다놨다를 반복했던 책을 발견하여 냉큼 사왔습니다. 이건 약간 고민하긴 했지만 '사야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했지요. <미술품 분석과 서술의 기초>(시공사, 2006)라는 책인데, 이 책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지요. 논문과 에세이 쓰기에 있어서 항상 표절과 인용 문제로 골치가 아팠는데, 이 책에서는 표절과 인용의 적절한 사례를 아주 잘 짚어주었습니다. 표절을 피하고 제대로 인용하는 방법을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알려줘서 사야했습니다. 미술에 관련된 글이 아니라도 인문에 관련된 글을 쓸 경우 매우 도움이 되는 지점들이 많아 닥치고 구매하게 되었지요. 정말 강추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작품을 평한 글의 장단점을 짚어주는 저자의 친절함과 해박함은 글쓰기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참고 자료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같이 산 책으로 마쓰오카 세이고의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추수밭, 2010)이 있습니다. 마쓰오카 세이고는 <지의 편집공학>(?지식의 숲, 2006)이라는 책을 읽고 완전 팬이 됐습니다. 타치바나 다카시에 버금가는 책을 읽는 마쓰오카 세이고는 일본에서도 책 많이 읽는 괴물(신)로 통한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독특한 '지의 편집론'에 대한 매력에 빠져 전 저작을 컬렉션화 하려고 있지만 우리말로 번역된 게 별로 없어 매우 아쉬워하는 작가지요. 세이고의 책들은 나오기만하면 무조건 사야하는 책들이기에 생각따위는 할 겨를이 없습니다. 현재는 표지를 갈아입고 재판됐습니다. 새로 간행된 타이틀이 이전보다 나아 보입니다.ㅎㅎ

 

 

이 외에도 닥치고 구매할 수 밖에 없었던 책들이 많았습니다. 여윳돈이 없었지만 '반드시 사야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산 책들입니다..ㅎㅎ(이미지가 없는 책들은 제외)

 

 

 

 

 

 

 

 

 

 

 

 

 

 

 

  이 중에서 특히 유잉의 <몸>(까치, 2006)과 <성 문화 보고서1,2>(지수, 2001)가 대박이었습니다. 세계 성 풍속사에 관계된 책들과 귄터 아멘트의 <섹스 북>과 같이 보면 금상첨화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문화 보고서>의 경우는 용어가 매우 원색적(자지와 보지가 난무~ㅋㅋ)이지만, 섹스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책입니다. 2001년도에 이런 책이 나왔다게 신기합니다.ㅎ 보면서 '이론서'와 '도색잡지'의 오묘한 줄타기가 매력이라고 느꼈습니다. ㅎ 여기(성문화 보고서) 실린 사진들과 <몸>에 실린 사진들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홀딱 벗은 사진을 보고 뭐가 예술사진이고 선정적 사진인지 판단해 보는 재미 말이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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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2-13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의 책 취향이 저랑은 다르긴 하지만 야무님의 말씀엔
저도 백 배 동감입니다.
저도 엊그제 괜찮은 책을 발견하긴 했는데 이 책을 살까말까 망설이는 중입니다.
뭐 제가 사려는 책은 웬만해서 다른 사람이 먼저 사 제끼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전에 몇번 고민하는 사이 선수를 뺐긴 경험이 있긴 하죠.
저는 워낙 쌓인 책이 많아 적립금 한도내에서 사려고 용 쓰고 있습니다.ㅋ

yamoo 2015-02-16 16:38   좋아요 0 | URL
확실히 저하고 스텔라님은 책 취향이 다르지요~^^ 제가 사서 보는 책은 스텔라님이 구해서 보는 책이 아니고, 스텔라님께서 자주 읽으시는 책들은 제가 구해서 보는 책이 아니지요..ㅎ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고 살지를 망설이는 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인거 같습니다..ㅎ
적립금이 많으신거 같아 부럽습니다. 저는 적립금이 있으면 즉시즉시 쓰는 편이라 거의 0의 상태를 보입니다..ㅎㅎ

페크pek0501 2015-02-1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를 기죽게 만드는 페이퍼예요. 끄응...

한때 철학서만 읽었고 한때 미술서적만 읽던 시절이 있었어요. 이상하게 끌리더라고요.
그러다가 종교를 모르면 글을 못 쓸 것 같아서 성경을 사서 밑줄 그으며 읽었어요.

요즘 심리학 책을 많이 보는 편인데 재밌어요. 아들러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님의 글을 읽으니 저도 다시 철학서와 미술서적을 읽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무식하지 않으려면 좀 채워야겠어요. 하하~~)

yamoo 2015-02-24 17:25   좋아요 0 | URL
흠...이런 시덥지 않은 페이퍼에 기가 죽어야 되것습니까~ 페크님은 저보다 내공이 깊으신 걸요..^^

예전부터 철학서를 줄창 읽어 왔지만 언제부턴가 미술책을 지속적으로 사들이고 있습니다. 간간이 읽고 있는데 좋네요..ㅎㅎ 이상하게 미술책과 디자인 책이 끌리더라구요..ㅎ

심리학 책도 꾸준히 보는 편입니다. 전 아들러보다는 라캉 지젝 이쪽으로 보고 있는데...계속 보다보니, 이들이 대단한 구라꾼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슬슬 피하려고 하고 있어요..ㅋㅋ
미술서적 보단 디자인 서적이 갑이드만요~ㅎㅎ 디자인 서적 추천드려요~

낭만인생 2015-02-23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겪은 일이라... 주워 담다가 다시 내려 놓았는데... 잠시 후 다시 가보니 없었죠. 공감가는 글 감사합니다.

yamoo 2015-02-24 17:26   좋아요 0 | URL
중고서점에서는 일단 눈에 띠면 데려와야 한다는 게 정설 같아요. 나중에 사야지 하고 내려놓으면, 담에 없습니다. 네...없어요..ㅎㅎ 책좋아하는 분들은 대체로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2-26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탐을 잘 다스리는 것이 금년 (작년에 이은)의 목표인 요즘, 참으로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말씀입니다.

yamoo 2015-03-01 15:25   좋아요 0 | URL
공감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올해에도 책탐에서 해방되지 못할 듯합니다..ㅎㅎ

BGP 2015-07-14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흙서점 가시는군요 저도 올해 알게 되어 종종 갑니다:)

hellohello 2022-04-28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후기를 읽고 글 남김니다. 선생님 대단하시네요.
 

07년에 한 번 우리시대 스테디셀러 현황을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 며칠 전 이 작업을 다시 하고픈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집 근처 대형서점에서 스테디셀러라고 하는 책들이 몇 쇄나 찍었는지 하나하나 들춰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걸 조사하러 대형 서점을 찾기에는 동기가 약했다. 막간의 시간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기회인데, 어제 바로 그 시간이 주어졌다. 장소는 사당역 파스텔시티 반디문고.

 

스테디셀러의 기준은 책이 발행 된 후 10년 이상 된 책으로 했고, 내가 소장한 책만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몇 부가 팔렸는지는 출판 관계자가 아닌 관계로 정확히 잘 모른다. 그래서 표면적인 방법인 찍은 쇄만을 반영했다. 판을 거듭 찍은 책들은 그만큼 지속적으로 팔렸다는 증거이니 얼추 판매 부수를 어림잡을 수 있을 거다. 소설과 비소설의 1쇄 발행 부수도 출판사마다 다르니, 정확한 판매부수는 정확히 모르겠다. 단지 지속적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양서라는 점만 확인하는 것이 이 작업의 의의라 하겠다.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교양 인문학의 대박 출판물이다. 저자가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왕조실록을 알차게 펴냈다. 조선왕조실록의 성공에 힘입어 삼국왕조실록인 고구려, 백제, 신라의 실록까지 시리즈로 완결했다. 나도 초판이 나왔을 때 읽어 봤는데, 매우 유익했다. 그래서 삼국왕조실록까지 보았다. 왕조 위주의 정치사라서 단점은 분명했지만, 고교 교과서보다 훨씬 자세하고 쉬운 서술은 이 책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돌려놓았다. 학게에서는 이 책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판매부수로 그 가치를 스스로 입증해 나가고 있다. 현재 판매되는 광고로는 300만부라하니, 놀랍기 그지 없다.

 

 

1996. 3. 10       초판 33쇄

2004. 10. 25     초판 175쇄

2004. 11. 18     개정증보판 1쇄

2014. 02. 05     개정증보판 94쇄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깨버린 책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내 뜻에 의한 게 아니었다. 행정학개론 수업을 듣는데, 담당교수가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 내라는 숙제를 내 줬기 때문이다. 당시는 정말 황당했다. 행정학 교수가 왜 우리 문화재에 관계된 책을 읽으라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숙제를 하기위해 책을 읽었지만 매우 재미있었다. 4장 분량의 독후감도 일사천리로 써 낸 걸로 기억한다. 1권이 재미있어, 2권까지 읽었지만 그 후 관심에서 멀어지다가 <북한유산 답사기>까지 나온 걸 보고 다시 관심이 생겼다. 시리즈로 거듭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방송에서도 이 문화유산 시리즈에 따라 연예인들과 답사 여행을 하는 걸 보고 이 책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1993. 05. 20    초판 1쇄

1994. 06. 10    초판 23쇄

1994. 07. 11    개정판 1쇄

2010. 12. 20    개정판 85쇄

2011. 05. 11    개정2판 1쇄

2013. 11. 30    개정2판 18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다. 오래 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래서 에코, 하면 바로 이 책이다! 헌데, 읽기 쉽냐? 천만의 말씀이다. 에코의 소설들은 매우 고약하다. 처음 100여 페이지가 매우 지루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소설의 대명사라 회자되는 이 책이 한국에서 선전하는 걸 보면 놀랍다. 열린책들이 문학시리즈를 세계문학시리즈로 통합하여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나서도 이 책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2010년부터 시리즈로 계속 간행되고 있는데, 열린책들 세계문학 중 이 책의 인기를 넘는 소설은 없다. (<위대한 개츠비>도 5쇄를 넘지 못하고 있다.)

 

 

 

 

 

1992. 05. 25    초판 12쇄

2000. 03. 15    개역판 42쇄

2006. 02. 25    3판 37쇄

2009. 11. 25    보급판 9쇄

2009. 11. 30    4판 14쇄

2014. 01. 20    세계문학판 10쇄

 

 

<로마인 이야기>로 시오노 나나미의 팬이 됐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사실, 나는 이 시리즈를 3권만 갖고 있다. 1권, 3권, 5권. 읽었냐? 전혀 읽지 않았다. 워낙 베스트셀러여서 읽기가 싫었다. 그리고 10권이 넘는 분량도 읽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읽었던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한 권 잡으면 바람처럼 책장이 넘어간다는데, 난 여전히 이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언제 이 책을 읽기 시작할 지는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판을 거듭하고 있는 걸 보면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한 거 같다. 몇 년 전 한길사에서 이 책에 대한 독후감 응모 대회도 한 모양이다. 책으로 묶여 나온 걸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보았는데, 수상작의 독후감을 읽는 맛도 솔솔했다. 어쟀든, 이 책 정말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1995. 09. 30   초판 1쇄

2013. 07. 05   초판 102쇄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젤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더불어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랜동안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아 왔는데, 의외로 그리 많이 팔리지 않았다. 오래 전에 출간됐는데도 불구하고 100쇄를 아직 넘지 못하고 있다. 곰곰 생각해보니, 많은 출판사가 다투어서 출간해 왔기에 그럴 것이라 추정해 본다. 세계문학 작품들 대부분이 인기 작품 위주로 살펴보아도 20쇄를 넘는 책은 별로 없었다. 춮판사가 복수이다보니 경쟁이 심해져서 그런 듯. <개츠비>의 경우는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종류만 7종 정도 됐다. 민음사판이 그 중 가장 많은 쇄를 찍었다. 얼마 전 영화 개봉이 판매 부수를 올려주는 계기가 된 듯.

 

 

 

2003. 05. 06 1판 1쇄

2010. 09. 29 1판 47쇄

2013. 12. 20 2판 20쇄

 

 

파스칼의 저서들이 점점 번역되고 있지만, 파스칼 하면 그냥 <팡세>다. 팡세=파스칼이 자연스럽게 성립할 정도. 하도 유명한 작품이라서 <팡세>도 여러 출판사본이 보인다. 읽어 보면 철학적 수상집에 가깝다. 하지만 철학 총서 시리즈에 포함된 <팡세>보다는 문학 총서 시리즈에 포함된 <팡세>가 훨씬 더 많다. 서양 중세 사상의 중요 고전이기에 기독교 계열의 출판사도 많이 출간했다. 그럼에도 오랜 동안 사랑받아온 <팡세>는 문예출판사본이 아닌가 한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문예출판사 문고본 <팡세>는 1978년판인걸 보면.

어쨌든, 확인해 본 바로는 <팡세> 역시 민음사판이 제일 많이 팔린 듯하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10쇄를 넘기지 못했다.) 후발주자인 민음사의 약진이 놀랍기만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팡세 번역본이 아주 많은데, 발췌본부터 완역본까지 정말 천차만별이다~^^)

 

 

2003. 08. 25  1판 1쇄

2013. 12. 09  1판 36쇄

 

 

발타자크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는 판이 약간 변형되고, 하드커버에서 반양장으로 바뀌었음에도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잠언서 계열의 책 중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책이 아닌가 한다. 내 눈에 이 책이 처음 띄었을 당시 출판사는 쇼펜하워가 극찬한 책이라고 선전하고 있었다. 양장본이던 이 책은 정말 불티나게 팔렸던 기억이 난다. 서로 이 책을 선물로 주고 받았으니. 대단한 베스트셀였기에 궁금해서 서점에서 봤는데, 2시간 정도면 다 읽고도 남을 분량이다. 뭐, 그리 강한 인상이 남은 건 아닌데, 왜 이리도 계속 팔리고 있는지 무척 궁금한 책 중 하나이다. 어쨌든 이 책의 인기는 놀랍다~

 

 

1991. 12   초판 1쇄

2005. 10   5판 2쇄(254쇄)

 

 

 

 

 

<경제학 콘서트>는 교양경제학 책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이 책으로 인해 '~콘서트'를 단 책들이 봇물을 이뤘으니. 원제하고는 한참 먼 이 타이틀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책의 내용 덕분이지 않을까 한다. 경제 이론의 나열이 아니라 경제학적 마인드를 훈련시켜주는 내용이기에 단숨에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스타벅스 커피숍을 데이비드 리카도의 차액지대론으로 풀어주는 경제서적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인기를 확신하게 됐다.

이 책의 인기에 힘입어 <괴짜경제학>도 덩달아 베스트셀러가 됐다. 역시 읽어보니,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두 책은 이론의 나열이 아니라 나름대로 경제학적 시각이 이런 거라는 걸 사례로 잘 녹여낸 책이기에, 교양 경제학 책임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두 책은 정말 꾸준히 팔리고 있다. 아직도 쭉~

 

2006. 02  초판 1쇄

2014. 02  초판 156쇄

 

 

사실 이 책이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그리 만만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정치학자의 주요 이론서라 할 수 있는 책이 이렇게나 꾸준히 팔리고 있다는 게 신기 했다. 읽어 보면 교과서보다야 괜찮지만 꽤 딱딱한 책이데 말이다. 더군다나 헌팅턴은 미국에서도 보수 우익의 대표 학자이자 백인 우월주의 계열의 학자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만큼이나 많이 팔렸다는데, 심기가 좀 불편하다. 이 책의 꾸준한 인기를 좀 생각해 보니 답이 금방 나왔다.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 속에 담겨 있는 정서가 아닐까. 우리나라 보수 학자들이 꽤 좋아해서 알아서 석학으로 대접해 주니 언론에서 덩달아 띄워주는 뭐, 그런 경향. 출간 당시 조선 동아 서평을 보고 나도 구매했으니...

철저히 서구 중심 시각으로 세계질서를 바라보고 있는 저자의 논지가 매우 거슬린다. 공격받을 헛점이 꽤 산재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출간 이후 이 책에 대한 비판서들이 줄줄이 나왔다. 헌팅턴이 무리수를 둬 가며 애써 주장하는 바의 논지를 따라가면 의외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997.05  1판 1쇄

2013.07  1판 63쇄

 

 

<제3의 침팬지>로 널리 알려진 문화인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역저이다.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황금의 마이다스 손. 매우 무거운 주제의 책들을, 그것도 상당한 페이지를 자랑하며 펴내는 저자이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다. 어려운 주제를 흥미 진진하게 펼쳐내는 노 석학의 공력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듯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 책. 압도적인 분량을 자랑하는 문명사에 대한 이론서이지만 전혀 이론서같지가 않다. 목차만 봐도 알겠지만 주제들이 매우 굵직굵직하고 범위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책을 펼쳐 읽어 가면 그 두꺼운 페이지가 바람처럼 넘어간다. 러들럼의 <마타레즈 서클>만큼 두껍지만 흥미진진한 면에서는 얼추 경쟁이 될 듯하다. 문명과 문화를 다룬 책이 말이다! 이 책은 내 개인적인 예상으로 100쇄를 넘었을 거라 짐작했지만 그에 좀 못 미쳐 아쉬웠다. 그래도 꾸준히 팔리는 교양 과학 스테디셀러임은 증명되고 있다.

 

1998.08  초판 1쇄

2005.09.  초판 15쇄

2014.03    2판 58쇄

 

뭐, 스테디 셀러 현황은 이쯤에서 줄이도록 하자. 이 외에도 여러 스테디 셀러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대부분 30쇄 미만이다. 물론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에 한에서. 더 조사한 책들 가운데 70-80쇄 찍은 책들이 있긴 한데, 내가 소장하지 않고 있는 책이다. 소장 도서 이외에 100쇄가 넘는 책이 있나 봤는데,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대형 서점을 몇 곳 돌면 몇몇 책이 나오겠지만 더이상은 무리인듯하다.

 

와중에 놀라운 속도로 단기간에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로 경제 경영 분야의 자기계발서들이 많이 팔리고 있었는데, 내 예상을 완전히 깨버리는 책들이 있었다. 조사하는 와중에 새롭게 안 정보라서 덧붙여 본다. 이들 책 모두는 100쇄 이상을 찍었고,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300쇄에 다가가고 있다.

 

헌데, 샌덜의 책보다 더 압도적인 행보를 보이는 책은 쑹훙빙의 <화폐 전쟁>이다. 경제학 교양 도서로 분류되는 이 책은 정말 '압도적'이라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이다. 1권의 인기에 힘입어 4권까지 출간되고 있는데, 4권 공히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없을 정도. 대학생 교양도서 대출 순위 꼭대기에서 거의 내려오지 않고 있다고.

 

헛, 그런데 <아웃라이어>와 <넛지>가 100쇄를 훌쩍 넘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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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25 0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씁니다. 새로운 스타일의 알라딘 글이라고나 할까요. 줄거리 요약하는 글에 질려버렸는데... ㅎㅎㅎㅎㅎㅎㅎ 이런 스타일로 틈새 시장을 노리시다니요.... ㅎㅎㅎㅎㅎㅎㅎ 좋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지혜를... 이 책이 이리 많이 팔린 줄은 정말 몰랐군요.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베스트셀러보다 스터디셀로가 더 알차지 않을까 싶습니다.


yamoo 2014-07-27 14:45   좋아요 1 | URL
흥미 진진하게 읽으셨다니,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스타일의 글....뭐, 그럴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글을 쓰려면 사실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게 노가다거든요~ㅋㅋ
흠...줄거리 요약하는 글에 질려버셨다는데, 요새 알라딘에 그런 글이 많은 가 보죠? 주로 리뷰아닌 페이퍼를 읽으심이..^^;;

저도 조선왕조실록과 그라시안의 책의 인기를 보면서 깜놀했습니다..ㅎ

루쉰P 2014-07-27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야무님 잘 지내시죠?
오랜만에 왔어요 ㅋ 대단하시네요
집념이 느껴지는 글이에요
저 이제 자주 서재에 올 거에요 ㅋ

yamoo 2014-08-01 00:12   좋아요 1 | URL
와~~~루쉰님 올만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그간 어찌 지내셨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자주 뵙게 되길 바랍니다. 서재 복귀를 축하드립니다~^^
 

체홉의 소설을 통해 다시 소설 읽기를 시작했다. 주로 세계문학 작품 위주로 골라 읽어왔다. 대부분 추천작 위주로 보는데, 이상하게도 읽지 못하는작품들이 있다. 자전적 소설이나 가족 서사 그리고 아르누보 계열 작품들은 좀처럼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읽다가 만다. 르클레지오나 오르한 파묵 작품들도 완독한 책이 한 권도 없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현재는 아직 시기 상조인듯하다. 발라드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다크 웨이브를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을까.

 

소설을 선택하는 데에도 분명히 취향이라는 게 작용하는 듯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읽었던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품들 중에서 인상 깊은 구절들을 찾아봤다. 어떤 문장들이 나를 반하게 하여 줄을 치게 만들었는지 살펴보면 대충 나의 소설 취향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생각나는 것 위주로 꼽아 본다.

 

 

 

“당신과 함께 갈 수도 있어요. 나는 자유로우니까.”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언젠가는 자를 거요.”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줄을 붙잡아 맬 뿐이지……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p339)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 2004)는 2008년에 만났다. 참 늦게 만난 편이데, 정말 감동적으로 읽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서재에 감상문도 남겼다. 자연과 함께 물아일체 되어 사는 조르바를 보며 자유로운 삶에 대해 심도깊게 생각해 봤다.

 여러 시각으로 이 작품을 읽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자유'밖에는 생각 나는 게 없었다. 그래서 보스에게 말하는 조르바의 위 말이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다니던 직장의 사표를 미련없이 던졌다. 조르바의 말이 결정적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문학의 힘은 대단하다!

 

 

 

 

나를 태워 죽일 불이 금각도 태워 없애 버리리라는 생각은 나를 거의 도취시켰다. 똑같은 재앙, 똑같은 불의 불길한 운명 아래에서 금각과 내가 사는 세계는 동일한 차원에 속하게 되었다. 나는 연약하고 보기 흉한 육체와 마찬가지로, 금각은 단단하면서도 불타기 쉬운 탄소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때로는, 도망치는 도둑이 고귀한 보석을 삼켜서 숨기듯이, 내 육체의 속, 내 조직 속에 금각을 숨겨 갖고 도망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pp 50-51) 
내 관심은, 나에게 주어진 난문은 미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나에게 작용하여 암흑의 사상을 품게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다. 미라는 것만을 골똘히 생각하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암흑적인 사상에 자기도 모르게 직면하게 된다. 인간은 아마도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p52)

 

 미(美)라는 것은 마치 뭐라고 할까, 충치와도 같은 거야. 그건 혀에 닿아 신경 쓰이고 아프게하여,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피투성이의 자그마한 갈색의 더러운 이빨을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이건가? 고작 이런 거였나? 나에게 통증을 주고 나를 끊임없이 그 존재 때문에 고민하게 만들며, 또한 나의 내부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던 것이, 지금은 죽어 버린 물질에 불과하군. 하지만 그것과 이것이 정말로 같은 것일까? 만약 이것이 원래 나의외부 존재였다면 어째서 무슨 인연으로 나의 내부와 연결되어 내 통증의 근원이 될 수 있었을까? 이놈이 존재하는 근거는 뭘까? 그 근거는 나의 내부에 있었을까? 아니면 그 자체에 있었을까? (p153)
모름지기 생명이 있는 것들은 금각처럼 엄밀한 일회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의 온갖 속성의 일부를 담당하여,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것을 전파하고, 번식시키는 존재에 불과하였다. 살인이 대상의 일회성을 멸망시키기 위한 행위라면, 살인이란 영원한 오산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금각과 인간 존재와는 더욱더 명확한 대비를 보여, 한편으로는 인간의 멸망하기 쉬운 모습에서 오히려 영생의 환상이 떠오르고, 금각의 불괴(不壞)의 아름다움에서 오히려 멸망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인간처럼 필멸하는 것들은 결코 근절되지 않는다. (pp204-205

 

<금각사>(웅진, 2002)는 한 지인 덕분에 만난 책이다. 한 매체의 대표였던 분과 사석에서 책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에 가장 감동깊게 읽은 소설이 겹쳤다.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작품이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였다. 그러더니 나에게 <금각사>를 읽어봤냐고 물으셨다. 아직이라고 하니, 읽어보라고 강추해주셨다. 복거일의 작품과 더불어 자신에게 가장 감명을 준 작품이기에 나 역시 좋아할거라 확신한다면서. 난 자리에서 반드시 읽어 보겠노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당시 보는 책이 따로 있었기에 계속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때 마다 그분은 문자로 읽었냐고 확인사살(?)까지 하는 통에 읽기 시작했다. 정말 단숨에 읽었고, 너무 아름다운 문장이 많아 재독 삼독까지 할 정도였다. 삼독을 마치고 명작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 대표에게 메시지까지 보냈다.

 이 작품은 금각사라는 절의 구조와 인물의 구조가 완벽히 유비되면서 실로 우아한 하모니를 이루는 작품이다. 그 속에서 미의 이데아가 주인공에게 점점 멀어져 감을 탁월하게 드러낸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에 대한 미시마의 성찰이 작품 도처에 깔려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탐미주의의 최고봉'이라는 찬사가 허언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나에게 다가온 위 인용들은 사실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다.

 

 

 

가난  poverty  명
개혁을 주장하는 쥐들의 이빨을 갈기 위해 고안해 낸 줄칼. 가난을 없애겠다고 제안된 입안(立案)의 횟수는 가난에 고통 받는 개혁주의자들의 머릿수에다가 가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학자들의 머릿수를 보탠 것과 같다. 이 가난의 희생자들은 온갖 미덕을 몸에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가난이 존재하지 않는 번영의 땅이 있을 것이라며 자신들을 그곳으로 데려다주려고 노력하는 지도자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

나이  age  명
자신이 시도하기 어려운 악덕을 매도함으로써, 자신이 여전히 즐기는 악행을 상쇄하는 인생의 기간.  


망각  忘却  oblivion
사악한 인간이 악행을 그치고, 마음이 따분한 자도 안식을 얻는 상태. 명성의 최종 도착지인 쓰레기장. 고매한 이상을 넣어두는 냉동고. 야심만만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것보다 뛰어난 작품에도 질투를 느끼지 않는 곳. 자명종 시계가 없는 기숙사.

 

무감동의  無感動  apathetic  형
결혼해서 6주일이 지난.  

 

뻔뻔스러움  impudence  명
대담과 야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수다  loquacity  명
상대방이 말하기를 원할 때, 자신의 혀를 제어할 수 없어 괴로워하는 질환.

 

심통  心痛  distress  명
친구의 성공을 본 것이 원인이 되어 걸리는 질환

 

온정  溫情  cordiality  명
우쭐한 기분을 당장 누리고 싶은 자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간지러운 행동. 
 

지인  知人  acquaintance  명
돈을 빌릴 정도의 안면은 있어도 이쪽에서 꿔줄 정도는 아닌 사람. 상대방이 가난하고 하찮을 때는 고작 얼굴이나 아는 정도라고 말하고, 돈푼이나 있고 유명할 때는 절친하다고 말하게 되는 우정의 정도

 

비어스의 유머와 신랄한 풍자도 나를 매료시켰다. <악마의 사전>(이른아침, 2008)에서 그가 풀어놓는 단어의 의미를 보고 있으면 유쾌하고 통쾌하기 이를데 없다. 풍자, 신랄, 유머라는 의미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이 딱이다. 영어 단어를 이런 식으로 외웠더라면 아마도 영어의 달인이 되어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쓰치기도 했다. 의미가 정말 잊혀지지 않으니까. 무릎을 치고 뒤 늦게 따라오는 웃음은 더블 보너스!

참고로, 이 책을 너무도 재미있게 읽어서 비어스의  <악마의 위트사전>(함께, 2007)도 보았는데, <악마의 사전>보단 풍자와 유머의 강도가 상당히 떨어졌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분좋게 완독할 수 있는 유일한 '사전'이다.

 

 

 

다음 여덟 가지가 사랑의 증거이다; 심장, 말을 안 듣는 사지, 나른해진 몸뚱어리, 굳어진 혀, 수척한 모습, 눈물, 비밀, 홀로 타오르는 육체의 정염. 이러한 것들이 정열적인 사랑의 여덟 가지 증거이다.

 

다음 여덟 가지가 사랑의 결과이다. 사랑은 심장을 빨리 뛰게하고, 고통을 진정시키고, 죽음을 떼어놓고, 사랑과 관련되지 않는 관계들을 해체하고, 낮을 증가시키고, 밤을 단축시키며, 영혼을 대담하게 만들고, 태양을 빛나게 한다. 이러한 것들은 정열적인 사랑의 효과이다. (p201)

 

연극의 세 천재는? 이 물음에 2명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키냐르에 의해 한 명을 소개받았는데, 그가 쓴 이야기가 정말 아름답고도 경탄할만했다.  교토의 제아미가 일본 무로마치 시대 때 쓴 이야기라고. (아이스킬로스, 세익스피어, 제아미가 연극의 3대 천재로 꼽은 인물들이다.)

 

제아미 모토키요는 15세기 사랑에 적합한 악기를 고안해 냈다.  가죽이 아니라 비단으로 씌운 북이다. 그것은 침묵의 악기다. 그 북은 교토 황궁의 뜰에 있는 월계수 고목의 가지에 매달려 있다. 세월이 흘러 나무는 거대해 졌다. 월계수는 호숫가에 심어져 있었다. 공주가 단언하기를, 만일 누군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북을 살짝만 두드려도 천으로부터 소리가 생겨나, 퍼져서 규방에까지 크게 울릴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 공주는 침상을 떠날 것이다. 공주는 궁 밖으로 나갈 것이다. 공주는 사랑하는 님에게 몸을 맡기러 호숫가로 달려갈 것이다.

정원사가 손으로 천을 두드려보니 허사여서, 가장 깊은 침묵만을 끌어냈을 뿐이다. 그는 호수 표면에 비치는 북 그림자 속으로 서슴없이 몸을 던진다. 호수가 그를 삼킨다. 그 위로 침묵이 감돈다. 호수 표면이 마지막 잔물결까지도 지워버린다. 그러자 차츰차츰 북소리가 공간을 채운다.북소리가 공주의 귀에 닿자 그녀는 달려나가 자신의 옷을 찢고, 미친 듯이 익사자를 욕망하며, 이번에는 자신이 북을 울려 죽은 자를 불러내려 한다. (pp191-192)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문학과 지성사, 2009)은 정말 명문장의 보고이다.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 특히 나의 주목을 끈 것은 위의 문장들이다. 키냐르는 이 책에서 전형적인 소설쓰기 형식을 탈피하고 있다. 읽고 있으면 이게 소설인지, 수필인지, 단막극인지, 에세이인지 전혀 구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행간을 채운 문장들은 모두 말할 수 없는 것들이 활자로 굳어진 것들이다. 그래서 수 없이 많은 문장들에 경탄을 쏟아 놓게 된다.

 8가지 사랑의 증거와 결과가 위와 같이 파악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특히나 키냐르가 소개해 주고 있는 제아미의 저 이야기는 너무 매혹적이다. 누가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어주면 좋으련만~.

 

 

 

삶은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점진적으로 어떤 비밀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믿음, 삶은 해독해야 할 수수께끼로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겪는 일들은 동시에 우리 삶의 신화를 형성하며 또한 이 신화는 진실과 불가사의의 열쇠를 모두 지니고 있다는 믿음. (p 233)

 

어떤 사람들은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을 외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에 반대하여, 우리는 개별자로서만 개개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타당한 주장을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며, 사랑에 대한 그 말이 증오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덧붙이고 싶다. 인간은, 균형을 갈구하는 이 피조물은, 자신의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의무게를 통해서 상쇄한다. 그러나 이 증오를 순수히 추상적인 원리들, 불의, 광신, 야만성에 집중시켜 보라! 아니면 당신이 인간의 원리 자체마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면, 인류 전체를 한번 증오해 보라! 이런 증오는 너무나 초인간적인 것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분노를(인간은 이 분노의 힘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가라앉히고자 할 때 결국 분노를 한 개인에게만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법이다. (p 373)

 

과거에 최면이 걸린 나는 어떤 끈으로 거기에 자신을 묶어놓으려 하고 있다. 복수라는 끈. 그러나 이 복수라는 것은 요 며칠 사이에 내가 확실히 알게 되었듯이, 움직이는 자동 보도 위를 달리는 나의 그 질주만큼이나 똑같이 헛될 뿐이다. (중략)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 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자동 보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움직인다)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예전의 얀이 아닌 다른 얀이 역시 예전의 제마넥이 아닌 다른 제마넥 앞에 서 있는 것이며, 내가 그에게 날려야 하는 따귀는 다시 되살릴 수도 다시 복구할 수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p 396)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p399)

 

 

"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 "  이 소설의 주인공 루드빅은 이 짧은 농담으로인해 나락으로 떨어진다. 삶의 추락은 갑작스럽게 당하는 사고와 같다. 삶의 사건들은 우연적이면서 부조리하다. 이 소설은 루드빅의 농담을 통해 이를 빼어나게 입증하고 있다.

 쿤데라는 이 작품에 대한 인터뷰에서 "복수, 망각,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역사와 인간의 관계, 본래 행위의 소외, 섹스와 사랑의 분열 등 실존의 주제를 극도로 날카로운 빛으로 새롭게 내리쬐고 있다."라고 했다. 작품을 읽어보면 쿤데라의 말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 인용은 그 중 일부일 뿐. '실존의 주제를 극도로 날카로운 빛으로 새롭게 내리쬐'서 그런지는 몰라도, 회독수를 늘릴 수록 <농담>은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쿤데라의 소설들은 아편이다! 건조한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쿤데라 만쉐이~!"

 

 

 

 

순수한 도덕은 유일하고 보편적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무엇이 거기에 부가되지도 않는다. 순수한 도덕은 역사,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떠한 요인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며, 아무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순수한 도덕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결정하며, 무엇에 의해 조건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조건을 부여한다. 요컨대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도덕은 순수한 도덕의 요소들과 다른 요소들이 다양한 비율로 혼합된 것이다. 이 다른 요소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는 다소 불분명하지만, 대개는 종교에서 온 것이다. 어떤 사회의 도덕에서 순수한 도덕의 요소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면 클수록, 그 사회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회에 보편적인 도덕의 순수한 원리가 충분하다면, 그 사회는 세상이 다할 때까지 존속하게 될 것이다. (p40)

 

<소립자>(열린책들, 2006)를 보고 우엘벡의 소설들을 컬렉션했다. 그가 작품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순수문학에서 추구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것(예컨대 사랑)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거대 이슈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캐릭터에 담아 낸다. 이 소설은 정밀한 플롯 구조를 갖는 문학이 아니라 문학적 형식을 빌은 일종의 서구 성문화 비판서다. 사실 성은 매우 개인적인 영역인데, 우엘벡은 이를 사회 윤리와 연결시키는 시도를 한다. 엄청난 시도인데도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소설화시켰다. "다른 소설들이 토끼를 사냥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은 거대한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는 줄리언 반스의 평가도 이런 맥락에서 였을 거 같다. 위 인용은 그래서 꽤 인상깊게 내게 다가왔다.

 

헌데, 우엘벡의 주제의식은 그 전작인 데뷔작에서 훨씬 더 직접적이고 신랄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일기형식에 가까운 작품이지만 우엘벡의 주제의식이 집약적이고도 직접적으로 표출된 작품이라 아주 의미심장하게게 읽었다. 솔직히 문학적 기교는 현저히 떨어졌지만 그의 냉소적 비판의식은 거칠지만 상당히 빛난 작품이라 생각된다.

 

 

목적을 위해서는, 말하자면 철학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잔가지를 과감히 쳐내야 한다. 단순화시켜야 한다. 세부 사항들을 하나씩 파괴시켜야 한다. 나는 단순한 역할을 통해서 역사적인 변화에 일조할 것이다. 우리 눈앞에서 세상은 획일화 된다. 원거리 통신 수단은 점점 발달하고, 아파트 내부는 편리한 기구들로 나날이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차츰 불가능해지고, 그런 만큼 인생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줄어 간다. 온갖 화려한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다. 21세기가 어떨지 뻔하다. (p21)


결국 우리 사회에서는 분명히 섹스도 차별화의 또 다른 체계를 보여 준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돈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또한 냉혹한 차별 체계인 것이다. 이 두 가지 체계의 효과는 엄밀히 똑같다. 무제한적인 경제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섹스의 자유주의는 <절대빈곤> 현상을 낳는다. 어떤 이들은 매일 사랑을 하는데, 어떤 이들은 평생에 대여섯 번뿐이다. 어떤 이들은 열댓 명의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여자가 한 명도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시장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해고가 금지되어 있는 어떤 경제 체계에서는, 각자 어느 정도 자기 자리를 찾는데 성공한다. 간통이 금지된 섹스 체계에서, 각자는 어느 정도 자기 침실 파트너를 찾는데 성공한다. 완전히 자유 경제 체계에서, 어떤 이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실업과 가난 속에 허덕인다. 완전한 자유 섹스체계에서는 어떤 이들은 정말로 다양하고 짜릿한 성생활을 즐기지만, 다른 이들은 자위 행위와 외로움 속에서 늙어 간다. 자유주의  경제는 투쟁영역의 확장이다. (pp 118-119)

 

 <투쟁영역의 확장>(열린책들, 2003)은 <소립자>와 비교해서 봐 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냥 에세이 형식의 글을 소설형식에 담으려고 애쓴 습작 수준이다. 하지만 우엘벡의 이 데뷔작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가 출간 한 작품들 속에 한결같이 드러나 있는 주제의식의 맹아가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그가 작품 속에서 일관적으로 비판하는 자본주의와 성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이는 '투쟁영역의 확장'이다. 우엘벡 철학의 근간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있다. 위의 인용은 이 책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소립자>를 읽어 봐도 <어느 섬의 가능성>과 <지도와 영토>를 봐도 우엘벡은 결코 이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우엘벡 철학의 결정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우엘벡 소설에 꽂히게 된 이유는 그의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에 있다. 우엘벡은 <투쟁영역의 확장>에서 이를 직접 밝혔다.

 

나는 어떤 미묘한 심리 묘사로 당신을 매혹시켜 보겠다는 생각은 없다.  나의 세심함과 유머 감각으로 당신에게 박수를 받아 보겠다는 욕심도 없다. 마음이나 외모나 성격 따위의 다양한 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능력을 구사하는 것은 작가들의 몫이다. 나는 그런 작가에도 속하지 못한다. 이런 사실적인 세부 묘사를 해나가다 보면 다양한 인물을 자세히 그려 나갈 수 있는데, 나는 그것을 아주 시시한 일들이라고 변명한다. (중략) 목적을 위해서는, 말하자면 철학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작가지를과감히 쳐내야 한다. 단순화시켜야 한다. 세부 사항들을 하나씩 파괴시켜야 한다. (투쟁영역의 확장, p 20)

 

아마도 줄리언 반즈가 "다른 소설들이 토끼를 사냥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은 거대한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는 평가는 이래서 나왔나 보다. 나는 이런 작가의 이런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신경숙과 공지영의 소설들을 멀리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순수문학 위주(인간의 감정을 아주 디테일하게 그리는 뭐 그런 계열)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엘벡 소설들을 싫어하는 것 같다. 주위에서 우엘벡 소설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분들을 보니 이런 편견이 생긴 듯]

 

 

 

 

글을 쓴다는 것은 팽팽한 아름다움의 줄위로, 한 글자 한 글자씩 나아가는 일이야.한 편의 시, 하나의 작품, 비단 위에 쓰여진 한 이야기의 줄 위로 말이야. 글을 쓴다는 것은 책의 길 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나아가는 일이야. 가장 어려운 것은 땅에서 몸을 띠워 언어의 줄위에 올라서는 것도  평행봉과도 같은 붓에 의지해서 균형을 잡는 것도 아니지. 때때로 쉼표의 낙하나 마침표의 장애물 같은 남모르는 현기증으로 끊어지곤 하는, 곧은 선을 따라 똑바로 나아가는 일도 아니지.  그래,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글이라는 팽팽한 줄 위에 한없이 머무르는 것, 꿈의 고도(高度)에서 삶의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 단 한 순간이라도 상상의 줄에서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이야. 참으로, 가장 어려운 일은 언어의 곡예사가 되는 일이지. (pp98-99) 

 

사실, 막상스 페르민의 <눈>(현대문학북스, 2002)은 조경란 작가가 아니면 있는 조차 모르는 작품이었다.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얄팍하고 여백 많고. 더욱이 무명 작가이기에. 하지만 오래 전 조경란 작가의 추천으로 소설을 찾았더랬다. 2008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절판이었다. (알려지지 않고 유명한 작가가 아닌 책들은 소리소문 없이 절판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도서관에서 빌려보려고 했는데, 누군가가 빌려가서 잃어버렸다나 뭐라나. 그러다가 2009년에 지인의 집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빌려 읽은 기억이 있다. 읽으면서 하도 멋진 동화였기에 인상이 깊었고, 정말 뇌에 깊이 박힌 바로 저 문장으로 인해 이 책을 소장하려고 무진장 애써왔다. 헌데 뜻밖에도 알라딘 일산점에 책을 반품하러 갔다가 거기서 만난 것이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집에 오는 도중에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다시 읽으니 예전에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발견해서 감동이 2배였다. 그리고 바로 저 문장들. 플롯 구조 속에서 저 부분을 발견하는 순간은 그야말로 전율이 일 정도였으니. 숱한 명작 소설의 명문장들을 봐 왔어도 이처럼 시적이고 아름다운 글을 만난 경험은 정말 드물다. 특히 글을 잘 쓰고 싶은 이들에게는.

 

 

 

뭐, 이쯤에서 줄여야 겠다. 아직 언급하지 못한 작품이 부지기수다. 움베르코 에코의 <푸코의 진자>, 우나무노의 <안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줄리언 반즈의 <플로베르의 앵무새> 등이 이 페이퍼를 쓰기 위해 꺼내 놓은 책들이다. 십여 권이 훌쩍 넘고, 분량상 더 쓰는 것은 무리인 듯싶다.

 

 

 

 

 

 

 

 

 어쨌든, 대충 인용된 부분들을 옮기다 보니, 나의 소설 취향이라는 것이, 잘 짜여지고, 심오하고 정교한 내용의 작품들을 선호하는 것 같다. 단언할 수 있는 건, 진부하고 평범한 주제에 대해 디테일하게 접근하는 작품들은 매우 싫어한다는 거. 하지만 의외로 극단적이거나 삐딱한 내용에 대해서는 관대한 듯하다.

 사실, 이 작업을 한 이유는 내가 아직 모르는 작품들을 찾아 읽기 위해서다. 잘 모르는 작가들을 찾아야 겠는데,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소설 취향을 알고 있어야 겠기에.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자평한다.

 

 

ps.

혹시, 이 페이퍼를 보신 분들 중에서 제 취향에 부합하는 소설을 알고 계신 분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추천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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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26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멕 메카시를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yamoo 2014-03-28 11:51   좋아요 1 | URL
오~ 메카시 소설이 좋다고 추천해 주는 지인이 있었는데...
흠...메카시 작품 중에서 어떤 작품을 제일 먼저 봐야 하는 지 추천해 주세요. 그것부터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곰발님~^^

lmicah 2014-07-18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 제가 닿을 수 없는 문학의 깊이와 포스팅의 깊이네요. 알라딘에는 정말 고수분들이 많으세요^^ 제가 읽어 본 책은 <인간실격>이 다네요.ㅎ

yamoo 2014-07-24 19:21   좋아요 1 | URL
헐~ 그 무슨 당치 않는 말씀을...제 포스팅을 보시면 알겠지만 수준이 매우 얕습니다. 왜냐면 제 모토가 얕지만 넓게 알자거든요~^^;;

아마도 관심사가 다르셔서 그럴듯합니다. 저는 lmicah님이 읽으신 책 중에서 겹치는 책이 별로 없습니다.ㅎ
 

서점을 둘러보니, 눈에 띄는 교양 경제 분야의 신간들이 꽤 많다. 읽어 봤으면 하는 책 위주로 몇 권을 간추려 보았다.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키델리 & 에드워드 스키델리, 부키

아미티아 센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이후로 철학은 경제학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쳇바퀴를 걷어차는 경제학과 철학의 담대한 제안'이라는 카피는 한번 들여다 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런데 책을 손에 들 수밖에 없게 하는 결정타 정보가 있으니, 바로 저자였다. 공저자가 아버지와 아들인것. 아버지 스키델스키는 세계적인 케인즈 전문가 중 한 사람이고, 아들은 미학과 도덕철학을 전공한 철학자다. 그냥 경제학을 전공한 부자의 저술이였다면 들었다 놨을 것이지만 경제학자와 철학자 부자라니, 이건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던 거다. 재빠르게 훑어보았는데, 일독하기 충분한 책임은 분명했다. 도덕철학이라는 경제학 시조(애덤스미스)의 잃어버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치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돈이든 행복이든 극대화를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적당히 가치있게 향유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저자들의 말은 충분히 공감할 만 하다.

 

 

<부자들의 생각법>, 하노 벡, 갤리온

카너먼과 트버츠키가 심리학을 경제학에 접목시킨 이후 이 분야는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쳑하고 있다. 가격, 소비, 선택 등에서 매우 효과적인 이론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이 책은 독일경제 전문가가 자본 시장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이론서다. 하지만 전혀 딱딱하지 않다. 몇 페이지를 읽어 봤지만 굵직굵직한 경제 현상이 교과서가 아니라 경제 신문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저자가 이론경제와 실물경제에 매우 밝은 이력 때문인지 분석이 매우 명쾌하다. 소비와 저축, 주식과 부동산 그리고 노후대비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민감한 경제 현상에 대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심리적 기제를 심도있개 들춰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를 꿈꾸지만 부자가 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하노 벡은 부자와 일반인의 차이가 '아주 작은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이것을 경제학, 심리학 그리고 역사적 사례를 통해 종횡무진 분석하는 저자의 설명력은 가히 일품이다. 스티븐 렌즈버그의 <발칙한 경제학>에 견줄 수 있는 유익한 교양경제학 책이다.

 

 

<노동을 보는 눈>, 강수돌, 개마고원

'노동'이라고 하면 항상 마르크스 경제학이 떠오른다. 그만큼 노동의 개념은 정치경제학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반면 주류경제학(특히 경제학 교과서)에서 '노동'은 항상 '여가'와 함께 붙어다닌다. 대체효과와 소득효과의 크기를 따져 노동공급곡선을 도출하는 따위의 이론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개념적이고 사변적인 관점에서 노동을 분석하지 않는다. 강수돌 교수는 '노동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이런 출발점의 근저에는 마르크스의 노동과 소외개념이 깔려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노동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로  구체화하여 들려준다. 그 핵심 작업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동이다. 이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이 책의 장점이다. 한 마디로 노동하는 사람 모두가 알아야 할 노동이야기라는 것 그래서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최저임금제나 감정노동 같은 현실적 문제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저자가 12개의 주제로 다룬 노동 문제를 따라가다보면 노동이란 즐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노동'에 대한 자기만의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보너스.

 

 

<경제학 무작정 따라하기>, 조지 버클리 & 수미트 데사이, 길벗

거의 매일 추리소설과 문학만 읽는 내 어머니가 갑자기 경제학 책을 읽고 싶단다. 그래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 서점에 같이 갔다. 경제학 최신 코너에서 어머니가 골라든 게 바로 이책이다. 쭉~ 훑어 보시더니 이 책이 가장 읽을만 하시다고. 같이 살펴 보니 광범위한 경제지식이 꽤 잘 정리되어 있다. GDP, 물가, 무역, 일자리, 은행, 대출, 부동산, 나라살림 등 경제학의 핵심 주제들이 키워드 중심으로 알기 쉽게 서술된 게 장점. 머리아픈 수식이나 암기할 사항도 없다. 처음부터 읽을 필요도 없고 관심 있는 주제들이나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어 나갈 수도 있다.

실용서를 전문으로 출판하는 길벗에서 나왔길래, 시쿤둥하게 생각했지만 내용이 의외로 알차다. 무엇보다 실생활의 중요 경제문제를 실제 사례와 단순한 수치 그리고 그래프를 갖고 직관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 책의 미덕. 이를 통해 하나의 경제현상이 여타 경제현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지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복잡한 경제 현상을 쌈박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얼마나 반가운 책인가~

 

 

<트렌드 코리아 2014>, 김난도, 미래의 창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을 냈지만 아마도 김난도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널리 알려진 저술가다. 책 뒤나 앞에 책이 몇 쇄나 찍었는지 확인하는 취미를 갖고 있는데, 이 책은 내가 이 작업을 해 오고 있는 중에 가장 압도적인 쇄를 거듭하고 있다. 저번 주 종로 반디에서 확인한 숫자는 경악 자체였다. 무려 785쇄였다! 아마도 한국 출판계 단행본 역사상 기네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든, 전작의 인기 후광효과를 좀 볼 듯싶다.

 사실 김난도 교수는 매년 트렌드를 분석해 왔다고 한다. (난 몰랐다~ㅎ) 이 책은 '내년에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지갑을 열게 될까?'라고 하는 화두로 '틈새시장'을 비롯해 10개의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다. 400페이지 정도의 두툼한 책이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고공행진으로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책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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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2-1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려 785쇄라니... 놀랄 만합니다.
집에 읽을 좋은 책이 쌓여 있는데, 좋은 신간은 매주 나오고...
시간을 살 수 있다면 요즘은 시간을 사고 싶어요. ㅋ
좋은 책 정보 얻어 갑니다. 다 읽지 못하더라도 어떤 책이 나왔는지는
늘 관심이 갑니다.

yamoo 2013-12-16 09:48   좋아요 0 | URL
700쇄가 넘은 책은 저도 정말 첨 봅니다^^

집에 계속 책이 쌓이고 있는데, 3900원짜리의 유혹은 왜이리도 거센지...ㅜㅜ
곧 굴복할 거 같다는..ㅎ

저도 어떤 책이 나왔는지는 늘 관심이 가는편입니다. 그래서 서점에서 들춰보곤 합니다~ 정보 얻어 가신다니 페이퍼 쓴 보람이 있는 걸요~^^

양철나무꾼 2013-12-1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난도는 왕밥맛이지만,
그의 매년 트렌드를 분석해오는 노력은 가상하게 평가해야겠는걸요, ㅋ~.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내년엔 웬만해선 지갑을 열기 힘들 정도로 경기가 얼아붙지 않을까 싶다는~--;
희망사항은, 책 사는게 사람들이 지갑을 활짝 여는 한해가 되기를~^^

yamoo 2013-12-16 09:51   좋아요 0 | URL
호~ 나무꾼님이 왜 김난도가 왕밥맛으로 생각하시는 지 무척 궁금하네요. 무엇때문일까욤??^^;;

저두 내년 경기가 올해보단 좋지 않을거란 생각이 자주 듭니다. 경제지표들이 모두 암울~ 책이 더 안살거 같다는...책이 많이 팔리면 그나마 경기가 좀 나아지고 있다는 낌새가 있긴한데...내년에도 도산하는 출판사가 많을거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경기가 어려워도 책의 수요는 줄곧 유지됐으면 하는 바랍입니다!ㅎ

가연 2014-01-03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책이 가장 궁금하네요. 야무님 많이 늦었지만 새해복많이 받으세요ㅎㅎㅎ

yamoo 2014-01-18 13:09   좋아요 0 | URL
가연님 독서취향에 부합하는 책인거 같습니다. ^^

늦었지만 새해 인사 주셔서 넘 감사드립니다. 전 너무 게으르고 또 요즘 넘 신경쓸 일이 많아 알라딘에 포스팅도 못했네요. 이제 설날이 오니, 설날에는 꼭 가연님께 제일 먼저 새해 인사를 가겠어요! 불근~^^
 

오우~ 하루에 포스트를 두 개씩이나 쓰는 날도 있구나..ㅎㅎ 그래도 생각난 김에 투덜거려야 겠다.

 

아, 진짜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살림 문고가 아무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가격을 인상했다. 더군다나 아주 야금야금 올리고 있는 중이다.

 

3300원에서 4800원으로 대폭 올려놓고 있는데, 이건 임금인상 대비 치명적인 책값 인상이다. 경험상...다른 어느 출판사 어느 총서를 봐도 이런 정도의 가격 인상을 단행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살림문고를 가격이 싸서(현재 발행되고 있는 문고본 중에서 가장 문고본에 적절한 가격이라) 애용해 왔는데, 이제는 가격 매리트가 하나도 없을 듯.

 

4800원에 살림문고를 사서 읽느니, 차라리 책세상 문고본 우리시대 총서 시리즈를 사서 읽겠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인상인가?!

 

살림문고(100권 돌파)와 책세상 문고 우리시대(90여 권)를 꽤 많이 애독해봐 온 독자로서 살림문고가 책세상 문고본만큼의 가격을 쳐 받는 거에 심히 부아가 치민다. 퀄러티와 양 면에서 책세상 문고 3900원 짜리(2000년대 초반 가격)가 현재 4800원에 나오고 있는 살림문고본 보다 훨씬 뛰어나다.

 

분량 면에서도 비교가 불가하다. 살림문고본은 100페이지를 넘는 책이 하나도 없다(물론 가격을 올린 320권 이후의 가격대는 모두 4800원이고 2013년 출간된 책들은 120페이지 정도 된다).기획의도 면에서 그런 거라 이는 뭐라 할 수가 없지만 우리시대 문고 초기 3900원짜리를 단순 비교해 봐도 살림문고는 우리시대 문고를 양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다. (전반적으로 책세상 문고들이 질적으로 훨씬 밀도가 높다.)

 

예컨대 우리시대 문고본 초기에 발간된 3900원짜리 1-10권의 분량은 일단 100페이지를 훌쩍 넘는다. 배판은 살림문고본보다 커서 분량상 우리시대 문고가 25%이상 많다. (현재는 3900원짜리가 4900원으로 천원 인상됐다.)

 

좀더 구체적으로 적시해 보겠다. 살림문고 1p에는 약 552자가 들어간다. 1권당 90여 페이지이니 약 49680자이다. 줄간격 32, 글자크기 10포인트로 설정해서 A4용지로 환산하면 약32장 분량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200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발행된 3300원짜리 살림문고본들은 많이 팔린 순으로 가격이 4800원으로 인상되어 출간되고 있다. 예컨대 지금 읽고 있는 살림지식총서 222권 <자살>(95p)은 2007년 2쇄본이다. 서점에서 보니 4800원이다. 2013년 출간된 책들은 4800원이라 그런지 100페이지가 넘고 일부 책은 종이 질이 코팅지이고 컬러가 들어간 책도 보인다.

 

 

 

반면, 책세상 문고본은 절대적인 가격 인상 정책을 쓰지않고 페이지당 가격을 적용하여 두깨가 두꺼우면 가격을 좀 더 받는 수준이다. 최근 책세상 문고 고전의 세계 가격도 많이 올랐지만 살림문고 수준만큼은 올리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전의 세계 1권인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 2003년 1쇄 본은 140페이지에 5900원이었다. 현재는 6900원에 책정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1천원 올렸다. 최근 발매된(2013년 6월) 칼 만하임의 <세대문제>는 164페이지에 7900원이다.

 

 

 

 

결론적으로...살림 출판사가 너무 한다고 생각한다. 가격인상 시 최소한 띠지나 광고를 통해 알려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기습적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건 범우사의 범우문고 가격을 올릴 때와는 정말 판이하게 다르다.

 

범우사가 범우문고본 가격을 2000원에서 3300원으로 올릴 때 대대적으로 송구스럽다며, 좀더 좋은 퀄리티로 찾아 뵙겠다고 해서 나온 것이 종이 질 변경과 표지 레이아웃 변화였다. 물론 종이질이 전보다 더 안좋아졌지만 독자를 대하는 배려 면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하지만 살림 출판사는 책의 가격을 인상하는 데 책이 하나도 바뀐 게 없이 그냥 가격만 올렸다. 그것도 50%가까이! 정말 밉다~!

 

헌데 더 기가 찬 건 큰글자 판으로 나온 살림지식총서를 보고 경악했다. 책가격이 무려 12000원이나 되었다! 단지 문고판을 고교 교과서 판형으로 크게 확장했을 뿐인데!!!

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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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3-12-04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유감이네요.

yamoo 2013-12-05 16:55   좋아요 0 | URL
네~ 그래요...정말 유감이어요~

가연 2013-12-05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 할인할 때 묶어서 구입을 했는데 지금 보니깐 가격들이 장난아니었네요.. 제가 구입할때도 가격이 원래 이랬는지 기억이 안나긴 하지만..

yamoo 2013-12-05 16:57   좋아요 0 | URL
묶어서 구입하면 정가 확인을 잘 안하게 되지요. 가격을 일률적으로 올린게 아니라 인기종 위주로 단계별로 인상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구입하신 종류에 따라 드를 듯합니다~^^

양철나무꾼 2013-12-05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한권의 적당한 가격에 대해서 종종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저는 어느 때는 계획없이 책을 마구 사재기 하기도 하는데,
한참 지난 후에 보면 베어넘겨진 나무가 아까운, 종이값이 아까운 그런 책들도...더러 있습니다.

요즘은 책을 컴으로 편집하기 때문에,
이마트 같은데 보면, 사이즈 줄이고 색상 줄여서 가격을 저렴하게 받기도 하던데...
이런 출판사도 있군요.

yamoo 2013-12-05 18:46   좋아요 0 | URL
책 구매는 적당히 해야 하는데...에휴~ 총서 위주로 모으다 보니, 알라딘 중고서점 때문에 그냥 병적 수준으로 책을 사다 모읍니다요..ㅠㅠ
종이 값이 아까운 책은 없지만 똑같은 책을 두권 사거나 너무 많이 사서 읽을 염두가 안난다는..ㅜㅜ

이마트 책은 중고로도 알라딘에서 사지 않더군요~
근데, 혹시 나무꾼님 살림지식총서를 한 권도 않읽어 보셨는지요...이 총서 시리즈 꽤 유익합니다. 근데 가격을 넘 많이 올려서 이제 예찬은 더이상 하기 힘들거 같아요..ㅎ

쉽싸리 2013-12-05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임금인상율 대비 책값 비싸요. 이러니 중고책만 기웃기웃. 신간도 가끔 읽어줘야 하는데 엄두가 안나요. 살림이나 책세상 고전은 중고에도 잘 안나오는듯해요. 좀 과장해서 이건 뭐 하늘 높은줄 모르는 책값입니다. ㅜㅜ

yamoo 2013-12-09 21:31   좋아요 0 | URL
살림문고와 책세상 고전은 일반 헌책방에는 잘 안나옵니다. 하지만 알라딘에는 아주 많아요~ 알라딘 중고서점을 돌아다니면 지점마다 최소 10권 이상씩은 미치되어 있더라구요~ㅎ 가격도 1300~2900원 선으로 아주 저렴합니다. ㅎ 단 책세상 고전 6900원짜리는 3천원을 약간 넘더라구요~
저도 요즘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살림문고와 책세상문고본이 눈에 띄면 곧바로 데려 온답니다~^^

살림지식총서 2014-01-1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살림지식총서 담당편집자입니다.
우연히 글을 보고 들르게 되었는데요.
우선 살림지식총서에 대한 관심과 따끔한 질책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몇 가지 답변을 드리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글을 남깁니다.

<살림지식총서>는 2012년 5월 출간분부터
3300원에서 4800원으로 가격이 인상되었습니다.
인상 전후 저희가 충분히 고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후 신간은 물론 새로운 쇄를 찍는 구간도 동일하게 가격을 인상하고 있습니다.
책값 인상은 약 4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지게 되고요.
따라서 2014년 1월 현재, 3300원과 4800원 두 종류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살림지식총서>는 첫 출간 이후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책값을 인상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정가 인상 고민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수익사업을 목적으로 시작한 출판이 아니었기에 잘 견뎌왔고,
2년 전부터는 전국공공도서관에 '살림지식총서 기증사업'도 펼치고 있습니다.

부득이 책값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물가 상승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시대 변화에 따른 편집의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책에 따라 분량이 늘어날 필요도 있었고, 컬러판 출간과
기존에 발행된 구간 개정 작업 등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듭니다.

4800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책,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책으로 거듭나고자
계속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질타의 목소리도 겸허히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yamoo 2014-01-18 13:22   좋아요 0 | URL
흠...그러시군요. 살림지식 총서를 애용해 온 저로서는 매우 아쉬운 가격 인상이었습니다. 4800원은 너무 심하지 않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편집에 따른 변화가 있는 책은 가격을 좀 올려받고 그렇지 않은 책들은 새로운 편집으로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왜 신문지 종이로 페이퍼 백을 발행할 생각은 안하시는지요? 표지도 현 범우문고판 정도로만 해도 기존 대비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을 텐데요~

독자를 생각하고 그만큼 양서를 널리 읽히기는 것을 살림 출판사의 운영 기조라고 한다면, 제가 위에 언급한 정도로 편집을 하면 될 듯합니다만...

살림 출판사 측에서는 그런 생각을 안하시고 계신 모양입니다. 과연 일부 컬러도판이 들어가고 편집을 새롭게 보완해서 4800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책이 나올 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현재 4800원으로 인상된 책은 기존의 3300원 책과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거든요~

책가격 인상에 대한 얄팍한 변명처럼 들립니다. 뭐, 저는 이정도 불만섞인 얘기를 늘어놀 정도는 됩니다. 지금까지 살림문고 100권 이상 사서 보고 있거든요. 독자들의 질타의 목소리 운운 해도 가격을 4800원으로 전부 인상한다면 겸허히 듣는게 아닙니다.

과연 4800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책이 나오는 지 지켜보겠습니다. 개인적인 예상입니다만,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도 조만간 대폭 가격인상을 단행할 거 같은데...
가격을 내리는 것이 독자에게 사랑받는 첫걸음임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가격을 적게 받으면서 양질의 콘텐츠를 담을지 생각하셔야지 그냥 시대 변화에 따른 편집 변화라는 명분은 독자들을 절대 설득할 수 없습니다. 독자들을 움직이는 건 다름 아닌 가격입니다. 가격!

문고본의 적정가격은 3000원을 넘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1인 입니다. 이점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한규준 2020-10-19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0년 현재 전자책으로 2천원에 구매가능합니다.